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창2:1-17)

 

AC.73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된 다음,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바로 이것을 다룹니다. (1절) When from being dead a man has become spiritual, then from spiritual he becomes celestial, as is now treated of (verse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1절)

 

해설

AC.73은 창2:1-17 전체의 첫 번째 개요이며, 동시에 창1과 창2를 이어 주는 매우 중요한 한 문장입니다. 창1에서는 영적으로 죽어 있던 사람이 거듭남의 여섯 날을 거치면서 영적 인간이 되는 과정이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제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된 다음,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2는 창1과 별개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1에서 이루어진 거듭남이 더 깊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다룹니다.

 

여기서 ‘죽어 있던’이라는 표현은 특히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바로 앞 AC.67-72에서 죽음 이후의 삶과 사람이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지는 일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문맥을 놓치면 육체의 죽음에서 영적 존재가 되고 다시 천적 존재가 된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73은 창2 본문의 개요로 돌아온 첫 번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거듭나기 전 인간의 영적 상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후세계에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승급한다는 설명이 아니라, 거듭남의 질서 안에서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말입니다.

 

또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는 말을 단순히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하나의 등급표처럼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이 한 문장에서는 두 상태의 정확한 차이가 아직 설명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지는 번호들에서 일곱째 날, 주님의 안식, 퍼셉션, 사랑과 신앙, 속 사람과 겉 사람 등의 내용을 통하여 그 차이를 차례로 열어 갑니다. 그러므로 AC.73에서는 우선 창1에서 다루어진 영적 인간이 창2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큰 방향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원문의 ‘then from spiritual he becomes celestial’은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아무 관계 없이 처음부터 별도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한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창2:1-17의 여러 세부 사항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틀이며, AC.73은 그 전체 과정을 단 한 문장으로 먼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AC.73 해설)

 

 

 

AC.74,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2-3절)

AC.74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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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앞,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가’

AC.72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말하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ell how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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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AC.1-5) 및 창1(AC.6-66) 번역, 해설 및 심화, 목차 및 색인 포함 with ChatGPT’ 소개

 

 

이 파일을 처음 열어 보시는 분은 아마 먼저 분량에 놀라실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 한 장을 다루는데 500쪽이 넘습니다. ‘천지창조 한 장을 설명하는 데 무슨 이야기가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분량을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출발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이하 AC)를 처음부터 차례로 우리말로 옮기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붙여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AC.1부터 한 글씩 읽어 가면서 번역만으로는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질문들이 계속 생겼습니다. 어떤 질문은 짧은 해설만으로 충분했지만, 어떤 질문은 그 자리에서 조금 더 깊이 살펴보지 않으면 다음 글로 넘어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번역에 해설이 붙고, 해설에서 다시 질문이 생겨 심화가 붙으면서 지금의 분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파일은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기획하여 집필한 결과물이라기보다, AC.1에서 AC.66까지 한 걸음씩 걸어가며 남긴 ‘읽기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원문을 번역하다가 표현 하나에서 멈추기도 했고, 스베덴보리가 왜 이런 해석을 하는지 질문하기도 했으며, 처음 AC를 접하는 분이라면 어디에서 이해하기 어려울지를 생각하면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검토해야 했고,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였던 설명을 AC 전체의 문맥과 대조하면서 고치기도 했습니다. 이 파일에는 그런 과정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자료의 기본 구성은 ‘번역, 해설, 심화’입니다. 먼저 ‘번역’은 영어 AC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우리말로 옮기려는 부분입니다. 그다음 ‘해설’은 단순히 번역문을 다시 풀어쓰는 것이 아니라, 그 AC가 앞뒤 글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창세기 본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처음 읽는 독자가 어디에서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멈출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설명한 부분입니다. ‘심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다룹니다. 본문을 이해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 가운데 해설 안에 모두 넣기에는 너무 큰 문제들을 따로 살펴본 것입니다.

 

그래서 심화까지 반드시 차례대로 모두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읽으시는 분이라면 먼저 AC 본문의 번역과 해설을 따라가시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읽다가 특별히 궁금한 주제가 나오면 그때 관련 심화를 읽으셔도 됩니다. 반대로 이미 AC를 어느 정도 읽어 오신 분이라면 관심 있는 글 번호나 심화 주제를 찾아 들어가셔도 됩니다. 500쪽이 넘는다고 해서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완독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 한 장에서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창세기 1장을 읽는 방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펼치면 천지창조를 만납니다. 흑암 가운데 빛이 생기고,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이 놓이며, 뭍이 드러나고 식물이 자랍니다.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나고, 물고기와 새와 짐승이 생기며, 마침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읽는 말씀의 문자입니다.

 

그런데 AC는 그 문자 안에서 또 하나의 창조를 봅니다. ‘사람의 거듭남’입니다. 아직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 안에 주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이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AC.6은 이것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섯 날은 서로 무관한 여섯 가지 영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이 거듭나는 동안 지나가는 ‘연속적인 상태들’입니다. 처음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 조금씩 주님에게서 오는 빛을 받고, 주님에게 속한 것과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이 구별되며, 선과 진리가 생겨나고, 마침내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상태로 나아갑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창세기 1장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자연계의 최초의 빛과 함께 ‘내 안에는 언제 처음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궁창이 물과 물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사람 안에서는 무엇이 구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땅에서 식물이 돋고 씨를 맺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는 ‘진리가 사람 안에서 어떻게 선한 삶의 열매가 되는가?’를 묻게 됩니다.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짐승과 사람도 더 이상 서로 떨어져 있는 창조물의 목록으로만 보이지 않고, 한 사람 안에 영적 생명이 조금씩 형성되어 가는 긴 흐름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인간의 거듭남만을 말한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자료는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는 문자에는 분명 천지와 빛과 물과 땅과 광명체와 생물과 사람의 창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AC가 밝히려고 하는 것은 그 문자를 없애고 다른 이야기를 대신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안에 담긴 ‘속뜻’입니다. 이 자료에서도 이 점을 여러 차례 조심해서 구별했습니다. 창조의 말씀을 지우고 거듭남을 넣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말씀 안에서 인간의 새로운 창조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자료를 읽으실 때 처음부터 모든 ‘상응’을 외우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빛은 이것, 물은 이것, 나무는 이것, 새는 이것’ 하는 식으로 대응표를 만들어 외우기 시작하면 오히려 창1 전체의 생명 있는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표현이 하나의 거듭남 안에서 어떻게 서로 이어지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이 이어지고, 둘째 날이 셋째 날을 준비하며, 그렇게 여섯째 날까지 진행됩니다. 실제 파일에서도 ‘창1의 여섯 날은 속뜻에서 여섯 개의 서로 떨어진 교훈이 아니라 하나의 거듭남이 진행되는 여섯 연속적 상태’라는 점을 중요하게 붙들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창1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조의 순서가 곧 거듭남의 질서로 읽히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자기 안에 무엇이 어둠인지조차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빛이 비치고, 구별이 생기고, 무엇인가 싹트고, 진리가 자라고, 사랑과 신앙이 점차 생명의 중심으로 들어오며, 마침내 그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 전체가 달라져 갑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새로운 영적 질서를 이루시는 ‘새 창조’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중심에 계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안에 빛을 만들고, 자기 힘으로 선을 생산하고, 마침내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읽어 갈수록 ‘내가 한다’고 생각하던 것의 생명이 실제로 어디에서 오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거듭남의 시작도 주님에게서 오고, 선과 진리의 생명도 주님에게서 오며, 시험 가운데 사람을 붙드시고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응답하고 싸우고 살아가지만 그 모든 영적 생명의 근원과 능력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이 점은 이 자료가 창1의 여섯 날을 읽으면서 계속 되돌아가는 중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이 자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남의 ‘단계’를 정리하는 교과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지금 몇째 날에 있는가?’라고 자기 영적 수준을 판정하려는 읽기를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날은 사람에게 영적 등급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어떤 질서 가운데 새롭게 하시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실제 삶에서는 여러 상태가 복잡하게 경험될 수 있고, 이미 배운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료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영적 수준을 재는 잣대로 사용하기보다, 거듭남의 방향과 질서를 배우는 데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이 파일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질문’입니다. AC를 처음 읽다 보면 정말 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은 무엇인가?’, ‘리메인스란 무엇인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왜 같은 짐승이 어떤 곳에서는 선한 것을 뜻하고 다른 곳에서는 악한 것을 뜻하는가?’, ‘형상과 모양은 무엇이 다른가?’, ‘천상의 결혼이란 무엇인가?’, ‘왜 주님께서는 악과 거짓을 즉시 없애지 않으시는가?’, ‘천사들은 말씀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같은 질문들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가능하면 그냥 지나가지 않은 것이 이번 작업의 한 특징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질문에 곧바로 거대한 교리 체계를 가져와 답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이 AC가 지금 말하는 만큼만 충분히 말하고, 다음 글의 몫은 다음 글에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떤 설명이 스베덴보리의 이 글에 직접 있는 것인지, 관련 AC들을 통해 충분히 뒷받침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설명이나 적용인지도 가능한 한 구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료는 처음 작성한 글을 그대로 모은 것만도 아닙니다. AC.1부터 AC.66까지 다시 검토하면서 번역과 해설, 심화 가운데 지나치게 나간 설명은 줄이고, 처음 읽는 분에게 꼭 필요한 설명은 오히려 보충했습니다. 성경 구절이나 다른 AC 글 번호가 인용되었다고 해서 모두 별도의 심화로 남겨 두기보다, 그 인용이 왜 사용되었는지를 해설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소화했습니다. 반대로 본문을 읽은 독자가 정말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품을 만하고, 그 질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심화로 남겼습니다.

 

특히 성경과 AC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자료에서 AC는 성경을 대신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의 표현을 AC에 맞추어 고치는 것도 이 작업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말씀이 있고, AC는 그 말씀의 속뜻을 밝히고 설명하는 책이라는 순서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AC의 영어 인용과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의 표현이 다르더라도 의미상 문제가 없다면 익숙한 성경의 표현을 우선했고, 의미 차이가 실제로 중요할 때에는 성경을 AC의 문장에 맞추어 바꾸기보다 ‘개역개정은 이렇게 되어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고 차이를 밝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파일 마지막 AC.66의 삼상2:3 심화는 바로 그런 문제를 실제 사례로 다룹니다.

 

AC.64-66에 이르면 창1의 거듭남 이야기는 다시 ‘말씀’ 자체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말씀의 속뜻이며, 그것이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천사들은 우리가 읽는 나라와 성읍과 강과 사람의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의미하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을 지각한다고 설명하고, 자신이 말씀을 읽을 때 그 내적 의미가 얼마나 아름답고 완전한 질서 가운데 지각되는지를 ‘영광’이라는 표현과 함께 전합니다. 마지막 AC.66에서는 말씀의 네 가지 서로 다른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성경의 모든 부분을 똑같은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안내도 남깁니다. 특히 태고교회의 표상적 스타일과 아브람 이후의 역사적 스타일을 구별하는 설명은 앞으로 창세기를 계속 읽어 갈 때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그러므로 AC.1-66은 창세기 1장의 마지막 절에서 끝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창세기 2장을 읽을 준비가 됩니다. 여섯째 날까지 진행된 거듭남이 그다음에는 어떤 상태로 들어가는지, ‘일곱째 날’의 안식은 무엇인지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파일은 하나의 완결된 창1 작업인 동시에 앞으로 계속될 긴 AC 읽기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이 자료를 처음 읽으시는 분께 한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응 하나하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심화까지 모두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한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을 어떻게 새롭게 창조하시는가?’

 

그 질문을 가지고 읽다 보면 ‘빛이 있으라’가 조금 달리 들릴 수 있습니다. 궁창이 나뉘고 땅이 드러나며 씨가 싹트는 모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빛나고 생물이 살아 움직이며 마침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는 장면들이 먼 옛날의 창조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지금도 한 사람 안에서 주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새 창조의 질서와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에는 ChatGPT가 함께했습니다. 번역을 비교하고, 문장을 다듬고, 앞뒤 AC의 문맥을 살피며,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무엇을 궁금해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자료를 ‘ChatGPT가 AC를 해석해 준 결과’라고 소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C 원문과 말씀 앞에서 계속 질문하고, 답을 다시 원문에 비추어 검토하며, 때로는 앞서 쓴 해설을 고치고 다시 쓰는 긴 협업의 결과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이 파일의 제목에도 ‘with ChatGPT’라고 적었습니다. ‘by ChatGPT’가 아니라 ‘with ChatGPT’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이번 작업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자료는 제 손에서만 읽히는 작업 노트를 넘어, 처음 AC를 접하는 분들과도 나누어 보려 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낯설고, 어떤 대목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서둘러 받아들이거나 서둘러 거부하기보다, 먼저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천천히 따라가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AC 자체에 머무르기보다, AC가 계속해서 가리키는 말씀으로 돌아가 보셨으면 합니다.

 

500쪽이 넘는 긴 여정이지만, 그 시작은 아주 짧은 한 말씀입니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어쩌면 창세기 1장을 속뜻으로 읽는 긴 여정은 결국 이 한 말씀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듣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있는 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빛을 주시고, 구별하시고, 생명을 싹트게 하시고, 사랑과 신앙을 자라게 하시며, 마침내 그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과정 말입니다.

 

이 자료가 그 놀라운 말씀의 여정을 조금 더 깊이 따라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문(AC.1-5) 및 창1(AC.6-66) 번역, 해설 및 심화, 목차 및 색인 포함 with ChatGPT.pdf
3.61MB

 

 

 

AC.1, 서문, 말씀 안에 담긴 하늘의 비밀들 (AC.1-5)

AC.1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는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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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란 무엇인가? - AC를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한 소개

※ 본 글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의 대표 저작인 ‘Arcana Coelestia’(약어 AC)에 대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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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

사람의 거듭남의 연속적 상태들인 여섯 날(days), 곧 여섯 시기(periods)는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 six days, or periods, which are so many successive states of the regeneration of man, are in general as follows.

 

해설

AC.6은 창세기 1장을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는지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선언하는 문장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의 과정이 이어지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여섯 날을 ‘사람의 거듭남의 연속적 상태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이어지는 빛, 궁창, 땅과 식물, 두 광명체, 물고기와 새, 짐승과 사람의 창조는 단지 자연계의 창조 순서를 설명하는 것으로만 읽히지 않고, 사람이 거듭나는 동안 그 내면에서 차례로 일어나는 상태들의 변화로 읽히게 됩니다. AC.6은 아직 그 여섯 상태 각각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이어지는 AC.7-13에서 하나씩 밝혀집니다. 여기서는 먼저 독자에게 ‘여섯 날을 여섯 거듭남의 상태로 읽으라’는 가장 기본적인 해석의 문을 열어 줍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날들’(days)이라고만 하지 않고 곧바로 ‘또는 시기들’(or periods)이라고 덧붙인 점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창세기의 ‘날’은 단순히 일정한 길이의 자연적 시간을 가리키는 데 머물지 않고, 거듭남 가운데 사람이 지나가는 하나의 상태와 그 상태가 지속되는 시기를 가리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라는 순서는 단순한 달력상의 시간 순서가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가 차례로 전개되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AC.6이 특별히 ‘연속적 상태들’(successive states)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하나의 동일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변화하면서 진행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연속적 상태들’을 곧바로 사람이 반드시 여섯 단계를 한 번씩 정확히 통과해야 하는 고정된 도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AC.6은 아직 그런 세부적인 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의 ‘전반적으로’(in general)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부터 설명할 여섯 상태가 거듭남의 전체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 주는 개요임을 먼저 밝힙니다. 따라서 AC.7-13에서 설명되는 여섯 상태는 거듭남의 큰 질서를 보여 주는 것이며, 각 상태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수많은 세부 과정까지 이 짧은 개요에 모두 담겨 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AC.6은 세밀한 거듭남의 단계표를 제시하는 문장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의 여섯 날 전체를 거듭남이라는 하나의 큰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선언입니다.

 

이 때문에 AC.6은 짧지만 창1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독자가 이 한 문장을 받아들이면 창세기 1장의 풍경이 달라집니다. 빛이 생기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물 가운데 궁창이 생기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나뉘는 것은 사람 안에서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내는 것은 무엇인지,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나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이 등장하며 마침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묻게 됩니다. AC.6은 아직 그 질문들에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읽는 첫 열쇠를 건넵니다. 창조의 여섯 날은 사람의 거듭남의 여섯 연속적 상태이며, 이제 AC.7부터 그 상태들이 차례로 열리기 시작합니다. (AC.6 해설)

 

 

 

AC.7, 창1 개요, ‘혼돈과 흑암 위에 먼저 움직이시는 주님의 자비: 거듭남의 출발점’

AC.7첫 번째 상태는 앞서는 상태로서, 유아기부터의 상태와 거듭남 바로 직전의 상태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 상태를 ‘혼돈’(void), ‘공허’(emptiness), 그리고 ‘흑암’(thick darkness)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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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서문, ‘주님의 신적 자비로 열린 영계의 증언’

AC.5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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