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창4:21)

 

 

417.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는 같은 교회 영적인 것들의 교리를 상징합니다. By “his brother’s name was Jubal” is signified the doctrine of the spiritual things of the same church;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은 신앙의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by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418. 앞 절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다면, 이번 절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다루며, 이걸 ‘수금과 퉁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former verse treated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of love, but this verse treats of spiritual things which are of faith, and these are expressed by the “harp and organ.

 

하프(※ 본문에서는 ‘수금’으로 번역) 종류의 현악기들이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살펴볼 때 분명합니다. That by stringed instruments, such as harps and the like, are signified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many considerations.

 

표상교회(表象교회, the representative church)의 예배에서는 현악기류와 찬양으로 말고는 딱히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 경우인데요, 심령이 천국의 기쁨으로 즐거울 때, 그걸 찬양으로, 그리고 옆에서 그 찬양을 받쳐주고, 북돋워 주는 현악기들로 표현하기 위하여 많은 찬양대와 연주자들이 있었습니다. Similar instruments, and also the singing, in the worship of the representative church, represented nothing else, and it was on this account that there were so many singers and musicians, the cause of this representation being that all heavenly joy produces gladness of heart, which was expressed by singing, and in the next place by stringed instruments that emulated and exalted the singing.

 

이 예배를 마음의 모든 애정을 다해 참여하게 되는데요, Every affection of the heart is attended with this:

 

그 결과, 이 예배는 찬양과 찬양 관련된 것들로 표현되게 됩니다. that it produces singing, and consequently what is connected with singing.

 

마음의 애정은 천적인 반면, 관련 찬양은 영적입니다. The affection of the heart is celestial, but the consequent singing is spiritual.

 

찬양과 그와 유사한 것이 영적인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저는 두 종류의 천사 찬양대, 곧 천적, 영적 찬양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That singing and that which resembles it denote what is spiritual has been evident to me from the angelic choirs, which are of two kinds, celestial and spiritual.

 

영적 찬양대는 현악기 소리에 비교되는, 그들의 활기찬 찬양 톤 [sono canoro alato] 때문에 천적 찬양대와 쉽게 구별이 되는데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spiritual choirs are easily distinguished from the celestial by their vibrant singing tone [sono canoro alato], comparable to the sound of stringed instruments, of whi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we shall speak hereafter.

 

태고인들(太古인들, the most ancient people)은 천적인 것은 심장 지역과, 영적인 것은 폐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폐와 관련된 것들은 뭐든지, 예를 들면, 찬양하는 소리 및 그와 유사한 것들인데요, 그래서 목소리나 그런 악기들의 소리를 가리켜 영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referred what was celestial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at was spiritual to that of the lungs, and consequently to whatever pertains to the lungs, as do the singing voice and things like it, and therefore the voices or sounds of such instruments.

 

이렇게 말씀드리는 근거는 심장과 폐가 마치 사랑과 신앙처럼 일종의 결혼을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천적 천사들은 심장 지역에, 영적 천사들은 폐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The ground of this was not merely that the heart and lungs represent a kind of marriage, like that of love and faith, but also because the celestial angels belong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the spiritual angels to that of the lungs.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본문의 의미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또한 알 수 있는데요,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유발은 하프와 오르간을 연주하는 그런 사람의 조상이라는 의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거나,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것이라면 그런 말씀은 생명 없는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That such things are meant in the passage before us, may also be known from the fact that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and that it would be destitute of life if nothing more were implied than that Jubal was the father of such as play upon the harp and the organ; nor is it of any use to anyone to know this.

 

 

419. 천적인 것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인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so spiritual things are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무엇이 진리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선인지 이해하는 것은 신앙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for it belongs to faith to understand not only what is true, but also what is good.

 

신앙의 지식들은 이 둘을 다 포함합니다. The knowledges of faith involve both.

 

그러나 신앙이 가르치는 것처럼 되는 것은 천적입니다. But to be such as faith teaches is celestial.

 

신앙은 이들 둘 다 포함하기 때문에, 이 둘이 두 개의 악기, 하프와 오르간으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As faith involves both of these, they are signified by two instruments, the harp and the organ.

 

다들 아시듯, 하프는 현악기이며, 그래서 영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The harp, as everyone knows, is a stringed instrument, and therefore signifies spiritual truth;

 

그러나 오르간은 현악기와 관악기의 중간, 건반악기이며, 영적 선을 상징합니다. but the organ, being intermediate between a stringed instrument and a wind instrument, signifies spiritual good.

 

 

420. 말씀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며, 다들 저마다의 상징들을 갖고 있는데, 주님의 신적 자비로, 적절한 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In the Word mention is made of various instruments, each having its own signification, as will be shown,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its proper place;

 

하지만 여기서는 시편 말씀으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here however we shall adduce only what is said in David: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I will sacrifice in the tent of Jehovah sacrifices of shouting, I will sing, yea, I will sing praises unto Jehovah, (시27:6)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을, ‘소리치며 즐거워함’, ‘노래함’, 그리고 ‘찬송함’은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where by “tent” is expressed what is celestial, and by “shouting,” “singing,” and “singing praise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Again: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Sing unto Jehovah, O ye righteous, for his praise is comely for the upright; confess ye to Jehovah on the harp, sing unto him with the psaltery, an instrument of ten strings. Sing unto him a new song, play skillfully with a loud noise; for the Word of Jehovah is right, and all his work is in the truth, (시33:1-4)

 

신앙의 진리들을 보여주는 말씀이며,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denoting the truths of faith, concerning which these things are said.

 

[2] 영적인 것들, 혹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수금과 비파, 노래와 노래 관련 악기들을 가지고, 반면, 신앙 관련 거룩하거나 천적인 것들은 관악기 같은 걸로 즐겁게 경축하였습니다. Spiritual things, or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the harp and psaltery, with singing and analogous instruments, but the holy or celestial thing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wind instruments, such as trumpets and the like;

 

그리고 이것이 성전에 대하여 왜 그렇게나 많은 악기들이, 그리고 그렇게나 자주 사용되었는지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이런저런 주제마다 해당 특정 악기로 경축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and this was why so many instruments were used about the temple and so often, in order that this or that subject might be celebrated with certain instruments;

 

그리고 이런 사유로, 말씀에서 경축에 사용된 악기를 보면 관련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 instruments came to be taken and understood for the subjects that were celebrated with them.

 

[3]Again:

 

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I will 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even thy truth, O my God; unto thee will I sing praises with the harp, O thou holy one of Israel; my lips shall sing when I sing praises unto thee, and my soul which thou hast redeemed, (시71:22-23)

 

여기도 신앙의 진리들이 상징되고 있습니다. where also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Again: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Answer to Jehovah in confession, sing praises upon the harp unto our God; (시147:7)

 

감사’(고백)는 신앙의 천적인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며, 그래서 ‘여호와’가 언급되는 것입니다. confession” has respect to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and therefore mention is made of “Jehovah”;

 

그리고 ‘수금으로 찬양함’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계되며, 그래서 ‘하나님’이 호칭 되고 있는 것입니다. and to “sing praises upon the harp”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wherefore “God” is spoken of.

 

다시 Again: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Let them praise the name of Jehovah in the dance, let them sing praises unto him with the timbrel and harp, (시149:3)

 

여기 ‘소고’는 선을, ‘수금’은 진리를 상징합니다. 선과 진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where the “timbrel” signifies good, and the “harp” truth, which they praise.

 

[4] 다시 Again:

 

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Praise Go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psaltery and harp; praise him with the timbrel and dance; praise him with stringed instruments and the organ; praise him upon the loud cymbals; praise him upon the cymbals of shouting. (시150:3-5)

 

이 악기들은 신앙의 선과 진리를 나타냅니다. 이 선과 진리가 찬양의 주제입니다. These instruments denote the goods and the truths of faith which were the subjects of praise;

 

이 각각의 악기들이 무슨 특별한 상징 없이 여기 이렇게나 많이 언급될 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믿기 때문입니다. for let no one believe that so many different instruments would have been here mentioned unless each had a distinct signification.

 

다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면서, Again, referring to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O send out thy light and thy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unto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and to thy habitations, and I will go in to the altar of God, unto God, the gladness of my exultation; yea, I will confess unto thee upon the harp, O God, my God. (시43:3, 4)

 

[5] 이사야에서, 신앙에 속한 것들과 그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시면서 In Isaiah, referring to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Take a harp, go about the city, play well, sing many songs, that thou mayest be called to remembrance. (사23:16)

 

같은 내용이 계시록에서는 계속해서 훨씬 더 명료하게 표현됩니다. The same is expressed still more plainly in John: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The 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having every one of them harps, and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which are the prayers of the saints, (계5:8)

 

여기 누가 보아도 분명 생물들과 장로들은 거문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거문고’는 신앙의 진리를,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신앙의 선을 상징합니다. where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that the animals and elders had not harps, but that by “harps” are signified the truths of faith, and by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the goods of faith.

 

시편에서 이들 악기들을 ‘찬송’과 ‘감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In David the performances on the instruments are called “praises” and “confessions.” (Ps. 42:5; 69:3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42:5)

 

30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69:30-31)

 

그리고 계시록 다른 곳에서 And in another place in John: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I heard a voice from heaven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I heard the voice of harpers harping with their harps, and they sang a new song. (계14:2-3)

 

또 다른 구절에서 And in another place: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I saw them standing by the sea of glass having the harps of God. (계15:2)

 

다음 사실들은 언급하는 것이 유익하지 싶습니다. 천사들과 영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자기들의 차이에 따라 소리를 구분합니다. 노래할 때 나는 소리, 악기를 연주할 때 나는 소리, 그리고 말을 할 때 나는 목소리 등의 소리를 말합니다. It is worthy of mention that angels and spirits distinguish sounds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 with respect to good and truth, not only those produced in singing and by instruments, but also those of voices;

 

그들은 아무도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음을 압니다. 천국은 각자의 선과 진리의 본성과 본질만큼 그 소리도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방의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선과 진리의 상태를 압니다. 천국 그 수 많은 구성원들 누구 하나도 선과 진리의 상태가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상 각 사람의 지문(指紋)이 다 다르듯, 성문(聲紋)이 다 다르듯 천국 구성원들의 선과 진리의 상태 역시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and they admit none but such as are in accord, so that there may be a concord of the sounds, and consequently of the instruments, with 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2021-06-12(D7)-토요예배(창4,21, AC.417-418), '유발, 수금과 퉁소 잡는 자의 조상(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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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MkfuZiuV7g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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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창4:20)

 

 

412. ‘아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앙의 천적, 영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By “Adah” is signified, as before, the mother of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야발,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 관한 교리와 그 교리에서 나오는 천적 선을 상징합니다. by “Jabal,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is signified doctrine concerning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goods thence derived, which are celestial.

 

 

413. ‘아다’가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상징한다는 것은 그녀의 첫아들 야발을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라 하는 데서 분명합니다. 여기 가축은 천적인데, 가축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여기서 나오는 선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by “Adah” is signified the mother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her firstborn Jabal being called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which are celestial because they signify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goods thence derived.

 

 

414. ‘장막에 거주하는 것’이 사랑의 거룩한 것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장막’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o “dwell in tents” signifies what is holy of lov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ents” in the Word.

 

시편에 보면 As in David: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Jehovah, who shall abide in thy tent? Who shall dwell in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He that walketh upright, and worketh righteousness, and speaketh the truth in his heart, (시15:1-2)

 

이 말씀에서, ‘장막에 거주하는 것’ 혹은 ‘성산에 사는 것’을 사랑의 거룩한 것들, 즉,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in which passage, what it is to “dwell in the tent” or “in the mountain of holiness” is described by holy things of love, namely, the walking uprightly, and working righteousness.

 

계속해서 Again: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Their line is gone out through all the earth, and their discourse to the end of the world. In them hath he set a tent for the sun, (시19:4)

 

여기 ‘’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where the “sun” denotes love.

 

다시 Again: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I will abide in thy tent to eternities, I will trust in the covert of thy wings, (시61:4)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을, ‘날개 아래’는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where the “tent”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covert of wing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By mercy the throne has been made firm, and one hath sat upon it in truth, in the tent of David, judging and seek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사16:5)

 

여기 또한 ‘장막’은 사랑의 거룩한 것을 가리킵니다. ‘정의로 판결함’, ‘공의를 신속히 행함’이라는 표현을 보면 아실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where also the “tent” denotes what is holy of love, as may be seen by the mention of “judg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다시 Again: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Look upon Zion, the city of our appointed feast; thine eyes shall see Jerusalem a quiet habitation, a tent that shall not be moved away, (사33:20)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씀하시면서 speaking of the heavenly Jerusalem.

 

[2]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Thus said Jehovah, Behold, I bring again the captivity of Jacob’s tents, and will have mercy on his dwelling places, and the city shall be builded upon her own heap; (렘30:18)

 

장막의 포로’는 천적인 것, 혹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을 상징합니다. the “captivity of tents” signifies the vastation of what is celestial, or of the holy things of love.

 

아모스입니다. In Amos: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In that day will I raise up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is fallen; and will fence up the breaches thereof, and I will raise up its ruins, and I will build it as in the days of eternity, (암9:11)

 

여기 ‘장막’(tabernacle)은 마찬가지로 천적인 것과 그것의 거룩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where the “tabernacle” in like manner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holy things thereof.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The whole land is laid waste, suddenly are my tents laid waste, and my curtains in a moment. (렘4:20)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from me, and they are not; there is none to stretch my tent anymore, and to set up my curtains, (렘10:20)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들을, 그리고 ‘휘장’과 ‘’은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where the “tent” signifies celestial things, and “curtains” and “cords” spiritual things thence derived.

 

다시 Again: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Their tents and their flocks shall they take; they shall carry off for themselves their curtains, and all their vessels, and their camels, (렘49:29)

 

게달(아라비아)과 동방 자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천적이거나 거룩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표현합니다. speaking of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by whom are represented those who possess what is celestial or holy.

 

다시 Again: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Into the tent of the daughter of Zion the Lord hath poured out his wrath like fire, (애2:4)

 

신앙의 천적이거나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에 관한 말씀입니다.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the celestial or holy things of faith.

 

[3] 말씀에서 이 ‘장막’이라는 용어를 채택, 천적인 것과 사랑의 거룩한 것들을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에는 예배의 거룩한 의식들을 그들의 장막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 term “tent” is employed in the Word to represent the celestial and holy things of love is that in ancient times they performed the holy rites of worship in their tents.

 

그러나 그들이 신성모독의 예배를 장막에서 드림으로써 장막을 모독하기 시작하더니 성막이 세워졌고, 나중에는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장막은 먼저 성막이, 그 다음엔 성전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But when they began to profane the tents by profane kinds of worship, the tabernacle was built, and afterwards the temple, and therefore tents represented all that was subsequently denoted first by the tabernacle, and afterwards by the temple.

 

같은 이유로, 거룩한 사람을 가리켜 주님의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라 합니다. For the same reason a holy man is called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of the Lord.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 같은 걸 상징한다는 것은, 시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at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s evident in David:

 

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One thing have I asked of Jehovah,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remain in the house of Jehovah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Jehovah in sweetness, and to visit early in his temple; for in the day of evil he shall hide me in his tabernacle; in the secret of his tent shall he hide me; he shall set me up upon a rock. And now shall my head be lifted up against mine enemies round about me, and I will offer in his tent sacrifices of shouting. (시27:4-6)

 

[4]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은 그의 인성과 관련하여,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천인(天人, celestial man)을 그렇게 부르며, 그래서 또한 모든 천적이며 거룩한 것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as to his human essence is the “tent,”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hence every celestial man is so called, and also everything celestial and holy.

 

태고 교회는 주님을 자기 뒤에 일어난 교회들보다 훨씬 더 사랑했으며, 그때는 혼자, 즉, 가족 단위로 살면서 자신의 장막에서 참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장막은 성전보다 훨씬 더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성전은 나중에 신성모독 되었습니다. Now as the most ancient church was better beloved of the Lord than the churches that followed it, and as men at that time lived alone, that is, in their own families, and celebrated so holy a worship in their tents, therefore tents were accounted more holy than the temple, which was profaned.

 

장막 시절의 모든 것을 기념하고, 대신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토지 소산을 거둘 때에 그들은 그 절기 동안, 태곳적 사람들처럼 장막에서 지냈습니다. (레23:39-44; 신16:13; 호12:9) In remembrance thereof the feast of tabernacles was instituted, when they gathered in the produce of the earth, during which, like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dwelt in tents. (Lev. 23:39–44; Deut. 16:13; Hosea 12:9)

 

39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23:39-44)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16:13)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호12:9)

 

 

415.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위, 이 장 2절에서 보여드린, ‘양 치는 자’는 이웃 사랑의 선을 상징한다는 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at by the “father of cattle” is signified the good that is derived from the holy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what was shown above, at verse 2 of this chapter, where it was shown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signifies the good of charity.

 

그런데 여기 보면, ‘양 치는 자’ 대신 ‘조상’을, ‘양 떼’ 대신 ‘가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Here however the term “father” is employed instead of “shepherd,” and “cattle” instead of “flock”;

 

그리고 야발을 가리켜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라 할 때 사용된 단어 ‘가축’이 ‘장막’ 바로 뒤에 나옵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것은 사랑의 거룩한 것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한다는 것과, 가축의 주거지나 우리, 혹은 장막과 가축의 우리에 거주하는 자들의 조상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and the word “cattle,” of which Jabal is said to be the “father,” follows immediately after “tent,” whence it is evident that it signifies the good that comes from the holy of love, and that there is meant a habitation or fold for cattle, or the father of them that dwell in tents and in folds for cattle.

 

그리고 이런 표현들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에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다양한 본문들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nd that these expressions signify goods from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various passages in the Word.

 

예레미야입니다. As in Jeremiah: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I will gather the remnants of my flock out of all lands whither I have scattered them, and I will bring them again to their folds, that they may be fruitful and multiply. (렘23: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I will feed them in a good pasture, and upon the mountains of the height of Israel shall their fold be; there shall they lie down in a good fold, and in a fat pasture shall they feed upon the mountains of Israel, (겔34:14)

 

여기 ‘우리’와 ‘’은 ‘살지다’로 서술된 사랑의 선들을 가리킵니다. where “folds” and “pastures” denote the goods of love, of which “fatness” is predicated.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He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halt sow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shall be fat and full of oil;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사30:23)

 

여기 ‘먹을 것’은 천적인 것을, 가축이 그 가운데서 먹게 될 ‘풍성함’은 천적인 것에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합니다. where by “bread” i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and by the “fat” whereon the cattle should feed, the goods thence derived.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11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12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Jehovah hath redeemed Jacob, and they shall come and sing in the height of Zion, and shall flow together to the good of Jehovah, for the wheat, and for the new wine, and for the oil, and for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and their soul shall be as a watered garden, (렘31:11-12)

 

여기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곡식’과 ‘기름’으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선들이 ‘새 포도주’와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 혹은 ‘가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where the holy of Jehovah is described by “wheat” and “oil,” and the goods derived from it by “new wine” and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or of “cattle.

 

다시 Again: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The shepherds and the flocks of their cattle shall come unto the daughter of Zion; they shall pitch their tents toward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렘6:3)

 

시온의 딸’은 천적 교회를 가리키는데, ‘장막’과 ‘양 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The “daughter of Zion” denotes the celestial church, of which “tents” and “flocks of cattle” are predicated.

 

 

416.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하고 있음은 야발이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둘째였던 아벨, 그 역시 ‘양 치는 자’였던 아벨의 경우와 같다 할 수 있으며, 야발은 가인에서 시작, 일곱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abal was not the first of those who “dwelt in tents and in folds of cattle,” for it is said likewise of Abel, the second son of Adam and Eve, that he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Jabal was the seventh in the order of descent from Cain.

2021-06-11(D6)-매일예배(창4,20, AC.412-416), '야발,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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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XbAnbGnK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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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lVNZ-9ad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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