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쉰다고 무심코 스마트폰이나 PC를 켜 웹툰이나 유튜브, 인터넷이나 게임 등을 하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영적 실상을 알게 되면 정신이 번쩍 나는 아주 안타까운 습관입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이때 하늘, 곧 천국을 향한 창이 닫히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천국 입류(入流, influx)의 유입이 끊기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옥의 각종 위험에 노출,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멀리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걸로 창세기부터 말씀을 읽거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와있는 천사들은 말씀에 들어있는 아르카나(arcana, 秘義, 주님이 겉 글자 안에 담아두신 속뜻, 천국 천사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이 아르카나로 기록되어 있음)를 통해 크게 감동, 주님이 자기들한테 주신 큰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지켜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더 이상 무방비 상태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상하게 일상 중 일이 계속 꼬이고, 악과 거짓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며,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지금 내 상태가 지옥 영들이 가까이하기 알맞은 상태는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 지옥은 모두 상태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비슷하면 가까이, 다르면 멀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내 속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천국이 내게 열릴 수도, 지옥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일상 중에도 늘 천국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늘 천국과 연결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말씀 생활입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유튜브, 게임 등으로 보내는 시간들이 제법들 되실 텐데, 이제는 의지를 사용하셔서 조금씩 스마트폰의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의 일상들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편리하게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창세기 2장 3절까지를 창세기 1장으로 했었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하나님’이라는 호칭 때문인데, 아직 영적으로 죽어있는, 즉 아직 거듭남의 과정이 시작도 안 된 사람들(창1:2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이거나 영적 인간(靈的, spiritual man)이 되어가는 중인 사람들, 곧 거듭남의 과정 중인 사람들(창1:3-2:3)한테는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의 두 호칭인 ‘여호와’와 ‘하나님’ 중 후자가 해당되며,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는 내내 ‘하나님’으로 호칭하는데 그것이 창세기 2장 3절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호칭은 2장 4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것이죠. 창1:1-창2:3까지가 하나, 창2:4부터가 또 하나,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아래 말씀처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2, 3)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 또한 분명히 나오는 걸로 보아 그렇다면 분명 천적 인간의 시작이기도 하여 좀 어리둥절한 게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호칭과 ‘일곱째 날’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인 데에는 무슨 아르카나가 있는 건지 아직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면 공유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두 호칭, ‘여호와’와 ‘하나님’은 각각 선(good)과 진리(truth) 혹은 사랑(love)과 신앙(faith)으로 연결되며, 거듭남이 완료되어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 man)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진리로, 그러니까 신앙으로 먼저 주님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 중 먼저 이해로 접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하나님’ 호칭이 나오는 것이지요.
주님의 신성 호칭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것처럼, 주님의 신적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 호칭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예수’는 선 또는 사랑, ‘그리스도’는 진리 또는 신앙으로 연결됩니다.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1-3) 1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3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Gen. 2:1-3)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2장 첫 시간, 천지창조 일곱째 날, 곧 거듭남 일곱 번째 상태인 안식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메시지를 겸한 설명, 곧 추임새는 ‘※’로 구분합니다.
시작합니다.
1절(AC.82, 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82
이 말씀은 인간이 이제 영적으로 ‘여섯째 날’이 되었음을, 즉 ‘여섯째 날’이라고 해도 될 만큼 충분히 영적임을 의미합니다. ‘천’(天, heaven)은 그의 속 사람(internal man), 곧 내적 존재(inner being)를, ‘지’(地, earth)는 그의 겉 사람(external), 즉 외적 존재(outer being)를 말합니다. ‘만물’(the army of them)은 사랑과 신앙, 그리고 그에 대한 지식을 말하며, 이는 앞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상징된 것입니다.속 사람을 ‘하늘’, 겉 사람을 ‘땅’이라 하는 것은, 앞서 전 장에서 이미 인용된 말씀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에 다음 이사야 말씀들을 추가하면,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사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이들 말씀으로부터, ‘하늘’과 ‘땅’이 사람에 관한 서술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런 표현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고는 있지만, 말씀의 내면들은 다음과 같은 속성, 곧 교회에 관한 언급은 또한 그 교회의 모든 부분에 관한 언급일 수도 있는, 일단 그 자신, 교회가 아니면 그가 교회의 어떤 부분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한, 마치 자신이 주님의 성전이 아닌 자는 성전, 곧 교회와 천국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 절대 될 수 없는,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에 대하여 ‘사람’(man)이라는 단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83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고 합니다. 이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기 때문, 즉 협력, 제휴, 힘을 합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사랑, 즉 천적 원칙(the celestial principle)이 주요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나 영적인 게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앙보다는 사랑이, 영적인 거보다는 천적인 거가 주도적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이것, 곧 천적인 걸 우선하는 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2, 3절(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2장 3절까지를 1장으로 했었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호칭 때문인데, 아직 영적으로 죽어있는, 즉 아직 거듭남의 과정이 시작도 안 된 사람이거나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중인 사람들, 곧 거듭남의 과정 중인 사람들한테는 주님의 신성의 두 호칭인 ‘여호와’와 ‘하나님’ 중 후자가 해당되며,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는 내내 ‘하나님’으로 호칭하는데 그게 이 2장 3절까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호칭은 4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것이죠. 참고로 이 두 호칭은 각각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으로 연결되며, 거듭남이 완료되어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진리로, 그러니까 신앙으로 먼저 주님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 중 먼저 이해로 접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하나님’ 호칭이 나오는 것이지요. 주님의 신성 호칭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것처럼, 주님의 신적 인성 호칭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예수’는 선 또는 사랑, ‘그리스도’는 진리 또는 신앙으로 연결됩니다.
84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 man, heavenly person)이 ‘일곱째 날’입니다. 주님이 육 일간 일하신 결과이기에 이 천적 인간을 가리켜 ‘그가 하시던 일’(his work)이라고 합니다. 그때 모든 전투, 곧 갈등, 충돌이 그치며, 그 결과 그런 주님의 상태를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rest from all his work)라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 일곱째 날을 특별히 성별(聖別), 히브리어로 ‘안식’(rest)이라는 뜻의 ‘שבת’(샤바트, the sabbath)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으로 사람은 창조되고(created), 형성되며(formed) 만들어집니다(made). 이 모든 것이 말씀들로부터 아주 분명합니다.
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그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일이라 하셨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밝혀진 적 없는 아르카나(arcana, 秘義)입니다.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고, 영적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 거의 없습니다. 앞서 81번 글을 보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런 무지의 결과 사람들은 이 둘을 동일시했습니다. 일곱째 날 관련,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sabbath)인 것과 관련, 주님은 자신이 진정한 안식일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8)
이는 주님이 참 인간이시며, 진정한 안식일이심을 의미합니다.
※ 49번 글(창1:26)에,
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구성원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한테도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참 인간, 참 사람은 오직 홀로 주님 한 분뿐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그분의 나라를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하십니다.
[2]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이후 이 교회를 계승한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가장 주님의 안식일(the sabbath of the Lord)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주님의 안식일을 후대의 모든 교회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모든 이어지는 가장 내적(inmost) 교회들, 즉 후대 교회들의, 주님과 가장 가까운, 가장 깊은 부분 역시 안식일이었다는 말이지요. 모든 거듭나는 사람 역시 그가 천적이 되면, 즉 그가 천국 본성을 발전시키면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그가 주님의 모양(a likeness of the Lord)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닮아가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육 일간의 전투 혹은 수고가 선행합니다.
※ 59번 글(창1:30) 일부 인용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전투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며,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militant)이라고 합니다. 거듭나기 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전반적으로 그저 탐욕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 그를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끊임없이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그런 걸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져서 결국은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고, 그렇게 해서 사람은 개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런 것들이 유대교회에서 육 일간의 수고와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도입된 어느 것 하나 주님과 주님 나라에 대한 표상(representative)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설명이 궤(the ark, 여호와의 법궤)로도 표상되었습니다. 궤가 나아갈 때와 궤가 쉴 때로 말이지요. 궤가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는 것으로는 영적 전투와 시험(combats and temptations)을, 그리고 궤가 쉬는 것으로는 일종의 평화의 상태(a state of peace)를 표상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궤가 나아갈 때, 모세는 말하기를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민10:35-36)
위 민수기 본문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쉴 곳을 찾은’(민10:33) 것은 바로 여호와의 언약궤라 하였습니다.
[3]천적 인간의 쉼(The rest of the celestial man)을 이사야에서는 안식일을 가지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14)
이것이 천적 인간의 질(質, quality)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 욕구(his own desire), 즉 욕망이 아닌,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good pleasure), 곧 그분의 뜻을 따르는데, 이것이 그의 ‘즐거움’(desire)입니다. 그 결과, 그는 내적 평화와 행복(internal peace and happiness)을 누립니다. 이것이 위 말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의 의미이며, 동시에 그는 겉으로도 평온과 큰 기쁨(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을 누리는데, 이것이 바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의 의미입니다.
※ 천사들한테서 볼 수 있는 이 상태는 천국 그 자체의 상태입니다. 그들이 이 상태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은 평화와 쉼 가운데 있으며, 주님도 쉼 가운데 계십니다. 그들이 주님과 이미 결합하였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수고롭게 일하지 않는데요, 이는 그들이 모두 이때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천적 인간의 다른 표현입니다.
86
‘여섯째 날’이 된(has become) 영적 인간이 이제 천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is beginning to be) 상태를 여기서 먼저 다루고 있는데, 이때가 유대교회에서 말하는 ‘안식일 저녁’(eve of the sabbath)입니다. 안식일의 거룩함을 저녁부터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천적 인간은 이제 말씀드릴 ‘아침’입니다.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4)
※ 유대인의 안식일은 여섯째 날인 금요일 일몰부터 일곱째 날인 토요일 일몰까지입니다. 이와 관련된 걸 하나 말씀드리면, 유대 지역 일몰이 보통 오후 5시라고 할 때,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때가 오후 3시쯤이라 두 시간 만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아주 촉박한 상황임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 관련 본문들을 읽으시면 한결 와닿으실 겁니다. 하나 더, 유대인들은 결코 월요일, 화요일... 같은 요일 명칭을 쓰지 않습니다. 그 영어식 표현의 유래가 고대 앵글로 색슨계 신들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창세기 1장 표현대로 첫째 날, 둘째 날... 같은 명칭을 사용합니다.
87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sabbath) 또는 ‘쉼’(rest)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이 될 때 전투가 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 없어 멀리 달아납니다. 전투를 치른 장본인, 당사자가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식하시니라’(rested) 하는 것입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그리고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 두 곳에서 각각 파송된 천사들과 지옥의 영들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최소 천사 둘과 지옥의 영 둘이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와 이해로 매 순간 일평생 천국 또는 지옥을 향해 나아가다가 이때, 즉,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거듭남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옥의 영들이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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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오셨고(has fought for), 지금까지 그를 창조해 오셨으며, 지으시고 만들어 오셨기(has created, formed, and made)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하는 것이며, 한 번 더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he rested from all his work)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한 일’(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에,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새 창조, 혹은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하다’(create), ‘짓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을 다음 두 가지 경우와, 또 창세기 본 장과 앞 장에서 아주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위 구절 중,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 하는 부분, 그리고 같은 이사야 다른 구절, 예를 들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그리고 창세기 1장과 지금 2장,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하는 부분들입니다. 속뜻을 생각할 때, 이런 용법을 만나면 늘 그 표현들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다음 케이스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주님을 가리켜 ‘창조하시는 분’(creator), ‘빚으시는 분’(former), ‘만드시는 분’(maker)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이지요.
이상으로 창세기 2장 첫 번째 시간인 ‘일곱째 날, 안식일’의 속뜻을 다루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안식일 관련, 우리가 흔히 오해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바로잡으면서, 이것을 오늘의 결론 삼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25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렘17:24-25)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서는 절대로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고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서만 해야 한다. 천국 천사들의 상태가 바로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즉 자기들로 말미암아서는 그 어떤 것도 의도하거나 행하지 않는다. 심지어 더 나아가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말이다. 그들과 주님과의 결합은 이런 걸로 되어 있다’라는 뜻입니다.
사람한테서 나오는,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은 악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주님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은 선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또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한테는 모든 것이, 심지어 생명의 지적, 의지적 둘 다 아주 작은 데까지 흘러들어오며, 그 결과 신앙과 체어리티(charity)의 개별적, 전반적인 것들한테까지 흘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말입니다.
오늘 전체 본문입니다.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1-3)
창조의 육(六) 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 중 셋째 날 풀, 채소, 나무 창조에서 다섯째 날 수중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 땅의 짐승 창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인 넷째 날에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신 이유는, 머리 신앙, 지식 신앙,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신앙, 그러니까 잘난 체하는 신앙에서 가슴 신앙, 고백 신앙, 모든 공을 주님께 돌리는 신앙, 그러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신앙으로 넘어가려면 중간에 사랑과 신앙이라는 불이 궁창이라는 속 사람 안에 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 사람 안에 일단 이 두 큰 광명체, 곧 사랑과 신앙의 불이 켜지면, 그때부터 그동안 차갑고 냉랭하던, 그래서 못 움직이던(inanimate) 식물 신앙이 이제는 따뜻하고 온기 넘치는, 움직이는(animate) 신앙, 살아있고 생기 넘치는 동물 신앙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천국의 모든 힘과 능력이 우리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으로, 그리고 우리 몸 각 지체와 부분 및 각종 장기로 흘러들어오며, 영육 간 우리 몸 전체가 천사의 돌봄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각종 장애와 질병, 묶임과 매임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아멘, 할렐루야!
아, 그리고 한 가지! 그런데 이 두 큰 광명체가 속 사람 안에 창조되는 것은 본인이 원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식물 신앙에만 머무를 뿐, 주님의 이 두 큰 광명체, 곧 사랑과 신앙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주위에서 무슨 중보 기도를 해도 소용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저런 영적 전투란 전투는 다 겪은 후, 그러니까 갈 데까지 다 간 후에야 겨우 원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사실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이지만요. 그러니까 질러가면 되는 길을 괜히 빙 돌아가지 마시고 얼른 하루속히 주님께 엎드리시고, 주님의 두 큰 광명체,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이 내 속 사람 안에 창조되어 불이 환하게 켜지기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귀신이 들렸거나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몇 년째 누워계시는 등 그러니까 얼핏 우리 보기에 자력으로는 주님을 구하실 수 없을 것 같은 분들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 속 사람이 준비되어 주님의 말씀, 곧 천국의 능력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분들한테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음서 수많은 사례가 그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속 사람이 중요합니다. 천국도, 치유도, 묶임과 매임에서 풀림도 모두 속 사람의 상태와 그 역량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는 그저 거들 뿐입니다. 본인이 원해야 합니다. 특히 속 사람이 말이죠.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15-20)
‘창1, 거듭남, 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 (2)’(창1:28-31, AC.55-63)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24-31) 28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Gen. 1:24-31)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두 번째 내용이며, 이로써 1장을 마감하게 됩니다.
※ 제가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주석 원본을 가급적 원본 그대로 소개하는, 참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요즘 주일 설교라 할 수 없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쉽게 풀어 전하겠답시고 감히 손댔다가 완전 엉뚱한 소리 하는, 큰 참사가 날까 봐서입니다. 저는 아직은 그냥 살짝살짝 추임새 넣는 정도로도 충분하며, 이마저도 사실 제게 와있는 천사들의 퍼셉션(perception)을 조금 알아듣는 것이어서 안전하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그걸 수용하는 사람의 영적 역량, 곧 그 사람의 영적 눈높이에 맞춰 그 깊이가 조절되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메시지를 겸한 설명, 곧 추임새는 ‘※’로 구분합니다.
시작합니다.
28절(AC.55)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55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 즉 신앙(faith)과 사랑(love) 간 결합을 일종의 결혼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good)을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truth)를 ‘번성’(multiplications)이라 하였습니다.
※ 실제로 천국 역시 남녀의 결혼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상처럼 무슨 ‘아이를 낳는’ 몸 결혼이 아닌,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마음의 결혼, 곧 전혀 다른 결혼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0장, ‘천국 안의 결혼’(Marriages in Heaven)을 읽어보세요.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겔36:11-12)
※ 위 구절 중 일부만 볼드인 이유는 원본에서는 거기만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man)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 인간을, ‘전 지위’(ancient times)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beginnings)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나게 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직 거듭나는 중인 사람은 그 최종 목표가 영적 인간이며, 이때는 늘 진리가 먼저입니다. 그렇다는 건 거듭난 후 일곱째 날인 천적 인간이 되면 이때부터는 선이 먼저라는 말이 되겠지요. 일단은 신앙으로 출발, 나중엔 사랑으로라고 해도 같은 말입니다.
[2]이해가 의지와, 즉 신앙이 사랑과 연합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일종의 ‘결혼한 땅’(married land)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사62:4)
이때 열리는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12:50)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이렇듯 지상 혈연의 천국 상응을 늘 염두에 두는 태도가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오바(over)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데요, 자기 사랑이라는 욕심에 잠식된 자녀 사랑이 아닌, 오직 주님 사랑 안에 잘 보존된 정말 깨끗하고 순결한 자녀 사랑, 내 자식, 내 손주를 보더라도, 또 내 부모, 내 조부모 등 내 가문을 보더라도 그걸 주님 나라의 선과 진리가 이 세상에 구현된 걸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며, 주님의 열두 제자같이 말입니다. 이건 영적 시야에 관한 문제라, 그리고 혈연이라는 건 평생에 걸친 문제라 정말 중요한 얘깁니다.
[3]진리와 선이 많아졌을 때, 땅은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 즉 사람을 돌보실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겨자씨 한 알’(grain of mustard seed)은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the least of all seeds)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그가 자기 스스로 그 선을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던 그가 거듭남의 어떤 상태 가운데 있게 되면서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4]결국 신앙이 사랑과 결합함으로써 점점 자라 ‘풀’(herb)이 되더니, 마침내 결합이 완성되면서 ‘나무’(tree)가 되어, ‘공중의 새들’(birds of the heavens)이 ‘그 가지에 깃들게’(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나 지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들게’는 기억-지식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영적일 때뿐 아니라 영적 인간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하신 것입니다.
29절(AC.56, 5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56
천적 인간(天的, The celestial man)은 천적인 것들(celestial things)로만 기뻐합니다. 그것들이 그의 생명에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천적 양식(celestial food)이라고 합니다. 영적 인간(靈的, The spiritual man)은 영적인 것들(spiritu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 이유 역시 그것들이 그의 생명과 맞기 때문이며, 이번엔 영적 양식(spiritual food)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적 인간(自然的, The natural man)은 자연적인 것들(natur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양식(food)이라고 하며, 주로 기억-지식으로 구성됩니다.
※ 그러니까 영적 인간이 자연적 인간더러,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자연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느냐?’, 혹은 ‘당신은 왜 이런 걸 이해를 못하느냐?’라든지, 반대로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천적 인간더러,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그렇게 사느냐?’, 혹은 ‘당신은 왜 늘 천국, 천국만 하느냐?’라며 무시, 조롱, 비난, 멸시 같은 걸 하면 안 됩니다. 저마다 자기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선과 진리에 관한 거라면 말입니다.
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새(use)와 관련된 모든 진리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는 신앙의 선인데, 여기서 ‘열매’(fruit)는 주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씨 가진 나무’(seed producing fruit)는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씨 가진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하시는 것입니다. 천적 양식을 나무의 열매라 하는 것은 다음 장을 보면 분명한데요, 다음 장에서는 천적인 사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는 에스겔에서 하신 주님 말씀들만 인용합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겔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는 ‘성소’(sanctuary)이신 주님의 생명과 자비를 의미합니다. ‘열매’는 그들의 양식이 될 지혜이며, ‘잎사귀’는 ‘약재료’(medicine)라는 이름으로 쓰임 받게 될 지성입니다. 한편, 영적 양식을 ‘풀’(herb)이라고 하는 건 시편을 보면 나옵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2)
※ 다음은 ‘쓰임새’(use)와 관련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2장, ‘천국의 기쁨과 행복’(Heavenly Joy and Happiness, HH.395-414) 402번 글입니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은 쓰임새 안에 모아져 있고 나타나 있다. 그것은 쓰임새가 천사들이 지닌 사랑과 이타심에서 비롯된 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사는 그의 쓰임새에 맞게 그가 쓰임새를 사랑하는 정도만큼 즐거움을 누린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에서 나온 즐거움임은 사람 몸의 오감에 비해 보면 알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는 각기 그 쓰임에 따른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시각에는 아름다움과 형태가, 청각에는 조화된 소리가, 후각에는 향기가, 미각에는 맛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각각의 감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고찰에 의해 알 수 있으며, 상응원리를 알면 그 기능을 더 완전하게 알 수 있다. 시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시각이 사고력, 즉 내적 시각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청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청각은 주의집중을 통해 사고력과 의지 둘 다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뇌와 폐에 작용하고, 미각은 위장을 거쳐 간접적으로 온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기능 때문에 각기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촉각의 더 순수하고 정묘한 즐거움인 결혼의 즐거움이 다른 모든 즐거움보다 뛰어난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증가와 그에 따른 천사의 증가에 공헌하는 쓰임새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즐거움이 오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 안에 있고, 쓰임새에 달려 있는 곳인 천국이 그 안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
30절(AC.58, 59)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58
동일인, 곧 영적 인간의 자연적 음식을 여기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간의 자연적 속성을 ‘땅의 모든 짐승’(wild animal of the earth)과 ‘하늘의 모든 새’(fowl of the heavens)로 상징하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 시편을 보면, 거기 그의 자연적, 영적 양식 둘 다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시104:14)
여기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이 같은 시편 앞 구절들인 11, 12절에서 언급한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둘 다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11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12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시104:11-12)
59
여기 자연적 인간의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vegetable and the green of the herb)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적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자연적 속성, 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전투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며,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militant)이라고 합니다. 거듭나기 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전반적으로 그저 탐욕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 안에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아주 정상이며, 적어도 본인이 목회자라면 교인 하나하나, 성도 하나하나를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모두 안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악과 거짓의 사람이 선과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태생적으로 지옥에 적합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 사람은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그리고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에서 파송된 두 종류의 천사들과 악한 영들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최소 두 명의 천사와 두 명의 악한 영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와 이해로 매 순간 일평생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일생이며,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 그를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끊임없이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그런 걸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져서 결국은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고, 그렇게 해서 사람은 개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인생 막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회심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이지요. 악한 영들이 아무리 끈질겨도 그들이 우리 주님의 한결같으심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무슨 의로운 습관을 결심했지만 반나절이 못 되어 또 넘어지더라도, 그리고 똑같은 결심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더라도,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나 자신을 정말 못 믿겠다 하더라도 이런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을 믿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결심, 다시 정진하는 태도, 자세가 필요합니다.
※ 주님은 우리와 달리 우리 안의 악을 한방에 어떻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 악조차 우리의 생명이심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놀라우심은 그 악조차 우리를 돌이키시는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선하고 진실한 모든 것, 즉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 오직 이런 것들만 선하고 진실한데요, 이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주아주 극도로 증오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에게 양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채소와 푸른 풀’에 비교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들과 달리 주님은 그에게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에 비교되는 양식도 주시는데요, 이는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이며, 주님은 이 양식을 일정 간격으로 사람에게 계속 주십니다.
※ 여기서 우리는 악한 영들의 정체와 그들이 주는 달콤한 것의 그 숨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결국은 보잘 없는 ‘채소와 푸른 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곧 그 안에 선과 진리가 있어 우리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그래서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에 들게 하시는 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즉 악한 영들이 주는 것은 짝퉁, 모조품, 가짜인 반면, 오직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진품, 정품, 진짜라는 것입니다.
[2]주님이 사람을 매 순간, 아니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라도 막아주지 않으셨으면, 인간은 즉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영들의 세계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 및 신앙과 관련된 것들을 향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지독한 증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지난 수년간, (저는 분명히 몸 안에 있었음에도) 저세상의 영들, 특히 아주 못된 영들과 본의 아니게 어울려 왔습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저는 수천의 영들에 둘러싸이기도 했고, 그들은 저를 향해 독을 뱉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은 저를 향해 우글거렸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제가 주님의 보호 아래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해 경험으로, 저는 정말 영들의 세계와 그 본성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현재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생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왜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지 하는, 영적 전투에 대하여 정말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주제,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도 전혀 의심 없이 믿기에는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도저히 쉽지 않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이셨는데요, 그것은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다루겠습니다.
31절(AC.60-63)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60
앞의 상태들에 대해서는 단지 ‘좋았더라’(good)라고만 하시는 반면, 이 상태를 가리켜서는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하시는 이유는, 지금은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이 마치 서로 결혼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61
신앙의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고, 주님 사랑, 이웃 사랑(love to the Lord and our neighbor)에 속한 모든 것을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합니다. 전자는 사람의 이해에, 후자는 사람의 의지에 속합니다.
※ 조금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머리 신앙은 영적이요, 가슴 신앙은 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태생적 특성에 가깝지만, 하여튼 주님은 천적 천사들은 가까이, 영적 천사들은 천적 천사들 다음으로 가까이하십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특성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가급적 너무 교리, 교리 하지 마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62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하여 그 시기와 상태를 일반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섯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그의 창조의 날들(the days of his creation)이라 합니다. 전혀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서서히 그는 먼저 뭔가가 되고,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섯째 날을 향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째 날에 그는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 됩니다.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즉 영적인 사람은 형상, 곧 주님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며, 천적인 사람은 그 영적인 사람 안에 담기는 주님이십니다.
63
그를 위해 악과 거짓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시는 한편, 주님은 이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서 확실하게 하십니다.
※ 다음은 이 ‘주님이 나를 위해 대신 악과 거짓에 대항하여 싸우심’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60장, ‘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들’(The Malice and Heinous Artifices of Infernal Spirits, HH.576-581) 577번 글입니다.
천사에게 지혜와 지성이 있는 것처럼 지옥 영들에게는 그만큼의 악의와 교활함이 있다. 사람의 영은 몸을 벗어나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사적 영이 그의 선 안에 있다면, 지옥적 영은 그의 악 안에 있다. 앞에서 자주 설명했듯이 모든 영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인 것은 영이 그 자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적 영은 그의 선에서, 지옥적 영은 그의 악에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악 자체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 악에 포함된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2]사람이 몸을 입고 살 동안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받는 법의 제재와 이득, 명성, 평판을 얻을 희망 또는 그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의 제재로 그 영의 악이 억눌려 있었고, 따라서 그 악의 참모습이 밖으로 터져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는 사람의 영에 있는 악은 그가 세상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꾸미는 외적인 정직함, 올바름,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 등으로 포장되고 가려져 있다. 이런 가면 뒤에서 그 악은 너무도 단단히 밀폐되고 숨겨져 있어 그 자신도 자기 영이 그렇게 엄청난 악의와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즉 사후에 영이 되면 드러날 자기의 본성이 악마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3]사후에는 그런 악의가 스스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악하다. 악은 하나에서 수천 가지 종류가 파생하는데 그중에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는 내게 허락된 수많은 경험으로 그 악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내게 영으로는 영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몸으로는 자연계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은 너무도 엄청나서 그 천 분의 일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증언한다. 그 악이 너무도 커서, 만일 사람이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결코 지옥에서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온 천사들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위 292, 293번 글 참조). 그러나 사람이 신성을 인정하고 신앙과 이웃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주께서는 그를 보호하실 수 없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지옥 영들에게 돌아서며, 그렇게 되면 그의 영은 자기와 동질의 악의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4]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을 그가 달라붙는 악에서, 그리고 지옥의 영들과 교류함으로써 스스로 끌어들인다고 할 수 있는 악에서 끊임없이 떼어내신다. 사람이 신성을 부인하면 양심의 내적 제재를 받지 못하는데, 사람이 양심의 내적 제재로 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외적 제재로 떼어내신다. 외적 제재는 앞에서 말한 대로 법에 대한 두려움과 이득, 명성, 평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즐거움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잃거나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악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영적 선으로 인도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영적 선을 대하면 그 즉시 남을 꾀고 속이려고 선함과 정직함과 올바름을 가장함으로써 그 선을 술책과 교활함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교활함은 그의 영에 들어있는 악과 결탁하여 그 특성을 주입함으로써 악에 형태를 부여한다.(HH.577) //
전투의 때는 주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는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빚으신 작품(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그의 모든 행위의 원리가 될 때까지, 이때 전투가 그치는데요,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이 일이 아주 순조롭게 되어 드디어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이 일어날 때가 바로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하시는 때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를 주님의 모양대로(as his likeness) 행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거듭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영적 인간은 그릇, 천적 인간은 내용입니다. 그릇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듯 주님의 목표, 즉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천적 인간의 상태가 바로 안식의 상태요, 안식일입니다.
※ 천적 인간은 가슴 신앙이며, 매사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의 동기가 주님 사랑인 상태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의도하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이 여섯째 날 끝에 악한 영들은 떠나고, 선한 영들이 대신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국, 혹은 천적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곳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 우리는 악을 직접 상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본성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악을 상대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와 있는 지옥의 영들을 상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투는 주님과 악한 영들 간 싸움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의 최종단계에서 이제는 의지로도 주님을 사랑하여 매사에 주님 편에 서면 악한 영들은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만 우리를 포기하고 떠납니다. 우리 안에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게 되어 드디어 싸움이 끝나고 쉼이 찾아오는데, 이 쉼은 주님의 쉼입니다.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싸워오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주님이 쉬시는 걸 표상한 것이며,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을 가리켜 ‘내 안식일’이라 하신 것입니다.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30) //
이상으로 창세기 1장 여섯째 날에 관한 2주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섯째 날 전체 본문을 다시 한번 봉독합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24-31)
창조의 육(六) 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에 관한 이 전체 이야기 중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한가지는 셋째 날 풀, 채소, 나무 창조에서 다섯째 날 수중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 땅의 짐승 창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에 넷째 날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잘난 체하는 신앙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신앙으로 넘어가려면 중간에 사랑과 신앙이라는 불이 켜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점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의 속뜻 (2025/8/23)
‘우리의 형상’(our image)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곧 거듭남의 최종 목표인 영적 인간(spiritual man)을, ‘우리의 모양’(our likeness)은 주님을 닮은, 곧 영적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천적 인간(celestial man)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는 각 사람, 특히 거듭남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에게 와 있는 천사들을, ‘사람’은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인 안식일로 표상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와있는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타고난 악과 거짓으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와 있고, 천사들은 사람 안의 천국과 지옥 간 균형을 맞추시고자 주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사람이며, 그래서 각각 최소 둘씩 와 있는 것입니다. 즉 ‘의지’에 대해 의지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 ‘이해’에 대해서도 이해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가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입니다.
‘만들고’는,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이 모든 번거로운(?) 일, 곧 끊임없이 달래시며, 선과 진리를 향해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하시고 힘주시는 이 모든 일이 천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겉보기엔 그렇지만, 사실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위 말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는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세 하나님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즉 삼신(三神) 사상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창1, 거듭남,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 (1)’(창1:24-27, AC.44-54)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4-27) 24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Gen. 1:24-27)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용이 길어 2주에 걸쳐 다루게 되며, 오늘은 먼저 24절로 27절까지이고,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구분합니다. 특별히 설명은 ‘※’ 부호로 구분합니다.
24, 25절(AC.44-48)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44
사람은 땅(the earth)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이 심기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산, 즉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의 일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의 일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는 않는 것은 마치 우리는 믿음대로 살지는 않지만 믿고는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을 갖게 되며, 아래 구절에서 주님이 ‘어리석다’(foolish)하신 사람들처럼 됩니다.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20절)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과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45
태고 시대(太古, the most ancient times)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련된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의미, 이해했는데, 그래서 선지서들과 구약 말씀에서도 늘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은 악하다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짐승은 선하다 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악들은 악한 짐승들, 가령, 곰, 늑대, 개 등으로 표현하는 반면,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가령,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의미하는데, 이 본문은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더 낮은 것들, 즉 몸(body)과 더 연결된 것들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는데, 이는 탐욕과 쾌락(cupidities and pleasures)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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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beasts)이 사람의 애정,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먼저 에스겔입니다.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요엘에서는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시편에서도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시73:22)
예레미야에서는 거듭남을 다루면서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 28)
[2]‘땅의 짐승’(Wild animals)도 유사한 의미인데요, 호세아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욥기에서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욥5:22, 23)
에스겔에서는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이사야에서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에스겔에서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겔31:6)
이것은 앗수르(the Assyrian)에 관한 말씀인데요,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며, 영적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비유됩니다.
시편입니다.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시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들이 언급되는데요, 바로 ‘용들’(whales), ‘과수’(fruit tree), ‘짐승’(wild animal), ‘모든 가축’(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입니다. 이것들이 사람 안에 있는 살아있는 원리들(living principles)을 가리킨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도록 호명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3] 선지서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데,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선을 ‘가축’이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과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7:11)
※ AE.462에 의하면, 여기 ‘모든 천사’(the angels)는 일층천, 즉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을, ‘장로들’(the elders)은 이층천, 즉 중간 천국 천사들을, ‘네 생물’(the four animals)은 삼층천, 즉 가장 높은 천국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또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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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말씀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또한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the external)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the internal)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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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 즉 겉에서 속으로 진행할 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이해에 속한, 신앙 관련 어떤 원리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animate) 것이며,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처음엔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 말을 하다가 드디어 의지에 속한, 거기서 나오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선을 행하기 시작하면 드디어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며, 이때 그로 말미암는 것들을 가리켜 ‘생물’(living soul), ‘가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도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 그러니까 ‘머리 신앙’으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 드디어 ‘가슴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영적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가슴으로 한다는 건 생활 속 모든 말과 행동을 주님 신앙, 주님 사랑으로 하는 걸 말합니다.
26절(AC.49-5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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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구성원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한테도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 처음에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들에게 있어 ‘사람’은 오직 주님뿐이셨기 때문입니다.
[2]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man), ‘사람의 아들’(son of man)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 즉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렘4:23, 25)
※ 예레미야 당시 상황,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 보니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든 교회든 그 안에 리메인스, 곧 주님의 선과 진리가 남아 있어야 사람이요 교회인데 당시 유대와 예루살렘은 그런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라는 것이지요.
[3]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사람으로(as a man) 나타나셨습니다. 에스겔입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겔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人子,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 14)
[4]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son of man),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구름을 타고’(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인 반면, ‘능력과 큰 영광으로’(power and great glory)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인데요,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지요.
※ 태고교회가 주님을 경외하여 감히 자기를 가리켜 ‘사람’이라는 표현 사용하는 걸 삼갔다는 설명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이렇게 경외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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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imag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으로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한테는 영들과 천사들이 최소한 둘씩 와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 이 사실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영들을 통한 영들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한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영’들은 중간 영계의 영들을 말하며, 특별히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중간 영계의 영들은 모두 천국 아니면 지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아직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매사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이때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겨우 가이드만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가지고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되며, 이때 천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그가 가장 지독한 지옥에서 덜 지독한 지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거밖에 없습니다.
[3]그러나 그가 거듭남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다스림(rule)과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겉으로는 천사들이 다스리는(lead) 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며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하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 위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라는 내용 앞에 양심이 찔립니다. 저는 분명 거듭남 가운데 있는 것 같은데도 악과 거짓에 대해 솔직히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저는 그동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삼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삼신(三神)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삼위일체와 삼신 사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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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likeness)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이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즉 닮음, 유사함(similitude)입니다.
※ 형상, 이미지를 그릇으로 보면,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얼핏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등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을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image)인데,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 36)
그를 일컬어 ‘친구’(friend)라고도 하시지요.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 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likeness)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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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영적이면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에,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신 것입니다.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반대로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이 시편에서 자신을,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모양인 천적 인간을 묘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8:6-8)
그래서 여기 먼저 ‘들짐승’이, 그리고 차례대로 ‘새’, ‘바다의 물고기’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한 사랑, 즉 무엇을 의도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하고는 다른 점이 영적 인간은 먼저 ‘물고기’와 ‘새’가 나오고, 나중에 ‘들짐승’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 물고기와 새는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며 이 이해는 곧 신앙에 속합니다.
※ 이 ‘영적’, ‘천적’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자기 형상’(his image)은 신앙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인 신앙은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는 반면, 후자인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하는데요,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뒤따라 나오는 거지만 천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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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의미하는 것, 그 속뜻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이 비의(秘義, 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그들 행복과 기쁨에 있어 최고의 원천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지각하고자(perceive)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모두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內的, internal)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것들로만 기뻐했습니다.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육안으로는 그저 볼 뿐, 그러나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그 영적 천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의 사람,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 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복’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외적인 것들은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내적인 것들로 돌리게 하는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내적인 것들에서 천적인 것들로, 그렇게 그들의 모든 것 되신 주님께로,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자기들 결혼의 행복의 근원으로 지각한(perceived) 천국의 결혼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인간의 이해를 남자(male), 의지를 여자(female)라 하였고,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일 때, 그걸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 태고교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는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나중에 관습이 된 말들이 나왔는데요, 선에 관한 교회의 애정으로부터 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딸’(daughter), ‘처녀’(virgin), 이 경우, ‘시온의 처녀’(virgin of Zion), ‘예루살렘의 처녀’(virgin of Jerusalem) 등으로 묘사했지요, 그리고 또한 ‘아내’(wife)라 하였습니다. 이들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장 23절과 3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오늘 본문의 전반부인 24절로 27절의 속뜻을 살피며,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대신했습니다.후반부인 28절로 31절은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영적 인간, 곧 주님을 사랑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여섯째 날 상태이며, 여기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 안식일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육일 간의 상태들은 모두 여기까지 오기 위한 단계별 과정들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에 있었던 일들은 거듭나는 중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였습니다.
이 창세기 1장 설교 원고를 여러 번 숙독, 충분히 이해하셔서 저마다 주님이 돕고 계시는 자신의 거듭남 전 과정에 열심히 협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창6:1-8은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인류 첫 교회 시대인 태고교회 시대, 곧 첫 교회인 아담에서 마지막 교회인 라멕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즉 신앙에 관한 가르침(the teachings of faith)을 말합니다. 원래 태고교회는 퍼셉션(perception)의 시대여서 이런 표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모습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딸들’(the daughters of man)은 갈망(yearnings, cravings), 즉 간절히 원하되 눈이 돌아갈 정도로 원하는 걸 말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완전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보통 진리, 교리, 가르침 같은 건 이해(understanding)를 거쳐 의지(will)로 들어옵니다. 이 둘 사이에는 합리(rational, 이성, 추론)가 다리 역할을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홍수 직전 사람들의 상태는 갈 데까지 간 상태여서 중간에 필요한 합리와 이성을 생략, 바로 신앙의 신비로 직행하고자 했습니다.
그 최종 상태가 바로 ‘네피림’(Nephilim)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탁월함에 맛이 간 나머지 모든 거룩하고 참된 것을 가볍게 여긴 자들, 곧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생각한 자들이지요. 이런 일은 사람들 속에, 교회 안에 ‘리메인스’(remains)가 완전히 고갈될 때 일어납니다.
사람, 곧 교회가 이 상태, 이 지경이 되면 주님은 기존 교회를 닫으시고, 새 교회를 여십니다. 이때 각 교회 시대마다 주님이 남겨두시는 ‘남은 자’, 곧‘리메인스’의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여십니다.이때는 바로 ‘노아’(Noah)라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창1:20-23) 20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of the heavens. 21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2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Gen. 1:20-23)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그 다섯 번째 시간, 곧 다섯째 날에 관한 내용입니다. 절로는 20절로 23절입니다.
20절(AC.39-41)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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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이 불이 붙어 속 사람 안에 배치된 후, 그 빛을 겉 사람이 받으면서 일단 사람은 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서도 그걸 자기가 하는 줄로, 진리를 말하면서도 그걸 자기가 말하는 줄로 여겼는데요, 사람이 이렇게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한, 사람은 소위 살아왔다고 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은 죽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안에는 악하고 거짓된 것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선 그 자체인 그런 선을 사람은 자기 힘으로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선한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선한 것을 의도하는 것조차 절대 불가능하며,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선한 것을 절대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신앙의 교리를 보면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마13:37)
또 다른 데서 하신 주님 말씀처럼 선은 그 유일하신 참 근원 되시는 분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올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9)
[2]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 주님은 사람을 소생시키실 때, 즉 그로 하여금 생명을 향해 거듭나게 하실 때, 주님은 먼저 그가 선을 행하는 것도 자기요, 진리를 말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걸 허락하시는데요, 그 이유는 그때는 사람이 그밖에 무슨 다른 걸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 그때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선과 진리는 오직 홀로 한 분이신 주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사실을 믿도록(to believe), 그리고 나중에는 지각하도록(to perceive)그를 인도할 무슨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동안은 그에게 있는 진리와 선은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곧 못 움직이는 것(inanimate)에 비유되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가 사랑과 신앙으로 생생해져서(vivified)자기가 행하는 모든 선과 말하는 모든 진리를 역사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그는 먼저 ‘물에서 번성하는 생물들’(the creeping things of the water), 이어서 ‘땅 위를 나는 새들’(the fowls which fly above the earth), 끝으로 ‘짐승들’(beasts), 곧 이 모든 움직이는 것들, 그래서 ‘생물’(living souls)이라 하는 것으로 비유됩니다.
먼저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좀 살펴보면, ‘하나님’은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도 않았거나 거듭나는 중인 사람이 주님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창세기1장은 그 최종 목표가 영적 인간(靈的, spiritual man), 곧 여섯째 날 상태가 되는 것이므로1장 내내 주님은 ‘하나님’으로만 나오십니다. 반면, ‘여호와’는 거듭남이 완료된 상태, 곧 일곱째 날 안식일 상태가 된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 man)이 주님을 부르는 호칭이며, 그래서 창세기2장4절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여호와’와 ‘하나님’은 둘 다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에 대한 호칭이지만, 전자는 신성에 대한 천적 호칭, 후자는 영적 호칭입니다.
참고로, 주님의 신적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에 대한 호칭인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도, ‘예수’는 주님의 신적 인성에 대한 천적 호칭이고, ‘그리스도’는 영적 호칭입니다.
천적인 것들은 사랑(love), 선(good), 해(sun)등이고, 영적인 것들은 신앙(faith), 진리(truth), 달(moon)등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인 삼층천은 천적 천국인 반면, 중간 천국인 이층천은 영적 천국입니다. 일층천은 자연적 천국입니다. 천적 천국은 주님의 신성 중 선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천사들로 구성되는 반면, 영적 천국은 진리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천사들로 구성됩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보통 개신교 주일예배 마칠 때 하는 축도를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13장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에서 시작된 기도문인데요, 저는 이 표현이 어쩐지 삼신 사상을 부채질하는 것 같아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사용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이지요. 이 표현 안에 구주 되신 한 분 주님, 그리고 주님의 신성과 신적 인성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령은 어디 계시냐 하시겠지만 다음은 이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True Christian Religion’(1771)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기술 일부 인용인데요,
All those of the clerical order who have cherished any right idea of the Lord our savior, when they enter the spiritual world (which generally takes place on the third day after death), receive instruction at first about the Divine trinity, and particularly about the Holy Spirit, that it is not a God by itself, but that the Divine operation proceeding from the one and omnipresent God is what is meant in the Word by the Holy Spirit.(TCR.138)
번역하자면,
우리 구주이신 주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을 그동안 품어온 모든 성직자는 그들의 사후, 영계에 들어올 때, 이는 보통 사후3일 차 때 일어나는데요, 먼저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 특히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한 소개를 받습니다. 즉 성령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 편재하시는 하나님(the one and omnipresent God)으로부터 나와 진행하는 신적 활동(the Divine operation)이며, 이것이 말씀에 나오는 성령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영과 육이 있고, 또 활동이 있듯이, 주님도 영 또는 속 사람이신 여호와 하나님, 육 또는 겉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활동이신 성령으로 되어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자기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창조주이시니 사람을 보면 주님을 아실 수 있게 말입니다.
아, 그리고 우리가 그러나 분명히 성령을 통해 어떤 인격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주님의 어떤 활동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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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생물’(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은 겉 사람에게 속한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새들’(birds)은 보통은 합리적이고 지성적인(rational and intellectual)것들을 의미하는데 후자는 속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수중 생물들’(creeping things of the waters)이나 ‘물고기들’(fishes)이 기억-지식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2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3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사50:2, 3)
[2]계속해서 에스겔서를 보면 더 분명합니다. 거기서 주님은 새로운 성전, 즉 일반적으로 하나의 새 교회 및 그 교회에 속한 사람, 즉 거듭난 사람을 묘사하십니다. 거듭나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겔47:8-10)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어부들’(fishers from En-gedi to En-eglaim, with the spreading of nets)은 자연적 인간을 신앙의 진리로 가르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3]‘새’(birds)가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것들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사야 같은 선지서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사46:11)
그리고 예레미야에서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렘4:25)
에스겔에서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겔17:22, 23)
그리고 호세아에서 새 교회, 혹은 거듭난 사람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여기 ‘들짐승’(wild beast)은 정말 들짐승을, ‘새’(bird)도 그냥 새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누가 보아도 분명한 것은, 주님은 이들과 ‘언약을 맺겠다’(make a new covenant) 하시기 때문입니다.
41
사람한테나 어울리는(proper to man)것은 그게 무엇이든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게 제법 메인으로 보일지라도 천사들이 볼 때는 무슨 딱딱한 뼈나 까만 덩어리로 보이지요.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는것은 그게 무엇이든 거기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적 천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만일 볼 수 있도록 재현될 때는 휴먼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말 믿기 어렵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된 사실은 천사 같은 영(an angelic spirit)의 모든 표현 하나, 모든 아이디어 하나, 그리고 모든 지극히 사소한 생각까지도 살아 있는(alive)상태라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조각들 안에도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애정을 포함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 주님을 향한 신앙이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생물’(living soul)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일종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여기서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what moves itself), ‘기는 것’(creeps)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들 진리는 사람에게는 아직 너무나 깊은 비밀들(deep secrets)임에도 살짝 말씀드리는 것은 본문에 ‘생물’(living soul), ‘스스로 움직이는 것’(thing moving itself)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사에 대한 세 가지 다른 표현이 가끔 나오는데요, 각각 ‘영’, ‘천사 같은 영’, ‘천사’입니다. 이는 각각 일층천, 이층천 및 삼층천에 상응합니다. 아마 처음 천적 천국밖에 없던 시절을 염두에 둔, 그래서 진정한 천사는 천적 천사들뿐이라는 생각으로 사용하던 표현 같습니다.
윗글은 ‘그게 무엇이든’, ‘모든 표현 하나’, ‘모든 아이디어 하나’, ‘모든 지극히 사소한’, ‘가장 작은 조각들’ 등 뭔가 가장 작은 걸 표현하려고 애쓰는 걸 봅니다. 아마 ‘분자’, ‘원자’ 단위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이 ‘분자’라는 개념은 찾아보니 1811년에 처음 시작되었더군요. 스베덴보리는 1772년에 별세하였으므로 그때까지는 없었던 개념이었고, 그래서 이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근접한 성경 표현으로는 ‘일점일획’이 있겠습니다.
21절(AC.42)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42
‘물고기들’(Fishes)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된, 그래서 살아있는 상태가 된 기억-지식들을 말합니다. ‘큰 바다짐승들’(whales, 고래, 또는 고래와 같은 거대한 수중 생물들)은 그들, 즉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their general principles)을 말하는데, 이들은 세부 원리들이 이들과 종속 관계에 놓이거나(in subordination to) 말미암는(from) 그런 것들입니다. 이 우주에서는 존재(exist) 및 존속(subsist)을 할 수 있으려면 다 자기의 근원이 되는 그런 더 일반적인 원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래들’(Whales), ‘큰 바다짐승들’(great fishes)이 선지서에서 가끔 언급되는 이유는 이들이 거기서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뜻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에스겔 29장 3절을 보면, 애굽 왕 바로를 가리켜 ‘큰 악어’(great whale)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큰 악어’는 인간의 지혜, 지성, 즉 일반적으로 지식[scientia]을 말하는 것이지요.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겔29:3)
[2]그리고 다른 데서도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겔32:2)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는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faith) 안으로 들어가고자 무척 애를 쓰는 사람들인데요, 이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들인 겁니다.
이사야에서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여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slaying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는 것은 진리의 일반적 원리들조차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렘51:34)
이는 큰 물고기가 요나에게 한 것처럼 ‘좋은 음식’(delicacies)이라고 한 신앙의 지식들을 그가 삼켰다는 것입니다. ‘큰 뱀’(whale)은 신앙 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단지 기억-지식들로만 소유하고, 또 그런 식으로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생물 분류 용어로는 일반적으로 ‘계’(界, Kingdom), ‘문’(門, Phylum 동물, Division 식물), ‘강’(綱, Class), ‘목’(目, Order), ‘과’(科, Family), ‘속’(屬, Genus), ‘종’(種, Species)이 있습니다. 이중 스베덴보리와 교류가 있었던 린네 때는 ‘속’과 ‘종’, 두 가지 분류만 있었고, 그래서 스베덴보리도 이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위 42번 글은 이런 분류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식물계, 동물계, 광물계가 있고, 식물계 아래 또 수많은 분류가 있으며, 맨 아래 ‘속’ 아래 수많은 ‘종’이, ‘종’ 아래 또 수많은 개체가 있듯, 기억-지식을 포함, 주님의 수많은 선과 진리 역시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정리, 정돈되다는 말이지요.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근원, 단 하나의 뿌리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모든 분류의 정점에 홀로 주님이 계십니다.
22-23절(AC.43)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43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어마어마하게 결실하며 번성하는데요(fructifies and multiplies), 몸 안에 사는 이생뿐 아니라 사후 저세상에서는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be fruitful)는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한,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multiply)는 신앙에 속한 것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fruit)에는 ‘씨’(seed)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번성합니다.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두,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이 세상도 이 정도인데 사후 저 천국은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로 생육하고 번성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복’(福,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의미하는데요,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복은 사람 안에 천국이 있는 상태이며, 피조물이 주님의 질서 안에 있는 문제이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의 속뜻이며, 다음은 그 가운데 특별히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는, 주님처럼 큰 그림을 보자는 겁니다.
이 창세기 1장, 거듭남의 여섯 단계, 즉 상태는 대략적인 것입니다. 사실은 각 단계와 단계 사이 그 사이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태들이 있지만, 큰 틀에서 큼직큼직 주님은 이렇게 보신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각 단계별 의도하시는 주님의 목표일 수도 있겠어요. 이런 큰 목표, 큰 그림들을 붙들고 가는 것의 유익은, 그래야 사이사이 자잘한 것들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보면, 사이사이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데, 그 하나하나에 너무 진지하다 보면 금방금방 실망하고 낙심하고, 그래서 그만 마음이 쉬 식기 때문입니다. 오래 가려면 멀리, 큰 그림을 보며 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억-지식, 곧 세상 지식도 거듭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속뜻 얘기를 하다 보면 살짝 속과 관련된 것만 중요하고, 겉 관련된 건 모두 별 무가치한 듯한 착각을 할 수도 있는데요, 그게 절대 아닌 것은, 겉이 결국 속의 완성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영이 중요하다고 영, 영만 하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상한 이해를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은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육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 이 세상 삶에서는 겉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며, 그래서 그 겉의 일부인 이 세상 지식, 곧 기억-지식 역시 기회 있을 때, 부지런히 습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셔도 우리 안에 뭔가 기초가 있어야 그걸 일종의 불쏘시개 삼아 불을 피우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 지식은 어디까지나 쓰임새, 곧 주님께 쓰임을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지식조차도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세상 지식은 그걸 소유한 사람을 얼마나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네, 이렇게 해서 창세기 1장 다섯째 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틈틈이 복습하셔서 창세기 1장부터 다들 전문가가 되시길, 그래서 그 기초를 아주 튼튼히 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