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 지금 이어지는 주제는 거듭난 사람의 상태인데요, 속 사람이 주(主), 또는 먼저 되고, 겉 사람이 종(從), 또는 나중이 되는 상태입니다. The subject that now follows on is the state of the regenerate man; first, concerning the dominion of the internal man, and the submission of the external.

 

창9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972. 즉, 겉 사람에 속한 모든 것이 속 사람에게 종속되고, 속 사람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절로 3절의 아케이나입니다. 4절, 5절은, 그러나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신앙의 선과 진리를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했던) 갈망(yearnings)에 침수, 잠기게 하거나, 속 사람에게 속한 선과 진리를 가지고 악과 거짓을 컨펌하게 되기 때문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처벌받게 하고, 계속해서 6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영적인 사람, 혹은 하나님의 형상(image)을 그와 함께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Namely, that all things of the external man have been made subject to and serviceable to the internal (verses 1 to 3), but that especial care must be taken lest the man should immerse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yearnings, or by th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internal man should confirm evils and falsities, which must of necessity condemn him to death, and punish him (verses 4 and 5); and thus destroy the spiritual man, or the image of God, with him (verse 6).

 

7절, 이런 일만 피하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입니다. That if these things are avoided, all will go well (verse 7).

 

 

973. 다음 8절로 11절, 홍수 후 인간의 상태입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며, 그 방법은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해서 인간이 태고교회 마지막 후손처럼 멸망당하지 않도록 인간의 상태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It next treats of the state of man after the flood, whom the Lord had so formed that he might be present with him by means of charity, and thus prevent his perishing, like the last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verses 8 to 11).

 

※ 즉, 체어리티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렇게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어 영원히 안전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974. 12저로 17절입니다. 그후, 체어리티를 수용할 수 있게 된, 홍수 후 이어지는 인간의 상태를 ‘구름 속 무지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닮게 됩니다. Afterwards the state of man subsequent to the flood, who is in the capacity to receive charity, is described by the “bow in the cloud,” which he resembles (verses 12 to 17).

 

12, 13절은, 이 ‘무지개’는 그 교회에 속한 사람 혹은 거듭난 사람에 관한 것임을, 14, 15절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도, 16절은, 특별히 거듭날 수 있는 사람도, 그리고 17절에서는, 결론적으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 뿐 아니라 아직 속하지 않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이 무지개는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This “bow” has regard to the man of the church, or the regenerate man (verses 12, 13); to every man in general (verses 14, 15); specifically, to the man who is in the capacity of being regenerated (verse 16); and consequently not only to man within but also to man without the church (verse 17).

 

 

975. 끝으로 19절 이하에서는, 고대교회에 관한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셈’은 내적 예배를, ‘야벳’은 그에 상응하는 외적 예배를, ‘함’은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을, ‘가나안’은 내적 예배와 분리된 외적 예배를 각각 가리킵니다. It treats lastly of the ancient church in general; by “Shem” is meant internal worship; by “Japheth,” corresponding external worship; by “Ham,”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by “Canaa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from verse 19 to the end).

 

이 교회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 및 활동을 통해서, 먼저 자기도 모르게 여러 오류와 곡해, 왜곡들 가운데로 점점 빠져들어갔습니다. 이것이 19절로 21절 내용입니다. This church, through the desire to investigate from itself the truths of faith, and by reasonings, first lapsed into errors and perversions (verses 19 to 21).

 

22절, 내적 예배와 분리된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신앙의 교리 자체를 조롱하며, 그 결과, 그런 오류와 왜곡 가운데로 빠져듭니다. 23절은, 그러나 내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외적 예배 가운데에도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관한 선한 해석과 함께 그들을 넉넉히 품어줍니다. Those who are i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deride the doctrine of faith itself, in consequence of such errors and perversions (verse 22); but those who are in internal worship, and in the external worship thence derived, put a good interpretation on such things, and excuse them (verse 23).

 

※ 즉, 신앙의 교리 중 무슨 연약함들이 보여도 저들처럼 조롱하는 대신 이들, 곧 참된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의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24, 25절입니다. 내적 예배에서 분리된 외적 예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가장 안 좋은 경우이며, 26, 27절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조차 교회에서 그런 아주 낮은 봉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 Those who are in external worship separated from internal, are most vile (verses 24, 25); and yet they are able to perform vile services in the church (verses 26, 27).

 

 

976. 끝으로, 28절, 29절입니다. 첫 번째 고대교회의 기간과 상태가 노아의 년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Lastly, the duration and state of the first ancient church are described by the years of Noah’s age (verses 28, 29).

2021-09-07(D3)-매일예배(2186, 아케이나말씀리딩.창9),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무지개, 노아의 세 아들'.hwp
0.07MB

https://youtu.be/_1JWnstFmk8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7, 아케이나말씀리딩.창9),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무지개, 노아의 세

관련 블로그 : https://bygracetistory.tistory.com/662

youtu.be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7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https://youtu.be/x4mLbHl9ISM

 

한결같은교회.매일예배(9/6, 아케이나말씀리딩.창7-8)

 

youtu.be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6:1-8

 

554.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people before the flood.

 

THE INTERNAL SENSE

 

560.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기 전에 먼저, 홍수 이전 교회의 상황은 어땠는지를 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efore proceeding further we may mention how the case was with the church before the flood.

 

일반적으로는, 후대에 일어난 교회들의 상황과 같았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즉, 주님 강림 전 유대교회의 경우나, 주님 강림 후 기독교회의 경우처럼, 참 신앙 지식의 부패와 타락, 뒤집힘 및 불순물을 섞음 등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홍수 전 교회에 속한 사람의 경우,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서운 신념, 곧 소름 끼치는 망상을 품게 되었고, 신앙에 속한 선과 진리를 역겨운 갈망, 욕망에 철저히 잠기게 하여 그 결과, 그들 안에 리메인스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지경까지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Speaking generally, it was as with succeeding churches, as with the Jewish church before the Lord’s advent, and the Christian church after his advent, in that it had corrupted and adulterate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ut specifically, as regards the man of the church before the flood, he in course of time conceived direful persuasions, and immersed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foul yearnings, insomuch that there were scarcely any remains in them.

 

그들이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사실은 스스로를 질식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리메인스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AC.530), 사람을 짐승 수준의 삶에서 인간의 삶으로 고양하는 것이 바로 이 리메인스이기 때문입니다. When they came into this state they were suffocated as if of themselves, for man cannot live without remains; for, as we have said, it is in the remains that the life of man is superior to that of brutes.

 

리메인스를 가지고, 즉, 주님에게서 온 리메인스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이 될 수도,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 수도, 온갖 종류의 일들을 생각할 수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리메인스 그 안에는 영적, 천적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remains, that is, through remains from the Lord, man is able to be as man,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to reflect upon matters of every kind, and consequently to think and to reason; for in remains alone is ther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561. 그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But what are remains?

 

리메인스는 사람이 유년기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배워 그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과 진리뿐 아니라, 거기서 기원한 모든 상태, 가령, 영유아기 순진무구한 상태, 부모, 형제, 선생님과 친구를 향한 사랑의 상태,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및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상태 등, 한 마디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They are not only the goods and truths that a man has learned from the Lord’s Word from infancy, and has thus impressed on his memory, but they are also all the states thence derived, such as states of innocence from infancy; states of love toward parents, brothers, teachers, friends; states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also of pity for the poor and needy; in a word, all states of good and truth.

 

선과 진리와 함께 기억에 각인된 이런 상태를 일컬어 리메인스라 합니다. 이것은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때 주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도 눈치 못 채게 조심조심 그의 속사람 안에 쌓아가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즉, 악과 거짓에 관련된 것들하고는 철저히 격리됩니다. These states together with the goods and truths impressed on the memory, are called remains, which are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and are stored up, entirely without his knowledge,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things that are proper to man, that is, from evils and falsities.

 

이 모든 상태는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것조차 잃는 것이 없도록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존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도록 전에 이런 경험을 했는데요, 사람의 모든 상태는 그의 영유아 때부터 아주 늙었을 때까지 내세에 그대로 보존될 뿐 아니라 다시 체험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상태는 그가 현세에 살면서 처음 겪었던 상태 그대로 정확히 다시 체험됩니다. All these states are so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that not the least of them is lost, as I have been given to know from the fact that every state of a man, from his infancy to extreme old age, not only remains in the other life, but also returns; in fact his states return exactly as they were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 사람의 사후, 그 영은 둘 또는 세 번의 상태변화를 겪게 되는데 보통은 첫 번째 변화 때, 지상의 모든 기억과 경험 등 외적인 것들이 휴면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즉, 주님이 원하실 때는 언제든지 꺼내어 다시 생생하게 재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영이 자신의 행적을 부인하거나 무엇을 확인해야 할 때 등이 되겠지요.

 

우리 기억에 아로새겨진 선과 진리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이노센스나 체어리티도 마찬가지, 즉, 하나도 잃는 것은 없습니다. Not only do the goods and truths of memory thus remain and return, but also all states of innocence and charity.

 

그리고 악과 거짓의 상태가 재생, 유지 및 다시 휴면상태로 들어갈 때,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심지어 아주 작은 것조차 말이지요, 이때는 주님이 선한 상태들을 가지고 누그러뜨리십니다. And when states of evil and falsity recur—for each and all of these, even the smallest, also remain and return—then these states are tempered by the Lord by means of the good states.

 

이 모든 사실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면, 그는 반드시 영원한 지옥살이, 곧, 영원히 지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AC.468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that if a man had no remains he must necessarily be in eternal damnation. (See what was said before at n. 468.)

 

 

562. 홍수 전 사람들은 결국 리메인스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멘탈 때문인데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관해, 무서울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멘탈적 특성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고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들은 어마어마한 자아 사랑의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을 신으로 여기며, 자기들이 하는 생각은 무엇이든지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people before the flood were such that at last they had almost no remains, because they were of such a genius that they became imbued with direful and abominable persuasions concerning all things that occurred to them or came into their thought, so that they would not go back from them one whit, for they were possessed with the most enormous love of self, and supposed themselves to be as gods, and that whatever they thought was Divine.

 

이런 종교적 신념, 혹은 종교적 설득력, 이쯤 되면 종교적 수준의 자기기만인데요, 이런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어떤 사람들한테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질식시켜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세에서는 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은 다른 영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데요, 이들이 나타나면 이들은 공포스럽다 판명된 자신들의 이 종교적 신념을 주입함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사고능력을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쯤 하고, 나머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이어지는 그 부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AC.1265-1272) No such persuasion has ever existed in any people before or since, for it is deadly or suffocative, and therefore in the other life the antediluvians cannot be with any other spirits, for when they are present they take away from them all power of thought by injecting their fearfully determined persuasions, not to mention other matters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spoken of in what follows.

 

 

563. 이런 종류의 자기기만이 사람을 점유, 점령하게 되면, 이것은 무슨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어 만일 이것이 없었으면 여전히 남아있었을 선과 진리로 하여금 도저히 남아나게도, 더 이상 쌓이게도 하질 않습니다. 또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은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들은 이런 망상의 정상, 끝판왕에 도달, 결국 그들에게 부합하는 종말, 정말 전무후무한 멸망에 이르게 되며, 홍수와 다름없는 범람으로 질식당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종말을 ‘홍수’에 비유하며, 태고인들의 언어습관, 관용적 표현에 따라 같은 것, 곧, 홍수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When such a persuasion takes possession of a man, it is like a glue which catches in its sticky embrace the goods and truths that otherwise would be remains, the result of which is that remains can no longer be stored up, and those which have been stored up can be of no use; and therefore when these people arrived at the summit of such persuasion they became extinct of their own accord, and were suffocated by an inundation not unlike a flood; and therefore their extinction is compared to a “flood,” and also,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most ancient people, is described as one.

 

 

THE CONTENTS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And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hey took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555. 사람과 더불어 교회가 있었던 곳에 갈망(yearnings, 동경, 욕구, appetites)이 일어나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갈망이 바로 ‘딸들’입니다. That with man, where the church was, yearnings—which are the “daughters”—began to reign.

 

※ ‘사람’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를, ‘땅 위’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딸들’은 사람의 의지에 속하는 것들이며, 결과적으로는 갈망, 욕망을 상징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안에 선을 위한 게 있으면 여전히 의지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때는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대홍수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초유의 종말을 앞둔 이 당시 마지막 인류가 가진 갈망, 이 선이 사라진 갈망은 ‘끔찍하다’, ‘지독하다’, ‘혐오스럽다’, ‘더럽다’와 같은 형용사를 붙여야만 할 정도의 갈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신들의 갈망으로 결합, 그 결과, 자기들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음을 확실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라는 표현은 이런 뜻입니다. (1-2절) Also that they conjoin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with their yearnings, and thus confirmed themselves in evils and falsities, which is signified by “the sons of God taking to themselves wives of the daughters of man” (verses 1–2).

 

※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의 교리, 신학, 가르침들을, ‘사람의 딸들’은 선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의지, 곧 혐오스러울 정도로 더러워진 갈망을 말합니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556. 그 결과, 선과 진리의 리메인스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언되는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리메인스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게 하시려고, 사람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은 리메인스를 가리킵니다. (3절) And whereas there were thus no remains of good and truth left, it is foretold that man should be differently formed, in order that he might have remains, which are “a hundred and twenty years” (verse 3).

 

※ 즉, 인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퍼셉션의 유무입니다. 퍼셉션은 지상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하는 태생적 은사, 능력으로서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하다 못해 황송하기까지 한 영적 선물을 그러나 태고교회 후손들은 하찮게 여겼고, 그 결과, 홍수 즈음하여서는 깡그리 박탈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박탈당했다’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은 이런 귀한 하늘의 선물이 타락한 사람들 안에 도무지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홍수로 표현된 종말 역시 사실은 이들이 자초한 것이고요... 결국, 이렇게 소멸될 인류를, 그러나 주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그럼, 퍼셉션을 대신할 새로운 뭔가를 준비, 인류가 여전히 하늘, 곧 나와 연결될 수 있게 해야겠다’ 하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주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대용품이 바로 ‘양심’입니다. 주님은 홍수 후 인류에게는 이 ‘양심’이 있게 하셔서, 이것으로 계속해서 주님과 연결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There were Nephilim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most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557.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기들이 가진 욕망 실현의 도구로 이용하고, 이런 상태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아를 사랑하면서, 남들과 비교, 자기들만이 가진 위대함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하는, 끔찍할 정도로 소름 돋는 망상, 즉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런 자들이 바로 ‘네피림’입니다. (4절) Those who immers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in consequence of this as well as of the love of self conceived dreadful persuasions of their own greatness in comparison with others, are signified by the “Nephilim” (verse 4).

 

※ ‘네피림’은, ‘아,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 하는 신념(persuasion)과 망상(delusions)에 사로잡혀, 거룩하거나 참된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는, 이런 일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그들의 갈망(yearnings)과 욕구(appetites)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신념화했을 때 일어났음을, ‘그들은 용사라’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는 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각각 말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And Jehovah saw that the evil of man was multiplied on the earth, and that all 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every day.

 

558. 이렇게 되고 나자 선과 진리에 관한 무슨 의지나 퍼셉션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절) In consequence of this there no longer remained any will or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verse 5).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는, 진리와 선에 관한 퍼셉션이 전혀 없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Jehovah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fowl of the heavens;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him.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And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Jehovah.

 

559.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주님의 자비(mercy)에 대한 묘사입니다. (6절) The mercy of the Lord is described by “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 (verse 6).

 

※ 6절, ‘한탄하사’는 자비(mercy)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걸 상징합니다. ‘한탄하사’(후회, repent)는 지혜와 관련이 있고,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가 자비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상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 곧 결론지을 수 있는데요, 여호와는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만물을 온전히 영원부터 예견(豫見, foresee)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을 지으셨을 때, 즉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온전하게 하사 천적 인간이 되게 하셨을 때에도 그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지금 여기서 설명 중인 이런 인종이 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후회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들은 이런 갈망과 이런 신념은 사람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입증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 That they became such that their yearnings and persuasions must needs prove fatal to them (verse 7).

 

※ 7절, ‘이르시되 내가 사람을 쓸어버리되’는 인류가 전멸을 자초할 것을,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는 태고교회의 후손이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는 그들의 의지 안에 무엇이 있든지 그것이 그들을 전멸시킬 것을, ‘공중의 새까지’는 그들의 지적 능력 또는 사고능력 안에 무엇이 있든지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는 위에서(cf. AC.587-588) 살핀 대로, 불쌍히 여기심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짐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새로운 교회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아’입니다. (8절) Therefore in order that the human race might be saved, a new church should arise, which is “Noah” (verse 8).

 

※ 8절, ‘노아’는 새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씀은, 주님은 인류가 이렇게 구원받게 될 것임을 예견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이 인류가 구원받는 방법임을 주님은 예견하셨다는 것입니다.

 

 

597. ‘노아’는 고대교회라 하는 새 교회를 상징하는데요, 고대교회라는 명칭은 홍수 전 존재했던 태고교회와, 홍수 후 존재했던 이 교회를 구별해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By “Noah” is signified a new church, whi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for the sake of distinction between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before the flood, and that which was after the flood.

 

이들 두 교회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The states of these two churches were entirely different.

 

태고교회의 상태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거기서 나오는 진리에 관한 일종의 퍼셉션(perception, 지각, 배우지 않고도 주님의 선과 진리를 아는 타고난 능력)을 받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The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such that they ha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good and the derivative truth.

 

고대교회, 혹은 ‘노아’의 상태는, 그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일종의 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The state of the ancient church, or “Noah,” became such that they had a conscience of good and truth.

 

즉, 선량함(goodness)과 진실에 관한 일종의 양심으로 상태가 바뀐 것입니다.

 

태고교회와 고대교회 간 상태의 차이는 이런 차이, 곧 퍼셉션을 갖는 것과 양심을 갖는 것 간 차이였습니다. Such as is the difference between having perception and having conscience, such was the difference of state of the most ancient and the ancient churches.

 

퍼셉션은 양심이 아닙니다. 천적(天的, celestial) 천사들은 퍼셉션을, 영적(靈的, spiritual) 천사들은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Perception is not conscience: the celestial have perception; the spiritual have conscience.

 

태고교회는 천적이었고, 고대교회는 영적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as celestial, the ancient was spiritual.

 

[2] 태고교회는 영들 및 천사들과 어울려 지냄을 통해, 그리고 비전 및 꿈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고,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는 선과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런 걸 인식하게 되자, 이번에는 이런 퍼셉션 능력으로 얻게 된 무수한 인사이트들(insights, 통찰력)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들, 말하자면, 엑시엄(axioms, 자명한 이치, 公理)들을 컨펌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인사이트들은 특정 디테일들을 구성하는데, 넓은 카테고리들이 이런 디테일들로 채워지는 그런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immediate revelation from the Lord by consort with spirits and angels, as also by visions and dreams; whereby it was given them to have a general knowledge of what was good and true; and after they had acquired a general knowledge, these general leading principles, as we may call them, were confirmed by things innumerable, by means of perceptions; and these innumerable things were the particulars or individual things of the general principles to which they related.

 

즉, 천국, 곧 주님의 신적 질서의 나라, 질서정연한 진리 체계가 차곡차곡 각 사람 내면에 자리 잡아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들이 날마다 컨펌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이 원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걸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부합하면 그런 것으로 지각했습니다. Thus were the general leading principles corroborated day by day; whatever was not in agreement with the general principles they perceived not to be so; and whatever was in agreement with them they perceived to be so.

 

즉, 주님의 신적 질서의 근본에 대한 감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 어떤 것이 그 질서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직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천적 천사들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celestial angels.

 

[3] 태고교회의 보편적 원리들, 곧 엑시엄들은 천적이며, 영원한 진리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주님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신다.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사람의 것(own, 사람에게 고유한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등등... 그외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heavenly and eternal truths—as that the Lord governs the universe, that all good and truth is from the Lord, that all life is from the Lord, that man’s own is nothing but evil, and in itself is dead; with many others of similar character.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진리들, 원리들을 컨펌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것들, 생각들에 관한 퍼셉션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And they receive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countless things that confirmed and supported these truths.

 

그들에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었습니다. With them love was the principal of faith.

 

그들로 하여금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그들을 북돋워 주신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cf. AC.32:2, 202, 398) By love it was given them of the Lord to perceive whatever was of faith, and hence with them faith was love, as was said before.

 

그러나 고대교회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고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ancient church became entirely different,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2021-09-03(D6)-매일예배(2182, 아케이나말씀리딩.창6,1-8), '사람의 딸들, 백이십 년, 네피림, 한탄하사'.hwp
0.08MB

https://youtu.be/BcAQjD8rNMk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5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죽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61. 태고교회 자체는,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는데, ‘사람’(아담, man, [homo])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일컬음을 받는 교회입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 천적이라 함, 곧 어떤 사람을 가리켜 천적 인간이다, 어떤 천사를 가리켜 천적 천사다 하는 것은, 그를 다스리는 주된 동기가 사랑인 사람이나 천사를 말합니다. 사랑, 선, 가슴 및 의지 등은 모두 천적 특성들이고, 반면, 신앙, 진리, 머리 및 이해력 등은 영적 특성들입니다. 주님은 천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의지 안으로 직접 들어가시지만, 영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이해력(understanding)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들어가십니다.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62. 태고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 여기 3절의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은 그 아담이 아니라, ‘셋’의 부모 교회인 ‘아다와 씰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속뜻이며, 말씀에서 이런 반복이 나올 때는 무슨 다른 상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얼핏 2장에서 또 한 번 반복되는 그런 경우인데,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영적 사람의 거듭남을, 2장의 창조는 천적 사람의 거듭남을 각각 가리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아담(homo)과 그의 아내’라는 표현은 지금 보고 있는 교회의 부모 교회를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해서, 이 3절의 아담은 4장 1절의 그 아담과 하와가 아닌, 바로 ‘아다와 씰라’를 가리킨다 보는 것입니다.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463.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6절)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는 ‘게난’(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12절), 여섯 번째는 ‘야렛’(15절), 일곱 번째는 ‘에녹’(18절),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21절)로 각각 불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 여기 나오는 ‘날’과 ‘해’, ‘자녀들’ 및 ‘몇 세를 살고’ 하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날’(日, days)은 일반적으로, ‘해’(年, years)는 구체적으로, 각각 때와 상태를 상징하며,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또한 ‘팔백 년’, ‘구백삼십 세’ 같은 표현들의 아케이나는 해당 교회의 수많은 상태 변화들을 의미하는데, 그 수가 아주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큰 수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1’에서 ‘12’까지 기본적인 수에 대한 아케이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하여튼 여기 나오는 이런 큰 수들은 해당 교회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상태와 그 변화들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가 알던 겉뜻대로, 어느 한 개인의 실제 수명이 그렇게 천 년 가까이 오래 살았다는 그런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464.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지각된 것들로부터 골격이 짜여진 교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대신 후손들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4절)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에녹은 그때까지 계시되고, 지각된 태고교회의 교리 혹은 신학, 가르침들을 가지고 일종의 조직신학처럼 다듬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앞서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던지 이때는 쓰임을 받지 못하고 후대를 위해, 사실은 홍수 후 세대이지요, 나중 세대를 위해 따로 보관하신 것이며,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에녹은 일종의 리메인스, ‘남은 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465.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466.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로서, 이름하여 ‘노아’라 하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8-29절)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태고교회(아담교회, 아담에서 홍수 전까지), 고대교회(노아교회, 홍수 후부터 모세까지), 이스라엘교회(모세에서 주님 초림 때까지), 기독교회(주님 승천 후 재림 때까지), 끝으로 주님 오셔서 시작하실 새 교회(새로운 기독교회)가 있습니다.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그려지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 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은 홍수 전과 후를 나누는 아주 중요한 인류의 특징인데요, 이게 있으면 태고교회, 이게 없으면 나머지 교회들입니다. 즉, 홍수 후에 일어난 모든 교회들은 이게 없으며, 대신 양심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며, 아무리 설명을 한들 현생 인류는 못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퍼셉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인데, 설명 불가, 천사들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홍수 전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선물을 기본적으로 타고나던 사람들, 인류였습니다.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것은,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 ‘남은 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 안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사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사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렘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미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십’(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사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암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창18:32)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532. ‘라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폐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Lame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the church vastated.

 

‘자녀들’은 그와 같은 교회를 계속해서 잉태 및 해산하였음을 상징합니다. (30-31절)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verses 30-31)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534. ‘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敎會,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verse 32)

 

 

535. ‘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36. 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존재한 교회들에게 소유되었던 퍼셉션에 관한 많은 내용을 말씀드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어떤 사람들은 퍼셉션을 일종의 계시의 지속으로, 혹은 사람들 안에 심긴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걸로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광범위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는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2021-09-02(D5)-매일예배(2181, 아케이나말씀리딩.창5), '아담의 계보, 에녹, 하나님과 동행, 노아'.hwp
0.08MB

https://youtu.be/La8R-fVJwyQ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4

 

324.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리들, 이단이라고도 하는 교리들을 여기서 다루며, ‘에노스’라고 하는, 나중에 새롭게 일어난 교회도 다룹니다. Doctrines separated from the church, or heresies, are here treated of; and a new church that was afterwards raised up, called “Enosh.

 

※ 여기 언급되는 헤로시(heresies), 즉, 이단은 ‘태고교회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한 종교적 입장들(positions)’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25. 태고교회는 사랑을 통한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faith in the Lord through love; but there arose some who separated faith from love.

 

※ 사랑 따로, 신앙 따로,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신앙하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 태고교회는 원래 주님 사랑, 주님 신앙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 영적 통찰력)을 통해 그들 심비(心碑)에 직접 새겨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해의 열과 빛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물에게 지각되듯 그들에게는 사랑과 신앙이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신앙을 따로 떼어내는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신앙은 하는 ‘가인’이라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교리요, 가르침이요,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이며, 마치 자기들이 무슨 새로운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인 양 말한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로 융합, 결합된 것이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선조는 그냥 알고 누리던 ‘신앙’이라는 것을 이들은 이제 학습을 하고, 땀 흘려 배워야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 이웃을 향한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 자선, 기부, 이웃 사랑)를 ‘아벨’이라 각각 이름하였습니다. (1-2절) The doctrine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was called “Cain”; and charity, which is love toward the neighbor, was called “Abel.” (verses 1–2)

 

※ 교리(doctrine)에 대한 다른 번역은 가르침(teaching), 신학(theology) 정도가 좋겠습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1장부터 11장, 아브라함 등장 전까지는 실제 역사가 아닌, 고대인들의 문학 양식인 스토리텔링입니다. 즉, 이 기간 등장하는 인명(人名)은 실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닌, 그 시대에 존재했던 교회의 이름, 교리 혹은 신학의 이름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 저는 현재까지 밝혀진 지질학적 지구의 연대인 45억 년을 받아들입니다. 즉, 말씀(The Word)을 겉 글자의 뜻(letter sense, external sense)이 아닌, 속뜻(inner sense, internal sense)으로 읽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창세기 1장도 전통적인 육일간의 천지창조로 읽기보다는 한 사람의 거듭남의 여섯 상태, 또는 단계로 읽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쩌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가 이 45억 년 전체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구의 연대를 꼭 말씀에 명시적으로 일대일 대응시키실 필요를 느끼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인류의 구원, 곧 사람의 거듭남에만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326. 각각의 예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인의 제사’로,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아벨의 제사’로 각각 표현하였습니다. (3-4절) The worship of each is described, that of faith separated from love, by the “offering of Cain”; and that of charity, by the “offering of Abel.” (verses 3–4)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체어리티로 드리는 예배는 열납될 수 있었으나 분리된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4-5절) That worship from charity was acceptable, but not worship from separated faith. (verses 4–5)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327.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은 악한 상태가 되었는데요, 이걸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5-6절)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verses 5–6)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28. 체어리티를 보면 그 신앙의 퀄러티(quality, 質)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만일 신앙이 주(主)가 되려 하거나, 체어리티 위에 올라 높아지려고 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7절) And that the quality of the faith is known from the charity; and that charity wishes to be with faith, if faith is not made the principal, and is not exalted above charity. (verse 7)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29. 신앙을 분리하여 체어리티보다 앞세우는 사람들로 인해 체어리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로 표현한 것입니다. (8-9절)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verses 8–9)

 

※ 체어리티에서 신앙을 떼어낸 후, 신앙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체어리티는 흔적도 없이 씻겨 사라집니다.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30. 사라진 체어리티를 ‘핏소리’로 (10절), 왜곡된 교리를 ‘땅에서 저주를’로 (11절), 거기에서 나오는 악과 거짓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12절)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그리고 그들은 자원하여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라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13-14절)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그러나 나중에 체어리티가 심기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님은 신앙을 불가침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것을 ‘가인에게 표를 주사’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15절)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 가인은 일종의 남은 자, 리메인스입니다. 홍수 후 인류에게는 홍수 전 인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님과 인류가 연결되는데요, 그때 쓰시기 위해 비록 가인 같은 신앙일지라도 주님은 보호하시며, 보전하시는 것입니다. 홍수 후 인류는, 홍수 전 인류와 달리 먼저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홍수 전 사람들, 특히 태고교회, 아담교회 사람들은 주님 사랑의 삶, 체어리티의 삶을 타고날 수 있었고,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생소해했습니다.

 

※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는 것을 무슨 눈에 보이는 특별한 표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단순히 주님의 방법으로 그를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그리고 이전 입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가리켜 ‘에덴 동쪽을 향하여 거주하는 가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16절)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led the name of the city after the name of his son, Enoch.

 

331. 이 이단의 엄청난 확장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고 있습니다. (17절) The amplification of this heresy is called “Enoch.” (verse 17)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332. 이 에녹으로부터 샘처럼 솟아난 이단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그 끝에 라멕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라멕이라는 이단은 신앙이라는 게 전혀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18절)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verse 18)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333.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는 그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새롭게 일어난 교회를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야발’로, 영적인 것들을 ‘유발’로, 그리고 자연적인 것들을 ‘두발가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22절)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verses 19–22)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And Lamech said unto his wives, Adah and Zillah, Hear my voice, ye wives of Lamech, and with your ears perceive my speech, for I have slain a man to my wounding, and a little one to my hurt.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If Cain shall be avenged sevenfold, truly Lamech seventy and sevenfold.

 

334. 신앙과 체어리티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일어난 이 교회, 그리고 이것에 가해졌던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폭력으로, 주님이 표를 주시면서까지 정하신 가장 신성한 금지가 가장 심각하게 더럽혀졌습니다. (23-24절) That this church arose when everything of faith and charity was extinguished, and had violence done to it, which was in the highest degree sacrilegious, is described. (verses 23–24)

 

※ 주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시면서까지 그를, 곧 신앙을 보호하신 것은, 이것으로 나중에 인류를 구원하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걸 건드리는 것은, 마치 이듬해 쓸 종자를 건드리는 것이어서 주님이 특별히 구별하시고, 금하신 것인데, 라멕이라는 이단 끝판왕에 이르러 이마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이를 미리 아시고, 이때를 대비, 아다와 씰라를 일으키십니다. 항상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And the man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eth; for God hath appointed me another seed instead of Abel; for Cain slew him.

 

335. 요약입니다. ‘가인’으로 상징되는 신앙 이후 체어리티가 사라졌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이 일어났고,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체어리티가 새롭게 심기게 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5절) A summary of the subject is given: that after faith, signified by “Cain,” had extinguished charity, a new faith was given by the Lord, whereby charity was implanted. This faith is called “Seth.” (verse 25)

 

※ 가인이라는 신앙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신앙, 바람직스럽지 못한 신앙, 사랑에서 자신을 떼어내 자발적으로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인류 구원의 종자로 쓰기에는 좀... 그런데 이렇게 온전히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신앙, 셋이라는 신앙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구원의 파노라마는 이 새로운 신앙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336. 신앙에 의해 이식된 체어리티를 이름하여 ‘에노스’, 또는 또 다른 ‘사람’(man, homo)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교회의 이름입니다. (26절) The charity implanted by faith is called “Enosh,” or another “man” [homo], which is the name of that church. (verse 26)

 

 

337. 이번 장이 태고교회의 퇴보, 또는 그 교리의 왜곡과, 그 결과 그 이단들과 종파들을 가인과 그 후손들의 이름들 아래 다루고 있는 까닭에, 참된 교회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교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교회의 이단들과 종파들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As this chapter treats of the degener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falsification of its doctrine, and consequently of its heresies and sects, under the names of Cain and his descendants,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how doctrine was falsified, or what was the nature of the heresies and sects of that church, unless the nature of the true church be rightly understood.

 

태고교회는 천인(天人, a celestial man)이었으며,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 외 다른 신앙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교회였음은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Enough has been said above concerning the most ancient church, showing that it was a celestial man, and that it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was of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이 사랑으로 그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신앙, 혹은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하는 퍼셉션(perception, 知覺,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언급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번, 203번 글 참조) Through this love they had faith from the Lord, or a perception of all the things that belonged to faith, and for this reason they were unwilling to mention faith, lest it should be separated from love, as was shown above. (n. 200, 203)

 

[2]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인이며, 시편에서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일컬어 왕이라, 천인을 일컬어 왕의 아들이라 하고 있지요. Such is the celestial man, and such he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in David, where the Lord is spoken of as the king, and the celestial man as the king’s son: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Give the king thy judgments,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he mountains shall bring peace to the people, and the hills in righteousness. They shall fear thee with the sun, and toward the faces of the moon, generation of generations.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be no moon. (시72:1, 3, 5, 7)

 

여기서 ‘해’는 사랑을 상징하며, ‘달’은 신앙을, ‘산들’과 ‘작은 산들’은 태고교회를, ‘대대로’는 홍수 후에 일어난 교회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신앙이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보면,)By the “sun” is signified love; by the “moon,” faith; by “mountains” and “hills,”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of generations,”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until there be no moon” is said because faith shall be love. (See also what is said in Isaiah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3] 이런 교회가 태고교회였고, 이런 교회가 그들의 교리였습니다. Such was the most ancient church, and such was its doctrine.

 

그러나 이것은 지금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체어리티는 신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체어리티가 주(主)가 되는 것입니다. But the case is far different at this day, for now faith takes precedence over charity, but still through faith charity is given by the Lord, and then charity becomes the principal.

 

고대에 있었던 교리 왜곡의 시작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해 냈을 때부터라는 것을 이런 사실, 곧 태고교회의 본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It follows from this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doctrine was falsified when they made confession of faith, and thus separated it from love.

 

이런 식으로 교리를 왜곡하거나, 사랑으로부터 신앙을 떼어내거나, 그냥 신앙만 고백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가인’이라고 부른 것이며,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Those who falsified doctrine in this way, or separated faith from love, or made confession of faith alone, were then called “Cain”; and such a thing was then regarded as an enormity.

 

※ 여기 글 번호들은 스베덴보리 저, ‘Arcana Coelestia’의 글 번호들이며, 이 참고 표시 ‘※’는 역자의 보충 설명이라는 표시입니다. 이 표시 글들은 아래 영어문장이 없습니다.

2021-09-01(D4)-매일예배(2180, 아케이나말씀리딩.창4), '가인과 아벨, 라멕, 아다와 씰라, 셋, 에노스'.hwp
0.08MB

https://youtu.be/VfQXlwcVxyw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3:1-13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곧 자신의 본성(own)을, 사랑할 정도로 원했던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루는 장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 즉,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거진 패션(passion, 격정, 욕정)에 이를 정도가 된 것입니다.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본성 사랑으로 인해 이제 그들은 감각(sense)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기 시작했는데, 이때 이 감각적인 부분을 ‘뱀’으로,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본성 사랑을 ‘여자’로, 그리고 합리(合理), 이성(理性)을 ‘남자’로 표현하였습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 즉, 자아 사랑에 이끌린 나머지 이들은 이때부터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뱀은 감각 능력, 여자는 자아 사랑, 그리고 남자는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192. 그래서 뱀, 즉,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하여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이 과연 그런지를 보게 하는데, 이걸 가리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이라 하고, 그리고 덩달아 이런 걸 덥석 동의한 남자의 이성을 ‘그도 먹은지라’ 한 것입니다. (1-6절)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들을 말합니다. 뱀, 즉, 감각들이 여자, 곧 자아 사랑으로 하여금 이 주님 신앙의 교리들을 의심하게 한 겁니다. 이럴 때, 사람의 이성 또한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자아 사랑에 휩쓸려 버리고 말게 된 그런 내용입니다.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193.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습니다. ‘눈이 밝아져’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가 상징하는, 남은 퍼셉션 (7-8절), 그리고 그들이 치마라고 만들어 가렸던 무화과 나뭇잎들 (7절), 부끄럽다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과 자백 (10-13절) 등을 볼 때, 그들 안에 아직은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 여기 ‘퍼셉션이 남았다’는 것은 그 흔적이 조금 남은 것이고요, ‘치마’는 그저 아랫도리 가운데만 살짝 가릴 정도인 가리개(loincloth)를 말합니다. 자연적 선이란, 세속적 종류의 선량함을 말합니다.

 

※ 이 상태가 바로 자아 사랑에 빠진 나머지 감각적 삶을 추구, 이성도, 합리도 다 마비된 사람의 실존인 것입니다.

 

 

 

창3:14-19

 

234. 결국은 홍수를 만나게 될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상태가 여기 기술됩니다. 그리고 그때 교회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을 주십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235. 감각으로 파악이 안 되는 것들은 도무지 믿으려고를 하지 않는 감각 파트, 이게 바로 ‘뱀’인데요, 이런 태도 때문에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self) 혹은 본성(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을 ‘다스리도록’ 이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위 본성(own)은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autonomy)을 말합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238. 그 다음은 합리의 퀄러티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남자, 남편(합리)은 동의했고,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결국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성은 없고 대신 추론만 남게 되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합리의 품질’(the quality of the rational)이란, ‘합리적 능력의 본성’(the nature of this rational capacity)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 추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왜곡된 논리만 남은 겁니다. 궤변이라고도 하지요.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239. 저주와 황폐,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그들의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황폐’로 번역한 영어 베스테이션(vastation)은 현대 영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현대 영어로는 루이네이션(ruination, 파괴), 디스트럭션(destruction, 파멸) 정도가 되겠습니다.

 

※ 영어 페린(ferine)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은 페럴(feral)을 사용하며, 그 뜻은 죽음을 초래하다, 치명적이다입니다. 이 ‘죽음을 초래하는 본성’이란, 그들의 본성이 동물적인 본성, 짐승과도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사람’이라는 호칭은 본래 오직 주님에게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이 ‘사람’이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첫 사람들, 곧 아담 교회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감히 이 용어를 자기들에게까지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려면 자기들에게 주님의 성품, 신성, 주님과 닮은 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19절 본문에서 왜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나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241. 태고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사실은 그 사물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그들의 시력은 그저 돕는 도구였을 뿐이었고, 그래서 그 결과는 그들의 말, 언어였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아, 지금 저 사람이 하고픈 말은 사실은 이거구나...’ 하고 딱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뒤 무슨 장황한 말을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그것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늘과 주님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그저 도구일 뿐이어야 하는 돈이 안타깝게도 원리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창3:20-24

 

280. 태고(太古) 교회와,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즉, 그 교회가 끝났을 때, 결국 홍수로 이어진 그 후손들을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81.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 신앙의 생명으로 시작한 교회이며, 이 교회를 가리켜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천적이었던 태고교회’란, ‘하늘의 속성을 가졌던 태고 시대 참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이 있었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하였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여기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란 ‘천적 선의 영적 종류’(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 즉, 천적 선이 일종의 영적 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선에는 천적 선, 천적 영적 선, 그리고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으며, 천적 영적 선은 광채 나는 흰옷을, 자연적 선은 가죽옷을 입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세속적 선(earthly good)입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83.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자연적 선이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거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더라면, 그들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여기 ‘영생할까 하노라’의 영생은, 지옥에서 영생하는 것, 곧 지옥 같은 상태에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 다시 말해, 주님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신성모독을 하기 때문인데요, 이 신성모독은 마치 영혼의 코로나 같아서 사람의 영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신성모독이란 주님의 것에 사람의 사사로움을 섞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사람의 영은 성과 속이 뒤섞여 영원히 그를 천국과 지옥으로 서로 끌어당겨 찢는 듯한 고통, 즉, 지옥과도 같은 고통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숨기셨습니다. 유대인의 속성상, 그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신성모독의 길을 걸을 것이며, 그것은 곧 그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것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시인 후 부인하여 신성모독의 길에 들어서느니 차라리 알고 시인조차 하지 않는 게, 모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맞춰 나름 최대한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84.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에덴동산’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을 갖춘 천적 인간, 천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가 이 모든 것을 박탈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그 아름다웠던 태고교회가, 일곱째 날, 천적 인간, 천인(天人)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그 교회, 그 순결한 주님 신앙의 교회였던 아담교회가 이렇게까지 퇴행, 다시 창1:2 상태인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285.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을 박탈당했고, 그들의 본성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신념들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로 말미암아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이 모독을 당할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가 상징하는 것이 이런 내용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그에게서 선에 관한 모든 의지와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를 깡그리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그것들과 분리되었고, 그렇게 ‘사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는 무슨 비밀스런 신앙의 일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이런 뜻인 것은, ‘에덴동산 동쪽’은 天的인 것이며, 지성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룹’이란, 저런 사람이 신앙의 일들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두루 도는 불 칼’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원하고, 그 결과 그런 것들로 고착된 자아 사랑입니다. 그는 정말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즉, 거룩한 것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하시는 이유입니다.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2021-08-31(D3)-매일예배(2179, 아케이나말씀리딩.창3), '선악과, 가죽옷, 에덴동산에서 쫓겨남'.hwp
0.09MB

https://youtu.be/OoGVV0Bi-Pc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8-25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 교회의 후손들 이야기인데, 이들은 선조들과 달리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本性)(주3), 자신의 것, 자기 자신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주3) is here treated of.

 

※ 즉, 자기 주도적 삶(a sense of autonomy)을 지독하게 추구하며 산 사람들, 주님에게서 철저하게 독립하고자, 분리하고자 했던,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된 사람들입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32. 사람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혼자 알아서 세상에 기대 살거나 자신의 본성(own)을 따라 사는 걸 더 원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류에게 허락된 그런 본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즉 주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더욱 원하는, 아주 고약한 본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여기, ‘허락’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마지못해서’에 가까운 뜻입니다. 주님은 아무리 창조주시라 해도 사람의 자율, 자주적인 선택에 개입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셨음에도 끝내 사람이 주님이 아닌 지옥을 선택하는 한, 그건 주님도 어쩌실 수가 없으십니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133. 그래서 먼저 주님은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지는 가운데 있습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혹시 주님이 주시는 것들, 정말 좋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음을 돌릴까, 주님을 향할까 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이미 육체와 세상 쪽으로 눈이 돌아간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이런 영적, 천적인 것들의 가치를 못 알아봅니다. 말초적이며, 근시안적인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134.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 본성(own)의 상태 안으로 깊이 인도되며, 어떤 또 하나의 본성(own)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을 여자로 빚어지는 갈빗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자기 본성’은 피조물로서의 고유 본성,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 여기 ‘또 하나의 본성’은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본성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a sense of autonomy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사람의 본성과 붙어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 둘은 하나로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 ‘남자가 부모를 떠나’, 즉, 속사람으로부터 멀어져 겉이 된 사람, 그러나 주님의 자비로 주님의 천적, 영적 생명이 본인 모르게 입류에 의해 겉, 곧 육과 하나가 됩니다. 마치 리메인스를 차곡차곡 쌓으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순진함이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덕분에 사람은 여전히 주님께 열납될 수 있습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저들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저들이 천진난만하였음을 상징합니다. 주께서 저들이 수용 불능 상태가 되는 걸 막으시려고, 저들의 본성 안으로 그동안 천국의 천진난만함을 늘 공기처럼 공급하신 덕분입니다.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는 ‘사람(man, homo)’으로 회자되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이 교회의 후손과 그들이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지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각주

 

3. 이 표현에 대한 원전 표현은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입니다. 다른 데서는 ‘오운’(own, 특성, 특징, 특색, 자기 것, 소유)이라는 표현으로 의역되고 있습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프로프리우스(propius)의 형용사로서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것인)’(one’s own), ‘고유한, 원래의’(proper), ‘개인 소유의’(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 특유한, 특수한’(special), ‘독특한, 남다른, 독자적인’(particular), ‘개인적인’(peculiar) 등입니다.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이 말의 중성 표현인 프로프리움이라는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면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특성’(property) 및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되는 점’(distinguishing sign), ‘특유함’(characteristic) 등입니다.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영어 형용사 ‘오운’(own)에 대한 웹스터의 정의들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 독특한’(peculiar)인 것을 보면, 이 ‘오운’이야말로 라틴어 프로프리우스에 대한 아주 딱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으며, 만일 라틴어 프로프리움에 딱 맞는 명사 하나를 고르는 경우에도 이 ‘오운’ 하나면 최적, 이것이면 라틴 원전에 아주 근접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2021-08-30(D2)-매일예배(2178, 아케이나말씀리딩.창2,18-25), '아담과 하와'.hwp
0.08MB

https://youtu.be/xl5TpAP42SY

 

Posted by bygracetistory
,

1. ATWR : Arcana The Word Reading, 아케이나 말씀 리딩

2. 오늘부터 창세기 50장, 출애굽기 40장을 매일 한 장씩 이렇게 읽겠습니다.

 

창1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6. 육 일, 또는 기간들은,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된 수많은 일련의 상태들인데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 six days, or periods, which are so many successiv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are in general as follows.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7. 첫 번째 상태는 선행 상태인데, 두 가지, 유아기부터 거듭남 바로 직전까지의 상태를 말합니다. The first state is that which precedes, including both the state from infancy, and that immediately before regeneration.

 

이 상태를 일컬어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이라 합니다. This is called a “voi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이때 첫 움직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자비인데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입니다. And the first motion, which is the Lord’s mercy, is “the spirit of God moving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8. 두 번째 상태는 주님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들 사이, 하나의 구분이 생기는 때입니다. The second state is when a distinction is made between thos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nd those which are proper to man.

 

주님에게 속한 것들을 이름하여 말씀에서는 ‘리메인스’라 하며, 여기서는 특별히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말하는데, 이 지식들은 유아기부터 배워 온, 그래서 차곡차곡 쌓인, 그러나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를 때까지는 우위를 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The things which are of the Lord are called in the word “remains,” and here are especially knowledges of faith, which have been learned from infancy, and which are stored up, and are not manifested until the man comes into this state.

 

오늘날(1750년대 유럽) 이 상태는 시험이나 불행 혹은 큰 슬픔의 상황 같은 때가 아니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데요,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면 그는 육신이나 세상, 즉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런 육체에 속한 일들은 마치 죽은 것처럼 휴면상태에 들어갑니다. At the present day this state seldom exists without temptation, misfortune, or sorrow, by which the things of the body and the world, that is, such as are proper to man, are brought into quiescence, and as it were die.

 

그렇게 겉 사람에게 속한 일들이 속 사람에게 속한 일들과 분리가 됩니다. Thus the things which belong to the external man are separated from those which belong to the internal man.

 

이때 속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이 바로 '리메인스'이며, 주님이 이때 쓰시려고 지금까지 그 사람 안에 간수해 오신 것입니다. In the internal man are the remains, stored up by the Lord unto this time, and for this use.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9. 세 번째 상태는 뉘우침의 상태입니다. 이때 사람은 그의 속 사람으로 말미암아 신앙적이고 종교적인 말도 하고,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기부, 자선, 선행)의 일들 같은 선행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그 안에 활동할 수 있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가 이런 일들이 자기한테서 나오는 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The third state is that of repentance, in which the man, from his internal man, speaks piously and devoutly, and brings forth goods, like works of charity, but which nevertheless are inanimate, because he thinks they are from himself.

 

이런 선들을 가리켜 ‘’, 그리고 ‘씨 맺는 채소’, 나중에는 ‘열매 맺는 나무’라 합니다. These goods are called the “tender grass,” and also the “herb yielding seed,” and afterwards the “tree bearing fruit.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ourth day.

 

10. 네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애정 어린 사랑의 사람, 조명받은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그는 앞서 실제로 경건하게 말도 하고 선도 행했지만 그건 그가 땀 흘려 시험을 치루고, 애를 쓴 결과로 그런 것이지, 신앙이나 체어리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즉, 겉으로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의 속 사람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라는 불이 켜졌고, 그래서 이를 가리켜 ‘두 큰 광명체’라 하는 것입니다.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 “luminaries.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of the heavens. 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11. 다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의 말을 하며, 그래서 자기가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압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분명, 활동하는 생명력이 있으며, 그래서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하늘의 새’라 합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heavens.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12. 여섯 번째 상태 때 사람은 신앙으로, 그리고 그래서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고, 선을 행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가 행하는 일들을 가리켜 ‘생물’이라, ‘짐승’이라 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렇게 그가 신앙과 사랑, 둘 다를 가지고 즉시 그리고 함께 행하기 때문에, 즉, 사랑과 신앙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를 가리켜 영적이라 하며, ‘형상’이라 합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그의 영적 삶은, 신앙의 지식들이 속한, 그리고 체어리티의 일들이 속한 그런 것들, ‘먹을거리’라고 하는, 그런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되며, 그의 자연적 삶 역시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밝아지고, 지속됩니다. 그래서 둘 사이, 곧 영적 삶과 자연적 삶 사이, 사랑이 우위를 점하여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 전투가 일어납니다. 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 “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13. 거듭남 가운데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 상태에까지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오늘날 거의 절대다수가 겨우 첫 번째 상태에, 일부가 겨우 두 번째, 그리고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곱 번째 상태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e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2021-08-27(D6)-매일예배(2175, ATWR.창1), '창조 첫 육 일, 거듭남의 여섯 상태'.hwp
0.07MB

https://youtu.be/zuLdUAj-BnE

 

Posted by bygracetistory
,

https://youtu.be/pTG2SgZQdmA

 

Posted by bygracetistory
,

https://youtu.be/4z8WGVp8d2I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