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2.심화

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0에서는 주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어 신앙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했습니다.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과 두 번호 뒤인 AC.332에서는 라멕에 이르러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시면서까지 신앙을 보존하신 섭리가 결국 실패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가인의 를 가인 계열 전체가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도록 보장하신 약속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330에서 보존된 것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상태 자체가 아닙니다. 장차 인간을 다시 체어리티로 인도하는 데 필요할 신앙에 속한 것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도록 보존된 것입니다.

 

따라서 보존 강제와 다릅니다. 주님께서 신앙에 속한 것을 보존하셨다고 해서 가인으로 표상되는 사람들이 그 신앙을 반드시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강제하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 가운데 그 진리를 받아들여 선과 결합할 수도 있고, 계속 분리하고 왜곡하여 마침내 그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라멕은 바로 그 후자의 길이 끝까지 진행된 상태입니다. 가인에게는 아직 신앙에 속한 것이 있었지만, 그 상태가 계속 체어리티와 분리된 채 여러 형태로 변질되면서 라멕에서는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특정 교리적 계열이 주님께서 보존하신 가능성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AC.330 AC.332는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섭리가 함께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보존하시지만 인간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설 수 있는 수단은 마련하시되 그 수단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인간의 자유 가운데 두십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라멕의 상태를 인류 전체의 상태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AC.332가 말하는 것은 가인으로부터 파생된 그 교리적 계열의 종말입니다. 라멕 안에 신앙에 속한 것이 남지 않았다고 해서 당시 모든 사람에게서 신앙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4와 창5, 그리고 이후 노아로 이어지는 흐름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후속 AC 전체를 보면 주님의 섭리는 훨씬 더 긴 시야에서 움직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가 마침내 지속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 주님께서는 리메인스를 보존하시고, 노아로 표상되는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십니다. 그 새로운 영적 교회에서는 이전의 천적 인간과 달리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로 인도되는 질서가 중심이 됩니다.

 

이런 더 넓은 문맥에서 보면 AC.330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이라는 말은 가인 계열 하나의 미래만을 말하는 것으로 좁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신앙을 통한 체어리티의 길 자체가 사라지지 않도록 섭리하십니다. 한 특정 계열이 그 가능성을 잃어버려도 주님의 전체적인 구원의 질서가 함께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가인의  라멕에서 신앙이 남지 않음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신앙에 속한 것을 보존하여 구원의 길을 남겨 두시는 섭리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자유 안에서 그 보존된 것을 끝까지 왜곡하여 잃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주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원리를 줍니다. 주님의 섭리는 어떤 한 사람이나 한 교회적 계열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전체 계획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면서도 구원의 길 자체는 계속 보존하십니다. 어떤 교회가 종말에 이르더라도 주님의 교회와 구원의 역사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라멕은 주님의 계획의 실패를 보여 주는 인물이 아니라 인간이 주어진 가능성을 얼마나 멀리 거절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반대로 이후 노아를 향해 나아가는 흐름은 인간의 실패보다 더 넓은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한 계열에서 신앙마저 사라질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리메인스를 보존하시고 다시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로 나아갈 새로운 길을 준비하십니다.

 

 

 

AC.332 심화 3, 라멕에서 신앙이 사라졌는데 아다와 씰라의 계열에서는 왜 유용한 것들이 나타나는

AC.332 심화3. 라멕에서 신앙이 사라졌는데 아다와 씰라의 계열에서는 왜 유용한 것들이 나타나는가? AC.332에서 라멕에 이르러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

bygrace.kr

 

AC.332 심화 1, 왜 ‘분리된 신앙’은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 심화1. 왜 ‘분리된 신앙’은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에서 특별히 깊이 생각할 부분은 하나의 역설입니다. 가인의 출발점은 신앙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32 심화

1.  분리된 신앙은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에서 특별히 깊이 생각할 부분은 하나의 역설입니다. 가인의 출발점은 신앙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하고 그것을 주된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길의 마지막인 라멕에서는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신앙을 높이려 했는데 오히려 신앙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역설은 선과 진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과 진리는 서로 결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선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선으로 인도하며, 선은 진리를 받아들여 삶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진리가 선에서 분리되면 처음에는 여전히 진리의 지식과 형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 진리가 자기 목적을 잃게 됩니다.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진리는 체어리티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 참된지를 알고 믿는 것은 그 진리에 따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하여 무엇을 믿는가 자체만을 신앙의 본질로 만들면, 진리는 점차 삶과의 연결을 잃게 됩니다.

 

처음에는 교리도 남아 있고 성경에 관한 지식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매우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가 삶의 선을 향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proprium은 그 진리를 자기 생각과 욕망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진리 자체가 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사랑과 목적이 달라지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진리 때문에 자기 생각을 고치기보다, 자기 생각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해석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더 이상 자신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가 됩니다. 신앙의 언어는 남아 있지만 신앙을 신앙답게 하는 생명은 점점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에서 라멕까지의 과정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처음에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고, 더 나아가 체어리티보다 자신을 높이는 순간 질서가 뒤집힙니다. 그리고 그 분리가 계속되면 마침내 처음에 그렇게 지키려 했던 신앙 자체마저 변질됩니다.

 

이것은 진리가 선에서 생명을 받는다는 스베덴보리의 기본 질서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의 지식이 아무리 정확해도 그것이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고 삶 안에서 선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만으로는 살아 있는 신앙을 이루지 못합니다. 신앙의 생명은 체어리티와의 결합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AC.332를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말씀으로 사용하기보다 먼저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아는 것이 사는 것보다 앞설 수 있고, 교리적 확신이 체어리티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더 잘 믿기 위해 배운 진리가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 자기 의를 지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말씀의 속뜻과 상응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이 경고는 더욱 중요합니다. AC에 관한 지식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속뜻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신앙의 생명이 깊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진리를 통하여 자신의 악을 더 분명하게 보고, 주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며, 이웃을 더욱 지혜롭게 사랑하고 실제 쓰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AC.325부터 AC.332까지 이어 보면 그 흐름은 분명합니다. 사랑에서 신앙이 분리되고, 그 분리가 예배에 나타나며,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지고,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높아지며, 마침내 체어리티가 소멸됩니다. 이어 교리가 왜곡되고, 그 왜곡된 상태가 확장되어 여러 파생 교리를 낳고, 마지막 라멕에서는 신앙에 속한 것마저 남지 않게 됩니다.

 

결국 라멕은 신앙을 버린 사람의 단순한 표상이 아닙니다. 체어리티보다 신앙을 높이고 신앙을 그 생명에서 계속 분리한 결과, 마침내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AC.332의 가장 무거운 질문은 나는 신앙을 얼마나 강하게 붙들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신앙은 무엇과 결합되어 있는가?입니다.

 

 

 

AC.332 심화 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2.심화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0에서는 주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어 신앙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했

bygrace.kr

 

AC.332, 창4:18, 라멕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창4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And unto Enoch was born Irad; and Irad begat Mehujael; and Mehujael begat Methusael; and Methusael begat Lamech. (4:18)

 

AC.332

하나의 이단에서 생겨난 여러 이단들 역시 각각 이름들로 불렸으며, 마지막이 라멕(Lamech)인데, 안에는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18) The heresies that sprang from this one are also called by their names, in the last of which, called Lamech, there was nothing of faith remaining. (verse 18)

 

해설

AC.332는 앞의 AC.331에서 말한 이단의 확장이 계속되어 마침내 어디에 이르는지를 보여 줍니다. AC.331에서 에녹은 가인으로 표상된 이단, 곧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의 교리가 더욱 확장된 상태를 나타냈습니다. 이제 창4:18에는 에녹에서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 라멕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나타납니다. 문자적으로는 한 집안의 계보이지만, 스베덴보리의 속뜻에서는 하나의 교리적, 교회적 상태에서 여러 파생된 상태들이 생겨나며 점차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AC.332가 먼저 말하는 것은 하나의 이단에서 생겨난 여러 이단들입니다. 처음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였습니다.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가 한 번 일어나고 계속 유지되면 그것이 한 형태로만 머물지 않고 여러 파생된 교리적 상태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4낳고, 낳고, 낳았다는 계보의 언어는 속뜻에서 단순한 혈통의 계승만이 아니라 교리와 교회의 상태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영적 계승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이단이라는 말을 오늘날 특정 교단을 정죄하는 의미로 곧바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324부터의 문맥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핵심은 본래 하나였던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면서 생겨난 교리적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이단들이 생겨났다는 말은 단순히 교파의 수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의 영적 분리에서 여러 변형된 교리적 상태들이 파생되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 점에서 창4의 계보는 하나의 점진적인 변질 과정을 보여 줍니다. 처음 가인은 신앙 자체를 없앤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하여 그것을 주된 것으로 높이려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아직 신앙에 속한 어떤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AC.330에서 가인이 를 받아 보존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다시 심어져야 했기 때문에 신앙 자체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멸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존되었다고 해서 분리된 신앙의 상태 자체가 승인된 것은 아닙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이 계속 체어리티와 결합되지 않은 채 전개되면 그 상태 역시 점차 변질될 수 있습니다. AC.331의 에녹은 그 첫 확장이고, AC.332에서는 다시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을 거쳐 라멕에 이릅니다. 각각의 이름은 앞의 상태에서 파생된 또 다른 교리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AC.332에서 가장 무거운 말이 나옵니다. ‘ 마지막이 라멕인데, 안에는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출발점은 신앙을 높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정작 신앙에 속한 것마저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창4의 가인 계열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설입니다. 체어리티보다 신앙을 앞세워 신앙을 지키려 했지만, 신앙을 그 생명인 체어리티에서 계속 분리한 결과 마침내 신앙 자체의 성질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단지 어떤 교리를 알고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참된 신앙은 체어리티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진리는 선과 결합될 때 살아 있는 진리가 되고, 신앙은 삶의 선과 결합될 때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따라서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계속 분리되어 있다면 처음에는 여전히 신앙의 지식과 형식을 유지할 수 있어도, 그 상태가 계속 진행되면서 신앙을 신앙답게 하는 내적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말을 그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332는 가인에서 파생되어 라멕에 이른 특정한 교리적 계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곧바로 당시 인류 전체에서 신앙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4와 창5, 그리고 이후 노아로 이어지는 전체 흐름을 함께 보면 주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교회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과정이 계속 나타납니다.

 

이 점은 AC.330가인의 와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신앙을 보존하셨다는 것은 가인 계열의 모든 후손이 반드시 끝까지 참된 신앙을 유지하도록 강제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 가운데 주님께서 보존하신 진리를 받아들이고 선과 결합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그것을 계속 왜곡하여 잃을 수도 있습니다. 라멕은 바로 후자의 길이 끝까지 진행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가인에서 라멕까지의 흐름은 단순히 이단이 여러 이단으로 갈라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깊게는 신앙과 체어리티의 질서가 한 번 무너진 뒤 그 분리가 계속될 때 어떠한 영적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사랑과 신앙의 분리였고, 이어 그 분리가 예배에 나타났으며,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지고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교리가 왜곡되었습니다. 그 왜곡이 계속 확대되자 마침내 처음에 그렇게 높였던 신앙 자체에 속한 것마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창4의 계보 전체를 단순한 절망의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섭리는 특정한 한 계열의 성공이나 실패에 매이지 않습니다. 가인 계열이 라멕에서 신앙마저 잃는 상태에 이르더라도 주님의 구원의 질서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의 말씀에서는 그 종말 가운데서도 어떤 것들이 보존되고, 또 새로운 교회적 상태가 어떻게 준비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AC.332는 우리에게 매우 엄중하면서도 단순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신앙은 무엇과 결합되어 있는가?신앙을 많이 말하고 진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만으로 그 신앙이 살아 있다고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그 진리가 악을 죄로 여기고 피하게 하며, 이웃의 참된 유익을 구하게 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결합될 때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채 자신만을 높이기 시작하면, 끝에는 체어리티뿐 아니라 신앙 자체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이 라멕에 이른 가인 계열의 무거운 경고입니다.

 

심화

1. 분리된 신앙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 심화 1, 왜 ‘분리된 신앙’은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 심화1. 왜 ‘분리된 신앙’은 결국 신앙 자체까지 잃게 되는가? AC.332에서 특별히 깊이 생각할 부분은 하나의 역설입니다. 가인의 출발점은 신앙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

bygrace.kr

 

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2 심화 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2.심화2. 가인의 표로 신앙을 보존하신 주님의 섭리는 라멕에서 실패한 것인가? AC.330에서는 주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어 신앙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했

bygrace.kr

 

3. 라멕에서 신앙이 사라졌는데 아다와 씰라의 계열에서는 유용한 것들이 나타나는가?

 

AC.332 심화 3, 라멕에서 신앙이 사라졌는데 아다와 씰라의 계열에서는 왜 유용한 것들이 나타나는

AC.332 심화3. 라멕에서 신앙이 사라졌는데 아다와 씰라의 계열에서는 왜 유용한 것들이 나타나는가? AC.332에서 라멕에 이르러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

bygrace.kr

 

4. 가인 계열의 생명 주기는 오늘날 기독교와 어떻게 겹쳐 보일 있는가?

 

AC.332 심화 4, ‘가인 계열’ 이야기와 현 기독교, 개신교 생명 주기의 오버랩

AC.332 심화4. 가인 계열의 생명 주기는 오늘날 기독교와 어떻게 겹쳐 보일 수 있는가? 가인 계열을 따라 읽다 보면 오늘날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모습이 겹쳐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bygrace.kr

 

 

 

AC.333, 창4:19-22, 아다와 씰라, 야발, 유발, 두발가인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And Lamech took unto him two wives; the name of the one was Adah, and the name of the other Zillah.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

bygrace.kr

 

AC.331, 창4:17, 에녹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