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344건

  1. 2024.03.31 주일예배(2024/3/31, 눅24:1-12, 부활절), '다시 살아나신 주님'
  2. 2024.03.30 AC.320, 창4 앞, '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AC.320-323) - 사후, 혼(souls), 즉 수련 영들(修練, novitiate spirits)의 생활 1
  3. 2024.03.30 AC.319,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즉시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사람
  4. 2024.03.30 AC.318,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생전에 체어리티 신앙으로 살던 사람 1
  5. 2024.03.30 AC.317,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사후, 즉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는 영들
  6. 2024.03.30 AC.316,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선한 영들의 보살핌조차 불편해 할 경우
  7. 2024.03.30 AC.315,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천사들의 보살핌을 불편해 하는 영의 경우
  8. 2024.03.30 AC.314,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빛을 볼 수 있게 된 영을 돌보는 영적 천사들
  9. 2024.03.29 성독(聖讀).'성 프란치스코'.4장, '성당 수리' (1)
  10. 2024.03.29 AC.313,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 '아담',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다

2024-03-31(D1)-주일예배(2537, 눅24,1-12, 부활절), '다시 살아나신 주님'.pdf
0.45MB
축도.2024-03-31(D1)-주일예배(2537, 눅24,1-12, 부활절), '다시 살아나신 주님'.pdf
0.23MB

 

 

다시 살아나신 주님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24:1-12)

 

사람의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차례로 흘러들어온다. 외적인 것은 호감이 느껴지는 기억의 지식과 가장 바깥쪽의 것인 감각에 속한 것인데, 감각에 속한 것이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짐으로써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외적인 것에 내적인 것들이 머무는 까닭은 내적인 것의 흐름이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영적 의미로 사람이 걸치는 피복이나 옷으로 나타내어지는 것은 바로 이 외적인 것을 말한다. (천국의 비밀 9216:2, 이순철 역) These also follow in order from interior to exterior things. Exterior things are memory-knowledges with their pleasant feelings; and outermost things are those of the senses, which communicate with the world by the sight, the hearing, the taste, the smell, and the touch. Upon these the interior things rest, for in these they terminate. These are the things which are signified in the spiritual sense by the “covering” or “garment wherein he may sleep.” (AC.9216:2)

 

 

오늘은 부활절, 주님 부활하신 이 아침에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주님은 왜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을까요? 그와 관련해 새 교회 가르침 “천국의 비밀” 9216번 글 2번 항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차례로 흘러들어온다. 내적인 것들이 외적인 것에 머무는 까닭은 내적인 것의 흐름이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내적 존재인 주님은 가장 외적 존재인 인간에게로 오셔서 영원히 그와 함께 사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섭리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무한하신 주님이 당신의 피조물인 유한한 인간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지극히 높은 천국으로부터 지극히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모진 고난을 이기시고, 신성하고 완전한 진리가 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진리를 통해서만 인간은 주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완전하고 신성한 진리(Divine Truth)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새벽’은 영적으로, 즉 그 속뜻으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완전하신 진리로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는 때이며, 동시에 그 진리를 가지고 낡고 부패한 교회를 심판하시고, 새로운 교회를 여시는 때입니다. 그때가 새벽입니다. 그때 여자들이 향품을 준비해 무덤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진리를 사랑하여 참된 진리이신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심판 때 구원받을 사람들이며, 주님이 세우시는 새 교회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살아계신 주님이 아니라 주님의 시신을 만나러 갑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는 진리가 죽은 자의 시신처럼 아직 생명 없는 진리라는 반증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시신’은 죽은 진리, 즉 생명 없는 말씀의 지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음 진리를 받아들일 때의 진리는 생명이 없는 진리, 못 움직이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 창조의 순서 중 식물부터 먼저 창조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진리를 믿기만 할 뿐 아직 행동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주님의 시신에 바르는 것은 죽은 것 같은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최초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품’은 내적 진리를 획득하기 전에 신앙인들이 소유하는 자연적인 진리, 이를테면 십계명의 문자적인 가르침 같은 것을 뜻합니다.

 

여자들이 무덤에 갔을 때,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덤을 막은 돌’은 뭘까요? 신앙인들의 내면에서 진리가 살아나는 걸 방해하는 여러 가지 자아의 거짓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진리를 안다는 자부심이나 진리에 대한 잘못된 추론, 또는 그 밖에 이기적인 악과 그것에서 비롯한 거짓들입니다. 우리 안에 그런 것들이 있는 동안에는 진리는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처음에는 자연적 진리로, 그리고 다음에는 내적 진리로 말씀을 이해하고 지키려고 할 때, 주님에 의해 진리를 방해하던 거짓들이 물러갑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자아의 거짓을 물리칠 수 없고, 심지어 어떤 게 거짓인지도 잘 모릅니다. 거짓들은 마치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처럼 진리가 자라는 걸 가로막습니다. 주님만이 그것들을 잘라내 치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때 죽었던 진리가 살아납니다. 바로 그런 상태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지는 것이고, 주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계시, 그러니까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새롭게 여신 이 계시를 지난 2017년 가을에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님이 충주봉쇄수도원을 준비하시면서 수도사 학교(후에 수도 학교로 개명)를 시작하셨는데, 첫 학기 종강 때인 그해 초여름, 강사로 오신 시흥 영성수련원 원장 박희진 수도사의 권유로 저는 그 후 틈틈이 대전 바이블아카데미를 다니게 되면서 거기 주교재인 ‘핵심진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영계의 구조’에 이 ‘스베덴보리’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 말이지요. 나중에 혹시나 하여 저의 지난날 일지를 보니 과거 제가 부사역자로 있던 교회에서 제가 돌보던 어느 목장 목자를 통해 제 생애 처음으로 이 ‘스베덴보리’라는 이름을 들었더군요. 목장원 중 한 분이 이 이름으로 모이는 무슨 이상한 성경공부 모임에 다닌다는 그런 상담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흔한 이단 분파, 신천지 같은 덴 줄 알고 금했죠. 그때가 2011년 2월이었습니다. 아무튼, 지난 2017년 1학기부터 1기생으로 출발한 저는 그때부터 접하는 모든 내용이 지난 50여 년 알아 오던 모든 기존 교리 내지는 신앙의 결을 내려놓고, 완전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스베덴보리를 스베덴보리 연구회 출판, ‘위대한 선물’로 시작, 이어 그의 많은 저작 중 가장 대중적인 ‘천국과 지옥’으로 만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어진 주님의 이끄심으로 현재는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라틴, 天界秘義) 번역과 함께 이런저런 나름의 활동, 즉 유튜브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시간을 갖겠습니다.

 

※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도 특히 교리적인 부분에서는 절대 타협이 없는, 골수도 정말 특이한 골수인 제가 달라도 너무 다른, 완전 그 근본부터 다른 이 아르카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 역시 주님이 하신 것이며, 처음엔 요나처럼 도망가기 바빴던 저를 그러나 끊임없이 권하시되 마치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듯’ 저로 하여금 주님을 향하게 하신 분 역시 주님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저를 옴짝달싹, 마치 칡넝쿨처럼 옭아맨, 기존 기독교, 특히 개신교 교리인 ‘오직 믿음’ 교리를 모두 잘라내 치워주셨던 것입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시고, 살아나신 주님께서 말입니다. 제가 주님의 이끄심으로 스베덴보리를 통해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태생적으로 유대교인이었던 주님의 제자들이, 그리고 바울이, 그러나 주님을 만나 자기들의 DNA에 새겨진 것과도 같았던 유대교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지고, 주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자, 여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 모습을 4절과 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한글 성경에는 여자들이 근심했다고 하지만, 영어 성경에는 perplex, 즉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지요. 주님이 부활하셨는데 여인들은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왜 공황 상태에 빠졌을까요? 첫째는, 신앙인의 내면에서 진리가 살아나려면 자아에 속한 게 죽어야 하는데, 그때 모든 걸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진리가 살아났다 해도 처음 한동안은 진리가 나를 주장한다는 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 앞에 바로 나타나시지 않은 것과도 같은 일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면에서 진리가 살아날 때, 신앙인들은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기댈 진리가 없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 곁에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누굴까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살아있는 진리이신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입은 빛나는 옷’은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가장 밝고 완전한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두 사람’이 나타났다고 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는 선만 있고 진리가 없거나 진리만 있고 선이 없는 그런 진리가 아니라, 선과 진리가 함께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여인들은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실제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이 아직 자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직접 눈으로 봐야만 믿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천사들을 보고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두려워 떨거나 죽은 자처럼 되었다는 것은 말씀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을 쓴 요한도 주님의 발 앞에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내면에서 어떤 영적 변화가 일어날 때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신성이 사람 안으로 임하실 때, 인간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일종의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에게 일어난 내면의 변화란 어떤 것입니까? 그에게서 죽은 진리가 살아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자연적 신앙이 영적 신앙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것입니다.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여자들이 마침내 주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사신다고 한 것을 기억해 내고는 무덤에서 돌아가 그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무덤은 그들이 죽은 진리를 만나던 곳이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하던 곳입니다. 이를테면 진리의 지식이 보관된 내면의 기억과 같은 곳이죠. 그러나 진리가 완전히 살아날 때, 이제는 애써 그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진리, 살아계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진리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아직은 자연적 신앙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직접 보고 만져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베드로가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에 대해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베드로’란 이름은 진리에 대한 순종을 뜻합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성품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급히 무덤으로 달려가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는 것’은 진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뜻합니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들여다보는 건’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안에 있는 진리들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 또는 말씀을 대할 때는 언제나 몸을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진리가 보이고, 또한 죽었던 진리가 살아나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베드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뭘까요? 주님의 시신이 아니라 세마포였습니다. ‘세마포’는 주님이 주시는 내적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본 진리는 이전에 알던 생명 없는 지식이 아니라 내적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에게 있던 진리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면에서 진리가 살아나는 건 눈먼 자가 눈을 뜨는 것 이상의 기적입니다. 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살아나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기질이 바뀝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모든 일을 놀랍게 여겼다고 합니다. 놀랍게 여겼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을 맞아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여자들은 향품으로 표상되는 자연적 진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자연적 진리란 말씀의 문자로 표현된 진리이며, 내적 진리를 담기 위한 그릇 역할을 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아직 완전한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자연적 진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점차 그 안에 내적 진리를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까닭은, 내적 진리가 자연적 그릇 안에 담길 때, 온전하고 힘 있는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옥을 이기신 주님의 능력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 완전하지 않은 진리의 상태에서 지옥의 시험을 완전히 이기시고, 신성한 진리 자체가 되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처음부터 신성한 진리 그 자체셨다면, 주님은 시험을 당하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지옥이 감히 주님을 대적하거나 도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시험을 당하시는 주님의 진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완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기대어 자신에게 있는 진리를 매일 살려야 하고, 더 내적인 진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거듭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6:2)

 

아멘

 

2023-04-0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03-3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20, 창4 앞, '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AC.320-323) - 사후, 혼(souls), 즉 수련 영들(修練, novitiate spirits)의 생활

 

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On The Nature Of The Life Of The Soul Or Spirit

 

320

다음은 사후 혼(souls), 즉 수련 영(修練, novitiate spirits)의 생활이라는 일반적 주제에 관해 제가 진술할 수 있는 것인데요, 많은 영계 방문 경험으로 저는, 사람이 내세(來世, the other life)에 들어오면 자기가 지금 내세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대신 자기는 아직도 이 세상에 있는 줄로, 심지어 여전히 몸 안에 있는 줄로 여긴다는 걸 알았습니다. With regard to the general subject of the life of souls, that is, of novitiate spirits, after death, I may state that much experience has shown that when a man comes into the other life he is not aware that he is in that life, but supposes that he is still in this world, and even that he is still in the body.

 

※ 사후 첫 번째 상태는 선으로든 악으로든 어느 한쪽으로 온전해지는 상태, 즉 천국 갈 영은 천국에서는 쓸데가 없는 악을, 지옥 갈 영은 지옥에서는 쓸데없는 선을 떼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걸 가리켜 ‘수련’(修練, novitiate)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즉 자기가 영이라는 말을 듣고는 놀람과 경악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요, 두 가지 이유, 하나는, 그가 보기에 자기는 지금 감각이나 욕구 및 생각하는 것에 있어 너무나도 사람과 똑같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자기는 세상 살 동안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거나, 어떤 사람들처럼, 영이라는 게 지금 자기가 발견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기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o much is this the case that when told he is a spirit, wonder and amazement possess him, both because he finds himself exactly like a man, in his senses, desires, and thoughts, and because during his life in this world he had not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or, as is the case with some, that the spirit could be what he now finds it to be.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9,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즉시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사람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9

저는 또 다른 경우를 보았는데, 그는 천사들에 의해 즉시 천국으로 옮겨져 주님의 영접을 받고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조금 머물다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I saw another also who was immediately translated into heaven by the angels, and was accepted by the Lord and shown the glory of heaven; not to mention much other experience respecting others who were conveyed to heaven after some lapse of time.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8,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생전에 체어리티 신앙으로 살던 사람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8

어떤 영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요, 몇 가지 점에서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게 분명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지금 내세에 와 있고, 자기는 더 이상 세상 살 때 소유했던 집, () 같은 것들이 없으며, 자기는 지금 다른 왕국에 있는데, 이 왕국은 세상 살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은 박탈당하는 그런 데라는 것을 깨닫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자기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는지 몰라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그는 오직 주님이 그와 모두를 위해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혼자가 되자 세상 살 때처럼 자유롭게 원하는 걸 생각해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내세에서는 모든 이의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생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이렇게 근심 중에 그는 심장 지역에 속한 어떤 천적 영들의 교제권 속으로 옮겨졌으며, 거기서 그는 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체어리티 가운데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받은 이 엄청난 친절을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까...?’ 이것을 보면, 그는 살아생전 체어리티 신앙으로 살던 사람임이 분명했고, 그러자 그는 즉시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A certain spirit came and discoursed with me, who, as was evident from certain signs, had only lately died. At first he knew not where he was, supposing himself still to be in the world; but when he became conscious that he was in the other life, and that he no longer possessed anything, such as house, wealth, and the like, being in another kingdom, where he was deprived of all he had possessed in the world, he was seized with anxiety, and knew not where to betake himself, or whither to go for a place of abode. He was then informed that the Lord alone provides for him and for all; and was left to himself, that his thoughts might take their wonted direction, as in the world. He now considered (for in the other life the thoughts of all may be plainly perceived) what he must do, being deprived of all means of subsistence; and while in this state of anxiety he was brought into association with some celestial spirits who belonged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o showed him every attention that he could desire. This being done, he was again left to himself, and began to think, from charity, how he might repay kindness so great, from which it was evident that while he had lived in the body he had been in the charity of faith, and he was therefore at once taken up into heaven.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7,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사후, 즉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는 영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7

그러나 일부는 천국을 향해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또 어떤 영들은 아주 빨리 나아갑니다. 저는 그동안 사후 즉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는 영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허락하심으로 두 가지 경우만 말씀드리겠습니다. Some however advance more slowly toward heaven, and others more quickly. I have seen some who were elevated to heaven immediately after death, of which I am permitted to mention only two instances.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6,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선한 영들의 보살핌조차 불편해 할 경우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6

그 영이 그렇게 스스로 물러나면, 이번에는 선한 영들의 순서가 되는데,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친절하게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 살 때 삶이 이런 선한 영들하고 있는 것조차도 불편한 그런 것이었다면, 그는 이번에도 이들 선한 영들이 어서 좀 가줬으면 하는데, 이런 과정은 반복, 또 반복, 결국 그가 세상 살 때 모습하고 딱 맞는, 그래서 완전 내 스타일이야!’ 싶은 영들을 만날 때까지 그에게 계속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가 몸 안에 있을 때 살던 모습 그대로 그들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런 예전 생활로 도로 돌아가버린 후, 그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요, 일부는 오래, 일부는 짧게 그곳 생활을 통해 지옥을 향해 새로 태어날, 즉 준비들을 하게 됩니다. 반면, 주님 신앙 가운데 있었던 영들은 그들도 역시 그곳의 새로운 생활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그러나 이번에는 천국을 향해 인도를 받습니다. When the soul thus dissociates himself, he is received by good spirits, who likewise render him all kind offices while he is in their company. If however his life in the world has been such that he cannot remain in the company of the good, he desires to be rid of these also, and this process is repeated again and again, until he associates himself with those who are in full agreement with his former life in the world, among whom he finds as it were his own life. And then, wonderful to say, he leads with them a life like that which he had lived when in the body. But after sinking back into such a life, he makes a new beginning of life; and some after a longer time, some after a shorter, are from this borne on toward hell; but such as have been in faith toward the Lord are from that new beginning of life led step by step toward heaven.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5,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천사들의 보살핌을 불편해 하는 영의 경우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5

그러나 만일 그 깨어난 사람, 혹은 영이 누구한테 배우는 걸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어서 자기랑 함께 있는 천사들이 좀 가줬으면 하면, 천사들은 그걸 또 바로 알아차립니다. 내세에서는 모든 생각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대신 오히려 그가 그들을 떠나갑니다. 천사들은 모두를 사랑하며, 신참 영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 인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 따로 무슨 원하는 건 없습니다. 천사들의 가장 큰 기쁨은 이런 걸로 되어 있습니다. But if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is not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willing to be instructed, he then desires to be rid of the company of the angels, which they exquisitely perceive, for in the other life there is a communication of all the ideas of thought. Still, they do not leave him even then, but he dissociates himself from them. The angels love everyone, and desire nothing more than to render him kindly services, to instruct him, and to convey him to heaven. In this consists their highest delight.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4, 창3 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AC.314-319) - 빛을 볼 수 있게 된 영을 돌보는 영적 천사들

 

영생(永生, Eternal Life)으로 들어감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Man’s Entrance Into Eternal Life

 

314

깨어난 사람, 혹은 영이 빛을 사용하여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면, 앞서 말한 영적 천사들이 그가 그 상태에서 원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친절하게 제공하며, 또 내세에 관한 정보도 제공하되 그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만일 그가 신앙이 있었고, 지금도 원한다면, 그들은 그에게 원더풀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줍니다. After the use of light has been given to the resuscitated person, or soul, so that he can look about him, the spiritual angels previously spoken of render him all the kindly services he can in that state desire, and give him information about the things of the other life, but only so far as he is able to receive it. If he has been in faith, and desires it, they show him the wonderful and magnificent things of heaven.

Posted by bygracetistory
,

제 4 장

성당 수리

산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

 

무조건 순종하지 않고 건방지게 된 아들의 태도에 적개심을 일으켜 아들을 악담 저주한 부친은 프란치스코를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고소했다. 아들을 호적에서 제적해 버리고, 그동안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사용한 막대한 돈의 액수까지 계산해 보았다. 아직도 아들이 가지고 있을 훔친 돈도 찾으려 했다.

 

...

 

주교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공개 설명하고나서 프란치스코에게 권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시오. 아무리 교회를 돕고 싶다고 해도 선행한다는 핑계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돈을 갖고 있을 권리가 없으니 부친의 것은 모조리 돌려드리시오."

 

"예, 주교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대답하고 나서는 주교관에 들어가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둘둘 말아 들고, 완전한 나체가 되어 군중들 앞에 나와 서서 비장한 태도로,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나는 지금까지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도네를 아버지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하나님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아버지의 돈과 옷을 모두 돌려 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모조리 아버지 발 앞에 정중하게 갖다 놓고, 가지고 있던 돈도 그 위에 놓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돌려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주교관의 재판을 둘러서서 구경하던 군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주교도 크게 감격하여 벗은 채 떨고 서있는 가련한 프란치스코를 자기 외투자락을 펴서 감싸주면서 껴안았다.

 

이 광경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지켜보던 베르나도네는 돌같이 굳어진 표정으로 서 있다가 결국 군중들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창피하여 허리를 굽혀 옷과 돈을 집어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빠져 나가 버렸다. 주교가 주교관의 정원사가 입던 낡은 옷 한 벌을 프란치스코에게 입혀주니 그는 감격하여 백묵으로 저고리 잔등에 십자가 표를 그려 입었다.

 

...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13,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 '아담',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다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313

여기서 말씀드리고 있는 내용이 첫 사람(the first man)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한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유전 악은 그(him)로 말미암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기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를 아담이라 하면서 상징하는 것은, 사람은 땅으로 말미암았다는 것,  사람이 아닌(nonman) 상태에서 시작,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is here said of the first man, it is evident that all the hereditary evil existing at the present day did not come from him, as is falsely supposed. For it is the most ancient church that is here treated of under the name of “man”; and when it is called “Adam,” it signifies that man was from the ground, or that from being nonman he became man by regeneration from the Lord.

 

※ 겉모습이 사람이라고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주님의 신성이 깃들어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름의 기원과 상징입니다. 유전 악에 대해서는 그 경우는 이런데요, 실제 죄를 짓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그로 인한 어떤 본성(a nature)을 초래하며, 그로 인한 악이 그의 어린 자녀들에게 심겨 유전 악이 되는 것입니다. This is the origin and signification of the name. But as to hereditary evil, the case is this. Everyone who commits actual sin thereby induces on himself a nature, and the evil from it is implanted in his children, and becomes hereditary.

 

※ 내가 범하는 낱낱의 죄로 인해 실제로 나의 본성이 손상되며,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며,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이를 지켜보며 자란 자녀들 또한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 주님과 동거한 열두 제자들, 프란치스코와 함께한 열두 형제들, 이현필 선생과 함께한 동광원 사람들, 공용복 선생과 함께한 핵심진리의 사람들 등 ‘동거’, ‘공동생활’의 비밀과 유익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중심인물이 주님께 사로잡힌 바만 확실하다면 말입니다.

 

유전악은 그렇게 모든 부모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및 가계를 따라 그들의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그렇게 각각의 이어지는 후손들 안에서 배가하고 늘어납니다. 유전악은 각 사람 안에 머무르며, 각자 실제 짓는 죄로 인해 증가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절대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저절로 소멸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관찰하시는 모든 분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악한 경향은 자녀들 안에 눈에 보이도록 남아 한 가계, 심지어 그 종족 전체가 그로 인해 다른 모든 가계나 종족들하고 구별될 수도 있을 정도라는 걸 말입니다. It thus descends from every parent, from the father, grandfather, great-grandfather, and their ancestors in succession, and is thus multiplied and augmented in each descending posterity, remaining with each person, and being increased in each by his actual sins, and never being dissipated so as to become harmless except in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by the Lord. Every attentive observer may see evidence of this truth in the fact that the evil inclinations of parents remain visibly in their children, so that one family, and even an entire race, may be thereby distinguished from every othe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