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예언서들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스겔에서 말하기를,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여기서 이성(rational)레바논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불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훨씬 더 명료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과 다른 많은 곳에서 애굽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합니다. 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해설

 

이 글은 AC.118에서 제시된 ‘힛데겔 강 = 이성의 명석함’, ‘앗수르 = 이성적 마음’이라는 정의를, 예언서 전체를 가로지르는 상응의 증언으로 확증하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개념 설명으로 끝내지 않고, 말씀이 스스로 이 해석을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에서 앗수르가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백향목은 곧고 높으며,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입니다. 이는 이성이 가진 구조적 힘과 통찰력을 나타냅니다. 이성은 인간 정신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능력이며, 사유의 높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자라는 조건은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라지 않았고, ‘물들’과 ‘깊은 물’, 그리고 ‘강들’로 인해 자랐습니다. 다시 말해, 이성은 유입에 의해 살아납니다.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이 기억 지식들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성이 작동하는 실제 내부 구조를 보여 줍니다. 기억 지식들은 이성의 토양이자 재료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방향을 갖지 못합니다. 이성은 이 기억 지식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연결하지만, 그 이성 자체도 위로부터의 흐름 없이는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사야의 인용은 이 질서를 더 넓은 구조 속에 배치합니다.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이 서로 왕래하며 하나의 복을 이룬다는 그림은, 인간 정신의 삼중 구조를 매우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입니다. 이 셋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때, 곧 기억 지식이 이성으로 정리되고, 이성이 지성으로 밝혀질 때, 그 전체가 ‘’이 됩니다.

 

특히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라는 표현은, 기억 지식이 이성을 섬겨야 한다는 질서를 말합니다. 정보와 경험은 이성을 지배해서는 안 되며, 이성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또한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하는 대목은, 이성 자체도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작품’임을 분명히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나의 기업’으로 불리는 것은, 지성이 주님의 목적과 직접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지성은 단순한 이해 능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분별하고 살아내는 능력이며, 이는 인간 안에서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역입니다.

 

AC.119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높고 강력하지만, 근원은 아니다. 기억 지식과 지성을 잇는 중간에 서서 섬길 때에만 참되며, 이 삼중 질서가 하나로 움직일 때, 인간 전체가 복이 된다고 말입니다.

 

 

 

AC.118, 창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AC.118-121)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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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2:14)

 

AC.118

 

힛데겔 강(river Hiddekel)은 이성(reason), 곧 이성의 명석함(clearsightedness of reason)입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 마음(rational mind)이며,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석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흘러들어옴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곧 유브라데 강은 기억 지식이며, 이는 마지막 단계(the ultimate)이자 경계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지혜의 강이 ‘이성(reason)과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이라는 두 하위 층위로 더 세분화되는 지점을 다룹니다. 앞선 둘째 강 ‘기혼’이 이해의 인식들을 의미했다면, 셋째 강 ‘힛데겔’은 그 인식들이 ‘이성의 명석함’으로 조직되고 투명해지는 단계입니다.

 

힛데겔’이 이성의 명석함을 의미한다는 말은, 이성이 단순한 계산이나 논증 능력이 아니라, ‘진리의 흐름을 또렷이 보는 능력’임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명석함은 스스로 밝아지는 자율적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비췸을 받을 때 생기는 선명함입니다.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앗수르는 종종 이성의 힘과 연결되며, 올바르게 쓰일 때에는 교회의 보호와 질서를 돕지만, 스스로를 절대화할 때에는 교만과 왜곡으로 기울어집니다. 따라서 이성의 명석함이 ‘동쪽’, 곧 주님을 향해 흐른다는 표현은, ‘이성은 근원을 잊지 않을 때에만 참되다’는 조건을 분명히 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구조는 유입의 질서를 정확히 보여 줍니다. 주님 → 속 사람 → 이성적 마음(겉 사람)이라는 흐름입니다. 이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이 질서가 유지될 때, 이성은 교만해지지 않고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가 기억 지식이며 ‘경계’라는 설명은, 에덴의 강들이 도달하는 ‘최외곽(the ultimate or boundary), 즉 가장 바깥을 짚어 줍니다. 기억 지식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며 경계입니다.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면 감각과 세속의 영역이 됩니다. 따라서 기억 지식은 위로부터의 유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그릇’으로 기능할 때에만 온전합니다.

 

AC.1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스스로 빛나지 않으며, 기억 지식은 결코 근원이 아니고, 모든 명석함은 주님에게서 시작되어 질서 있게 아래로 흐를 때에만 참된 빛을 가진다고 말입니다.

 

 

 

AC.117, 창2:13, 왜 '구스'(Cush)인가?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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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베덴보리가 자신이 어떻게 계시를 받았는지를 직접 묘사한 주요 원문들을 좀 확인 및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스베덴보리가 자신이 어떻게 계시를 받았는지를 직접 묘사한 주요 원문들’은, 사실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는 결코 막연히 ‘영감을 받았다’거나 ‘신비 체험을 했다’고만 말하지 않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자신이 어떤 상태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권위 아래서 계시를 받았는지를 진술합니다. 아래에 가장 핵심이 되는 저작들과 그 원문 취지를 정리하여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Heaven and Hell(천국과 지옥, 1758) 서문과 본문 중 여러 곳입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영이 열려(opened) 천사들과 교제하게 되었으며, 단지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in full wakefulness) 보고 들었다고 반복하여 말합니다. 특히 그는 약 1745년 이후 ‘내적 시야가 열려’ 영계에 출입할 수 있었고, 수십 년 동안 거의 매일 천사들과 대화했으며, 그 대화 내용과 영계의 질서를 기록했다고 증언합니다. 중요한 점은 그가 이것을 일시적 황홀경이나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일상적 의식 가운데서 경험했다고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나는 영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몸 안에 있었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며, 이중적 의식 상태를 설명합니다.

 

다음으로 매우 중요한 증언은 ‘Arcana Coelestia(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1749-1756) 서문과 각 권의 앞부분, 그리고 여러 단락에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내적 의미(internal sense, 속뜻)를 주님으로부터 계시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를 ‘구술(dictation) 방식으로 받았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주님으로부터 조명(enlightenment)을 받아 말씀의 영적 의미를 보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이 조명은 그의 지성을 통하여 작용하는 빛과 같은 것이며, 그 빛 가운데서 문자 속에 감추어진 영적 의미가 드러났다고 설명합니다. 즉, 기계적 받아쓰기가 아니라, 지성이 열려 진리를 ‘보게 되는’ 방식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저작은 ‘Apocalypse Revealed(계시록 풀이, 1766)과 ‘Apocalypse Explained(계시록 해설, 1759)입니다. 여기서도 그는 자신이 단지 상징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천사들과의 실제 교류 속에서 그 의미를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는 요한계시록의 장면들이 영계에서 실제 상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다고 서술합니다. 그는 자신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 그 상태들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하며, 이 체험을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고 진술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자기 묘사는 비교적 짧은 저작인 ‘True Christian Religion(참된 기독교, 1771) 서문과 몇몇 후반부 단락에 나타납니다. 여기서 그는 ‘주님께서 친히 나를 부르셨다’고 말하며, 자신이 ‘새 교회를 위한 교리를 계시하도록 위임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27년 동안 천사들과 계속 교통해 왔다고 명시적으로 밝힙니다. 또한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기록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그의 어조는 매우 단호하며, 자신의 사명을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초기의 개인적 체험은 ‘Spiritual Experiences(영계 일기, 1747-1765)에서 보다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그가 어떤 날 어떤 영을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으며, 어떤 내적 상태를 통과했는지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출판을 염두에 둔 체계적 저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적 기록 노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체험이 점차 안정되고, 점점 더 질서 정연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계시의 방식’은 대략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그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영계와 교류했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말씀의 내적 의미는 ‘조명(enlightenment) 가운데서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셋째, 이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위임된 사명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예언자적 황홀경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이고 질서 있는 상태에서 천상적 사실을 보고 기록한 증인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내가 받은 계시는 기계적 받아쓰기라기보다 조명된 지성 안에서 진리를 본 것’이라고 말입니다.

 

 

 

SC.23, '스베덴보리와 바울, 루터, 캘빈 비교'

스베덴보리와 바울, 루터, 캘빈을 비교할 때, 무엇보다 먼저 조심해야 할 점은, 이들을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재단하기보다, 각자가 교회 역사 속에서 맡았던 고유한 사명과 시대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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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21, 스베덴보리가 ‘Arcana Coelestia’를 기록한 방식

SC.21, 스베덴보리는 ‘Arcana Coelestia’라는 어마어마한 저작을 어떤 방식으로 썼나요? 쓰는 내내 주님이 곁에서 구술하시는 걸 받아적는 ‘딕테이션’(dictation)으로 썼나요, 아니면 일단 영계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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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2:13)

 

AC.117

 

또한 구스 땅’,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향기로운 것들, 곧 사랑과 신앙에 대한 인식들에 속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이사야서 606, 마태복음 21절과 11, 시편 7215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말씀에서 구스’(Cush)에티오피아(Ethiopia), 또한 스바(Sheba)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도 예언서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스바냐에서는 구스의 강들(rivers of Cush)도 함께 언급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또 다니엘에서는 북방 왕과 남방 왕에 대하여 말하면서,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서 애굽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또한 에스겔에서는 말합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신앙에 대한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주님에 대하여, 곧 천적 인간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말씀들은 앞뒤 문맥으로 보아 분명히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문제들을 물으며 향료와 금과 보석들을 가져온 스바 여왕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의미하고 있습니다 (왕상10:1, 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 2)

 

왜냐하면 말씀의 역사적 부분들에 담긴 모든 것들은, 예언서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 표상 및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해설

 

이 글은 ‘둘째 강 기혼’이 의미하는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풍성해지는지를, 지명과 민족의 상응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 줍니다. AC.116에서 구스 땅이 마음, 곧 이해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AC.117은 왜 하필 ‘구스’인가를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구스(에티오피아)는 성경 전반에서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한 땅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정보가 아니라, 상응 언어입니다. 금은 사랑의 선, 보석은 신앙의 진리, 향료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기쁨과 향기로운 것들을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구스는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이 풍성한 이해의 영역’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스바냐에서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강은 지혜의 흐름이고, 예물은 주님께 드려지는 신앙과 사랑의 인식들입니다. 이해의 영역에서 길러진 인식들이, 지혜의 흐름을 따라 주님께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이는 천적 질서에서 이해가 자기 목적을 가지지 않고, ‘주님을 향해 봉사하는 기능’임을 보여 줍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 구조를 더 분명히 합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 곧 가장 외적 지식의 저장고를 의미하고, 에티오피아는 그 지식들 가운데서 선과 진리에 속한 인식들을 의미합니다. 기억 지식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에티오피아, 곧 이해의 인식으로 정리될 때에만 영적 질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에스겔에서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이 향료와 보석과 금으로 장사한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장사는 교환을 의미하며, 이는 ‘인식의 전달과 소통’을 뜻합니다. 신앙의 인식들은 개인 안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오가며 풍성해집니다.

 

시편 72편은 이 모든 것을 주님, 곧 천적 인간의 통치로 귀결시킵니다. 스바와 세바의 왕들이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이해와 인식의 최고 차원이 주님께 복종하고 헌신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은 진리를, ‘예물’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인식을 뜻합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문제를 묻고 귀한 예물을 드린 이야기는, 이 모든 상응을 역사적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스바 여왕은 인식을 각각 표상합니다. 인식은 지혜를 시험하지만, 결국 지혜를 인정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이것이 천적 질서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서도 예언서와 동일하게 아르카나를 담고 있다고 말이지요. 이는 창세기 2장의 강 이야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읽는 열쇠’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AC.117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의 인식들이 풍성해질수록, 그것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지혜이신 주님께 예물로 돌아가며, 이 질서 안에서만 참된 지성과 평강이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AC.116, 창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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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2:13)

 

AC.116

 

둘째 강’,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을 의미합니다. ‘구스 땅(land of Cush)은 마음(mind), 곧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의지에 관한 것이고, 이 둘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이해에 관한 것으로서, 여기에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들이 속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지혜의 강이 ‘의지와 이해라는 두 축’으로 어떻게 분화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AC.110에서 첫째 강 비손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으로, 곧 의지의 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AC.116은 그 다음 단계로, 이해의 영역을 다룹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입니다. 여기서 인식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나 기억 지식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분별하고 알아보는 이해의 능력’을 뜻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언제나 사랑과 신앙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 정리하고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구스 땅’이 마음이나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 인식이 머무는 자리를 분명히 합니다. 마음은 하나의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으로 구성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매우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인간의 영적 구조는 언제나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다시 등장합니다. 첫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의지에 속하고, 둘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이해에 속합니다. 의지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고, 이해는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인식으로 풀어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둘째 강은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됩니다.

 

이 구조를 놓치면, 두 강의 차이가 흐려집니다. 비손은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온 신앙의 지성이라면, 기혼은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이해 차원에서 폭넓게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는 근원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전개에 가깝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인식들이 여전히 ‘천적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AC.111–112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인식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기혼의 인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유입된 선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AC.1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사랑을 대신하여 판단하지 않으며, 사랑에서 흘러온 선과 진리를 밝히고 정리하는 조용한 강으로 흐른다고 말입니다.

 

 

 

AC.117, 창2:13, 왜 '구스'(Cush)인가?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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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상응', 태고인들의 인식 방법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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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가나안 땅과 시온산이 하늘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지명이 언급될 때 어떤 땅이나 산을 떠올리기보다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윌라 땅(land of Havilah)도 그러합니다. 이 땅은 창세기 2518절에서도 다시 언급되는데, 거기서는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술까지 거주하였다고 말합니다. 술은 애굽 앞에 있으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25:18)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들에서 지성(intelligence) 외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으며, 또한 지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들을 지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두르다(compass), 곧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표현에서, 그들은 흘러들어감(flowing in)을 지각합니다. 또한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 보석들이 금 테로 둘러싸여 있는 것에서도,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가야 함을 지각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다른 많은 경우들에서도 동일합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28:11)

 

 

해설

 

이 글은 앞선 AC.110–114에서 전개된 상응 논의를 ‘인식의 방식 자체’로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태고의 사람들과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명이나 사물 자체를 보지 않고, 그것이 가리키는 실재를 곧바로 보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오늘날의 예를 듭니다. 가나안 땅이나 시온산이 언급될 때, 그것을 하늘의 상징으로 아는 사람은 실제 지리적 장소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상응을 ‘해석의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곧, 무엇을 떠올리느냐가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이 원리가 ‘하윌라 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윌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앞서 AC.110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 곧 지성이 자리한 영역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5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하윌라 역시, 역사적 정보로 읽을 경우에는 지리 설명에 불과하지만, 천적 관념 안에서는 ‘지성과 그 흐름의 범위’를 말하는 표현이 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표현은 ‘두르다(compass)입니다.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말은, 지혜가 지성을 에워싸고 흐른다는 뜻입니다. 이는 외부에서 억지로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싸며 스며드는 유입’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지혜는 지성을 압도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온전히 적시며 둘러쌉니다.

 

이 인식은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 보석과 금 테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보석은 신앙의 진리를, 금은 사랑의 선을 의미합니다. 보석들, 곧 진리가 금테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사랑의 선이 진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 진리를 살리고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서 AC.112에서 말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진리는 가짜’라는 선언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모든 인식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천적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자마자 지각합니다. 이것이 태고 사람들의 언어 방식이었고, 또한 천적 인간의 사고방식입니다. 상응은 해석의 결과가 아니라, ‘지각의 상태’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많은 경우들에서도 동일하다고 말입니다. 이는 곧, 창세기 2장의 에덴 이야기 전체가 이런 눈으로 읽혀야 한다는 암묵적 초대이기도 합니다. 땅과 강, 금과 보석은, 더 이상 외적 사물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생명의 지도’가 됩니다.

 

AC.115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관념 안에서는 지명은 사라지고, 지각이 남으며, 말씀은 설명이 아니라 곧바로 흐르는 생명이 된다고 말입니다.

 

 

 

AC.116, 창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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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창2:11-12, 귀한 ‘보석들’(stones)은 신앙의 진리를 표상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는 귀한 ‘보석들’(stones)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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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4

 

말씀에서 신앙의 진리는 귀한 보석들(stones)로 의미 및 표상됩니다. 예를 들면, 판결 흉패(the breastplate of judgment)에 있던 보석들, 그리고 아론의 에봇(ephod) 어깨에 있던 보석들이 그러합니다. 흉패에서는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이 사랑에 속한 것들을 표상하였고, 귀한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에봇 어깨에 있던 두 개의 기념 보석(stones of memorial)도 그러했는데, 그것들은 금 테에 물린 호마노들(onyx stones)이었습니다 (출28:9–22).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 “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 “stones” 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 “stones of memorial” 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8:9-22)

 

이와 같은 보석의 의미는 에스겔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늘의 재물, 곧 지혜와 지성을 소유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5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이 말씀들이 실제 보석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누구에게나 분명합니다. 이는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며, 참으로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요소 하나하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해설

 

이 글은 AC.113에서 ‘금 = 사랑의 선’이 확정된 뒤, 그와 짝을 이루는 ‘보석 = 신앙의 진리’라는 질서를 분명히 세워 줍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선과 진리는 늘 함께 등장하지만, 결코 섞이지 않습니다. 금은 선이고, 보석은 진리입니다. 선은 생명이고, 진리는 그 생명을 형상화하고, 분별 가능하게 하는 빛입니다.

 

먼저 판결 흉패가 언급됩니다. 흉패는 대제사장이 가슴, 곧 ‘심장’ 위에 착용하던 것으로, 주님 앞에서의 판단과 분별을 표상합니다. 여기서 흉패의 바탕 재료인 금과 여러 색의 실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고, 그 위에 박힌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진리가 사랑 위에 놓여 있고, 사랑을 떠난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구조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에봇 어깨의 두 ‘기념 보석’도 같은 질서에 속합니다. 어깨는 힘과 지탱함을 의미하고, 그 위에 새겨진 열두 지파의 이름은 신앙의 모든 다양성을 뜻합니다. 이 보석들이 호마노(오닉스)였다는 점, 그리고 금 테에 물려 있었다는 점은, ‘신앙의 진리가 사랑의 선 안에서 지탱될 때에만 교회를 떠받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 28장의 인용은 이 상응을 가장 화려한 언어로 펼쳐 보입니다. 여기서 ‘에덴, 하나님의 동산’에 있었던 존재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지혜와 지성으로 충만한 상태, 곧 천적, 영적 충만 상태를 대표합니다. 그를 덮고 있는 각종 보석들은 장식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들이 그 사람의 전체를 입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이 목록을 보며 단호하게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보석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 보석을 말하는 것으로 읽는 순간, 이 말씀은 공허한 시적 과장이 되지만, 상응으로 읽을 때에는 ‘인간 내면의 구조 지도’가 됩니다.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 요소를 대표합니다. 곧 진리에도 단일한 진리가 아니라, 질적으로 구별되는 수많은 진리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AC.111에서 말한 ‘하늘이 수없이 많은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질서 지어져 있다’는 말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보석이 다양한 색과 성질을 지니듯, 신앙의 진리도 하나의 교리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각각의 진리는 사랑의 선과 결합된 고유한 빛을 지니며, 그 차이 자체가 하늘의 아름다움입니다.

 

AC.114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의 선이 금이라면, 신앙의 진리는 보석이며, 하늘의 아름다움은 이 수많은 진리들이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입니다.

 

 

 

AC.115, 창2:11-12, '상응', 태고인들의 인식 방법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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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창2:11-12, 말씀에서 '금'이 표상하는 것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으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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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으로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던 모든 금과, 성전 안의 금, 금상, 등잔대, 기구들, 그리고 아론의 옷 위에 있던 금은 모두 지혜의 선, 곧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였습니다. 예언서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에스겔에서 말하기를,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는 지혜와 총명(intelligence)으로부터 금과 은’, 곧 선과 진리가 나온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여기서 은 진리를 의미하며, 이는 언약궤와 성전에서도 동일합니다. 이사야에서도 말합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또한 Thus also: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은 선을 의미하고,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은 그레이트한 것들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것들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여호와의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불립니다. 이 때문에 시편도 말하기를,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해설

 

이 글은 앞서 AC.110–112에서 언급된 ‘’의 의미를, ‘말씀 전체에 걸친 일관된 상응’으로 확증하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금이 단순히 귀한 금속이어서 상징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말씀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사랑의 선, 지혜의 선을 나타내는 고정된 표상’이어서임을 보여 줍니다.

 

먼저 그는 모세오경의 중심 상징들을 열거합니다. 언약궤, 성전, 상, 등잔대, 기구들, 아론의 옷에 쓰인 금은 모두 우연한 장식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주님과 교회, 곧 인간 안에서 가장 거룩한 것들을 표상하는 기구들이며, 그 핵심을 이루는 재료가 금이라는 사실은, ‘사랑의 선이 모든 거룩함의 본체’임을 말해 줍니다. 진리는 구조를 세우지만, 선은 거기에 생명을 줍니다.

 

에스겔의 인용은 이 원리를 지성의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지혜와 지성으로부터 금과 은을 얻는다는 말은, 선과 진리가 인간의 능력에서 생겨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 지혜와 지성이 인간 안에서 그렇게 인식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금은 선, 은은 진리로 분명히 구분됩니다. 이는 선이 중심이고, 진리는 그 선을 드러내는 빛이라는 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이사야의 ‘스바의 금과 유향’은 이 질서를 예배의 차원으로 옮겨 놓습니다. 금은 사랑의 선이고, 유향은 사랑에서 나온 기쁨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함께 ‘여호와의 찬송’이라 불립니다. 참된 찬송은 말이나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삶의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마태복음의 동방 박사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 곧 금, 유향, 몰약은 우연한 선물이 아닙니다. 금은 사랑의 선, 유향은 신앙에서 나온 기쁨의 진리, 몰약은 그 선과 진리가 외적 삶에서 나타나는 헌신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천적 인간의 내적 질서가 주님께 드려지는 장면’입니다.

 

다윗의 시편 인용은 이 모든 것을 왕의 통치, 곧 주님의 통치로 귀결시킵니다. ‘스바의 금이 드려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랑의 선으로 인정받고 경배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기도와 송축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선이 중심에 있을 때, 진리의 고백과 삶의 찬송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AC.113은 이렇게 말합니다. 금은 값비싸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을 대표하기 때문에 거룩하며, 말씀 전체는 이 한 가지 질서를 수없이 다양한 장면과 상징으로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AC.112, 창2:11-12, 사랑, 신앙, 선, 진리... '원천이 어디인가'가 중요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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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지혜는 없으며,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혜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지성도 없으며, 그러므로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성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는 선은 없고,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선도 없으며, 신앙에서 나오지 않는 진리는 없고,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진리도 없습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들도 비록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가짜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설명을 ‘원천의 문제’로 단정 짓는 매우 강한 선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네 가지를 나열하지만, 그 요지는 단순합니다. ‘출처가 주님인가 아닌가’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고상해 보이는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기준이 아닙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과 신앙을 통해 주님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지혜와 지성의 구분이 다시 한번 분명해집니다.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고, 지성은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기능이지만, 근원은 같습니다. 사랑과 신앙이 주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지혜와 지성 또한 주님에게서 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율적 생산 영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받아들이는 그릇이지, 원천이 아닙니다.

 

이어 선과 진리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는 앞서 ‘생명나무’가 사랑과 그로부터 나온 신앙을 의미한다는 설명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선과 진리는 인간의 도덕적 성취나 지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의 생명’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발 더 나아가, 매우 불편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도, 세상에서는 지혜, 지성, 선,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짜’라고 단언합니다. 이 말은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행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원의 왜곡’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가짜라는 말의 핵심은, 그것들이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겉으로는 지혜처럼 보일 수 있고, 진리처럼 말할 수 있으며, 선처럼 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앙,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유입이 없다면, 그것들은 지속되지 않고,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결국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으로 되돌아갑니다.

 

이 글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나오고, 그 신앙에서 지성이 나오며, 그 모든 것이 다시 사랑의 선으로 돌아갑니다. 이 순환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은 참된 것입니다.

 

AC.112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이며,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이름만 같을 뿐, 생명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AC.113, 창2:11-12, 말씀에서 '금'이 표상하는 것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으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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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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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19, ‘찬송하는 소리 있어와 찬64, ‘기뻐하며 경배하세입니다.

 

오늘은 창1 두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3절로 5절, AC 글 번호로는 20번에서 23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3-5)

 

 

이 본문을

 

빛이 있으라’, 거듭남의 시작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에 주목하여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1:3)

 

 

AC.20, 창1:3,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창1:3) AC.20 첫 번째 상태는 사람이 선과 진리가 더 높은 어떤 것임을 알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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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1:4, 5)

 

 

AC.21, 창1:4-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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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1:5)

 

 

AC.22, 창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C.22-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창1:5) AC.22 이제 ‘저녁’(evening)이 무엇을 뜻하고, ‘아침’(morning)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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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거듭 권하지만, 주중에 이 원고를 계속 읽고 또 읽고 하시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은 꼭 필요할 때에만 하시고 말입니다. 말씀과의 거리가 나와 하나님 사이 관계를 알게 해준다는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그렇습니다. 스마트폰과 가까우면 주님은 멀고, 반대로 스마트폰에서 물러나면 주님은 곁에 계십니다. 스마트폰으로 말씀과 원고 보는 걸 제외하고는 여러분, 가급적 스마트폰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SNS도 가급적 절제하시고, 이런저런 알림도 웬만하면 다 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가급적 한발 물러나시기를, 그래서 그 빈자리를 주님이 오셔서 곁에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2-22(D1)

 

2639, 2. 창1.2, 2026-02-22(D1)-주일예배(창1,3-5, AC.20-23), ‘빛이 있으라’, 거듭남의 시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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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3/08, 창1:6-8), '둘째 날, 두 번째 상태'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0, ‘큰 영광 중에 계신 주’와, 찬65, ‘내 영혼아 찬양하라’입니다. 오늘은 창1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6절로 8절, AC 글 번호로는 24번에서 26번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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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2/15, 창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18, ‘성도들아 찬양하자’와 찬63, ‘주가 세상을 다스리니’입니다. 오늘부터 해설 버전 누락분 창세기 1장부터 3장입니다. 창3 마치면 창6으로 원래대로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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