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창3:21)

 

 

292. 이 말씀이 상징하는 것은 주님이 그들을 영적, 자연적 선으로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가르치심이 ‘지어’, ‘입히시니라’로, 그리고 영적, 자연적 선이 ‘가죽옷’으로 표현되었습니다. These words signify that the Lord instructed them in spiritual and natural good; his instructing them is expressed by “making” and “clothing,” and spiritual and natural good, by the “coat of skin.

 

 

293. 이런 상징들은 겉뜻으로는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 여기엔 어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다들 눈치채고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It could never appear from the letter that these things are signified; and yet there is evidently here enfolded some deeper meaning, for everyone must be aware that Jehovah God did not make a coat of skin for them.

 

 

294. ‘가죽옷’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사실 또한, 속뜻의 어떤 계시가 없으면, 그리고 말씀 내 유사한 표현들이 나오는 여러 이어지는 구절들을 비교해 보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도 분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Neither would it be evident to anyone that a “coat of skin” signifies spiritual and natural good, except by a revelation of the internal sense, and a subsequent comparison of passages in the Word where similar expressions occur.

 

가죽’이라는 일반적인 말이 여기 사용되었지만, 새끼염소, 양, 또는 숫양의 가죽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들 동물은 말씀에서는 선, 체어리티(charity, 慈善) 관련 어펙션(affection, 愛情)들을, 그리고 체어리티에 속한 것을, 가령 희생 제사들에 사용되는 양이 상징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상징합니다. The general term “skin” is here used, but that of a kid, sheep, or ram, is understood, which animals in the Word signify affections of good, charity, and that which is of charity, as was likewise signified by the sheep used in the sacrifices.

 

체어리티의 선, 즉, 영적, 자연적 선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다들 아시듯, 주님을 가리켜 ‘양들의 목자’시라 하고, 체어리티가 있는 사람들을 그분의 ‘’이라 합니다. Those are called “sheep”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 of charity, that is, with spiritual and natural good, and hence the Lord is called the “shepherd of the sheep,” and those who are endowed with charity are called his “sheep,” as everybody knows.

 

 

295. 그들을 가리켜 ‘가죽옷으로 옷 입혀졌다’ 하는 이유는, 태고교회인들은 그들의 이노센스(innocence, 天眞爛漫)로, ‘벗은 채로 있는’(naked)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그 이노센스를 잃어버린 후에는,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발가벗음’(nakedness)이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are said to be “clothed with a coat of skin,” is that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said to be “naked,” on account of their innocence; but when they lost their innocence they became conscious that they were in evil, which also is called “nakedness.

 

(태고인들의 스피킹 방식에 맞춰) 모든 일들이 상호 긴밀히 순서대로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그들을 일컬어 ‘벗은 채로 있게 될까 봐 옷 입혀졌다’라고 합니다. 벗은 채로 있는 것은 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That all things might appear to cohere historically (in accordance with the way of speaking of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are here said to be “clothed lest they should be naked,” or in evil.

 

그들이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음이 분명한 것은, 그들에 관하여 언급된 위 이 장 1절로 13절까지 내용을 보면,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여기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는 내용이 연결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는 그 교회의 첫 후손들을,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은 더 특별히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런 선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Their being in spiritual and natural good is evident from what was remarked above concerning them, from verse 1 to 13 of this chapter, as well as from its being here related that “Jehovah God made them a coat of skin, and clothed them”; for it here treats of the first—and more especially of the second and third—posterities of the church, who were endowed with such good.

 

2021-05-04(D3)-창세기(창3,21, AC.292-295),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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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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