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창4:4)
350. 여기 ‘아벨’은 앞서와 같이 이웃 사랑(charity, 인애, 자선, 기부 등)을 상징합니다. ‘양의 첫 새끼’는 거룩한 것을 상징하는데, 이 거룩은 홀로 주님 한 분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천적(天的, the celestial) 그 자체를 상징하며, 이 역시 주님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는 이웃 사랑의 행위들과 이웃 사랑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들, 그래서 주님을 아주 기쁘시게 하는 예배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By “Abel” here as before is signified charity; and by the “firstlings of the flock” is signified that which is holy, which is of the Lord alone; by “fat” is signified the celestial itself, which also is of the Lord; and by “Jehovah looking unto Abel, and to his offering,” that the things of charity, and all worship grounded in charity, were well-pleasing to the Lord.
351. ‘아벨’은 앞서 보여드린 대로 이웃 사랑을 상징합니다. That “Abel” signifies charity has been shown before.
이웃 사랑은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를 의미합니다.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슬픔 중에 있는 이웃을 향해 마치 자신을 향해 연민을 느끼듯 느끼기 때문입니다. By charity is meant love toward the neighbor, and mercy; for he who loves his neighbor as himself is also compassionate toward him in his sufferings, as toward himself.
352. ‘양의 첫 새끼’가 홀로 주님 한 분에게 속한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표상 교회에서 첫 새끼 혹은 초태생(初胎生)은 모두 거룩했다는 사실을 보면 분명합니다. 그들은 주님과 관련되었는데, 주님은 홀로 ‘초태생’, ‘장자(長子)’이시기 때문입니다. That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ignify that which is of the Lord alone is evident from the firstlings or firstborn in the representative church, which were all holy, because they had relation to the Lord, who alone is the “firstborn.”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들이 ‘초태생’입니다.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are the “firstborn.”
모든 사랑은 주님의 것입니다. 요만큼의 사랑도 사람의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홀로 ‘초태생’이신 것입니다. All love is of the Lord, and not one whit of it is of man, therefore the Lord alone is the “firstborn.”
이것을 고대 교회들에서는 사람과 짐승 가운데 처음 난 것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This was represented in the ancient churches by the firstborn of man and of beast being sacred to Jehovah; (출13:2, 12, 15)
2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12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5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출13:2, 12, 15)
그리고 속뜻으로 사랑을 상징하는 레위 자손은, 속뜻으로 신앙을 상징하는 르우벤과 시므온의 뒤를 따라 셋째로 태어났음에도, 모든 초태생을 대신하여 받아들여졌고, 제사장직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and by the tribe of Levi, which in the internal sense signifies love—though Levi was born after Reuben and Simeon who in the internal sense signify faith—being accepted instead of all the firstborn, and constituting the priesthood. (민3:40-45; 8:14-20)
40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남자를 일 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41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2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계수하니 43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처음 태어난 남자의 총계는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더라 4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5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민3:40-45)
14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5네가 그들을 정결하게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16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초태생 곧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19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20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민8:14-20)
주님은 주님의 인성 관련, 장자(長子)이십니다. 그래서 시편에 기록되기를 Of the Lord as the firstborn of all, with respect to his human essence, it is thus written in David:
26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He shall call me, my Father, my God, and the rock of my salvation. I will also make him my firstborn, high above the kings of the earth. (시89:26-27)
그리고 계시록에도 And in John: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Jesus Christ the firstborn of the dead, and the prince of the kings of the earth. (계1:5)
예배의 장자는 주님을, 교회의 장자는 신앙을 각각 상징함을 잘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Observe that the firstborn of worship signify the Lord, and the firstborn of the church, faith.
353. ‘기름’은 천적(天的) 그 자체를 상징하는데, 이 천적이라는 것은 또한 주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By “fat” is signified the celestial itself, which is also of the Lord.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이 천적입니다. The celestial is all that which is of love.
신앙 또한 그것이 사랑으로부터 나올 때는 천적입니다. Faith also is celestial when it is from love.
이웃 사랑은 천적입니다. Charity is the celestial.
모든 이웃 사랑의 선도 천적입니다. All the good of charity is the celestial.
희생제물들 몸 안 여러 종류의 기름들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하나 구별하여 말씀드리면, 간 또는 태를 덮고 있는 기름, 콩팥 기름, 창자 위와 전체를 덮고 있는 기름인데요, 이 기름들은 거룩하였고, 단 위 번제로 드려지는 것들이었습니다. All these were represented by the various kinds of fat in the sacrifices, and distinctively by that which covered the liver, or the caul; by the fat upon the kidneys; by the fat covering the intestines, and upon the intestines; which were holy, and were offered up as burnt offerings upon the altar. (Exod. 29:13, 22; Lev. 3:3, 4, 14; 4:8–9, 19, 26, 31, 35; 8:16, 25)
13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22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것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라 (출29:13, 22)
3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14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레3:3-4, 14)
8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9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19그것의 기름은 다 떼어 제단 위에서 불사르되 26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제물의 기름 같이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31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35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떼낸 것 같이 떼내어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4:8-9, 19, 26, 31, 35)
16또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가져다가 모세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25그가 또 그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과 오른쪽 뒷다리를 떼어내고 (레8:16, 25)
그래서 이 기름들을 일컬어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레3:14, 16) 하였습니다. They were therefore called the “bread of the offering by fire for a rest unto Jehovah.” (Lev. 3:14, 16)
14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6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레3:14, 16)
같은 이유로 유대인들은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레3:17; 7:23, 25)라고 하는 이 말씀에 의해 모든 종류의 짐승 기름 먹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the Jewish people were forbidden to eat any of the fat of the beasts by what is called “a perpetual statute throughout your generations.” (Lev. 3:17; 7:23, 25)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3:17)
23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25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레7:23, 25)
이것은 교회가 천적인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적인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This was because that church was such that it did not even acknowledge internal, much less celestial things.
[2] ‘기름’이 천적인 것들과 이웃 사랑의 선들을 가리킨다는 것은 예언서들을 보면 분명한데요, 이사야입니다. That “fat” signifies celestial things, and the goods of charity, is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Wherefore do ye weigh silver for that which is not bread, and your labor for that which satisfieth not? Attend ye diligently unto me, and eat ye that which is good, and let your soul delight itself in fatness. (사55:2)
그리고 예레미야 And in Jeremiah: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I will fill the soul of the priests with fatness, and my people shall be satiated with my good, (렘31:14)
여기서 기름은 정말 지방 덩어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천적 영적 선을 가리킨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한데요, where it is very evident that fatness is not meant, but celestial spiritual good.
그래서 시편입니다. So in David:
8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They are filled with the fatness of thy house, and thou makest them drink of the river of thy deliciousnesses. For with thee is the fountain of lives; in thy light we see light. (시36:8-9)
여기 ‘살진 것’, ‘생명의 원천’은 천적인 것, 곧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을, ‘복락의 강물’과 ‘빛’은 영적인 것, 곧 사랑으로 말미암은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을 각각 가리킵니다. Here “fatness” and the “fountain of lives” signify the celestial, which is of love; and the “river of deliciousnesses,” and “light,” the spiritual, which is of faith from love.
다시 시편입니다. Again in David: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My soul shall be satiated with marrow and fatness, and my mouth shall praise thee with lips of songs, (시63:5)
여기도 같습니다. ‘기름’은 천적인 것을, ‘기쁜 입술’은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where in like manner “fat” denotes the celestial, and “lips of songs” the spiritual.
이것이 천적인 걸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이유는 그것이 영혼을 아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That it is what is celestial is very evident, because it will satiate the soul.
같은 이유로, 땅의 첫 소산인 첫 열매들을 가리켜 ‘기름’(민18:12)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For the same reason the first fruits, which were the firstborn of the earth, are called “fat.” (Num. 18:12)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민18:12)
[3] 천적인 것들은 도저히 셀 수 없는 속(屬, genera)으로, 그리고 더욱 더 종(種)으로 세분되기 때문에, 모세가 백성 앞에서 말하여 낭송한 노래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습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of innumerable genera, and still more innumerable species, they are described in general in the song which Moses recited before the people: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Butter of kine, and milk of the flock, with fat of lambs and of rams, the sons of Bashan, and of goats, with the fat of the kidneys of wheat; and thou shalt drink the blood of the grape, unmixed. (신32:14)
이 구절의 속뜻을 모르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 표현들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know the signification of these expressions except from the internal sense.
속뜻을 모르면, 위 구절의 표현들, ‘소의 엉긴 젖’, ‘양의 젖’, ‘어린 양의 기름’,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 ‘지극히 아름다운 밀’, ‘포도즙의 붉은 술’은 그저 단어의 나열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럴지라도 이 표현들은 그 전체로나 각각으로나 천적인 것들의 속과 종, 곧 모든 체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Without the internal sense, such expressions as the “butter of kine,” the “milk of sheep,” the “fat of lambs,” the “fat of rams and goats,” the “sons of Bashan,” the “fat of the kidneys of wheat,” and the “blood of the grape,” would be words and nothing more, and yet they all and each signify genera and species of celestial things.
354.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다’는 것이 이웃 사랑에 속한 것들, 곧 선행과 이에 기반한 모든 예배가 주님을 무척 기쁘시게 함을 가리킨다는 것은 앞에 ‘아벨’과 ‘제물’에 대한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That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signifies that the things of charity, and all worship grounded therein, are pleasing to the Lord, has been explained before, as regards both “Abel,” and his “offering.”
366. As heaven is from the human race, and angels therefore are of both sexes, and from creation woman is for man and man is for woman, thus the one belongs to the other, and this love is innate in both, it follows that there are marriages in heaven as well as on the earth. But marriages in heaven differ widely from marriages on the earth. herefore what marriages in heaven are, and how they differ from marriages on the earth and wherein they are like them, shall now be told.
367. Marriage in heaven is a conjunction of two into one mind. It must first be explained what this conjunction is. The mind consists of two parts, one called the understanding and the other the will. When these two parts act as one they are called one mind. In heaven the husband acts the part called the understanding and the wife acts the part called the will. When this conjunction, which belongs to man’s interiors, descends into the lower parts pertaining to the body, it is perceived and felt as love, and this love is marriage love. This shows that marriage love has its origin in the conjunction of two into one mind. This in heaven is called cohabitation; and the two are not called two but one. So in heaven a married pair is spoken of, not as two, but as one angel.(각주241)
각주241. It is not known at this day what marriage love is, or whence it is (n. 2727).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창4:3)
346. ‘세월이 지난 후에’는 시간의 경과를; ‘땅의 소산’은 이웃 사랑이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은 그런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각각 의미합니다. By the “end of days” is meant in process of time; by the “fruit of the ground,”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nd by “an offering to Jehovah,” worship thence derived.
347. ‘세월이 지난 후에’가 시간의 경과를 상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That by the “end of days” is signified in process of time, is evident to all.
처음에는, 그리고 아직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을 때는, 여기 ‘가인’이라 부르는 교리가 그렇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자녀를 ‘여호와로 말미암았다’ 한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At first, and while there was simplicity in it, the doctrine here called “Cain” does not appear to have been so unacceptable as it became afterwards, a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y called their offspring a “man Jehovah.”
그래서 처음엔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세월이 지난 후에’, 혹은 시간이 그만큼 흐른 것으로 표현해야 할 만큼 그 정도로 분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참 신앙의 교리들이 다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Thus at first faith was not so far separated from love as at the “end of days,” or in process of time; as is wont to be the case with every doctrine of true faith.
348. ‘땅의 소산’이 이웃 사랑이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또한 다음과 같이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웃 사랑이 전혀 없는 신앙으로 한 행위들은 절대로 신앙의 행위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그저 겉 사람의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That by the “fruit of the ground” 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예레미야에 이런 것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렘12:1-2, 4)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는 이웃 사랑과 분리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이 땅이 슬퍼하며’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 “the land mourns.”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일들을 일컬어 ‘그의 행실대로’라 하고 있습니다.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 “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렘17:9-10)
미가서에서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미7:13)
이런 ‘열매’는 아무 열매도 아니며, 이런 ‘행위’는 죽은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열매와 뿌리 둘 다 진멸된다는 선언이 아모스서에 나옵니다. That such “fruit” is no fruit, or that the “work” 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 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암2:9)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시21:10)
그러나 이웃 사랑의 행위들은 살아 있으며, 이런 행위들에 관하여, 이사야에 보면,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 선포되고 있습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사37:31)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는 이웃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To “bear fruit upward” is to act from charity.
같은 예언서에서, 그런 열매를 일컬어 ‘영화로운 소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Such fruit is called the “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사4:2)
그것은 또한 ‘구원의 열매’이며, 같은 예언서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It is also the “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사45:8)
349. ‘제물’이 예배를 의미한다는 것은 유대 교회의 표상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유대 교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희생제물들 및 땅의 첫 열매들과 그 모든 소산물, 그리고 초태생(初胎生)의 봉헌물 등을 가리켜 ‘제물들’이라 하였고, 그들의 예배는 이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That by an “offering” is meant worship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ves of the Jewish church, in which sacrifices of every kind, as well as the first fruits of the earth and of all its produce, and the oblation of the firstborn, were called “offerings,” in which their worship consisted.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천국의 어떤 것들을 표현하며, 모든 것이 주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사실은, 참 예배는 이런 제물들로 상징된다는 사실입니다. And as they all represented heavenly things, and all had reference to the Lord, it must be obvious to everyone that true worship was signified by these offerings.
어떤 표상이라고 하면서 정작 표현하는 게 없거나, 어떤 겉보기에 종교이면서 정작 무슨 내적인 건 없고 대신 무슨 우상이나 죽음에 관한 것만 있다면 그게 무슨 표상이며, 그게 무슨 종교인가요? 겉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속, 곧 주님으로부터 속을 통해서 공급된 생명입니다. For what is a representative without the thing it represents? Or what is an external religion without an internal but a kind of idol and a thing of death? The external has life from things internal, that is, through these from the Lord.
이런 고찰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표상 교회의 모든 제물은 주님을 향한 예배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우리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From these considerations it is evident that all the offerings of a representative church signify the worship of the Lord; and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reat in particular in the following pages.
‘제물들’이 보통은 예배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예언서들 전반을 보면, 특히, 말라기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by “offerings” in general is meant worship, is evident in the prophets throughout, as in Malachi:
2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Who shall abide the day of his coming? He shall sit 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he shall purify the sons of Levi, and purge them as gold and silver, and they shall offer unto Jehovah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Then shall the offering of Judah and of Jerusalem be pleasant unto Jehovah, as in the days of eternity, and as in ancient years. (말3:2-4)
‘공의로운 제물’은 내적 제물이며, ‘레위 자손’, 곧, 거룩한 예배자들이 드릴 것입니다.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is an internal offering, which the “sons of Levi,” that is, holy worshipers, will offer.
‘옛날’은 태고 교회를, ‘고대’는 고대 교회를 각각 상징합니다. The “days of eternity,” signify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e “ancient years,” the ancient church.
에스겔에서 In Ezekiel: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In the mountain of my holiness, in the mountain of the height of Israel, there shall all the house of Israel, all that land, worship me; there will I accept them, and there will I require your oblations, and the first-fruits of your offerings, in all your sanctifyings. (겔20:40)
‘예물’과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웃 사랑으로 행해진 신성한 행위와 똑같은 것입니다. “Oblations” and the “first fruits of the offerings in the sanctifyings” are likewise works sanctified by charity from the Lord.
스바냐에서 In Zephaniah: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From beyond the rivers of Ethiopia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습3:10)
‘구스’는 하늘에 속한 것들, 곧, 사랑, 이웃 사랑 및 이웃 사랑으로 행한 선행들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Ethiopia” denotes those who are in possession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love, charity, and the works of charity.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창4:2)
341. 교회의 두 번째 자녀는, ‘아우’,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입니다; ‘양 치는 자’가 가리키는 것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고;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signified by “Abel” and “brother”; a “shepherd of the flock” denote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and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342. 교회의 두 번째 자녀가 체어리티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합니다. 즉, 교회는 신앙과 체어리티 말고는 잉태하고 해산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That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s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chur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nothing else than faith and charity.
레아가 야곱에게서 낳은 첫 자녀들 역시 같은 것을 상징합니다; ‘르우벤’은 신앙을; ‘시므온’은 행하는 신앙을; 그리고 ‘레위’는 체어리티를 각각 가리키며, 이런 이유로, 레위 지파는 제사장직을 받아 ‘양 치는 자’임을 나타냈습니다. The same is signified by the first children of Leah from Jacob; “Reuben” denoting faith; “Simeon,” faith in act; and “Levi,” charity (Gen. 29:32, 33, 34), wherefore also the tribe of Levi received the priesthood, and represented the “shepherd of the flock.”
32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29:32-34)
체어리티가 교회의 두 번째 자녀이므로, 부르기를, ‘아우’라 하고, 이름하여 ‘아벨’이라 하는 것입니다. As charity is the second offspring of the church, it is called “brother,” and is named “Abel.”
343. ‘양 치는 자’는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데요, 이것은 신구약 말씀에 나오는 하나의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is one who exercises the good of charity, must be obvious to everyone, for this is a familiar figure in the Word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s.
인도하고 가르치는 자를 ‘목자’라 하고, 인도를 받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양 떼’라 합니다. He who leads and teaches is called a “shepherd,” and those who are led and taught are called the “flock.”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도,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지도 않는 자는 참 목자가 아니며, 선으로 인도함을 받지도, 선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는 자는 양 떼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He who does not lead to the good of charity and teach it, is not a true shepherd; and he who is not led to good, and does not learn what is good, is not of the flock.
굳이 말씀에서 무슨 구절들을 대대적으로 인용하면서까지 ‘목자’와 ‘양 떼’가 상징하는 것을 확실히 하려고 애쓸 필요는 거의 없습니다. 다음 몇 구절들 정도면 되지 싶습니다. It is scarcely necessary to confirm this signification of “shepherd” and “flock” by quotations from the Word; but the following passages may be cited.
이사야에서: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The Lord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owest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사30:23)
여기,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 체어리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where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denotes charity.
계속해서: Again: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The Lord Jehovih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shall gather the lambs into his arm, and carry them in his bosom, and shall gently lead those that are with young. (사40:11)
시편에서: In David: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Give ear, O Shepherd of Israel, thou that leadest Joseph like a flock; thou that sittest on the cherubim, shine forth. (시80:1)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I have likened the daughter of Zion to a comely and delicate woman; the shepherds and their flocks shall come unto her, they shall pitch tents near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렘6:2, 3)
에스겔에서: In Ezekiel:
3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ih, I will multiply them as a flock of man, as a hallowed flock, as the flock of Jerusalem in her appointed times; so shall the waste cities be filled with the flock of man. (겔36:37–38)
이사야에서: In Isaiah: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All the flocks of Arabia shall be gathered together unto thee, the rams of Nebaioth shall minister unto thee. (사60:7)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양 떼를 모으는’ 자들인 반면, 양 떼를 체어리티의 선으로 인도하지 않는 자들은 ‘양 떼를 흩는’ 자들입니다. 모두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의 일이요, 모두를 흩어 하나가 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체어리티가 결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y who lead the flock to the good of charity are they who “gather the flock”; but they who do not lead them to the good of charity “scatter the flock”; for all gathering together and union are of charity, and all dispersion and disunion are from want of charity.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지식 [코그니시오],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이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모든 신앙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지 않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345. ‘‘농사하는 자’는 체어리티가 전혀 없는, 하지만 신앙은 신봉 수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사람의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으로, 이런 건 아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신앙입니다.’ 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가인의 제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가 그의 동생을 죽인 것, 즉, ‘아벨’로 상징된 체어리티를 파괴한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tiller of the ground” is one who is devoid of charity, however much he may be in faith separated from love, which is no faith, is evident from what follows: that Jehovah had no respect to his offering, and that he slew his brother, that is, destroyed charity, signified by “Abel.”
‘땅을 간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육(肉)적, 세속적인 것들에 시선을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창세기 3장 19절과 23절에,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ose were said to “till the ground” who look to bodily and earthly things, as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in Gen. 3:19, 23, where we read that the man was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19, 23)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창4:1)
338.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태고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첫 자식, 처음 난 자녀가 신앙이며, 여기서는 ‘가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가 상징하는 것은, ‘가인’이라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By the “man and Eve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s has been made known; its first offspring, or firstborn, is faith, which is here called “Cain”; her saying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ies that with those called “Cain,” faith wa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339. 앞선 세 장에서, 지금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충분히 보여드렸던 것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태고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면서 이제 분명한 것은, 이 태고 교회의 영향을 받은 임신 및 출생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온 본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In the three foregoing chapters it has been sufficiently shown that by the “man and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so that it cannot be doubted, and this being admitted, it is evident that the conception and the birth effected by that church were of the nature we have indicated.
이름을 주고, 이름을 가지고 사물을 상징하고, 그런 식으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는 것은, 태고인들에게는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It was customary with the most ancient people to give names, and by names to signify things, and thus frame a genealogy.
태고 교회와 관계된 것들도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대대로 하나는 잉태하고, 다른 하나는 해산하고 하였습니다. For the things of the church are related to each other in this way, one being conceived and born of another, as in generation.
그래서 말씀에서 교회와 관계된 것들을 일컬어, ‘잉태’, ‘해산’, ‘자녀’, ‘유아’, ‘어린이’, ‘아들’, ‘딸’, ‘젊은이’ 등으로 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Hence it is common in the Word to call things of the church “conceptions,” “births,” “offspring,” “infants,” “little ones,” “sons,” “daughters,” “young men,” and so on.
말씀 중 예언서들에서 이런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The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abound in such expressions.
340. 본문,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상징이, ‘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을 체어리티와 별개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음이라는 것은, 이 장을 처음 시작할 때 드린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words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y that with such as are called “Cain” faith i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t the beginning of this chapter.
전에, 그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 무지한 듯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퍼셉션이라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것을 지각했기 때문입니다. Previously, they had been as it were ignorant of what faith is, because they had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of faith.
그러나 그들이 신앙의 교리를 뚜렷이 구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퍼셉션으로 알던 것들을 가져다가 교리화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전에는 심비(心碑)에 저절로 새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But when they began to make a distinct doctrine of faith, they took the things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reduced them into doctrine, calling it “I have gotten a man, Jehovah,” as if they had found out something new; and thus what was before inscribed on the heart became a mere matter of knowing.
고대에 그들은 모든 새로운 것에 어떤 이름을 주었고, 이런 식으로 그 이름들에 들어있는 것들을 설명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ey gave every new thing a name, and in this way set forth the things involved in the names.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창16:11)를 상징하며, Thus the signification of the name Ishmael is explained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her affliction;” (창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창29:32)를, that of Reuben, by the expression, “Jehovah hath looked upon my affliction;” (창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32)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창29:33), the name Simeon, by the saying, “Jehovah hath heard that I was less dear;” (창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29:33)
유다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29:35)를, and that of Judah by, “This time will I praise Jehovah;” (창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그리고 모세가 세운 제단을 가리켜 ‘여호와 닛시’(출17:15),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 하였습니다. and an altar built by Moses was called, “Jehovah my banner.” (출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17:15)
이런 식으로 여기 신앙의 교리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또는 ‘가인’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In like manner the doctrine of faith is here denominated “I have gotten a man, Jehovah,” or “Cain.”
337. 이번 장이 태고 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 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해’는 사랑을 상징하며, ‘달’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 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 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 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 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창4)
내용
THE CONTENTS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나중에 새롭게 일어난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325. 태고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사랑과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이름하여 ‘가인’이라 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사랑)를 이름하여 ‘아벨’이라 하였습니다.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1-2절)
326.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과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라 하고,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를 ‘아벨의 제사’라 합니다.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3-4절)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있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없었습니다.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4-5절)
327.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의 상태는 악하게 되었는데요,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5-6절)
328.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는 체어리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 하고 싶어하므로,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7절)
329.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8-9절)
330. 사라진 체어리티를 ‘핏소리’로, 왜곡된 교리를 ‘땅에서 저주를’로,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10절);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11절);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12절)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13-14절)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이식되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15절)
그리고 그것의 본래 지위에서 쫓겨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16절)
331.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을 가리켜 ‘에녹’이라 합니다.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17절)
332.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18절)
333. 그후에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는데요, 이것이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입니다. 이 새롭게 일어난 교회를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야발’로, 영적인 것들을 ‘유발’로,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19-22절)
334.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일어난 이 교회, 그리고 이 교회에 일어났던 폭동과, 이 폭동으로 신성이 가장 심각하게 더럽힘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23-24절)
335.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고,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체어리티가 새롭게 이식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This faith is called “Seth.” (25절)
336.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26절)
320. 영이 된다는 것, 이제 막 영이 되었을 때 어떤 생활이 시작되는지에 관해, 일반적으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사람은 저 세상에 들어온 처음에는 자기가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대신 자기는 아직도 이 세상에 있는 줄로, 자기는 여전히 몸 안에 있는 줄로 안다는 사실입니다. With regard to the general subject of the life of souls, that is, of novitiate spirits, after death, I may state that much experience has shown that when a man comes into the other life he is not aware that he is in that life, but supposes that he is still in this world, and even that he is still in the body.
이런 경우가 참 많은데요, 사람은 그러다가 자기가 영이라는 말을 들으면 크게 놀라며 경악해 합니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데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보기에 자기는 너무나도 사람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감각들도, 욕구들도, 그리고 생각들도 말이지요. 또 하나는, 그가 세상 살 동안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So much is this the case that when told he is a spirit, wonder and amazement possess him, both because he finds himself exactly like a man, in his senses, desires, and thoughts, and because during his life in this world he had not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or, as is the case with some, that the spirit could be what he now finds it to be.
321. 이제 막 영이 되었을 때, 일반적인 그 두 번째 모습은, 영은 훨씬 더 탁월해진 감각 능력들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에 있어 훨씬 더 월등해지는데요, 그가 몸 안에 살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 능력들이 됩니다. 그래서 이 두 상태, 곧 몸 안에서 지냈을 때와 몸을 벗고 영이 되었을 때는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능력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영들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로 숙고(熟考)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A second general fact is that a spirit enjoys much more excellent sensitive faculties, and far superior powers of thinking and speaking, than when living in the body, so that the two states scarcely admit of comparison, although spirits are not aware of this until gifted with reflection by the Lord.
322. 영들은 몸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정교한 감각들을 갖지 못한다는 거짓 관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Beware of the false notion that spirits do not possess far more exquisite sensations than during the life of the body.
저는 수천번 반복된 경험을 통해 오히려 사실은 정반대임을 알고 있습니다. I know the contrary by experience repeated thousands of times.
영의 본성에 관한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이런 거 믿는 걸 영 껄끄러워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저 세상에 올 때, 이런 사실들을 안 믿을 수가 없는 그런 곳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합니다. Should any be unwilling to believe this, in consequence of their preconceived ideas concerning the nature of spirit, let them learn it by their own experience when they come into the other life, where it will compel them to believe.
처음 장소에서 영들은 시력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빛 가운데 살기 때문이며, 선한 영들, 천사 같은 영들, 그리고 천사들은 지상 정오의 빛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은 빛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In the first place spirits have sight, for they live in the light, and good spirits, angelic spirits, and angels, in a light so great that the noonday light of this world can hardly be compared to it.
그들이 지내게 될, 그리고 보게 될 이 빛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The light in which they dwell, and by which they see,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영들은 또한 듣는데요, 이 듣기 또한 얼마나 뛰어난지 몸에 있을 때 가졌던 청력하고는 정말이지 비교가 안 됩니다. Spirits also have hearing, hearing so exquisite that the hearing of the body cannot be compared to it.
수 년 간 그들은 정말 계속해서 저랑 얘길 했는데요, 그들의 스피치에 관해서도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For years they have spoken to me almost continually, but their spee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described hereafter.
그들은 냄새도 맡을 수 있으며, 이 또한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They have also the sense of smell, which also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treated of hereafter.
그들은 가장 예민한 촉감 또한 갖고 있는데요, 그래서 예를 들면, 지옥에서 견뎌야 하는 아픔들과 고통들이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모든 감각은 촉감과 관련이 있어서 촉감 관점에서 보면 다른 감각들은 그저 촉감의 다양한 형태, 버라이어티한 모습일 뿐입니다. They have a most exquisite sense of touch, whence come the pains and torments endured in hell; for all sensations have relation to the touch, of which they are merely diversities and varieties.
영들은 욕구들과 애정들 또한 갖는데요, 그들이 몸 안에 있었을 때 가졌던 것들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이 역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They have desires and affections to which those they had in the body cannot be compared,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more will be said hereafter.
영들은 그들이 몸 안에서 지내면서 했던 생각과 사고들에 비해 훨씬 더 명료하고 뚜렷하게 생각합니다. Spirits think with much more clearness and distinctness than they had thought during their life in the body.
그들이 세상 살 때 가졌던 천 개의 아이디어 안보다 지금 그들의 사고 단 한 개 아이디어 안에 들어 있는 게 더 많습니다. There are more things contained within a single idea of their thought than in a thousand of the ideas they had possessed in this world.
그들은 서로 말할 때, 아주 날카롭게, 섬세하게, 총명하게, 그리고 탁월하게 말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걸 조금이라도 지각하면 그는 깜짝놀라며 흥분할 것입니다. They speak together with so much acuteness, subtlety, sagacity, and distinctness, that if a man could perceive anything of it, it would excite his astonishment.
요약하자면, 사람한테 있는 건 영들한테도 다 있습니다. 단, 더 완벽한 수준으로 있습니다. 다만 살과 뼈와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결함은 빼고 말이지요. In short, they possess everything that men possess, but in a more perfect manner, except the flesh and bones and the attendant imperfections.
영들은, 심지어 몸 안에서 지낼 동안 감각을 느낀 것도 사실은 영이었고, 오감(五感)의 능력이 몸 안에서 모든 걸 장악했어도 여전히 그건 몸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 몸을 벗게 되었을 때, 영 본연의 오감 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완벽, 완전하다는 것을 영들은 알고 지각합니다. They acknowledge and perceive that even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it was the spirit that sensated, and that although the faculty of sensation manifested itself in the body, still it was not of the body; and therefore that when the body is cast aside, the sensations are far more exquisite and perfect.
삶은 오감을 느끼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게 없으면 삶도 없지요. 이런 게 바로 오감의 능력이며, 이런 게 바로 삶이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Life consists in the exercise of sensation, for without it there is no life, and such as is the faculty of sensation, such is the life, a fact that anyone may observe.
323. 이 장 끝에, 자기들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이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At the end of the chapter, several examples will be given of thos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thought otherw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