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3.심화

 

2. ‘23:7, 15

 

7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15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23:7, 15) 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yre shall be forgotten seventy years, 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 (Isa. 23:7, 15).

 

 

이사야 2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 역시, 말씀에서 (day)이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상태와 시대’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들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선지서에서 ’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연속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3장도 그 중요한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심은 옛날(ancient days), ‘그날(that day), 그리고 한 왕의 날들(the days of one king)이라는 표현들입니다. 본문은 두로(Tyre)에 대한 예언인데, 문자적으로 보면 한 도시의 역사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들 안에서 시간 자체보다 상태와 시대’를 읽습니다.

 

먼저 7절의 옛날에 건설된(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태고의 날들(ancient days) AC 전체에서 자주 태고교회’의 상태, 곧 인간과 교회가 주님과 더 가까웠던 초기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은 연대가 아니라 영적 상태의 시대입니다.

 

이어 15절에서는 그날부터 두로가 칠십 년 동안 잊혀질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날’은 하루의 시작 시점이 아니라, 어떤 영적 상태가 시작되는 시대를 뜻합니다. 두로는 말씀에서 흔히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상징하는데, 두로가 잊혀진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참된 지식이 생명을 잃고 황폐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한 왕의 날들에 따라(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날들’은 특정 왕의 재위 기간을 문자적으로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 왕이 대표하는 상태 전체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왕은 흔히 진리 혹은 진리의 통치를 상징하므로, ‘한 왕의 날들’은 단순한 시간 길이가 아니라 하나의 영적 질서와 상태의 기간을 뜻하게 됩니다.

 

 칠십 년 역시 단순한 숫자보다 충분한 기간’, 혹은 황폐와 회복을 위한 완전한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 전체는 도시의 정치사라기보다, 지식이 쇠퇴하고 다시 회복되는 영적 상태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은 계속해서 어떤 상태와 시대를 뜻하고 있으며, 창세기 1장의 날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첫째 날’, ‘둘째 날’은 우주의 시간 계산이 아니라,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 변화의 단계들이라는 점을 이사야의 용례를 통해 다시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3, 심화 3, ‘렘6:4’

AC.23.심화 3. ‘렘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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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1, ‘사13:6, 9,13, 22’

AC.23.심화 1. ‘사13:6, 9,13, 22’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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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1. ‘13:6, 9,13, 22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22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13:6, 9, 13, 22)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Behold, the day of Jehovah cometh.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her place in the day of the wrath of mine anger. Her time is near to come, and her days shall not be prolonged (Isa. 13:6, 9, 13, 22).

 

 

이 이사야 1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day)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24시간의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영적 상태와 시대 전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 등을 문자적인 시간 단위로 읽지 않고, 거듭남의 상태들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 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지서들에서 ’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예로 드는 것입니다.

 

이사야 13장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어떤 특정 하루에 재앙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의 내용은 단 하루의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거대한 상태 변화를 묘사합니다.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려 제자리에서 떠나며’, ‘황폐함이 임하고’, ‘죄인들이 멸망한다’는 표현들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교회와 인간 내면 전체의 영적 상태 변화, 곧 심판과 황폐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 곧 (time)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실제로 22절에서는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고 병렬적으로 말합니다. 이는 말씀 안에서 ’이 물리적 하루보다 훨씬 넓은 의미, 곧 어떤 영적 시대나 상태를 뜻한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날’은 스베덴보리에게 단순한 미래 재난의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교회의 상태가 드러나고, 주님의 질서 앞에서 판별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분노’와 진노 같은 표현도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화를 내신다는 뜻이 아니라, 악과 거짓이 주님의 진리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상태를 인간 편에서 느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린다’는 말은 AC 전체의 상응 구조 안에서 보면,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은 내적 차원, 땅은 외적 차원을 뜻하므로, 여호와의 날은 단순한 우주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의 영적 상태 변화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을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만일 성경 전체에서 ’이 시대와 상태를 뜻하는 데 사용된다면, 창세기 1장의  역시 단순한 물리적 하루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을 AC.23에서 입증하려고 합니다.

 

결국 이사야 13장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이라는 표현이 본질적으로 주님 앞에서의 영적 상태와 시대’를 뜻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를 통해,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은 우주의 시간표가 아니라 인간 거듭남의 여섯 상태로 읽히게 되는 것입니다.

 

 

 

AC.23, 심화 2, ‘사23: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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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창1:5, '날은 곧 상태다 : 시간 너머에서 읽는 거듭남의 리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 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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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심화

 

3. ‘8:14, 26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8:14, 26) The holy one said unto me, Even unto evening when it becomes morning,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Dan. 8:14, 26).

 

 

이 다니엘 8장 구절이 AC.22에 인용된 이유는, ‘저녁’과 ‘아침’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하루의 시간 구분이 아니라, ‘신앙의 상실 상태에서 다시 회복되는 영적 상태의 전환’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2에서 스베덴보리는 ‘저녁’은 신앙이 없는 상태, 곧 거짓과 황폐의 상태를 뜻하고, ‘아침’은 주님의 빛이 다시 비치는 신앙과 진리의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니엘 8장의 ‘주야’, 곧 ‘저녁에서 아침으로’라는 표현은 바로 이 영적 리듬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본문의 중심은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일정 기간 후 성전이 회복된다는 예언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교회와 인간 내면의 영적 상태 변화로 읽습니다. 여기서 ‘성소’는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 곧 인간 안의 거룩한 영역, 혹은 교회 자체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럽혀지고 황폐해진 상태가 바로 ‘저녁’입니다.

 

따라서 ‘저녁이 아침이 된다’는 말은 단순히 밤이 지나고 해가 뜬다는 뜻이 아니라, 황폐와 어둠의 상태가 끝나고, 다시 진리와 신앙의 빛이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AC.22에서 말한 ‘아침’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곧 ‘아침’은 언제나 주님의 오심과 연결되며, 그 오심은 죽어 있던 영적 상태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저녁’이 먼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서입니다. 사람이나 교회는 먼저 자기 힘과 자기 지혜 안에서 황폐함을 경험하게 되고, 그 뒤에야 비로소 주님의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그래서 ‘저녁  아침’이라는 구조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거듭남의 필수 질서입니다.

 

또한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표현은, 주님의 빛이 다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소는 본래 주님의 임재의 자리인데, 거짓과 자기 사랑으로 어두워졌던 상태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다시 주님의 진리와 사랑이 그 중심을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침’입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다’고 하는 말씀은, 이런 영적 교대가 우연이나 감정 변화가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 있는 확고한 질서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즉, 밤이 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며, 저녁은 반드시 아침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입니다.

 

결국 AC.22에서 이 다니엘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성경 전체에서 ‘저녁과 아침’이라는 언어가 반복해서 ‘영적 황폐와 회복’, ‘신앙 상실과 재생’, ‘주님의 오심에 의한 새 창조’를 뜻하는 상응 언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단순한 우주적 시간 기록이 아니라, 다니엘서에서도 반복되는 ‘거듭남과 회복의 리듬’인 것입니다.

 

 

 

AC.22, 창1:5, '저녁에서 아침으로 : 사람의 것에서 주님의 것으로 나아가는 첫 날의 질서'(AC.22-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창1:5) AC.22 이제 ‘저녁’(evening)이 무엇을 뜻하고, ‘아침’(morning)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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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 심화 2, ‘삼하23:2-4’

AC.22.심화 2. ‘삼하23:2-4’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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