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0.심화

 

6. ‘4: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4:25)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5).

 

 

이 구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가 이해력과 사유에 속한 것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0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하늘의 새’가 살아 있는 이해와 사유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응의 의미를 설명할 때 늘 그렇듯이, 말씀은 그 존재뿐 아니라 그 상실도 함께 묘사합니다. 따라서 새가 날아갔다’는 것은 단순히 새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과 영적 사유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4장은 교회의 황폐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 구절들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하늘에는 빛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창세기 1 2절의 상태를 연상시키는데, 교회와 사람의 내면이 질서를 잃고 영적으로 황폐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에 따르면 사람’은 단순한 인간 개체가 아니라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교회적 인간, 곧 참된 인간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선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영적 사고가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선도 없고 진리도 없는 상태, 사랑도 없고 신앙도 없는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AC.40의 핵심 주제와 직접 연결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새가 창조된 것은 이해력이 살아나고 진리를 생각하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새가 사라지는 것은 그 능력이 상실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교회의 황폐를 설명하면서 새들이 날아가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공중의 새’라는 표현은 중요합니다. 새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된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의미의 새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늘의 진리와 연결된 사유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 새들이 날아가 버렸다는 것은 사람이 더 이상 하늘의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지도 않으며, 받아들이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4 25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가 이해력과 사유에 속한 것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반대의 경우를 통해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새가 많고 살아 있는 상태는 진리의 이해가 풍성한 상태를 뜻하고, 새가 모두 날아가 버린 상태는 진리에 대한 이해와 영적 사유가 사라진 황폐의 상태를 뜻합니다. 이 구절은 바로 그 영적 황폐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AC.40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40, 심화 7, ‘겔17:22-23’

AC.40.심화 7. ‘겔17:22-23’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bygrace.kr

 

AC.40, 심화 5, ‘사46:11’

AC.40.심화 5. ‘사46: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사46:11) C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40, 심화 8, ‘호2:18’  (0) 2026.06.02
AC.40, 심화 7, ‘겔17:22-23’  (0) 2026.06.02
AC.40, 심화 5, ‘사46:11’  (0) 2026.06.02
AC.40, 심화 4, ‘겔47:8-10’  (0) 2026.06.02
AC.40, 심화 3, ‘사50:2-3’  (0) 2026.06.02
Posted by bygracetistory
,

AC.40.심화

 

5. ‘46: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46:11) Calling a bird from the east, the man of my counsel from a distant land (Isa. 46:11).

 

 

이 구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bird, fowl)가 단순한 새가 아니라 이해력에 속한 것들, 특별히 진리에서 나오는 사유와 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0은 창세기 1 20절의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말씀을 해설하면서, 물고기는 이해력의 보다 외적인 영역을, 새는 이해력의 보다 내적인 활동과 사유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사야 46 11절은 그러한 상응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여기의 사나운 날짐승’은 어떤 역사적 인물, 혹은 먼 나라에서 오는 정복자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새를 언제나 사유와 이해에 연결합니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생각도 이해의 하늘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날짐승’은 단순한 새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성과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은 동쪽에서 날짐승을 부른다고 말합니다. 말씀에서 동쪽’은 주님과 사랑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듯이, 영적으로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선이 동쪽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동쪽에서 오는 새는 자기 지혜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온 빛과 사랑에 의해 인도되는 이해를 뜻합니다.

 

이어지는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를 반복합니다. 여기서 사람은 주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도구를 뜻하며, 앞의 ’와 병행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부르시는 새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여 그 뜻을 이루는 이해력과 사유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AC.40의 문맥에서 보면 이것은 다섯째 날에 창조된 새들의 긍정적 의미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새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유입니다. 물고기가 진리의 지식과 이해를 뜻한다면, 새는 그 이해가 더 높아져 자유롭게 진리를 생각하고 분별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새를 부른다’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46 11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가 이해력과 사유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며, 특별히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에 의해 인도되는 지성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1장의 새들이 단순한 자연계의 새가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 있는 이해와 사유를 의미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AC.40, 심화 6, ‘렘4:25’

AC.40.심화 6. ‘렘4: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5)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5). 이 구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

bygrace.kr

 

AC.40, 심화 4, ‘겔47:8-10’

AC.40.심화 4. ‘겔47:8-10’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40.심화

 

4. ‘47:8-10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47:8-10) The Lord Jehovih said unto me, These waters that shall issue to the boundary toward the east, and shall come toward the sea, being led into the sea, and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that shall creep for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there shall be exceeding much fish, because those waters shall come thither, and they shall heal, and everything shall live whither the river come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fishers shall stand upon it from En-gedi 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 shall they be; their fish shall be according to its kind, as the fish of the great sea, exceeding many (Ezek. 47:8–10).

 

 

이 구절이 AC.40에 인용된 이유는, 앞서 이사야 50장에서 보인 ‘물이 마르고 물고기가 죽는 상태’와 정반대로,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가 사람과 교회 안에 흘러 들어올 때 이해력과 신앙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40에서 스베덴보리는 ‘’은 신앙의 지식들과 진리들을, ‘물고기’는 그러한 진리들로부터 살아 움직이는 이해의 활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에스겔 47장은 바로 그 상응을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본문에서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물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의 흐름을 뜻합니다. 그 물이 바다에 들어가자 ‘바다의 물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바다는 지식과 기억의 가장 바깥 영역, 곧 자연적 사람의 이해를 의미합니다. 원래 바다는 짠물이라 생명이 풍성하지 못하지만, 성전에서 나온 물이 흘러들자 살아납니다. 이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가 인간의 자연적 이해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이해가 영적 생명을 얻게 되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물’은 살아 있는 애정과 생각들을, ‘고기’는 살아 있는 신앙의 지식들과 이해의 활동을 뜻합니다. AC.40의 문맥에서는 특별히 ‘고기’가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물고기를 이해력에 속한 것들, 곧 진리들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상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단순한 수산업의 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풍성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어부가 설 것이며’,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말씀에서 어부는 사람들을 진리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상응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부들이 강가에 선다는 것은 진리가 풍성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일도 풍성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라는 표현은 진리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형태와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마다 이해의 수준이 다르고, 천사들도 각기 다른 지혜를 가지듯이, 진리의 인식도 무한히 다양합니다. 그래서 물고기들이 ‘그 종류를 따라’ 많아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에스겔의 환상은 AC.40이 설명하는 다섯째 날의 상태를 매우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물이 흐르면 이해력이 살아나고, 그 결과 물고기들이 번성하듯 진리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풍성해집니다. 따라서 겔47:8-10은 ‘’이 진리를, ‘물고기’가 이해력에 속한 살아 있는 신앙의 활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AC.40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40, 심화 5, ‘사46:11’

AC.40.심화 5. ‘사46: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사46:11) C

bygrace.kr

 

AC.40, 심화 3, ‘사50:2-3’

AC.40.심화 3. ‘사50:2-3’ 2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