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C.레6 심화

2. ‘왜 제단의 불은 밤새도록, 끊임없이 꺼지지 않아야 했을까?’

 

레6에서 가장 강렬하게 반복되는 명령은 ‘불을 끄지 말라’는 것입니다. 번제물은 밤새도록 제단 위에 있고, 불은 아침까지 타고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더 놓아야 하며, 13절에서는 마침내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의 해설이 놀랄 만큼 직접적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49-1756, AC) 2177(창18:6)은 레6:13-17을 직접 인용한 뒤, 제단에서 계속 타야 했던 불은 ‘주님의 사랑, 곧 영원하고 영속적인 주님의 자비’를 표상했다고 설명합니다. AC.6832(출3:2) 역시 레6:12-13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 영속적인 불이 신적 사랑을 표상했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처음부터 ‘우리의 신앙 열심을 절대로 식히지 말라’는 명령으로 읽으면 중심이 인간에게 옮겨집니다. 제단의 불이 가장 먼저 나타내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입니다. 꺼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영적 상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뜨거울 때도 있고 차가울 때도 있으며, 밝은 아침 같은 때도 있고 긴 밤 같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었다고 제단의 불까지 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때에도 주님의 사랑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불 위에 놓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지만 인간에게는 날마다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제의 예배로 오늘을 살 수 없고, 십 년 전의 뜨거웠던 체험으로 오늘의 악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매일 말씀 앞에 서고, 오늘 보이는 악을 피하며, 오늘 행할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듭남에는 두 방향이 동시에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오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랑을 날마다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인간의 자유입니다. 전자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후자가 없다면 주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삶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꺼지지 않는 불’은 레6 전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훔친 것을 돌려주고, 악과 거짓에서 정결하게 되고, 주님의 선을 받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 아래에서 주님의 사랑이 한순간도 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이 꺼질 때조차 주님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거듭남은 바로 그 영원한 불에 날마다 다시 자신의 삶을 가져가는 과정입니다. (SWC.레6 심화 2)

 

 

 

SW.레6.심화3, ‘왜 번제의 재까지 거룩하게 다루어야 했을까?’

SW.레6.심화3. ‘왜 번제의 재까지 거룩하게 다루어야 했을까?’ 번제가 모두 타고 나면 남는 것은 재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제사는 끝났고 재는 치워야 할 폐기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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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레6.심화1, ‘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전에 이웃에게 먼저 돌려주어야 했을까?’

SW.레6.심화1. ‘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전에 이웃에게 먼저 돌려주어야 했을까?’ 레6:1-7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범죄의 대상입니다. 맡긴 물건을 속이고, 도둑질하고, 착취하고,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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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

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따라서 가장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권세 있는 자가 권세를 통하여 추구하고 부자가 재물을 통하여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천국은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그 사람은 실제로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국은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하는 것입니다. I have conversed with spirits who supposed heaven and heavenly joy to consist in being the greatest. But they were told that in heaven he is greatest who is least, because he who would be the least has the greatest happiness, and consequently is the greatest, for what is it to be the greatest except to be the most happy? It is this that the powerful seek by power, and the rich by riches. They were told, further,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desiring to be the least in order to be the greatest, for in that case the person is really aspiring and wishing to be the greatest; but that heaven consists in this, that from the heart we wish better for others than for ourselves, and desire to be of service to others in order to promote their happiness, and this for no selfish end, but from love.

 

해설

AC.452는 AC.450-451에서 계속되어 온 ‘천국에서의 높고 낮음’이라는 주제를 그 내적 핵심까지 끌고 들어갑니다. AC.450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지배하는 것이 천국이라는 공상을 바로잡았고, AC.451에서는 세상의 권세가 영계에서도 계속된다는 생각을 바로잡았습니다. 이제 AC.452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면 천국에서 참으로 큰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대답은 역설적입니다.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아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능력을 일부러 낮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높음과 영광에 관심을 두기보다 다른 사람의 선과 행복을 먼저 바라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가장 큼’의 기준 자체가 세상과 달라집니다.

 

특히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라는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권력이나 재물 그 자체를 최종 목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권세 있는 사람은 더 큰 권세에서, 부자는 더 많은 재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천국에서는 행복의 근원이 소유와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미묘한 함정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작은 자가 되어 가장 큰 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겉모습만 낮아졌을 뿐 내적 목적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역시 천국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겸손조차 자기 높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천국적 상태는 무엇인가? 본문은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자체가 자기에게서 이웃에게로 향하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거나 자신의 위치가 낮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과 행복 자체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드시 ‘쓰임’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실제로 그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라는 마지막 조건입니다. 칭찬받기 위해 돕거나, 인정받기 위해 섬기거나, 훗날 보답받기 위해 선을 행한다면 아직 자기 자신이 목적의 중심에 있습니다. 천국적 쓰임은 상대방의 선을 그 자체로 기뻐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AC.452는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가?’라는 질문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천국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가장 큰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이웃의 선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사랑으로 그 행복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막9:35)이 가리키는 천국의 질서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AC.452 해설)

 

 

 

AC.453, 창5 앞, '천국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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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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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

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어서, 자신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위치에서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 영광(self-glory)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공상(fantasy)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은 높은 곳으로 올려졌으며 거기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움 가운데 이것이 공상의 천국(a heaven of fantasy)임을 깨달았으며,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천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해설

AC.450은 천국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생각, 곧 ‘공간적으로 높은 곳이 천국이다’라는 생각과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천국의 행복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바로잡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같습니다. 천국을 주님과 사랑의 상태가 아니라 ‘높음’이라는 외적인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람들이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잘 설명하며 영적인 것에 밝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천국적 성품을 지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한 지식조차 자기 영광과 우월감을 위해 사용한다면, 외적으로는 깨달음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내면은 천국의 질서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단순히 말로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원하던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높은 곳으로 올려 보내고 아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꿈꾸던 것을 실제로 얻고 보니 그것은 참된 천국이 아니라 ‘공상의 천국’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가 스스로에게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서 AC.450은 천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천국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을 다스리는 곳에 이미 천국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지옥이라고까지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서 모든 책임이나 지도력, 혹은 뛰어난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는 받은 능력과 지위가 이웃을 섬기는 쓰임(use)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사랑이 지배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두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외적으로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그 권한을 움직이는 사랑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천국의 질서와도 정확히 통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처럼(마20:26), 천국에서 ‘높아짐’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섬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참된 천국의 기쁨은 ‘내가 얼마나 높은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으로 얼마나 기쁘게 쓰임이 되는가’에서 옵니다.

 

결국 AC.450은 천국을 먼 곳에 있는 어떤 높은 세계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인간의 내면과 삶으로 돌립니다.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말씀과 진리는 나를 높이는가,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가?’가 천국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질문이 됩니다. 천국은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체어리티가 다스리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AC.450 해설)

 

 

 

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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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9, 창5 앞,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왜 세상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가' (AC.449-459)

천국과 천국의 기쁨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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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

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혹스럽게도 다른 어떤 천국도 결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광기 어린 생각에 빠지며, 그리하여 이와 같은 공상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Evil spirits have sometimes supposed that there is another heaven besides that of the Lord, and they have been permitted to seek for it wherever they could, but to their confusion they could never find any other heaven. For evil spirits rush into insanities both from the hatred they bear against the Lord, and from their infernal suffering, and catch at such fantasies.

 

해설

AC.458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부터 이어져 온 천국에 관한 여러 잘못된 생각의 뿌리를 한층 더 깊은 곳에서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천국을 높은 곳, 입장이 허락되는 장소, 편안히 쉬는 곳,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곳, 혹은 영원히 찬양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여러 관념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근본적인 생각이 등장합니다. ‘주님의 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혹시 다른 천국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천국의 본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랑과 지배욕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행복하기를 원하는 영에게는 주님의 천국이 자신이 원하는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행복은 원하지만, 그 행복을 이루는 천국의 사랑과 질서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천국’을 상상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주님께서는 그 생각을 단지 말로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하십니다. AC.450의 영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천국을 경험하도록 허락받았고, AC.455의 사람이 자신이 천국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찬란한 빛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강제로 빼앗기보다 그것이 실제로 어디에 이르는지를 스스로 경험하여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도 다른 천국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천국이라는 장소가 하나뿐이라는 말보다 훨씬 깊은 뜻을 지닙니다. 천국은 본질적으로 주님의 생명,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떠난 채 천국의 행복만 따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질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 천국의 기쁨만, 체어리티 없이 행복만, 주님 없이 천국만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악한 영들이 이러한 공상에 매달리는 원인으로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함께 말합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배적인 악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악으로 인한 고통에서는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변화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이 자기 안의 악한 사랑에 있는 한, 장소를 바꾸거나 다른 천국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그 상태가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광기 어린 생각’이라는 표현도 단순히 이성을 잃었다는 의미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악은 영적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며, 악한 사랑이 사고를 지배하면 사람은 결국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주님을 미워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천국의 기쁨을 원하며, 자기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천국을 찾는 것 자체가 영적 질서에서는 모순인 것입니다.

 

결국 AC.458은 천국이 주님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독립된 행복의 세계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천국에는 AC.457에서 본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있지만, 그 모든 다양성을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는 근원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오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무수한 공동체와 무수한 종류의 행복이 있어도 ‘다른 근원에서 오는 또 하나의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을 원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과 질서를 원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랑과 질서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천국의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AC.458 해설)

 

 

 

AC.459, 창5 앞, ‘세 천국과 천적·영적 존재의 차이’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9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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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7, 창5 앞, '천국의 행복은 왜 사람마다 똑같지 않은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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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국과 지옥 모두에 끝없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으며,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도 다른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와 결코 정확히 같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단지 정확히 똑같거나 동일한 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했을 때에도 영들의 세계와 천사 천국의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그 조화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존재도 그러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인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여러 구성 요소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각 공동체가 하나를 이루며, 모든 공동체가 함께 또한 하나, 곧 보편적 천국 전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어떤 천사는 영들, 곧 첫째 천국의 기쁨을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려도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고 열거하였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보다 덜 보편적인 종류들과 각 종류 안에 있는 세부적인 종류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에만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면, 천사적 영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한이 없겠으며, 더욱이 천사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Almost all who pass from this world into the other life suppose that hell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that heaven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yet in both there are endless diversities and varieties, and neither the heaven nor the hell of one person is ever exactly like that of another; just as no man, spirit, or angel is ever exactly like another. When I merely thought of there being two exactly alike or equal, horror was excited i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of spirits and of the angelic heaven, and they said that everyone is formed by the harmony of many components, and that such as is the harmony, such is the one,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to subsist that is absolutely a one, but only a one that results from a harmony of component parts. Thus every society in the heavens forms a one, and so do all the societies together, that is, the universal heaven, and this from the Lord alone, through love. A certain angel enumerated the most universal only of the genera of the joys of spirits, that is, of the first heaven, to about four hundred and seventy-eight, from which we may infer how innumerable must be the less universal genera and the species in each genus. And as there are so many in that heaven, how illimitable must be the genera of happinesses in the heaven of angelic spirits, and still more so in the heaven of angels.

 

해설

AC.457은 천국의 기쁨에 관한 논의를 ‘다양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넓혀 갑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천국을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한 행복을 누리는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천국은 획일적인 세계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랑과 선의 질이 다르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과 기쁨도 다르기 때문에 천국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지옥 역시 마찬가지로 각 사람의 지배적인 악과 거짓의 성질에 따라 상태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다’는 말은 각 사람이 자기만의 독립된 천국이나 지옥을 소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의 천국’과 ‘한 사람의 지옥’은 그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두 사람도 사랑과 사고와 삶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이나 불행의 질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조화’에 관한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어떻게 천국의 하나 됨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존재가 똑같아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가 조화를 이루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화음이 서로 다른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몸이 서로 다른 지체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다름’이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하나 됨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정확히 똑같은 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영들과 천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천국의 질서에서 살아 있는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랑, 똑같은 지혜, 똑같은 쓰임, 똑같은 기쁨을 가진다면 그것은 천국의 완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을 이루는 살아 있는 질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 존재의 고유성을 없애어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개인을 넘어 천국 공동체 전체에 적용됩니다. 각각의 천국 공동체가 그 안의 수많은 천사들의 조화를 통하여 ‘하나’를 이루고, 다시 서로 다른 모든 공동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보편적 천국’이라는 하나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의 근원은 공동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을 하나 되게 하는 중심은 동일한 개성이나 동일한 역할이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사랑입니다.

 

첫째 천국의 기쁨만 해도 가장 큰 범주로 나누어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는 천사의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도 세부적인 기쁨들을 센 숫자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린 것입니다. 각각의 큰 범주 아래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천국의 행복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내적 천국으로 갈수록 그 다양성은 더욱 헤아릴 수 없게 됩니다.

 

결국 AC.457이 보여 주는 천국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 안에서 참으로 자기답게 되면서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앞의 AC.454-456에서 천국의 행복이 사랑과 체어리티와 쓰임에 있음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그 사랑과 쓰임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천국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차이를 없애어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과 쓰임과 기쁨을 사랑 안에서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완전함은 획일성에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다양성과 조화에 있습니다. (AC.457 해설)

 

 

 

AC.458, 창5 앞, ‘주님의 천국 외에 다른 천국은 있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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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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