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창5를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족보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고...’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 출생과 죽음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읽을 때 이 이름들을 사람의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AC.468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호하게 ‘이 장의 이름들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교리들 또는 교회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창5의 문자적 형태를 부정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말씀의 속뜻으로는 이 족보가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일까요?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본문이 족보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속뜻으로 그 이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AC.460-468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의 이름들을 통하여 태고교회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와 교리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했는지를 읽습니다. 따라서 AC.461의 ‘사람’은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AC.462의 ‘셋’은 그보다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를, AC.463의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는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를, AC.465의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를, AC.466의 ‘노아’는 열 번째 교회이자 새로운 고대교회를 나타냅니다. 창5의 족보 전체가 속뜻으로는 ‘교회의 계승과 상태 변화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창4와 창5를 읽을 때 생기는 중요한 질문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4에서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등장한 뒤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에게 셋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창5의 속뜻에서는 셋이 태고교회에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교회’라고 합니다. 만일 창4와 창5를 하나의 평면적인 연대기적 족보로만 읽으면서 동시에 각 이름을 교회의 순번으로 대응시키려 한다면 이 둘은 쉽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읽는 속뜻의 층위에서는 창4와 창5가 각각 교회의 서로 다른 영적 역사를 펼쳐 보입니다. 따라서 창4에서 어떤 이름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온다는 문자적 서술 순서를 그대로 창5의 ‘첫 번째 교회, 두 번째 교회...’라는 영적 계승 순서에 옮겨 놓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AC.468은 이 문제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앞 장, 곧 창4에서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이미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창5의 이름들 역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들’, 여기서는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 이름으로 표현되는 영적 성질과 상태를 담을 수 있다는 상응의 원리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에녹’, ‘라멕’, ‘노아’라는 이름을 만날 때 속뜻이 묻는 첫 질문은 ‘이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이 이름을 통하여 말씀은 어떤 교회 상태를 나타내는가?’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그러므로 아담, 셋, 에녹, 노아라는 역사적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AC.460-468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 대목에서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속뜻으로는 이 이름들이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성 자체에 관한 질문과 속뜻으로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구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우리가 AC를 따라갈 때 우선 붙들어야 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문자적 본문은 족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속뜻은 교회와 교리의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창5의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인 형식도 새롭게 보입니다. 이름이 나오고, 나이가 나오고, 낳았다고 하고, 다시 살았다고 하고, 마침내 죽었다고 하는 동일한 구조가 계속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족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서 시작된 어떤 영적 상태가 다음 교회로 전달되고 변화하며 마침내 쇠퇴해 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각 이름과 수, 그리고 ‘낳음’과 ‘죽음’의 표현은 이후 본문 해설에서 각각 교회의 상태와 그 변화라는 관점에서 풀리게 됩니다.

 

결국 창5의 이름들을 교회와 교리로 읽는 것은 문자적 본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안에 담긴 더 깊은 말씀의 흐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표면에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낳는 족보가 있고, 그 안에는 한 교회의 상태가 다음 교회의 상태로 이어지는 영적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 흐름의 끝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노아’라는 리메인스가 남습니다. 이것이 창5의 족보를 단순한 고대인의 명단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어 가시고 쇠퇴 가운데서도 어떻게 다음 교회를 준비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게 하는 열쇠입니다. (AC.460-468 심화)

 

 

 

AC.468, 창5, ‘노아는 교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리메인스를 가리킨다’

속뜻 AC.468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

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영원한 다른 나라(another kingdom)에 있으며, 땅에서 누리던 그의 통치는 이미 끝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있는 곳에서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선과 진리, 그리고 그가 그 안에 있는 주님의 자비(the mercy of the Lord)에 따라서만 존중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 나라에서도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부와 군주의 총애에 따라 평가되는데, 그곳에서는 선과 진리가 부(wealth)이며 군주의 총애는 주님의 자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다른 어떤 방식으로 명령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역자(rebel)인데, 이는 그가 이제 다른 분의 나라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하였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possessed authority, retained in the other life the desire to exercise command. But he was told that he was now in another kingdom, which is eternal; that his rule on earth was dead; and that where he was now no one is held in estimation except in accordance with the good and truth, and the mercy of the Lord, in which he is; and further, that it is in that kingdom as it is on earth, where everyone is rated according to his wealth, and his favor with his sovereign; and that there good and truth are wealth, and favor with the sovereign is the Lord’s mercy; and that if he desired to exercise command in any other way, he was a rebel, seeing that he was now in the kingdom of another. On hearing this he was ashamed.

 

해설

AC.451은 바로 앞 AC.450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라는 가르침을 한 걸음 더 구체화합니다. AC.450이 ‘높아지고 지배하려는 욕망’ 자체를 보여 주었다면, AC.451은 세상에서 실제 권세를 누렸던 사람이 사후에도 그 권세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영계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육체의 죽음이 사람의 지배욕까지 자동으로 없애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은 세상에서 권세를 행사하던 습관과 즐거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사후에 전혀 다른 인격으로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형성한 자신의 사랑과 성품을 가지고 다른 삶으로 들어간다는 AC의 일관된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죽음은 몸을 벗는 것이지, 그 사람의 지배적 사랑을 즉시 바꾸는 사건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먼저 알려지는 것은 ‘너는 이제 다른 나라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직책과 권한은 그 나라 안에서만 효력이 있었으며 죽음과 함께 끝났습니다. 영계에서는 세상의 신분, 직위, 명성 자체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떠한 선을 사랑했으며, 어떠한 진리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내적 상태입니다.

 

특히 ‘선과 진리가 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을 부유하다고 하지만, 천국의 관점에서는 주님께 받은 선과 진리를 풍성하게 가진 사람이 부유합니다. 여기서도 단순히 진리를 많이 ‘아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선과 진리가 그 사람의 사랑과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부는 소유하여 자기를 높이는 재산이 아니라, 주님께 받아 이웃에게 쓰임이 될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더욱 깊은 표현은 ‘군주의 총애는 주님의 자비’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왕이나 권력자의 총애를 얻으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공로나 자격으로 주님의 총애를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선과 진리, 구원과 천국의 생명 자체가 주님의 자비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주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아 그것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근본적인 질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방식대로 계속 지배하려는 사람을 ‘반역자’라고 한 것은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그는 이제 ‘다른 분의 나라’, 곧 주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자기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뜻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것은 단순한 성격상의 결점이 아니라, 천국의 통치 질서 자체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 영광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섬기며 이웃에게 쓰임이 되기 위한 권위입니다.

 

마지막의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하였다’는 짧은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빼앗겨 굴욕을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세상의 질서를 천국에까지 가져오려 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AC.451은 결국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세상에서 맡은 직분과 영향력과 능력을 ‘내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 위에 서기 위해 사용하는가, 아니면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으로 여기며 쓰임을 위해 사용하는가? 천국에서는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얼마나 선과 진리 안에서 주님의 자비를 받아 살았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AC.451 해설)

 

 

 

AC.452, 창5 앞,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bygrace.kr

 

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

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어서, 자신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위치에서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 영광(self-glory)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공상(fantasy)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은 높은 곳으로 올려졌으며 거기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움 가운데 이것이 공상의 천국(a heaven of fantasy)임을 깨달았으며,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천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해설

AC.450은 천국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생각, 곧 ‘공간적으로 높은 곳이 천국이다’라는 생각과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천국의 행복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바로잡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같습니다. 천국을 주님과 사랑의 상태가 아니라 ‘높음’이라는 외적인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람들이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잘 설명하며 영적인 것에 밝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천국적 성품을 지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한 지식조차 자기 영광과 우월감을 위해 사용한다면, 외적으로는 깨달음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내면은 천국의 질서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단순히 말로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원하던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높은 곳으로 올려 보내고 아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꿈꾸던 것을 실제로 얻고 보니 그것은 참된 천국이 아니라 ‘공상의 천국’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가 스스로에게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서 AC.450은 천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천국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을 다스리는 곳에 이미 천국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지옥이라고까지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서 모든 책임이나 지도력, 혹은 뛰어난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는 받은 능력과 지위가 이웃을 섬기는 쓰임(use)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사랑이 지배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두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외적으로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그 권한을 움직이는 사랑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천국의 질서와도 정확히 통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처럼(마20:26), 천국에서 ‘높아짐’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섬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참된 천국의 기쁨은 ‘내가 얼마나 높은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으로 얼마나 기쁘게 쓰임이 되는가’에서 옵니다.

 

결국 AC.450은 천국을 먼 곳에 있는 어떤 높은 세계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인간의 내면과 삶으로 돌립니다.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말씀과 진리는 나를 높이는가,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가?’가 천국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질문이 됩니다. 천국은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체어리티가 다스리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AC.450 해설)

 

 

 

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ygrace.kr

 

AC.449, 창5 앞,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왜 세상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가' (AC.449-459)

천국과 천국의 기쁨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천국을 하나의 방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여, 문이 열리면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도록 허락받고, 문지기들이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ome entertain so gross an idea of heaven that they suppose it to be mere admission, in fact that it is a room into which they are admitted through a door, which is opened, and then they are let in by the doorkeepers.

 

해설

AC.453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452에서 계속 바로잡아 온 잘못된 천국관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유형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천국을 ‘입장 허가를 받아 들어가는 장소’로 생각하는 관념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을 사람의 내적 상태와는 별개로, 죽은 뒤 어느 문 앞에서 입장 여부가 결정되는 두 장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고 하는 까닭은 천국을 전적으로 외적인 장소와 절차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랑을 품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보다, 마지막에 천국의 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결정적인 문제가 됩니다. 천국이 마치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 그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공간처럼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경험들이 이미 보여 주었듯이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AC.450에서는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천국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으로 어떤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이 천국의 사랑과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천국의 ‘문’도 단순한 출입구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보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실제 삶으로 살아갈 때 그의 내면은 천국과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천국은 죽은 뒤 갑자기 외부에서 주어지는 낯선 삶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부터 사람 안에 형성해 가시는 생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AC.453은 구원 역시 단순한 ‘입장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까지 우리를 이끕니다. 물론 천국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획득하는 곳이 아니며 모든 구원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생명을 사람이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그 생명에 따라 살아가는 거듭남의 과정 없이, 외적 허가 하나만으로 내적 상태가 천국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짧은 글은 바로 다음 경험들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 옳다면, 어떤 사람이든 천국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천국의 상태와 맞지 않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게 천국의 생명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이 형성되어 있는가’입니다.

 

결국 AC.453은 천국을 미래의 어떤 장소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현재의 삶으로 되돌립니다. 중요한 것은 죽은 뒤 천국 문 앞에서 누가 나를 들여보내 줄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 내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와 선과 진리의 생명을 이루어 가시도록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단순히 외적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내면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AC.453 해설)

 

 

 

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bygrace.kr

 

AC.452, 창5 앞,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