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

이 장에 나오는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가 속뜻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문자적 의미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세상의 실제 연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는 문자적 의미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역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전체적으로나 하나하나에 있어서나 모두 다른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들뿐 아니라 숫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는 숫자 ‘셋’이 자주 나오고 숫자 ‘일곱’도 자주 나오는데, 이 숫자들이 나오는 곳마다 시간이나 그 밖의 것들이 포함하거나 표상하는 상태와 관련하여 어떤 거룩한 것 또는 지극히 거룩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의 간격에서도 가장 긴 시간의 간격에서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부분들이 전체에 속하는 것처럼 가장 작은 것들도 가장 큰 것들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전체가 부분들로부터, 또는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들로부터 합당하게 이루어지려면 서로 간에 유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What the “years” and the “numbers of years,” which occur in this chapter, signify in the internal sense, has hitherto been unknown. Those who abide in the literal sense suppose them to be secular years, whereas from this to the twelfth chapter there is nothing historical according to its appearance in the literal sense, but all things in general and every single thing in particular contain other matters. And this is the case not only with the names, but also with the numbers. In the Word frequent mention is made of the number three, and also of the number seven, and wheresoever they occur they signify something holy or most sacred in regard to the states which the times or other things involve or represent; and they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n the least intervals of time as in the greatest, for as the parts belong to the whole, so the least things belong to the greatest, for there must be a likeness in order that the whole may properly come forth from the parts, or the greatest from its leasts. Thus in Isaiah: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사16:14) Now hath Jehovah spoken, saying, Within three years, as the years of a hireling, and the glory of Moab shall be rendered worthless. (Isa. 16:14)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사21:16) Thus hath the Lord said unto me, Within a year, according to the years of a hireling, and all the glory of Kedar shall be consumed, (Isa. 21:16)

 

여기서는 가장 짧은 시간의 간격과 가장 긴 시간의 간격이 모두 의미됩니다. 하박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where both the least and the greatest intervals are signified. In Habakkuk: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합3:2) Jehovah, I have heard thy renown, and was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Hab. 3:2)

 

여기서 ‘수년 내’(midst of the years)는 주님의 오심을 의미합니다. 더 짧은 시간의 간격에서는 사람이 거듭날 때와 같은 주님의 모든 오심을 의미하고, 더 긴 시간의 간격에서는 주님의 교회가 새롭게 일어날 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내가 구속할 해’(year of the redeemed)라고도 합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years” signifies the Lord’s advent. In lesser intervals it signifies every coming of the Lord, as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in greater, when the church of the Lord is arising anew. It is likewise called the “year of the redeemed,”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마찬가지로 사탄이 결박되어 있을 ‘천 년’(계20:2, 7)과 첫째 부활의 ‘천 년’(계20:4-6)도 결코 천 년이라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들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보여 준 것처럼 ‘날들’(days)이 상태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듯이 ‘해들’(years)도 그러하며, 그 상태들은 그 연수에 의해 묘사됩니다. So also the thousand years in which Satan was to be bound (Rev. 20:2, 7), and the thousand years of the first resurrection (Rev. 20:4–6), by no means signify a thousand years, but their states; for as “days” are used to express states, as shown above, so also are “years,” and the states are described by the number of the years.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20:2, 7)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계20:4-6)

 

그러므로 이 장의 시간들 역시 상태들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각 교회는 타고난 성향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향의 차이에 따라 다른 교회들과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times in this chapter also involve states; for every church was in a different state of perception from the rest,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genius, hereditary and acquired.

 

해설

AC.482는 창5의 긴 수명과 숫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다루는 중요한 글입니다. 아담 130세, 이후에 이어지는 800년, 807년, 815년 등의 숫자를 오늘날의 연대기처럼 읽기 전에, 스베덴보리는 먼저 말씀에서 ‘시간’과 ‘숫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창5의 ‘해’는 속뜻에서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며, 그 연수의 숫자는 그 상태의 어떠함을 묘사합니다.

 

특히 이 글에는 매우 강한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는 문자적 의미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역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AC.478에서 ‘아담’이 인류 최초의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가리킨다고 한 설명과 같은 방향입니다. 창5의 이름들이 여러 교회를 의미한다면, 그 이름들 옆에 붙어 있는 연수 역시 그 교회에 속한 개인들의 생물학적 수명을 기록한 숫자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름뿐 아니라 ‘숫자들도’ 다른 것들을 담고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렇다고 말씀의 숫자를 임의로 상징화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AC.482가 예로 드는 ‘셋’과 ‘일곱’처럼 말씀의 숫자에는 일정한 영적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숫자가 나타나는 문맥 속에서 그때의 상태와 연결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동일한 영적 질서가 짧은 시간에서도, 긴 시간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숫자가 서로 다른 시간 규모에서 사용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수년 내’가 좋은 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의 오심’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은 한 가지 규모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이라는 작은 규모에서는 사람이 거듭날 때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오시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 교회 전체라는 큰 규모에서는 새로운 교회가 일어날 때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규모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적 질서는 서로 상응합니다.

 

이 원리에 따르면 계20의 ‘천 년’도 문자 그대로 1,000년이라는 기간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AC.482는 사탄이 결박되는 천 년과 첫째 부활의 천 년이 ‘결코 천 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들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따라서 말씀의 예언적·상응적 시간 표현을 읽을 때 중요한 질문은 ‘정확히 몇 년인가?’만이 아니라 ‘이 기간이 어떤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창5 전체를 읽는 중요한 열쇠를 줍니다. 각각의 교회는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각 교회의 타고난 성향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창5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연수는 단순히 ‘누가 몇 살까지 살았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 셋, 에노스, 게난 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교회가 어떤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는지를 표현하는 숫자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AC.481의 ‘백삼십 년’도 이해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태고교회의 한 개인이 정확히 130년을 산 뒤 아들을 낳았다는 시간 정보가 속뜻의 중심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셋’이라 하는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상태와 과정을 나타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그 숫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설명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개별 숫자의 의미를 앞질러 확정하기보다, 먼저 ‘창5의 연수는 교회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AC.482의 해석 원리를 분명히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창5의 족보는 이름과 숫자가 결합된 하나의 내적 역사입니다. 이름들은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여러 교회들을 나타내고, 그 옆의 연수들은 그 교회들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냅니다. 문자에서는 수백 년에 이르는 인간의 수명이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태고교회가 여러 후대 교회로 이어지면서 그 퍼셉션과 내적 상태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AC.482 해설)

 

 

 

창5:3, AC.483, ‘퍼셉션(perception)의 차이로 구별된 태고교회의 여러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뒤이어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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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1, 창5:3, '태고교회와 닮은 새 교회 셋' (AC.481-485)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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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5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켜 ‘라멕’(Lamech)이라 하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5절)

 

해설

AC.465는 앞에서 이어져 온 교회의 순서 가운데 ‘라멕’을 아홉 번째 교회로 제시합니다. AC.463에서 ‘에노스’부터 ‘므두셀라’까지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가 차례로 제시되었고, 이제 그다음 교회가 ‘라멕’입니다. 따라서 창5:25의 ‘라멕’ 역시 장 개요에서는 한 교회의 이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짧지만 AC.460에서 시작된 흐름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태고교회로부터 여러 교회가 차례로 이어졌고, ‘라멕’은 그 연속 가운데 아홉 번째에 해당합니다. 문자상으로는 족보 속에서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속뜻으로는 ‘라멕’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도 AC.465가 말하는 범위를 넘어 ‘라멕’이라는 교회의 구체적인 상태를 미리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 개요에서 우선 밝혀 주는 것은 그 위치와 순서입니다. ‘라멕’은 ‘므두셀라’ 다음에 이어지는 아홉 번째 교회이며, 그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이후 해당 본문에 대한 해설에서 밝혀집니다.

 

특히 ‘아홉 번째’라는 표현은 창5의 이름들이 서로 무관하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 안에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셋’에서 시작하여 여러 이름을 거쳐 ‘라멕’에 이르는 동안 각각의 이름은 이어지는 교회를 가리키며, 창5는 그 순서를 통하여 태고교회의 여러 상태가 어떻게 계속되어 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AC.465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라멕’은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들의 흐름 가운데 아홉 번째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장 개요는 각 이름의 의미를 자세히 풀기 전에 먼저 전체 계승의 뼈대를 세워 줍니다. 독자는 이 뼈대를 붙들고 이후 본문 해설로 들어가면서 ‘라멕’이라 하는 교회가 앞선 교회와 어떻게 이어지며 또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AC.465 해설)

 

 

 

AC.466, 창5, ‘노아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된 열 번째 교회이다’

개요 AC.466열 번째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모체가 되었으며, 그 이름을 ‘노아’(Noah)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 합니다. (28-29절)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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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4, 창5, ‘에녹은 태고교회의 계시와 퍼셉션으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교회이다’

개요 AC.464‘에녹’(Enoch)이라 하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그 교회가 퍼셉션한 것들로부터 교리를 형성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지만 후대의 쓰임을 위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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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AC.462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가리켜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2, 3절)

 

해설

AC.462는 앞의 AC.461에서 말한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두 번째 교회를 설명합니다. AC.461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이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켰다면, 여기서는 그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셋’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셋’은 이 장의 속뜻에서 단순히 족보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다음에 이어진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고교회만큼 천적이지는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두 번째 교회가 곧바로 천적인 성격을 완전히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태고교회에서 이어진 것이 있었지만, 그 상태는 처음의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습니다. 즉 AC.460에서 말한 ‘이어지는 여러 세대’는 단순히 같은 교회가 이름만 바꾸어 계속된 것이 아니라,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내적 상태에는 차이가 생긴 여러 교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AC.462의 짧은 한 문장은 창5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의 태고교회가 가장 천적인 상태에 있었다면, 그다음 교회는 ‘그만큼 천적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에는 이미 변화의 방향이 나타나 있습니다. 태고교회 최초의 상태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교회들 가운데 그 천적인 성격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창5의 여러 이름은 이러한 상태의 변화를 차례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첫 교회는 좋았고 둘째 교회는 나빴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덜 천적이다’라는 것은 곧바로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던 태고교회 특유의 상태가 이전과 동일한 정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상태를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기보다,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선을 어떠한 방식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셋’이라는 이름이 한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은 창5의 족보를 읽는 방법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문자상으로는 한 이름 다음에 또 다른 이름이 이어지지만, 속뜻으로는 한 교회의 상태 다음에 또 다른 교회의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창5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은 단지 여러 이름을 차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에서 비롯된 천적 생명이 이후의 교회들 가운데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62는 이렇게 창5에서 처음으로 ‘이어지는 여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첫 번째 태고교회와 두 번째 ‘셋’은 동일한 상태가 아니지만 서로 단절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앞선 것으로부터 다음 것이 이어지되 그 상태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연속성과 변화가 창5의 족보 안에 담긴 영적 흐름이며, 이후의 이름들을 읽을 때에도 계속 주목해야 할 핵심입니다. (AC.462 해설)

 

 

 

AC.463, 창5,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 이어지는 교회들’

개요 AC.463세 번째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Enosh)라 하였고(6절), 네 번째는 ‘게난’(Kenan)(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Mahalalel)(12절), 여섯 번째는 ‘야렛’(Jared)(15절), 일곱 번째는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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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1, 창5,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킨다’

개요 AC.461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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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AC.460

이 장은 특별히 태고교회가 이어지는 여러 세대를 거쳐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간 과정을 다룹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해설

AC.460은 창5의 ‘장 개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보여 주는 짧지만 중요한 문장입니다. 창5의 본문은 여러 이름과 출생, 나이와 죽음이 반복되는 족보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장에서 특별히 다루는 것이 ‘태고교회가 이어지는 여러 세대를 거쳐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간 과정’이라고 먼저 밝힙니다. 따라서 창5를 읽을 때에는 문자에 나타나는 족보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태고교회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해 가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이어지는 여러 세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한 세대 다음에 또 한 세대가 왔다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본문 해설에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창5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로부터 차례로 이어진 여러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관심은 각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일대기를 들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 안에서 하나의 교회가 다음 교회로 이어지면서 그 상태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5의 족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문자상으로는 이름들이 세대별로 이어지는 족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 속한 여러 교회가 차례로 이어지면서 나타낸 서로 다른 상태들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등장하는 이름들을 먼저 역사적 개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 곧 내적 의미로는 그 이름들이 무엇을 나타내며, 그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교회의 어떠한 상태와 변화를 보여 주시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과정의 끝을 AC.460이 ‘홍수에 거의 이르기까지’라고 정한다는 점입니다. 창5는 아직 홍수 자체를 다루지 않지만, 이 장에서 전개되는 태고교회의 역사는 홍수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창5는 여러 세대와 교회의 상태를 각각 따로 떼어 보여 주는 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AC.460이 먼저 밝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할 ‘낳고’, ‘살고’, ‘죽었더라’라는 표현과 여러 숫자를 읽는 데에도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아직 AC.460에서는 그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모든 기록이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세대들을 다루는 하나의 전체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개별 이름이나 숫자의 속뜻을 살필 때에도 언제나 ‘지금 태고교회의 어떠한 상태와 그 이어짐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전체 문맥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AC.460은 창5를 단순히 오래된 족보로 지나치지 않게 합니다. 말씀의 문자 안에는 태고교회가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마침내 홍수 직전까지 이르는 긴 영적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의 ‘장 개요’와 본문 해설은 바로 그 역사를 하나씩 펼쳐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차츰 보게 될 것입니다. (AC.460 해설)

 

 

 

AC.461, 창5, ‘사람과 하나님의 모양은 태고교회 자체를 가리킨다’

개요 AC.461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사람’(homo),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이라 하였습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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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9, 창5 앞, ‘세 천국과 천적·영적 존재의 차이’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9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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