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2.심화

 

6. ‘51:3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51:34)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hath devoured me, he hath troubled me, he hath made me an empty vessel, he hath swallowed me as a whale, he hath filled his belly with my delicacies, he hath cast me out (Jer. 51:34),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이사야 27장의 리워야단이나 에스겔의 큰 악어와 마찬가지로, ‘고래(whale) 또는 큰 물고기’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큰 물고기들’이 원래는 지식과 이해의 큰 체계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지만,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섬기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느부갓네살 왕’과 바벨론’은 말씀에서 단순한 역사적 국가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바벨론은 거룩한 것들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상태, 곧 자기 사랑이 종교와 신앙까지 지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느부갓네살은 그러한 자기 사랑의 지배력을 대표합니다.

 

본문은 그가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라고 말합니다. 영어 원문에는 고래처럼 나를 삼켰다(swallowed me as a whale)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고래는 방대한 지식과 추론 능력을 가진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를 섬기는 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목적을 위해 흡수하고 이용하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고래는 먹고 삼키고 배를 채우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특히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음식은 선과 진리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벨론적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여 주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영광과 자기 권세를 위해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음식’을 먹지만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 사랑의 연료로 사용합니다.

 

AC.42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큰 물고기’의 가장 위험한 형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스겔의 바로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는 자연적 인간을 나타내고, 이사야의 리워야단은 진리를 왜곡하는 교만한 추론을 나타낸다면, 예레미야의 고래는 거룩한 진리들까지도 자기 사랑을 위해 삼켜 버리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즉 단순한 무지나 오류가 아니라, 진리를 소유하고도 그것을 왜곡하여 자기 자신을 섬기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이 자신을 빈 그릇이 되게 하였다’고 탄식합니다. 진리가 자기 사랑에 삼켜질 때, 사람은 겉으로는 많은 지식과 교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비어 있게 됩니다. 그릇은 가득 찬 것 같지만, 생명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51 34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 또는 고래’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경우, 방대한 지식과 진리들을 자기 사랑과 권세욕을 위해 삼켜 버리는 상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큰 물고기들’이 단순한 자연 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거대한 구조를 의미하며, 그것이 주님을 섬길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섬길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AC.42, 창1:21, ‘지식을 살리는가 삼키는가 : 큰 바다짐승들로 드러나는 일반 원리의 방향’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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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2, 심화 5, ‘사27:1’

AC.42.심화 5. ‘사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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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rd and great and strong sword, shall visit upon leviathan the longish [oblongum] serpent, even leviathan the crooked serpent, and he shall slay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a. 27:1).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 21절의 큰 물고기들’이 말씀에서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특별히 여기서는 거짓과 자기 지혜에 의해 왜곡된 지식과 추론을 상징하는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큰 물고기들’이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큰 지식들, 기억-지식들, 그리고 이해의 활동들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주님과 분리되어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될 때는 괴물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사야 27장에 나오는 리워야단’은 단순한 바다 괴물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 지혜를 절대화하는 인간의 왜곡된 추론을 상징합니다. 특히 날랜 뱀’, ‘꼬불꼬불한 뱀’이라는 표현은 진리를 곧게 보지 못하고 자기 논리와 교만한 추론으로 비틀어 버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원래 지식은 진리를 섬겨야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오히려 지식을 이용해 진리를 공격하고 왜곡하려 합니다. 리워야단은 바로 그런 상태의 표상입니다.

 

이어지는 바다에 있는 용 또는 바다에 있는 큰 물고기들’을 죽이신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바다는 기억-지식과 자연적 인간의 이해가 있는 영역을 뜻합니다. 따라서 바닷속 괴물들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방대한 지식과 추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주님과 진리에 대항하는 데 사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바로와 큰 악어가 상징하는 것과 매우 비슷한 상태입니다.

 

AC.42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다섯째 날에 창조된 물고기들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력과 지식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것이 주님의 진리 아래 있을 때는 에스겔 47장의 풍성한 물고기들처럼 생명을 주는 것이 되지만, 자기 사랑과 교만 아래 있을 때는 리워야단과 바다의 괴물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힘이 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크고 강한 칼’로 리워야단을 벌하신다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말씀에서 칼은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의 진리가 인간의 거짓된 추론과 왜곡된 지식을 심판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27 1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들’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경우, 인간의 교만한 지식과 왜곡된 추론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리워야단과 바다의 괴물들은 진리를 섬기는 이해가 아니라 진리를 거스르는 이해를 뜻하며, 주님께서는 결국 그러한 거짓된 지혜를 자신의 진리로 심판하시고 제거하신다는 사실을 이 구절은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AC.42, 심화 6, ‘렘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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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2: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2:2) Take up a lamentation for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unto him, thou art as a whale in the seas, and hast gone forth in thy rivers, and hast troubled the waters with thy feet (Ezek. 32:2),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에스겔 29장과 마찬가지로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지식과 이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에 교만해진 자연적 인간의 왜곡된 이해를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2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 21절의 큰 물고기들’이 일반적으로는 지식들과 그로부터 형성된 이해의 큰 구조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그 상응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여러 예언서를 통해 증명합니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애굽의 바로입니다. 말씀에서 애굽은 기억-지식과 학문적 지식을 의미하고, 바로는 그러한 지식을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자연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바로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 또는 큰 물고기’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방대한 지식과 이해를 소유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님을 향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은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 진리와 지식을 의미합니다. 원래 물은 맑고 생명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발로 물을 휘저어 흐리게 만듭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이것은 자연적 인간이 자기 추론과 자기 지혜로 진리를 왜곡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진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과 교만을 따라 진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점이 AC.42의 주제와 직접 연결됩니다. 큰 물고기는 이해력의 큰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님의 빛 아래 있지 않을 때는 오히려 진리를 흐리는 힘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 하듯이, 이해력은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는 이해력이 진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목적에 종속시키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또한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이 생명의 물로 인해 번성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스겔 47장의 물고기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 안에서 살아나는 이해를 뜻하지만, 에스겔 32장의 큰 악어는 자기 지혜로 진리를 흐리는 이해를 뜻합니다. 하나는 생명을 주는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오염시키는 이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AC.42에 인용된 이유는, ‘큰 물고기 또는 큰 악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자기 지혜와 자기 확신에 빠진 자연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로가 물을 휘저어 더럽히는 모습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를 겸손히 받지 않고, 자기 추론으로 왜곡할 때 일어나는 영적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며,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큰 물고기들’의 부정적 상응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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