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말씀의 내적인 것과 그 근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해설에 사용된 스베덴보리의 중요한 신학 용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AC.1의 어떤 단어를 신적 진리라고 번역한 것인가?’가 아니라 ‘해설에서 말한 신적 진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신적 진리’는 단순히 인간이 알고 있는 옳은 정보나 참된 명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 근원이 주님께 있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사실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신적’이라는 말이 붙을 때에는 그 출처가 인간의 지식이나 추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적 진리는 말씀과도 깊이 연결되고, 인간에게 빛을 주며 선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인간의 이해 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신적 진리가 된다’고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신적 진리가 신적인 것은 인간에게 어떤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원 자체가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신적 진리를 자신의 이해와 삶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이 점은 AC.1과도 잘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구약의 외적 의식과 규례와 역사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주님과 주님의 천국과 교회 등에 관계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때 말씀을 단순한 인간의 종교 문헌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 ‘신적 진리’라는 개념은 앞으로 매우 중요해집니다. 다만 AC.1 자체가 아직 그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 의미를 미리 지나치게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AC.1과 관련하여 ‘신적 진리’를 기억할 때에는 우선 두 가지만 붙들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참인 정보’를 뜻하는 말이 아니며, 그 근원이 주님께 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AC를 읽으면서 말씀과 주님, 선과 진리, 신적 유입에 관한 설명이 쌓이면 ‘신적 진리’라는 말의 깊이도 점차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AC.1 심화 4)

 

 

 

AC.1, 서문, ‘말씀 안에 담긴 하늘의 비밀들’

AC.1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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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심화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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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서는 먼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AC.1 원문에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AC.1의 ‘층위’를 어떤 하나의 영어 또는 라틴어 단어의 번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 저작 전체에서 ‘단계’ 또는 ‘층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말 가운데 하나는 영어 번역에서 ‘degree’, 라틴어에서는 ‘gradus’입니다. 특히 서로 질적으로 구별되는 단계들을 설명할 때 이 개념은 스베덴보리의 인간론과 천국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AC.1에서 `gradus`라고 썼고 우리가 그것을 층위라고 번역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존 설명처럼 AC.1의 ‘층위’의 원어가 곧 ‘degree’, 더 엄밀히는 ‘discrete degree’라고 확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고 한 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차이를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어입니다. 이후 다른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gradus’나 그 밖의 관련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자리에서는 각각의 원어와 문맥을 따라 번역해야 합니다.

 

이것은 번역 작업에서 꽤 중요한 원칙입니다. 해설을 위해 사용하는 한국어 개념과 스베덴보리 원문의 전문용어를 서로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층위’가 스베덴보리 사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해서 그 단어가 등장하는 모든 해설의 배후에 반드시 하나의 동일한 원어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실제 원문에 ‘gradus’가 등장할 때는 그 문맥에서 ‘단계’, ‘층위’, ‘정도’ 가운데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AC.1의 층위에 대한 원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조금 뜻밖입니다. ‘AC.1에는 그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없다’입니다. ‘층위’는 우리가 해설에서 사용한 표현이며, 스베덴보리의 단계 개념을 대표하는 중요한 원어 가운데 ‘gradus’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앞으로 라틴어 원문까지 함께 대조하며 AC를 번역할 때 훨씬 안전한 출발점이 됩니다. (AC.1 심화 3)

 

 

 

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심화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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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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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스베덴보리에게 층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작 전체에서 서로 다른 단계와 질서의 구별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 겉 사람과 속 사람, 지상과 천국을 단순히 같은 종류의 것이 조금 더 높아지거나 낮아진 것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후기 저작에서는 연속적 단계와 불연속적 단계의 구별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층위’라는 한국어는 스베덴보리의 세계를 설명할 때 유용한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AC.1 원문 자체가 ‘층위’라는 전문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AC.1은 외적인 것들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AC.1 해설에서 사용한 ‘층위’는 우선 이 차이를 독자가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해설어입니다. 이것을 곧바로 스베덴보리의 단계 교리 전체와 동일시하거나, AC.1이 이미 자연적·영적·천적 단계의 완성된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구별은 오히려 ‘층위’라는 말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말씀의 문자와 내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된 두 책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속뜻을 문자적 의미의 조금 더 깊은 해석 정도로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의 말씀 안에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는 이후 AC를 읽으면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AC.1에서 ‘층위’라는 표현은 하나의 유용한 안내어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 단어 자체를 AC.1 원문의 전문용어로 생각하지 않고, ‘겉 글자에서 보이는 외적인 것과 그 안에 존재하는 내적인 것을 구별하여 이해하기 위한 해설상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을 그어 두면 앞으로 스베덴보리의 실제 단계 교리가 등장할 때 그 개념과도 혼동하지 않고 연결할 수 있습니다. (AC.1 심화 2)

 

 

 

AC.1 심화 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심화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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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심화 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 심화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에서 ‘religious belief’는 말씀의 내적인 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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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에서 ‘religious belief’는 말씀의 내적인 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religious belief’,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faith’가 아니라 ‘belief’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AC 번역에서 ‘faith’는 기본적으로 ‘신앙’, ‘belief’는 ‘믿음’으로 구별하기로 한 원칙을 따르면, ‘religious belief’는 ‘종교적인 믿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신앙’이라고 번역하면 원문에서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했을 때 그 차이가 한국어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AC.1의 이 한 표현만으로 ‘religious belief’의 신학적 범위를 지나치게 크게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 체계만을 가리키는지, 교회 밖에서 신성을 인정하는 종교적 믿음까지 모두 포함하는지, 또는 ‘faith’와 ‘belief’ 사이에 스베덴보리가 언제나 일정한 전문적 구별을 두는지까지는 더 많은 용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AC.1은 아직 그러한 구별을 설명하는 문맥이 아니라 말씀 안의 내적인 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넓게 열거하는 서문의 첫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는 원문의 차이를 보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faith’가 나오지 않았는데 익숙한 신학 용어라는 이유로 ‘신앙’으로 바꾸지 않고, ‘religious belief’를 ‘종교적인 믿음’으로 옮겨 두는 것입니다. 이후 AC를 읽으며 ‘faith’와 ‘belief’의 실제 용례가 충분히 쌓이면 두 단어의 관계도 스베덴보리 자신의 사용을 따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AC.1 심화 1)

 

 

 

AC.1 심화 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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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서문, ‘말씀 안에 담긴 하늘의 비밀들’

AC.1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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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 곧 겉 글자만으로는, 일반적으로 말해 그 안의 모든 것이 단지 유대교회의 외적 의식들과 규례들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말씀 곳곳에 내적인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외적인 것들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극히 일부는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드러내시고 설명하셨는데, 예를 들면 희생 제사들은 주님을 상징하며,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은 천국을 상징하므로 ‘천국의 가나안’,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고, 낙원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From the mere letter of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no one would ever discern the fact that this part of the Word contains deep secrets of heaven, and that everything within it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bears reference to the Lord, to his heaven, to the church, to religious belief, and to all things connected therewith; for from the letter or sense of the letter all that anyone can see is that—to speak generally—everything therein has reference merely to the external rites and ordinances of the Jewish church. Yet the truth is that everywhere in that Word there are internal things which never appear at all in the external things except a very few which the Lord revealed and explained to the apostles; such as that the sacrifices signify the Lord; that the land of Canaan and Jerusalem signify heaven—on which account they are called the heavenly Canaan and Jerusalem—and that paradise has a similar signification.

 

해설

AC.1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전체를 여는 첫 문장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창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곧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독자가 앞으로 말씀을 어떤 눈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밝힙니다. 구약의 말씀을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 의미가 잘못되었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AC 전체가 문자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말씀은 문자에 보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그 외적인 것들 안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이 AC.1의 첫 선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큰 이야기나 몇몇 특별한 예언에만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안의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앞으로 AC에서 인물과 장소뿐 아니라 이름과 숫자와 방향, 행동과 반복되는 표현까지 세밀하게 다루게 되는 출발점이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의 속뜻은 문자 가운데 몇몇 부분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교훈이 아니라, 그 말씀의 개별적인 것들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첫자리에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인 것들을 인간의 내면이나 거듭남에 관한 이야기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주님을 말하고, 이어 주님의 천국과 교회와 종교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앞으로 창세기의 창조와 에덴동산, 가인과 아벨, 노아와 홍수 등이 인간의 거듭남과 교회의 상태로 열리더라도, 그 속뜻의 중심에서 주님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내 안에서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말씀이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관하여 무엇을 담고 있는가?’라는 방향이 AC.1에서부터 주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내적인 것의 존재가 전혀 낯선 주장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이미 밝혀 주신 예들을 듭니다. 희생 제사들은 주님을 상징하고,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은 천국을 상징하며, 낙원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희생 제사는 실제 의식이고 가나안과 예루살렘은 실제 장소이지만, 말씀 안에서는 그것들이 그 외적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내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AC.1은 아직 그 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앞으로 AC를 읽으면서 이것이 ‘상응’과 ‘표상’이라는 거대한 말씀 이해로 펼쳐지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첫 번호에서는 상응의 체계를 미리 완성하기보다, 외적인 것 안에 내적인 것이 있다는 첫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문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현행 해설에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층위’라는 말을 사용했고, 바로 그 때문에 기존 심화 2와 심화 3이 생겼습니다. 이 표현 자체를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AC.1 원문이 직접 ‘degree’나 ‘gradus’를 사용하여 말씀의 의미들을 단계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구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층위’는 우선 외적인 것과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동일한 평면의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는 해설상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말씀의 문자와 내적인 의미의 더 정확한 관계는 이후 스베덴보리 자신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점차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AC.1에서 독자가 먼저 붙들 것은 복잡한 상응표나 의미의 단계 체계가 아닙니다. 구약의 겉 글자 안에는 문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무엇보다 주님을 향하고, 주님의 천국과 교회와 종교적인 믿음 및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선언 하나를 먼저 세운 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말씀을 하나씩 열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AC.1은 이후 10,837개 번호 전체를 읽게 하는 첫 문이며,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라는 대작이 왜 쓰였는지를 한 문장 안에 압축해 놓은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1 해설)

 

심화

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 심화 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 심화1. ‘religious belief’를 왜 ‘종교적인 믿음’으로 번역하는가? AC.1에서 ‘religious belief’는 말씀의 내적인 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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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 2, ‘층위’란 무엇인가?

AC.1 심화2. ‘층위’란 무엇인가? AC.1 해설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말씀의 겉 글자와 그 안의 내적인 것이 단순히 같은 평면에 놓인 두 가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표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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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심화 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심화3. AC.1의 ‘층위’에 직접 대응하는 원어가 있는가? AC.1 해설과 심화 2에서 ‘층위’라는 말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원어에서는 층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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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심화 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심화4. ‘신적 진리’(Divine Truth)란 무엇인가? AC.1 해설을 읽다가 ‘신적 진리’(Divine Truth)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AC.1 원문 자체에는 ‘Divin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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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 서문, ‘말씀의 생명은 주님에게서 온다’

AC.2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아직도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아니 가장 작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가장 미세한 점 하나에 이르기까지도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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