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5(D2)-성탄예배(2521, 눅2,8-11, 성탄절, 공주농아교회),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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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D2)-성탄예배.축도.성탄절.공주농아교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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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ZXdWxYWd3U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8-11)

 

 

주님의 성탄(聖誕)을 공주농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지난 2019년 성탄절을 여러분과 함께하였으니 만 4년 만에, 그것도 너무나도 귀한 성탄절을 이렇게 다시 공주농아교회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 기쁘고 감사한 날에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안, 천국의 평화를 전합니다. 이 아침, 이 시간, 이 본당에 주님의 임재, 천국의 빛이 환히 비추시기를, 그래서 모두의 영과 육이 활짝 열려 오늘 저를 이 자리 세워 여러분에게 전하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온전히 이해되며,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게 하시기를, 그래서 천사들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주님과 결합하여 이 예배가 참으로 주님께 열납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한 가지, 곧 주님의 너무나도 귀한 이 성탄 소식을 왜 하필이면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천민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목자들에게 알리셨을까 하는 걸 나누고자 하며, 이를 통해 목자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일어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면 숨을 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반대로, 사람이 산소통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둘 다 숨을 쉴 수 없어 죽습니다. 물고기는 아가미 호흡을, 사람은 폐 호흡을 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은 얼굴에 있는 이 육의 눈으로 영적 존재를 볼 수 없습니다. 육의 귀로 들을 수도 없고요. 영적 존재인 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눈엔 우리가 사는 이 자연계가 보이지 않고, 자연계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두 세계가 전혀 달라 서로를 직접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창조주가 정하신 질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주의 사자, 곧 천사를 볼 수도, 그들이 전하는 소식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요, 이 어찌된 일일까요?

 

성경에 보면, 천사들 같은 영적 존재들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이 있는데요, 우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있습니다. 그가 제사장 직무를 행하러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때, 향단 우편에 나타난 주의 사자, 곧 천사를 통해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1:13) 하는 예고를 받습니다. 동일한 사건이 이번엔 주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일어나지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하는 놀라운 소식을 고지받습니다. 이외에도 주님이 변화하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하신 모습을 본 제자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요한도 있고요, 부활하신 주님을 무덤가에서 처음 뵌 막달라 마리아도 있습니다.

 

주님의 질서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육의 눈이 아닌, 영의 눈, 곧 영안이 열려 영으로 본 것이며,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목자들 또한 그들의 영으로 천사를 본 것임을 알 수 있는데요, 자, 그렇다면, 더욱 놀랍습니다. 당시 저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계 리더십들이 수두룩했음에도 그들은 한 사람도 천사의 방문을 받지 못한 반면, 엉뚱하게도 한밤에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는 이 놀라운 방문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천사를 목자들에게 보내셨다는 것은 목자들의 마음속 중심이야말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고요, 추운 밤 밖에서 양 떼를 돌보던, 정말 역한 양 똥 냄새 밴 거적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목자들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오히려 정말 마음 편하신 그런 사람들이었음을, 그래서 주님이 그들의 영안을 열어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목자’는 보통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왜냐하면 ‘’은 속뜻으로는 사람의 마음속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 仁愛, 이웃사랑)를 뜻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는 말씀은 ‘진리가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이 어두울 때에도 여전히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법도를 이웃에게 전하는 사람들’을 뜻하며,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으신 것이고, 그래서 천사는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목자들에게 보내심을 받아 주님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16:9)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다행히 우리 곁에 바로 이런 목자의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요, 바로 우리 서미례 전도사님과 그 가정입니다. 농아의 삶을 사는 성도들을 오랜 세월, 이렇게 한곳에서 묵묵히 섬기신다는 것은 정말 말이 쉽지 저 유명하다는 목사, 목회자라 할지라도 아무나 못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도 ‘고맙다. 너희 아니면 딱히 누구에게 이 교회를 맡겨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목자들처럼 천사들을 만날 수도,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남 탓 안 하고, 그냥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모든 걸 사랑으로, 즉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표현이 좀 미안한데요, 무식하면, 무지하면 사랑도 못해요. 사랑과 지혜는 같이 가는 겁니다. 사랑은 지혜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사랑이 되고, 지혜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걸 모르면, 나는 그게 사랑인 줄 알고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고, 오히려 크게 사고 친 게 되고 마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성경, 곧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시고, 힘써 읽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셔야 하는데요, 그중의 하나를 말씀드리면,

 

여러분, 천사들은 보는 것과 듣는 것, 즉 시력과 청력 중 어느 걸 더 중요하게 여길까요? 힌트를 드리면, 시력, 시각은 이성, 지식, 머리에 해당하고, 청력, 청각은 의지, 지혜, 가슴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네, 맞습니다. 바로 듣는 것, 곧 순종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통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즉, 일상생활 가운데 잘 모르는 게 있으시면 여러분의 목자이신 서미례 전도사님과 상의하신 후, 전도사님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전도사님의 모습으로 여러분 곁에 와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인데요, 서미례 전도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곧 주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실지 몰라도 주님은 그렇게 여기신다는 사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진리는 사실 더욱 확장할 수 있는데요, 바로 부부는 서로를 주께 하듯,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또한 자녀를 각각 주께 하듯, 직장에서, 사회에서 누구를 대하든 다 주께 하듯 대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걸 가르쳤습니다.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2, 25)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1)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네, 여러분, 살면서 우리 주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생전에 주님을 사랑하는 연습, 훈련을 항상 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이런 훈련을 열심히 하면,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목자들과 같이 되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걸 무척 편안해하시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비록 육으로는 지상에 있지만, 영으로는 늘 천국과, 그리고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목회자든 성도든, 부모든 자녀든, 그리고 직장 상사든 평직원이든 저마다 다 나름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각자 주님 앞에서 해결할 문제고, 우리는 저마다 주님 앞에 자기 할 도리만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너는, 누구는 이렇다 저렇다 비난과 지적질로 세월을 허송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한두 가지 비밀을 더 말씀드리면, 여러분, 사람은 본질적으로는 영입니다. 사람의 사후, 이 몸은 지상에 남기고 가 썩어 없어지지만, 영은 영원히 영계, 즉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히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영이 육이라는 옷을 입고 지상에서 왔다 갔다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의 눈으로 오직 자연계의 것만 볼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영, 심지어는 자신의 영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는 악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사후 영계에서 자신의 영의 그 괴물 같은 모습을 보고서는 그만 기절할 정도로 놀란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람 몸의 여러 감각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그리고 만지는, 이 신체의 오감은 사실은 영의 감각인데요, 사람의 사후 영이 되면, 이 감각들은 고스란히, 아니 몇 배로 확장된다고 합니다. 그때는 더 잘 보고,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지요. 그렇다면, 우리 같은 농아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네, 비록 육으로는 이런 장애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영은 멀쩡, 너무나도 멀쩡하여 전혀 아무 이상 없는 상태입니다. 참 다행이지요. 그러나 한편, 참 안타깝습니다. 영은 멀쩡한데 육이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육의 감각은 사실은 영의 감각이 연결되어 움직이는 건데 지금 그 연결이 끊어져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영과 육이 서로 연결되게 할 수 있을까요?

 

32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막7:32-35)

 

우리가 잘 아는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운 좋게 나았다 생각할 게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이 사람 안에 흘러 들어갈 수 있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님이 안수하셔도 이 사람의 속 사람 상태가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애당초 이 사람의 속 사람 상태가 그랬다면 주님은 이 사람을 안수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육은 영의 옷이라 했습니다. 즉 정말 중요한 건 육이 아니라 영, 곧 당사자 본인의 속 사람의 상태인 것이며, 이 상태는 우리가 오늘 본문 목자의 삶을 살 때, 열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고, 하나하나 생활 속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다 주님 뜻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악과 거짓을 힘써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서서히 우리 영이 깨어나며, 그리고 천국을 향한 창문이 열리는데요, 그러다가 혹시 주님이 기뻐하시면, 즉 때가 되면 지금은 끊어져 있는 이 듣는 능력이, 지금은 굳어져 있는 이 말하는 능력이 다시 연결되고 회복되어 위 마가복음 말씀처럼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리는’ 놀라운 일이 내 방에서, 혹은 이 본당에서 나 혼자 기도하는 중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그리고 우리 서미례 전도사님도 역시, 아니 우리 모두 정말 이런 일이 이 교회에서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 있기를 정말 진심으로 원하고 또 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의 목자는 ‘진리가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이 어두울 때에도 여전히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법도를 이웃에게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그리고 주님을 만나 참된 회개, 진정한 거듭남을 결심한 모든 성도에게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게 하시기를, 이를 위해 오래전 오늘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저 목자들처럼 기뻐하고 감사, 찬송,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 되게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주님 오신 기쁨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주님이 종을 보내사 이 교회에게 하시고픈 말씀을 힘써 다 전했습니다. 부디 이 말씀이 마음의 귀, 영의 귀 기울여 말씀을 들은 모든 성도의 안에서 불씨가 되어 불붙게 하시고, 그래서 주님 약속하신 영과 육의 연결이 일어나, 참으로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리는’ 놀라운 일이 이 교회 본당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게 하시기를, 주님은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온 교회가 목격하게 하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신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니다.

 

아멘

 

설교

2023-12-25(D2), 성탄절

공주농아교회에서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수화 통역

공주농아교회 서미례 담임전도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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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D1)-주일예배(2520, 눅2,8-20, 성탄주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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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D1)-주일예배.축도.성탄주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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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xUaQXqyqoc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눅2:8-20)

 

 

사람의 영혼과 몸이 하나인 것처럼 주님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된 후, (기독교계의 교리에 따르면) 이 둘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주님은 신이신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점에서 여호와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이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이것이 왜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구속주와 구세주라 하는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왜 구속주와 구세주를 여호와라 하는지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에 관한 교리 34:4) As, therefore, after the unition of the human with the Divine in him, which was like that of the soul and body in man, they were no longer two but one person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world), it follows that the Lord is Jehovah and God as to both the Divine and the human. And this therefore is why it is said on the one hand that Jehovah and the holy one of Israel are the redeemer and savior, and on the other that the redeemer and savior are Jehovah, (Doctrine of the Lord, .34:4)

 

 

주님의 탄생을 교우님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천여 년 전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주님의 탄생을 12월 25일로 정하고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본래 12월 25일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지키던 동짓날로서,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을 기념하던 절기인데 당시 로마 교주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제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정황상, 주님이 오신 가장 성경적인 날은 10월 1일 나팔절이라고 하며, 그 근거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 본문 8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에 나오는 ‘밖에서’라고 합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류모세 저,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15장,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을까? 나팔절과 크리스마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실 당시, 인류는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자아와 세상의 노예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자아와 세상의 노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그것에 대해 ‘천국의 비밀’ 6373번 글과 ‘주님에 관한 교리’ 61번 글에서는

 

주님이 오실 당시 영계에서는 지옥의 세력이 천국을 압도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천국은 전처럼 순수하거나 강력한 힘을 갖지 못했다.

 

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천국과 지옥의 균형이 지옥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로 인해 천국으로부터 지상의 교회로 흘러들어오는 신성에 속한 것들이 인간을 거듭나게 할 정도로 그렇게 순수하거나 강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더 타락했고, 인간의 자유의지 또한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의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인간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됩니다. 영적으로 지옥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그때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세상에 오셔서 지옥을 완전히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을 이기신 그 능력으로 영계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시키셨고 말입니다. 이것이 왜 이천 년 전 그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하셨나 하는 그 배경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오심, 주님 성탄 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리스도 탄생 소식은 밤새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처음 전해졌습니다. 말씀에서 ‘목자’는 보통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양’은 사람의 마음속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 仁愛)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는 ‘진리가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이 어두울 때에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법도를 이웃에게 전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오시며, 그래서 천사는 목자들에게 보내심을 받아 주님 탄생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천사는 놀라서 불안해하는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말합니다. 말씀에는 주님의 환상을 보거나 천사를 만나는 사람들이 두려워 떠는 모습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예를 들면, 요한 사도는 주님께서 계시를 보여 주실 때,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 역시 주님의 환상을 보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지고, 잠든 것처럼 되었습니다. 속뜻으로 볼 때, 주님이 임재하실 때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목자나 요한 사도 또는 다니엘이 느꼈던 두려움은 영적으로 한 단계 거듭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겸손을 나타냅니다. 주님 앞에 겸비함이 없으면 결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할 때, 주님은 우리들의 내면으로 오시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는 겸손한 자의 영혼을 그 순간 주께서 소생시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 다니엘에게 허락된 환상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이 사실을 좀 더 깊이 확인하겠습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2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7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10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12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단10:1-12)

 

천사가 목자들에게

 

10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천사들이 전하는 기쁜 소식이란 구주가 나신 것이며, 그분의 이름은 그리스도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는 주님의 두 가지 본질인 사랑과 진리 가운데 진리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주님을 ‘주’라고 부를 때는 사랑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구주가 나셨다는 것은 사랑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에서는 왜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만일 주님이 당신 스스로를 여호와라고 하셨다면 유대인들이 주님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랬더라면 주님이 오신 목적을 이루지 못하셨을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에 오신 주님은 진리 그 자체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강보에 싸인 채 말 구유에 누워 계셨습니다. 말은 총명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은 말씀에 대한 이해력을 나타냅니다. ‘구유’는 말의 양식이 담긴 곳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교리는 신앙인들을 영적으로 먹이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싸고 있는 강보는 무슨 뜻일까요? ‘강보’는 주님으로부터 처음 나오는 가장 순수한 진리를 뜻합니다. 주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진리가 가장 순수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자로 표현할 때, 그만큼 순수함이 줄어듭니다. 진리 자체는 무한한 것이지만 문자는 유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는, 주님은 교회의 교리를 통해 오시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장 순수한 진리, 즉 내적 진리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이 천사들에게 들은 것을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렸습니다. 말씀에서 ‘보는 것’(seeing)은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믿는다는 뜻이고, ‘듣는 것’(hearing)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이 ‘듣고 본 그 모든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고, 그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 단계 더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지금부터 2000년 전 초라한 마구간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지옥을 이기시고, 인간의 잃어버렸던 자유의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찾아주신 자유를 통해 이제는 누구나 지옥을 멀리하고 천국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옥의 유혹을 끊기가 어려우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주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밤에 양을 지키는 목자들은 어둡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 사랑과 인애의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십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지극히 높은 하늘로부터 낮고 낮은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세상에는 재물이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고고한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하고는 친구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왠지 주눅이 들고 자꾸 초라해지며 마음의 평화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각 사람의 처지에 맞게 대화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그렇게 낮아져야 합니다. 이웃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지 말고 이웃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목자들처럼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고대하는 모든 성도들과 가정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출12:42)

 

아멘

원본

2021-12-26(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12-2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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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2). The Lord’s predictions in Matthew (24 and 25), respect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and His coming, and the consequent successive vastation of the church and the final judgment, are explained in the prefaces to chapters 26–40 of Genesis (n. 3353–3356, 3486–3489, 3650–3655, 3751–3757, 3897–3901, 4056–4060, 4229–4231, 4332–4335, 4422–4424, 4635–4638, 4661–4664, 4807–4810, 4954–4959, 5063–5071).

 

 

THE LAST TIME OF THE CHURCH (마24:19-22)

 

3751

By way of preface to the preceding chapter an explication was given of what the Lord foretold in Matthew 24:15–18 concerning the last time of the church. Following this order there are now to be unfolded—by way of preface to the present chapter—the contents of the succeeding verses (19 to 22); namely, the words:

 

19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24:19-22) But woe unto them that are with child, and to them that give suck in those days! And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for then shall be great affliction, such as was not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even until now, neither shall be. And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preserved;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Matt. 24:19–22).

 

 

3752

No one can possibly com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se words unless he is enlightened by the internal sense. That they are not said concern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ppears from many things in the chapter, as from this: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preserved;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and from the following: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After the affliction of those days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and then shall appear the sign of the son of man; and they sha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lory;

 

and from other passages. That neither are the words now under consideration said concerning the destruction of the world, is also evident from many things contained in the same chapter; as from those which precede: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He that is on the housetop, let him not come down to take anything out of his house; and he who is in the field, let him not return back to take his garments;

 

and also from these now brought under consideration: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and from the following: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Then shall two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two women shall be grinding at the mill,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But it is evident that the words in question are said concerning the last time of the church, that is, concerning its vastation; for the church is said to be vastated when there is no longer any charity.

 

 

3753

Everyone who thinks about the Lord with reverence and who believes that the Divine was in him, and that he spoke from the Divine, is able to know and believe that the above words, like the rest the Lord taught and spoke, were not spoken of one nation only, but of the universal human race; and not of its worldly, but of its spiritual state; and also that the Lord’s words comprehended the things which are of his kingdom and of the church, for these are Divine and eternal. Whoever believes in this manner, concludes that these words: “woe unto them that are with child, and to them that give suck in those days” do not signify those who are with child and give suck; and that the words: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do not signify any flight on account of worldly enemies; and so in regard to the rest.

 

 

3754

In the preceding verses there were treated of three states of the perversion of good and truth in the church; and in the present verses a fourth state is treated of, which is also the last. Concerning the first state it was shown that it was that men began no longer to know what was good and true, but disputed among themselves concerning good and truth, whence came falsities (n. 3354). Concerning the second state, that it was that men began to despise good and truth, and also to hold them in aversion, and thus that faith in the Lord was about to expire, according to the degrees in which charity was about to cease (n. 3487–3488). Concerning the third state, that it was a state of desolation of the church in respect to good and truth (n. 3651–3652). Concerning the fourth state, we are now to show that it is that of the profanation of good and truth. That this state is here described may be seen from all the particulars in the internal sense, which is as follows.

 

 

3755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But woe unto them that are with child, and to them that give suck in those days;

 

signifies those who have been imbued with the good of love to the Lord and the good of innocence. “Woe” is a form of expression signifying the danger of eternal damnation; “to be with child” is to conceive the good of heavenly love; “to give suck” is also a state of innocence; “those days” denote the states in which the church then is.

 

[2]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And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signifies removal from those things, that it be not done precipitately, in a state of too much cold or of too much heat. “Flight” is removal from a state of the good of love and of innocence, just now spoken of; “flight in the winter” is removal therefrom in a state of too much cold; “cold” is when there is aversion to love and innocence, which is induced by the loves of self; “flight on the sabbath” is removal from them in a state of too much heat; “heat” is external sanctity, while within are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3]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For then shall be great affliction, such as was not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even until now, neither shall be;

 

signifies the highest degree of the perversion and vastation of the church in respect to good and truth, which is profanation; for profanation of what is holy occasions death eternal and much more grievous than any other states of evil, and so much the more grievous in proportion as the goods and truths profaned are of a more interior kind; and inasmuch as such interior goods and truths are open and known in the Christian church, and are profaned, it is said that “then shall be great affliction such as was not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even until now, neither shall be.

 

[4]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And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preserved;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signifies the removal of those who are of the church from interior goods and truths to exterior, so that those may still be saved who are in the life of good and truth; by the “days being shortened” is signified a state of removal; by “no flesh being preserved” is signified that otherwise none could be saved; by “the elect” are signified those who are in the life of good and truth.

 

 

3756

That this is the internal sense of these words could be fully shown—as that by “those who are with child” are signified those who first become imbued with good; and that by “those who give suck” are signified those who become imbued with a state of innocence; that by “flight” is signified removal from good and innocence; by “winter,” aversion to such goods through the love of self taking possession of the interiors; and by “flight on the sabbath,” profanation, which takes place when there is holiness in externals, and the love of self and the world within. But as the same words and similar expressions occur throughout in what follows, of the Lord’s Divine mercy their signification shall then be shown to be such as is here stated.

 

 

3757

But as regards the profanation of what is holy, few know what it is; yet this can be seen from what has been already stated and shown concerning it, namely, that those are able to profane holy things who know, acknowledge, and become imbued with good and truth; but not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and still less those who do not know them (see n. 593, 1008, 1010, 1059, 3398); thus that they who are within the church can profane holy things, but not they who are without it (n. 2051); that they who are of the celestial church can profane holy goods, and that they who are of the spiritual church can profane holy truths (n. 3399); that therefore interior truths were not disclosed to the Jews, lest they should profane them (n. 3398); that the Gentiles can least of all profane (n. 2051); that profanation is a commingling and conjunction of good and evil, and also of truth and falsity (n. 1001, 1003, 2426); that this was signified by the eating of blood, which was so severely prohibited in the Jewish church (n. 1003); that therefore in so far as possible men are withheld from the acknowledgment and faith of good and truth, unless they are able to remain therein (n. 3398, 3402); and that on this account they are kept in ignorance (n. 301–303); and that worship also becomes external (n. 1327–1328); that internal truths are not revealed until the church has been vastated, because then good and truth can no longer be profaned (n. 3398, 3399); that this was the reason why the Lord then first came into the world (n. 3398); how great a danger there is from the profanation of what is holy and of the Word (n. 571,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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