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셔널(rational, 합리), 주님의 생명과 영적 진리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삶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능력’(2023/5/28)

 

 

(오늘 설교문에서 인용)

 

창세기 16장 4절은 주님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리는 순간을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인성이 거룩하게 되신 과정은 우리 인간이 거듭나는 과정과 흡사하셨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래셔널이 열리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거듭남 또는 래셔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여기서 아브람은 주님의 속 사람을, 그리고 하갈은 선과 진리에 따른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브람과 하갈의 동침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의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셨을 때, 주님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 일어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시던 어린 시절, 먼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지요. 그때 주님의 겉 사람인 인성과 속 사람인 여호와의 신성이 하나가 되셨고, 그러면서 또한 주님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렸는데, 그것이 바로 하갈이 임신한 아들입니다.

 

그러면 임신한 하갈은 왜 사래를 멸시했을까요?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즉 사래는 주님의 속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영적 진리를 의미하지요. 따라서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는 것은 그 속뜻으로는, 처음 래셔널이 열리기 시작할 때는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래셔널이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은 지옥,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천국이라는 진리 앞에서, 처음 래셔널이 생길 때는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있어야 이웃도 있는 거 아냐? 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는 모습입니다. 거듭남의 과정 초기, 래셔널이 처음 생길 때는 이와 같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처음 생긴 래셔널(rational, 합리, 이성)이라는 게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래셔널은 자기 여주인(mistress)을 경멸한다는 것, 곧 지적 진리(intellectual truth)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지적 진리가 주(主, manifest)가 되지 못합니다. 인정받지를 못하기 때문인데요, 오류들과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것들이 흩어져 버리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그리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을 가지고 자기 본위로 진리를 재단하는(reasons)한 흩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단지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것은 진리야라고 순진하게 믿는 순간, 그것은 주가 됩니다. 그 즉시 오류의 그늘들은 흩어져 버리고,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게 됩니다. (AC.1911:6)

 

 

말씀의 글자의 뜻으로부터 무리하게 진리를 추측하는 습관에 젖어있을 때는 주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셔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진리를 마음대로 추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43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래셔널이 건강해지면 속 사람으로부터 래셔널 가운데로 영적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래셔널을 통해 다시 겉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삶을 사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큰 행복이지만, 그 자체로 주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믿는 진리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말로 전하기보다는 삶으로, 인격으로 전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설교 원고 및 오디오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bygrace.kr/1549

 

주일예배(2023/5/28, 눅9:37-43), '귀신 들린 아들, 내 안에 속 사람을 향한 창문에 문제가 생긴 것'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csKtmnQKn1U 2. 축도 원고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10,837개의 글로 된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을 여는 첫 1번, 2번 글’(2023/5/26)

 

1

구약 말씀을 단순히 그 겉 글자로만(the mere letter of the Word), 즉 기록된 글자 그대로만 읽어서는 아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

 

곧 말씀의 이면(裏面, this part of the Word)에는 천국의 깊은 비밀들(deep secrets of heaven)이 들어있으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일반적이든 특별한 경우이든,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 믿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들에 대해 심지어 알아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으실 텐데요,

 

그 이유는 겉 글자나 글자의 뜻만 가지고 살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그저 유대교회의 외적 의식과 규례(the external rites and ordinances of the Jewish church)에 관한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든 말씀 안에는 내적인 것들(internal things)이 들어있는데, 이는 아주 몇 군데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계시하시고 설명하신 것들,

 

예를 들어, 희생제물이라는 것은 주님을 의미한다든지,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은 천국을 의미하며, 그래서 이들을 일컬어 천국의 가나안, 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또 낙원도 유사한 의미를 갖는데, 이런 예들을 제외하고는 결코 외적인 것들 가운데(in the external things) 드러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2

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아직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고(yet profoundly unaware of) 있는데요, 그것은,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일반적이든 특별한 경우든, 아니, 가장 작은 일점일획에 이르기까지(一點一劃, the very smallest particulars down to the most minute iota) 영적, 천적(heavenly)인 것들을 상징하고, 그 안에 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런 사실,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구약에 대해 이렇게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참으로 이토록 놀라운 것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그것은

 

말씀이라는 것이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주님이 하신 말씀이며, 그리고 주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천국과 교회, 그리고 종교적 믿음에 속한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런 건 주님의 말씀이라 할 수도, 그 안에 무슨 생명이 있다 할 수도 없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이들 생명에 속한 것들을 빼고,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일반적이든 특별한 경우든, 그 안, 즉 말씀 안에 담긴 모든 것이 이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에 관한 것이라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서는 그 어디에서도 생명이라는 것이 비롯될 수가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내적으로는(內的, inwardly) 그분에 관한 게 아닌 그 어떤 것도 살아있는 게 아니며,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그 안에 그분이 담기지 않은 그 어떤 표현도, 즉 어떤 식으로든 그분에 관한 게 아닌 그 어떤 표현도 신성하지 않기(神性, is not Divine) 때문입니다.

 

 

57세에 주님의 부르심으로 영계 체험을 시작, 27년간 천국과 지옥 및 가운데 영들의 세계를 두루 경험한 스베덴보리의, 저 장엄한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1749-1756, 10,837개의 라틴 글)을 시작하는 맨 처음 1, 2번 글을 번역, 소개하였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경외를 저 또한 그대로 본받고 싶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주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나에게 와 있는 천사들에게 일어나는 일’(2023/5/23)

 

말씀을 사랑하여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거나(loves the Word and lives in charity), 기록된 말씀을 어린아이 같은 마음(simplicity of heart)으로 믿으며, 신앙에 관한 속뜻 진리(the truth of faith which is in the internal sense)에 반(反)하는 원칙들을 세운 적이 없는 사람한테는 그가 주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그에게 와있는 천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데요,

 

천사들의 눈앞에서는 말씀의 모든 것(every particular)이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지각되는데, 이 생명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서, 말씀은 이 생명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내려왔을 때 태어난(from which the Word had birth)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사들 앞에 펼쳐지는 이 말씀 속 생명의 향연은 너무나 아름답고(beauty), 너무나 유쾌한 것(pleasantness)인데요, 아울러 그때 그들의 모든 상태에 맞춰 형용할 수 없는 다채로움을 가진 표상들(表象, representatives)과 함께 펼쳐집니다.

 

주님의 기록된 말씀은 비록 글자 상으로는, 즉 지상 인간의 언어로는 대충(crude) 살짝 조잡, 세련되지 못해 보여도 그 안에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 앞에(before good spirits, and before angels) 확 펼쳐지는 영적, 천적인 것들(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로 충만한데요, 그것은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씀’은 성경 66권 중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을 말하는데요, 구약은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29권), 신약은 마, 막, 눅, 요, 계 (5권) (AC.10325)이며,

 

이 말씀들을 ‘말씀을 사랑하여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거나, 기록된 말씀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믿으며, 신앙에 관한 속뜻 진리에 반하는 원칙들을 세우는 일 없이’ 읽는 사람한테는 그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그가 위 목록에 없는 성경들을 읽을 땐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없기 때문인데요, 그때는 그에게 와 있는 천사들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내적 존재여서 내적 생명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이 나머지 글들을 오늘날 성경 66권에 포함되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뜻 또한 분명히 있사오니 무시, 부인, 거부하시면 안 됩니다. 이들 나머지 성경들은 온전하신 주님의 말씀을 환히 비추는 조명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1767번 글을 인용, 제가 설명을 곁들인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말씀을 읽고 있을 때 실제로는, 즉 영계에서는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말씀 생활, 성경 읽기를 매일 힘쓰시기를 권합니다. 비록 아직은 그 속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시더라도 말입니다.

 

늘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위와 같은 마음 상태로 말씀을 읽으시면, 곧 내면이 열리며, 천사들의 눈 앞에 펼쳐지는 저 놀라운 광경, 곧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장관을 역시 영안으로 함께 목도하게 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오늘(2023/5/21) 주일예배

우리에게도 주님의 변화, 그 옷이 희어 광채가 나시려면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도우심의 그 은혜와 사랑이 오늘, 말씀을 듣고 자기 마음에,

 

오, 거룩하신 사랑의 주님, 오늘은 2023년 5월 21일, 5월 셋째 주, 누가복음 9장 28절로 36절, ‘우리에게도 주님의 변화, 그 옷이 희어 광채가 나시려면’이라는 제목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이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신 이유,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신 이유,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함께 주님의 예루살렘 별세 관련 말씀을 나누셨다는 의미,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세 분을 위하여 초막 셋을 짓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말의 의미, 영광 중에 있던 제자들에게 다시 구름이 오더니 그들을 덮었다는 말의 의미, ‘아버지’의 의미, ‘아들’의 의미,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신 말씀의 의미 등 이 모든 표현에 담긴 속뜻을 깊이 살피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오늘도 부디 오늘 저에게 들려주신 이 권면을 저의 심비(心碑),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행동으로 옮겨, 비록 아직은 몸 안에서 지내느라 모호하지만, 가급적 저도 늘 영안이 열려 늘 저에게도 주님이 변화하신 모습, 곧 주님의 옷이 희어져 광채 나는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천사들처럼 저도 늘 내적 진리 가운데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이 자리 모인, 그리고 인터넷으로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주의 자녀들의 심령 가운데, 생활과 삶 가운데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다음은 오늘 설교 풀타임 유튜브 오디오이고요, 설교 원고 링크는 유튜브 설명 칸에 있습니다.

 

https://youtu.be/G_II-dC3s1M

 

Posted by bygracetistory
,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23/5/19)

 

 

18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9:18-24)

 

두 개의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는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 ‘무리’는 신앙인들 안에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너희’, 곧 ‘제자들’은 이들을 가르치는 믿음을, 그리고 ‘예수’는 우리 안에 함께 계시면서 믿음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는, 진리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30번 글을 보면,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에 대한 주석이 나오는데요, 여기 이 ‘큰 광명체’(great luminaries)를 이해하려면 먼저 신앙의 본질(the essence of faith)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what is its progress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 이어지는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신앙의 참 본질과 생명(the very essence and life of faith)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주님이 직접 선포하신 게 나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새롭게 창조되는 중인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전개,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먼저, 그들에겐 생명 자체가 전혀 없는데요, 생명이라는 건 오직 선과 진리 안에만 있는 것이며, 그래서 악과 거짓 안에는 절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신앙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이 첫 신앙이라는 건 지식 신앙(faith of the memory), 단지 지식일 뿐인 신앙(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을 말합니다.

 

다음은 이해 신앙(faith in the understanding), 즉 지성적, 지적 신앙(an intellectual faith)으로, 그리고 마침내 가슴 신앙(faith in the heart), 즉 사랑 신앙(the faith of love), 구원하는 신앙(saving faith)이 됩니다. 이것이 새롭게 창조되는 중인 사람한테 나타나는 신앙의 진행 과정입니다.

 

이중 첫 두 종류의 신앙을 표상하는 내용이 창세기 1장 3절로 13절 내용이고요, 이때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things inanimate)을 가지고 말이지요, 사랑으로 생기를 띠게 된 신앙은 20절로 25절의 움직이는 것들(animate things)을 가지고 표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두 개의 질문은 바로 이 내용과 연결되는 질문인데요, 다음은 오늘 설교 원고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무리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님께서 이렇게 차례로 물으신 것은 신앙인들의 믿음의 상태가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주님께서 살피시는 걸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그의 내면으로 생명이 흘러 들어가 그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리시냐면, 그의 내면에 있는 지식적인 것들을 주님의 생명으로 깨우시고, 그렇게 해서 살아있게 만드십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있습니다. 진리인 것도 있고, 진리 아닌 것도 있습니다. 또 같은 진리라 하더라도 행동하는 진리가 있고, 행동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인 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진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진리들을 깨워 살아있는 진리, 행동하는 진리로 만드시는 힘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우리의 믿음 가운데로 보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은 오늘 설교 풀타임 유튜브 오디오이고요, 설교 원고에 대한 링크는 그 안에 있습니다.

 

https://youtu.be/e1jsJop4pgs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 (2023/5/17)

 

 

...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16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먹고 다 배불렀더라... (눅9:12-17)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속뜻으로는, 여기서 ‘’은 선, ‘물고기’는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 ‘다섯’은 조금, 약간, ‘’은 싸움, 전투를 뜻하므로, 그래서 이를 종합하면,

 

곧 ‘우리의 믿음이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가운데 선은 조금밖에 없고, 말씀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우리는 지금 힘겨운 영적 전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뜻인데요,

 

이것만 보아도 말씀 읽는 방식에 있어 우리와 천사들의 방식이 참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앞서 남자만 세어도 한 오천 되는 무리를 떼를 지어 한 오십씩 앉히신 것은 ‘축사하시기’ 앞서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진리를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시는 것이며,

 

축사하시는 것’은 그 많은 진리들,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들에게 주님의 선을 더하시며, 그리고 혹시 선은 있으되 참 진리가 없는 선은 주님의 진리를 더하시는 그런 과정, 즉 우리 안의 선과 진리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는 주님이 온전하게 하신 우리 안 선과 진리들을 통해 삶이 변화되어 우리 생명이 되는 걸 뜻합니다. ‘열둘’은 믿음과 체어리티(charity)에 관한 모든 것을, ‘바구니에 담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은 실천된 진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진리이기 때문에,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를 통해서는 사람들은 주님의 선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 자세한 풀이는 오늘 말씀을 참고하셔요.

 

https://youtu.be/j5JVQHD07ZQ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

평양 방어부대 정치부 조직부 중좌 출신의 탈북 간증’ (2023/5/12)

 

 

1부 : https://youtu.be/sjPKFREbDo8

 

2부 : https://youtu.be/2yp-OUIpspA

 

유튜브 ‘중고차는 유미카’라고, 탈북민 이유미 씨가 운영하는 채널입니다.

 

지난 1998년 3월, 당시 평양을 방어하는 부대 소속 정치부 조직부 중좌(우리로 치면 중령급)로 있었던 심주일 씨의 놀라운 탈북 이야기입니다. 오늘 현재 2부까지 올라왔습니다.

 

친구 통해 건네받은 성경, 이 성경을 읽다가 북조선 주체사상이라는 게 이 성경에서 뽑아낸 것임을 간파, 이후 북을 떠나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치밀한 준비 끝에 신분증과 단검 하나 소지한 채 월경(越境), 여러 위기의 순간마다 참으로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이어 대련에서 호주 국적 목사님을 만나 제주 극동방송 및 국정원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무 정말 그 무엇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여전히 직접 나타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찬양, 또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 황해도 해주 상산 사시던 저희 선친(邊培根, 1907생, 1988졸)께서는 일정 때 서울 오장동으로 올라오신 후, 6.25 사변으로 이후 끝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셨는데요, 이분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생전 아버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되어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주님이 떨며 나아온 열두 해 혈루 여인을 딸로 호칭하신 이유’ (2023/5/11)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8:40-48)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떨 땐 매우 치욕적이지만, 주님(the Divine)앞에서는 완전히 다른데요,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자체로 온전한 예배(total prostration)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이 생각하기를, 힘과 능력, 지혜에 있어 오직 주님만이 전부이시며, 사람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모든 선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으며, 사람으로는 전혀, 오히려 악만 말미암는다 할 때 그렇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이런 사실을 시인, 인정할 때, 그는 마치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 결과 그의 얼굴에 이런 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될 때, 그는 또한 자신의 본성(the proprium [what is his own])으로부터도 지워지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은 본질상 완전히 악하기만 한 것입니다. (AE.77)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7번 글 인용이며, 이 글은 계시록 1장 17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중,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And I fell at his feet)에 관한 속뜻 주석입니다.

 

오늘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는, 주님의 인성과 신성의 하나 되심, 곧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된 자연적 진리 안에 속뜻인 내적 진리가 담길 때, 그때에도 역시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인데요, 그것을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이렇게 묘사, 표현한 것입니다. ‘옷 가’는 말씀의 자연적 진리, ‘손을 대는 것’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감,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는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와 이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위 제목처럼, 주님이 많은 여인을 고치셨지만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만 ‘’이라 호칭하신 이유를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예배 메시지에서 이것이 메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https://bygrace.kr/1535

 

매일예배(2023/5/11, 눅8:40-48),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혈루증 여인'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MOKOXVyTYwQ

bygrace.kr

 

...여기서 한 가지, 본문에 나오는 ‘옷 가’는 히브리어로 ‘찌찌트’(ציצית)라 하는 것으로, 다음 민수기 말씀에 나오는 ‘옷단 귀에 만드는 술’을 말합니다.

 

38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민15:38-40)

 

류모세 이스라엘 선교사의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보면, 이 ‘찌찌트’는 그 사람의 정체성, 모든 것, 인격 전체를 나타내며, 그래서 본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지나가는 노인의 백발 수염을 잡아 흔드는 것과 같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랬다가는, 특히 유대 정결법에 저촉되는 사람이 만졌다가는 현장에서 돌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며, 이 여인이 몹시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정말 여인은 목숨을 걸고 주님의 ‘찌찌트’에 손을 댄 것인데요...

 

이런 사정을 아시고 주님은 복음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현장, 이 여인에게만큼은 ‘’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십니다. 아무리 유대 사회 영향력 있는 랍비라 하더라도 자기 피붙이가 자신의 ‘찌찌트’ 만지는 건 괜찮기 때문인데요, 주님의 이 기가 막힌 순간적 배려에 아마도 둘러섰던 모든 무리가 다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을 것이며, 이 여인은 그래서 온몸을 떨며 주님의 사랑과 애정, 다정하신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휴, 이 글을 쓰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Posted by bygracetistory
,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 스웨덴)는 계시록에 관한 두 개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1766)입니다.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전부터 써오고 있었으나 사후 출간된 저작이고, 후자는 생전, 익명 출간한 마지막 저작입니다. 이후 저작들은 본인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관련 저작이 둘인데요, 이 둘의 차이는, 먼저 ‘계시록 해설’은 창세기, 출애굽기 장, 절별 속뜻 주석인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처럼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장, 절 단위 속뜻으로 주석한 것인 반면, ‘계시록 속뜻’은 살짝 ‘계시록 해설’의 요약판 같은 그런 저작입니다.

 

참고로, 전자의 글 맨 끝 번호는 1232번이고, 후자는 962번입니다. 전자인 ‘계시록 해설’은 계시록 19장 10절에서 갑자기 멈추는데요, 만약 스베덴보리가 이 주석을 완성, 곧 계시록 22장 21절까지 하고 갔더라면 그 글 끝 번호는 더욱 늘어났겠지요. ‘천국의 비밀’은 10837번이고, ‘천국과 지옥’은 603번입니다.

 

계시록 속뜻’ 784번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 18장 15절,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에 관한 속뜻을 밝히면서 ‘연옥’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상인들’이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말이지요.

 

본문의 ‘상인들(merchants)은 ‘바벨론’이라는 여자로 말미암아 이익을 본 자들로, 바로 앞 절의,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과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을 교회의 여러 허락과 질서, 하늘의 약속과 법망을 최대한 활용, 치부한 자들을 말하는데, 여기엔 교회 내 높은 자들, 낮은 자들이 다 포함됩니다.

 

이들은 율법을 최대한 범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결혼하는 법, 이혼하는 법, 드러나지 않게 악을 행하는 법,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는지, 면죄부라든지, 교회의 묵인하에 적당히 세속적 통치 권력, 행정 권력과 손잡는 문제, 어떻게 하면 교회와 수도원을 부유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하는 일에 밝았고, 특히 부자들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별의별 음모를 꾸며 그에게 지옥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재산을 갈취할 좋은 기회로 여겨 미사 희생을 약속하고, 연옥이라고 하는 고통의 장소에서 점진적으로 구출,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위 784번 글 두 번째 단락에 대한 번역입니다. 관련 영역(※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라틴어로 되어 있음)은 아래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아래 번역 중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것입니다.

 

연옥에 관해서는,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바벨론식 허구이며,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이지요. 모든 사람은 사후 맨 먼저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지대이며, 여기서 각자 살아온 세상 삶에 따라 이후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가 준비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아무에게도 고통 없는 곳이지만, 악인들의 경우, 그 준비가 끝나 지옥으로 가게 될 때, 그때 처음으로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곳엔 무수한 사회들(societies)이 있고, 또 각 사회마다 지상과 유사한 기쁨들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또 이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이곳 영들을 통해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시며, 그래서 지상 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천국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둘씩 배정되어 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들과 천사들은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오고, 지옥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는 그 기억과 생각이 자기들 것인 줄 압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지옥스러운 생각들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것이며, 한편, 우리 안에 떠오르는 모든 천국스러운 생각들 역시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와 있는,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 안에 무슨 악하고 어두운, 숨이 막히고 지옥스러운 생각들이 일어나면 얼른 ‘이 생각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거야!’ 하며, 그 생각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시고, 즉 얼른 한 발 뒤로 물러나시고, 즉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천사들이 그 상황을 접수, 우리를 위해 그 상황을 수습합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주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멀찍이 서서 우리를 위해 아주 최소한의 조치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의 겉 사람, 곧 외면(externals)은 거기에서 연속적으로 벗겨지며, 즉 휴면상태에 들어가며, 그렇게 해서 그들의 속 사람, 곧 내면(internals)이 열리는데요, 이 과정은 그들의 주도적 사랑(the ruling love)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사랑은 실제로 해당 영의 생명과도 같은 사랑으로, 가장 깊은 것(the inmost)이고, 그들의 외면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면목(real quality)이 나타나는데요, 그는 자기가 가진 이 사랑의 질(, quality)에 따라 이곳 영들의 세계로부터 드디어 자기에게 맞는 곳으로, 즉 자기가 가진 그 사랑이 선하면 천국으로, 반대이면 지옥으로 보내집니다.

 

※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육을 겉 사람, 영을 속 사람이라 할 수 있듯, 사후 영과 육이 분리되어 영만 남았을 때, 이 영 또한 겉과 속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영의 겉이 실제로는 우리 몸과 결합, 이렇게 우리의 영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수 있게, 혹은 육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랫동안 저로 하여금 그 세계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곳의 모든 것을 보게 하시며, 그렇게 그 모든 경험을 허락하셨는데요, 이런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연옥은 픽션, 허구이며, 악마스럽다 힘주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돈을 위해서이고, 사람들, 심지어 죽은 자의 영혼들까지 자기들의 지배하에 두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AR.784:2)

 

아래는 연옥에 대한 천주교 신부의 글인데요, 스베덴보리가 전하는 실상과 많이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95. 마지막 정화 - 연옥

개신교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리 중에 ‘연옥 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

m.catholictimes.org

 

아래는 위 784번 글에 대한 영역을 실은 제 블로그 글입니다. 영어 표현이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783

Verse 15.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who became rich by her, shall stand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signifies the state before damnation, and then their fear and lamentation, who have made gain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y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namely, of the fruits of the soul’s desire, and of fat and splendid things, treated of in the verse next preceding, those are signified who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ecame rich, that is, who made gain. By these “merchants” all are meant, as well the higher and the lower in their ecclesiastical order, who made gain by such things. That the higher are included, is manifest from verse 23 of this chapter, where it is said, “For thy merchants were the great ones of the earth”; that the lower ones also are included, from verse 11; see above (n. 771). By “standing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is signified while they are still in a state remote from damnation, and still at that time in fear of punishments, and in lamentation as above (n. 769), where similar things are said.

 

784

As regards the dispensations by which they make gain, they are various. There are dispensations in regard to contracting matrimony within the degrees prohibited by the laws; relating to divorces; relating to evils, even enormous ones, and then liberation from temporal punishments; then also by indulgences; dispensations relating to administrations without any power or authority of the secular rulers; among which also are confirmations of dukedoms and principalities; likewise by promises of heavenly joys made to those who enrich monasteries, and augment their treasuries, calling their gifts good works, in themselves holy, as also merits; to which they are led by the belief impressed concerning the power and help of their saints, and in the miracles performed by them. Especially do they plot against the rich when they are sick, and likewise infuse at that time a terror of hell, and so extort from them; promising the sacrifice of the mass for their souls according to the value of their legacy, and a gradual delivery thereby from the place of torment, which they call purgatory, and thus admission into heaven.

 

[2] As regards purgatory, I can aver that it is purely a Babylonish fiction for the sake of gains, and that it neither does nor can exist. Every man after death first comes into the world of spirits, which is midway between heaven and hell, and is there prepared either for heaven or for hell, everyone according to his life in the world; and in that world no one has torment; but the evil first come into torment, when after preparation they come into hell.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in that world, and joys in them similar to those on earth, for the reason that they who are there are conjoined with men on the earth, who are also in the midst between heaven and hell. Their externals are there successively put off, and thus their internals are opened; and this until the ruling love, which is indeed the life’s love, and the inmost, and the one that governs their externals, is revealed; and when this is revealed, the man’s real quality appears; and according to the quality of that love, he is sent forth from the world of spirits to his place, if good into heaven, and if evil, into hell. That it is so has been given to me to know of a certainty, because it has been granted to me by the Lord to be together with those who are in that world, and to see all things, and thus to relate it from experience itself; and this now for twenty years. Therefore I can assert that purgatory is a fiction, which may be called diabolical; because it is for the sake of gains, and for the sake of power over souls, even of the deceased, after death. 

 

Posted by bygracetistory
,

사람의 사후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 (2023/5/9)

 

 

421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 둘 사이 중간 장소(place) 혹은 상태(state)로서, The world of spirits is not heaven, nor is it hell, but it is the intermediate place or state between the two;

 

이곳은 사람의 사후(死後, after death)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이며, for it is the place that man first enters after death;

 

이곳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머물다가 그가 세상에서 보낸 삶에 따라 이후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그런 곳입니다. and from which after a suitable time he is either raised up into heaven or cast down into hell in accord with his life in the world. (HH.421)

 

 

422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 장소이며, 또한 사람의 사후 중간 상태입니다. The world of spirits is an intermediate place between heaven and hell and also an intermediate state of the man after death.

 

저는 지옥이 그 밑에, 천국은 그 위에 있는 걸 보고 그곳이 중간 장소임을, 그리고 사람이 거기 있는 한, 그는 아직 천국도 지옥도 아닌 상태임을 보고 그곳이 중간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It has been shown to me not only that it is an intermediate place, having the hells below it and the heavens above it, but also that it is in an intermediate state, since so long as man is in it he is not yet either in heaven or in hell.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된(conjunction)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천국이며, 사람 안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된 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지옥입니다. The state of heaven in man is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in him; and the state of hell is the conjunction of evil and falsity in him.

 

사후 영이 된 상태(a man-spirit)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될 때, 그는 천국으로 가는데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런 하나 됨이 바로 그의 안에 있는 천국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그 상태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되는 경우, 이번엔 지옥으로 갑니다. 이런 하나 됨이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Whenever good in a man-spirit is conjoined to truth he comes into heaven, because that conjunction, as just said, is heaven in him; but whenever evil in a man-spirit is conjoined with falsity he comes into hell, because that conjunction is hell in him.

 

이런 하나 됨은 영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데, 그때 사람은 중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That conjunction is effected in the world of spirits, man then being in an intermediate state.

 

이런 하나 됨을 이해(the understanding)와 의지(the will)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되고, 선(good)과 진리(truth)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됩니다. It is the same thing whether you say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HH.422)

 

 

※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421번, 422번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