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힛데겔강’(river Hiddekel)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합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AC.118은 셋째 강 힛데겔과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설명하면서 에덴에서 나온 네 강의 구조를 거의 완성합니다. 힛데겔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앞의 두 강이 의지와 이해에 관계했다면, 이제 셋째와 넷째 강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까지 나타나면서 천적 인간 안에 있는 것들이 더욱 바깥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대한 설명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힛데겔은 이성이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각각의 의미보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성의 참된 명철함은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은 AC.115에서 처음 분명하게 등장한 ‘유입’의 설명을 한층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유입의 근원과 통로와 도착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이성이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99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질서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주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AC.118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이성적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거듭남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근원에서 생명을 받아야 할 겉 사람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기억지식을 부정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다시 보여 줍니다. 기억지식이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묘사되는 질서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같은 겉 사람의 능력에 이르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가장 바깥 경계에 놓입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장 바깥의 것을 근원으로 삼아 위의 질서를 거꾸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18은 AC.80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천적 인간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지식은 분명히 전체 질서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마음 역시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명철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성과 기억지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질서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속 사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118은 네 강에 관한 설명 가운데서도 유입의 방향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번호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적 마음과 기억지식이 실제로 있지만, 참된 명철함의 근원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의 강들은 천적 인간 안에 있는 여러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질서를 이루며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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