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0.심화

 

5. ‘경계

 

본문에 실제로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땅이 앗수르 쪽으로 미치는 경계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에 있어서 경계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해설에 기억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브라데는 마지막 단계이자 경계입니다’, 심화에서도 반면 그 큰 강 유브라데는 그 기억 지식이 도달하는 최종 경계’, 곧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외적 인식의 끝입니다...  경계라는 것과,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표현들이 알 듯 모를 듯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이 표현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경계’라는 말을 흔히 막다른 끝’이나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서 말하는 경계는 그런 폐쇄된 끝이 아니라, ‘영역이 달라지는 문턱’’입니다. 다시 말해, 거기까지는 어떤 방식이 유효하지만, 그 지점부터는 다른 방식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먼저 기억 지식’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짚어 보시면 이해가 풀립니다. 기억 지식은 보고 듣고 배우고 축적한 모든 정보와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생각의 재료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성도, 판단도, 설명도 이 재료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역은 넓고 중요하며, 실제로 인간의 삶 대부분이 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억 지식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안쪽’이란 지성, 더 나아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퍼셉션의 영역입니다. 이 영역은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쌓는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가’를 책과 정보로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것이 곧 사랑을 아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아는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바로 그 지점이 경계’입니다.

 

그래서 유브라데가 경계다’라는 말은, 기억 지식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지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지점까지는 분석하고 비교하고 축적하는 방식으로 갈 수 있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려면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위로부터의 유입,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이 열려야만 그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일상적인 비유로 말씀드리면, 지도를 아무리 정밀하게 연구해도 실제 길을 걷는 것 자체는 다른 차원의 경험입니다. 지도는 길의 끝까지 안내해 주지만, ‘그 길 위에 발을 디디는 순간은 지도 밖의 일’입니다. 기억 지식은 지도와 같고, 퍼셉션은 실제로 그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들어간 것’이 되지 않습니다. 이 둘이 갈리는 지점이 바로 경계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경계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 경계를 무시하고, 기억 지식이나 이성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들면, 결국 자신이 알 수 없는 영역까지도 억지로 재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왜곡입니다. 반대로 이 경계를 인정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방식이고, 그 너머는 주님께서 열어 주셔야 하는 영역’이라는 겸손한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좌절의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진입의 방식이 바뀌는 지점’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그 경계까지는 기억 지식과 이성이 인도하고, 그다음은 사랑과 신앙, 곧 주님의 유입이 열어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유브라데를 경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전환의 자리’를 정확히 짚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AC.120, 창2:14, ‘유브라데 : 이성과 기억 지식의 경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 ‘애굽’(Egypt)이 기억 지식을 의미하는 것처럼, ‘유브라데 강’(Euphrates)도 기억 지식, 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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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 심화 4, ‘창15:18’

AC.120.심화 4. ‘창15: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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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심화

 

4. ‘15: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이 구절이 AC.120에 인용된 이유는, ‘애굽의 강에서 유브라데까지’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 안에 허락된 전 영역의 범위와 그 바깥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한 문장으로 규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약속을 지리적 영토의 확대가 아니라, ‘기억 지식에서 시작하여 그 최외곽 경계에 이르는 전 인식 영역 전체가 주님의 질서 안에 포함된다는 선언’으로 읽습니다.

 

먼저 애굽의 ’은 기억 지식의 출발점, 곧 감각에서 올라오는 가장 기초적인 인식의 자리입니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접하고, 보고 듣고 경험하며, 그것을 기억으로 쌓습니다. 이것이 인식의 가장 바깥에서 시작되는 기초입니다. 반면 그 큰 강 유브라데’는 그 기억 지식이 도달하는 최종 경계’, 곧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외적 인식의 끝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유브라데를 마지막 단계이자 경계’라고 말합니다.

 

이 두 경계를 함께 제시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것은 일부’가 아니라, ‘가장 외적인 감각적 지식에서부터 그 지식의 한계선까지 전부’입니다. 이는 곧 인간의 외적 영역 전체, 곧 기억 지식과 감각, 그리고 그것이 이성으로 조직되는 모든 범위가 주님의 통치 아래 들어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경계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 너머는 더 이상 지성과 지혜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AC.120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앞서 미가서와 시편에서는 이 경계까지 생명이 미친다’는 확장을 보여주었고, 예레미야에서는 그 경계를 근원으로 삼으려 할 때의 왜곡’을 경고했습니다. 이제 창세기 15장은 그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곧, ‘주님이 허락하신 영역은 이 경계 안 전체이지만, 그 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는 표현은, 이 영역이 단순한 자연적 소유가 아니라 거듭남을 통해 이어지는 영적 유산’임을 뜻합니다. 인간은 기억 지식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른 위치에 두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전체 영역이 기업’이 됩니다.

 

정리하면, 이 구절은 인간 인식의 바깥선이 어디까지이며, 그 전체가 어떻게 주님의 질서 안에 포함되는지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통해, 기억 지식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포함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경계로서 지켜져야 할 영역’이라는 점을 결정적으로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20, 심화 5, ‘경계’

AC.120.심화 5. ‘경계’ 본문에 ‘실제로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 땅이 앗수르 쪽으로 미치는 경계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에 있어서 경계가 되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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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 심화 3, ‘시80:8, 11’

AC.120.심화 3. ‘시80:8, 11’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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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0:8, 11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이 구절이 AC.120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계속 다루어진 애굽앗수르브랏’의 구조를 부정이나 경고가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될 때의 확장과 결실이라는 긍정적 장면으로 완성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애굽과 앗수르의 물을 마신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왜곡된 의존이 경고되었다면, 시편 80편은 그와 동일한 요소들이 주님의 질서 안에 놓일 때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보여줍니다.

 

먼저 애굽에서 포도나무를 가져왔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을 의미하지만, 이 본문에서는 그것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사용됩니다’. 곧 기억 지식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취하시어 새롭게 심으시는 재료’입니다. 이어서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심으셨다’는 말은, 그 지식 안에 섞여 있던 왜곡과 혼합된 요소들이 제거되고, 순수한 상태로 재정렬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바다는 가장 외적인 영역, 곧 감각과 삶의 실제를 의미하고, ‘ 곧 브랏은 기억 지식의 경계, 인간 인식의 최외곽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곧, ‘주님께서 심으신 생명(포도나무)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가장 바깥 영역까지 모두를 덮고 확장된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이 AC.120에서 중요한 이유는, 같은 애굽과 강(브랏)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사람이 거기서 물을 마시려’, 즉 그것을 근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님이 먼저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며, 그 결과로 가지가 바다와 강까지 뻗어 나갑니다’. 곧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며 확장되는 생명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구절이 경계까지 이른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브랏은 경계이지만, 그 경계는 닫힌 끝이 아니라 생명이 미치는 범위의 끝’입니다. 즉,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은 인간의 이성과 기억 지식을 지나, 가장 바깥 영역까지 도달하여 그 전체를 살아 있게 합니다.

 

정리하면, 이 시편 구절은 AC.120에서 다음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됩니다. 기억 지식과 이성, 그리고 그 경계까지 포함한 인간의 모든 층위는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 놓일 때, 전체가 살아나고 확장되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잘못된 의존’과 올바른 확장’을 대비시키며, 동일한 구조가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는 본문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AC.120, 심화 4, ‘창15:18’

AC.120.심화 4. ‘창15: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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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 심화 2, ‘렘2:18’

AC.120.심화 2. ‘렘2: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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