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경건하신 원로(39생) 여목사님이 보내오신 고백과 그에 대한 저의 답글입니다.

 

먼저 여종의 글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목사님, 너무 두렵고 떨리는 말씀, 저는 얼마나 추악한지 모릅니다. 겉치레만 그럴 듯, 속은 형용할 수 없는 내면입니다. 어찌 표현할 수 없이... 자존심에, 이기심에... 감히 글로 표현 못 하겠습니다. ~~~, 끝이 없습니다. 어서 부르시기 전에 변화되어야지요... 죄송하지만 기도해주세요.

 

저는 목사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이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어 그 귀한 보화를 무지한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귀한 날이 이르도록...

 

귀한 긴 시간 소비시켜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가내 평강하소서... 🙏🙏🙏🙏🙏🙏

 

 

다음은 다음날 제가 보내드린 답글입니다.

 

목사님, 다음 글은 ‘천국과 지옥’ 513번 글인데요, 53장, ‘사람의 사후 셋째 상태’에 나오는 겁니다.

 

교육은 많은 공동체의 천사들이, 특히 북쪽과 남쪽 공동체의 천사들이 맡는다. 그쪽 천사 공동체들은 선과 진리를 아는 데서 오는 지성과 지혜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 장소들은 북쪽을 향하고 있고, 다양하며, 모든 영이 각자의 성격과 수용 능력에 따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천국적 선의 종류와 다양함에 따라 구분되고 배치되어 있다. 교육 장소들은 아주 멀리까지 둥글게 퍼져 있다. 교육을 받을 선한 영들은 중간 영계에서의 그들의 둘째 상태가 완료되면 주님의 인도로 이 장소들로 오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들은 세상에서 이미 가르침을 알고 있었고, 주님에 의해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다른 길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간다. 그중 일부는 죽은 뒤 바로 올라가고, 일부는 선한 영들과 잠시 머물면서 세상에서 명예와 재물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애정의 탁한 요소들이 제거되어 정화된 후에 올라간다. 일부는 먼저 버려짐을 겪는데, 이는 낮은 땅이라고 하는 발바닥 밑에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이들은 거기서 심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은 선한 삶을 살았지만, 그릇된 생각을 확신한 사람들이다. 그릇된 생각들은 확신하면 굳게 달라붙고, 그것이 떨어져 나가기 전까지는 진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다. 버려짐의 과정은 ‘천국의 비밀’에서 다룬 바 있다.주278 (HH.513)

 

이중 ‘주278’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① 내세에는 황폐함(vastations, 버려짐)이라는 게 있는데, 그러니까 생을 마감하고 내세에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것이다. (AC.698, 7122, 7474, 9763)

 

② 선한 사람들은 거짓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나고, 반면 악인들은 진리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난다. (AC.7474, 7541, 7542)

 

③ 선한 사람들이 겪는 황폐함은 지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벗어버리는 황폐함인데, 이것들은 세상에 살 동안 함께했던 것들이다. (AC.7186, 9763)

 

④ 또한 악과 거짓의 제거,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주님한테서 나오는 천국 선과 진리의 유입을 위한 여지, 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AC.7122, 9330)

 

⑤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런 것들이 제거될 때까지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을 방해하고, 그들과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AC.6928, 7122, 7186, 7541, 7542, 9763)

 

⑥ 천국으로 올려지는 사람들은 그래서 미리 준비된다. (AC.4728, 7090)

 

⑦ 준비도 되기 전, 천국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AC.537, 538)

 

⑧ 황폐함이라는 과정을 마치고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의 내적 밝아짐과 기쁨의 상태,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리셉션에 관하여 (AC.2699, 2701, 2704)

 

⑨ 이들 황폐함의 과정이 진행되는 지역을 가리켜 낮은 땅이라고 한다. (AC.4728, 7090)

 

⑩ 그 지역은 지옥들로 빙 둘러싸인 발바닥 아래이다. 그곳에 대한 설명(AC.4940–4951, 7090)과 그곳을 경험한 이야기(AC.699)

 

⑪ 그 무엇보다 훨씬 더 감염되게 하고, 황폐하게 하는 지옥들이란 무엇인가 (AC.7317, 7502, 7545)

 

⑫ 선한 사람들을 감염시켜 황폐하게 한 사람들은 나중에는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피하며, 그들로부터 돌아선다. (AC.7768)

 

⑬ 이들 감염과 황폐의 과정은 악과 거짓의 들러붙은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되며, 그들의 질과 양에 따라 계속된다. (AC.1106–1113)

 

⑭ 일부는 황폐화 과정을 진심으로 기꺼이 원한다. (AC.1107)

 

⑮ 일부는 두려워하면서 황폐화 과정을 밟는다. (AC.4942)

 

⑯ 일부는 세상에서 행한 악과 세상에서 한 거짓된 생각들로 감염되어 있다. 그들은 이 악과 거짓 때문에 근심하고 양심의 큰 고통을 겪는다. (AC.1106)

 

⑰ 일부는 진리 알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운데 영적 감금 상태에 있는, 그런 식으로 이 과정을 지나는데, 이 상태는 진리에 관한 무지와 진리를 차단하는 상태다. (AC.1109, 2694)

 

⑱ 일부는 잠드는 식으로, 일부는 깨어있음과 잠이 든, 그 중간 상태에 있는 식으로 (AC.1108)

 

⑲ 자기가 한 일을 공으로 여긴 사람들한테는 자신들이 마치 장작을 패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AC.1110)

 

⑳ 다른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엄청한 다양함으로 (AC.699)

 

//

 

 

여기서 예를 들어, ‘AC.699’라는 표현은, ‘Arcana Coelestia 699번 글’이라는 뜻입니다.

 

‘Arcana Coelestia’는 라틴어로, ‘天界秘義, 천국의 비밀’ 등으로 옮길 수 있고, 이는 주님이 풀어 주시는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을 스베덴보리가 총 7년에 걸쳐 딕테이션한 것입니다. 글 번호가 10,837번으로 끝나지요.

 

목사님, 어제 목사님 마지막 글을 읽고 계속 생각하게 하시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답을 하게 하시네요...

 

목사님, 우리 중에 과연 누가 사후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을까요? 스베덴보리는 그런 사람을 보긴 보았지만 아주 아주 희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옥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보았답니다.

 

위 ⑦번 글처럼 저 역시 이 상태로 만일 임종, 그리고 천국으로 바로 들어가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위 ④번 글처럼 사후, 저렇게 천국에 올라갈 준비를 시켜주시는 주님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 역시 ⑬번 글처럼 제게 들러붙은 것들을 떼어내는 과정이 진행되겠지만, 욥의 고백처럼 정금, 순금처럼 정제되어 천국에 올라갈 줄 믿습니다.

 

목사님이야말로 주님 보시기에 순금(pure gold)이시며, 극락조(a bird of paradise)이십니다. 목사님은 스스로 자신을 배설물이요, 거기 앉아 있는 파리로 여기시기 때문인데요, 참으로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그런 존재임을 시인, 인정, 그리고 믿습니다.

 

그러니 목사님, 더 이상 자꾸 저거하지 마시고, 오히려 주님의 사랑과 호의, 선의 안에 머무르시며, 감사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에게 와있는 천사들이 목사님 홀로 계시는 방과 거실을 삼층천 천국 향기로 가득 채우실 줄 믿사오며...

 

샬롬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

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혹스럽게도 다른 어떤 천국도 결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광기 어린 생각에 빠지며, 그리하여 이와 같은 공상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Evil spirits have sometimes supposed that there is another heaven besides that of the Lord, and they have been permitted to seek for it wherever they could, but to their confusion they could never find any other heaven. For evil spirits rush into insanities both from the hatred they bear against the Lord, and from their infernal suffering, and catch at such fantasies.

 

해설

AC.458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부터 이어져 온 천국에 관한 여러 잘못된 생각의 뿌리를 한층 더 깊은 곳에서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천국을 높은 곳, 입장이 허락되는 장소, 편안히 쉬는 곳,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곳, 혹은 영원히 찬양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여러 관념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근본적인 생각이 등장합니다. ‘주님의 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혹시 다른 천국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천국의 본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랑과 지배욕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행복하기를 원하는 영에게는 주님의 천국이 자신이 원하는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행복은 원하지만, 그 행복을 이루는 천국의 사랑과 질서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천국’을 상상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주님께서는 그 생각을 단지 말로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하십니다. AC.450의 영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천국을 경험하도록 허락받았고, AC.455의 사람이 자신이 천국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찬란한 빛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강제로 빼앗기보다 그것이 실제로 어디에 이르는지를 스스로 경험하여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도 다른 천국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천국이라는 장소가 하나뿐이라는 말보다 훨씬 깊은 뜻을 지닙니다. 천국은 본질적으로 주님의 생명,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떠난 채 천국의 행복만 따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질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 천국의 기쁨만, 체어리티 없이 행복만, 주님 없이 천국만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악한 영들이 이러한 공상에 매달리는 원인으로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함께 말합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배적인 악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악으로 인한 고통에서는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변화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이 자기 안의 악한 사랑에 있는 한, 장소를 바꾸거나 다른 천국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그 상태가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광기 어린 생각’이라는 표현도 단순히 이성을 잃었다는 의미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악은 영적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며, 악한 사랑이 사고를 지배하면 사람은 결국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주님을 미워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천국의 기쁨을 원하며, 자기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천국을 찾는 것 자체가 영적 질서에서는 모순인 것입니다.

 

결국 AC.458은 천국이 주님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독립된 행복의 세계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천국에는 AC.457에서 본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있지만, 그 모든 다양성을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는 근원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오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무수한 공동체와 무수한 종류의 행복이 있어도 ‘다른 근원에서 오는 또 하나의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을 원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과 질서를 원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랑과 질서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천국의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AC.458 해설)

 

 

 

AC.459, 창5 앞, ‘세 천국과 천적·영적 존재의 차이’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9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bygrace.kr

 

AC.457, 창5 앞, '천국의 행복은 왜 사람마다 똑같지 않은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천국을 하나의 방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여, 문이 열리면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도록 허락받고, 문지기들이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ome entertain so gross an idea of heaven that they suppose it to be mere admission, in fact that it is a room into which they are admitted through a door, which is opened, and then they are let in by the doorkeepers.

 

해설

AC.453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452에서 계속 바로잡아 온 잘못된 천국관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유형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천국을 ‘입장 허가를 받아 들어가는 장소’로 생각하는 관념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을 사람의 내적 상태와는 별개로, 죽은 뒤 어느 문 앞에서 입장 여부가 결정되는 두 장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고 하는 까닭은 천국을 전적으로 외적인 장소와 절차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랑을 품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보다, 마지막에 천국의 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결정적인 문제가 됩니다. 천국이 마치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 그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공간처럼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경험들이 이미 보여 주었듯이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AC.450에서는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천국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으로 어떤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이 천국의 사랑과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천국의 ‘문’도 단순한 출입구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보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실제 삶으로 살아갈 때 그의 내면은 천국과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천국은 죽은 뒤 갑자기 외부에서 주어지는 낯선 삶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부터 사람 안에 형성해 가시는 생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AC.453은 구원 역시 단순한 ‘입장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까지 우리를 이끕니다. 물론 천국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획득하는 곳이 아니며 모든 구원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생명을 사람이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그 생명에 따라 살아가는 거듭남의 과정 없이, 외적 허가 하나만으로 내적 상태가 천국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짧은 글은 바로 다음 경험들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 옳다면, 어떤 사람이든 천국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천국의 상태와 맞지 않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게 천국의 생명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이 형성되어 있는가’입니다.

 

결국 AC.453은 천국을 미래의 어떤 장소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현재의 삶으로 되돌립니다. 중요한 것은 죽은 뒤 천국 문 앞에서 누가 나를 들여보내 줄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 내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와 선과 진리의 생명을 이루어 가시도록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단순히 외적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내면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AC.453 해설)

 

 

 

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bygrace.kr

 

AC.452, 창5 앞,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