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교회 >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11-21(D1)-제9권47호통430호 (0) | 2021.11.21 |
---|---|
2021-11-14(D1)-제9권46호통429호 (0) | 2021.11.14 |
2021-10-31(D1)-제9권44호통427호 (0) | 2021.10.31 |
2021-10-24(D1)-제9권43호통426호 (0) | 2021.10.24 |
2021-10-17(D1)-제9권42호통425호 (0) | 2021.10.17 |
2021-11-21(D1)-제9권47호통430호 (0) | 2021.11.21 |
---|---|
2021-11-14(D1)-제9권46호통429호 (0) | 2021.11.14 |
2021-10-31(D1)-제9권44호통427호 (0) | 2021.10.31 |
2021-10-24(D1)-제9권43호통426호 (0) | 2021.10.24 |
2021-10-17(D1)-제9권42호통425호 (0) | 2021.10.17 |
78. 천국이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사람을 반영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에서 비롯된다는 이 사실은, 앞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서술하고 보여드린 모든 내용의 당연한 귀결인데요, 즉, That 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follows as a conclusion from all that has been stated and shown in the preceding chapters, namely:
(1)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That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2)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3) 천국은 무수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지며, 각 공동체는 작은 형태의 천국이고,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다. Heaven consists of innumerable societies; and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4) 모든 천국은 전체적으로 한 사람을 반영한다.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5) 모든 천국 각 공동체는 한 사람을 반영한다. Each society in the heavens reflects a single man.
(6) 그러므로 모든 천사는 완벽한 사람 형태이다. 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이 모든 내용으로 말미암아 다음과 같은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천국을 만드는 것은 신성이기 때문에, 천국은 틀림없는 사람 형태라는 것입니다. All this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as it is the Divine that makes heaven, heaven must be human in form.
이 신성이 주님의 신적 인성이라는 사실은 Arcana Coelestia 에서 수집, 하나의 묶음(compendium, 叢書)으로, 본 장 끝에 부록으로 제공한 걸 보면 더 자세히 아실 수 있습니다. That this Divine is the Lord’s Divine human can be seen still more clearly, because in a compendium, in what has been collected, brought together and collated from Arcana Coelestia and placed as a supplement at the end of this chapter.
주님의 인성은 신성이라는 것, 그리고 교회 내에서 믿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인성은 신성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이런 내용들 또한 위 발췌 부록에서, 그리고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이라는 제목의 책 끝부분, 주님에 관한 장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at the Lord’s human is Divine, and that it is not true that his human is not Divine, as those within the church believe, may also be seen in the same extracts, also in the chapter on the Lord, in the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at the end.
79. 이것이 사실임을 저는 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말씀을 이제 좀 드리겠습니다. That this is true has been proved to me by much experience, about which something shall now be said.
천국 어느 천사도 신성을 사람 형태 아닌 다른 어떤 걸로 지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더 높은 천국 천사들일수록 신성을 어떤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No angel in the heavens ever perceives the Divine as being in any other than a human form; and what is remarkable, those in the higher heavens are unable to think of the Divine in any other way.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흘러드는 신성 자체에 기인하며, 또 천국의 형태가 그들의 생각이 확산되어 나가는 형태와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The necessity of thinking in this way comes from the Divine itself that flows in, and also from the form of heaven in harmony with which their thoug
hts spread forth.
천사 한 명이 하는 모든 생각은 천국 안으로 확산되어 나가며, 모든 천사는 그 가진 총명과 지혜만큼 그 생각이 확산되기 때문에, For every thought of an angel spreads forth into heaven; and the angels have intelligence and wisdom in the measure of that extension.
그 결과 천국의 모두가 주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오직 주님에게만 신적 인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It is in consequence of this that all in heaven acknowledge the Lord, because only in him does the Divine human exist.
이 모든 걸 저는 천사들한테서 들었을 뿐 아니라, 제가 천국의 가장 내적 영향권 안으로 들려올라갔을 때, 이런 걸 직접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Not only have I been told all this by angels, but when elevated into the inner sphere of heaven I have been able to perceive it.
이런 사실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천사들이 더 지혜로울수록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지각한다는 것과, 주님이 천사들에게 나타나시는 것도 이 사실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는 신성을 시인하고 믿는 사람들한테는 사람 모습을 가진 신적 천사로 나타나시지만, 보이지 않는 신성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나타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From this it is evident that the wiser the angels are the more clearly they perceive this truth; and it is from this that the Lord is seen by them; for the Lord is seen in a Divine angelic form, which is the human form, by those who acknowledge and believe in a visible Divine being, but not by those who believe in an invisible Divine.
전자는 신성을 볼 수 있지만, 후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For the former can see their Divine being, but the latter cannot.
80. 천사들은 형체 없는 신성, 보이지 않는 신성은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대신, 오직 사람 형태의 보이는 신성만 지각하기 때문에, 주님 홀로 사람이시며, 자기들이 사람인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음이고, 각자 주님
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일상화되었습니다. Because the angels have no perception of an invisible Divine, which they call a Divine devoid of form, but perceive only a visible Divine in human form, they are accustomed to say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it is from him that they are men, and that each one is a man in the measure of his reception of the Lord.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주님은 자신의 선 안에, 진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지혜와 총명, 지성이라고 부릅니다. By receiving the Lord they understand receiving good and truth which are from him, since the Lord is in his good and in his truth, and this they call wisdom and intelligence.
천사들은 말하기를, 지성과 지혜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지, 이런 걸 떠난 생김새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님을 모든 천사가 알고 있다고 합니다. Everyone knows, they say, that intelligence and wisdom make man, and not a face without these.
내적 천국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지혜와 총명 가운데 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사람 모습입니다. 반면, 더 낮은 천국 천사들은 덜 완벽하고 덜 아름다운 사람 모습입니다. The truth of this is made evident from the appearance of the angels of the interior heavens, for these, being in good and truth from the Lord and in consequent wisdom and intelligence, are in a most beautiful and most perfect human form; while the angels of the lower heavens are in human form of less perfection and beauty.
다른 한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 빛으로는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괴물 같은 모습들입니다. 그들은 선과 진리가 아닌, 악과 거짓 안에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지혜와 총명하고는 정반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On the other hand, those who are in h
ell appear in the light of heaven hardly as men, but rather as monsters, since they are not in good and truth but in evil and falsity, and consequently in the opposites of wisdom and intelligence.
이런 이유로, 그들의 삶을 가리켜 삶이 아닌, 영적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For this reason their life is not called life, but spiritual death.
81. 천국은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주님의 신적 인성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 안에 있다 하며, 또 일부는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의 몸 안에 있다 합니다. 그 의미는, 자기들은 주님의 사랑의 선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Because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from the Lord’s Divine human, reflects a man, the angels say that they are in the Lord; and some say that they are in his body, meaning that they are in the good of his love.
이것은 주님 자신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And this the Lord himself teaches, saying,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4-10)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except it abide in the vin
e, so neither can ye, except ye abide in Me. For apart from Me ye can do nothing. Abide in My love.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John 15:4–10)
82. 신성에 대한 이런 지각이 천국에는 있기 때문에, 천국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람 모습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그 안에 심겨져 있습니다. Because such a perception of the Divine exists in the heavens, to think of God as in a human form is implanted in every man who receives any influx from heaven.
그래서 고대인들이 주님을 그렇게 생각했고, 현대인들 역시 교회 안팎을 불문, 주님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Thus did the ancients think of him; and thus do the moderns think of him both outside of the church and within it.
단순한 사람들은 주님을 광채나는 마법사 에인션트 원으로 생각합니다. The simple see him in thought as the Ancient One in shining light.
그러나 이런 인사이트는 자기중심적 지성으로 악하게 살아 천국 인플럭스를 거절한 사람들한테는 소멸되었습니다. But this insight has been extinguished in all those that by self-intelligence and by a life of evil have rejected influx from heaven.
자기중심적 지성으로 그걸 소멸해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원하는 반면, 악한 삶을 통해 그걸 소멸해온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Those that have extinguished it by self-intelligence prefer an invisible God; while those that have extinguished it by a life of evil prefer no God.
둘 중 어느 쪽도 그런 인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걸 모릅니다. 그게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 사람의 안으로 근본적으로 흘러들어오는 건 주님의 신성 그 자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천국에 가기 위해 태어나는데, 하지만 신성에 대한 컨셉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Neither of these are aware t
hat such an insight exists, because they do not have it; and yet it is the Divine heavenly itself that primarily flows into man out of heaven, because man is born for heaven, and no one without a conception of a Divine can enter heaven.
83. 이런 이유로, 천국에 대한 컨셉이 전혀 없는, 즉 천국이 비롯되는 신성에 관한 컨셉이 전혀 없는 사람은 사후에 깨어나 천국의 첫 번째 문턱도 넘지 못합니다. For this reason he that has no conception of heaven, that is, no conception of the Divine from which heaven is, cannot be raised up to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이런 사람은 천국에 접근하자마자 어떤 저항과 일종의 아주 강한 반발을 지각합니다. 천국에 대하여 수용적이어야 할 그의 내면이 천국 형태가 되지 않도록 오히려 닫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천국에 더 다가갈수록 그의 내면은 아주 더 타이트하게 닫힙니다. As soon as such a one draws near to heaven a resistance and a strong repulsion are perceived; and for the reason that his interiors, which should be receptive of heaven, are closed up from their not being in the form of heaven, and the nearer he comes to heaven the more tightly are they closed up.
이것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님은 부인하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소시니아인들 같이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Such is the lot of those within the church who deny the Lord, and of those who, like the Socinians, deny his Divinity.
그러나 교회 밖에서 태어나 말씀이 없어 주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lot of those who are born out of the church, and who are ignorant of the Lord because they do not have the Word, will be described hereafter.
84. 아브라함, 롯, 여호수아, 기드온, 마노아와 그의 아내 및 그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신을 보면 옛사람들이 신을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hat the men of old time had an idea of the Divine as human is evident from the manifestation of the Divine to Abraham, Lot, Joshua, Gideon, Manoah and his wife, and others.
그들은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그를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하늘과 땅의 하나님, 여호와로 불렀습니다. These saw God as a man, but nevertheless adored him as the God of the universe, calling him the God of heaven and earth, and Jehovah.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분이 주님이셨음을 주님은 요한복음 8장 56절을 통해 친히 가르치십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주님이심을 그분의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That it was the Lord who was seen by Abraham he himself teaches in John 8:56; and that it was he who was seen by the rest is evident from his words: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요1:18; 5:37) No one hath seen the Father, nor heard his voice, nor seen his form. (John 1:18; 5:37)
85. 그러나 겉 사람에 속한 감각적 컨셉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한테는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감각의 사람은 신에 대한 생각도 세상과 거기 속한 걸로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그는 어떤 신성과 영성의 사람을 생각할 때도 같은 식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육(肉)적이고 자연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But that God is man can scarcely be comprehended by those who judge all things from the sense conceptions of the external man, for the sensual man must needs think of the Divine from the world and what is therein, and thus of a Divine and spiritual man in the same way as of a corporeal and na
tural man.
그래서 그는 결론짓기를,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온 우주만큼 커야 하며, 만일 그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신다면, 세상 왕들이 하듯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이지요. From this he concludes that if God were a man he would be as large as the universe; and if he ruled heaven and earth it would be done through many others, after the manner of kings in the world.
만일 그가 천국에는 이 세상 같은 무슨 공간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If told that in heaven there is no extension of space as in the world, he would not in the least comprehend it.
오직 자연과 자연의 빛으로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그로서는 자기 눈에 보이는 공간 확장으로만 그런 걸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For he that thinks only from nature and its light must needs think in accord with such extension as appears before his eyes.
하지만 천국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가장 큰 실수입니다. But it is the greatest mistake to think in this way about heaven.
그곳의 공간 확장은 세상의 확장과 다릅니다. Extension there is not like extension in the world.
세상에서의 공간은 정해져 있고, 그래서 측정 가능한 것이지만, 천국의 공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측정불가입니다. In the world extension is determinate, and thus measurable; but in heaven it is not determinate, and thus not measurable.
천국 공간과 그 확장에 관해서는 나중에 영계의 공간과 시간과 연결지어 더 깊이 다루겠습니다. But extension in heaven will be further treated of hereafter in connection with space and time in the spiritual world.
좀더 말씀드리면, 사람들은 시력이라는 게 얼마나 멀리 뻗어나가는지, 즉 태양과 별을 넘어 훨씬 저 멀리 뻗어나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래서 좀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고에 속한 내적 시야는 훨씬 더 넓게 확장되며, 그래서 더 깊은 내적 시야일수록 훨씬 더 멀리 계속 확장된다는 걸 말이지요. Furthermore, everyone knows how far the sight of the eye extends, namely, to the sun and to the stars, which are so remote; and whoever thinks deeply knows that the internal sight, which is of thought, has a still wider extension, and that a yet more interior sight must extend more widely still.
그러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내적이시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시야, 신성의 시야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What then must be said of Divine sight, which is the inmost and highest of all?
생각, 사고라는 게 이런 확장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의 여러 장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천국의 모든 것은 거기 있는 모두와 공유되며, 천국을 만들고 또 가득 채우는 주님의 신성에 속한 모든 것 또한 그렇게 공유됩니다. Because thoughts have such extension, all things of heaven are shared with everyone there, so, too, are all things of the Divine which makes heaven and fills it, as has been shown in the preceding chapters.
86. 천국 천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 즉, 생각으로도 선뜻 잡히지 않는 어떤 추상적 형태라 여기고 앉아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성인입네 한다는 사실과, 자기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배움이 없고 단순무식하다 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말입니다. Those in heaven wonder that men can believe themselves to be intelligent who, in thinking of God, think about something invisible, that is, inconceivable under any form; and that they can call those who think differently unintelligent and simple, when the reverse is the truth.
그들은 또 말하기를,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시지요. 자신들이 자연, 즉 누구는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누구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리
켜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천사는, 영은, 사후에도 여전히 사는 그들의 영은,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의 삶은, 지성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것은 볼 줄 모르는 장님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반면, 그들이 단순하다 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 곧 하나님은 사람 모습으로 계신 신이시며, 천사는 하늘에 사는 사람이고, 그들의 혼은 사후에도 천사들처럼 사는 것이요,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의 삶은 신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They add, “Let those who thus believe themselves to be intelligent examine themselves, whether they do not look upon nature as God, some the nature that is before their eyes, others the invisible side of nature; and whether they are not so blind as not to know what God is, what an angel is, what a spirit is, what their soul is which is to live after death, what the life of heaven in man is, and many other things that constitute intelligence; when yet those whom they call simple know all these things in their way, having an idea of their God that he is the Divine in a human form, of an angel that he is a heavenly man, of their soul that is to live after death that it is like an angel, and of the life of heaven in man that it is living in accord with the Divine commandments.”
천사들은 이들이 지성인이며, 천국에 적합한 자들인 반면, 저들은 비지성, 몰지각, 어리석은 자라 합니다. Such the angels call intelligent and fitted for heaven; but the others, on the other hand, they call not intelligent.
강독회(11/20, HH.1.12.87-95), '12장,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은 상응한다' (0) | 2021.11.20 |
---|---|
강독회(11/13, HH.1.11.81-86), '11장, 천국이 사람 모습임은 주의 신적 인성에서 비롯된다' (0) | 2021.11.13 |
강독회(10/24, HH.1.10.75-77), '10장, 그래서 각 천사도 완벽한 사람 형태입니다' (0) | 2021.10.23 |
강독회(10/16, HH.1.10.73-74), '10장, 그래서 각 천사도 완벽한 사람 형태입니다' (0) | 2021.10.16 |
강독회(10/9, HH.1.9.68-72), '9장, 천국 각 공동체도 저마다 한 사람을 반영한다' (0) | 2021.10.09 |
1553. 3절,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Verse 3. And he went according to his journeys, from the south and even to Bethel, unto the place where his tent was at the first, between Bethel and Ai.
‘그가 길을 떠나’, 질서(order)를 따라, ‘네게브(남쪽, the south)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며’, 총명의 빛(the light of intelligence)으로부터 출발, 지혜의 빛(the light of wisdom) 안으로,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어린 시절 주님이 지식으로 채워지시기 전, 가지고 계셨던 거룩한 것들에, ‘벧엘과 아이 사이’, 여기, 곧 앞 내용처럼, 지식의 천적(天的, celestial)인 것들,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을 각각 의미합니다. “He went according to his journeys” signifies according to order; “from the south and even to Bethel” signifies from the light of intelligence into the light of wisdom; “unto the place where his tent was before” signifies to the holy things which there were before he was imbued with knowledges; “between Bethel and Ai” signifies here, as before, the celestial things of knowledges, and worldly things.
1554. 그가 길을 떠나 He went according to his journeys.
이것이 ‘질서를 따라, 순서대로’라는 의미임은, ‘길’(journeys)의 의미가 다음 단계들로 더욱 나아감이라는 사실에서(관련, AC.1457 참조)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 일들이 질서를 따라, 순서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여기 ‘길’은 그밖에 무슨 다른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according to order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journeys” as being further progressions (concerning which, see n. 1457); and as these were made according to order, “journeys” here signify nothing else.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님은 모든 신적 질서(Divine order)를 따라 천적인 것들을 향해 나아가셨으며, 아브람에 관한 기록을 통해 이런 질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그 속뜻입니다. From his earliest infancy the Lord advanced according to all Divine order to celestial things, and into celestial things; and in the internal sense, the nature of this order is described by what is said concerning Abram.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지음 받는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질서를 따라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질서는 사람마다 매우 다양한데요, 그것은 각 사람의 성정과 타고남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According to such order also are all led who are being created anew by the Lord; but this order is various with men, according to the nature and genius of each one.
그러나 사람이 거듭날 동안 이 질서가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는지는 그 어떤 사람한테도, 심지어 천사들한테도 대략적으로만 허락됩니다. 오직 주님만 홀로 아십니다. But the order by which a man is led while being regenerated is known to no man, and not even to the angels, except obscurely, but to the Lord alone.
1555. 네게브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며 From the south and even to Bethel.
이것이 ‘총명의 빛으로부터 출발, 지혜의 빛 안으로’라는 의미임은, ‘네게브’의 의미가 총명의 빛, 혹은 같은 말이지만, 내면을 비추는 빛의 상태(AC.1458번 글 참조)라는 점과, ‘벧엘’의 의미가 지식들로 말미암아 열리는 천적인 빛(AC.1453번 글 참조)이라는 점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from the light of intelligence into the light of wisdo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 south” as being the light of intelligence, or what is the same, a state of light as to the interiors (spoken of before, n. 1458);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Bethel” as being celestial light arising from knowledges (concerning which before, n. 1453).
이것을 총명의 빛이라 하는데, 이 빛은 신앙에 관한, 선과 진리의 지식으로 얻어지는 빛입니다. 반면, 지혜의 빛은 그렇게 살 때, 즉, 총명의 빛으로 살 때 생기는 생명의 빛입니다. That is called the light of intelligence which is procured by means of the knowledges of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but the light of wisdom is that of the life which is thence acquired.
총명의 빛은 지적(intellectual) 파트, 혹은 이해(the understanding)에 관한 것이지만, 지혜의 빛은 의지(the will) 파트, 혹은 생명(삶)에 관한 것입니다. The light of intelligence regards the intellectual part, or the understanding; but the light of wisdom regards the will part, or the life.
[2] 거의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극소수의 사람만이 사람이 어떻게 참된 지혜에 이르게 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Few, if any, know how man is brought to true wisdom.
총명은 지혜가 아니며, 지혜로 인도되는 그 어떤 것입니다. 무엇이 참이요 선인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참되고 선한 사람인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건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실제로 지혜로와야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Intelligence is not wisdom, but leads to wisdom; for to understand what is true and good is not to be true and good, but to be wise is to be so.
지혜는 오직 삶으로만, 사람이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만, 지혜롭다 할 수 있는 겁니다. Wisdom is predicated only of the life—that the man is such.
사람은 아는 거, 곧, 지식을 통해서 지혜나 생명을 접하게 됩니다. A man is introduced to wisdom or to life by means of knowing [scire et nosse], that is, by means of knowledges [scientiae et cognitiones].
※ 그렇다고 지적 추구, 지식 습득이 소용 없다거나 무슨 저급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지혜에 이르려면 일단 뭘 배워 아는 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지식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천적 지혜, 주님의 지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식의 쓰임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파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지(the will), 즉, 마음먹는 능력, 결심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the understanding), 즉, 이해하는 능력, 배우는 능력입니다. 의지가 메인 파트고, 이해는 보조입니다. In every man there are two parts,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the will is the primary part, the understanding is the secondary one.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후 삶(死後, life after death)은 그의 의지 파트를 따른다는 겁니다. 지적(intellectual) 파트가 아니고 말입니다. Man’s life after death is according to his will part, not according to his intellectual part.
의지는 사람 안에서 그의 유아기부터 어린시절까지 주님에 의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밀어넣으시는 이노센스(innocence, 순진)에 의해, 그리고 부모, 보모(保姆, nurse) 및 같은 연령대 어린이들을 향한 체어리티(charity, 자선, 관용, 너그러움)에 의해, 그리고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는, 천적인, 다른 많은 일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The will is being formed in man by the Lord from infancy to childhood, which is effected by means of the innocence that is insinuated, and by means of charity toward parents, nurses, and little children of a like age; and by means of many other things that man knows nothing of, and which are celestial.
사람이 유아 및 어린이일 동안, 먼저 사람 안에 이들 천적인 것들이 주입되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Unless these celestial things were first insinuated into a man while an infant and a child, he could by no means become a man.
첫 번째 면(plane)은 이렇게 형성됩니다. Thus is formed the first plane.
[3] 그러나 사람은 또한 이해하는 능력이 부여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의지만으로도 그렇습니다. 반드시 의지와 이해하는 능력이 함께 해야 사람입니다. 또 이해하는 능력은 지식 없이는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 주님은 서서히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나가야만 하셨습니다. But as a man is not a man unless he is endowed also with understanding, will alone does not make the man, but understanding together with will; and understanding cannot be acquired except by means of knowledges [scientiae et cognitiones] and therefore he must, from his childhood, be gradually imbued with these.
두 번째 면은 이렇게 형성됩니다. Thus is formed the second plane.
이 지적 파트가 학습을 통해 지식들, 특별히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들을 얻게 되는 이때가 일단은 사람의 거듭남의 시동이 걸릴 수 있는 때가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그의 안에서 거듭남이 시작이 되고, 진행이 되면, 이때 주님에 의해 진리와 선이 이식(移植, implant)됩니다. 이 이식은 주님에 의해 그의 유아 시절부터 무상으로 공급되어 온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을 가지고 일어나며, 이 이식의 결과, 그의 지적인 것들과 그의 천적인 것들이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이 그것들과 결합하시면서, 사람은 이번에는 체어리티를 무상으로 공급받으며, 드디어 체어리티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 체어리티는 양심에 속하게 됩니다. When the intellectual part has been instructed in knowledges [scientiae et cognitiones], especially in the knowledges of truth and good, then first can the man be regenerated; and, when he is being regenerated, truths and goods are implanted by the Lord by means of knowledges in the celestial things with which he had been endowed by the Lord from infancy, so that his intellectual things make a one with his celestial things; and when the Lord has thus conjoined these, the man is endowed with charity, from which he begins to act, this charity being of conscience.
이런 방법으로, 사람은 처음으로 새 생명을 받습니다. 이 일은 이렇게 차근차근 일어납니다. In this way he for the first time receives new life, and this by degrees.
이 생명의 빛을 지혜라 하며, 첫 자리를 차지하고, 총명 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The light of this life is called wisdom, which then takes the first place, and is set over the intelligence.
이렇게 세 번째 면이 형성됩니다. Thus is formed the third plane.
사람이 몸 안에 있을 동안 이렇게 되면, 사후에도 계속해서 완벽해지는 가운데 있게 됩니다. When a man has become like this during his bodily life, he is then in the other life being continually perfected.
이상의 내용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총명의 빛이 무엇이며, 지혜의 빛이 무엇인지 하는 것입니다. These considerations show what is the light of intelligence, and what the light of wisdom.
1556.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Unto the place where his tent was before.
이것이 ‘어린 시절 주님이 지식으로 채워지시기 전 주님 안에 있었던 거룩한 것들에’라는 의미임은, ‘장막’(tent)의 의미가 신앙의 거룩한 것들인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 AC.414, 1452 및 방금전까지 말씀드린 것 참조). 그래서 이것의 의미가 ‘지식으로 채워지시기 전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천적인 것들에’임은 앞 장에서 말씀드린,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창12:8) 내용으로 분명합니다. 이때는 애굽으로 출발하시기 전, 그러니까 주님이 지식으로 채워지시기 전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to the holy things which there were before he was imbued with knowledge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tent,” which is the holy things of faith (concerning which, n. 414, 1452, and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it thus signifies to the celestial things which the Lord had before he was imbued with knowledges, as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in the preceding chapter: “and Abram removed from thence un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pitched his tent” (verse 8); which was before he departed into Egypt, that is, before the Lord was imbued with knowledges.
1557. 벧엘과 아이 사이 Between Bethel and Ai.
이것이 ‘지식의 천적인 것들과,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을 의미함은 ‘벧엘’의 의미, 곧 지식으로 말미암은 지혜의 빛인 점(AC.1453 참조)과, ‘아이’의 의미가 세속적인 것들에서 나오는 빛인 점을(AC.1453 계속 참조) 볼 때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e celestial things of knowledges, and worldly thing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Bethel,” which is the light of wisdom by means of knowledges (see n. 1453);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Ai,” which is the light from worldly things (also spoken of in n. 1453).
거기 언급된 걸 보면, 그때 주님의 상태는 아이같은 순진한 상태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상태는 세속적인 것들이 섞여있는 상태인데요, 세속적인 것들은 진리와 선이 지식을 통해 천적인 것들에 심기기 전까지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사람은 천적인 것이 무엇인지, 세속적인 무엇인지를 알 때까지는 천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From what is there said, it may be seen what the Lord’s state then was, namely, that it was childlike; and the state of a child is such that worldly things are present; for worldly things cannot be dispersed until truth and good are implanted in celestial things by means of knowledges; for a man cannot distinguish between celestial and worldly things until he knows what the celestial is, and what the worldly.
지식은 평범하고 흐릿한 아이디어를 또렷하게 하며, 지식으로 그 아이디어를 더 또렷하게 할수록 세속적인 것들이 더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Knowledges make a general and obscure idea distinct; and the more distinct the idea is made by means of knowledges, the more can the worldly things be separated.
[2] 하지만 아이같은 상태는 여전히 거룩합니다. 순진하기(純眞, innocent) 때문이지요. But still that childlike state is holy, because it is innocent.
무지(無知, ignorance) 안에 순진이 있을 때, 무지하다고 해서 결코 거룩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거룩은 순진한 무지 안에 거주하기 때문입니다. Ignorance by no means precludes holiness, when there is innocence in it; for holiness dwells in ignorance that is innocent.
주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경우, 거룩은 무지 안에서 홀로 거주할 수 있습니다. 무지가 아니면 그들은 절대 거룩할 수 없습니다. With all men, except with the Lord, holiness can dwell solely in ignorance; and if not in ignorance, they have no holiness.
가장 높은 총명과 지혜의 빛 안에 있는 천사들 본인의 경우에도 거룩은 여전히 무지 안에 거주합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자기들이 무엇을 알고 있든지 그것은 다 주님으로 말미암았음을 알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With the angels themselves, who are in the highest light of intelligence and wisdom, holiness also dwells in ignorance; for they know and acknowledge that of themselves they know nothing, but that whatever they know is from the Lord.
그들은 또 알고 인정하기를, 그들의 모든 기억-지식과 총명, 그리고 지혜는 주님의 무한하신 지식과 총명, 그리고 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것이 무지입니다. They also know and acknowledge that all their memory-knowledge, intelligence, and wisdom, is as nothing in comparison with the infinite knowledg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Lord; thus that it is ignorance.
자기가 습득한 것들을 초월하는, 자기가 미처 습득하지 못한 것들이 무한히 존재한다, 무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천사들의 상태인 거룩한 무지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 He who does not acknowledge that there are infinite things with which he is not acquainted, beyond those with which he is acquainted, cannot be in the holiness of ignorance in which are the angels.
[3] 거룩한 무지라는 건 남들보다 더 무지, 무식해지는 걸로 되는 게 아니고, 대신 몇 가지, 곧 사람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자기가 아는 것에 비해 모르는 것은 무한하고, 특히 자기가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들은 천적인 것들에 비하면, 즉 이해에 속한 것들은 생명에 속한 것들에 비하면 정말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그런 걸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The holiness of ignorance does not consist in being more ignorant than others; but in the acknowledgment that of himself a man knows nothing, and that the things he does not know are infinite in comparison with those he does know; and especially does it consist in his regarding the things of the memory and of the understanding as being of but little moment in comparison with celestial things; that is, the things of the understanding in comparison with the things of the life.
주님의 경우, 주님은 인성(things human)을 신성(things Divine)과 결합해나가실 때, 질서를 따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처음 어린시절 가지셨던 그 천적 상태에 도착하셨습니다. 이 상태는 세속적인 것들도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As regards the Lord, as he was conjoining things human with things Divine, he advanced according to order; and he now for the first time arrived at the celestial state such as he had had when a child; in which state worldly things also were present.
이 상태에서 여전히 더욱 더 천적 상태로 나아기심으로써, 주님은 마침내 유아기 천적 상태에 이르셨고, 이 상태에서 주님은 그 인성(the human essence)을 신성(the Divine essence)과 온전히 결합하셨습니다. By advancing from this into a state still more celestial, he at length came into the celestial state of infancy, and in this he fully conjoined the human essence with the Divine essence.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3장 3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속뜻)
어린 시절 주님은 부지런히 접하신 모든 지식으로 총명해지시고, 그 총명의 빛으로 지혜의 빛, 곧 어린 시절 간직하신 천적인 것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셔서 마침내 도달, 인성과 신성을 하나되게 하셨다
※ 주님 안에서 지식, 곧 세상 지식과 종교적 지식이 바른 쓰임새 가운데 있음을, 즉, 주님을 지성에서 영성으로, 총명에서 지혜로 인도하도록 사용됨을 봅니다. 우리도 거듭남 가운데 있는 동안 주님이 허락셔서 접하게 되는 많은 지식들을 그렇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듭 반복되지만, 주님은 한눈팔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이미 인성과 신성의 결합에 이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 본받아 거룩한 집중, 신성한 몰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매일예배(11/9, AC.6-13, 창1), '창1, 본문 및 개요' (0) | 2021.11.09 |
---|---|
주일예배(11/7, AC.1558-1561,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0) | 2021.11.07 |
매일예배(11/2, AC.1549-1552, 창13: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0) | 2021.11.02 |
매일예배(10/29, AC.1535-1540, 창13), '창13, 내용, 속뜻' (0) | 2021.10.29 |
매일예배(10/27, AC.1498-1502,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0) | 2021.10.27 |
우선 이분들은 크게 주님과 나머지 모두로 양분해야 합니다. 나머지 모든 분은 그저 주님의 빛을 대신 반사, 은은한 달빛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지 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해이십니다. 그러나 해는 직접 보기엔 너무 눈이 부셔서, 주님은 그 빛을 달처럼 대신 반사,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통해, 해처럼 빛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둘은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생전 책 한 권 직접 쓰거나 남기지 않고 가셨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어록이니 책이니 뭘 친히...
이분들은 우리처럼 무슨 종이에 남기시는 대신 사람들의 마음, 심비(心碑)에 새기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접하는 모든 기록은 이분들을 직접 만났던 당대 사람들의 증언에서 나온 것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그래서 이런 책, 이런 기록은 그 무게감이 다르며, 그 감동이 차원이 다릅니다. 법적 용어로는 검사가 작성한 조서(調書)와도 같은 것입니다 ^^
거의 매일 번역의 일과 글 쓰는 일을 하는 저로서는 두 가지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나는, 나도 내 얘기보다는 나를 만나주신 주님 이야기를 하자! 이분들도 자기와 함께 동행하신 주님 이야기로 살다 가신 것처럼, 그래서 주님을 빛반사하는 달로 살다가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다가야지... 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나는 내 실제 삶은 이런데 글에서는 저런 것처럼 거짓의 글은 쓰지 말아야지... 목회자로서 나는 내가 사는 만큼 설교하고, 설교하는 만큼 살아야지... 하게 됩니다.
아! 특히 이 후자는 얼마나 얼마나 어려운지요!!!
오, 주님,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튜브에 올리는 그 동기를 하감(下鑑)하시오며, 스마트폰과 세상 뉴스로부터 물러나서 주야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시선을 고정하는, 맑고 밝은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멘아멘,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주님, 우리 개신교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11/11) (0) | 2021.11.12 |
---|---|
‘말씀(the Word)이란?’ (11/10) (0) | 2021.11.10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11/3, 마7:12) (0) | 2021.11.03 |
‘믿음’과 ‘이름’ (9/27) (0) | 2021.10.22 |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9/22, 창12:8) (0) | 2021.10.21 |
천국의 여러 재미난 특징 중 하나는 천국은 자기의 내면이 열린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데라는 겁니다
이걸 좀 응용하면,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데가 천국이라는 말이지요 ^^
자기 역량만큼만 담을 수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덴데, 우리 주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이셔서 항상 부어주시거든요! 할렐루야!
자기가 아주 조그만 종지이든, 또는 태평양을 다 담을 정도이든 주님은 얼마든지 부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뭐뭐만큼이라는 원리(?)를 삶에 조금 응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좀 생각을 해 보면... 늘 아래와 같은 시선을 갖는 겁니다
지금 이분이 듣고자 하시는 대답, 또는 이 애가 듣고싶어 하는 말이 뭘까?
지금 이분이 원하시는 게, 이 애가 바라는 게 뭘까?
무슨 아첨을 하라는 게 아니지요. 주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면 안 되지요... ^^
지혜롭게, 그리고 살피는 시선을 가지며,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오지랖의 경계를 잘 판단하시고... ^^
지금 저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일까, 이 아이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일까를 살펴 대하라는 것입니다
감당하실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무엇을 하면, 아무 유익도 없거니와 오히려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알리고 전할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자, 이걸 또 역으로 적용하면,
지금 나는 저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 화를 내거나 싸늘해지는 대신,
왜 이런 얘길 주님은 나로 하여금 듣게 하실까? 주님은 왜 나한테 저런 사람을 허락하셨을까? 등등...
또는
주님, 저는 이 모든 일이 주님의 허락하심, 주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는 왜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제게 빛을 비춰 깨닫게 해주셔요
이렇게 매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여쭙는 것이 좋습니다 ^^
만물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이웃 사랑은, 이웃 안에 담겨 있는 주님 닮은 형상, 곧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웃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 곧 이웃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 주님, 이웃으로, 부모자식으로, 선후배, 동료, 상사와 부하 등으로 내게 나타나신 주님께 피조물로서 예의바르게 행하는 것, 더욱 만물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마치 주께 하듯 ‘대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말씀(the Word)이란?’ (11/10) (0) | 2021.11.10 |
---|---|
주님, 프란치스코, 분도 요셉, 이현필, 공용복 및 그밖의 많은 분들의 공통점 (11/4) (0) | 2021.11.04 |
‘믿음’과 ‘이름’ (9/27) (0) | 2021.10.22 |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9/22, 창12:8) (0) | 2021.10.21 |
주님의 어린 시절 그 여정 (9/17, 창12:5) (0) | 2021.10.21 |
1549. 2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Verse 2. And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in silver, and in gold.
‘아브람에게 가축이 풍부하였더라’, 그때 주님에게 풍부하셨던 선(goods)을, ‘은’, 진리(truths)를, ‘금’, 진리로 말미암는 선을 각각 의미합니다.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signifies the goods with which the Lord was then enriched; “in silver” signifies the truths; “and in gold” signifies the goods from truths.
1550. 아브람에게 가축이 풍부하였더라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이것의 의미가 선인 것은 ‘가축’(cattle)과 ‘양 떼’(flock)의 의미가 선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good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ttle,” and of “flock,” as being good (concerning which above, n. 343, 415).
1551. 은이 In silver.
이것의 의미가 진리인 것은 ‘은’의 의미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truth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silver” as being truth.
태고인(太古人)들은 사람에게 있는 선과 진리를 금속에 비유했습니다. 가장 내적, 천적 선은, 이것은 주님 사랑에 속한 선인데, 금(金, gold)에, 이 선으로 말미암는 진리는 은(銀, silver)에, 가장 낮은, 자연적 선은 동(銅, copper)에, 더 낮은 진리는 철(鐵, iron)에, 그들은 그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the goods and truths in man to metals; the inmost or the celestial goods, which are of love to the Lord, to gold; the truths which are from these, to silver; but the lower or natural goods, to copper; and the lower truths, to iron; nor did they simply compare them, but they likewise called them so.
그래서 기간들, 시대들 역시 같은 금속으로 비유되었는데, 각각 황금, 은, 동, 그리고 철 시대라 했습니다. 이 순서는 시대들이 이 순서로 다른 것의 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Hence periods of time were also likened to the same metals, and were called the golden, the silver, the copper, and the iron ages; for the ages followed one another in this order.
황금 시대는 태고 교회 때를 말하는데, 태고 교회는 천적 인간이었습니다. 은 시대는 고대 교회 때를 말하며, 고대 교회는 영적 인간이었습니다. 동 시대는 그 다음 교회 때였으며, 그 다음이 철 시대였습니다. The golden age was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the silver age was the time of the ancient church, which was a spiritual man; the copper age was the time of the succeeding church; and to this succeeded the iron age.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이 본 우상도 유사한 걸 상징하고 있습니다. Similar things are also signified by the statue seen by Nebuchadnezzar in a dream, whose “head was of good gold, the breast and arms of silver, the belly and thighs of brass, the legs of iron” (Dan. 2:32–33).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단2:32-33)
이런 것이 시리즈로 전개되는 거나, 교회의 기간들, 시대들이 이 순서로 서로 이어지는 것이 같은 선지자, 같은 장을 보면 거기에 나옵니다. That this was to be the series, or that the periods of the church succeeded one another in this order, is evident from the same prophet, and in the same chapter.
[2] 말씀에서 ‘은’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속뜻은 진리를, 그 반대는 거짓을 각각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구절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at in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silver,” wherever named, signifies truth, and in the opposite sense falsity,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passages.
이사야에서 In Isaiah: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사60:17) For brass I will bring gold, and for iron I will bring silver, and for wood brass, and for stones iron; I will also make thine officers peace, and thine exactors righteousness; (Isa. 60:17)
이 본문에서 각 금속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where it is evident what each metal means.
거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곧, 주님의 오심과 주님의 천적 나라, 그리고 교회입니다.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자연적 선 대신 천적 선을,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자연적 진리 대신 영적 진리를,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육(肉)적 선(corporeal good) 대신 자연적 선을, ‘철로 돌을’, 감각적 진리(sensuous truth) 대신 자연적 진리를 각각 의미합니다. The Lord’s coming, and his celestial kingdom and church, are there treated of; “gold for brass” is celestial good instead of natural good; “silver for iron” is spiritual truth instead of natural truth; “brass for wood” is natural good instead of corporeal good; “iron for stones” is natural truth instead of sensuous truth.
같은 데서 In the same: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1) Ho, everyone that thirsteth, go ye to the waters; and he that hath no silver; go ye, buy and eat; (Isa. 55:1)
‘돈 없는 자’, 교회 내 많은 사람들처럼, 그리고 교회 밖 나라들처럼 진리에 대해선 무지하지만 체어리티의 선(the good of charity, 이웃 사랑의 선, 즉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he that hath no silver” is he who is in ignorance of truth, and yet in the good of charity, like many within the church, and the nations outside the church.
[3] 이번에도 같은 데서 In the same: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사60:9) The isles shall wait for me, and the ships of Tarshish in the beginning, to bring thy sons from far, their silver and their gold with them, unto the name of Jehovah thy God, and to the holy one of Israel. (Isa. 60:9)
여기서는 새 교회, 특별히는 이방인의 교회를, 보편적으로는 주님의 나라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스의 배들’, 지식을, ‘은’, 진리를, ‘금’, 선을 각각 가리킵니다. 이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Here a new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is treated of specifically, and the Lord’s kingdom universally; “the ships from Tarshish” denote knowledges; “silver,” truths; and “gold,” goods; for these are the things which they shall “bring to the name of Jehovah.”
에스겔에서 In Ezekiel:
네가 또 내가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겔16:17) Thou didst take the vessels of thine adorning of my gold and of my silver, which I had given thee, and madest for thee images of a male. (Ezek. 16:17)
여기 ‘금’은 천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은’은 영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각각 가리킵니다. Here “gold” denotes the knowledges of celestial things; “silver,” those of spiritual things.
같은 데서 In the same: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겔16:13) Thou wast adorned with gold and silver, and thy raiment was fine linen and silk, and broidered work. (Ezek. 16:13)
이는 예루살렘에 관한 내용인데, 예루살렘은 주님의 교회를 상징하며, 그 꾸밈, 단장이 여기 묘사되고 있습니다. This is said of Jerusalem, by which the Lord’s church is signified, and the adornment of which is thus described.
다시 Again:
3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3-4) Behold, thou art wise, there is no secret that they have hidden from thee;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to thy treasures. (Ezek. 28:3–4)
이 본문은 두로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금’은 지혜의 풍부함을, ‘은’은 많은 총명을 가리킴이 명백합니다. This is said of Tyre, and it is plain that here “gold” is the wealth of wisdom, and “silver” the wealth of intelligence.
[4] 요엘에서 In Joel: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욜3:5) Ye have taken my silver and my gold, and have carried into your temples my goodly desirable things. (Joel 3:5)
이 본문은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에 관한 겁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신전으로 옮긴 ‘은과 금’은 지식을 의미합니다. This is said concerning Tyre, Zidon, and Philistia; by which are signified knowledges, which are “the gold and the silver” that they have carried into their temples.
학개에서 In Haggai: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7-9) The choic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the silver is mine, and the gold is mine; the glory of this latter house shall be greater than that of the former; (Hag. 2:7–9)
이 본문은 주님의 교회에 관한 건데, 특별히 ‘금’과 ‘은’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그렇습니다. where the Lord’s church is treated of, concerning which “gold” and “silver” are predicated.
말라기에서 In Malachi: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3:3) He shall sit as a smelt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shall purify the sons of Levi; (Mal. 3:3)
이 본문은 주님의 오심에 관한 본문입니다. where the Lord’s coming is treated of.
다윗의 글에서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12:6) The discourses of Jehovah are pure discourses, silver smelted in a crucible of earth, smelted seven times; (Ps. 12:6)
‘일곱 번 단련한 은’, 신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the “silver purified seven times” denotes Divine truth.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갈 때, 그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관하여 In respect to the command given to the sons of Israel, when they were to go out of Egypt: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3:22); 2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출11:2-3);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12:35-36) Every woman shall borrow of her neighbor, and of her that is a guest in her house, vessels of silver and vessels of gold, and garments; and ye shall put them upon your sons, and upon your daughters, and shall spoil the Egyptians; (Exod. 3:22; 11:2–3; 12:35–36)
이 말씀에 몇 가지 아케이나가 들어 있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훔치고, 취했다는 말을 듣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보면, 아케이나라 할 수 있는 것이, ‘은’, ‘금’ 및 ‘의복’, 그리고 ‘애굽’의 의미이지 싶고, 또 알 수 있는 게, 여기 묘사된 것과 너무나 똑같은 정황이, 아브람이 애굽에서 얻은 은금이 풍부하였다는 오늘 본문에서도 반복되는 걸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everyone can see that the sons of Israel would by no means have been told thus to steal, and to spoil the Egyptians, unless some arcana were thus to be represented; but what the arcana are may be seen from the signification of “silver,” of “gold,” and of “garments,” and of “Egypt”; and it may also be seen that much the same was there represented as is here represented by Abram, who was rich in silver and gold from Egypt.
[5] ‘은’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래서 정반대로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거짓의 사람들은 거짓을 진리라 여기는데, 예언서들을 보면 나옵니다. As “silver” signifies truth, so in the opposite sense it signifies falsity; for they who are in falsity think that falsity is truth; as is also evident in the prophets.
신명기에 In Moses:
25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신7:25-26) Thou shalt not covet the silver and the gold of the nations, nor take it unto thee, lest thou be snared therein; for it is an abomination to Jehovah thy God; detesting thou shalt detest it; (Deut. 7:25–26)
‘그들의 금’은 악을, 그들의 ‘은’은 거짓을 각각 가리킵니다. “the gold of the nations” denotes evils, and their “silver” falsities.
다시 Again: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출20:23) Ye shall not make with me gods of silver, and gods of gold shall ye not make unto you; (Exod. 20:23)
속뜻으로 이 본문은 거짓과 광적 갈망(狂的, yearnings) 말고 다른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은 신상’, 거짓을, ‘금 신상’, 광적 갈망을 각각 의미합니다. by which in the internal sense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falsities and yearnings; “gods of silver” are falsities; and “gods of gold” are yearnings.
이사야에서 In Isaiah: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사31:7) In that day shall they cast away every man his idols of silver and his idols of gold, which your own hands have made unto you for a sin; (Isa. 31:7)
‘은 우상, 금 우상’, 앞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것을, ‘자기 손으로 그들을 만들었다’, 그런 것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각각 의미합니다. “idols of silver and idols of gold” denote similar things as before; “your own hands have made them” means that they are from man’s own.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8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9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렘10:8-9) They are become brutish and foolish; a teaching of vanities is that stock; silver beaten out is brought from Tarshish, and gold from Uphaz, the work of the artificer and of the hands of the founder; blue and crimson are their clothing, it is all the work of the wise; (Jer. 10:8–9)
이 역시 같은 걸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denoting the like things, as is very evident.
1552. 금 And in gold.
이것의 의미가 진리로 말미암는 선이라는 것은 ‘금’의 의미가 천적 선, 혹은 지혜의 선, 사랑의 선임을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방금 막 본 것과, 또 전에 본 것을 보면 말이지요. (AC.113) That this signifies goods from truth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gold” as being celestial good, or the good of wisdom and of love, as is evident from the things just shown, and also from those shown before (n. 113).
여기, 선이 진리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앞 장에서 말씀드린 것, 곧 주님이 지성적 진리들과 천적인 것들을 결합하셨다는 내용에 이어집니다. That the goods here are from truths follows from what was said in the foregoing chapter, that the Lord conjoined intellectual truths with celestial things.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3장 2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속뜻)
어린 시절 주님은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진리로 말미암는 선이 풍부하셨다
※ 비록 어린 시절이었어도 주님은 영적, 천적 목표가 뚜렷, 한눈팔지 않으신 결과,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진리에 따른 선이 풍부하신 것을 보며, 우리도 주님 주신 어떤 영적 목표를 붙들고 망설임 없이, 거침없이 직진, 시간과 세월을 아껴 무슨 쓰임새의 삶을 살다 가야 하겠습니다.
주일예배(11/7, AC.1558-1561,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0) | 2021.11.07 |
---|---|
매일예배(11/5, AC.1553-1557, 창13: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0) | 2021.11.05 |
매일예배(10/29, AC.1535-1540, 창13), '창13, 내용, 속뜻' (0) | 2021.10.29 |
매일예배(10/27, AC.1498-1502,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0) | 2021.10.27 |
매일예배(10/22, AC.1494-1495, 창12: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0) | 2021.10.22 |
모든 것은 창세기, 출애굽기에서 출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천사적 이해, 천국적 지각 가운데 우리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창세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그런데 그에 앞서 선행 학습(?)으로 다루어야 할 중요 주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의 여러 단계(degree, 등급, 레벨, 차원... 등 번역이 좀...)와 그 가운데서 지상의 언어로 기록된 말씀(the Word in the letter)의 위치
말씀의 겉뜻과 속뜻
영계의 구조
삼위일체
등등... 이 외에도 무척 많으나 다른 다양한 주제는 별도 이야기로 다른 요일에 다루기로 하고요, 오늘은 위 첫 번째만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16:10) 말씀에 대한 주석 ‘아케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는 하나가 아닌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데, 이것은 천사들의 이해(angelic understanding)조차 초월합니다. 세 번째인 신적 진리(truth Divine) 3등급은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 진리이며, 그러나 사람은 그 추호(秋毫)도 도저히 이해불가한 진리입니다. 네 번째인 4등급은 중간 천국, 곧 이층천 진리이며, 이 역시 사람에겐 이해불가입니다. 주님의 진리 다섯 번째, 5등급 진리는 가장 바깥 천국, 곧 일층천 진리이며, 이것은 몇몇 빛을 받은 사람들이 살짝 지각할 수는 있는 그런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불가인데, 혹시라도 어떤 영감으로 떠오르게 되면, ‘아, 그런 거구나!’ 지각하여 믿게 되는 그런 천재성이 나오게 됩니다. 끝으로, 여섯 번째인 6등급 신적 진리는, 이것이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적합한 진리이며, 그래서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AC.8443)
창세기 이야기 시작에 앞서 이런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먼저 살피는 이유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의 진리의 그 광대함과 깊이, 그리고 인간의 미천함의 현주소... 등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좀 먼저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 같아선 정말 처음부터 우리에게 천사들의 수준으로 진리를 부어주고 싶으셨겠지만 우리의 내면이 닫히고, 우리의 그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너무나도 정말 아니어서 할 수 없이 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 지상의 글자를 빌려 말씀을 기록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인간은 계속 주님과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네, 뭐, 하여튼 앞으로 이렇게 매주 월요 오후는 창세기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 그리고 부언하여 말씀드리면, 여기 제가 말씀드리는 거의 모든 문장은 사실은 ‘...라고 합니다. 하더군요. 라고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등으로 끝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계시를 받거나 경험한 게 아니기 때문이며, 아주 살짝, 아주 조금, 혹시 도움되실까 저 나름의 해석을 붙여 풀이를 보태는 경우들이 있기는 할 겁니다만 저 역시 그저 옮기는 수준입니다. 이 옮기는 것 조차도 아주 떨림의 연속이지만요... ^^
주께서 내내 천국의 빛 비춰 주셔서 이 이야기들을 접할 때, 심령이 환하여지며, 닫혔던 내면이 열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이야기(#6, 12/6, 창1:2-5, AC.17-23), ‘첫째 날, 거듭남이 시작되는 첫 번째 상태’ (0) | 2021.12.06 |
---|---|
창세기 이야기(#5, 11/29, 창1:1, AC.16),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0) | 2021.11.29 |
창세기 이야기(#4, 11/22), '말씀(the Word) 서술의 네 가지 서로 다른 스타일' (2) | 2021.11.22 |
창세기 이야기(#3, 11/15, 창1, AC.6-15), '창1 천지창조 이야기는 사람의 거듭남에 관한 이야기' (0) | 2021.11.15 |
창세기 이야기(#2, 11/8, AC.1-5), ‘내적 시야(internal sight)를 회복하려면?’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