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18 심화

2. ‘심장과 폐는 왜 사랑과 신앙의 결합을 표상하는가?’

 

AC.418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인들이 천적인 것을 심장의 영역에, 영적인 것을 폐의 영역에 관련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심장과 폐가 사랑과 신앙의 결합과 같은 일종의 결합을 표상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적 천사들이 심장의 영역에, 영적 천사들이 폐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단순히 심장은 사랑, 폐는 신앙이라는 두 낱말의 대응 관계를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 기관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살펴보게 합니다.

 

심장과 폐는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살아 있는 몸 안에서 함께 작용합니다.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키고, 폐는 호흡을 통해 혈액의 기체 교환에 관여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심장과 폐를 함께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두 기관의 결합을 사랑과 신앙의 결합을 이해하는 표상으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을 현대 생리학의 세부 사항과 일대일로 연결하여 새로운 상응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번호에서 직접 밝힌 것은 심장과 폐가 일종의 결합을 표상한다는 점입니다.

 

태고인들이 천적인 것을 심장의 영역에, 영적인 것을 폐의 영역에 관련지었다는 설명도 같은 흐름 안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노래하는 목소리와 그와 비슷한 것들이 폐에 속하는 것들과 관련된다고 말합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호흡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왜 노래와 악기의 소리가 폐의 영역에 관련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폐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영적으로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신체 기관과 소리의 관계를 통해 영적인 것의 표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천사들의 구별이 더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 천사들이 심장의 영역에 속하고, 영적 천사들이 폐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심장과 폐의 관계는 단순히 인간의 신체에서 발견되는 비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설명에서는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의 구별도 이 관계와 연결됩니다. 다만 이번 번호는 천사들이 각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힐 뿐, 그 영역의 모든 구조나 천사들의 구체적인 역할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세부 사항은 관련 저작의 설명을 확인한 뒤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설명에서 특히 주의할 것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별을 곧바로 우열이나 단절로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심장과 폐를 서로 떨어진 기관으로 제시하지 않고 결합을 이루는 기관으로 제시합니다. 사랑과 신앙도 서로 구별되지만, 이 번호에서는 그 결합이 강조됩니다. 따라서 심장은 중요하고 폐는 부차적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하거나, 반대로 두 기관이 함께 작용하므로 사랑과 신앙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번 번호의 설명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앞서 스베덴보리는 마음의 애정이 천적이고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가 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심장과 폐의 관계는 그 설명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마음의 애정과 노래가 서로 무관하지 않듯이, 심장과 폐도 살아 있는 몸 안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두 설명은 모두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구별되면서도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심장과 폐에 관한 문단은 노래와 악기에 관한 앞부분에서 갑자기 벗어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발이 의미하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설명하는 논증의 일부입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을 자신의 신앙에 적용할 때에도 같은 구별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신앙의 진리와 선을 소홀히 여기거나, 신앙을 말하면서 사랑과의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앙을 심장과 폐에 기계적으로 대입하여 자신의 영적 상태를 판정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번호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살아 있는 결합의 중요성입니다. 신앙은 사랑과 무관한 독립된 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사랑과 신앙의 관계는 말씀의 여러 표상을 통해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 심장과 폐가 사랑과 신앙의 결합을 표상한다는 설명은 유발의 수금과 퉁소가 왜 영적인 것들을 나타내는지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태고인들은 천적인 것을 심장의 영역에, 영적인 것을 폐의 영역에 관련지었고, 스베덴보리는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의 구별도 이 관계 안에서 설명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체의 세부 구조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기보다, 사랑과 신앙이 구별되면서도 결합을 이룬다는 이번 번호의 중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AC.418 심화 2)

 

 

 

AC.418, 창4:21, ‘수금과 퉁소는 왜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가?’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8앞 절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지만, 이 절은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다루며,

bygrace.kr

 

AC.418 심화 1,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AC.418 심화1.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스베덴보리는 AC.418에서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는 영적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87 심화

1. ‘선한 영들’은 누구인가?

 

AC.87을 읽으면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온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앞의 AC.50에서는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두 영’을 악한 영들로 이해했다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AC.87의 선한 영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등장한 것인가?’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앞에서 가졌던 전제 하나를 바로잡는 것이 좋습니다. ‘영들’이라는 말 자체를 언제나 ‘악한 영들’과 같은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87만 보아도 스베덴보리는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따라서 어떤 번호에서 단순히 ‘영들’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자동으로 악한 영들이라고 확정하기보다, 그 번호의 문맥과 스베덴보리의 직접 설명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AC.50의 ‘두 영’에 대한 앞선 설명도 수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AC.50이 사람과 영계 및 천국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영들’과 ‘천사들’을 구별했다고 해서, 거기서 말한 ‘영들’이라는 명칭 자체가 곧 ‘악한 영들’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선악을 확정하는 명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AC.87은 같은 ‘영들’ 가운데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을 명시적으로 구별하여 말합니다.

 

그렇다면 AC.87에서 왜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을 따로 말할까요? 여기서는 원문이 말하는 데까지 정확히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수 없어 멀리 달아납니다. 따라서 이 번호에서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은 같은 명칭으로 묶이지 않고 서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AC.87 한 번호만 가지고 이 두 부류의 존재론적 차이와 영계에서의 정확한 위치, 역할, 상태를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영들은 천사들보다 아래 단계의 존재들이다’,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의 존재들이다’, ‘선한 영들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식으로 전체 구조를 먼저 완성하면 AC.87이 직접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섞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구별은 스베덴보리가 영들의 세계와 천국, 영들과 천사들의 상태를 직접 설명하는 곳에서 차례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AC.87에서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충분합니다. ‘영들’이라는 말은 곧 ‘악한 영들’이라는 고정된 뜻이 아니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또한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도 서로 구별하여 말합니다. 그러므로 AC를 읽을 때 ‘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미리 정해 둔 하나의 뜻을 기계적으로 대입하기보다, 그 문맥에서 어떤 영들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용어 문제를 넘어 앞으로 AC를 읽는 데 중요한 원칙이 됩니다. 우리가 상응을 고정된 사전처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의 존재들을 가리키는 명칭도 한 번 정한 설명을 모든 번호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50은 AC.50의 문맥에서, AC.87은 AC.87의 문맥에서 먼저 읽어야 하며, 여러 번호가 충분히 쌓였을 때 스베덴보리 자신이 보여 주는 전체 구조를 따라 정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선한 영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등장했는가?’라는 질문에 지금 가장 정확하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선한 영들이 AC.87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 ‘영들’을 너무 빨리 ‘악한 영들’로만 한정해서 이해했던 것입니다. AC.87은 그 이해를 바로잡아 줍니다. 영들 가운데 악한 영들도 있고 선한 영들도 있으며, 이 번호에서는 천적 인간에게서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온다고 스베덴보리가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자세한 영들과 천사들의 질서는 앞으로 스베덴보리 자신이 그것을 열어 줄 때 따라가면 됩니다. (AC.87 심화 1)

 

 

 

AC.87, 창2:2-3,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2 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으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도 결국 쇠퇴하고 황폐해져 종말을 맞았는데 어떻게 태고교회 전체를 두고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바로 이어 천적 천사들을 언급한다고 해서 태고교회 사람들 모두가 천적 천사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먼저 첫 번째 질문에서는 스베덴보리가 한 ‘교회’를 그 교회의 고유한 영적 성격에 따라 말하는 경우와, 그 교회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퇴해 가는 과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AC 전체에서 ‘천적 교회’로 설명됩니다. 그 교회의 고유한 질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중심에 있고, 신앙이 그 사랑과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태고교회의 역사에 속한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언제나 동일한 사랑의 상태에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태고교회 역시 쇠퇴했고, 마침내 그 본래의 천적 상태를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AC.32의 표현은 그 교회를 특징짓는 고유한 영적 질서, 곧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천적 교회의 성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여기서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진리가 필요 없었다거나 그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듯 서로 독립된 두 요소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신앙에 속한 진리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랑에서 분리된 별도의 신앙을 그들은 참된 신앙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2의 전체 논리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사랑은 ‘더 큰 광명체’이고, 신앙은 ‘더 작은 광명체’입니다. 신앙은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데 세대의 종말에는 사랑이 거의 없어졌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처럼 사랑과 신앙이 분리된 상태와 대조되는 예로 태고교회를 제시합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사랑과 신앙의 본래 질서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로 이어서 ‘천적 천사들’을 언급할까요? 스베덴보리의 문장을 자세히 보면 ‘태고교회 사람들이 모두 천적 천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태고교회에 관한 진술에 이어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즉 두 집단의 모든 개인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나타나는 같은 천적 질서를 나란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태고교회가 ‘천적 교회’라고 불리는 것과 천국에 ‘천적 천사들’이 있다는 것은 서로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태고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사후 운명이 자동으로 천적 천국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교회의 영적 성격을 말하는 것과 그 교회에 속했던 모든 개인의 최종적인 영적 상태를 판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태고교회가 후대로 가면서 쇠퇴하고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구별은 더욱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천적 천사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오히려 ‘사랑과 신앙의 질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며, 천국에는 사랑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이 없고, 모든 천국의 행복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천적 천사들은 그 사랑과 생명과 행복을 자기 자신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얻는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32의 관심은 태고교회 사람들의 사후 분류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심은 사랑과 신앙의 올바른 질서입니다. 태고교회라는 지상의 천적 교회의 고유한 상태에서도, 천적 천사들의 천국적 상태에서도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사랑에 속하며, 그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다’는 말을 태고교회의 쇠퇴와 모순되는 절대적인 역사 진술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태고교회를 그 고유한 천적 성격에 따라 말하고 있으며, 그 성격을 오늘날 천적 천사들의 상태와 나란히 놓아 사랑과 신앙의 본래 질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구별을 줍니다. 어떤 교회를 말할 때 그 교회가 나타내는 고유한 영적 성격과, 그 교회에 속한 모든 개인의 실제 상태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태고교회가 천적 교회였다고 해서 그 역사의 모든 사람이 천적 인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며, 천적 천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태고교회가 후에 쇠퇴했다는 이유로 그 교회의 본래 천적 성격까지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AC.32에서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이 나란히 등장하는 까닭은 둘을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양쪽에서 같은 천적 질서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바로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은 사랑에 속하며, 그 모든 사랑과 생명의 근원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AC.32가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을 함께 언급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AC.32 심화 3)

 

 

 

AC.32, 창1:14-17, ‘해가 사랑이고, 달이 신앙이다 : 마지막 시대에 드러나는 광명체의 아르카나’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bygrace.kr

 

AC.32 심화 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 심화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를 한 문장 안에서 연결합니다. 사랑과 신앙에 관한 이 아르카나가 특히 마지막 시대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AC.32

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라 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더 큰 광명체’(greater luminary), 신앙을 ‘더 작은 광명체’(lesser luminary)라 합니다. 또한 사랑을 가리켜서는 ‘낮을 다스린다’(rule by day) 하고, 신앙을 가리켜서는 ‘밤을 다스린다’(rule by night)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아르카나(arcana)인데,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이제 제가 설명해도 좋다는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가 있었습니다.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이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친히 예고하신 바와 같습니다. Love and faith are first called “great luminaries,” and afterwards love is called a “greater luminary,” and faith a “lesser luminary”; and it is said of love that it shall “rule by day,” and of faith that it shall “rule by night.” As these are arcana which are hidden, especially in this end of days,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explain them. The reason why these arcana are more especially concealed in this end of days is that 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en there is scarcely any love, and consequently scarcely any faith, as the Lord himself foretold in the evangelists in these words: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여기서 ‘해’(sun)는 사랑, 곧 어두워지는 사랑을, ‘달’(moon)은 신앙, 곧 빛을 내지 못하는 신앙을, ‘별들’(stars)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the knowledges of faith), 곧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뜻하며, 이것들이 바로 ‘하늘의 권능들’(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입니다. By the “sun” is here meant love, which is darkened; by the “moon” faith, which does not give light; and by the “stars,” the knowledges of faith, which fall from heaven, and which are the “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

 

[2]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어떤 신앙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는 어떤 신앙도 알지 못합니다.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며, 천국에는 사랑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이 없습니다. 모든 천국의 행복이 여기에서 나오는데, 그 크기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인간의 생각으로도 결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랑과, 그 결과 모든 생명, 곧 사랑에서만 나오는 모든 생명과 모든 행복이 오직 주님에게서만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합니다(perceive). 그들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사랑이나 생명이나 행복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모든 사랑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은 주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큰 광명체, 곧 ‘해’(sun)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기록되기를, The most ancient church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love itself. The celestial angels also do not know what faith is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The universal heaven is a heaven of love, for there is no other life in the heavens than the life of love. From this is derived all heavenly happiness, which is so great that nothing of it admits of description, nor can ever be conceived by any human idea. Those who are under the influence of love, love the Lord from the heart, but yet know, declare, and perceive, that all love, and consequently all life—which is of love alone—and thus all happiness, come solely from the Lord, and that they have not the least of love, of life, or of happiness, from themselves. That it is the Lord from whom all love comes was also represented by the great luminary or “sun” at his transfiguration, for it is written: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17:2)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 (Matt. 17:2).

 

얼굴은 가장 안쪽의 것들을 뜻하고, 옷은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신성(the Lord’s Divine)은 ‘해’(sun), 곧 사랑으로, 그의 인성(his human)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 곧 ‘빛’(light)으로 상징되었습니다. Inmost things are signified by the face, and the things that proceed from them by the raiment. Thus the Lord’s Divine was signified by the “sun,” or love; and his human by the “light,” or wisdom proceeding from love.

 

해설

AC.32는 넷째 날의 두 광명체를 한층 더 깊이 설명합니다. 앞의 AC.30-31에서 사랑과 신앙이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스베덴보리는 왜 사랑이 ‘더 큰 광명체’이고 신앙이 ‘더 작은 광명체’인지, 그리고 왜 이 사실이 자신의 시대에는 특별히 가려진 아르카나였는지를 설명합니다. 핵심은 사랑과 신앙이 서로 독립된 두 요소가 아니라, 신앙이 사랑에서 생명을 얻는 하나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이라고 부르지만, 곧 사랑을 ‘더 큰 광명체’, 신앙을 ‘더 작은 광명체’라고 구별합니다. 사랑은 낮을 다스리고 신앙은 밤을 다스립니다. 여기서 크고 작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는 중요하고 다른 하나는 덜 중요하다는 가치 평가가 아닙니다. 신앙의 생명이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랑이 먼저이며 주된 것이라는 영적 질서를 나타냅니다. AC.30에서 이미 신앙의 마지막 단계가 ‘마음에 속한 신앙, 곧 사랑의 신앙’이며, 사랑에 의해 생명을 얻는 신앙이라고 설명한 것과 같은 흐름입니다.

 

이 사랑과 신앙의 질서가 AC.32에서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던 아르카나’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도 스베덴보리 자신이 바로 설명합니다.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며, 이때에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순서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다’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생명을 얻기 때문에, 사랑이 사라지면 참된 신앙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신앙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아는 것 자체가 그 시대에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마24:29을 인용합니다. 여기서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의미를 직접 풀이합니다. ‘해’는 사랑이며 그 사랑이 어두워지고, ‘달’은 신앙이며 그 신앙이 빛을 내지 못하고, ‘별들’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이며 그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별도의 복잡한 종말론적 도식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AC.32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해와 달과 별의 어두워짐이 사랑과 신앙과 신앙에 관한 지식이 무너지는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태고교회의 언급은 이 마지막 시대와 정반대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사랑 자체 외에 다른 어떤 신앙도 알지 못했다’고 말하며, 천적 천사들도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는 어떤 신앙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태고교회 역사에 속한 모든 사람이 끝까지 동일한 상태에 있었다거나, 태고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후에 천적 천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본래적인 천적 성격과 천적 천사들의 질서가 나란히 제시되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더 나아가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사랑 자체를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곧이어 그는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모든 사랑과 모든 생명과 모든 행복이 오직 주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고, 지각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국의 사랑이 참된 사랑인 이유는 천사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의 근원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앞의 AC.29-31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사람은 거듭남의 초기에는 자기가 선을 행하고 자기가 진리를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차 그 안의 참된 선과 진리의 생명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AC.32의 천적 상태에서는 이것이 더욱 분명합니다. 천적 천사들은 자기에게서 사랑이나 생명이나 행복이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하지 않거나 수동적인 존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랑의 생명과 근원이 주님에게 있음을 지각합니다.

 

마지막 변화산 사건은 이 모든 설명의 절정을 이룹니다. 스베덴보리는 ‘모든 사랑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이 주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큰 광명체인 ‘해’로 표현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고 옷은 빛처럼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얼굴이 가장 안쪽의 것들을 뜻하고, 옷은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신성은 ‘해’, 곧 사랑으로, 그의 인성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 곧 ‘빛’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여기서도 AC.32가 실제로 말한 만큼만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변화산의 모든 세부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얼굴과 옷에 관한 전체 상응 체계를 이 자리에서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본문에서 필요한 핵심은 하나입니다. 사랑의 근원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으며, 그것이 변화산에서 ‘해’라는 형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1의 더 큰 광명체가 사랑을 뜻한다는 것은 단순한 추상적 상징이 아니라 결국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AC.32의 중심은 ‘해 = 사랑, 달 = 신앙’이라는 대응표 자체보다 더 깊습니다. 사랑과 신앙은 둘이지만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신앙은 사랑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조차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옵니다. 이 질서가 사라지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으며 별들이 떨어지는 상태가 되고, 이 질서가 살아 있을 때에는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의 경우처럼 사랑 안에 신앙이 살아 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었고, 주님의 신적 자비로 다시 설명하도록 허락되었다고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광명체의 아르카나입니다. (AC.32 해설)

 

심화

1. ‘세대의 종말’은 왜 수백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AC.32 심화 1, ‘세대의 종말’은 왜 수백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AC.32 심화1. ‘세대의 종말’은 왜 수백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시대를 가리켜 ‘지금이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이라고 말합니다. 그

bygrace.kr

 

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 심화 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 심화2. ‘왜 사랑이 사라지면 사랑과 신앙의 아르카나도 가려지는가?’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를 한 문장 안에서 연결합니다. 사랑과 신앙에 관한 이 아르카나가 특히 마지막 시대

bygrace.kr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 심화 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 심화3. 여기서 말하는 ‘태고교회, 천적 천사들’의 의미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bygrace.kr

 

 

 

AC.31, 창1:14-17, ‘해와 달과 별 : 사랑과 신앙의 밝아짐과 어두워짐’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