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the faces of the ground, 地面)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상징한다는 것은 ‘지면(ground)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1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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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the faces of the ground, 地面)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상징한다는 것은 ‘지면(ground)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말씀에서는 ‘지면(ground)과 ‘(earth) 둘 사이 구분을 아주 정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면(ground)은 어디서 언급되든지 교회를 상징하거나 교회의 어떤 면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인간 이름의 기원인 ‘아담(Adam, man)인데, 이 아담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바로 ‘지면(ground)입니다. ‘(earth)은 말씀 여러 곳에서 교회가 없거나 교회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이 그 보기인데요, 거기 보면, 오직 ‘(earth)만 나옵니다. 아직 교회, 곧, 거듭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면(ground)은 2장에서 처음 언급됩니다. 그때는 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내용이 이곳과 다음 장에 나옵니다. 4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창7:4, 23) 이는 교회가 있었던 지역을 의미합니다. 같은 장 3절을 보면,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7:3) 이는 생겨날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지면(ground)은 말씀 어디서나 그 가리키는 바가 동일합니다. 이사야입니다. That by the “faces of the ground” is signified all that region where the church wa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ground”; for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made between “ground” and “earth”; by “ground” is everywhere signified the church, or something belonging to the church; and from this comes the name of “man,” or “Adam,” which is “ground”; by “earth” in various places is meant where there is no church, or anything belonging to the church, as in the first chapter, where “earth” only is named, because as yet there was no church, or regenerate man. The “ground” is first spoken of in the second chapter, because then there was a church. In like manner it is said here, and in the following chapter (Gen. 7:4, 23), that “every substance should be destroyed from off the faces of the ground,” signifying in the region where the church was; but in Gen. 7:3, speaking of a church about to be created, it is said, “to keep seed alive on the faces of the ground.” “Ground” has the same signification everywhere in the Word; as in Isaiah:

 

1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2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사14:1-2) Jehovah will have mercy on Jacob, and will yet choose Israel, and will set them upon their own ground, and the peoples shall take them, and shall bring them to their place, and the house of Israel shall inherit them on the ground of Jehovah, (Isa. 14:1–2)

 

이 말씀은 이미 형성된 교회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는 장소에 관해서는 같은 장 9, 12, 16, 20, 21, 25 및 26절에서 ‘(earth)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speaking of the church that has been made; whereas where there is no church it is in the same chapter called “earth” (Isa. 14:9, 12, 16, 20–21, 25–26).

 

9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6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리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21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 25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사14:9, 12, 16, 20-21, 25-26)

 

[2] 다시 Again:

 

17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18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사19:17-18) And the ground of Judah shall be a terror unto Egypt; in that day there shall be five cities in the land of Egypt speaking with the lip of Canaan, (Isa. 19:17–18)

 

유다의 ‘(ground)은 교회가 있는 곳, 애굽 ‘(land)은 교회가 없는 곳입니다. 같은 이사야에서 where “ground” signifies the church, and “land” where there is no church. In the same:

 

20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같이 흔들리며 21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사24:20-21) The earth shall reel to and fro like a drunkard; Jehovah shall visit upon the army of the height in the height, and upon the kings of the ground on the ground. (Isa. 24:20–21)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4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렘14:4-5) Because of the ground that is worn, because there was no rain on the earth, the husbandmen were ashamed, they covered their heads, yea, the hind also calved in the field, (Jer. 14:4–5)

 

(earth)은 ‘지면(ground)을 둘러싼 지역을, ‘지면(ground)은 ‘(field)을 둘러싼 지역을 각각 의미합니다. where “earth” is that which contains the “ground,” and “ground” that which contains the “field.”

 

[3] 같은 예레미야에서 In the same: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렘23:8) He brought the seed of the house of Israel from the northern land, from all the lands whither I have driven them, and they shall dwell on their own ground, (Jer. 23:8)

 

북쪽 ‘(land), 쫓겨났던 ‘나라(lands)는 교회가 없는 곳을, 자기 ‘(ground)은 교회나 참된 예배가 있는 곳입니다. 다시 where “land” and “lands” are where there are no churches; “ground” where there is a church or true worship. Again:

 

8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9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24:8-10) I will give the remains of Jerusalem, them that are left in this land, and them that dwell in the land of Egypt, and I will deliver them to commotion, for evil to all the kings of the earth, and I will send the sword, the famine, and pestilence among them, till they be consumed from off the ground which I gave to them and to their fathers, (Jer. 24:8–10)

 

(ground)은 교리와 거기서 나오는 예배를 상징합니다. 이사야 25장 5절 말씀도 같습니다. where “ground” signifies doctrine and the worship thence derived; and in like manner in the same prophet, chapter 25:5.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사25:5)

 

[4] 에스겔에서 In Ezekiel:

 

41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42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겔20:41-42) I will gather you out of the lands wherein ye have been scattered,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when I shall bring you again into the ground of Israel, into the land for which I lifted up my hand to give it to your fathers, (Ezek. 20:41–42)

 

이스라엘 ‘(ground)은 내적 예배를 상징합니다. 내적 예배가 없는 곳은 ‘나라(land)라고 합니다. 말라기에서 where “ground” signifies internal worship; it is called “land” when there is no internal worship. In Malachi: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3:11-12) I will rebuke him that consumeth for your sakes, and he shall not corrupt for you the fruit of the ground, nor shall the vine be bereaved for you in the field and all nations shall call you blessed, because ye shall be a delightsome land, (Mal. 3:11–12)

 

너희 ‘(land)은 컨테이너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토지(ground)가 교회, 혹은 교리를 가리킬 때, ‘(land)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where “land” denotes the container, and therefore it plainly denotes man, who is called “land” when “ground” denotes the church, or doctrine.

 

[5] 모세의 글에서 In Moses: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신32:43) Sing, O ye nations, his people, he will make expiation for his ground, his people, (Deut. 32:43)

 

이것은 분명히 이방인들의 교회를 상징하며, 그걸 가리켜 자기 ‘(ground)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 evidently signifying the church of the gentiles, which is called “ground.” In Isaiah: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사7:16) Before the child shall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 the ground shall be forsaken, which thou abhorrest in presence of both her kings, (Isa. 7:16)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ground will be forsaken)를 통해 교회, 혹은 신앙에 관한 참된 교리를 위해 준비된 땅이 황폐해질 것을 말하면서, 주님의 강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ground)과 ‘(field)이라는 말들은 곡식 심기와 연결되어 사용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사야에서처럼 말입니다. speaking of the advent of the Lord; that the “ground will be forsaken” denotes the church, or the true doctrine of faith. That “ground” and “field” are so called from being sown with seed is evident; as in Isaiah:

 

23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사30:23-24) Then shall he giv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halt sow the ground; the oxen also and the young asses that labor on the ground. (Isa. 30:23–24)

 

그리고 요엘입니다. And in Joel: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욜1:10) The field is laid waste, and the ground hath mourned, because the corn is laid waste. (Joel 1:10)

 

이런 걸 보면, 히브리말로 ‘아담(Adam)이라고 하는 ‘사람(man)은 ‘토지(ground)에서 왔으며,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ence then it is evident that “man,” who in the Hebrew tongue is called “Adam,” from “ground,” signifies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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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man)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 실제로 악하거나 부패했던 인류를 상징한다는 것이 다음 구절들을 보면 나옵니다.

 

1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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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man)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 실제로 악하거나 부패했던 인류를 상징한다는 것이 다음 구절들을 보면 나옵니다. That by “man” is here signified the race of mankind existing at that time, and indeed a race which was evil or corrupt, appears from the following passages: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3절)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verse 3)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5절) The evil of man was multiplied on the earth, and 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verse 5)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7절)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verse 7)

 

그리고 다음 장에서 and in the following chapter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7:21-22) All flesh died that crept upon the earth, and every man, in whose nostrils was the breath of the spirit of lives. (Gen. 7:21–22)

 

사람에 관하여는, 주님 홀로 사람이시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AC.49, 162) 그리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 혹은 천적 교회들을 일컬어 ‘사람(man)이라 합니다. (AC.477) Of man it has already been said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from him every celestial man, or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그래서 다른 모든 교회도 사람이라 이름하며, 그렇게 모든 사람 또한 그의 신앙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다 그를 짐승과 구별하여 사람이라 합니다. 리메인스 덕에 사람은 사람이라 이름하며, 리메인스, 곧 주님께 속한 이 리메인스가 있어 우리가 사람으로 불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이 전에 얼마나 악했든 지금 우리가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람은 리메인스가 없으면,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가장 고약한 짐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속한 리메인스가 아니면, 여전히 사람은 사람이 아니며, 짐승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AC.530, 560) Hence all of other churches are called men; and so is everyone, no matter of what faith, to distinguish him from the brutes. But still a man is not a man, and distinct from the brutes, except by virtue of remains, which are of the Lord. From these also a man is called man, and inasmuch as he is so called by reason of remains, which belong to the Lord, it is from him that he has the name of man be he ever so wicked, for a man is by no means man, but the vilest of brutes, unless he has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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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D1)-주일예배(2540, 눅18,15-17),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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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의 속뜻

 

 

15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18:15-17)

 

 

선은 그 안에 순진함이 있는 만큼 선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고, 순진함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結婚愛 414, 이순철 역) The reason why good is good insofar as innocence is within it is that all good is from the Lord, and innocence is to be led by the Lord. (CL.414)

 

 

주님께서는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전의 아이들은 지금과 많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고, 어린아이의 속뜻이 순진함, 이노센스(innocence)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먼저 15절입니다.

 

15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사람들이 주님이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린 아기는 순진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기를 데리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그 속뜻으로는, 사람들이 주님께 진리를 배우러 나올 때 순진한 마음으로 나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진리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주님이 자기의 아기를 만져주시기 원했습니다. 주님이 아기를 만지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주님이 순진한 마음 가운데로 오셔서 사람들과 교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순진한 마음으로 말씀을 가까이할 때, 주님께서 그 마음속으로 오셔서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아기를 만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말씀에서 주님의 제자는 보통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을 뜻하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주님을 잘못 믿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 거짓 교리를 만들거나, 또는 진리를 알면서도 행하지는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꾸짖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박해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순진한 사람들을 박해할까요? 순진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것에 따라 박해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예를 들면, 진리를 전혀 모르는 교회 밖의 사람들의 순진함이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들은 무조건 베푸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새 교회에서는 이런 걸 무지의 순진함이라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순진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참된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순진함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순진함이란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한 그것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을 거짓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질시하고 핍박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순진한 사람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 가령, 이런 아르카나, 말씀의 속뜻에 기반한 새로운 내용들을 전한다 하여 기존 기독교회, 개신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 여러 방법을 통해 괴롭히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순진함의 단계 내지는 유형은 다양한데요, 그래서 말씀에서는 아이를 젖먹이라 하기도 하고, 아기, 또는 어린아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젖먹이가 가장 순진한 것이고, 아기나 어린아이로 갈수록 그보다는 덜 순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6절입니다.

 

16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아이에 비유되는 순진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스베덴보리 저,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 414번 글에서는

 

선은 그 안에 순진함이 있는 만큼 선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있고, 순진함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즉 순진함이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인데, 그러므로 순진함이 없으면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럴 경우, 비록 겉보기엔 선처럼 보일지라도 그 선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이 아니므로 참된 선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의 사람이든 교회 밖의 사람이든 그들의 순진하고 선한 마음 안으로 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의 비밀’(天界秘義, Arcana Coelestia) 1059번 글에 의하면, 놀랍게도 주님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로 더 많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를 대적하지 않지만,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 당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왜곡해서 진리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3절 이하에서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3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눅13:23-30)

 

여기서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주님께 여쭙는 것은 ‘교회 안에 주님을 대적하는 자가 많은데 구원받을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중 된 자는 교회 밖의 타 종교 사람들을 뜻하고, 먼저 된 자는 교회 안에 있는 자로서 말씀을 왜곡한 자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 안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받기가 쉽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덮고 있는 지적 어둠은 주님에 의해 쉽게 걷히지만, 진리를 알면서도 더럽힌 자들은 그들을 덮고 있는 어둠이 걷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지요. 17절입니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순진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합니다.

 

※ 참고로,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천국을 떠받치는 두 키워드는 ‘순진함’(innocence)과 ‘평화’(peace)라고 합니다.

 

순진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281번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순진성(innocence)에 대해 천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순진성이 모든 선함의 본질이라는 것과, 선은 그 안에 순진성이 있을 때만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혜(wisdom)도 순진성이 있어야 지혜이며, 사랑(love), 이타심(charity), 신앙(faith)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순진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

 

선은 그 안에 순진함이 있어야 선이다. 모든 선은 주께로부터 오며, 순진함이란 주의 인도하심을 받기 원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말하기를, 오직 순진성에 의해서만 진리는 선에, 선은 진리에 결합될 수 있으므로 천사는 순진성이 있어야 천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선과 진리가 천국적 결혼으로 결합되지 않은 사람 안에는 천국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과 진리의 결합을 천국적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천국적 결혼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또 천사에게 들은 것은, 참된 결혼애는 순진성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참된 결혼애는 남편과 아내의 마음이 선과 진리의 결합 안에 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결합이 낮은 단계로 내려와 결혼애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는 각자의 마음이 사랑 안에 있는 만큼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결혼애에는 애들 같은 천진난만한 장난스러움이 있다고 했다. (천국과 지옥 281, 김은경 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진리 안에 들어온 우리들은 나름대로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진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이 진리를 택했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지금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타 종교나 타 교파의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주님께로 오는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 안에 있다고 우월감을 가지거나 다른 종교나 교파 사람들을 경시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영적 순진함을 잃어버리거나 시험에 들 수가 있습니다.

 

※ 아래 이야기는 이 설교의 원 저자이신 이순철 목사님의 에피소드입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미묘한 우월감을 갖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 중 한 분인 탄허 스님에 대한 강연이 있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연자에 의하면, 탄허 스님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 기독교 신학자보다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모두 외우고 이해하는데 자신은 3년이 걸렸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은 3개월이면 될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불교에 비해 기독교의 교리가 그만큼 깊이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서도 기독교와 동양의 유, 불, 선이 서로 회통(會通)해야 한다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탄허 스님에 대해 더 궁금해졌습니다. 강연하는 스님이 말하기를, 탄허 스님은 석가나 공자, 예수 같은 성인을 생각이 끊어진 자라고 정의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일까요?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는, 성인들은 우주 만물의 본질인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도 모두 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것을 아는 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새 교회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생각하는 자는 영적인 사람이고, 생각이 끊어진 자, 즉 생각하지 않고 바로 아는 사람은 천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천적인 사람은 천국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지각, 즉 퍼셉션(perception)을 통해 주님과 직접 소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삼라만상의 이치를 앉은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고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강연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밖에 있지 않고 사람 안에 있다고 할 뿐 모호하게 설명했습니다. 성경을 모두 이해했다는 탄허 스님이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만약 알았다면 예수님을 석가와 공자와 같은 성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믿어야 한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 모르는 존재를 왜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 모든 의문들을 주님께서는 직접 세상에 오심으로써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몸소 보여주시고, 음성을 들려주시며, 손으로 직접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새 교회의 진리를 통해 이제 누구나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가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진리를 믿고 따르는 일은 순진함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항상 순진함을 구하시기를 바라고, 주님이 주신 순진함으로 늘 자신과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6:30-34)

 

아멘

 

2022-01-0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04-2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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