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후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 (2023/5/9)

 

 

421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 둘 사이 중간 장소(place) 혹은 상태(state)로서, The world of spirits is not heaven, nor is it hell, but it is the intermediate place or state between the two;

 

이곳은 사람의 사후(死後, after death)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이며, for it is the place that man first enters after death;

 

이곳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머물다가 그가 세상에서 보낸 삶에 따라 이후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그런 곳입니다. and from which after a suitable time he is either raised up into heaven or cast down into hell in accord with his life in the world. (HH.421)

 

 

422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 장소이며, 또한 사람의 사후 중간 상태입니다. The world of spirits is an intermediate place between heaven and hell and also an intermediate state of the man after death.

 

저는 지옥이 그 밑에, 천국은 그 위에 있는 걸 보고 그곳이 중간 장소임을, 그리고 사람이 거기 있는 한, 그는 아직 천국도 지옥도 아닌 상태임을 보고 그곳이 중간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It has been shown to me not only that it is an intermediate place, having the hells below it and the heavens above it, but also that it is in an intermediate state, since so long as man is in it he is not yet either in heaven or in hell.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된(conjunction)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천국이며, 사람 안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된 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지옥입니다. The state of heaven in man is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in him; and the state of hell is the conjunction of evil and falsity in him.

 

사후 영이 된 상태(a man-spirit)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될 때, 그는 천국으로 가는데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런 하나 됨이 바로 그의 안에 있는 천국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그 상태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되는 경우, 이번엔 지옥으로 갑니다. 이런 하나 됨이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Whenever good in a man-spirit is conjoined to truth he comes into heaven, because that conjunction, as just said, is heaven in him; but whenever evil in a man-spirit is conjoined with falsity he comes into hell, because that conjunction is hell in him.

 

이런 하나 됨은 영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데, 그때 사람은 중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That conjunction is effected in the world of spirits, man then being in an intermediate state.

 

이런 하나 됨을 이해(the understanding)와 의지(the will)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되고, 선(good)과 진리(truth)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됩니다. It is the same thing whether you say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HH.422)

 

 

※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421번, 422번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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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10(D4)-매일예배(2470, 눅8,31-39),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을 구원하시는 주님 (2)'.pdf
0.42MB

https://youtu.be/_DZI_En4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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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자신의 애정과 상관없는 표정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2023/5/8)

 

천사들의 모든 아름다움은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로 말미암는데요, 그렇게 각 천사는 자기가 이 결혼애 안에 있는 만큼만 아름답습니다. 모든 천사는 그들의 애정의 형상이기 때문인데요, 천국에서는 자신의 애정과 상관없는 표정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그래서 그 결과 모든 천사는 그 얼굴을 보면 그들 마음의 타입(types of their minds)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결혼애나 주님 사랑, 서로 사랑, 그리고 선을 사랑함, 진리를 사랑함 및 지혜를 사랑함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이런 사랑들이 나타나고, 이것이 그들 눈에는 생명의 불꽃(vital fires)처럼 보이며, 그들에게 순진함(innocence)과 평화(peace)가 더해지는데, 이 둘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AE.1001) From conjugial love angels have all their beauty; thus each angel has beauty in the measure of that love. For all angels are forms of their affections; for the reason that it is not permitted in heaven to counterfeit with the face things that do not belong to one’s affection; consequently their faces are types of their minds. When, therefore, they have conjugial love, love to the Lord, mutual love, love of good and love of truth, and love of wisdom, these loves in them give form to their faces, and show themselves like vital fires in their eyes; to which innocence and peace add themselves, which complete their beauty. (AE.1001)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의 사후 저작(a posthumous work)인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001번 글의 일부이며, 이 글은 계시록 16장 14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중,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에 관한 속뜻 주석에서 인용했습니다.

 

https://youtu.be/QsZygbo98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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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말씀(the Word)을 속뜻으로 읽는다는 건 이런 겁니다’ (2023/5/1)

 

천사들은 내적 존재, 또는 영적 존재라서 말씀을 내적 의미로밖에는, 즉 속뜻으로밖에는 읽을 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천사들은 우리를 볼 때, 우리 안의 영, 즉 속 사람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등장을 보면서, 그냥 ‘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작이 이랬구나. 속 썩이는 조카 롯을 왜 데리고 왔지? 사라가 참 미인이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한 건 장부답지 못하고 참 비겁하네...’ 하면서 읽습니다.

 

이런 것이 겉 글자로만 읽는 것이지요. 그러나 창세기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엔 속뜻, 곧 ‘아르카나’(arcana, 秘義)가 들어있으며, 천사들은 이것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실제로 아르카나는 그 깊이가 몇 단계나 되며, 첫 단계라 할지라도 사실 지상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하여튼 스베덴보리가 기술한 속뜻 주석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것인데요, 이는 마치 미적분 등 고등수학을 유치원생에게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12장을 자기가 와 있는 사람의 육안을 통해 읽는 천사의 눈엔 지상 인간의 언어로 된 글자는 안 보이고,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만 보이는데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곧 하란을 떠날 때부터를 천사는 거기 담긴 아르카나, 곧 주님의 어린 시절 그 내면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로 읽는 것입니다. 가령 12장의 경우,

 

여기 아브람은 주님의 영유아 시절부터 청년기 사이 주님의 상태를 표상(表象, representative)하는데요, 주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모호한 상태에서 더 명료한 상태로 발전하신 것입니다.

 

하란’(Haran)은 모호했던 첫 번째 상태를, ‘세겜’(Shechem)은 두 번째, ‘모레 상수리나무’(the oak grove Moreh)는 세 번째, ‘벧엘 동쪽 산,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the mountain which had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는 네 번째, 그리고 ‘남방, 애굽으로 옮겨갔더라’(journey thence toward the south into Egypt)는 다섯 번째 상태에 대한 표상입니다. (AC.1401)

 

아브람’(Abram)은 주님을, 특히 인간 본질(human essence)에 관한 주님을, ‘사래’(Sarai)는 아내로서는 천적(天的, the celestial)인 것에 인접한 진리를, 누이로서는 지적(intellectual) 진리를, ‘애굽’(Egypt)은 기억-지식(memory-knowledge, 보통 책을 통해 학습한 지식)을 표상하며,

 

주님도 어린 영유아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기억-지식을 습득, 천적, 천상의 진리로까지 발전하시는, 그런 전 과정이 이 실제 역사(true historicals)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부터의 기록인 것이며, 이는 주님의 마리아로 인한 인간 본질이 그 분 안 신적 본질(Divine essence)과 결합, 동시에 여호와가 되게 하시는 신적 질서(Divine order)에 따른 것입니다. (AC.1402)

 

참고로, ‘’(Lot) 또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주님의, 육체를 입으신 상태(sensuous and corporeal man)의 주님을 표상합니다.

 

뒤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관련, 롯 이야기, 싯딤 골짜기 왕들의 전쟁 이야기 등도 역시 겉으로는 실제 역사이지만,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면에서 일어난 상태들과 그 변화에 대한 기술입니다...

 

이렇게 천사들은 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주목하듯 오직 주님에 관한 아르카나에만 집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후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도 다른 나라 중장기 여행이나 이민 등을 갈 때, 그 나라에 대한 충분한 조사, 가령, 그 나라 역사, 문화, 특히 언어를 힘들여 익히거든 하물며, 우리의 영원을 보내게 될 천국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디 일분일초를 아껴 주님이 그의 종 스베덴보리를 통해 오픈하신 이 ‘천국의 비밀’에 관하여, 그리고 우선은 그의 책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마음을 다하여 가까이하시기를 간절히 권하고 또 권하겠습니다.

 

아, 한 가지, ‘아브람’(Abram)은 주님의 인간 본질의 상태를, ‘아브라함’(Abraham)은 주님의 인간 본질과 신적 본질 간 합일의 상태를 각각 표상하며, ‘사래’(Sarai)와 ‘사라’(Sarah)도 같습니다. 여기, 히브리 묵음 ‘h’가 바로 주님의 ‘여호와이심’, 곧 신성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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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진리 : 세례 요한과 인자’(눅7:33-34) (2023/4/28)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7:29-35)

 

...여기서 ‘세례 요한이 왔다’는 것은 새로운 말씀, 또는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그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는 진리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행하지는 않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은 선을 뜻하고, ‘포도주’는 진리를 뜻하며, ‘먹고 마시는 것’은 진리를 행함으로 진리와 선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의해 새로운 진리가 선포될 때,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진리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들도 진리를 따라 살지를 못합니다. 그 상태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는’ 상태입니다.

 

그때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 새로운 진리를 사이비 진리라 하며 조롱합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을 배척하는 것을 보세요. 그것이 요한에게 ‘귀신이 들렸다’ 하는 것입니다.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세례 요한이 온 것’이 말씀을 처음 받아들인 상태라면, ‘인자가 온 것’은 그 말씀 가운데로 주님이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지식 속으로 선이 있는 진리가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적으로 선을 동반한 진리이시기 때문인데요, 선을 동반한 진리, 즉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진리라야 신앙인들의 삶을 바꾸고 생명을 바꿉니다.

 

생명이 바뀐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가 신앙인의 의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즉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의지가 주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오시는 것’은 진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상태이며, 그렇게 해서 인격이 바뀌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비난을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비난을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표현합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것’은 이를테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과 진리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모든 걸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것은 저들의 진리가 이방인의 진리, 즉 이단적 진리라는 뜻입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선과 진리이신 주님과 결합하는 일인데요,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모두 형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과 진리 사랑하는 것을 선과 진리에 집착한다고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또 교회 밖 사람이라도 선하고 진실한 사람은 구원받는다 하면 이단적 진리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주님, 즉 진리 자체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 https://youtu.be/stlLInzz44Q

 

블로그 : https://bygrace.kr/1508

 

매일예배(2023/4/28, 눅7:29-35), '교회 밖 사람들, 교회 안 사람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stlLInzz4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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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말씀의 속뜻 (2023/4/27)

 

※ 오늘 매일예배 본문 일부를 그대로 옮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눅7:28)

 

...여기서 ‘여자’는 지상의 교회를 뜻하며,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는 요한, 즉 지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소유하는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지극히 어둡고 투박한 진리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입니다. 지상의 진리는 아무리 심오한 것이라도 천국 천사들의 것에 비하면 지극히 낮은 진리라는 것이지요...

 

※ 아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편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제가 조금 풀어본 것입니다.

 

천국은 세 천국, 곧 일층천(자연적, natural), 이층천(영적, spiritual) 및 삼층천(천적, celestial)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또한 사람 내면의 구조 세 단계와 상응합니다. 즉 첫 번째 단계만 열린 사람은 일층천으로, 두 번째 단계까지 열린 사람은 이층천, 세 번째까지 다 열린 사람은 삼층천으로 가게 되지요.

 

천국의 이런 차등 구조는 주님의 신성을 수용하는 특성, 곧 주님의 신성 중 선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삼층천, 진리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이층천, 그리고 둘 다 반응하되 천국의 가장 바깥 천국은 일층천 등 그 특성에 따른 것입니다.

 

세 천국은 그 역량 또한 서로 달라 가령, 지혜로 말할 것 같으면, 각 천국 천사들 간 지혜의 차이는 수천수만 배 차이가 나는데요, 즉 삼층천 천사들의 지혜는 이층천 천사들의 지혜보다 그만큼 더 높고 깊으며, 이층천은 일층천과, 그리고 일층천은 이 지상과 그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낮은 천국 천사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높은 천국 천사들에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런 지혜 세계의 웅장한 질서에 대하여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지상에서 자기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배운 게 많아도 주님의 지혜에 관하여는 하다못해 일층천 천사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주님 앞과 사람들 앞에 매사 겸손할 것입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예를 들면, 일층천 천사가 이층천 천국에 들어가면 (사실은 마음대로 갈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이층천에 맞는 내면이 열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사실은 그곳에 수많은 사람과 형용할 수 없는 사물이 가득함에도 그렇습니다. 각 천국은 해당되는 내면이 열린 사람이라야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주님이 허락, 무슨 임시 안전조치를 취해 주신 덕분입니다.

 

방금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다’고 했는데요, 이 말은 천국 간 왕래를 주님이 일반적으로는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각 천국은 사실은 천사 자신의 일종의 정체성이어서인데요, 해당 천국의 정체성을 가진 천사가 다른 천국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그가 가진 정체성에 큰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특정 천국 안 수많은 공동체 간 왕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참고로, 천국 모든 멤버들을 ‘천사’라 하며, 우리 역시 사후 해당 천국으로 배정되면 모두 천사가 됩니다. 주님은 천사 따로, 사람 따로 지으신 게 아닙니다. 주님 자신 ‘참 사람’(Divine Human)이시기 때문이며, 참 사람이신 주님은 결코 사람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별도로 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말씀을 겉 글자, 문자 그대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계21:17)

 

주님을 사랑하오며,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오며... 아멘, 할렐루야!

 

유튜브 : https://youtu.be/cU887fJU2SQ

 

블로그 : https://bygrace.kr/1507

 

매일예배(2023/4/27, 눅7:24-28), '세례(침례) 요한 (John the Baptist) (2)'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cU887fJU2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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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제사장 기도의 속뜻 (2023/4/26)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4-26)

 

지인 중 한 분이, 자기는 이 말씀으로 자녀들을 많이 축복했는데, 아이들이 성장,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며, 경제적으로 쉽지가 않아져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날 이런 축복을 하셨으니 이제 그 책임을 좀 지시라며 이것저것을 요구, 속이 많이 상하시다는... 저로서는 좀 어리둥절한 상담 요청이었는데요...

 

저 역시 지난날 큰 교회 마을사역자로 여러 해 섬기며 마을 내 각종 이사 심방을 다닐 때, 심방 후 밖으로 나와 현관문 위에 교패를 부착, 거기에 손을 얹고 함께한 심방팀과 함께 위 말씀으로 축복기도를 하곤 했기 때문에...

 

겸사 나는 과연 어떤 뜻으로 그동안 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애용(?)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속뜻을 좀 살펴본 후, 늦은 밤이지만 답신을 드렸고, 감사하다는 회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래는 위 본문에 대한 속뜻 주석 원문입니다.

 

...Jehovah bless thee and keep thee; Jehovah make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be gracious unto thee; and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Num. 6:24-26). Divine truth, from which is all intelligence and wisdom, with which the Lord flows in, is meant by "Jehovah makes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protection thereby from falsities is meant by "be gracious unto thee;" and the Divine good, from which is all love and charity, with which the Lord flows in, is meant by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protection thereby from evils, and thence heaven and eternal happiness, are meant by "give thee peace;" for when evils and falsities are removed and no longer infest, the Lord flows in with peace, in which and from which is heaven and the delight that fills with bliss the interiors of the mind, thus heavenly joy...

(AC.10137:12)

 

본문만 번역하자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는 신적 진리(Divine truth)를 의미하는데, 모든 지성과 지혜가 이 신적 진리에서 나오며, 주님의 흘러들어오심 역시 이 신적 진리를 동반하시는, 그런 진리를,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거짓들로부터 보호하심을,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는 신적 선(Divine good)을 의미하는데, 모든 사랑과 인애(charity)가 이 신적 선에서 나오며, 주님의 흘러들어오심 역시 이 신적 선을 동반하시는, 그런 선을,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악들로부터 보호하심을, 그리고 천국과 영원한 행복을 의미한다는...

 

대략 뭐 이런 뜻이 되겠는데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는 주님의 신성이신 신적 선과 신적 진리에 대한 말씀이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구하며, 이것으로 복을 빌라시는 말씀입니다.

 

즉, ‘’이란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우리 안에 주님의 신성이 갖추어지면, 자연히 천국하고도 통하게 되어 천국의 모든 복이 우리 삶 가운데 흘러들어온다는 그런 것!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 주시는, 하늘의 모든 걸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부터 먼저 갖추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속 사람이 있고, 겉 사람이 있듯, ‘’ 역시 내적(內的, internal)인 복이 있고, 외적(외적, external)인 복이 있는데요, 모든 것이 그렇듯 영적인 것은 반드시 자연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출발한 모든 것은 반드시 자연계의 것으로 도착,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즉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그 역순은 없으며, 속, 즉 내면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도 겉, 즉 자연적, 물질적 복을 받는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며, 뭔가 위험한 것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위 민수기 6장 ‘제사장 기도’는 주님의 신성을 구하는 기도, 주님의 신적 성품을 구하는 자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본문의 속뜻을 바로 알고, 일상 가운데 부지런히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찬양, 감사,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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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2023/4/25)

 

그 내면이 죽은 상태인 사람(a dead man)은 영적 전투에서 언제나 지고, 전투 중이 아닐 땐 악과 거짓의 종으로 지냅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매임(bonds)은 외적(外的, external)인데, 이를테면 법을 두려워함이라든지, 혹은 생명이나 부, 이익 및 평판 등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혹시 잃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영적인 사람(the spiritual man) 역시 영적 전투 가운데 있으나 전자와는 달리 그는 늘 이기며, 그 역시 무슨 매임이 있지만, 그것은 전자와는 달리 내적(內的, internal)이며, 양심(conscience)이라고 하는 매임입니다. (AC.81)

 

이는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天界秘義,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창세기 2장 도입부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세 종류의 사람에 관한 설명 중 일부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란, 사실은 그 내면에 있어 각각 ‘죽은’(dead) 상태인 사람, ‘영적’(spiritual) 상태에 있는 사람, 그리고 ‘천적’(天的, celestial)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창세기 1장은 앞에 두 사람에 관한 내용이며, 창세기 2장 전반부인 1절로 17절은 세 번째 상태인 천적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죽은 자는 겉으로는 주님의 선과 진리를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과 세상 재물을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이며, 그러므로 살아있다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교회 안에도 죽은 자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유튜브 : https://youtu.be/33_bAHMP-5M

 

블로그 : https://bygrace.kr/1505

 

매일예배(2023/4/25, 눅7:11-17),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33_bAHMP-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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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빨간 불에 건넜다가...’ (2023/4/20)

 

저희 아파트 맞은편에 로제비앙이 들어서면서 우아한(?) 산책로가 새로 생겨 아침, 저녁 애용하고 있습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경로로 다니다 보니 로제비앙 경비 아저씨하고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저를 로제비앙 식구로 아시는 듯... ㅋㅋ

 

오봉산 자락 아래라 이른 아침이면 살짝 포근한 산안개를 배경으로 온갖 새 소리가 아직 새벽 미명 저의 내면 저 깊은 심령마저 아주 싱그럽고 청아하게 만듭니다. 새들은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요? 참 신비롭습니다!

 

주변이 다 개발된 후 들어선 아파트라 정문이며, 후문이며... 살짝 좀 엉뚱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정문은 사람들 거의 안 다니는, 그저 차만 부지런히 다니는, 좀 외진 데로 났습니다. 도로는 참 잘 닦았는데 정작 인적은 무척 드문...

 

며칠 전, 정문 횡단보도 앞에서, 시간도 이르고, 인적이며 차량도 없어 빨간 불에 한 번 건너봤습니다. 여기 신호가 제법 길거든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았고, 그래서 이후 계속 신호와 상관없이 눈치껏 적당히 건너기를 계속했습니다.

 

한편으로, 최근 언제부턴가 제 심령이 평소처럼 맑지가 않고, 무슨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한 상태가 시작되더니 요 며칠 계속되었습니다.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슨 방어선이 뚫린 것 마냥... 영 뭔가가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왜 이럴까...?

 

그저께 밤 산책 때 역시 그 정문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혹시... 하는 마음에 이번엔 아무도 없어도 끝까지 기다렸다가 파란 불에 건넜습니다. 오... 느낌이 다르네요! ㅎㅎㅎ 어제 새벽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다시 예전처럼 신호를 지키며 건넜습니다. 그랬더니... ㅎㅎㅎ

 

이거였군요!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나가, 마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2:15)처럼 제 일상에 큰 구멍을 내며, 그리고 주님과 천국을 향한 창문이 닫히게 만든 거였군요!

 

아, 개운합니다. 저를 깨닫게 하신 주님, 제게 빛을 비춰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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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눅23:44-49)

 

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은 단순히 그 겉 글자의 뜻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의(秘義, arcana, secret)가 담긴, 천국의 놀라운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상태의 나라인 천국에서는 이 숫자들 역시 그 안에 담긴 상태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처음 몇 장에 나오는 누가 몇백 년을 살았다 하는 표현은 그 속뜻으로는 그 이름으로 부르던 교회, 또는 교리나 신앙이 그만큼의 오랜 세월, 즉 어떤 상태들 가운데 있었다 하는 식입니다.

 

여기 ‘그만큼의 세월’이라 하였지만 꼭 일대일, 그러니까 구백육십구 세라 하여 꼭 969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그 속뜻으로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몇천, 몇만 년,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래서 저는 지질학자들의 지구 나이 45억 년 전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며, 전 세계에서 계속 발견되는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 OOPARTS)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파츠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그 지층, 그 연대에서는 절대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데 발견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1, 2, 3, 4 같은 단순 숫자들조차 아주 깊은 비의들을 담고 있거든 하물며 이 단순 숫자들의 조합인 복합 숫자들은 그 담긴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지 이 지상에서는 형용할 수도 없거니와 한들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러므로 예를 들어,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숫자들 역시, 그것을 그대로 실제 지상의 년 수로 이해하기보다 상태로 이해할 때 비로소 많은 부분, 모든 것이 순적, 평안하게 풀린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주님의, 나무에 달리심과 관련된 숫자들, 삼시, 육시, 구시 역시 그래서 상태, 곧 그 속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물론, 지상의 시간으로 이해하면 아마도 오전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인 것 같지만...

 

숫자 삼(3)의 의미가 다들 아시듯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배수인 육(6) 및 그 세 배수인 구(9)에 이르러는 더욱 완전, ‘완성’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부터는 유전 악을 품은 인성(human), 자아로 탄생하신 주님이 그간의 거듭남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막 그 옛 자아를 벗으시고, 오로지 여호와로 말미암은 새로운 자아, 곧 신성한 인성(Divine Human)이 되시는 것을 표현, 상징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일대기, 특히 우리 평범한 인간들처럼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 곧 그 유전 악 옛 자아를 벗는 과정 중 그 몇 중요한 꼭지들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더 많은 중요한 내용들은 꼭 아래 블로그에 가셔서 그 원고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493

 

매일예배(2023/4/7, 눅23:44-49),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9VWBMSmNEvw 2. 카톡 메시지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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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주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삶, 오직 주님을 섬기며, 당부하신 쓰임새의 삶을 살다 주님 나라 가고 싶습니다. 저를 늘 붙들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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