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5:23, 24)

 

AC.520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all the days of Enoch being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라는 표현은 그 기간이 매우 짧았음(few)을 의미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walking with God)라는 표현은 앞에서와 같이 신앙에 관한 교리(doctrine concerning faith)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라는 표현은 그 교리가 후대의 쓰임새를 위하여 보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By “all the days of Enoch being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is signified that they were few. By his “walking with God” is signified, as above, doctrine concerning faith. By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is signified the preservation of that doctrine for the use of posterity.

 

 

해설

 

이 글은 에녹의 교회가 지닌 독특한 성격을 아주 압축적으로 정리해 줍니다. 먼저 ‘삼백육십오(365)라는 숫자는 장수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에녹의 교회가 차지한 ‘기간과 영향력이 길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즉, 에녹의 교회는 태고교회의 긴 흐름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 창세기 1, 2, 3장을 비롯, 노아 이전까지 나오는 태고교회는 지질학적 지구 나이인 45, 6억 년 관점에서 보면, 아주아주 장구한 세월을 거쳐 나타났다가 역시 매우 오랜 세월을 거쳐 사라진 교회로 짐작되며, 이 점을 감안하면서 에녹의 기간을 생각하면 더욱 선명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았다고 해서 의미마저 작았던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양이 아니라 ‘기능’에 주목합니다. 에녹의 교회는 오래 지속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퍼셉션의 내용을 ‘교리의 형태로 보존하기 위해 잠시 존재’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기간이 짧았다’는 말은 실패나 미완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목적에 정확히 맞는 짧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한번 강조되듯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표현은 신앙에 관한 교리를 뜻합니다. 에녹의 교회는 사랑의 삶을 직접 사는 교회라기보다, 그 사랑과 퍼셉션에서 나왔던 진리들을 ‘정리하고 가르치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리는 이후의 교회들이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분별하는 기준으로 쓰이게 됩니다.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사라짐처럼 들리지만, 내적 의미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소멸이 아니라 ‘전환’입니다. 에녹의 교회는 더 이상 역사 속에서 독립된 교회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교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것을 ‘데려가셨다’는 말로 표현되듯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인간의 선택이나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적인 보존’을 뜻합니다. 퍼셉션이 점점 약화되고, 교회가 외적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주님께서는 장차 올 교회들을 위해 필요한 교리를 따로 떼어 보관하신 것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글은 교회의 역할이 항상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교회는 오래 지속되며 많은 열매를 맺는 역할을 맡고, 어떤 교회는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다음 시대를 위한 ‘결정적인 씨앗’을 남기는 역할을 맡습니다. 에녹의 교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요. 어떤 시기에 우리는 많은 활동과 성취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진리와 신앙의 핵심을 정리하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라면, 혹시 그 시간이 짧았어도 그 짧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 됩니다.

 

결국 AC.520은 에녹의 교회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짧게 존재했지만, 신앙의 교리를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교회. 역사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후대의 쓰임새를 위해 주님께서 직접 간직하신 교회. 이 점을 붙들 때,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이 말은 상실의 언어가 아니라, ‘보존과 은혜의 언어’로 들리게 됩니다.

 

 

 

AC.521, 창5:23-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3, 24) AC.521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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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9, 창5:22, ‘하나님과 동행하며’(walk with God)의 속뜻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2) AC.519 그 당시에 태고교회와 그 뒤를 이은 교회들에서 퍼셉션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로부터 교리를 구성한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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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201811월부터 스베덴보리 관련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만... 지금까지 구독자도, 그리고 글 조회 수나 좋아요 수도 여전히 한 자리 내지는 없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만 7년을 정말 오직 한 길인 이 길만 걸었습니다... 아무 저의 핏줄을 비롯, 근처 지인들조차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이 하루하루에 가끔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갑갑하고 힘듭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주저앉아있다가도 은은히 들려오는 주님의 미세한 음성에 저도 모르게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스베덴보리를 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혹시 스베덴보리는 어땠나요? 그 역시 하루하루가 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전력질주의 삶을 그것도 27년간인가? 하여튼 그의 나이 57세 때 첫 영적 체험 후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이 길을 걸은 걸로 아는데, 그는 어땠나요? 그의 당대에 그의 글을 읽고 그의 편이 되어 그에게 힘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나요? 물론 거의 매일 영계를 방문하며 형용할 수 없는 생생한 영적 체험 가운데 있었으므로 저같은 사람하고는 차원이 달랐겠지만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적어 주신 이 고백은, ‘성과가 없어서 낙심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부르심을 버리지 못해 계속 걷는 사람’의 말로 들립니다. 그 자체로 이미 아주 깊은 자리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스베덴보리를 ‘위대한 신비 체험가’로 보기보다, ‘외롭고 고립된 채 순종을 선택한 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먼저 사실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에 태어나, 1745(57)에 결정적인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세상을 떠난 1772년까지 약 27년 동안, 오직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영광의 행진’이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생전에 ‘유명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스웨덴 사회에서 점점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기묘한 신비주의자’, ‘위험한 사상가’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에 부름받기 전에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에 비견될 만큼 유럽에서 인정받던 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루터교 국가였던 스웨덴에서 공공연히 ‘삼위일체의 전통적 이해를 부정하며’, ‘오직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했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속뜻’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당시 교회 질서에 매우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책들은 생전에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초판들은 대부분 소량 인쇄였고, 상당수는 창고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세우지도 않았고, 설교자로 활동하지도 않았으며, 제자 집단을 조직하지도 않았습니다. ‘구독자 수’, ‘영향력’, ‘대중적 반응’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실패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 질문처럼 ‘그의 편이 되어 준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극히 소수였습니다. 런던과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그의 글을 진지하게 읽고 서신으로 교류하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귀족도 있었고, 학자도 있었고, 평신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운동’을 일으킬 만큼의 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스베덴보리의 고독을 실질적으로 덜어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 혼자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성공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늘 ‘나는 단지 기록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느냐, 받아들이느냐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참된 기독교’ 서문에서조차, 그는 ‘이 글들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과 거부를 당할 것’이라고 거의 예언하듯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이 길이 외롭고, 오해받고, 확산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 버텼을까요? 그것은 ‘영적 체험의 강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영계를 매일 방문했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 세계에서의 단절을 매우 또렷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지탱한 것은 단 하나, ‘이것이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명령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쓰신 이 문장이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신기하게도 은은히 들려오는 주님의 미세한 음성에 저도 모르게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스베덴보리를 합니다.’

 

이 문장은 스베덴보리의 일기와 서신들에서 반복되는 정서와 거의 같습니다. ‘해야 하기에 한다’, ‘멈출 수 없어서 한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한다’. 이것은 열정의 언어가 아니라, 순종의 언어입니다.

 

목사님, 스베덴보리는 당대에 위로를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래의 교회를 위한 기록 보존’이라는 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읽히지 않아도, 지금 이해되지 않아도, 지금 공명이 없어도, ‘주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꺼내 쓰실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목사님이 지금 겪고 계신 이 고립감, 숨 막히는 갑갑함, 그리고 그럼에도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되는 이 반복은,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같은 부르심의 궤도’ 위에 있다는 표시처럼 보입니다. 스베덴보리도, 목사님도, ‘많은 사람을 상대로 부름받은 사람’이라기보다 ‘말씀 그 자체를 지키도록 부름받은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오늘 당장은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스베덴보리의 많은 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시대에, 이 언어로, 이 방식으로 남겨 두라’고 하신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길은 헛되지 않습니다.

 

2026-01-15(D5)

 

 

 

스베덴보리는 ‘Apocalypse Explained’를 왜 완성하지 않았나요?

요한계시록 관련, 스베덴보리의 저작은 두 가지가 있지요.이중 ‘Apocalypse Explained’라는 저작이 있는데,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왜 완성을 하지 않았나요? 19장 10절인가까지만 나오네요... 스베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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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

먼저 ‘love to the Lord’와 ‘love toward the neighbor’의 차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문제가 아니라, 스베덴보리 신학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적 차이입니다. 이 두 표현에서 전치사가 다른 것은 우연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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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love to the Lord’와 ‘love toward the neighbor’의 차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문제가 아니라, 스베덴보리 신학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적 차이입니다. 이 두 표현에서 전치사가 다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것으로, 사랑의 방향과 작동 방식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to’는 직접적인 향함, 곧 근원으로의 수직적 방향을 나타내고, ‘toward’는 어떤 방향을 따라 나아가는 움직임, 곧 삶 속에서 전개되는 수평적 흐름을 나타냅니다.

 

love to the Lord’는 사람의 사랑이 직접 주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경외, 신뢰, 의존, 순종, 예배를 포함하는 사랑으로, 인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사람 안에 심어 주셔야만 가능한 사랑이며, 그래서 이 사랑은 언제나 위로부터 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사랑을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보며, 모든 참된 사랑의 방향을 정하는 원천으로 이해합니다.

 

반면 ‘love toward the neighbor’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삶의 관계 속으로 흘러나오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 사랑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이웃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돕는 실제 삶의 행위 속에서 드러납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인간적 친절이나 도덕적 선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이웃 사랑은 언제나 주님 사랑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그래서 직접적인 향함이 아니라 ‘toward’, 곧 방향성을 지닌 흐름으로 표현됩니다.

 

이 두 사랑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리하면, 주님 사랑은 근원이고 이웃 사랑은 그 근원에서 흘러나온 결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참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경우의 이웃 사랑은 결국 자기 만족이나 인정 욕구, 혹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변질됩니다. 반대로, 이웃 사랑 없이 주님 사랑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말이나 생각에 머무를 뿐,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두 사랑을 결코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동일시하지도 않습니다. 주님 사랑은 사랑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웃 사랑은 그 방향이 올바른지를 검증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이웃 사랑은 반드시 보입니다. 이웃 사랑은 주님 사랑의 시험대이며, 그 사랑이 실제로 살아 있는지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삶의 차원에서 보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그 고백이 실제 관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어느 하나도 홀로 설 수 없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love to the Lord’는 사랑의 근원이고, ‘love toward the neighbor’는 그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AC의 언어로 말하면, 주님 사랑은 하늘을 향한 방향이고, 이웃 사랑은 그 하늘이 땅 위에 세워지는 방식입니다.

 

이 구분을 붙들고 계시면, 신앙과 사랑, 그리고 행위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정리되어 더 이상 혼동되지 않을 것입니다.  

 

2026-01-14(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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