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6 심화

1.  체어리티가 심어지자 다시 사람’[homo]이라 불리는가?

 

AC.336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표현은 another man [homo]’,   하나의 사람일 것입니다. 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에노스는 새로운 교회였다고 하지 않고 굳이  하나의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이 질문은 스베덴보리에게 사람이라는 말이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창세기 초기의 속뜻에서 사람은 단순히 인간의 외적 형체를 가진 존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참으로 사람답게 하는 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이며, 그 생명이 인간 안에서 선과 진리의 결합으로 받아들여질 때 인간은 영적인 의미에서 더욱 참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가인의 상태와 에노스의 상태가 대조됩니다. 가인은 신앙을 의미했지만 그 신앙은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이 무너지면서 교회적 생명도 무너졌고, 그 분리는 마침내 체어리티의 소멸과 신앙 자체의 변질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AC.335에서는 주님께서 새로운 신앙을 주셨고,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심으셨다고 합니다. 그 새로운 신앙이 셋이며, 이제 AC.336에서는 그렇게 심어진 체어리티를 에노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에노스를  하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올바른 관계 안에 놓이면서 하나의 교회적 생명이 형성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만 따로 존재하거나 체어리티와 분리된 상태에서는 교회의 생명이 온전하지 않지만,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심으시고 그 둘이 다시 결합될 때 하나의 살아 있는 교회적 상태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람이라는 말은 단지 에노스라는 개인에게 붙여진 별명이 아닙니다. AC.336은 바로 이어서 이것이  교회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에노스는 한 개인의 이름인 동시에 속뜻에서는 그 상태를 가진 교회의 이름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체어리티를 다시 심으심으로써 교회가 다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됨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신앙과 체어리티를 만들어 결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신앙도 주님께서 주셨고, 체어리티 역시 주님께서 심으십니다. 인간이 참으로 사람이 되는 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영적 존엄과 함께 인간의 전적인 의존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proprium으로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다운 생명을 갖게 됩니다. 교회 역시 조직이나 이름 때문에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살아 있을 때 참된 교회가 됩니다.

 

가인의 상태에서는 신앙이 체어리티와 분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신앙에 관한 교리와 예배가 있어도 그 안의 생명은 점차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 에노스에서는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심어지고, 그 결과 새로운 교회가  하나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이 교회의 인간다운 형상을 이루는 데 얼마나 본질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다만 이  하나의 사람을 최초의 태고교회와 완전히 같은 상태의 회복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에노스 역시 태고교회의 흐름 안에 있지만, 앞선 상태와 동일한 교회라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another man’,   하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새로운 교회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구체적인 성격과 변화는 이어지는 AC의 설명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셋과 에노스의 관계를 곧바로 홍수 이후 영적 인간의 일반적인 거듭남 단계로 옮겨 놓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진리를 배우고 신앙으로 행하다가 나중에 체어리티가 생긴다는 식의 단계는 후대 영적 인간의 거듭남을 설명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AC.336의 에노스는 아직 태고교회 문맥 안에 있습니다.

 

바로 다음 AC.337에서도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천적 인간이라고 하며, 그들에게는 사랑으로부터 주님께 받은 신앙, 곧 신앙에 속한 것들을 아는 퍼셉션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AC.336에서는 우선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심어졌고,  체어리티와 교회가 에노스,   하나의 사람이라 불렸다는 직접 진술을 중심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 원리를 우리의 거듭남에 적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단계가 지나면 에노스 단계가 온다는 식의 고정된 시간표로 적용하기보다, 참된 인간의 생명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주님 안에서 결합될 때 나타난다는 영적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를 바라볼 때에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교리를 정확히 가지고 있고 많은 지식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사람이라 불릴 만한 살아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진리가 실제로 선과 결합되고, 신앙이 체어리티와 결합되어,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이 사람들의 삶 안에 나타나야 합니다.

 

반대로 체어리티를 말한다고 해서 진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도 올바른 질서가 아닙니다. 에노스는 셋을 없앤 뒤 나타난 것이 아니라 셋으로 의미된 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체어리티는 서로를 제거하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나의 살아 있는 교회 안에서 결합시키시는 것입니다.

 

결국 AC.336  하나의 사람이라는 짧은 표현은 참된 인간과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참된 사람은 자기 지식이나 자기 선으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 그 둘이 결합된 생명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공동체 안에 이루어질 때 그 교회 역시 하나의 사람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서 무너졌던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이 셋과 에노스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회복의 중심에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계십니다. 새로운 신앙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심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바로 그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교회가 에노스’,   하나의 사람입니다.

 

 

 

AC.336, 창4:26, ‘에노스’(Enosh)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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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26)

 

AC.336

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를 에노스(Enosh), 하나의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교회의 이름입니다. (26)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verse 26)

 

해설

AC.336은 바로 앞 AC.335와 한 문장처럼 이어서 읽어야 합니다. AC.335에서 스베덴보리는 가인으로 의미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뒤, 주님께서 새로운 신앙을 주셨고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심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새로운 신앙이 입니다. 이제 AC.336에서는 그 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를 에노스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흐름은 매우 분명합니다. ‘은 새로운 신앙이고, ‘에노스는 그 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이며, 동시에 그 상태로 형성된 교회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의할 것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체어리티의 근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체어리티의 근원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바로 앞 AC.335에서도 새로운 신앙이 주님에 의해 주어졌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체어리티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원인이 아니라, 주님께서 체어리티를 심으시는 데 사용하시는 하나의 질서와 수단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가인과 셋, 아벨과 에노스의 대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가인은 신앙을 의미했지만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었고, 그 신앙은 결국 아벨로 의미된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반면 셋 역시 신앙을 의미하지만,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심어집니다. 그래서 가인의 신앙은 아벨을 죽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셋의 신앙에서는 에노스가 나타납니다. 같은 신앙이라 하더라도 체어리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그 질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 대조를 곧바로 홍수 이후 영적 인간의 거듭남 순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셋과 에노스는 여전히 태고교회 문맥 안에 있습니다. 바로 다음 AC.337에서도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천적 인간으로 설명하면서, 그들에게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있었고, 그 신앙은 사실상 퍼셉션의 형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AC.336신앙을 통하여 심어진 체어리티먼저 진리를 배우고 나중에 체어리티가 생기는 후대 영적 인간의 일반적인 거듭남 단계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은 AC.336이 직접 말하는 범위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가인으로 의미된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킨 뒤, 주님께서 새로운 신앙을 주셨고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다시 심으셨습니다. 그 체어리티를 에노스라고 했고, 그것이 그 교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상태가 태고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는 이어지는 상세 해설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노스를 단순히 체어리티라고만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another man, homo)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앞부분에서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뜻보다 더 깊은 교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인간 안에서 살아 있고 서로 결합되어 있을 때, 그 상태가 참된 의미의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에노스를 하나의 사람이라고 한 것은 새로운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심어짐으로써 다시 교회라 할 수 있는 상태가 형성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분리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이 무너졌지만, 셋과 에노스에서는 그 둘이 다시 교회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질서가 마련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에노스는 단순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교회의 이름이 됩니다.

 

다만 하나의 사람이라는 말을 곧바로 최초의 태고교회와 똑같은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 하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새로운 교회적 상태가 다시 형성되었음을 보여 주지만, 그 상태가 최초의 태고교회와 어느 점에서 같고 어느 점에서 달랐는지는 뒤의 상세 해설을 따라가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AC.336 한 문장만으로 그 차이를 모두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블로그 해설에는 최초의 태고교회는 사랑으로부터 직접 퍼셉션을 가졌고, 에노스 교회는 셋으로 의미된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심어졌다는 대비가 들어 있습니다. 큰 방향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을 최초의 퍼셉션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 신앙을 먼저 배우는 새로운 방식이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강하게 말하면 너무 앞서갑니다. 이어지는 AC.337은 여전히 태고교회의 참된 상태를 사랑에서 오는 퍼셉션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최초 상태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새로운 교회적 상태라는 정도로 두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또한 AC.336의 마지막 표현인 이것이 교회의 이름입니다는 창세기 초기의 이름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에노스는 단순히 셋의 아들이라는 개인적 이름에 머물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실제로 하나의 교회의 이름이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창4의 계보에서 인물들의 이름은 교리적, 교회적 상태의 계승을 표상하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창4:25-26은 창4 전체의 긴 흐름을 매우 압축해서 마무리합니다. 가인으로 의미된 분리된 신앙은 아벨로 의미된 체어리티를 소멸시켰고, 그 분리는 여러 파생 상태를 거쳐 라멕에서 신앙에 속한 것마저 남지 않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새로운 신앙을 주셨고,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다시 심으셨습니다. 셋과 에노스는 바로 그 새로운 시작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노스가 단순히 체어리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체어리티가 심어진 하나의 교회적 상태 전체의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결합될 수 있는 상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교회가 다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참된 교회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선, 신앙과 체어리티가 주님 안에서 살아 있는 결합을 이룰 때 교회가 됩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의 신앙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인, , 에노스의 역사적 표상과 개인의 거듭남을 곧바로 일대일 대응시키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그 속뜻에서 드러나는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가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살아 있게 하시는 방향으로 가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특히 AC와 말씀의 속뜻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많은 진리를 아는 것이 교회의 생명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주님께서 우리 안에 선과 체어리티를 이루시는 수단이 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신앙과 체어리티가 다시 결합될 때 에노스’, 하나의 사람이 나타난다는 AC.336의 짧은 말은 참된 교회와 참된 인간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매우 깊게 보여 줍니다.

 

심화

1. 체어리티가 심어지자 다시 사람’[homo]이라 불리는가?

 

AC.336 심화 1, 왜 체어리티가 심어지자 다시 ‘사람’[homo]이라 불리는가?

AC.336 심화1. 왜 체어리티가 심어지자 다시 ‘사람’[homo]이라 불리는가? AC.336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표현은 ‘another man [homo]’, 곧 ‘또 하나의 사람’일 것입니다. 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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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7, 창4, ‘참된 태고교회를 알아야 가인의 왜곡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337이 장은 태고교회의 퇴보, 곧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생겨난 이단들과 분파들을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름 아래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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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5, 창4:25, ‘셋’(Seth)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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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개요

 

AC.324

여기서는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리들, 이단들(heresies) 다루며, 후에 에노스(Enosh) 하는 새로운 교회가 일으켜 세워진 것에 관하여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해설

AC.324는 한 문장으로 된 짧은 글이지만 창4 전체의 속뜻을 여는 중요한 개요입니다. 겉으로 보면 창4는 가인과 아벨의 출생과 제물, 아벨의 죽음, 가인의 추방과 후손들, 라멕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마지막의 셋과 에노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장을 단순히 최초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들의 연대기로만 읽지 않습니다. 속뜻에서는 태고교회 안에서 본래 하나였던 사랑과 신앙이 점차 구별되고 마침내 분리되면서 여러 교리적, 교회적 상태가 생겨나는 과정과, 그 쇠퇴 가운데서도 새로운 교회가 일으켜 세워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먼저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리들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사랑과 신앙은 서로 독립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생명 안에서 무엇이 선하고 참된지를 퍼셉션으로 지각하였으며,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쇠퇴하면서 본래 함께 있던 것들이 점차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4에서 가인은 이러한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를 표상하게 됩니다.

 

여기서 heresies이단들이라고 번역할 때에는 오늘날 한국 교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단이라는 말과 완전히 같은 의미로만 이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AC.324의 관심은 어느 현대 교단이나 집단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래 교회의 하나 된 생명에서 어떤 교리가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것이 되는 현상입니다. 이후 설명에서 보게 되듯 가인의 문제도 신앙 자체가 악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이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되고, 마침내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세우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분리구별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신앙과 체어리티는 서로 구별될 수 있으며 실제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집니다. 그러나 구별된다고 해서 서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앙은 체어리티와 함께 있을 때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4는 이 둘의 구별이 어떻게 분리로 변하고, 그 분리가 결국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는지를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하여 보여 줍니다.

 

그리고 AC.324의 후반부는 이 장 전체를 읽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교리들이 분리되어 나오고 이전의 상태가 쇠퇴해 가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에노스라 하는 새로운 교회가 일으켜 세워집니다. 4의 속뜻에는 인간 편에서 일어나는 분리와 쇠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교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마련하시는 주님의 섭리가 함께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4:26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은 바로 이 에노스와 연결됩니다. 태고교회의 최초 상태와 똑같은 형태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달라진 인간의 상태 가운데 새로운 교회적 형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노스의 등장은 단순히 족보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한 교회적 상태가 쇠퇴하는 가운데 또 다른 교회적 상태가 시작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점에서 AC.324는 창3의 마지막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3 마지막에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나가게 되었지만 생명나무의 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거룩한 것을 모독하지 않도록 그 길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창4에서는 타락 이후의 인간과 교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가며, 그 가운데서도 주님과 인간의 연결이 어떻게 보존되어 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창4를 읽을 때 가인 계열을 단순히 나쁜 사람들의 족보’, 셋과 에노스를 좋은 사람들의 족보로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이름들은 말씀의 속뜻에서 교리와 교회의 여러 상태를 표상합니다. 가인에서 시작된 어떤 교리적 상태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왜 새로운 교회인 에노스가 등장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AC.324는 결국 창4 전체에 두 개의 큰 흐름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인간이 사랑과 신앙을 분리하고, 부분적인 것을 전체보다 앞세우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흐름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인간의 쇠퇴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교회의 생명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새로운 교회를 일으켜 세우시는 흐름입니다. 앞으로 AC.325-337은 창4의 각 절을 먼저 개괄하면서 바로 이 두 흐름을 차례로 펼쳐 보이게 됩니다.

 

심화

1. 4 5 어떻게 함께 읽어야 하는가? - 가인 계열과 계열

 

AC.324 심화 1, 창4와 창5는 어떻게 함께 읽어야 하는가? - 가인 계열과 셋 계열

AC.324 심화 1. 창4와 창5는 어떻게 함께 읽어야 하는가? - 가인 계열과 셋 계열좀 성급한 질문일 수 있지만, 그리고 이미 몇 차례 거듭 고민했던 질문이지만... 창4, 창5를 시간순으로 읽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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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5, 창4:1-2, 가인과 아벨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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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3, 창4 앞, 사후의 삶을 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이 장 끝에서 살펴봅니다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AC.323이 장의 끝에서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이와 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At the end of the chapter, several examples will be gi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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