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에서 가족끼리 ‘자주 만나는 경우’와 ‘드물게 만나는 경우’

영계에서는 누구와 자주 교류하고누구와는 특별한 때에만 만나고누구와는 거의 만나지 않게 되는가? 이것은 모두 내적 상태(state)에 의해 결정된다고 스베덴보리는 아주 일관되게 기록합니다. 지상처럼 거리, 약속, 시간이 결정 요인이 아닙니다. 천국이나 중간영계에서는 “영혼의 향방(향기)”이 곧 만남의 조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만남은 두 마음의 애정이 서로를 향해 열릴 때 이루어진다.” 이 원리로 인해 가족 간에도 자주 보는 경우와 드물게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1. 자주 만나는 가족 - ‘애정의 기운이 서로를 자연히 가까이하게 하는 경우’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여러 공동체에서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친척들이 자주 교류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이들이 자주 만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상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관계

지상에서 서로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아끼고, 도와주고, 영적 성장을 북돋아주는 관계였다면, 영계에서도 그 “향방”이 일치합니다. 영계에서 사랑은 방향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는 영혼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불러냅니다.


영적 친화성이 비슷한 경우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모두 신앙적으로 비슷한 깊이를 가진 경우, 형제자매가 모두 선한 본성을 유지한 경우, 남매가 서로의 삶을 도와주며 지낸 경우, 이들은 천국에서도 비슷한 층위의 공동체에 들어가며, 정기적으로 만나 삶을 나누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비슷한 선을 가진 이들은 천국에서 자주 교류한다.


서로의 영적 기쁨을 북돋아주는 관계

천국의 사람들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영적 기쁨이 더 밝아지는가?”를 아주 정확히 느낍니다. 그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자주 교류합니다. 가족 중에 이런 관계가 있었던 경우, 영계에서도 빈번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2. 드물게 만나는 가족 - “애정은 있지만 상태가 다를 때”

스베덴보리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만 영적 수준이 다르면 자주 만나기 어렵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결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서로 달라 애정이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둘의 영적 “공기”가 다를 때

스베덴보리는 자주 천국의 공기를 ‘선함의 향기’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주 깊은 천국적 신앙 단계인 반면, 아들은 비교적 외적 선의 단계라면, 둘은 서로를 보지만, 영적 호흡(affection)이 오래 합쳐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남은 가능하나 길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짧은 기쁨, 그러나 온전한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좋아하지만 정서의 깊이가 다를 때

어떤 가족은 지상에서 서로 사랑했지만, 영혼의 기질(애정의 종류)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천적(天的) 사랑’을 가진 유형(순전한 선)인 반면, 다른 사람은 ‘영적(靈的) 사랑’을 가진 유형(진리를 통한 선)일 경우,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만, 각자의 공동체로 돌아가야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만남은 특별한 일”처럼 반갑고 의미 있지만, 빈번한 일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명”이 다른 경우

천국 사람들은 각자 맡겨진 일, 주님과의 결합의 형태, 섬김의 방식이 다릅니다. 그 사명의 깊이에 따라 서로를 자주 만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남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천국의 사람들은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유 속에서 더욱 밝아진다.” 즉, 자주는 아니어도 항상 ‘열려 있는 관계’입니다.


3. 거의 만나지 않는 가족 - “영적 방향이 완전히 다른 경우”

이 경우는 “관계 단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서로 다른 애정은 서로를 향해 움직일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선한 삶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명예·자기애·세속적 욕망을 사랑했다면, 중간영계에서도 잠시 재회할 수는 있지만,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헤어집니다. 이때 천국인은 전혀 슬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인은 악을 향해 마음이 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국적 정서의 특징입니다.


4. 스베덴보리의 결론 – “자주 만남은 사랑의 친화성이고, 드문 만남은 자유의 표현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의 가족 관계를 이렇게 종합합니다. 자주 만나는 경우서로 비슷한 선이거나 비슷한 신앙, 그리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이거나 영적 공기가 비슷한 경우이고, 드물게 만나는 경우는 본질은 같으나 깊이가 다르거나, 서로를 사랑하지만 영역(사명)이 다른 경우 등 이럴 땐, 서로의 상태가 맞춰질 때만 만남이 허용된다. 그리고 거의 만나지 않는 경우는 본질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경우이거나 영적 방향성이 전혀 반대인 경우이다.


5.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메시지

스베덴보리는 이 내용을 정리하며, 아주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남깁니다. “사랑의 깊이는 영원히 기억되고, 각자의 거처는 영적 본질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만남의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즉, 가족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랑의 형태가 영계의 형태에 맞게 변형되어 가장 순전한 방식으로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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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수준, 즉 상태가 서로 다른 가족이 사후에 재회할 수 있는가?

스베덴보리는 영계를 왕래하면서 영적으로 다른 상태의 가족이 서로를 만나느냐”는 질문을 수백 명에게 받았고, 또 실제 장면들을 여러 번 보면서 그 답을 아주 정교하게 정리했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영적 수준, 즉 상태가 달라도 일시적 재회는 가능하다. 그러나 영원한 결합은 오직 영적 친화성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즉, 만남은 가능”, 그러나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가지를 매우 정확하게 구분했습니다.


1. 스베덴보리가 본 실제 장면 - “다른 수준에 살더라도, 사랑하면 찾아온다”

스베덴보리는 어느 남성과 어머니의 관계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아들은 지상에서 신앙을 진실하게 살았고, 천국의 한 공동체로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지상에서는 신앙을 고백했지만, 내적 삶은 그렇지 못해 중간영계에서 오랫동안 정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천국 공동체에 이미 소속된 상태였지만, 어머니가 중간영계의 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는 사랑의 인도하심으로 그곳에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기록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있는 곳에 곧바로 나타났고, 그녀는 즉시 아들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들이 “천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흐름이 그를 어머니의 상태로 ‘임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영계의 자연스러운 원리입니다.


2. 만남은 가능하지만, ‘함께 사는 것’은 영적 친화성에 달려 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사례를 관찰하면서 확인했습니다. 서로 다른 천국 층위에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맞출 수 있으면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수준 차이’가 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상태의 밀도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 사는 것(거처를 함께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선과 진리의 수준을 가진 이들과 자연히 함께 살게 된다.” 즉, 잠시 만나는 것은 사랑으로 가능, 그러나 영원한 결합은 본질(affectional state)에 따라 결정이 원리입니다.


3. 스베덴보리가 본 세 가지 재회 형태

스베덴보리는 수많은 재회 장면을 관찰한 뒤, 이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서로 사랑했지만 영적 수준이 달랐던 가족 - “일시적 재회는 가능”

예를 들면, 신앙적으로 깊이 살았던 자녀와 신앙이 얕았던 부모, 도덕적으로는 선했지만 신앙적으로는 약한 형제, 경건했던 배우자와 세속적이었던 배우자 등은 중간영계에서 충분히 서로를 만납니다. 이 만남은 지상에서의 감사, 못다한 대화, 사랑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후 각자 자기 본질에 맞는 천국의 공동체로 들어가면 영원한 동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슬픔이 없는 헤어짐”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간 영혼은 타인의 상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 수준이 상당히 비슷했던 가족 - “천국에서도 교류가 계속된다”

이 경우는 같은 종류의 선, 같은 방식의 신앙, 비슷한 내적 애정을 가진 가족입니다. 이들은 종종 천국에서도 서로 가까운 공동체에 들어가며, 정기적으로 서로 교류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가족은 천국에서 더욱 가까워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영적 친화성이 만들어내는 결합입니다.


지상에서는 가족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경우 - “만남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지상에서는 가족관계였지만, 한 사람은 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애·권력욕·증오를 사랑했다면, 이 둘은 중간영계에서도 서로를 자연스럽게 떠나게 됩니다. 이때의 ‘이별’은 지상적 슬픔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인은 악을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할 수 없다. 그 사랑은 천국의 사랑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4. 영적 수준이 달라서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사랑의 기억”은 존중된다

천국의 사람들은 지상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지상적 집착이 아니라 감사와 자비의 형태로 남습니다. 그가 나에게 해준 사랑이 있었다.”, 우리는 지상에서 함께 걸어갔다.”, 그때 나는 보호받았다.” 이런 기억은 천국에서 빛처럼 따뜻하게 반짝입니다. 그러나 왜 내 가족은 천국에 오지 않았는가?라는 슬픔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 슬픔을 남기는 기억은 주님이 제거하신다.


5. 결정적 통찰 - ‘영적 수준 차이’는 재회를 막지 않지만, ‘본질의 차이(사랑의 종류)’는 영원한 결합을 막는다

스베덴보리가 수천 건의 사례에서 얻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만나게 되고, 본질(선)은 함께 살게 한다. 그러나 악은 결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만남은 사랑에 의해, 결합은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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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가족 중 일부가 지옥에 간 경우 - 스베덴보리가 본 실제 관계

이 부분은 많은 성도들뿐 아니라 스베덴보리 자신도 깊이 고민했던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가족 중 일부가 신앙적으로 매우 다른 길을 걸었고, 그들의 사후 상태가 어떨지 진지하게 궁금해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계를 왕래하며 가장 먼저 확인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지옥에 있는 가족과 천국에 있는 가족은 서로 만날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두 세계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본질’(affection)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1. 스베덴보리가 본 실제 장면 – 서로를 보려고 하지만, 접근하지 못한다

스베덴보리는 지상에서 매우 친하게 지냈던 형제 둘을 관찰했습니다. 한 사람은 선한 삶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외적 신앙만 있었고, 내적으로는 자기애와 권력욕이 강해 결국 지옥으로 흘러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간 형제는 지상 기억으로 인해 한 번쯤 그를 찾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듯, 그는 순간적으로 희미한 인식을 통해 지옥에 있는 형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마음은 극도로 불편함을 느꼈고, 더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인은 지옥의 악을 참을 수 없다. 단지 악과 접촉하는 순간, 선한 사랑은 즉시 뒤로 물러난다.” 천국인은 보고 싶다는 자연적 마음이 잠시 일어날 수는 있지만, 지옥의 상태는 그 자체로 천국인의 영적 호흡을 막는 공기와 같기 때문에 결코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2. 지옥에 있는 가족은 천국 가족을 바라볼 수 있는가?

스베덴보리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위로 올려다본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계에서 위·아래가 공간 개념이 아니라 상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영들은 천국의 빛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인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은 선을 견디지 못하며, 선은 악을 가까이할 수 없다.” 따라서 지옥 가족이 천국에 있는 가족을 보고 싶어 한다지상적 상상은 영계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3. 그렇다면 ‘지상에서의 사랑’은 사라지는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부분을 매우 섬세하게 설명합니다. 천국 가족은 지상에서의 사랑을 잊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랑은 고통 없이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형태로 변합니다. 지옥 가족은 천국 가족을 자연적 기억으로는 기억하지만, 영적으로 사랑하거나 그리워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악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천국 가족이 지옥 가족을 보며 느끼는 마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슬픔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삶의 결과를 바라보는 조용한 연민이다. 천국에서는 결코 영원한 상실의 고통이라는 형태가 남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 고통을 제거하시기 때문입니다.


4. 천국 가족은 지옥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가?

지상에서는 기도가 가능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영계에서는 중보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최종 상태가 결정되면 그것은 본질(사랑의 형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의 과거 가족에 대한 부드러운 자비의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적 기억입니다. 고통이 아니라, 상대가 가엾다는 자비의 정서만 남습니다.


5. 스베덴보리의 결론 - 천국의 행복은 지옥 가족의 존재로 인해 전혀 흐려지지 않는다.

스베덴보리는, 어떤 영계 탐방자도 이 사실을 처음에 믿기 어려워했지만,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는 순간, 이 원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선한 사랑, 참된 이해, 완전한 평화가 마음을 채우기 때문에 지상식 감정인 ‘영원한 슬픔’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천국인은 지옥에 있는 가족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는다. 주님은 천국인에게 불행을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천국의 기쁨은 지옥에 있는 가족 때문에 흐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가 선택한 길’에 대한 조용한 연민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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