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

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어서, 자신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위치에서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 영광(self-glory)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공상(fantasy)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은 높은 곳으로 올려졌으며 거기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움 가운데 이것이 공상의 천국(a heaven of fantasy)임을 깨달았으며,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천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해설

AC.450은 천국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생각, 곧 ‘공간적으로 높은 곳이 천국이다’라는 생각과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천국의 행복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바로잡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같습니다. 천국을 주님과 사랑의 상태가 아니라 ‘높음’이라는 외적인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람들이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잘 설명하며 영적인 것에 밝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천국적 성품을 지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한 지식조차 자기 영광과 우월감을 위해 사용한다면, 외적으로는 깨달음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내면은 천국의 질서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단순히 말로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원하던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높은 곳으로 올려 보내고 아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꿈꾸던 것을 실제로 얻고 보니 그것은 참된 천국이 아니라 ‘공상의 천국’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가 스스로에게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서 AC.450은 천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천국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을 다스리는 곳에 이미 천국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지옥이라고까지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서 모든 책임이나 지도력, 혹은 뛰어난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는 받은 능력과 지위가 이웃을 섬기는 쓰임(use)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사랑이 지배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두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외적으로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그 권한을 움직이는 사랑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천국의 질서와도 정확히 통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처럼(마20:26), 천국에서 ‘높아짐’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섬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참된 천국의 기쁨은 ‘내가 얼마나 높은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으로 얼마나 기쁘게 쓰임이 되는가’에서 옵니다.

 

결국 AC.450은 천국을 먼 곳에 있는 어떤 높은 세계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인간의 내면과 삶으로 돌립니다.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말씀과 진리는 나를 높이는가,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가?’가 천국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질문이 됩니다. 천국은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체어리티가 다스리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AC.450 해설)

 

 

 

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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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9, 창5 앞,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왜 세상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가' (AC.449-459)

천국과 천국의 기쁨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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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국과 지옥 모두에 끝없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으며,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도 다른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와 결코 정확히 같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단지 정확히 똑같거나 동일한 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했을 때에도 영들의 세계와 천사 천국의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그 조화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존재도 그러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인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여러 구성 요소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각 공동체가 하나를 이루며, 모든 공동체가 함께 또한 하나, 곧 보편적 천국 전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어떤 천사는 영들, 곧 첫째 천국의 기쁨을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려도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고 열거하였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보다 덜 보편적인 종류들과 각 종류 안에 있는 세부적인 종류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에만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면, 천사적 영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한이 없겠으며, 더욱이 천사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Almost all who pass from this world into the other life suppose that hell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that heaven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yet in both there are endless diversities and varieties, and neither the heaven nor the hell of one person is ever exactly like that of another; just as no man, spirit, or angel is ever exactly like another. When I merely thought of there being two exactly alike or equal, horror was excited i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of spirits and of the angelic heaven, and they said that everyone is formed by the harmony of many components, and that such as is the harmony, such is the one,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to subsist that is absolutely a one, but only a one that results from a harmony of component parts. Thus every society in the heavens forms a one, and so do all the societies together, that is, the universal heaven, and this from the Lord alone, through love. A certain angel enumerated the most universal only of the genera of the joys of spirits, that is, of the first heaven, to about four hundred and seventy-eight, from which we may infer how innumerable must be the less universal genera and the species in each genus. And as there are so many in that heaven, how illimitable must be the genera of happinesses in the heaven of angelic spirits, and still more so in the heaven of angels.

 

해설

AC.457은 천국의 기쁨에 관한 논의를 ‘다양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넓혀 갑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천국을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한 행복을 누리는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천국은 획일적인 세계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랑과 선의 질이 다르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과 기쁨도 다르기 때문에 천국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지옥 역시 마찬가지로 각 사람의 지배적인 악과 거짓의 성질에 따라 상태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다’는 말은 각 사람이 자기만의 독립된 천국이나 지옥을 소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의 천국’과 ‘한 사람의 지옥’은 그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두 사람도 사랑과 사고와 삶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이나 불행의 질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조화’에 관한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어떻게 천국의 하나 됨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존재가 똑같아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가 조화를 이루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화음이 서로 다른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몸이 서로 다른 지체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다름’이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하나 됨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정확히 똑같은 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영들과 천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천국의 질서에서 살아 있는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랑, 똑같은 지혜, 똑같은 쓰임, 똑같은 기쁨을 가진다면 그것은 천국의 완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을 이루는 살아 있는 질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 존재의 고유성을 없애어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개인을 넘어 천국 공동체 전체에 적용됩니다. 각각의 천국 공동체가 그 안의 수많은 천사들의 조화를 통하여 ‘하나’를 이루고, 다시 서로 다른 모든 공동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보편적 천국’이라는 하나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의 근원은 공동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을 하나 되게 하는 중심은 동일한 개성이나 동일한 역할이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사랑입니다.

 

첫째 천국의 기쁨만 해도 가장 큰 범주로 나누어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는 천사의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도 세부적인 기쁨들을 센 숫자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린 것입니다. 각각의 큰 범주 아래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천국의 행복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내적 천국으로 갈수록 그 다양성은 더욱 헤아릴 수 없게 됩니다.

 

결국 AC.457이 보여 주는 천국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 안에서 참으로 자기답게 되면서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앞의 AC.454-456에서 천국의 행복이 사랑과 체어리티와 쓰임에 있음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그 사랑과 쓰임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천국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차이를 없애어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과 쓰임과 기쁨을 사랑 안에서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완전함은 획일성에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다양성과 조화에 있습니다. (AC.457 해설)

 

 

 

AC.458, 창5 앞, ‘주님의 천국 외에 다른 천국은 있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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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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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

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빛이 황금빛으로 보일 때와 같은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천국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 천국의 기쁨이 안락하게 쉬는 삶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빛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있으면서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크게 기뻐하였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 빛이 점차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One who in this world had been most lear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being in a glorious light, like that which exists when the solar rays appear of a golden hue, so that he too supposed it to consist in a life of ease. In order that he might know himself to be in error, such a light was granted him, and he, being in the midst of the light, was as delighted as if he were in heaven, as indeed he said. But he could not remain long in it, for it gradually wearied him and became no joy at all.

 

해설

AC.455는 앞의 AC.454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454에서는 천국의 행복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한층 더 아름답고 영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찬란한 황금빛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훨씬 천국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역시 천국의 기쁨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오류라고 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사람이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AC.450에서도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잘못된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천국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천국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에 관한 지식과 천국의 생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황금빛의 찬란한 빛’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빛을 천국의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영계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에 상응하고, 천국의 빛은 세상의 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것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에서 반복하여 묘사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천국의 빛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바라보고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무는 것만으로 천국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경험이 허락됩니다. 그는 실제로 황금빛처럼 찬란한 빛 가운데 놓였고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여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도 앞의 경험들과 같은 방식이 나타납니다. 그의 잘못된 생각을 말로만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황홀했던 빛이 점차 그를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적인 자극은 아무리 아름답고 강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광경이 계속 새로워지는 것으로 영원한 기쁨을 유지하려 한다면, 결국 사람은 더 새롭고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바로 앞의 AC.454와 연결하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빛은 천국의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하나이지만,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은 빛 자체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가 천사들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쓰임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빛도 그 생명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AC.455는 결국 우리의 천국관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고통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빛과 풍경을 영원히 바라보며 쉬는 곳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행복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서로에게 쓰임이 되는 ‘살아 있는 행복’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라도 그것만으로는 결국 익숙해지는 게 다지만,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끊임없이 새로운 쓰임으로 흘러가는 생명은 천국의 기쁨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AC.455 해설)

 

 

 

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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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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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4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히 쉬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에 종속시키기를 원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것을 원한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게으른 삶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활동적인 삶 외에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의 삶은 쓰임(use)과 체어리티의 선(goods of charity)에 있습니다. 천사들은 세상에서 오는 영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 사람들에게 쓰임이 되는 일, 사람들 주위에 있는 악한 영들이 정해진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불어넣는 일, 죽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키는 일, 그리고 그 영혼들의 상태가 허락한다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보다 더 큰 행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Some think that heaven consists in a life of ease, in which they are served by others; but they are told that there is no possible happiness in being at rest as a means of happiness, for so everyone would wish to have the happiness of others made tributary to his own happiness; and when everyone wished this, no one would have happiness. Such a life would not be an active life, but an idle one, in which they would grow torpid, and yet they might know that there is no happiness except in an active life. Angelic life consists in use, and in the goods of charity; for the angels know no greater happiness than in teaching and instructing the spirits that arrive from the world; in being of service to men, controlling the evil spirits about them lest they pass the proper bounds, and inspiring the men with good; and in raising up the dead to the life of eternity, and then, if the souls are such as to render it possible, introducing them into heaven.

 

이 모든 일로부터 천사들은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지각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주님의 형상이 되며,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천국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in use), 쓰임으로부터(from use), 그리고 쓰임에 따라(according to use) 있으며, 곧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에 따라 있습니다. 천국의 기쁨이 편안하게 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들으면,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삶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를 지각하도록 허락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러한 삶이 지극히 슬픈 것이며 모든 기쁨을 파괴하는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싫어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임을 지각합니다. From all this they perceive more happiness than can possibly be described. Thus are they images of the Lord; thus do they love the neighbor more than themselves; and for this reason heaven is heaven. So that angelic happiness is in use, from use, and according to use, that is, it is according to the goods of love and of charity. When those who have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living at ease, idly breathing in eternal joy, have heard these things, they are given to perceive, in order to shame them, what such a life really is, and they perceive that it is a most sad one, that it is destructive of all joy, and that after a short time they would loathe and nauseate it.

 

해설

AC.454는 천국의 기쁨에 관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천국의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히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쓰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수고와 피로를 경험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처럼 상상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천국의 안식과 전혀 다른 것으로 봅니다. 천국의 안식은 활동의 중지가 아니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수고와 갈등이 사라진 가운데 사랑으로 기쁘게 활동하는 상태입니다.

 

본문 첫 부분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섬김만 받는 삶이 행복일 수 없는지를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 나를 섬김으로써 내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도 참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천국의 질서는 정반대입니다. 각자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고 그 행복에 쓰임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복이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삶은 ‘쓰임과 체어리티의 선’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쓰임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거나 계속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이웃의 선을 바라며 실제로 그 선에 도움이 되는 모든 활동을 뜻합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활동과 사랑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쓰임으로 나타나고, 쓰임은 사랑이 실제 생명이 되어 나타나는 형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쓰임을 매우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새로 영계에 온 영들을 가르치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며, 악한 영들이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불어넣으며, 죽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키고, 준비된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천사들은 이러한 일을 의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에서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느낍니다. 다른 존재의 생명과 행복에 쓰임이 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기쁨인 것입니다.

 

특히 ‘이와 같이 그들은 주님의 형상이 된다’는 표현은 쓰임의 가장 깊은 근원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모든 존재에게 생명과 선을 주시며 그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자기 자신보다 이웃의 선을 바라며 쓰임의 삶을 살 때, 그들은 주님의 사랑이 흘러갈 수 있는 형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천국이 천국이다’라는 말은 천국의 본질을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는 문장은 AC.454의 핵심 문장입니다. ‘쓰임 안에’ 있다는 것은 천사의 행복이 실제 쓰임의 활동 가운데 있다는 뜻이고, ‘쓰임으로부터’ 있다는 것은 그 행복이 사랑이 실제로 흘러나가 이웃에게 선이 되는 데서 생긴다는 뜻이며, ‘쓰임에 따라’ 있다는 것은 그 쓰임 안에 담긴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의 질에 따라 행복의 질도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행복은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나중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는 쓰임 자체 안에 이미 존재합니다.

 

결국 AC.454는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원한 휴식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은 처음에는 편안해 보일 수 있지만 곧 생명과 기쁨을 잃고 무기력해집니다. 반대로 천국에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끊임없이 쓰임으로 흘러가며, 그 흐름 자체가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영원히 쉬는 곳’이라기보다 ‘사랑으로 기쁘게 쓰임이 되는 곳’이며, 천국의 안식은 활동이 없는 안식이 아니라 자기 사랑의 수고가 사라진 가운데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 움직이는 안식인 것입니다. (AC.454 해설)

 

 

 

AC.455, 창5 앞, '찬란한 빛 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천국의 기쁨이 될 수 없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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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3, 창5 앞, '천국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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