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창1:6-7)

 

※ 6, 7절 속뜻

 

속 사람, 겉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주님은 먼저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구별하신 후, 속 사람 안에 주님의 것, 곧 선과 진리를 두십니다. 겉 사람 안에는 사람의 것이 있습니다. 거듭남이 시작되면서 사람은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조차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치 자기 스스로 그러는 줄 압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시며, 주님의 섭리로 사람의 이 모든 오류와 탐욕을 주님 쪽으로 구부리십니다. 강제로 바로잡으시거나 끄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24. 하나님의 영, 혹은 주님의 자비가 날(day) 안으로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을 낳은(has brought forth) 후, 최초의 빛, 곧 주님을 주십니다(has given). 주님은 선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선과 진리는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 후, 주님은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결과적으로, 속 사람 안 지식(knowledges [cognitiones])과 겉 사람에게 속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사이 일종의 구별을 만드십니다. After the spirit of God, or the Lord’s mercy, has brought forth into day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and has given the first light, that the Lord is, that he is good itself, and truth itself, and that there is no good and truth but from him, he then makes a distinction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consequently between the knowledges [cognitiones] that are in the internal man, and the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that belong to the external man.2

 

Critical Notes

 

2. 지식(Knowledges [cognitiones])은 우리가 “나는 단지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게 아냐. 나는 그걸 알고 있어.” 말할 때처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what we really know)입니다.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what we have in the external memory)으로, 신학을 비롯, 기타 온갖 종류의 아주 박식한(vast accumulation)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스베덴보리 자신의 정확한 정의는 아케이나 코엘레스티아 27, 896, 1486, 2718, 5212번 글 및 리바이저의 서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Knowledges [cognitiones] are what we really know, as when we say “I do not merely think so, I know it.”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are what we have in the external memory—a vast accumulation of all kinds, theological and otherwise. For precise definitions of these words by Swedenborg himself, see Arcana Coelestia, n. 27, 896, 1486, 2718, 5212. See also the Reviser’s Prefatory Notes. [Reviser]

 

‘궁창’(expanse)은 속 사람을, ‘궁창 위의 물’은 속 사람 안에 있는 지식을, ‘궁창 아래의 물’은 겉 사람의 기억-지식을 각각 말합니다. The internal man is called an “expanse”; the knowledge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above the expanse”; and the memory-knowledges of the ex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

 

[2] 인간은,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엔 무슨 속 사람이라는 것의 본성(nature) 및 퀄러티(quality)라는 것에 대해 알기는커녕, 그런 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릅니다. Man, before he is being regenerated, does not even know that any internal man exists, much less is he acquainted with its nature and quality.

 

그는 속 사람, 겉 사람이라는 것이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He supposes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to be not distinct from each other.

 

육적(肉的, bodily)이고 세속적(worldly)인 것에 깊이 잠긴(being immersed) 나머지 그는 속 사람에게 속한 것들까지도 그런 것에 잠기게 하여(has also immersed) 구별되는(distinct) 것들까지도 무슨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For, being immersed in bodily and worldly things, he has also immersed in them the things that belong to his internal man, and has made of things that are distinct a confused and obscure unit.

 

그래서 먼저,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 하시고, 이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신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구절들에서처럼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라’를 먼저 말씀하신 게 아니고 말입니다. Therefore it is first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then,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but not,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 as is afterwards said in the next verses: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1:7-8)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Gen. 1:7–8)

 

[3] 그래서 사람이 거듭남 전 과정에서 다음으로 관찰하게 되는 것은, 그가 속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것, 혹은 속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선과 진리이며, 이것은 오직 주님한테만 속한 것이라는, 이런 사실들을 알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The next thing therefore that man observes in the course of regeneration is that he begins to know that there is an internal man, or that the thing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Lord alone.

 

지금, 겉 사람은, 거듭나고 있을 때, 선을 행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진리를 말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여전히 아는 그런 어떤 본성(nature)을 갖고 있는데요, 그는 주님의 것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의 것(own)으로 인도받는 양, 선도 행하고, 진리도 말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궁창 아래의 물이라는 일종의 구별(distinction)이 먼저 언급되고, 나중에 궁창 위의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Now as the external man, when being regenerated, is of such a nature that he still supposes the goods that he does to be done of himself, and the truths that he speaks to be spoken of himself, and whereas, being such, he is led by them of the Lord, as by things of his own, to do what is good and to speak what is true, therefore mention is first made of a distinction of the waters under the expanse, and afterwards of those above the expanse.

 

이는 또한 천국에 관한 일종의 아케이나(arcanum, 秘義, 감추어진 비밀, 신비)인데요, 인간은, 자기 본성(own)에 속한 것으로, 그리고 감각에 속한 거짓과 온갖 탐욕(cupidities)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참과 선 쪽으로 인도되며 구부려진다는 사실, 그리고 거듭남에 관련된 모든 움직임과 순간들이, 일반적으로든 구체적으로든, 저녁에서 아침으로, 그렇게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혹은 ‘땅’에서 ‘하늘’로 진행한다(proceeds)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요 아케이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It is also an arcanum of heaven, that man, by things of his own, as well by the fallacies of the senses as by cupidities, is led and bent by the Lord to things that are true and good, and thus that every movement and moment of regeneration,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proceeds from evening to morning, thu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or from “earth” to “heaven.”

 

이런 이유로, 지금 궁창 혹은 속 사람을 ‘하늘’이라 하는 것입니다. Therefore the expanse, or internal man, is now called “heaven.”

 

 

25. ‘땅을 펼치며 하늘을 펴는 것’(spread out, stretch out)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룰 때, 선지자들이 흔히 말하는 일종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 is a common form of speaking with the prophets, when treat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이사야에서처럼 As in Isaiah:

 

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그리고 다시, 주의 오심(the advent of the Lord)을 드러내어 말하는 데를 보면, And again, where the advent of the Lord is openly spoken of: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Isa. 42:3)

 

즉, 주님은 사람들의 틀린 생각을 바로잡으시지도(break fallacies), 탐욕을 끄지도(quench cupidities) 않으시고 대신, 그것들을 진리와 선 쪽으로 구부러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that is, he does not break fallacies, nor quench cupidities, but bends them to what is true and good; and therefore it follows:

 

5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내용이 같은 구절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Not to mention other passages to the same pur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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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55.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Verse 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태고인들(太古, the most ancient people)은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 또는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을 일종의 결혼(a marriage)이라 했는데요, 그래서 그들은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을 가리켜서는 ‘생육’(fruitfulness)이라, 모든 진리를 가리켜서는 ‘번성’(multiplications)이라 하였습니다. As the most ancient people called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of faith and love, a marriage, everything of good produced from that marriage they called “fruitfulness,” and everything of truth, “multiplications.

 

그래서 선지서들, 예를 들면, 에스겔에 그렇게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Hence they are so called in the prophets, as for instance in Ezekiel: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겔36:11-12)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multiply and be fruitful,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and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yea,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even my people Israel. (Ezek. 36:11–12)

 

여기 ‘사람’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인 사람을, ‘전 지위’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By “man” is here meant the spiritual man who is called Israel; by “ancient times,”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 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나게 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multiplication,” which is of truth, is first mentioned, and “fruitfulness,” which is of good, afterwards, is that the passage treats of one who is to become regenerated, and not of one who is already regenerated.

 

[2] 이해가 의지와, 또는 신앙이 사랑과 하나가 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일컬어 ‘결혼한 땅’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When the understanding is united with the will, or faith with love, the man is called by the Lord “a married land,” as in Isaiah: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62:4) Thy land shall be no more termed waste, but thou shalt be called Hephzibah [my delight is in her], and thy land Beulah [married], for Jehovah delighteth in thee, and thy land shall be married. (Isa. 62:4)

 

이때 달리는 열매들, 이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The fruits thence issuing, which are of truth, are called “sons,” and those which are of good are called “daughters,” and this very frequently in the Word.

 

[3] 많은 진리와 선의 존재로 땅은 다시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는, 즉, 사람을 돌보실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The earth is “replenished,” or filled, when there are many truths and goods; for when the Lord blesses and speaks to man, that is, works upon him, there is an immense increase of good and truth, as the Lord says in Matthew: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The kingdom of the heavens is like to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sowed in his field, which indeed is the least of all seeds, but when it is grown, it is the greatest among herbs, and becometh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heavens come and build their nests in the branches thereof. (Matt. 13:31–32)

 

겨자씨 한 알’은 영적인 사람이 되기 전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서도 자기 것을 가지고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미안하지만, 무엇이든 사람에게 속한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A “grain of mustard seed” is man’s good before he becomes spiritual, which is “the least of all seeds,” because he thinks that he does good of himself, and what is of himself is nothing but evil.

 

그러나 이제는 거듭남의 어떤 상태에 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있게 되는데, 하지만 그것은 아직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입니다. But as he is in a state of regeneration, there is something of good in him, but it is the least of all.

 

[4] 시간이 흘러 마침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서, 처음엔 ‘모든 것 중에 가장 작았던’ 이것이 점점 자라 ‘’(herb)이 되며, 끝에 가서는, 즉. 이 결합이 완성이 되면, 그때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 지성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은 기억-지식을 각각 말합니다. At length as faith is joined with love it grows larger, and becomes an “herb”; and lastly, when the conjunction is completed, it becomes a “tree,” and then the “birds of the heavens” (in this passage also denoting truths, or things intellectual) “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which are memory- knowledges.

 

사람이 영적일 때, 그리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사람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신 것입니다. When man is spiritual, as well as during the time of his becoming spiritual, he is in a state of combat, and therefore it is said, “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8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속뜻)

태고인들은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의 결합을 일종의 결혼이라 여겼고, 그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을 ‘생육’, 모든 진리를 ‘번성’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이를 가리켜 ‘결혼한 땅’이라 하였고, 이때 열리는 진리를 ‘아들’, 선을 ‘’이라 합니다. 주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그를 케어하실 때, 그의 안에는 어마어마한 선과 진리가 부어져 ‘충만’한 상태가 되며, 주님의 이런 사역으로 ‘겨자씨 한 알’에 지나지 않았던 인생이 변화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큰 나무가 됩니다. 사람이 이런 영적 인간이 될 때, 그의 안에서는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데, 그래서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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