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10.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10:6) and swore by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who created heaven,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earth, and the things in it, and the sea, and the things in it, that time shall be no longer (Rev. 10: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동시에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심을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그 생명의 근원이 바로 창조주이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직접 연결해 줍니다.

 

이 구절은 힘센 천사가 한 발은 바다를, 한 발은 땅을 밟고 서서 엄숙하게 맹세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를 가리켜 맹세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최고의 권위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표현에 주목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라는 말씀도 AC.290의 논리를 더욱 확증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창조란 단지 태초에 우주를 한 번 만드신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지금도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유입이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춘다면, 천사도 사람도, 더 나아가 모든 존재도 계속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생명의 근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분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여러 말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였고, 다니엘에서는 영생하시는 이’라고 하였으며,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서는 하늘의 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 경배합니다. 그리고 계10:6에서는 그 살아 계시는 분이 곧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연속된 증언을 통하여 성경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 구절은 생명과 창조를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창조주께서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창조가 가능하며, 창조된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에 존재를 계속 유지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도 자기 안에 독립적인 생명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본문 마지막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개역개정) 또는 Potts that time shall be no longer’는 AC.290에서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논증하려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는 이 구절을 시간의 종말이나 종말론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나오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와 창조하신 이’라는 두 표현을 근거로, 생명의 근원과 창조의 근원이 동일한 주님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계10:6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만 소개하지 않고,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 곧 생명 자체이시며, 동시에 하늘과 땅과 바다의 창조주로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AC.290의 핵심 교리인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성경 자체의 증언으로 확증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AC.290, 심화 11, ‘시36:9’

AC.290.심화 11.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36:9) For with Thee is the spring of lives; In Thy light shall we see light (Ps. 36:9).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bygrace.kr

 

AC.290, 심화 9,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AC.290.심화 9. ‘위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및 이와 관련, 스베덴보리의 AC 작업 전반’ 계5:14의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Potts 역이 다른 이유,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KJV를 사용했나? 계5:14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9. ‘위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및 이와 관련, 스베덴보리의 AC 작업 전반

 

5:14의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Potts 역이 다른 이유,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KJV를 사용했나?

 

 

5:14를 보면 개역개정은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면 KJV는 ‘And the four beasts said, Amen.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and worshipped him that liveth for ever and ever.’라고 하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차이가 단순히 번역 방식의 차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용한 성경 사본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KJV 16세기의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을 바탕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계5:14의 마지막에 ‘him that liveth for ever and ever’라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을 비롯하여 NIV, ESV, NASB 등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오늘날의 비평본문(Nestle-Aland, UBS 계열)을 따르므로, 이 문구를 본문에서 제외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까지만 번역합니다. 현대 본문비평에서는 이 문장이 계4:10의 동일한 표현이 후대 필사 과정에서 반복되어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두 본문을 영어로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4:10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 경배하고...’라는 표현이 나오고, 공인본문 계5:14에도 거의 동일하게 ‘장로들은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 경배하더라’가 나타납니다. 이런 반복 때문에 현대 비평본문은 계5:14의 해당 부분을 원래 본문이 아니라 후대의 첨가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AC.290에서 우리가 읽는 영어는 KJV와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Potts 번역은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라고 되어 있는데, KJV는 ‘him that liveth for ever and ever’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면 스베덴보리가 KJV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천국의 비밀』의 원문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Arcana Coelestia』는 애초에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저술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Potts판은 John Faulkner Potts 19세기에 그 라틴어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John Clowes의 번역(1774~1806)  John Faulkner Potts가 전면 개정, 편집한 것이지요. 따라서 Potts의 영어 표현은 스베덴보리 자신의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를 영어로 옮긴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 원문에는 ‘vivit in saecula saeculorum’과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Potts는 이를 비교적 직역에 가깝게 ‘lives for ages of ages’라고 옮겼고, KJV는 영어의 전통적인 성경 표현을 따라 ‘liveth for ever and ever’라고 번역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상으로는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Potts KJV와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스베덴보리가 KJV를 부정하거나 다른 신학적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의 성경 사용 방식도 단순히 ‘KJV를 사용했다’는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직접 읽을 수 있었고, 평생 성경 원문을 연구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거나 헬라어 표현을 근거로 논증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실제 연구의 중심에는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신약, 그리고 라틴어 성경이 있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스베덴보리는 성경을 인용할 때 반드시 어느 한 번역본만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히브리어의 의미를 직접 반영하고, 어떤 곳에서는 라틴어 성경(Vulgata)의 표현을 따르며, 또 어떤 곳에서는 기존 번역본과는 다른 어순이나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번역을 임의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 ‘스베덴보리가 자신만의 성경을 새로 만들어 그것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완성된 독립적인 ‘스베덴보리 성경’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히브리어 원문, 헬라어 원문, 라틴어 성경, 그리고 당시 사용되던 여러 번역본을 서로 대조하면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여 인용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앞으로 AC를 번역할 때, 가장 적절한 원칙도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4판을 기본으로 삼되, 스베덴보리의 논증이 특정 단어 하나에 의존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라틴어 원문과 Potts의 영어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개역개정과 KJV 또는 Potts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그 차이가 AC의 해설에 실제 영향을 미칠 때만 간결하게 설명을 덧붙이면 됩니다.

 

 

 

AC.290, 심화 10, ‘계10:6’

AC.290.심화 10. ‘계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bygrace.kr

 

AC.290, 심화 8, ‘계5:14’

AC.290.심화 8. ‘계5: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5:14) And the four animals said, Amen. And the twenty four elders fell down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Rev. 5:14). 스베덴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11, ‘시36:9’  (0) 2026.07.17
AC.290, 심화 10, ‘계10:6’  (0) 2026.07.17
AC.290, 심화 8, ‘계5:14’  (0) 2026.07.17
AC.290, 심화 7, ‘계4:10’  (0) 2026.07.17
AC.290, 심화 6, ‘단4:34’  (1) 2026.07.17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8. ‘5: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5:14) And the four animals said, Amen. And the twenty four elders fell down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Rev. 5:14).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반복되는 이 표현을 인용,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계4:10과 매우 비슷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계4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 드리는 경배를 보여 준다면, 5은 두루마리를 받으신 어린양께 모든 천상 세계가 경배하는 절정의 장면입니다. 그 마지막에서 네 생물은 아멘’이라고 화답하고, 이십사 장로들은 다시 엎드려 영어 성경에 따르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께 경배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반복을 통하여, 하늘 전체가 주님을 생명 자체이신 분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주님께서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시간을 무한히 살아가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누구에게서도 생명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오직 주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또한 네 생물이 아멘’이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멘’은 단순한 응답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와 생명이 참되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이어서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하늘의 모든 지혜와 모든 영광이 자기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아멘’과 경배’는 모두 생명 자체이신 주님을 인정하는 천국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장면은 AC.290의 핵심 사상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천사들은 결코 자기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과 지혜, 기쁨과 행복, 그리고 생명 자체가 모두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오직 그분만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로 경배합니다.

 

4:10과 계5:14를 함께 인용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같은 표현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예배와 찬양의 중심이 언제나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반복을 통하여, 말씀 전체가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계5:14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하늘의 모든 존재가 오직 주님만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로 경배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AC.290의 핵심 교리를 천국의 예배 장면을 통하여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참된 신앙이란 주님께 생명을 달라고 구하는 것에 앞서, 지금도 내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흘러오고 있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AC.290, 심화 9,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AC.290.심화 9. ‘위 계5:14 한글과 영어가 좀 다른 이유 및 이와 관련, 스베덴보리의 AC 작업 전반’ 계5:14의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Potts 역이 다른 이유,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KJV를 사용했나? 계5:14

bygrace.kr

 

AC.290, 심화 7, ‘계4:10’

AC.290.심화 7.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계4:10) the twenty and four elders fell down before Him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7.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계4:10) the twenty and four elders fell down before Him who sat on the throne,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and cast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saying (Rev. 4:10),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천사와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그 진리를 하늘의 예배 장면을 통하여 증언하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4은 하늘 보좌의 광경을 보여 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에서 이십사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며, 그분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고 찬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살아 계시는 이’는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오직 주님께만 적용됩니다.

 

특히 장로들이 자기들의 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는 모습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관은 왕권과 영광을 상징하지만, 장로들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이는 천사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사랑, 그리고 행복이 자기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생명뿐 아니라 생명에서 나오는 모든 선과 진리, 그리고 영광도 오직 주님께 속한다는 고백입니다.

 

이 장면은 AC.290의 중심 사상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이나 천사가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고 거듭 말합니다. 천국 천사들조차도 자신들의 생명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장로들이 관을 내려놓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천국 상태를 상징합니다.

 

또한 경배한다’는 것도 단순히 예배 의식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주님만이 생명 자체시며, 자신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임을 마음 깊이 인정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참된 경배는 입술의 찬양보다도,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인용된 렘5:2 살아 계신 여호와’, 4:34 영생하시는 이’와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예언서에서는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고, 다니엘에서는 영생하시는 이’라고 하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라고 합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곧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계4:10을 인용하는 이유는, 천국 천사들까지도 오직 주님만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로 경배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사람이나 천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하늘의 증언입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한 것도 그 교회 자체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AC.290, 심화 8, ‘계5:14’

AC.290.심화 8. ‘계5: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5:14) And the four animals said, Amen. And the twenty four elders fell down and worshiped Him who lives for ages of ages (Rev. 5:14). 스베덴

bygrace.kr

 

AC.290, 심화 6, ‘단4:34’

AC.290.심화 6. ‘단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6.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4:34) And at the end of the days I, Nebuchadnezzar, lifted up my eyes to the heavens, and my knowledge returned to me, and I blessed the Most High and I praised and honored Him who lives to eternity, whose dominion is an eternal dominion, and His kingdom is with generation and generation (Dan.4:34);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을 ‘영생하시는 이(Him who lives to eternity)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은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진리를 증언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교만 때문에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살다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총명을 회복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세와 영광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된 후 비로소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특히 주목하는 표현은 ‘영생하시는 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주님께서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생명을 오래 유지하시는 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명 자체이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따라서 ‘영생하시는 이’라는 이름은 사람이나 천사에게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오직 주님께만 속하는 이름입니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는 말씀도 AC.290의 내용과 깊이 연결됩니다. 그의 총명이 회복된 것은 단순히 정신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생명과 권세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는 생명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깨닫는 상태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그 후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권세와 주님의 권세를 대조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권세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주님의 생명과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생명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 있지 않고, 영생하시는 주님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계속 이어지는 ‘살아 계신 여호와’, ‘생명의 원천’, ‘생수의 근원’이라는 표현들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말씀이 주님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모두 하나입니다. 곧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시며, 천사와 사람은 모두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단4:34를 인용하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의 회개 자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을 ‘영생하시는 이’라고 고백한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며, 모든 생명과 모든 권세는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AC.290의 핵심 사상을 성경적으로 확증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AC.290, 심화 7, ‘계4:10’

AC.290.심화 7.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계4:10) the twenty and four elders fell down before Him

bygrace.kr

 

AC.290, 심화 5, ‘겔5:11’

AC.290.심화 5. ‘겔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8, ‘계5:14’  (0) 2026.07.17
AC.290, 심화 7, ‘계4:10’  (0) 2026.07.17
AC.290, 심화 5, ‘겔5:11’  (0) 2026.07.17
AC.290, 심화 4, ‘렘23:7’  (0) 2026.07.16
AC.290, 심화 3, ‘렘16:14-15’  (0)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5. ‘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겔5:11) Therefore, as I live, says the Lord Jehovih, shall it not be, because thou hast defiled My sanctuary with all thy detestable things, and with all thine abominations, that even I shall diminish thee; and My eye shall not spare, and even I will not have pity (Ezek. 5:11).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두고 말씀하시는 표현이 나오며, 이를 통해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어의 as I live’는 개역개정의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에 해당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단지 살아 계시는 한 존재가 아니라 생명 자체(Life Itself)시라고 설명합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누구에게서도 생명을 받지 않으십니다.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오므로, 주님께서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생명 자체의 권위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예루살렘과 성소(sanctuary)의 모독에 대한 심판입니다. 백성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주된 목적은 성소의 모독이나 예루살렘의 심판을 자세히 해설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구절 가운데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표현에 주목, 말씀이 주님께만 고유한 생명을 증언한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구절의 문맥은 AC.290의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성소의 모독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일이 곧 생명의 근원을 거부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성소는 주님의 선과 진리가 있어야 할 곳인데, 그 자리를 악과 거짓으로 채우면 사람과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의 연결을 스스로 끊게 됩니다.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라는 말씀도 주님께서 자비를 잃으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끝까지 거부하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보호와 생명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영적으로 약해지고 황폐해집니다. 마치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생명의 유입을 스스로 막은 것, 즉 자초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앞서 인용한 렘5:2, 12:16, 16:14-15, 23:7과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 표현이 나왔고, 5:11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표현은 생명이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주님의 생명이 모든 신적 말씀과 심판, 그리고 구원의 근원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겔5:11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스스로 살아 계시며, 생명 자체시라는 사실을 말씀 자체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과 천국, 그리고 교회가 살아 있는 것은 그들 자체에 생명의 근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연결 안에 있는 사람은 산 자’가 되지만, 거룩한 것을 더럽히고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어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AC.290, 심화 6, ‘단4:34’

AC.290.심화 6. ‘단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

bygrace.kr

 

AC.290, 심화 4, ‘렘23:7’

AC.290.심화 4. ‘렘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렘23:7) Therefore, beh

bygracetistory.tistory.com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7, ‘계4:10’  (0) 2026.07.17
AC.290, 심화 6, ‘단4:34’  (1) 2026.07.17
AC.290, 심화 4, ‘렘23:7’  (0) 2026.07.16
AC.290, 심화 3, ‘렘16:14-15’  (0) 2026.07.16
AC.290, 심화 2, ‘렘12:16’  (1)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4. ‘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23:7)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they shall no more say,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Jer. 23:7);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명이 오직 그분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여호와의 사심으로’라는 표현이 바로 영어 본문의 Jehovah lives’,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에 해당합니다.

 

23:7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렘16:14와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본문 모두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였으나, 장차 주님께서 더 크고 새로운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지 과거의 출애굽을 회상하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시대마다 자기 백성을 속박에서 건져 내시고,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표현은 단순히 여호와께서 존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십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는 고백은 모든 생명과 구원, 그리고 회복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만 짧게 인용하였지만, 그 의미는 이어지는 렘23:8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그들이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다시 그들의 땅에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는 흩어진 백성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내적 의미로는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졌던 사람을 다시 모아 선과 진리의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구원 역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살아 계신다’는 것은 정지된 속성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하고 회복시키시는 신적 활동과 연결됩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사람을 단지 존재하게 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깨우시며, 악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고, 선과 진리 안에서 다시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라는 사실은 이처럼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역사 속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출애굽과 포로에서의 귀환은 모두 거듭남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애굽 땅’은 사람이 자연적 지식과 외적인 것에 매여 있는 상태와 관련되고, 흩어졌던 여러 나라에서 돌아오는 것은 악과 거짓으로 분산되었던 생각과 애정이 주님의 질서 아래 다시 모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모든 회복을 이루시는 분이 살아 계신 여호와’이시므로,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아납니다.

 

이 구절은 렘5:2와도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룹니다. 5:2에서는 사람들이 입으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짓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렘23:7-8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께서 실제로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참된 고백은 단지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생명 자체이신 주님의 구원을 받아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실 뿐 아니라,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진 사람을 다시 모으고 영적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교회 자체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계신 여호와, 곧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AC.290, 심화 5, ‘겔5:11’

AC.290.심화 5. ‘겔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bygrace.kr

 

AC.290, 심화 3, ‘렘16:14-15’

AC.290.심화 3. ‘렘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6, ‘단4:34’  (1) 2026.07.17
AC.290, 심화 5, ‘겔5:11’  (0) 2026.07.17
AC.290, 심화 3, ‘렘16:14-15’  (0) 2026.07.16
AC.290, 심화 2, ‘렘12:16’  (1) 2026.07.16
AC.290, 심화 1, ‘렘5:2’  (0)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3. ‘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6:14, 15)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it shall no more be said,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but,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from the land of the north, and from all the lands whither He had compelled them; and I will return them onto their ground that I gave unto their fathers (Jer. 16:14-1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구절은 그 진리를 더욱 깊은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장차 그보다 더 큰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며, 백성은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역사적으로는 포로에서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을 악과 거짓의 모든 속박에서 건져 내시는 더 큰 구원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역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이라는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도, 포로 된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도 동일한 ‘살아 계신 여호와’이십니다. 다시 말해, 시대와 사건은 달라져도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이것이 AC.290의 중심 사상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단순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애굽에서의 구원은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북방 땅과 여러 나라에서의 귀환은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다가 주님에 의해 다시 신앙과 생명의 상태로 인도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특히 ‘북방’은 말씀에서 진리의 빛이 희미해진 상태나 영적 어둠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다시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는 본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와 생명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이 구절은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이름과 함께, 그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실제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따라서 생명은 단순히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끊임없이 악에서 선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16:14-15를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사람을 모든 영적 속박에서 구원하여 참된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290에서 말하는 ‘(living)은 단순히 존재를 유지하는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고, 당신께로 이끄시는 구원의 생명인 것입니다.

 

 

 

AC.290, 심화 4, ‘렘23:7’

AC.290.심화 4. ‘렘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렘23:7) Therefore, beh

bygracetistory.tistory.com

 

AC.290, 심화 2, ‘렘12:16’

AC.290.심화 2. ‘렘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5, ‘겔5:11’  (0) 2026.07.17
AC.290, 심화 4, ‘렘23:7’  (0) 2026.07.16
AC.290, 심화 2, ‘렘12:16’  (1) 2026.07.16
AC.290, 심화 1, ‘렘5:2’  (0) 2026.07.16
AC.290, 창3:20, ‘산’(living)  (0)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2. ‘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2:16) And it shall be, if learning they shall learn the ways of My people, to promise by My name, Living Jehovah, as they taught My people to promise by Baal, then shall they be built in the midst of My people (Jer. 12:1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이 살아 계신 여호와’로 불리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것이며, 이 구절은 그 사실을 잘 뒷받침하는 성경적 증거입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내 백성의 도’를 배우고, 더 이상 바알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한다면, 그들도 주님의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방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 주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맹세의 관용구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생명이 바알이나 다른 어떤 존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반대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는 거짓 신을 숭배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의 근원을 주님이 아닌 다른 데서 찾는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힘, 거짓된 교리, 또는 어떤 피조물을 생명의 근원처럼 의지할 때,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바알을 따르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또한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라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입으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 말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주님의 도를 배우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며, 그 결과로 살아 있는 여호와’를 고백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살아 있는 신앙이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임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90에 인용합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 자체를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곧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모든 참된 생명이 오직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12:16 AC.290의 핵심 사상을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도 되고, 죽은 사람도 됩니다. 주님을 생명 자체이신 살아 계신 여호와’로 인정하고 그분의 길을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된 생명 안에 거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밝히기 위하여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90, 심화 3, ‘렘16:14-15’

AC.290.심화 3. ‘렘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bygrace.kr

 

AC.290, 심화 1, ‘렘5:2’

AC.290.심화 1. ‘렘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렘5:2) And though they say, Jehovah lives; still they promise falsely (Jer. 5: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4, ‘렘23:7’  (0) 2026.07.16
AC.290, 심화 3, ‘렘16:14-15’  (0) 2026.07.16
AC.290, 심화 1, ‘렘5:2’  (0) 2026.07.16
AC.290, 창3:20, ‘산’(living)  (0) 2026.07.16
AC.289, 심화 4, ‘겔19:10’  (0)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0.심화

 

1.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5:2) And though they say, Jehovah lives; still they promise falsely (Jer. 5: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참으로 살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앞에서 생명은 오직 하나이며, 그 생명은 주님으로부터만 나온다고 설명한 뒤, 말씀이 실제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 계신’이라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단순히 존재하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시며, 모든 천사와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생명이 오직 그 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문맥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성은 입으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살아 계신 여호와’를 입술로는 인정하면서도 삶으로는 그분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고백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AC.290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생명은 단순히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 안에 역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아무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 말해도, 주님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또한 살아 있는 신앙과 죽은 신앙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신앙입니다. 반대로 죽은 신앙은 입술의 고백은 있지만,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상태를 거짓 맹세’라는 말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예레미야 시대의 죄악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말씀에서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 생명은 참된 신앙 안에서만 역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2 AC.290의 핵심 주제를 잘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입술로 주님을 고백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 실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하며, 그분 안에 있는 사람만을 참된 의미에서 산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AC.290, 심화 2, ‘렘12:16’

AC.290.심화 2. ‘렘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

bygrace.kr

 

AC.290, 창3:20, ‘산’(living)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90 교회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mother of all living)라고 하는 것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3'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290, 심화 3, ‘렘16:14-15’  (0) 2026.07.16
AC.290, 심화 2, ‘렘12:16’  (1) 2026.07.16
AC.290, 창3:20, ‘산’(living)  (0) 2026.07.16
AC.289, 심화 4, ‘겔19:10’  (0) 2026.07.16
AC.289, 심화 3, ‘겔16:45’  (0) 2026.07.16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