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

 

9. 31:6

 

다음은 에스겔입니다. 이는 앗수르에 대한 말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뜻하며, 에덴동산에 비유됩니다.’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 구절은 앞선 ‘들짐승’ 구절들의 결론처럼 보이는 매우 풍성한 장면입니다. 단순히 애정이 정돈되는 정도를 넘어, ‘사람 안에 형성된 하나의 질서 있는 세계’’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1:6은 영적 인간이 형성될 때, 그의 이해(진리)와 의지(선)가 자라 하나의 큰 구조를 이루고, 그 아래에서 생각(새)과 애정(짐승)과 삶의 모든 요소들이 질서 있게 자리 잡고 열매를 맺는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배경이 되는 ‘앗수르’를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앗수르는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 ‘이성적 인간, 특히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발달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에덴동산’에 비유한다는 것은, 그 이해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명과 연결된 살아 있는 지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큰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나옵니다. 나무 전체는 ‘그 사람의 내적 구조, 곧 형성된 영적 인간 전체’를 뜻하고, 가지들은 그 안에서 뻗어 나가는 ‘생각과 이해의 다양한 표현들’입니다. 큰 가지는 더 중심적이고 깊은 진리들이고, 가는 가지는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각들입니다.

 

그 위에 ‘공중의 새가 깃든다’고 합니다. ‘’는 ‘이성적, 지적인 것들’, 곧 생각과 통찰입니다. 이것이 가지 위에 깃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해 안에 ‘올바른 생각과 분별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상태’를 뜻합니다. 생각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고 거처를 얻은 상태’입니다.

 

그다음 ‘들짐승이 그 가지 밑에 새끼를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들짐승’은 앞서 계속 보셨듯이 ‘자연적 애정, 의지의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 즉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 안의 애정들이 이제 질서 안에서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작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더 이상 충돌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한다’고 합니다. ‘나라(nations)는 ‘선과 관련된 것들, 혹은 다양한 삶의 상태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늘’은 ‘보호와 안식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그 사람 안에 형성된 이 질서가 단순히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덮고 보호하는 중심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전 삶이 이 질서 아래에서 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얘깁니다. 한 사람이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이 사랑과 결합되면, 그 안에 하나의 ‘나무’ 같은 구조가 세워집니다. 그 안에서 생각들은 자리를 잡고, 애정들은 건강하게 열매를 맺고, 삶의 모든 부분이 그 아래에서 안정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인간의 모습’입니다.

 

앞선 구절들과 비교하면 흐름이 더 또렷해집니다. 처음에는 애정들이 두려운 상태였고, 그다음에는 질서 안으로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일부는 멈추고 일부는 살아났고, 이제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유기적인 질서로 완성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일종의 ‘완성된 그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람이 자라면, 그의 생각과 마음과 삶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나무처럼 연결되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자리를 잡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31:6은 영적 인간이 형성될 때, 그의 이해와 의지가 하나의 질서로 결합되어, 그 안에서 생각과 애정과 삶의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풍성하게 열매 맺는 상태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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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3:20

 

다음은 이사야입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이 구절은 앞의 흐름들 가운데서 특히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 줍니다. 단순히 ‘질서가 잡힌다’는 수준을 넘어, ‘이전에는 거칠고 멀었던 애정들까지도 주님을 존중하고 따르는 상태로 변화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3:20 들짐승이 나를 존경한다는 것은, 사람 안의 자연적이고 낮은 애정들까지도 진리와 생명을 공급받아, 이제는 주님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질서에 기꺼이 따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들짐승, 승냥이, 타조’입니다. 여기서는 단순한 자연적 애정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비교적 ‘거칠고, 방향이 없고, 때로는 왜곡될 수 있는 애정들’까지 포함됩니다. 승냥이 같은 경우는 탐욕이나 집요한 욕구를, 타조 같은 것은 무지하거나 둔한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 안에서 그다지 고상하지 않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층위까지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이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억눌려 조용해진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 바뀌어 자발적으로 질서에 따르는 상태’입니다. 즉, 이전에는 제멋대로 움직이던 애정들이 이제는 ‘주님 중심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이어집니다.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낸다.’ 여기서 ‘광야’와 ‘사막’은 ‘진리와 선이 없는 메마른 상태’, 곧 영적으로 비어 있고 생명력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은 ‘진리’, ‘’은 ‘흐르고 작용하는 진리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주님이 그 메마른 상태 안에 ‘진리를 공급하시고, 그것이 흐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전체가 연결됩니다. 이전에는 메마르고 방향 없던 상태, 곧 그래서 애정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던 상태에 ‘진리의 물이 공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애정들이 억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존경한다’, 즉 ‘주님을 중심으로 정렬된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는 강한 욕구나 집착, 혹은 둔하고 무감각한 상태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진리를 접하고, 그것이 점점 마음 안에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렇다고 이전에 문제였던 욕구들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점점 방향을 바꾸어 주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집요한 욕구는 ‘끈기와 책임감’으로 바뀌고, 둔했던 상태는 ‘단순하고 안정된 태도’로 바뀝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들이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이것이 ‘존경한다’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단순히 ‘두렵지 않다’, ‘화목하다’를 넘어서, ‘이제는 낮은 애정들까지도 주님을 향해 정렬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 깊어졌을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거친 것들까지도 바꾸셔서, 결국 그것들이 하나님을 따르게 하십니다.’

 

43:20 들짐승이 주님을 존경한다는 것은, 진리의 생수가 공급되면서 사람 안의 낮고 거친 애정들까지도 주님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거듭남의 성숙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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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4:25

 

다음은 에스겔입니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 구절은 앞의 호세아와 욥기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어떤 애정은 질서 안으로 들어오고, 어떤 애정은 멈추게 된다는 구분’을 분명히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4:25 악한 짐승이 그친다는 것은, 사람 안의 자연적 애정 가운데서도 질서를 거부하고 해치는 것들은 제거되고, 나머지는 평화 가운데 살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화평의 언약’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평온함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면서, 사람 안의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는 상태’입니다. 즉, 진리와 선이 중심에 서고, 그 아래에서 모든 것이 정돈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언약’이고, 그 결과가 ‘화평’입니다.

 

이제 핵심 표현인 ‘악한 짐승’입니다. 앞의 구절들에서는 ‘들짐승’이 질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애정들이었다면,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질서를 거부하고, 사람을 파괴 쪽으로 끌고 가는 애정들’이 따로 구분됩니다. 예를 들면, 단순한 즐거움이나 인정 욕구가 아니라, ‘남을 해치려는 마음, 집요한 탐욕, 왜곡된 쾌락, 파괴적인 분노’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방향을 바꾸어 쓸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그대로 두면 전체를 무너뜨리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짐승’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치게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히 눌러 두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사람의 억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밀려나듯이, ‘선과 진리가 중심에 서면 파괴적인 애정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말입니다.

 

그다음 표현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여기서 ‘빈 들’과 ‘수풀’은 여전히 자연적이고 외적인 삶의 영역입니다. 즉, 특별한 신비적 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평안히 거하고 쉰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제 그 사람이 ‘외적인 삶 속에서도 더 이상 내적 갈등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건 그러니까 이런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는 특정한 욕망이나 감정에 반복적으로 끌려다녔습니다. 스스로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계속 넘어집니다. 그런데 주님의 진리와 선이 점점 자리 잡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욕망이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 사람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대신 다른 애정들, 그러니까 더 건강하고 선한 것들이 중심을 잡습니다. 그래서 삶이 훨씬 ‘안정되고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앞의 구절들과 비교하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호세아에서는 애정들이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것’, 욥기에서는 그것들이 ‘두렵지 않게 되는 것’, 그리고 여기 에스겔에서는 그중에서도 ‘파괴적인 것들은 멈추고, 나머지는 평화롭게 자리 잡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점점 더 깊어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모든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살릴 것은 살리시고, 무너뜨릴 것은 멈추게 하셔서, 결국 우리를 평안한 상태로 이끄십니다.’

 

34:25 악한 짐승이 그친다는 것은, 주님의 질서가 들어오면서 파괴적인 애정은 힘을 잃고, 나머지 애정들은 평화롭게 자리 잡아 사람 안에 안정된 삶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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