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2 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으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도 결국 쇠퇴하고 황폐해져 종말을 맞았는데 어떻게 태고교회 전체를 두고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바로 이어 천적 천사들을 언급한다고 해서 태고교회 사람들 모두가 천적 천사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먼저 첫 번째 질문에서는 스베덴보리가 한 ‘교회’를 그 교회의 고유한 영적 성격에 따라 말하는 경우와, 그 교회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퇴해 가는 과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AC 전체에서 ‘천적 교회’로 설명됩니다. 그 교회의 고유한 질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중심에 있고, 신앙이 그 사랑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태고교회의 역사에 속한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언제나 동일한 사랑의 상태에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태고교회 역시 쇠퇴했고, 마침내 그 본래의 천적 상태를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AC.32의 표현은 그 교회를 특징짓는 고유한 영적 질서, 곧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천적 교회의 성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여기서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진리가 필요 없었다거나 그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듯 서로 독립된 두 요소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신앙에 속한 진리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랑에서 분리된 별도의 신앙을 그들은 참된 신앙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2의 전체 논리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사랑은 ‘더 큰 광명체’이고, 신앙은 ‘더 작은 광명체’입니다. 신앙은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데 세대의 종말에는 사랑이 거의 없어졌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처럼 사랑과 신앙이 분리된 상태와 대조되는 예로 태고교회를 제시합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과 신앙의 본래 질서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로 이어서 ‘천적 천사들’을 언급할까요? 스베덴보리의 문장을 자세히 보면 ‘태고교회 사람들이 모두 천적 천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태고교회에 관한 진술에 이어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즉 두 집단의 모든 개인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나타나는 같은 천적 질서를 나란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태고교회가 ‘천적 교회’라고 불리는 것과 천국에 ‘천적 천사들’이 있다는 것은 서로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태고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사후 운명이 자동으로 천적 천국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교회의 영적 성격을 말하는 것과 그 교회에 속했던 모든 개인의 최종적인 영적 상태를 판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태고교회가 후대로 가면서 쇠퇴하고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구별은 더욱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천적 천사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오히려 ‘사랑과 신앙의 질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며, 천국에는 사랑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이 없고, 모든 천국의 행복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천적 천사들은 그 사랑과 생명과 행복을 자기 자신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얻는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32의 관심은 태고교회 사람들의 사후 분류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심은 사랑과 신앙의 올바른 질서입니다. 태고교회라는 지상의 천적 교회의 고유한 상태에서도, 천적 천사들의 천국적 상태에서도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사랑에 속하며, 그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말을 태고교회의 쇠퇴와 모순되는 절대적인 역사 진술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태고교회를 그 고유한 천적 성격에 따라 말하고 있으며, 그 성격을 오늘날 천적 천사들의 상태와 나란히 놓아 사랑과 신앙의 본래 질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구별을 줍니다. 어떤 교회를 말할 때 그 교회가 나타내는 고유한 영적 성격과, 그 교회에 속한 모든 개인의 실제 상태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태고교회가 천적 교회였다고 해서 그 역사의 모든 사람이 천적 인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며, 천적 천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태고교회가 후에 쇠퇴했다는 이유로 그 교회의 본래 천적 성격까지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AC.32에서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까닭은 둘을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양쪽에서 같은 천적 질서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바로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은 사랑에 속하며, 그 모든 사랑과 생명의 근원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AC.32가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을 함께 언급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AC.32 심화 3)

 

 

 

AC.32, 창1:14-17, ‘해가 사랑이고, 달이 신앙이다 : 마지막 시대에 드러나는 광명체의 아르카나’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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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심화 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 심화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를 한 문장 안에서 연결합니다. 사랑과 신앙에 관한 이 아르카나가 특히 마지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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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2

이 세 교회, 곧 ‘사람’(man), ‘셋’(Seth), ‘에노스’(Enosh)는 태고교회를 이루지만, 퍼셉션의 완전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뒤를 이은 교회들에서 점차 감소하였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는 열매나 그 씨앗에 관하여, 그리고 뇌에 관하여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습니다. 완전성은 명료하게 퍼셉션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런데 퍼셉션이 덜 명료하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될 때 그 능력은 감소합니다. 그러면 더 분명했던 퍼셉션을 대신하여 더 흐릿한 퍼셉션이 뒤따르게 되고, 이와 같이 퍼셉션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These three churches, “man,” “Seth,” and “Enosh,” constitute the most ancient church, but still with a difference of perfection as to perceptions: the perceptive faculty of the first church gradually diminished in the succeeding churches, and became more general, as observed concerning fruit or its seed, and concerning the brain. Perfection consists in the faculty of perceiving distinctly, which faculty is diminished when the perception is less distinct and more general; an obscurer perception then succeeds in the place of that which was clearer, and thus it begins to vanish away.

 

해설

AC.502는 지금까지 말해 온 태고교회의 ‘쇠퇴’가 구체적으로 무엇의 쇠퇴였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사람’, ‘셋’, ‘에노스’라는 세 교회는 모두 태고교회에 속합니다. 따라서 셋이나 에노스가 나타났다고 해서 태고교회가 끝나고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세 교회 모두 같은 태고교회의 큰 계열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바로 ‘퍼셉션의 완전성’이었습니다.

 

여기서 AC.500의 ‘덜 천적’이라는 표현이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셋이 최초의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고, 에노스가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도덕적으로 더 나빠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적 인간의 특징인 퍼셉션 능력이 점차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최초의 ‘사람’ 교회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매우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퍼셉션할 수 있었지만,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면서 그 퍼셉션이 점점 덜 명료해지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교회의 쇠퇴는 무엇보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하는 내적 능력의 쇠퇴’입니다.

 

특히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는 표현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퍼셉션의 대상이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뜻이 아니라, 세밀하고 분명하게 구별하던 것이 점차 뭉뚱그려지고 희미해졌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여러 선과 진리의 차이와 그 각각의 성질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면, 후대로 갈수록 그것을 그렇게 세밀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보다 막연하고 포괄적으로만 퍼셉션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완전성은 명료하게 퍼셉션하는 능력에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501에서 사용한 열매와 씨앗, 그리고 뇌의 비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가장 내적인 중심에는 본질적인 생명이 가장 충만하고, 거기서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그것이 점차 일반적이고 외적인 형태를 취합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태고교회에는 퍼셉션이 가장 내적이고 명료한 형태로 존재했지만, 그 뒤를 이은 교회들에서는 그것이 점차 흐릿해졌습니다. 따라서 ‘사람 → 셋 → 에노스’라는 계승은 단순히 세 교회의 시간적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퍼셉션이 ‘명료한 상태에서 덜 명료한 상태로’, 그리고 ‘구체적인 상태에서 더욱 일반적인 상태로’ 변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퍼셉션의 쇠퇴를 ‘있음’과 ‘없음’의 두 단계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분명한 퍼셉션이 있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덜 명료해지고, 더욱 일반적이 되고, 더 흐릿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내적 생명이 쇠퇴하는 방식이 대개 점진적이라는 AC.497의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같은 태고교회이고, 퍼셉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질과 명료함이 이미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 사라질 때 반드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살아 있는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분별하던 것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구체적인 선과 진리의 차이를 알아보던 것이 점차 막연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외적인 형태는 상당 기간 남아 있어도 그 안의 내적 생명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AC.501의 표현대로 하면 아직 열매의 모양은 남아 있지만 점차 그 속보다 껍질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가 태고교회의 퍼셉션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AC.495에서 이미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에는 태고교회와 같은 퍼셉션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의 영적 교회에는 말씀에서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삶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되는 양심이라는 다른 길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태고교회의 내적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배우고,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받아들여 양심이 더욱 바르게 형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흐릿해지면서 사라져 간 역사는 결국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점점 더 분명하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점점 더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502 해설)

 

 

 

창5:9, AC.503, ‘선을 행하는 기쁨과 쓰임 안에서 살아나는 퍼셉션’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3 태고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퍼셉션하는 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써 생기는 행복과 기쁨에도 있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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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9, AC.501, ‘열매의 속과 씨앗에서 껍질로, 교회의 점진적인 쇠퇴’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뒤를 이어 나타났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열매나 그 씨앗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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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노스’(Enosh)는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 교회는 ‘셋’(Seth) 교회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게난’(Kenan)은 앞선 교회들의 뒤를 이은 네 번째 교회를 의미합니다. By “Enos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third church, still less celestial than the church “Seth,”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by “Kenan” is signified a fourth church, which succeeded the former ones.

 

해설

AC.500은 창5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태고교회 후대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점차 달라지고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 자체가 첫 번째라면 셋은 두 번째 교회였고, 이제 에노스는 세 번째, 게난은 네 번째 교회입니다. 따라서 창5의 이름들은 단순한 족보상의 인물 이름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차례로 이어진 교회들을 나타내며, 스베덴보리는 그 순서까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창5가 교회의 계승과 상태 변화를 기록한 장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한층 선명해집니다.

 

특히 주목할 표현은 에노스가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AC.497에서 셋은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었고, 그것은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에노스에서는 그 감소가 한 단계 더 진행됩니다. 태고교회에서 셋으로, 셋에서 에노스로 내려오면서 천적 교회의 고유한 생명, 특히 사랑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는 상태가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단절이나 배교라기보다 동일한 큰 계열 안에서 일어나는 점진적인 상태 변화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에노스 역시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욱 덜 천적’이라는 말만 보면 에노스가 이미 태고교회의 성격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에노스 역시 태고교회 계열에 속한 교회였고, 그 천적 성격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최초의 태고교회가 지녔던 퍼셉션의 충만함과 비교하면 그 상태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쇠퇴는 ‘천적 교회에서 전혀 다른 교회로 갑자기 바뀜’이 아니라, 천적 상태 자체가 점차 약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게난’(Kenan)은 ‘앞선 교회들의 뒤를 이은 네 번째 교회’라고만 설명됩니다. 이 글에서는 게난의 구체적인 상태를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승의 연속성입니다. 태고교회에서 셋으로, 셋에서 에노스로, 다시 에노스에서 게난으로 교회가 이어집니다. 따라서 ‘낳았다’는 족보의 반복은 한 교회에서 다음 교회로 이어지는 영적인 계승을 표현하며, 각각의 교회는 앞선 교회와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다른 상태를 지닙니다.

 

여기서 창5와 창4의 차이도 조금씩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창5에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셋을 ‘두 번째 교회’, 에노스를 ‘세 번째 교회’, 게난을 ‘네 번째 교회’라고 순서대로 명시하면서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한 계열의 교회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4에서 가인으로부터 여러 이단과 분파가 전개되는 모습과는 서술의 성격이 다릅니다. 다만 이 차이가 창4와 창5의 두 계열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어떤 방식과 시기로 서로 병존했는지까지 곧바로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이 글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창5가 태고교회 자체로부터 이어진 후대 교회들의 연속적인 계승을 보여 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계승 가운데 반복해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쇠퇴만이 아니라 주님의 보존입니다. 최초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천적인 것이 점차 감소하지만, 주님께서는 곧바로 교회의 계보를 끊지 않으십니다. 셋이 있고, 에노스가 있으며, 다시 게난이 이어집니다. 완전했던 처음 상태가 약해지는 가운데서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며 다음 교회가 이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는 한편으로는 퍼셉션을 지닌 태고교회의 점진적인 쇠퇴를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쇠퇴 가운데서도 교회를 계속 이어 가시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섭리를 보여 줍니다. (AC.500 해설)

 

 

 

창5:9, AC.501, ‘열매의 속과 씨앗에서 껍질로, 교회의 점진적인 쇠퇴’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뒤를 이어 나타났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열매나 그 씨앗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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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7-8, AC.499, ‘날들과 연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죽음의 의미’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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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

‘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말한 것(3절)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That “Seth”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may appear from what was said above concerning Seth (verse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의 경우는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원인으로 인해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해 간다는 것입니다. The case with churches, as we have said, is that by degrees, and in process of time, they decrease as to essentials, owing to the cause above mentioned.

 

해설

AC.497은 바로 앞의 AC.496에서 ‘셋은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었다’고 한 이유를 한 걸음 더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창5:3에서 다룬 셋에 관한 설명을 다시 가리킵니다. 특히 AC.481-485에서 셋은 태고교회와 같은 천적 교회의 계열에 속하면서도, 그 퍼셉션의 상태가 태고교회 자체와는 달랐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덜 천적’이라는 말은 셋 교회가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천적 질서 안에서도 그 본질적인 생명과 퍼셉션의 충만함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뜻입니다.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표현은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쇠퇴는 먼저 외형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도 남아 있을 수 있고, 예배도 계속될 수 있으며,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언어와 형식도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야 할 본질,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과 선에서 나오는 진리의 생명이 약해지면 교회는 겉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점차 이전 상태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경우에는 특히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직접 퍼셉션하던 천적 생명이 그 본질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서 언급한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 절 하나만을 가리키기보다, 앞에서 설명해 온 교회 쇠퇴의 원리를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AC.494에서는 유전적 악이 세대를 거치며 누적되고, 사람들이 실제적인 악(actual evil)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 갈 때 그것이 다시 후대의 유전적 성향에 더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대를 거치면서 쇠퇴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간 자체가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을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반복되고 굳어지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부모인 태고교회’라는 표현도 더욱 의미 있게 만듭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생명을 이어받으면서도 부모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셋 교회 역시 태고교회로부터 그 천적 성격을 이어받았지만 동일한 정도의 퍼셉션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이름만 바뀌는 기록이 아니라, 같은 큰 계열 안에서 교회의 내적 상태가 세대를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후대일수록 무조건 더 악하다’는 식의 단순한 역사 법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태고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 다루고 있는 일련의 교회들이 그 최초의 천적 상태로부터 점차 멀어져 간 특정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쇠퇴 속에서도 주님은 교회를 단번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앞선 교회로부터 다음 교회가 이어지도록 하십니다. 셋으로부터 에노스가 나오고, 다시 그 뒤를 이어 여러 교회가 계속되는 창5의 구조 자체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497은 교회의 생명을 판단하는 기준을 외적인 규모나 제도의 지속에 두지 않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교회의 진정한 생명은 ‘본질적인 것들’이 살아 있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살아 있고, 신앙의 진리가 그 사랑과 결합되어 삶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감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님은 쇠퇴하는 시대 속에서도 남아 있는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고 그것으로 다음 상태를 준비하십니다. 창5의 계보는 바로 그러한 쇠퇴와 보존, 그리고 계승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AC.497 해설)

 

 

 

창5:6, AC.498,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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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6, AC.496, ‘셋으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AC.496-498)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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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

‘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가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것은 앞에서와 같이 때와 상태들을 의미하며,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Seth,” as was observed,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that he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signifies, as before, times and states;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that was called “Enosh.”

 

해설

AC.496은 창5의 계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아주 간결하게 확인해 주는 글입니다. 창5:6의 문자적 본문은 셋이라는 사람이 백오 세에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족보 기록이지만, 속뜻에서는 ‘셋 → 에노스’가 한 개인에게서 다른 개인이 태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로부터 또 다른 교회가 이어져 나온 과정입니다. AC.470에서 이미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뜻한다고 밝힌 원리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창5의 족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태고교회 이후 여러 교회가 어떤 상태를 거쳐 차례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셋을 ‘두 번째 교회’라고 하면서 동시에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창5의 계승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초의 태고교회가 지녔던 천적 상태가 그대로 복제되어 다음 교회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교회로 갈수록 그 상태에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앞서 AC.481-485에서 셋 교회는 태고교회와 닮았지만 퍼셉션의 차이로 구별되는 교회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교회’라는 말에는 시간적인 후대라는 뜻뿐 아니라, 태고교회와 구별되는 새로운 교회적 상태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셋 교회를 이미 태고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교회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셋을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하면서도 곧이어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천적 교회의 성격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그리고 선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는 태고교회의 기본 질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생생함과 완전함이 최초의 태고교회와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표현 역시 실제 연령 자체가 속뜻의 중심이 아닙니다. AC.482-483과 AC.487-488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와 ‘연수’는 교회의 때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여기서 백오 년은 셋 교회가 어떤 상태를 지나 다음 교회인 에노스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105’라는 수 자체의 세부적인 의미를 풀지 않고, 앞에서 확립한 원칙대로 ‘때와 상태들’을 뜻한다고만 밝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숫자의 개별 상응을 억지로 풀기보다는, 창5의 연수가 교회 상태의 지속과 변화를 기록한다는 큰 원리를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표현은 창5의 ‘낳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교회에서 또 하나의 교회가 ‘태어난다’는 것은 앞선 교회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전혀 무관한 것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교회만의 고유한 상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에노스가 생겼다고 하지 않고, 셋으로부터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창5의 족보는 바로 이러한 교회적 계승의 연속입니다.

 

이 점에서 AC.496은 앞으로 이어질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등의 이름을 읽는 기본 틀을 마련합니다. 각각의 이름은 단순히 족보상의 한 사람을 지나가는 표지가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창5를 읽으면서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만 머물지 않고, ‘이 이름으로 나타난 교회는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을 이어받았으며, 그 상태는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창5의 긴 족보가 단순한 이름과 연수의 나열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의 상태가 변해 가는 가운데서도 교회를 이어 가시는 역사가 됩니다. (AC.496 해설)

 

 

 

창5:6, AC.497, ‘시간이 흐르며 본질적인 것들이 감소하는 교회’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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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5, AC.495, ‘태고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열쇠, 퍼셉션’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5) AC.495태고교회가 어떻게 쇠퇴하였는지는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을 가진 교회였으며,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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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2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2, 3절)

 

해설

AC.462는 앞의 AC.461에서 말한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두 번째 교회를 설명합니다. AC.461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이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켰다면, 여기서는 그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셋’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셋’은 이 장의 속뜻에서 단순히 족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두 번째 교회가 곧바로 천적인 성격을 완전히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에서 이어진 것이 있었지만, 그 상태는 처음의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습니다. 즉 AC.460에서 말한 ‘이어지는 여러 세대’는 단순히 같은 교회가 이름만 바꾸어 계속된 것이 아니라,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내적 상태에는 차이가 생긴 여러 교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AC.462의 짧은 한 문장은 창5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의 태고교회가 가장 천적인 상태에 있었다면, 그다음 교회는 ‘그만큼 천적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에는 이미 변화의 방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태고교회 최초의 상태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교회들 가운데 그 천적인 성격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창5의 여러 이름은 이러한 상태의 변화를 차례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첫 교회는 좋았고 둘째 교회는 나빴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덜 천적이다’라는 것은 곧바로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던 태고교회 특유의 상태가 이전과 동일한 정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상태를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기보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선을 어떠한 방식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셋’이라는 이름이 한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은 창5의 족보를 읽는 방법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문자상으로는 한 이름 다음에 또 다른 이름이 이어지지만, 속뜻으로는 한 교회의 상태 다음에 또 다른 교회의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창5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은 단지 여러 이름을 차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에서 비롯된 천적 생명이 이후의 교회들 가운데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62는 이렇게 창5에서 처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첫 번째 태고교회와 두 번째 ‘셋’은 동일한 상태가 아니지만 서로 단절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앞선 것으로부터 다음 것이 이어지되 그 상태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연속성과 변화가 창5의 족보 안에 담긴 영적 흐름이며, 이후의 이름들을 읽을 때에도 계속 주목해야 할 핵심입니다. (AC.462 해설)

 

 

 

AC.463, 창5,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 이어지는 교회들’

개요 AC.463세 번째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Enosh)라 하였고(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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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1, 창5,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킨다’

개요 AC.461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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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1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1절)

 

해설

AC.461은 창5:1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말씀의 속뜻을 아주 압축하여 제시합니다. 여기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먼저 어떤 한 개인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태고교회를 특별히 ‘천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5의 첫머리는 한 개인의 족보를 소개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이 장에서 이어질 모든 교회의 출발점이 어떠한 상태의 교회였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가 ‘천적’이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심에 두고, 그 사랑으로부터 신앙과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적인 질서는 ‘먼저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통하여 사랑에 이르는 것’이라기보다, 주님께 받은 사랑과 선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퍼셉션하는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렸다는 것은 단순히 그 구성원들이 인간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인간성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 사랑과 지혜의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일수록 주님의 모양이 그 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양’은 인간 자신의 고유한 탁월함을 높이는 표현이라기보다,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지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만큼 참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AC.461의 ‘사람’(homo)이라는 표현은 중요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신앙을 받아 참된 질서 안에 있는 사람, 더 넓게는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린 것은 그 교회가 이러한 천국의 질서를 가장 온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창5가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교회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기준점이 됩니다.

 

또한 AC.461은 창1의 인간 창조와 창5의 족보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창1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사람은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의 형상과 모양을 받아 가는 사람을 다루었고, 여기 창5에서는 그 출발점에 있었던 천적 태고교회가 다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말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창5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형성된 태고교회가 이후 어떠한 상태들을 거쳐 이어져 갔는지를 계속해서 보여 주는 장입니다.

 

결국 AC.461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사람’의 기준은 외적인 조건이나 인간 자신의 프로프리움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며 ‘하나님의 모양’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5는 이 가장 처음의 천적 상태를 기준점으로 삼아, 이후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져 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AC.461 해설)

 

 

 

AC.462, 창5, ‘셋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 않았던 두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2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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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0, 창5, ‘창5는 태고교회가 홍수 직전까지 이어져 간 과정을 다룬다’(AC.460-468)

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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