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93

이와 같이 평화의 평온을 부여받고, 비로 새롭게 되며, 악하고 거짓된 것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천적 인간의 상태를 주님께서는 에스겔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십니다.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thus gifted with the tranquility of peace—refreshed by the rain—and delivered from the slavery of what is evil and false, is thus described by the Lord in Ezekiel:

 

25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7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1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겔34:25-27, 31) I will make with them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beast to cease out of the land, and they shall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and sleep in the woods; and I will make them and the places round about my hill a blessing; and I will cause the rain to come down in his season; rains of blessing shall they be. And the tree of the field shall yield its fruit, and the earth shall yield its increase, and they shall be upon their ground in confidence, and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when I have broken the reins of their yoke, and delivered them out of the hand of those that make them to serve them; and ye my flock, the flock of my pasture, ye are a man, and I am your God (Ezek. 34:25–27, 31).

 

그리고 이것이 ‘셋째 날’(third day)에 이루어지며, ‘셋째 날’은 말씀에서 ‘일곱째’(seventh)와 같은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호세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And that this is effected on the “third day,” which in the Word signifies the same as the “seventh,” is thus declared in Hosea: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2, 3) After two days will he vivify us;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and we shall know, and shall follow on to know Jehovah: his going forth is prepared as the dawn, and he shall come unto us as the rain, as the late rain watering the earth (Hos. 6:2–3).

 

그리고 이 상태가 ‘들의 성장’(growth of the field)에 비유된다는 것을 고대교회에 관하여 말씀하는 에스겔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And that this state is compared to the “growth of the field” is declared by Ezekiel, when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겔16:7) I have caused thee to multiply as the growth of the field, and thou hast increased and hast grown up, and hast come to excellent ornaments (Ezek. 16:7).

 

또한 다음과 같은 것에도 비유됩니다. And it is also compared to: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사60:21) A shoot of the Lord’s planting, and a work of the hands of Jehovah God (Isa. 60:21).

 

해설

AC.93은 AC.90-92에서 설명한 천적 인간의 상태를 여러 선지서의 말씀으로 확증합니다. 앞에서는 싸움이 그치면서 평화의 평온이 오고, 그 평온이 ‘비’와 ‘안개’로 나타나며,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에게 생명이 흘러들어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이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이제 에스겔, 호세아, 이사야의 말씀 안에서 평화와 비, 땅과 들의 성장, 생명과 주님의 손으로 하신 일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먼저 겔34의 ‘화평의 언약’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매우 풍성하게 보여 줍니다. 악한 짐승이 그치고, 사람이 평안히 거하며, 복된 비가 내리고, 들의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냅니다. 또한 멍에가 꺾이고 종으로 삼던 자의 손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이것은 AC.93의 첫 문장이 말한 ‘악하고 거짓된 것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상태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평화는 단순히 위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악과 거짓의 지배에서 벗어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안에서 열매를 맺는 상태입니다.

 

특히 ‘복된 소낙비’는 앞의 AC.90-92와 직접 연결됩니다. AC.91에서는 ‘비’와 ‘안개’를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는 평화의 평온이라고 했고, AC.92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싸움의 그침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에서 비가 내리자 들의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소산을 내는 것은, 평화의 생명이 겉 사람에게 미쳐 거기에서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이 생명을 얻어 산출되는 앞의 설명을 성경 본문으로 보여 줍니다.

 

호6:2-3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상태가 ‘셋째 날’에 이루어지며,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셋째 날’이 ‘일곱째’와 같은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일곱째 날은 싸움이 그치고 주님께서 쉬시는 천적 인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에서도 셋째 날에 사람이 살아나고 일으켜져 주님 앞에서 살며, 주님의 나타나심은 새벽과 같고 비와 같이 임합니다. 따라서 셋째 날과 일곱째 날은 숫자 자체가 같다는 뜻이 아니라, 이 문맥에서 생명과 완성 및 새로운 상태에 들어감을 함께 가리키는 말씀의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호세아의 ‘새벽’은 AC.86에서 보류했던 설명과도 연결됩니다. 거기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안식일의 저녁’이라 하고, 천적 인간은 곧 설명할 ‘아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호세아에서는 주님께서 사람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것과 함께 그분의 나타나심이 ‘새벽빛’에 비유되고, 이어서 땅을 적시는 비가 나옵니다. 따라서 ‘아침’은 밤이라는 시간대가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나타나고 평화의 비가 내려 새로운 상태가 시작되는 것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AC.93은 ‘아침’의 상응을 독립적으로 정의하는 번호는 아니므로 그 이상의 세부 의미를 여기서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의 성장’과 ‘여호와께서 심으신 가지’, ‘여호와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이라는 표현들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앞의 관목과 초목이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서 산출되는 것이라는 설명과 연결되는 동시에, AC.88의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원리도 다시 확인합니다. 사람이 생명을 얻고 자라며 열매 맺는 모든 과정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AC.93에 인용된 여러 성경 구절은 서로 흩어진 증거 구절들이 아닙니다. ‘평화의 언약’, ‘복된 비’, ‘땅의 소산’, ‘셋째 날’, ‘새벽’, ‘들의 성장’, ‘주님의 심으심과 손으로 하신 일’이 모두 앞에서 설명한 천적 인간의 상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보여 줍니다. 싸움과 종살이가 그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생명이 겉 사람을 적시며, 그 생명으로부터 선과 진리가 자라나는 상태가 바로 여기서 묘사되는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AC.93 해설)

 

 

 

AC.92, 창2:5-6, '평화는 싸움의 그침만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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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92

싸움이 그칠 때, 곧 탐욕과 거짓으로 말미암은 불안이 그칠 때 겉 사람이 누리는 평화의 평온이 어떠한지는 평화의 상태를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너무나 즐거워서 즐거움에 관한 모든 관념을 뛰어넘습니다. 그것은 단지 싸움이 그친 상태만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때 평화의 즐거움에서 생명을 얻는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이 태어납니다. The nature of the tranquility of peace of the external man, on the cessation of combat, or of the unrest caused by cupidities and falsities, can be known only to those who are acquainted with a state of peace. This state is so delightful that it surpasses every idea of delight: it is not only a cessation of combat, but is life proceeding from interior peace, and affecting the external man in such a manner as cannot be described; the truths of faith, and the goods of love, which derive their life from the delight of peace, are then born.

 

해설

AC.92는 앞에서 말한 ‘평화의 평온’이 단순히 싸움이 끝난 뒤의 고요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탐욕과 거짓으로 말미암아 싸움과 불안이 있었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서 그 싸움이 그칩니다. 그러나 싸움이 없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평화의 본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평온이 어떠한지는 실제로 평화의 상태를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평화는 너무나 즐거워서 즐거움에 관한 모든 관념을 뛰어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매우 기분 좋은 감정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그 평화가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지 상태가 아니라 생명이 흘러나오는 상태입니다. 그 생명이 겉 사람에게 미치는데, 그 방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설명은 AC.91의 ‘비’와 ‘안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거기서는 평화의 평온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단순한 편안함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 사람은 단순히 싸움을 멈춘 것이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새로운 것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 결과 태어나는 것이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진리와 선이 평화의 즐거움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설명입니다. 진리와 선이 단지 사람의 기억 속에 있거나 지식으로 존재하는 것과, 실제 생명을 가진 상태는 같지 않습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 겉 사람에게 미치고, 그 평화의 즐거움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이 생명을 얻어 태어납니다.

 

따라서 AC.92의 평화는 싸움이 사라진 빈자리가 아닙니다. 탐욕과 거짓으로 말미암은 불안이 그친 자리에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 흘러들고, 그 생명이 겉 사람에게 미쳐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을 살아 있게 합니다. AC.90의 ‘평화의 평온’, AC.91의 ‘비와 안개’, 그리고 AC.92의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천적 인간의 안식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생명으로 충만한 상태인지를 보여 줍니다. (AC.92 해설)

 

 

 

AC.93, 창2:5-6, ‘평화의 언약과 복된 비, 셋째 날에 일으켜지는 천적 인간’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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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1, 창2:5-6,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길 때 싸움이 그친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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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91

그러나 사람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동안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 이 말씀들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도저히 퍼셉션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그러므로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AC.87 참조) 이 평온을 ‘비’(rain)와 ‘안개’(mist)가 뜻합니다. 그것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평온, 곧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이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과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이라 하는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rationalia et scientifica]입니다.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해설

AC.91은 앞에서 계속 말해 온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싸움이 그치며 평온이 뒤따릅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히 싸움이 없어졌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 설명은 AC.87에서 말한 싸움의 종결을 인간 내부의 질서라는 측면에서 보충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옴으로써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AC.91에서는 같은 변화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저항하는 동안에는 싸움이 있지만,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면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두 설명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을 보여 줍니다.

 

이제 AC.90에서 ‘비’와 ‘안개’를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 한 이유도 밝혀집니다. 그 평온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움직임의 방향입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은 AC.89에서 말했듯이 속 사람에서 시작하며, 여기서도 평온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흘러나와 겉 사람을 적십니다. 따라서 ‘비’와 ‘안개’는 싸움이 끝난 뒤 단순히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평화가 미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 평온은 또한 열매 없이 머물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을 산출한다고 하며,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라고 설명합니다. AC.90에서는 관목과 초목을 일반적으로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에게도 이성과 기억지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이제 그것들이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점은 AC.75에서 개요로 제시했던 내용을 회수합니다. 거기서는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1에서 왜 안개가 그것들을 적시는지, 그리고 그 관목과 초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성과 기억지식 자체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질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바로 서면서 겉 사람에 속한 이성과 기억지식도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온 가운데 새로운 상태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AC.91은 천적 인간의 안식과 평온을 인간 내부의 질서와 연결하는 중요한 번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아직 저항하기 때문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므로 싸움이 그칩니다. 그리고 그때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평온이 겉 사람을 적시며, 거기에서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 산출됩니다. 이것이 창2:5-6의 ‘비’, ‘안개’, ‘들의 관목’, ‘들의 초목’ 안에 깊이 감추어진 내용입니다. (AC.91 해설)

 

 

 

AC.92, 창2:5-6, '평화는 싸움의 그침만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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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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