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하지만, ‘오직 믿음’(Sola Fide),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가르치는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사후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은 제가 스베덴보리를 접한 후, 그 전반적인 걸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부터, 그러니까 지난 한 4, 5년 동안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그래서 늘 개운치가 않았던 질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기록은, 어떻게 보면 결국 이 ‘오직 믿음’의 교리로 사는 삶에 대한 대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며, 저의 오랜, 지난날 개신교인으로서의 삶 동안 혈육과 친구, 지인들의 거의 백 프로가 모두 위 제목에 해당하는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알리신 모든 계시의 결론은,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게 아닌, 각 사람의 내면, 곧 그의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여야 갈 수 있는,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은 자기가 고백하는 신앙을 삶과 생활 가운데 실천하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합당한 속 사람의 상태가 되며, 그러므로 그는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현 개신교, 그리고 기독교인 중에서 비록 ‘오직 믿음’의 교리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겉보기에 삶과 생활, 일상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같은 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의 선한 삶으로만 보면 그가 스베덴보리를 통한 주님의 새로운 계시의 사람인지, 아니면 ‘오직 믿음’의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후덕하고 선량하다가도, 이 오직 믿음 교리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 표정이 굳어지는 그런 분들이라면 말입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및 ‘천계비의’(天界秘義, 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마지막 글 번호는 10837)를 가급적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고자 애쓰고 있는데, 최근 이에 대한 무슨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어 이렇게 나름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실마리’라 함은 다름 아닌, ‘황폐함의 과정’ 또는 ‘황폐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영어로는 Vastations라는 과정을 말하며, 다음은 이와 관련된 요약들과 해당 글 번호들입니다. 해당 글은 위 ‘천계비의’, 즉 라틴어 Arcana Coelestia의 글 번호를 말합니다. 혹시 아래 해당 번호의 글들 또한 읽어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을 열어 거기서 해당 pdf들을 다운받으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 pdf들은 영어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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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에는 황폐함의 과정이라는 게 있는데, 그러니까 생을 마감하고 내세에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것이다 (AC.698, 7122, 7474, 9763). Vastations are effected in the other life, that is, those that pass into the other life from the world are vastated (n. 698, 7122, 7474, 9763).

 

선한 사람들은 거짓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나고, 반면 악인들은 진리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난다 (AC.7474, 7541, 7542). The well-disposed are vastated in respect to falsities, while the evil are vastated in respect to truths (n. 7474, 7541, 7542).

 

선한 사람들이 겪는 황폐함의 과정은 지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벗어버리는 과정인데, 이것들은 세상에 살 동안 함께했던 것들이다 (AC.7186, 9763). The well-disposed undergo vastations that they also may be divested of what pertains to the earth and the world, which they had contracted while living in the world (n. 7186, 9763).

 

또한 악과 거짓의 제거,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주님한테서 나오는 천국 선과 진리의 유입을 위한 여지, 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AC.7122, 9330). Also that evils and falsities may be removed, and thus there may be room for the influx of goods and truths out of heaven from the Lord, and ability to accept these (n. 7122, 9330).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런 것들이 제거될 때까지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을 방해하고, 그들과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AC.6928, 7122, 7186, 7541, 7542, 9763). Elevation into heaven is impossible until such things have been removed, because they obstruct heavenly things and are not in harmony with them (n. 6928, 7122, 7186, 7541, 7542, 9763).

 

천국으로 올려지는 사람들은 그래서 미리 준비된다 (AC.4728, 7090). Those who are to be raised up into heaven are thus prepared for it (n. 4728, 7090).

 

준비도 되기 전, 천국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AC.537, 538). It is dangerous to come into heaven before being prepared (n. 537, 538).

 

황폐함의 과정을 마치고,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의 내적 밝아짐과 기쁨의 상태,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리셉션에 관하여 (AC.2699, 2701, 2704) The state of enlightenment and the joy of those who come out of vastation and are raised up into heaven, and their reception there (n. 2699, 2701, 2704).

 

이들 황폐함의 과정이 진행되는 지역을 가리켜 낮은 땅이라고 한다 (AC.4728, 7090). The region where those vastations are effected is called the lower earth (n. 4728, 7090).

 

그 지역은 지옥들로 빙 둘러싸인 발바닥 아래이다. 그곳에 대한 설명(AC.4940–4951, 7090)과 그곳을 경험한 이야기(AC.699) That region is under the soles of the feet surrounded by the hells; its nature described (n. 4940–4951, 7090); from experience (n. 699).

 

그 무엇보다 훨씬 더 감염되게 하고, 황폐하게 하는 지옥들이란 무엇인가 (AC.7317, 7502, 7545) What the hells are which more than others infest and vastate (n. 7317, 7502, 7545).

 

선한 사람들을 감염시켜 황폐하게 한 사람들은 나중에는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피하며, 그들로부터 돌아선다 (AC.7768). Those that have infested and vastated the well-disposed are afterwards afraid of them, shun them, and turn away from them (n. 7768).

 

이들 감염과 황폐함의 과정은 악과 거짓의, 들러붙은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되며, 그들의 질과 양에 따라 계속된다 (AC.1106–1113). These infestations and vastations are effected in different ways in accordance with the adhesion of evils and falsities, and they continue in accordance with their quality and quantity (n. 1106–1113).

 

일부는 이 황폐함의 과정을 진심으로 기꺼이 원한다 (AC.1107). Some are quite willing to be vastated (n. 1107).

 

일부는 두려워하면서 이 과정을 밟는다 (AC.4942). Some are vastated by fears (n. 4942).

 

일부는 세상에서 행한 악과 세상에서 한 거짓된 생각들로 감염되어 있다. 그들은 이 악과 거짓 때문에 근심하고 양심의 큰 고통을 겪는다 (AC.1106). Some by being infested with the evils they have done in the world, and with the falsities they have thought in the world, from which they have anxieties and pangs of conscience (n. 1106).

 

일부는 진리 알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운데 영적 감금 상태에 있는, 그런 식으로 이 과정을 지나는데, 이 상태는 진리에 관한 무지와 진리를 차단하는 상태다 (AC.1109, 2694). Some by spiritual captivity, which is ignorance of truth and interception of truth, combined with a longing to know truths (n. 1109, 2694).

 

일부는 잠드는 식으로, 일부는 깨어 있음과 잠이 든, 그 중간 상태에 있는 식으로 (AC.1108) Some by sleep; some by a middle state between wakefulness and sleep (n. 1108).

 

자기가 한 일을 공으로 여긴 사람들한테는 자신들이 마치 장작을 패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AC.1110). Those that have placed merit in works seem to themselves to be cutting wood (n. 1110).

 

다른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엄청한 다양함으로 (AC.699) Others in other ways, with great variety (n. 699).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1. 이 황폐함의 과정은 천국 갈 사람한테도, 지옥 갈 사람한테도 공평하게 일어난다. 다만 전자한테는 악과 거짓 등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을, 후자한테는 선과 진리 등 지옥에는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을 떼어내는 과정이다. 참고로, 말이 떼어낸다지 실제로는 생살을 찢어내는 것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2. 이 과정은 그 확신한 정도에 따라 매우 혹독, 오래 걸리거나 그냥 슬쩍 금방 지나가기도 한다. 즉 가령, ‘오직 믿음’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다녔어도 그것보다는 일상 가운데 오직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 힘쓴 사람은 이 과정이 가볍게 지나간다. 그에게는 떼어낼 게 별로 없어서다. 만일 그가 이런 교회가 아닌, 신앙과 체어리티의 일치를 가르치는 교회를 다녔더라면, 이 떼어냄의 과정은 그야말로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생전에 어쩔 수 없이 ‘오직 믿음’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다니게 되어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그런 교리보다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참된 신앙으로 이웃 사랑에 힘쓰며 산 사람은 의도치 않게 붙은 이런 교리적 오류들만 좀 떼어내는 약간의 과정을 밟은 후, 천국으로 올라간다.

 

3. 당연한 결론이지만, ‘오직 믿음’의 교리를 크게 확신, 비록 목숨을 걸었어도 실제 그의 삶이 천국에 부합하지 않으면, 즉 그의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이면 그는 천국에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역시 당연한 결론인데,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는 건 그가 겉 보기에 무슨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든 그 숨은 동기, 심지어 본인조차 몰랐던 그 진짜 동기가 바로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 스베덴보리는 주님의 허락으로 영계에서 마틴 루터를 만나 그와 오랜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특히 이 주제, 오직 믿음’의 교리와 관련, 왜 이런 교리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자기가 이 아이디어를 교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자 천사들이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계속 권했지만, 그 당시 이런 교리 없이는 카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가 없어서 부득이 계속 강행하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루터 관련,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796. Ⅰ. 영계에서 만난 루터 · 멜랑크톤 · 칼빈 - 참된 기독교 - 새교회

나는 자주 기독교의 이 세 지도적 개혁자들과 대화를 했으며, 그들의 오늘날까지의 생활에서 모든 것들을 배웠다.   루 터(Luther)   그는 영계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자기의 독단교리의 극렬한

www.newchurch.or.kr

 

4. 참고로, 위 ‘낮은 땅’이라는, 이 황폐함의 과정이 진행되는 곳은 지옥에 인접한 곳으로, 특히 발바닥 아래’ 같은 표현은 천국 전체가 사람 모습이라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8장, ‘천국 전체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와 57장, ‘주님은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 영이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이’(The Lord Casts No One into Hell; This Is Done by the Spirit)에 관한 아래 스캔들을 읽어 보라.

천국과지옥.1.8.59-67.'천국 전체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scan.pdf
0.33MB
천국과지옥.3.57.545-550.'주님은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scan.pdf
0.31MB

 

등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태생적으로 온통 이런 환경이었으면, 무슨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너무 교리, 교리 하지 않으시는 것이 나중을 생각하면 보다 나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교리보다는 실천에 더 집중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저는 사람의 사후, 그가 선한 삶을 살았으면, 즉 선과 사랑, 애정과 신앙의 삶을 살았으면, 비록 그에게 생전에 의도치 않게 덕지덕지 붙어 떼어내야 할 신앙적 오류들이 좀 있더라도 그런 걸 끝까지 떼어내시고, 순도 백 프로의 사람으로 만들어 천국에 올리시는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닫고는, 이제는 제 주변, 제 혈육이 비록 이 새로운 계시에 대해 시큰둥해하거나 적의를 드러내며 저를 멀리한다 하여도 전처럼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사후엔 좀 더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 안타깝지만, 그러나 그가 선한 삶, 곧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계명을 따라 체어리티의 삶을 살았으면 그는 결국 천국으로 올려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오직 믿음’의 신앙을 자랑스럽게 힘써 고백하더라도 실제 그 삶이, 그리고 그 하는 모든 행위의 숨은 동기가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이었던 사람들은 그가 겉보기에 아무리 그럴듯한 신앙인이었어도 사후 그는 천국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그런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오직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60여 년, 저 역시 이 오직 믿음’의 신앙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러므로 저희 부모님을 비롯, 장인, 장모 네 분 모두 천국 가셨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네 분 모두 배움은 조금 부족하셨어도 이 땅에서 정말 선한 삶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 이글이 유익, 도움 되셨기를 바라며, 그 결과 주변 나와 생각이 다른 신앙의 지인들이 혹 계시더라도 전과 달리 넉넉한 심령, 후덕하심과 여유로우심으로 대하실 수 있기를 권합니다. 타교단과 교파, 심지어는 타종교에 속한 분들한테까지도 말입니다. 사람의 사후, 주님은 오직 그의 안에 천국에 합당한 주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는가만 보십니다. 타종교, 즉 교회 밖 사람들에 관하여는 아래 스캔을 읽어보세요. 말씀(The Word)이 없는 교회 밖 세상 나라와 종족들을 포함한, 주님의 공정하신 구원 시스템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천국과지옥.1.36.318-328.'천국의 비기독교인들'.sca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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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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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천국에 이르는 삶을 사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

It Is Not So Difficult to Live the Life That Leads to Heaven As Is Believed

천국과지옥.2.55.528-535.'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scan.pdf
0.70MB

 

HH.528,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55천국에 이르는 삶을 사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It Is Not So Difficult to Live the Life That Leads to Heaven As Is Believed  528영적인 삶, 천국으로 가는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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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29,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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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31,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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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32,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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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33,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55천국에 이르는 삶을 사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It Is Not So Difficult to Live the Life That Leads to Heaven As Is Believed  533천국 생활을 하는 것은 일부에서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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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34,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55천국에 이르는 삶을 사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It Is Not So Difficult to Live the Life That Leads to Heaven As Is Believed  534한번은 천국에 이르는 길과 지옥에 이르는 길이 내게 표상으로 나타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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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535, 55장, '천국에 이르는 삶은 어렵지 않다'(HH.528-535)

55천국에 이르는 삶을 사는 건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다It Is Not So Difficult to Live the Life That Leads to Heaven As Is Believed  535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세상일을 떠나 산 사람들, 또 여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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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증거

2024-08-18(D1)-주일예배(2557, 눅21,20-28), '말세의 증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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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4-08-18(D1)-주일예배(2557, 눅21,20-28), '말세의 증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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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25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눅21:20-28)

 

 

사람이 가장 신앙하는 진리는 (내면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보다 덜 신앙하는 진리는 그 다음에,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거짓이 위치한다. 거짓은 진리들과 열을 지어 서 있지 않고, 선에서 비롯한 진리처럼 천국을 향해 바로 서 있지도 않으며, 아래를 향하거나 악에서 비롯한 만큼 지옥 쪽을 바라보고 있다. (천국의 비밀 9164, 이순철 역) ...When a man is in truth from good, then that truth in which he has the greatest faith is in the middle; next follow the truths in which he has less faith; and finally those which are of doubtful faith. In the borders round about are falsities, which, however, are not in a series with the truths, and do not stand upright toward heaven as do the truths of good; but are bent downward, and look toward hell insofar as they come forth from evil... (AC.9164)

 

 

지난 2주 동안 계속해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 전해 드렸습니다. 첫 주에는 마지막 때 교회들은 주님 당시 유대교회가 그런 것처럼 외적으로만 경건하고 내적으로는 불경하다는 것과, 그래서 말세에 새 교회가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새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계시록에서는 여자가 힘들게 아이를 낳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또 둘째 주에는 말세에는 기존 교회들에 의해 새 교회가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과, 그때 새 교회 사람들은 인내함으로 오히려 영적 생명인 인애, 곧 체어리티(charity)를 얻는다는 걸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말씀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말세에는 타락한 교회들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때가 바로 징벌의 날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아무리 잘못해도 결코 성내거나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말씀에서는 징벌의 날이라고 할까요? 교회가 그릇된 신앙으로 인해 영적으로 피폐해질 때, 지옥으로부터 공포와 불안감이 몰려오고, 더구나 자연적으로도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는데, 그때 벌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 ‘그릇된 신앙’이란, 주님의 속성, 성품, 실제 모습에 위배 되는, 안 어울리는 신앙을 말합니다. 즉 주님은 실제로는 이런 분인데, 사람들은 저런 분, 곧 무엇을 더하거나 빼서 살짝(?) 위, 변조, 결국 자기들을 닮은 그런 이상한 신을 만들어 내고는 그 신이 곧 주님이시라고 믿는 신앙을 말합니다. 오늘날 대표적인 게 바로 ‘오직 믿음’의 신앙입니다. 사랑과 신앙은 같이 가는데, 역사적으로 인류는 여기서 사랑 따로, 신앙 따로, 즉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 굳이 삶이 안 받쳐줘도 굳센 신앙만 있으면, 구원받는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배우고 믿어왔는데, 각 교회 시대마다 그 시대 종말에 이르면 이런 신앙이 아주 극에 달하곤 했습니다. 위에서 ‘역사적’이라 한 것은, 이런 비극이 창세기 가인이라는 신앙과 아벨이라는 신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의 그런 상태를 본문 20절과 2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교회를, 군대는 진리를 공격하는 거짓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였다는 것은 진리를 가르쳐야 할 교회 안에 거짓 진리가 가득한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것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즉 거짓 진리 때문에 교회 안에 진리가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칼은 거짓 진리를,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거짓 진리에 의해 참된 진리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밟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교회 안에 악이 가득한 것, 즉 자아의 악이 교회를 지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에서 나라는 보통 선을 뜻하지만, 이방 나라, 또는 이방인이라 할 때는 반대로 자아의 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 ‘자아의 악’이란 자기를 사랑하는 악을 말합니다. ‘’이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면 그가 의도하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악합니다.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 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사라지는 것을 본문 25절과 26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25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하늘의 징조와 땅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마지막 때 교회의 심판은 영계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그다음에 지상의 교회에서 차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일월성신의 징조는 영계에서 심판이 있을 때, 그곳 하늘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이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영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상응(相應)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하늘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는 것은 지상 교회 안에서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별이 떨어지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달은 주님에 대한 신앙을, 별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땅에서 바다와 파도가 으르렁대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심판을, 구체적으로는 교회 간 교리의 다툼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바다와 파도가 으르렁대는 것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바탕으로 추론,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맞다 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간 교리 다툼이 교회의 심판을 의미하는 이유는, 그 다툼을 통해 교회의 잘못된 신앙과 타락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심판은 이렇게 영계와 자연계에서 차례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때 새 교회가 나타납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 새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7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말씀에서 인자는 진리이신 주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구름은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능력과 영광은 말씀의 내적 의미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말씀의 문자적 의미 안에 있는 내적 의미로 오시는 것을 뜻합니다. 능력과 영광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뜻하는 까닭은, 말씀의 내적 의미는 문자적 의미 안에서 빛나는 영광이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처음 오실 때처럼 그렇게 다시 오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고, 말씀의 내적 의미로 오십니다. 말씀은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교회들이 믿음만으로의 구원을 가르칠 때도 교인들 가운데는 신앙에 따라 인애, 곧 체어리티, 이웃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21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21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본문에서 유대 및 성과 촌에 있는 자들, 그리고 아이 밴 자들, 젖을 먹이는 자들은 타락한 교회 안에서도 참된 신앙에 따라 체어리티의 삶을 살려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아이 밴 자, 또는 젖 먹이는 자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삶의 선을 뜻하고, 젖을 먹인다 할 때 이 젖은 삶의 선과 함께 있어야 할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누구보다 선량한 참된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할까요? 그 이유는 타락한 교회 안에서는 체어리티의 신앙, 또는 선이 있는 진리를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릇된 교리가 주님으로부터 교회로 유입되는 참된 선과 진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 ‘선이 있는 진리’란 그 진리 안에 주님이 계시는 진리를 말합니다. 얼핏, 혹은 누가 보아도 진리 같아도 실제로는 그 안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그런 진리가 있으며, 그런 진리로는 능력이 비롯되지 않습니다. 선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말미암으며, 능력은 오직 이런 선으로만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 저, ‘4차원 영성’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즉 그 사람, 혹은 그 장소에 주님이 임하실 수 있었던 그런 상태였음을, 천국의 능력, 입류가 흘러 들어갈 수 있었던 상태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지 못하면, 기왕에 가지고 있던 체어리티의 선과 진리가 점점 메말라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 및 성과 촌을 떠나 산으로 도망하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와 성과 촌은 교회들을, 산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선한 삶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28절에서 주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말세의 징조가 보일 때, 주님은 일어나 머리를 들라 하십니다. 머리는 영적으로 가장 높은 것인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을 뜻하고,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머리를 들라는 것은 말세에는 무엇보다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을 살라는 것이고, 인간의 지혜, 세상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관련해 ‘천국의 비밀’ 9164번 글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이 선에서 비롯한 진리 안에 있을 때, 그가 가장 신앙하는 그 진리가 (내면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그것보다 덜 신앙하는 진리는 그다음에, 그리고 끝에는 확신하지 않는 진리가 있으며, 가장 바깥쪽 가장자리에는 거짓이 위치한다. 거짓은 진리들과 함께 열을 지어 서 있지 않고, 선에서 비롯한 진리처럼 천국을 향해 바로 서 있지도 않으며, 아래를 향하거나 악에서 비롯한 만큼 지옥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믿는 진리가 참된 진리, 즉 선이 있는 진리라면, 그것이 마음의 중심에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굳게 믿는 것처럼 보이는 진리가 선이 없는 진리, 즉 그냥 지식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마음 한복판에 자리 잡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이해하기만 할 뿐 그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진리 안에 선이라고 하는 애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욕망이나 자아에 속한 것들이 마음 한복판에 있다면, 그것을 밀어내고 선이 있는 진리, 또는 체어리티가 있는 신앙을 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의지, 아주 사소한 습관부터 고쳐나가야 합니다. 사소한 습관들이 주님에 의해 높이 들어 올려질 때, 그것과 연결된 많은 것들이 거룩하게 변하며, 그렇게 해서 거듭남의 변화들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상응을 통해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름을 타고 영광과 능력으로 오신 주님이 밝혀 주시지 않으면 이 말씀을 이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인데, 어떻게 그렇게 타락할 수 있는가? 라고요. 그냥 말씀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통해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신앙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들은 말씀을 임의로 왜곡, 믿음만의 교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교인들에게 강요했습니다. 마치 유대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정결 의식의 의미가 내적인 데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적인 것으로 바꿔 그것으로 교인들을 지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그들에게 내려질 심판이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새 교회는 말씀의 속뜻으로 오신 주님의 영광과 능력이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잘못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말씀의 능력으로 능히 거듭남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아주 작은 악부터 끊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큰 악도 끊게 하십니다. 아주 작은 선부터 행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눅21:28)

 

아멘

 

 

 

2022-09-18(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08-18(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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