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3 심화

1. 왜 ‘셋째 날’은 ‘일곱째 날’과 같은 것을 뜻하는가?

 

AC.93에서 스베덴보리는 호6:2-3을 인용하면서 천적 인간의 이 상태가 ‘셋째 날’에 이루어지며, ‘셋째 날’은 말씀에서 ‘일곱째 날’과 같은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숫자로 보면 3과 7은 전혀 다른데, 어떻게 둘이 같은 것을 뜻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같은 것을 뜻한다’는 말을 숫자 3과 7의 모든 상응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93에서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숫자가 이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는 점에서 서로 만난다고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앞에서 ‘일곱째 날’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나타냈습니다. 여섯 날 동안의 싸움이 끝나고 주님께서 쉬시는 날이며,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의 안식입니다. AC.84-88에서 이 일곱째 날은 싸움의 종결, 주님의 안식, 그리고 주님 홀로 이루신 거듭남의 완성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AC.93에서 인용한 호세아에서는 ‘셋째 날’에 이와 매우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셋째 날은 죽음과 같은 상태에서 생명을 얻고 일으켜져 주님 앞에서 사는 새로운 상태와 연결됩니다. 이어서 주님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과 같고, 그분은 땅을 적시는 ‘비’와 같이 오신다고 합니다.

 

따라서 AC.93의 문맥에서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이 만나는 지점은 새로운 생명의 상태입니다. 일곱째 날에는 싸움이 끝나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시작되며, 셋째 날에는 사람이 살아나고 일으켜져 주님 앞에서 삽니다. 둘 다 이전 상태가 끝나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생명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의 숫자를 단순한 산술적 수량으로만 읽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 안에서 사람이 거듭나는 상태를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3 = 7’이라는 새로운 상응 공식을 만들어 모든 성경 구절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AC.93이 직접 말하는 범위는 이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련하여 ‘셋째 날’이 ‘일곱째 날’과 같은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호세아의 인용은 단순히 ‘셋째 날’이라는 숫자의 증거 구절이 아닙니다. ‘살리심’, ‘일으키심’, ‘주님 앞에서 삶’, ‘새벽’, ‘비’가 한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AC.84 이후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안식과 평화, 그리고 AC.90-92에서 설명한 비와 평화의 생명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AC.93에서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이 같은 것을 뜻한다는 말은 두 숫자의 모든 의미가 동일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말씀 안에서 둘 다 주님께서 사람을 새로운 생명의 상태로 이끄시는 완성과 일으키심을 나타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세밀한 차이는 이후 스베덴보리가 각 숫자를 설명하는 곳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하지만, AC.93을 읽는 독자는 적어도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AC.93 심화 1)

 

 

 

AC.93, 창2:5-6, ‘평화의 언약과 복된 비, 셋째 날에 일으켜지는 천적 인간’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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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5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아르카나라면, 왜 이것은 처음부터 좀 더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말씀에 이 정도의 설명이라도 함께 주어졌다면 안식일과 창조의 날들을 둘러싼 많은 혼란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C.85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아르카나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 때문에 사람들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AC.85가 직접 주는 첫 번째 답은 분명합니다. ‘일곱째 날’과 ‘안식일’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차이를 모르면 왜 영적 인간의 형성이 여섯째 날과 연결되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과 연결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앞의 AC.67에서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속뜻 안에는 ‘다른 삶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는’ 아르카나들이 있다고 한 것과도 닮아 있습니다. 어떤 속뜻은 단어 하나의 암호를 알아내듯 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뜻이 가리키는 영적 실재 자체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85의 안식일도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적 인간이라는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하면 일곱째 날이 왜 천적 인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천적 인간의 본성을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으셨는가?’라고 물으면, AC.85 한 번호만으로는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AC.85는 ‘왜 이 아르카나가 알려지지 않았는가?’에 관하여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왜 주님께서 그것을 더 일찍 명시적으로 계시하지 않으셨는가?’라는 더 큰 섭리의 문제까지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자유와 수용 상태, 말씀의 문자와 속뜻의 관계, 속뜻의 보존, 신적 섭리와 계시의 때 같은 스베덴보리의 다른 가르침들을 곧바로 AC.85의 확정적인 해답으로 끌어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주제들은 이 질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각각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 문제를 다루는 곳에서 확인하면서 연결해야 합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속뜻이 처음부터 명백하게 쓰여 있었다면 교회사적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인간적인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명백한 설명이 언제나 명백한 수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주님의 계시 방식에 대한 우리의 추측보다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밝히는 설명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의 질문을 접어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중요한 질문으로 남겨 둘 가치가 있습니다. AC를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밝히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것은 아르카나이다’라고 말하는 곳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왜 이제야 밝혀지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본문들이 충분히 쌓이면 한 번호에서의 추측이 아니라 스베덴보리 자신의 여러 설명을 서로 대조하면서 더 신중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AC.85에서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먼저 가는 것이 좋습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안식일이라는 아르카나가 알려지지 않았던 직접적인 이유는 천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영적 인간의 본성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깊은 질문, 곧 ‘왜 이러한 영적 실재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도록 허용되었는가?’는 여기서 성급하게 닫지 않고, 앞으로 AC가 그 답을 열어 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질문입니다. (AC.85 심화 1)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안식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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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분의 일을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고 하며, 또 두 번이나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고 합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사람을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일’(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합니다. 이사야에서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서로 아주 구별되게 사용됩니다. 위의 말씀에서도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형성하시며, 그것을 만드시는 것’(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이라고 하며, 같은 선지서의 다른 곳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창세기의 앞 장과 이 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지금 다루는 말씀의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창조하신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라는 표현도 그러합니다. 속뜻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합니다. 주님을 ‘창조자’(creator), ‘형성자’(former), 또는 ‘만드시는 분’(maker)이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해설

AC.88은 앞의 설명을 하나의 중요한 원리로 모읍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까닭은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AC.87에서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라고 했다면, AC.88은 그 원리를 거듭남 전체로 넓혀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고 명시합니다.

 

이 때문에 창2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표현도 사람의 거듭남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이며, 그 일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를 사람의 거듭남으로 읽는 것은 단순히 창조의 각 대상을 인간의 여러 특성에 대응시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전체 과정의 행위자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그 해석의 중심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사야의 긴 말씀을 인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땅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하며 하늘을 펴시는 여호와의 일이 함께 나오고,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거듭난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하늘’, ‘땅’, ‘사람’의 창조는 앞에서 살펴본 속 사람과 겉 사람의 형성 및 사람의 새 창조라는 문맥과 연결됩니다. 이 인용은 새 창조가 인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AC.88 후반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표현이 아주 구별되게 사용되며, 속뜻에서는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AC.84 마지막의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단순한 문체적 반복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이사야에서도 ‘하늘을 창조하고, 땅을 형성하고, 그것을 만든다’고 하며, 사43:7에서도 한 사람을 두고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들었다’는 세 표현을 함께 사용합니다.

 

다만 AC.88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경계선도 남깁니다. 세 표현이 서로 다른 관념을 전달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말하지만, ‘창조하다’는 정확히 무엇을, ‘형성하다’는 무엇을, ‘만들다’는 무엇을 각각 뜻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 단어에 임의의 고정된 상응을 부여하기보다, 이후 스베덴보리가 그 차이를 직접 밝혀 주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금 확실하게 붙들 수 있는 것은 세 표현이 우연한 동의어의 반복이 아니라 속뜻에서 실제로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말을 인간의 자유와 응답을 없애는 말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앞에서 사람은 실제로 싸움 가운데 있고 선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새롭게 창조하고 악을 이기게 하며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형성하시는 능력의 근원이 주님 홀로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난 뒤에도 그 완성을 자신의 공로나 자기 힘의 결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AC.88은 창조 이야기와 거듭남을 더욱 긴밀하게 결합합니다. 새 창조는 곧 거듭남이며, 그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설명하는 말씀의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표현 하나하나에도 서로 구별되는 속뜻의 관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번호는 사람의 거듭남을 ‘하나님의 일’이라 함으로써 창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전체를 누가 이루셨는지를 다시 분명히 합니다. (AC.88 해설)

 

 

 

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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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7, 창2:2-3,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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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안식일이라 한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르카나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영적 인간을 천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 차이는 AC.81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 곧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에서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는 그 뒤에 이어진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뒤의 주님의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모든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에는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일곱째 날인 안식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궤가 나아갈 때와 쉴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궤가 이동한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했고, 궤가 쉰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궤가 떠날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또 그곳에서는 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을 위하여 ‘쉴 곳을 찾으려고’(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민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성질은 자기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바람’(desire)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은 여기서 ‘땅의 높은 곳에 올려짐’(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즐거움도 누리는데, 이것은 ‘야곱의 기업으로 길러짐’(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으로 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 - 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 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는 천적 인간이 왜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인가를 한층 더 깊이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르카나였다고 하면서 그 직접적인 이유를 천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영적 인간의 본성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인간 사이에는 AC.81에서 본 것처럼 큰 차이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지 못하여 둘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AC.85에서 더 근본적인 설명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하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결국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까닭도 그 안식이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교회와 개인에게 함께 적용됩니다. 태고교회는 뒤에 이어진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고, 이후의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입니다. 또한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에는 주님의 형상이므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광야에서 궤가 나아가고 쉬었던 일은 이 질서를 표상합니다. 궤의 이동은 싸움과 시험을, 궤의 쉼은 평화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AC.84에서 말한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것은 AC.85에서 ‘평화의 상태’라는 적극적인 내용으로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이사야의 안식일 말씀은 그 평화가 어떤 상태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하며, 더 나아가 주님의 뜻이 바로 자기의 ‘바람’이 됩니다. 이것은 외적인 강제로 자기 욕망을 억누르는 상태와 다릅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박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가운데 자유롭다고 했는데, AC.85는 그 자유의 내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뜻과 사람의 바람이 대립하여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을 기뻐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의 바람이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한 무활동이나 싸움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이 있고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를 이사야의 ‘땅의 높은 곳에 올려짐’으로, 후자를 ‘야곱의 기업으로 길러짐’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안식일의 깊은 중심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주님의 뜻이 자신의 바람이 된 데서 오는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이로써 AC.74와 AC.84에서 이어져 온 질문도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것은 여섯 날의 싸움과 수고 뒤에 오는 주님의 안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 것은 피로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평화가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안식의 궁극적인 근원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AC.85 해설)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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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에서 아침으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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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일곱째 날, 모든 싸움이 그치고 주님께서 쉬신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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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창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날 동안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그분의 일’(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앞에서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이라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것은 근본적으로 주님의 역사이며, 그래서 그것을 ‘그분의 일’이라 합니다. 사람이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고, 마침내 천적 인간이 되는 거듭남의 과정에서 실제로 싸움을 겪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며 새롭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앞선 여섯 날의 역사가 누구의 일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곱째 날에 주님께서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하는 이유는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수고하여 피곤해진 뒤 쉬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은 거듭남의 싸움이 그친 상태와 관계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면서 승리하지만, 천적 인간은 같은 방식의 싸움 가운데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AC.84는 이제 그 차이를 창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의 구조에 연결합니다.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여섯 날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싸움이 그치고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일곱째 날, 곧 안식의 상태가 됩니다.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안식일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안식일이라는 명칭 자체를 ‘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와 연결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속뜻은 단순히 일정한 날짜에 일을 멈추는 외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고,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신 거듭남의 싸움이 그치고 천적 상태에 이르는 것과 연결됩니다. 다만 AC.84는 그 안식의 상태를 아직 상세하게 펼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왜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왜 그것을 주님의 안식이라 하는지 그 기본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라는 말은 앞선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전체를 한 문장으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의 거듭남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 안에서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종착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싸움을 완수하여 스스로 안식을 획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가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져 싸움이 그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AC.84에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창조 이후에 덧붙여진 하루가 아니라, 앞선 모든 역사가 향하고 있던 천적 인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AC.84 해설)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안식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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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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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 3절)

 

해설

AC.74는 창2:2-3의 속뜻을 한 문장으로 먼저 제시합니다. AC.73에서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그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 천적 인간을 창조의 ‘일곱째 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창1의 여섯 날과 창2의 일곱째 날은 단순히 자연계의 창조가 진행된 뒤 하루가 더해지는 순서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앞의 여섯 날이 인간의 거듭남과 관계되어 있었다면, 그 뒤에 오는 일곱째 날 역시 그 거듭남의 연속선상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일곱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고 풀어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안식일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창2:2-3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말씀을 인간의 거듭남과 연결하여 읽을 때, 그 일곱째 날은 바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다만 AC.74는 아직 왜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대응 관계를 개요로 먼저 제시할 뿐입니다.

 

두 번째 명제인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다가 피곤해져 쉬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주님께서 ‘쉬신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AC.74가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뒤에서 일곱째 날과 안식, 거듭남의 싸움,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일의 관계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개요에서 그 설명을 모두 앞당겨 넣기보다,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는 두 명제를 그대로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AC.74는 이렇게 AC.73에서 제시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라는 변화를 창2의 일곱째 날과 연결합니다. 이제 독자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다음 설명을 따라가게 됩니다. 왜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지, 그리고 왜 그 상태에서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지입니다. 이 질문들은 이 번호에서 미리 완성해서 답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직접 그 이유를 밝히는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AC.74 해설)

 

 

 

AC.75, 창2:1-17 개요,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 기억지식과 이성’ (5-6절)

AC.75그의 기억지식과 이성[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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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3, 창2:1-17 개요,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 (1

창2:1-17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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