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atAsshur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은 레바논의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하며, 굵은 가지들 사이에 있는 가지(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cedar in Lebanon”; the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구절과 밖의 여러 구절에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앗수르(Asshur) 이성을, 이스라엘(Israel) 지성을 의미합니다. ByEgypt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Asshurreason, and byIsraelintelligence.

 

해설

AC.119는 앞의 AC.118에서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에스겔과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AC.118에서는 힛데겔강이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의 두 인용은 바로 그 가운데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먼저 겔31:3-4에서는 앗수르를 크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레바논 백향목이 이성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가지들과 관련된 표현은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인용에서 백향목과 그 가지들은 단순한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이성과 그것에 속하여 있는 앎들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특히 물과 깊은 물과 강들이 그 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묘사는 앞에서 강과 물이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의미는 사19:23-25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말씀에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등장하며, 서로 왕래하고 함께 여호와를 섬기며 마침내 셋이 함께 복이 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이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애굽은 기억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앗수르 하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구별된다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이 점은 최근 여러 번호에서 계속 나타난 용어의 구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AC.111에서는 기억지식을 곧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여기는 겉 사람의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AC.116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한다고 했고, AC.117에서는 애굽이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이 앎을 의미한다고 구별했습니다. 이제 AC.119에서는 애굽의 기억지식과 앗수르의 이성과 이스라엘의 지성이 다시 구별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기억지식, , 이성, 지성은 서로 바꾸어 써도 되는 비슷한 말들이 아니라 각각의 자리를 가진 개념들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19장의 인용 이유는 단순히 앗수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사이에 길이 열리고 서로 오가며 함께 섬긴다는 전체 장면 속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관계를 맺는 질서가 표현됩니다. 이성은 기억지식과 단절되어 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지성 역시 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구별되면서도 올바른 질서 안에서는 함께 작용하고, 그 전체가 여호와께 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AC.118에서 유브라데, 곧 기억지식을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기억지식의 무가치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확인해 줍니다. 19장에서 애굽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고 백성 애굽이라고까지 불리며 앗수르와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성과 지성과 어떤 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인 앎과 이성적 능력이 올바른 질서 안에 있을 때 그것들도 전체적인 영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119에서 에스겔과 이사야가 인용된 이유는 충분히 분명합니다. 에스겔은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성과 그에 속한 것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사야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함께 놓음으로써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과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118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천적 인간 안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제자리를 얻어 질서 있게 관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AC.119)

 

 

 

AC.120, 창2:14, ‘유브라데 -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애굽’(Egypt)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도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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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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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2:14)

 

AC.118

힛데겔강(river Hiddekel)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합니다.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입니다. Theriver Hiddekel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is the rational mind; the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AC.118은 셋째 강 힛데겔과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설명하면서 에덴에서 나온 네 강의 구조를 거의 완성합니다. 힛데겔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앞의 두 강이 의지와 이해에 관계했다면, 이제 셋째와 넷째 강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까지 나타나면서 천적 인간 안에 있는 것들이 더욱 바깥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에 대한 설명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힛데겔은 이성이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각각의 의미보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성의 참된 명철함은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은 AC.115에서 처음 분명하게 등장한 유입의 설명을 한층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유입의 근원과 통로와 도착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이성이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99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질서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주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AC.118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이성적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거듭남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근원에서 생명을 받아야 할 겉 사람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기억지식을 부정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다시 보여 줍니다. 기억지식이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묘사되는 질서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같은 겉 사람의 능력에 이르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가장 바깥 경계에 놓입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장 바깥의 것을 근원으로 삼아 위의 질서를 거꾸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18AC.80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천적 인간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지식은 분명히 전체 질서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마음 역시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명철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성과 기억지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질서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속 사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118은 네 강에 관한 설명 가운데서도 유입의 방향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번호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적 마음과 기억지식이 실제로 있지만, 참된 명철함의 근원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의 강들은 천적 인간 안에 있는 여러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질서를 이루며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C.118)

 

 

 

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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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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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2:13)

 

AC.117

더욱이 구스 (land of Cush),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하며,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것은 위의 AC.113에서 인용한 60:6, 2:1, 11, 72:15 구절들에서도 분명합니다. Theland of Cush,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1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말씀에서 구스(Cush), 에티오피아(Ethiopia) 또한 스바(Sheba) 이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도 분명합니다. 스바냐에서는 구스의 강들(rivers of Cush) 언급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CushorEthiopia,and also bySheba,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rivers of Cushare mentioned:

 

5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다니엘에서는 북방 왕과 남방 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Ethiopians) 앎을 의미합니다. whereEgypt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Ethiopians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다음과 같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들도 마찬가지로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에 관하여, 따라서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하는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말씀은 앞뒤 구절과의 연결을 통해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질문들을 하고 향품과 금과 보석을 가져온 스바 여왕도 이와 같은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왕상10:1-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매 (왕상10:1, 2)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은 선지서들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안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해설

AC.117은 앞의 AC.116에서 구스 땅과 둘째 강 기혼에 부여한 의미를 말씀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확인합니다. AC.116에서 기혼은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의미했고, 구스 땅은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구스, 에티오피아, 스바가 등장하는 여러 말씀을 모아, 이 지명들이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과 관계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먼저 구스 땅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앞의 AC.113에서 금은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AC.114에서는 보석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향품은 선과 진리에서 나와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한 구스라는 자연적인 모습은 속뜻에서는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 풍부한 상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AC.116에서 구스와 기혼을 이해에 속한 앎과 연결한 배경입니다.

 

스바냐의 구스 건너편에서 예물을 가져온다는 말씀과 다니엘의 구스 사람들에 관한 말씀도 같은 흐름에서 인용됩니다. 특히 단11:43에 대한 해설은 주목할 만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애굽은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은 앎을 의미한다고 명시합니다. 이 둘을 같은 한국어로 옮겨 버리면 이 문장에서 의도한 차이가 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별해 온 기억지식은 단순한 번역상의 선택이 아니라,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스베덴보리의 서로 다른 개념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구별입니다.

 

27:22의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향품과 보석과 금을 가져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들이 마찬가지로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자연적인 부와 영적인 부가 서로 연결됩니다. 금과 보석과 향품이라는 귀중한 물품 자체가 속뜻의 목적은 아니며, 그것들을 통하여 선과 진리,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라는 천국의 부요가 표현됩니다. AC.117의 첫머리에서 말한 금과 보석과 향품의 풍부함이 이런 의미에서 이해됩니다.

 

72의 스바와 시바 왕들이 가져오는 예물도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 여왕의 이야기까지 연결합니다. 스바 여왕은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솔로몬에게 와서 향품과 금과 보석을 가져왔습니다. 이것 역시 단순히 한 여왕이 지혜로운 왕을 방문하여 귀중한 선물을 바친 역사적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들과 같은 영적인 내용을 의미하고 표상합니다.

 

AC.117의 마지막 문장은 이 때문에 특별히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도 선지서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에덴과 네 강, 하윌라와 구스 같은 지명들을 속뜻으로 읽는 것은 선지서의 시적 표현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해석법을 역사적 본문에 억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의 역사적 기록 자체가 그 문자적 이야기 안에 내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표상하며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역사적 부분의 문자적 의미가 아무 중요성도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117에서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부분에도 아르카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적 서술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영적인 의미를 함께 보게 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창2의 강과 땅과 금과 보석을 읽고 있는 방식 자체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결국 AC.117은 둘째 강 기혼과 구스에 관한 설명을 넘어, 말씀의 속뜻을 읽는 범위를 분명하게 해 줍니다. 구스와 스바, 금과 보석과 향품은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라는 내적 내용을 담아 표현하며, 그러한 의미는 선지서뿐 아니라 말씀의 역사적 기록에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혼과 구스에 관한 창2의 짧은 지리적 묘사도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이해에 속한 앎을 묘사하는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AC.117)

 

 

 

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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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 창2:13, ‘둘째 강 기혼 -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한다’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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