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7, AC.8548–8634

 

반석에서 물이 나오다 (1-7절, AC.8556-8591)

아말렉과 싸우다 (8-16절, AC.8592-8626)

 

8554. 속뜻으로 앞 장에서는 세 번째 시험, 즉 선의 부족(a lack of good)을 다루었다면, 이제 이 장에서는 네 번째 시험, 즉 진리의 부족(a lack of truth)을 다룹니다. ‘물이 없어 이스라엘 자손이 하는 원망’이 바로 이 네 번째 시험을 의미하며, 그 결과 주님은 이들에게 신앙의 진리를 공급하시는데, ‘호렙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바로 이를 의미합니다. In the preceding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the third temptation was treated of—that there was a lack of good. This having been given them, in the internal sense in this chapter the fourth temptation is treated of—that there was a lack of truth. This temptation is signified by “the murmuring of the sons of Israel because they had no water”; and therefore the truth of faith was given them by the Lord, which is signified by “the water out of the rock of Horeb.

 

8555. 그리고 이어서 신앙의 진리와 선을 대항하는, 악으로 말미암는 거짓과의 전투(combat)가 나오는데요, 이 전투를 이스라엘을 대항하는 아말렉(Amalek)과의 싸움(fighting)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바라볼 때 이기고, 아래를 내려다볼 때 진다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한 이기고, 그가 손을 내렸을 때 지는 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n follows the combat of the falsity that is from evil against the truth and good of faith, which combat is represented by the fighting of Amalek against Israel. That they who are in the truth and good of faith conquer when they look upward to the Lord, and that they yield when they look downward, is represented by the sons of Israel conquering so long as Moses kept his hands raised, and by their yielding when he let them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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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6, AC.8387–8547

 

만나와 메추라기 (1-36절, 장 전체, AC.8396-8540)

 

 

8395. 앞 장에서는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두 번째 유혹에 대해 다루었는데요, 이는 진리라는 게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그런 지각으로부터 오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 속뜻으로는 세 번째 시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의 부족(the lack of good)에서 오는 시험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했던 떡과 고기의 부족이 바로 이걸 의미합니다. 시험 후 그들이 받은 위로는 그들에게 공급된 만나와 메추라기인데요, 여기서 만나는 영적 선(spiritual good)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주님에 의해 그들에게 늘 공급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걸 얻기 위해 무슨 케어나 주님을 도운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이런 사실은 그들이 매일 만나를 공급받았다는 것과 그들이 만일 정량을 초과, 욕심을 부리면 바로 그 안에 번식하는 벌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The preceding chapter treated of the second tempt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spiritual church, which was from truth being perceived as undelightful.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a third temptation is treated of, which is from the lack of good. By the lack of bread and of flesh, at which the sons of Israel murmured, is signified a lack of good. Consolation after temptation is signified and described by the manna which they received, and by the quail. Manna denotes spiritual good. That this was given to them by the Lord continually, and without any care and aid of theirs, is signified by their receiving the manna daily, and by the worm breeding in it if they gathere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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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5, AC.8252–8386

 

모세의 노래, 미리암의 노래 (1-21절, AC.8260-8343)

단 물로 변한 마라의 쓴 물 (22-27절, AC.8344-8370)

 

8258. 이 장에 관한 속뜻은 찬양받으시는 주님이신데요, 주님이 주님의 인성(His Human)을 영화롭게 하신 후, 주님은 저세상에서(in the other life) 선한 사람들을 감염시키던 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내쫓으신 반면, 이미 감염되었던 선한 사람들은 천국으로 올리셨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런 점들이 이 예언적 노래에 담긴 것들의 속뜻입니다. In the internal sense of this chapter the Lord is celebrated, in that after He had glorified His Human, He cast down into the hells the evil who were infesting the good in the other life; and raised into heaven the good who had been infested. These are the things which are contained in this prophetic song in the internal sense.

 

8259. 그 후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두 번째 시험이 속뜻으로 다루어지는데요, 바로 물이 쓴 마라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원망(the murmuring of the people at Marah)입니다. 그 후에는 위로(consolation)인데요, 이를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Elim)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Afterward the second tempt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spiritual church is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which is described by the murmuring of the people at Marah, where the waters were bitter; and after this, consolation is treated of, which is signified by the encampment at Elim, where were twelve springs and seventy palm 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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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4, AC.8120–8251

 

홍해를 건너다 (1-31절, 장 전체, AC.8126-8241)

 

 

8125.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첫 번째 시험과 그들을 지옥 한가운데로 인도하기, 그리고 그때 그들을 향하신 주님의 보호와, 또한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라앉는 것인데요, 거기는 악으로 말미암는 거짓이 있는 곳입니다.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the sons of Israel)으로,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애굽 사람들’(the Egyptians)로 표현하고 있고요, 첫 시험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로의 군대를 보고 원망하는 것으로, 지옥은 이스라엘 자손은 안전하게 인도된 반면, 이집트인들은 수장되고만 ‘숲 바다’(the sea Suph)로, 악으로 인한 거짓은 저들을 덮은 물로 각각 상징하고 있습니다.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first temptation of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and the conducting of them through the midst of hell, and their protection then by the Lord; and also the immersion of those who were in faith separate from charity in hell, where are falsities from evils. They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are represented by the sons of Israel; they who are in faith separate from charity by the Egyptians. The first temptation is described by the murmuring of the sons of Israel when they saw the army of Pharaoh. Hell is signified by the “sea Suph” through which the sons of Israel were conducted in safety, and in which the Egyptians were immersed. Falsities from evils are signified by the waters which covered the l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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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3, AC.8033–8119

 

무교절 (1-10절, AC.8040-8070)

태에서 처음 난 것(11-16절, AC.8071-8090)

구름 기둥과 불 기둥(17-22절, AC.8091-8110)

 

 

8038.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과 주님에 의해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the perpetual remembrance of having been liberated by Him from damnation)입니다. 주님 신앙은 처음 난 것에 관한 신성화(the sanctification of the firstborn)로, 주님에 의한 해방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유월절 축제(the celebration of the passover)로 각각 상징합니다. In this chapter the subject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is faith in the Lord, and the perpetual remembrance of having been liberated by Him from damnation. Faith in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sanctification of the firstborn, and the perpetual remembrance of liberation by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celebration of the passover.

 

 

8039. 이 장의 후반부와 그 이후 다루는 주제는 영적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 그리고 주님 오시기 전, 천국으로 인도될 때까지 더 낮은 땅에 억류되었던 사람들(who were detained in the lower earth)에 관한 더 많은 준비이며, 이를 위해 그들은 주님이 늘 함께하시는 가운데 먼저 안전하게 저주 한복판으로 보내졌고, 그러고 나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저주를 정면 돌파하는 것은 숲 바다(the sea Suph)를 통과하는 것으로, 시험은 그들이 인도된 광야 생활로, 그리고 주님의 임재는 낮에는 구름 기둥(the pillar of cloud), 밤에는 불기둥(the pillar of fire)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 latter portion of the chapter, and thereafter,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further prepa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spiritual church and who before the coming of the Lord were detained in the lower earth until they could be introduced into heaven, and that for the sake of this end they were first sent through the midst of damnation in safety, and after this underwent temptations, the Lord being continually present. Transmission through the midst of damnation is signified by the passage through the sea Suph; temptations are signified by that life in the wilderness to which they were led; and the presence of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pillar of cloud by day, and of fire b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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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2, AC.7814–8032

 

유월절, 무교절 (1-14절, AC.7824-7910)

첫 유월절 (21-28절, AC.7911-7945)

열째 재앙, 처음 난 것들의 죽음 (29-36절, AC.7946-7970)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다 (37-42절, AC.7971-7992)

유월절 규례 (43-51절, AC.7993-8020)

 

 

7822.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해방(the liberation of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그리고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에 관한 저주(the damnation of those who are in faith separate from charity)입니다. 이들 후자에 관한 저주와 전자의 해방을 유월절로, 그리고 해방된 사람들의 체어리티와 신앙 관련 상태(the states in respect to charity and faith of those who are liberated)를 유월절에 지켜야 할 사항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liberation of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and the damnation of those who are in faith separate from charity. The damnation of these latter and the liberation of the former are represented by the passover, and the states in respect to charity and faith of those who are liberated, by the things to be observed on the days of the passover.

 

7823.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유월절은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저주(the damnation of the unfaithful)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 주님에 의한 신실한 사람들에 관한 해방(the liberation of the faithfulby the Lord, when he had been glorified)을 나타내는데요, 그때 신실한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퀄러티(The quality of the state of the faithful at that time)와, 또한 나중에 범보편적으로든 아주 특별한 경우든 그 퀄러티가 어떻게 될 것인지(what its quality would be afterward, both in the universal and in every particular)가 이 유월절 법령이 가리키는 가장 높은 뜻입니다. In the supreme sense by the passover is represented the damnation of the unfaithful and the liberation of the faithful by the Lord, when he had been glorified. The quality of the state of the faithful at that time, and also what its quality would be afterward, both in the universal and in every particular, is described in this supreme sense by the statutes of the pass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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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1, AC.7752–7813

 

처음 난 것의 죽음을 경고하다 (1-10절, 장 전체, AC.7764-7798)

 

 

7763.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의 저주(the damnation of faith separate from charity)인데, 이는 자정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애굽의 장자들이 상징하는 것이며, 그리고 또한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전수되어야 할, 진리와 선에 관한 기억-지식(the memory-knowledges of truth and goodthat were to be transferred to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인데,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요구해야 했던 은금 패물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damnation of faith separate from charity, which is signified by the firstborn of Egypt that were given up to death at midnight; and also the memory-knowledges of truth and good that were to be transferred to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which knowledges are signified by the vessels of silver and of gold that the sons of Israel were to ask from the Egyp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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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0, AC.7623–7751

 

여덟째 재앙, 메뚜기가 땅을 덮다 (1-20절, AC.7629-7707)

아홉째 재앙, 흑암이 땅에 있다 (21-29절, AC.7708-7741)

 

 

7628. 이 장 역시 그 속뜻으로는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자들의 황폐함(the vastation of those who infest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에 대한 주제가 계속됩니다. 황폐함에 대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상태 또는 정도에 대한 묘사가 바로 ‘메뚜기’(the locust)와 ‘흑암’(the thick darkness)인데, 이는 그들과 함께 그 교회의 모든 것을 황폐케 하는, 악으로 말미암는 거짓(falsity from evil devastating all things of the church with them)을 말하며, 이제 다루어집니다.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there is further continued the subject of the vastation of those who infest those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The ninth and tenth states or degrees of vastation, which are described by the “locust” and by the “thick darkness,” whereby is signified falsity from evil devastating all things of the church with them, are now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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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9, AC.7488–7622

 

다섯째 재앙, 가축의 죽음 (1-7절, AC.7496-7515)

여섯째 재앙, 악성 종기가 생기다 (8-12절, AC.7516-7535)

일곱째 재앙, 우박이 내리다 (13-35절, AC.7536-7622)

 

 

7495. 이 장의 주제는 계속해서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자들의 황폐함(the vastation of those who infest the men of the spiritual church)입니다. 그 속뜻으로는 그들의 황폐함에 대한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상태 또는 정도에 대한 묘사이며, 그것을 전염병(the pestilence), 농포에서 터져 나오는 상처(the sore breaking forth in pustules), 그리고 우박 비(the rain of hail)로 묘사하였는데 이는 그들 가운데 그 교회에 속한 것들과 관련된 황폐함을 의미합니다. In this chapter the subject of the vastation of those who infest the men of the spiritual church is continued; and in it in the internal sense is described the sixth, the seventh, and the eighth state or degree of their vastation, which are described by the pestilence, the sore breaking forth in pustules, and the rain of hail, whereby is signified vastation in respect to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church amo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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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 예배를 사모와 단둘이 드리는데도 평안하고 감사한 이유’ (2023/9/5)

 

지난 주일(9/3) 오후, 둘째와 저 아랫동네 어느 까페에서 대화하던 중 창립 10주년에 대한 둘째의 반응이 계속 마음에 남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둘째는 자기는 결코 이런 모양의 창립 10주년을 원하지 않았다며, 몹시 실망한 듯 고개를 돌리더군요. 자기는 그래도 번듯한, 최소한 무슨 상가 건물에 사람들도 좀 북적이고, 화환이며, 무슨 그럴듯한 감사예배 식순도 있고... 하여튼 자기는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강하게 부정을 하더군요...

 

다음은 제가 스베덴보리를 하게 되면서, 즉 주님이 그를 통해 허락하신 글들 중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번역을 하게 되면서 접하게 된 아래 내용들을 통해, ‘아, 그래서 이상하게 나는 이런 예배, 이런 교회가 더 좋았던 거구나...’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위 주석은 총 10,837개의 글로 되어 있는데요, 그 중 414번 글의 3번, 4번 항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 그리고 이 글은 창세기 4장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중 ‘장막에 거주하며’에 대한 주석입니다.

 

414. [3] 말씀(the Word)에서 이 ‘장막’(tent)이라는 용어를 채택, 사랑에 속한 천적(天的, celestial)인 것들과 거룩한 것들을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에는 예배의 거룩한 의식(儀式, rites)을 그들의 장막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 신성모독스런 예배들을 통해 장막을 신성모독하기(to profane) 시작했을 때, 세워진 게 순서대로 성막(the tabernacle)이고, 나중에는 성전(the temple)입니다. 이런 이유로, 장막은 성막과 성전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거룩한 사람을 가리켜 주님의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 같은 걸 상징한다는 것은, 시편을 보면 분명한데요, The reason why the term “tent” is employed in the Word to represent the celestial and holy things of love is that in ancient times they performed the holy rites of worship in their tents. But when they began to profane the tents by profane kinds of worship, the tabernacle was built, and afterwards the temple, and therefore tents represented all that was subsequently denoted first by the tabernacle, and afterwards by the temple. For the same reason a holy man is called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of the Lord. That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s evident in David:

 

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4-6) One thing have I asked of Jehovah,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remain in the house of Jehovah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Jehovah in sweetness, and to visit early in his temple; for in the day of evil he shall hide me in his tabernacle; in the secret of his tent shall he hide me; he shall set me up upon a rock. And now shall my head be lifted up against mine enemies round about me, and I will offer in his tent sacrifices of shouting. (Ps. 27:4–6)

 

[4]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은 그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과 관련하여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천인(天人, celestial man, 천적 인간, 천적 천사, 삼층천 천사)을 그렇게 부르며, 모든 천적이며 거룩한 것들 또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는 그 뒤에 일어난 교회들(고대교회, 유대교회, 기독교회 등)보다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혼자, 즉 자신들의 가정에서 살면서 자신들의 장막에서 지극히 거룩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장막은 신성모독을 당한 성전보다 훨씬 더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를 기념하고자 초막절(草幕, the feast of tabernacles)이 제정된 것이며, 이때 그들은 땅의 소산물을 거두고, 그 기간,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자기들도 장막에서 지낸 것입니다. (레23:39-44; 신16:13; 호12:9)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as to his human essence is the “tent,”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hence every celestial man is so called, and also everything celestial and holy. Now as the most ancient church was better beloved of the Lord than the churches that followed it, and as men at that time lived alone, that is, in their own families, and celebrated so holy a worship in their tents, therefore tents were accounted more holy than the temple, which was profaned. In remembrance thereof the feast of tabernacles was instituted, when they gathered in the produce of the earth, during which, like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dwelt in tents. (Lev. 23:39–44; Deut. 16:13; Hosea 12:9)

 

39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23:39-44)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16:13)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호12:9) (AC.414:3, 4)

 

이상, 윗글을 통해 저는 왜 그동안 규모 큰 교회들과 그 예배들을 힘들어했는지, 그리고 왜 집에서 하는 교회와 이런 가정 예배에 오히려 끌렸는지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는 다음에 소개할 정말 놀라운 내용으로 이어지며,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From Things Heard and Seen)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21.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성(神性, the Divine)을 더 내적으로(內的, interiorly) 받는 천사들이 있고, 덜 내적으로 받는 천사들이 있다. 더 내적으로 받는 천사들은 천적 천사들이라 하고, 덜 내적으로 받는 천사들을 영적 천사들이라 한다. 이에 따라 천국이 두 나라로 구분되는 것이다. 하나는 천적 나라(the celestial kingdom), 다른 하나는 영적 나라(the spiritual kingdom)라 한다.

 

22. 천적 나라를 이루는 천사들은, 그들이 주님의 신성을 보다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 내적인 천사, 또는 더 높은 천사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천국도 더 내적이고, 더 높은 천국이라고 한다. 더 높다, 더 낮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그렇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23. 천적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인 천적 사랑은 주님을 향한 사랑(love to the Lord)이다. 영적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은 영적 사랑이라 부르며, 이는 이웃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이다. 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 선(좋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선은 사랑에 속한다. 따라서 그 두 나라의 선도 하나는 천적 선, 다른 하나는 영적 선이라 한다. 이로 보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이웃 사랑과 구분되는 것처럼, 그 두 나라가 구분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선은 보다 내적인 선이고, 그 사랑도 보다 내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천적 천사들은 더 내적인 천사들이고, 더 높은 천사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24. 천적 나라는 주의 성직의 나라(the Lord’s priestly kingdom)라고도 불린다. 말씀에서는 ‘주의 처소’(his dwelling place)라고 한다. 영적 나라는 주의 왕권의 나라(his royal kingdom)라고도 하며, 말씀에 ‘주의 보좌’(his throne)라고 표현되어 있다. 또 이 세상에 계실 때의 주님을 신성의 천적 측면에서 ‘예수’(Jesus)라 했고, 신성의 영적 측면으로는 ‘그리스도’(Christ)라고 칭했다.

 

25. 주님의 천적 나라에 있는 천사들은 주님의 신성을 보다 내적으로 받기 때문에, 영적 나라의 천사들보다 지혜와 영광에 있어 훨씬 뛰어나다.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므로 더욱 주님과 가깝고 친밀하게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신적 진리(Divine truths)를 계속 그들의 생활 속에 직접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적 천사들은 신적 진리를 먼저 그들의 기억과 사고(thought)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천적 천사들은 신적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 진리를 직관하며, 진리를 마치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본다. 그들은 진리가 옳은지 그른지 추론하지 않는다. 예레미야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된 것이 바로 이들에 대한 말씀이다.

 

33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렘31:33-34)

 

이상, 저는 그 성향이 천적 나라, 천적 천사가 더 끌리고 좋습니다. 물론 제 착각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굳이 가슴 신앙, 머리 신앙으로 이해하자면, 저는 가슴 신앙에 더 기울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이유로, 저는 조용히 아내와 함께 집에서 주님을 거룩하게 예배하는 편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들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천적 나라로, 어떤 사람은 영적 나라로 올라가듯, 그렇게 누구는 이렇게, 또 누구는 저렇게 타고나는 것이며,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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