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창2:19-20)
142. ‘각종 들짐승’으로는 beasts 천적인 애정들을 celestial affections, ‘공중의 각종 새’로는 fowls of the heavens 영적인 애정들을 spiritual affections 각각 상징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하면, 전자는 의지와 관련된 것들을 things of the will, 후자는 사고력과 관련된 것들을 things of the understanding 각각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는 to bring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그로 하여금 그들의 퀄러티를 알도록 하시는 것이며 to enable him to know their quality,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는 his giving them names 그가 그들의 퀄러티를 알았다는 he knew it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께서 자기에게 이끄신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의 퀄러티에 관해 the quality of the affections of good and of the knowledges of truth that were given him by the Lord,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고유속성으로 기울어지려는 경향이 있고 still he inclined to his own, 이것을 앞서와 같은 용어들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입니다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143. 고대에는 인간의 애정들과 그런 비슷한 것들을 ‘짐승들’ beasts, ‘동물들’을 animals 가지고 표현했다고 말씀을 드리면 현대인들(18세기 중반, 1,750년대 즈음 유럽, 역주)은 아마도 무척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천적 사고들을 하고 있었고 but as the men of those times were in a celestial idea, 그런 것들은 영들의 세계에서는 in the world of spirits 동물들, 실제로 그런 것들과 닮은 동물들을 가지고 in fact by such animals as they are like 표현되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할 때는 무슨 다른 걸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when they spoke in that way they meant nothing else.
말씀에서도 짐승들이 언급되는 부분들이 무슨 다른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이든 세부적이든 말이지요. 선지서 전체가 그런 걸로 가득한데요, 그래서 각각의 짐승들이 특별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모르면 말씀에 들어있는 그 속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짐승들은 두 종류, 곧 악하거나 유해하든지, 그리고 선하거나 무해하든지 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짐승들은 선한 애정들을 good affections 상징하는데, 예를 들면, 양 sheep, 어린 양들 lambs, 비둘기들 doves 같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인간이 천적이거나 천적, 영적 인간이기 때문에 as it is the celestial, or the celestial spiritual man, 여기서는 이런 의미입니다. such are here meant.
보통 ‘짐승들’이 애정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beasts’ in general signify affections 앞서 주욱 보셨을 텐데요, 45번, 46번 글에서 몇몇 구절들을 가지고 확인했기 때문에 더 무슨 확인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요엘서입니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욜2:22)
다윗 또한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시73:22)
예레미야입니다. 거듭남을 다루는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렘31:27-28)
다음은 악한 짐승들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호2:18)
욥기에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욥5:22-23)
에스겔입니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겔34:25)
이사야는
장차 들짐승...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내어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43:20)
다시 에스겔입니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겔31:6)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영적인 사람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다윗입니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너희 용들과... ...과수와...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시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용들’ whales, ‘과수’ fruit tree, ‘짐승’ wild animal, ‘가축’ beasts, ‘기는 것’ creeping thing, ‘나는 새’ fowl 등 이것들이 사람 속 무슨 살아 있는 원리들, 사람을 구성하는 내면의 어떤 중요한 것들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결코 이렇게 진지하게 언급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가축’과 beasts ‘땅의 짐승’ 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과 beasts ‘들의 짐승’을 wild animals of the field 조심스럽게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안의 선들은 ‘가축’이라 beasts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이라 animals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에서도, 그리고 요한에서도 같습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7:11)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계19:4)
또한 자신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 생물, 생명이 있는 존재)’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재창조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40.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 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고유속성을 man’s own 의미한다는 것은 이 고유속성의 본성 및 이어지는 내용들로부터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는 own에 대한 원서 각주입니다. 라틴어 proprius에 대한 아주 정확한 번역이 own이며, 그뜻은 ‘...에 속한’, ‘...에게 배타적으로, 혹은 특별하게 속한’, ‘...에게 고유한’이라고 합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그렇지만 이 교회에 속한, 지금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사람에 관해 주님이 자비를 더하셔서 그에게 새로운 고유속성이 주어졌는데, was well disposed, an own was granted him, 이 속성이 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마치 원래부터 그 사람 본연의 타고난 속성처럼 보이는 it appeared as it were his own, 그런 것이었고, 그래서 일컫기를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라 하신 것입니다.
141. 인간의 고유속성을 그 본성으로 설명하고자 하면 about man’s own in describing its nature with 무수히 많은 사실들을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세 종류, 곧 육적, 세속적 인간, the corporeal and worldly man, 영적 인간 the spiritual man, 및 천적 인간이 the celestial man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육적, 세속적 인간에게는 그의 고유속성이 그가 가진 전부입니다. his own is his all, 그는 자기의 고유속성밖에는 아는 게 없고, 앞서도 언급했듯, 그는 마음에 상상하기를, 만일 자기한테서 이것이 사라지면 자기는 소멸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영적 인간의 경우 역시 비슷합니다. 비록 그가 주님은 만물의 생명이시고, 지혜와 사고력을 주시며, 그래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안다 할지라도 그에게 있어 이런 지식은 마음 속 신념이라기보다는 입술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is rather the profession of his lips than the belief of his heart.
그러나 세 번째, 천적 인간은 다릅니다. 그는 주님은 만물의 생명 되시는 분이시며,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을 그냥 압니다. discerns 그는 이런 사실을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for he perceives that it is really so. 그는 결코 자신의 고유속성이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어떤 고유속성이 그에게 주어지는데요, 주님으로 말미암는 이 고유속성은 an own is given him by the Lord,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퍼셉션과, 그리고 모든 행복과 결합된 그런 고유속성입니다.
천사들이 바로 이런 고유속성 가운데 있으며, the angels are in such an own, 그래서 동시에 가장 내적인 평화와 기쁨 가운데 있지요. 그들의 속성에는 주님의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며, for in their own are those things which are the Lord’s, 주님은 천사들의 이 속성을 다스리시거나 이 속성을 통해서 천사들을 인도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속성은 가장 천적인 것 그 자체입니다. 반면 육체적 인간의 고유속성이라는 것은 지옥적인 속성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다루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38. ‘혼자 사는 것’은 alone 사람이 주님에 의해 인도함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신 자아와 self 세상에 의해 인도함 받는 것을 더 원하는 desired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은 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본성을 man’s own 가리키는데, 이것을 가리켜 그 뒤에 ‘여자를 만드신 갈빗대’라 a rib built into a woman 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타고난 고유 본성과 이렇게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본성, 곧 여자로 표현된 본성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9. 고대에는 in ancient times 천적 인간들처럼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라 to dwell alone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악이나 악한 영들로 인한 들끓음, 분심(分心)이 없기 no longer infested by evils, or evil spirits. 때문입니다.
유대교회에서도 역시 이런 상태를 다른 민족들을 다 몰아내고, 그 땅에 홀로 거주하는 것으로 by their dwelling alone 표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씀에서는 종종 주님의 교회를 가리켜 ‘홀로’로 she is alone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렘49:31)
모세의 예언에도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홀로 있나니...(신33:28)
그리고 계속해서 발람의 예언에서는 더 분명하게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23:9)
여기 ‘여러 민족’은 nations 악을 말합니다.
이 태고교회의 후손은 홀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was not disposed to dwell alone, 즉, 천적 인간이 되려 하거나 그들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려고 하지 않고, 대신 유대교회처럼 여러 민족과 어울려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desired to be among the nations.
이들이 이런 삶을 원했기 때문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하신 것입니다.
이때의 ‘혼자 사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하세요.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은 이미 악 가운데 있으며, for he who desires is already in evil, 그건 그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it is granted him.
140.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 a help as with him 사람의 새로운 본성을 man’s own 의미한다는 것은 이 본성의 본질 및 이어지는 내용들로부터 both from the nature of this own, and from what follows.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내용
The Contents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교회의 후세, 후대의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성(本性, proprium)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which inclined to their own,
132. 인간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족해 하기 보다는 혼자 힘으로 세상의 인도함을 받거나 본성을 따라 살기를 더욱 원하는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존재들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인간에게 부여된 인간의 본성을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133. 그래서 먼저 그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주십니다. 이것들은 주님이 그에게 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19-20절)
134. 이런 이유로, wherefore 인간은 자기 본성이라는 상태 안으로 깊이 박혀 있으며,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그래서 그에게 어떤 또 하나의 본성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and an own is given him, 이 새로운 본성을 여자로 빚어지는 갈빗대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21-23절)
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본성과 붙어 있게 되고,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그렇게 해서 이 둘은 하나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24절)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순진함이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여전히 안 받아들여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25절)
속뜻
The Internal Sense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太古敎會, the most ancient church)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는 ‘사람(man, homo)’으로 회자되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이 교회의 후손과 그들이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지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125. ‘각종 나무를 먹는 것’은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퍼셉션(perceptin, 知覺)을 가지고 아는 것입니다. to know from perception what is good and true; 앞서 관찰한 것처럼 ‘나무’는 퍼셉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인들은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계시들로 말미암아 참 신앙의 지식들을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y means of revelations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대화하였고, they conversed with the Lord 천사들하고도 그랬습니다. 또한 비전들과 드림들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instructed by visions and dreams 이런 경험들은 그들에게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천상 낙원과도 같은 most delightful and paradisal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퍼셉션을 지속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속 고이 간직하고 있던 어떤 기억들이 생각날 때면 when they reflected on what was treasured up in the memory 그들은 그 기억들이 참이요, 선인지를 즉각적으로 지각했고, instantly perceived 만일 그 기억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when anything false presented itself, 그들은 그것을 피할 뿐 아니라 몸서리를 쳤습니다. even regarded it with horror; 이런 모습은 또한 천사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태고교회의 이런 퍼셉션이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로 대체되어 in place of 계승되었는데, succeeded 이 지식들은 선대에 밝혀진 것들과 the knowledge [cognitio]of what is true and good from what had been previously revealed, 나중엔 말씀 가운데 계시된 사실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from what was revealed in the Word.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122. ‘에덴 동산’은 이미 설명한 대로 천적 인간의 모든 것을 all things of the celestial man,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는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리게는 하셨으나 it is permitted him to enjoy all these things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는 못 하게 하셨다는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they are the Lord’s 때문입니다.
123. 천적 인간은 the celestial man 모든 것을 지각하여 he perceives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the Lord’s.
영적 인간은 the spiritual man 실제로는 같은 걸 인정하면서도 does indeed acknowledge the same 입으로만 합니다. with the mouth, 영적 인간은 말씀을 가지고 학습을 해서 알기 has learned it from the Word 때문입니다.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인간은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사실에 대한 정당한 인정도, 마지못한 인정도 안 합니다. 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it 자기가 가진 건 뭐든지 ‘이건 내 꺼야’라고 whatever he has he calls his own 하며, 만약 그걸 잃게 되면, were he to lose it, 자기는 완전히 망하는 거라고 he would altogether perish 생각합니다. imagines that
124. 지혜, 지성, 이성, 그리고 지식은 wisdom, intelligence, reason, and knowledge [scientia]사람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are not of man, but of the Lord 이것은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자신을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농부들에게 세로 준’ 집주인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마21:33)
요한복음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3-14)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3:27)
이것이 정말 그렇다는 것은 천국 아케이나에 관하여 아주 조금만 익힌 사람이면 who is acquainted with even a few of the arcana of heaven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120. ‘애굽’,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들, 그리고 그런 지식들로부터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을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상징합니다. 이런 사실은 말씀 가운데 선지서들, 예를 들면, 미가서 같은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미7:10-12)
그래서 선지자들은 주님의 오심에 관하여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말하면서 ‘애굽’과 ‘앗수르’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적 인간처럼 될 수 있게 하시려고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그를 도와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입니다.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렘2:18)
여기서 ‘애굽’과 ‘유브라데’는 같이 likewise 기억-지식들을,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합리적인 것들을 reasonings thence derived 상징합니다. 시편입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시80:8, 11)
여기 ‘강’은 the river Euphrates 감각적인 것과 기억에 속한 것을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상징합니다.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울타리가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바로 기억 지식이듯 the knowledge of the memory 유브라데 역시 앗수르 방향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이기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때문입니다. 아래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또한 같은 걸 가리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
위 두 경계는 같은 걸 상징합니다.
121. 천적 질서의 본성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혹은 생명의 일들은 어떻게 진행하는가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하는 것은 이들 강들 these rivers, 곧 ‘동방’이신 주님으로부터 시작, 먼저 지혜가 wisdom, 그리고 지혜를 통해 지성이 inelligence, 지성을 통해 합리, 이성이 reason, 끝으로 이 합리, 이성을 통해 기억 지식들이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생생해지는, 이런 순서로 진행하며, 이것이 바로 생명의 순서이며 the order of life, 이런 사람들이 바로 천적 인간들입니다. such are celestial men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the elders of Israel 천적 인간들을 표현하였고, 그래서 그들을 부르기를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신1:13, 15)로 wise, intelligence, and knowing 부른 것입니다.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신1:13, 15))
이런 이유로 법궤를 짠 브살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출35:31)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출36:1-2)
118. ‘힛데겔 강’은 사유(思惟), 혹은 총명하게, 통찰력 있게 사유하는 능력이며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앗수르’는 이성(理性)적인 마음, 합리(合理)적인 마인드입니다 the rational mind.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상징하는 것은 총명하게, 통찰력 있게 사유하는 능력이 주님한테서 출발, 속 사람을 거쳐 겉 사람에게 속한 합리적인 마인드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입니다. 최종단, 경계를 말합니다.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119. ‘앗수르’가 합리적인 마인드, 사람의 합리적인 면을 상징하는 것은 선지서들, 예를 들면, 에스겔을 보면 분명합니다.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고 분지(分枝)가 굵은 가지들 가운데 있는)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겔31:3-4)
‘레바논 백향목’은 합리, 이성을, ‘분지(分枝)가 굵은 가지들 가운데 있는’은 바로 이 약속 안에 있는 기억 지식들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23-25)
이 구절들과 다른 여러 곳에서 ‘애굽’은 기억-지식들을 memory-knowledges, ‘앗수르’는 합리성을 reason, ‘이스라엘’은 지성을 intelligence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