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9.심화
2. ‘겔21:9-10, 14-15’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겔21:9-10, 14-15)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Ezek. 21:9–10, 14–15).
AC.309에서 스베덴보리가 겔21의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칼’의 영적 의미를 더욱 강하게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칼’은 문자적인 전쟁 무기가 아니라, 말씀의 속뜻으로는 진리를 파괴하는 거짓, 특히 자기 사랑과 거짓된 설득에서 나오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예언 전체는 거짓이 인간의 내면과 교회를 어떻게 철저히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매우 생생한 상징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먼저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라는 표현들은 모두 거짓의 파괴력이 극도로 증대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칼’이 진리와 싸우는 거짓, 또는 거짓으로 인해 진리가 파괴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칼이 반복하여 언급되고,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는 것은 거짓이 점점 더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어 사람의 선과 진리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깊은 곳까지 침입하는 칼’, 또는 개역개정의 ‘사람들을 둘러싸고’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번역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표현 모두 거짓의 파괴력이 사람의 가장 깊은 삶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침실’이나 ‘내실’ 자체의 상응을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거짓이 인간을 부분적으로만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장악, 황폐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라는 표현은 바로 AC.309의 논지를 직접 뒷받침합니다. ‘낙담’은 선에 대한 의지와 진리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많이 엎드러지게’라는 것은 거짓으로 인해 악과 오류가 계속 증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성문’은 말씀의 속뜻으로는 사람의 마음에 진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 곧 교리와 이성의 출입구를 의미하는데, 모든 성문에 칼이 놓였다는 것은 진리가 들어올 통로 자체가 거짓에 의해 점령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인간의 전 존재를 황폐하게 만드는 영적 상태를 단계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C.309 전체의 결론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그들이 낙담하여’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앞에서 거짓이 사람을 황폐하게 하여 ‘더 이상 선과 진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거짓과 그것을 확증하는 것들만 보게 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은 바로 이러한 영적 황폐함을 예언자의 언어로 묘사한 대표적인 본문인 것입니다. 칼이 번개처럼 번뜩이고, 살육이 커지고, 마음이 녹으며, 넘어짐이 많아지고, 성문마다 칼의 공포가 놓이는 일련의 모습은 모두 거짓이 인간의 영적 생명을 철저히 파괴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에스겔의 ‘칼’에 관한 예언이 그가 설명하고 있는 ‘거짓으로 인한 황폐함’의 가장 강력한 성경적 증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칼의 물리적 움직임이나 전쟁 장면 자체가 아니라, 거짓이 사람의 마음과 이성, 그리고 진리가 드나드는 모든 통로를 점령, 영적 생명을 무너뜨리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AC.309에서 겔21을 길게 인용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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