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2:18)

 

AC.138

혼자(alone)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 인도받기를 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를 돕는 배필(help as with him) 인간의 proprium 의미하며, 이것은 뒤에서 여자로 지어진 갈빗대(rib built into a woman)라고 합니다. Byaloneis signified that he was not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d to be led by self and the world; by ahelp as with himis signified mans own, which is subsequently called arib built into a woman.

 

해설

AC.138부터는 AC.132에서 미리 요약했던 창2:18의 속뜻을 구체적으로 풀기 시작합니다. 먼저 혼자(alone)는 단순히 곁에 다른 사람이 없는 외로운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여기서 혼자는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창2:18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는 이 문맥에서 사회적 고독의 문제보다 먼저, 주님의 인도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에게 속한 어떤 것으로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의 상태를 다룹니다.

 

이 설명은 AC.131부터 이어져 온 흐름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AC.132에서는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AC.133에서는 주님께서 먼저 그에게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지만 그가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다고 했으며, AC.134에서는 마침내 그가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AC.138혼자는 지금까지 설명된 이 상태를 창2:18의 한 표현 안에서 다시 짚어 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를 돕는 배필(help as with him)은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해석입니다. 문자적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마련하시는 장면이지만, 지금 다루는 속뜻에서는 인간이 자기에게 속한 것으로 느끼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 proprium이 중심에 놓입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스베덴보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남성과 여성 가운데 어느 쪽이 다른 쪽을 돕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인간에게 proprium이 어떻게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AC.138은 이 proprium을 뒤에 나오는 여자로 지어진 갈빗대(rib built into a woman)와도 직접 연결합니다. AC.134에서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장면 전체가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것을 묘사한다고 했는데, 이제 그 관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2:18그를 돕는 배필과 창2:21-23여자로 지어진 갈빗대는 서로 떨어진 두 표상이 아니라 동일한 proprium의 문제를 이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만 왜 하필 갈빗대이며, 그것이 여자로 지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다음 번호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proprium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중요한 질문을 낳습니다. 앞에서는 인간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것이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창2:18에서는 바로 그 proprium에 해당하는 것이 돕는 배필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원했던 proprium을 주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다루셔서 인간의 삶 가운데 둘 수 있게 하시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AC.138은 아직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의 개요에서는 이미 몇 가지 중요한 단서가 주어졌습니다. AC.134에서는 인간이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는다고 했으며, AC.135에서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AC.136에서는 다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진 proprium을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상태를 허용하시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여기서 여자를 곧바로 proprium의 고정된 상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것은 창2:18-23의 특정한 문맥입니다. AC.103에서 확인했듯이 말씀의 표현은 그것이 놓인 주제와 문맥을 떠나 기계적인 일대일 대응표처럼 다룰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태고교회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상태가 주제이므로 그를 돕는 배필여자로 지어진 갈빗대가 그 proprium을 묘사합니다. 이후 다른 문맥에서 여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의미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AC.138에서 지금 붙들어야 할 것은 세 가지 표현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혼자는 주님께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그를 돕는 배필은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하며, proprium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여자로 지어진 갈빗대로 묘사됩니다. 이제 남는 질문은 그를 돕는 배필이 왜 proprium을 의미하는지, 갈빗대가 왜 proprium을 나타내는지, 그리고 그 갈빗대가 여자로 지어지는 과정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입니다. 이 질문들은 앞질러 답하기보다 이어지는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따라가며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AC.138)

 

 

 

AC.137, 창2:18-25 배경,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 천적 인간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후

AC.137창세기의 처음 세 장은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루는데, 이 교회는 그 처음 시기부터 멸망한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 합니다. 이 장의 앞부분은 태고교회가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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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7

창세기의 처음 장은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루는데, 교회는 처음 시기부터 멸망한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 합니다. 장의 앞부분은 태고교회가 천적 인간이었던 가장 번성한 상태를 다루며, 여기서는 이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후손들을 다룹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해설

AC.137은 지금까지 읽어 온 창세기 1장과 2,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3장을 하나의 큰 역사로 묶어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처음 세 장이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태고교회를 그 처음 시기부터 마침내 멸망하는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람은 단지 한 개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1-3의 속뜻에서는 태고교회와 그 교회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상태가 하나의 연속적인 역사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창1과 창2를 읽어 온 흐름도 다시 정리해 줍니다. 1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묘사되었고, 2 앞부분에서는 그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된 상태가 다루어졌습니다. AC.137은 이 장의 앞부분을 태고교회의 가장 번성한 상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번성했다는 것은 외적인 세력이나 물질적 풍요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뜻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천적 인간으로서 주님께 인도받고 퍼셉션으로 선과 진리를 알며, 모든 지혜와 지성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질서 안에 있었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제 창2 안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AC.131에서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고, AC.132-136은 창2:18-25가 바로 그 문제를 다룬다는 전체 개요를 제시했습니다. AC.137은 이 전환을 태고교회 전체 역사 속에 놓아 줍니다. 앞부분이 태고교회의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였다면, 이제부터는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창2 후반부는 창3의 타락 이야기와 단절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의 상태가 변화해 가는 과정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후손들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한 사람의 어느 순간의 심리 변화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따라 변화해 가는 태고교회의 상태를 보고 있습니다. AC.127에서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는 욕망이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37은 창2 후반부에서 시작되는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과 그 후손들의 상태가 결국 창3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 속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거쳐 멸망에 이르게 되는지는 앞으로의 본문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AC.137태고교회라는 말을 읽을 때 한 시점의 고정된 상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같은 태고교회 안에도 가장 번성한 상태가 있었고, 이후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상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창1-3 전체가 그 처음 시기부터 마지막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다룬다고 합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사람들은 모두 천적 인간이었다는 식으로 모든 시기를 동일하게 묶어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태고교회 자체에도 시작과 절정, 변화와 쇠퇴의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창3을 읽을 때에도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3의 뱀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타락을 갑자기 등장한 한 개인의 단회적인 사건으로만 읽기보다, 이미 창2 후반부에서 시작된 태고교회 후손들의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이 어떻게 더 진행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C.137은 아직 그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창1-3 전체가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다루며, 바로 이 지점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후손들로 이동한다는 큰 구조를 붙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AC.137은 짧지만 창1-3 전체의 독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안내문입니다. 1의 거듭남, 2 앞부분의 천적 인간, 2 후반부에서 시작되는 proprium으로의 기울어짐, 그리고 앞으로 창3에서 전개될 태고교회의 쇠퇴와 멸망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영적 역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 큰 틀을 기억하면 이제부터 상세히 설명될 창2:18-25도 단순히 최초 남녀의 창조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만 읽지 않고, 태고교회가 가장 번성한 천적 상태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 가기 시작하는 중대한 전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AC.137)

 

 

 

AC.138, 창2:18, ‘혼자와 돕는 배필 - 인간이 원하는 proprium’ (AC.138-141)

창2:18-25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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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6, 창2:18-25 개요, ‘프로프리움 안에 주입된 이노센스’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AC.136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이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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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

 

AC.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proprium 여전히 받아들일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25)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

 

해설

AC.136은 창2:25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의 속뜻을 미리 요약하면서, AC.132부터 이어져 온 proprium의 문제가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허락되고,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된 데 이어,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이노센스의 근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인간의 proprium 안에 이노센스가 있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주님으로부터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확인해 온 질서와 일치합니다. 지혜와 지성, 이성과 지식이 주님의 것이며,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도 주님께서 부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proprium 안에 들어오는 이노센스 역시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다고 해서 생명과 선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옮겨간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노센스가 proprium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스며든다는 점입니다. AC.134에서는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고, AC.135에서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었습니다. 그런데 AC.136에서도 proprium 자체를 제거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주님께서는 인간이 proprium으로 기울려는 성향을 단순히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시면서도,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이노센스가 함께할 수 있도록 다루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받아들일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이 문장은 proprium 그 자체를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어야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AC.136까지 읽은 단계에서는 인간의 proprium을 독립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주님께서 단순히 제거하시는 대상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결합하시며 이노센스를 스며들게 하시는 과정 전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설명은 창2:25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를 읽는 방향도 미리 보여 줍니다. 아직 벌거벗음부끄러워하지 않음각각의 구체적인 속뜻은 뒤의 설명을 기다려야 하지만, AC.136에 따르면 이 구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proprium 안에 있는 상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벌거벗음은 곧바로 수치나 죄의 상태를 뜻한다고 미리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창3에서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상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이후 설명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AC.132부터 AC.136까지를 함께 보면 이제 하나의 흐름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자신이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인간의 proprium을 허용하시면서도 그것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질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AC.136에서 아직 이노센스란 정확히 무엇인가?를 후대의 교리까지 끌어와 완성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독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더 단순하면서도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자기 생명의 근원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영적 생명이 결합되고, 다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스며듭니다. 바로 이 상태가 창2:25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한상태를 이해하는 문을 열어 줍니다. (AC.136)

 

 

 

AC.137, 창2:18-25 배경,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 천적 인간에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후

AC.137창세기의 처음 세 장은 전체적으로 태고교회를 다루는데, 이 교회는 그 처음 시기부터 멸망한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man) [homo]이라 합니다. 이 장의 앞부분은 태고교회가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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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5, 창2:18-25 개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 AC.135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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