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3 심화

1. the ‘sixth day’와 ‘the sixth day’는 다른 뜻인가?

AC 영어 원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작은 따옴표 문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AC.83의 Potts 영어는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the sixth day”’가 아니라 정관사 ‘the’를 따옴표 밖에 두고 ‘“sixth day”’만 묶었을까요? 두 표기에 서로 다른 속뜻이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차이에 별도의 교리적 또는 상응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the “sixth day”’라고 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sixth day라는 상징 자체를 특별히 강조한다’거나, 반대로 ‘“the sixth day”’라고 되어 있으면 ‘정관사까지 포함한 특정 상태 전체’를 강조한다고 구별할 충분한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는 영어는 스베덴보리가 직접 영어로 쓴 문장이 아니라 라틴어 원문을 영어로 옮긴 번역문입니다. 따라서 영어의 따옴표 위치에는 번역자와 편집자의 판단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어에서는 어떤 명사구 가운데 핵심 표현만 인용하거나 특별한 용법으로 표시하면서 관사나 다른 문법 요소를 따옴표 밖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따옴표가 ‘the’를 포함했는지 여부만으로 속뜻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AC.83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따옴표의 범위가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여섯째 날’을 문자적인 하루가 아닌 사람의 상태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며, 그 이유를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독자가 붙들어야 할 핵심은 ‘the’가 따옴표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아니라 ‘여섯째 날’이라는 표현이 이 문맥에서 거듭난 사람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AC 영어 원문을 읽을 때에도 유용한 원칙입니다. Potts 영어의 따옴표는 스베덴보리가 지금 말씀의 어떤 표현을 집어 설명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그래서 현재 번역에서도 영어 원문이 실제로 따옴표로 표시한 핵심 표현을 한국어와 함께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문의 따옴표 위치 자체를 새로운 상응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최종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영어 번역의 문장부호보다 라틴어 원문을 우선해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Potts 영어는 매우 중요한 번역 자료이지만, 따옴표와 같은 편집 요소까지 모두 스베덴보리 자신의 신학적 의도를 직접 나타낸다고 전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번역상의 중요한 의미 차이가 의심될 때에는 라틴어 어휘와 문법을 확인하고, 영어의 문장부호는 그다음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the “sixth day”’와 ‘“the sixth day”’를 서로 다른 영적 상태나 서로 다른 상응으로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AC.83에서 중요한 것은 ‘여섯째 날’이 단순한 시간 표시를 넘어 사람의 거듭남의 상태를 가리키며, 그 상태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영어 따옴표는 그 표현을 알아보도록 돕는 표지로 사용하되, 따옴표의 범위 자체에서 별도의 교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AC.83 심화 1)

 

 

 

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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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 심화

2. ‘황폐’(vastation, vastatio)란 무엇인가?

 

AC를 영어로 읽다 보면 오늘날에는 다소 낯선 ‘vastation’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AC.18에서 Potts는 ‘선지자들이 자주 말하는 인간의 황폐’라는 대목에 ‘vastation’을 사용합니다. 현대 영어 독자에게는 ‘devastation’이나 ‘desolation’이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왜 이런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정확히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문제가 됩니다. 이 경우에는 영어 단어 자체에서 의미를 추측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라틴어와 AC 안에서의 용례를 함께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라틴어 원문에서 중요한 말은 ‘vastatio’입니다. 이것은 황폐하게 함, 비워짐, 황폐 상태와 관련된 말이며, 영어 번역의 ‘vastation’은 이 라틴어를 형태상 매우 가깝게 따라간 번역어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일반 영어에서 ‘vastation’이 얼마나 흔한가만 가지고 그 뜻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Potts 번역에서 이 단어를 만날 때는 일상 영어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기보다 스베덴보리의 라틴어 전문 개념을 가능한 한 일관되게 전달하려는 번역어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vastatio’를 한국어로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황폐’가 가장 적절합니다. ‘황폐’는 무언가가 비어 가고 이전의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AC의 여러 문맥을 비교적 폭넓게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 한국어에서 ‘황폐’라고 하면 전쟁으로 도시가 파괴되거나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처럼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으므로, AC에서의 뜻은 반드시 문맥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AC.18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을 직접 제공합니다. 사람이 참된 것을 알고 선한 것에 의해 감동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의 유입을 방해하고 거스르는 것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황폐는 단순한 파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 안에 선과 진리를 이루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처리되고 물러나는 과정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AC.18에서는 ‘깊음이 마르거나 황폐해진다’는 표현과 ‘옛사람은 새 사람이 잉태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표현이 서로 연결됩니다.

 

이 때문에 ‘vastatio’를 단순히 ‘고난’이나 ‘시련’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외적으로 큰 고난을 겪는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AC가 말하는 황폐인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황폐의 과정이 반드시 눈에 띄는 외적 재난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황폐의 핵심은 외적인 사건의 종류보다 사람의 영적 상태와 관련됩니다. 이전에 의지하던 것, 선과 진리를 방해하던 것, 거짓이라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그 힘을 잃고 사람이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황폐’를 곧바로 ‘악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AC.18의 표현은 분명 강하지만, 스베덴보리의 거듭남 교리 전체에서 사람의 proprium과 유전적 악이 단순히 소멸하여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가입니다. 주님께서 선과 진리의 유입을 가로막는 것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심에 따라, 이전에 사람을 지배하던 것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황폐’는 파괴보다 ‘새 질서를 위한 비움과 준비’라는 방향에서 이해할 때 AC.18의 문맥에 더 잘 맞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vastatio’의 용례를 하나의 간단한 정의로 고정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을 개인의 거듭남뿐 아니라 교회의 상태, 진리와 선의 결핍, 시험과 준비 등 여러 문맥에서 사용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AC에서 ‘vastatio’가 나올 때마다 무조건 ‘악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과정’이라고 기계적으로 대입하기보다 그 번호의 문맥에서 무엇이 황폐해지고 있으며 왜 그런 상태가 필요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한국어 용어는 ‘황폐’로 일관되게 유지하되, 그 구체적인 의미는 각 문맥에서 해설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합니다.

 

‘desolation’이나 ‘devastation’과의 관계도 이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 영어에서 이 단어들은 ‘vastation’보다 훨씬 익숙하지만, 단어 하나하나의 현대적 뉘앙스를 가지고 스베덴보리의 라틴어 개념을 역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Potts가 어떤 특별한 신학적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vastation을 창안하거나 선택했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면 그런 설명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우리 번역의 최종 기준은 Potts의 영어 단어 자체가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라틴어 원문과 그가 AC 전체에서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번역 원칙도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 ‘vastatio’와 Potts의 ‘vastation’은 기본적으로 ‘황폐’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독자가 ‘완전한 파괴’나 단순한 ‘고난’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는 해설을 통해 그 문맥의 뜻을 밝혀 줍니다. AC.18에서는 특히 ‘참된 것과 선한 것의 유입을 방해하고 거스르는 것들이 제거되어 새 사람이 잉태될 준비가 이루어지는 상태’라는 설명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결국 AC.18의 ‘vastatio’는 절망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 자체만 보면 무너짐과 비어짐을 말하지만, 거듭남의 전체 질서 안에서는 그 뒤에 올 새 생명을 위한 준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깊음이 마르는 것은 그곳에 아무것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이 나게 하기 위해서이고, 옛사람이 죽는 것은 죽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 사람이 잉태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황폐’라는 말을 만날 때 우리는 무엇이 사라지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빈자리에서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시려 하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AC.18 심화 2)

 

 

 

AC.18, 창1:2, ‘깊음과 황폐 :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잉태되기까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 AC.18‘깊음’(faces of the deep)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욕정(cupidities)과, 그로 말미암는 거짓(fals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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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 심화 1, ‘황폐를 거치면 욕정과 거짓은 정말 없어지는가?’

AC.18 심화1. ‘황폐를 거치면 욕정과 거짓은 정말 없어지는가?’ AC.18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 ‘깊음’이 마르고 황폐해져야 하며, 참된 것을 알고 선한 것에 의해 감동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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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는 먼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AC.1 원문에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AC.1의 ‘층위’를 어떤 하나의 영어 또는 라틴어 단어의 번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 저작 전체에서 ‘단계’ 또는 ‘층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말 가운데 하나는 영어 번역에서 ‘degree’, 라틴어에서는 ‘gradus’입니다. 특히 서로 질적으로 구별되는 단계들을 설명할 때 이 개념은 스베덴보리의 인간론과 천국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AC.1에서 `gradus`라고 썼고 우리가 그것을 층위라고 번역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존 설명처럼 AC.1의 ‘층위’의 원어가 곧 ‘degree’, 더 엄밀히는 ‘discrete degree’라고 확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고 한 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차이를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어입니다. 이후 다른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gradus’나 그 밖의 관련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자리에서는 각각의 원어와 문맥을 따라 번역해야 합니다.

 

이것은 번역 작업에서 꽤 중요한 원칙입니다. 해설을 위해 사용하는 한국어 개념과 스베덴보리 원문의 전문용어를 서로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층위’가 스베덴보리 사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해서 그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해설의 배후에 반드시 하나의 동일한 원어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실제 원문에 ‘gradus’가 등장할 때는 그 문맥에서 ‘단계’, ‘층위’, ‘정도’ 가운데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AC.1의 층위에 대한 원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조금 뜻밖입니다. ‘AC.1에는 그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없다’입니다. ‘층위’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표현이며, 스베덴보리의 단계 개념을 대표하는 중요한 원어 가운데 ‘gradus’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앞으로 라틴어 원문까지 함께 대조하며 AC를 번역할 때 훨씬 안전한 출발점이 됩니다. (AC.1 심화 3)

 

 

 

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심화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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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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