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atAsshur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은 레바논의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하며, 굵은 가지들 사이에 있는 가지(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cedar in Lebanon”; the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구절과 밖의 여러 구절에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앗수르(Asshur) 이성을, 이스라엘(Israel) 지성을 의미합니다. ByEgypt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Asshurreason, and byIsraelintelligence.

 

해설

AC.119는 앞의 AC.118에서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에스겔과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AC.118에서는 힛데겔강이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의 두 인용은 바로 그 가운데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먼저 겔31:3-4에서는 앗수르를 크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레바논 백향목이 이성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가지들과 관련된 표현은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인용에서 백향목과 그 가지들은 단순한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이성과 그것에 속하여 있는 앎들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특히 물과 깊은 물과 강들이 그 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묘사는 앞에서 강과 물이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의미는 사19:23-25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말씀에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등장하며, 서로 왕래하고 함께 여호와를 섬기며 마침내 셋이 함께 복이 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이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애굽은 기억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앗수르 하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구별된다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이 점은 최근 여러 번호에서 계속 나타난 용어의 구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AC.111에서는 기억지식을 곧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여기는 겉 사람의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AC.116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한다고 했고, AC.117에서는 애굽이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이 앎을 의미한다고 구별했습니다. 이제 AC.119에서는 애굽의 기억지식과 앗수르의 이성과 이스라엘의 지성이 다시 구별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기억지식, , 이성, 지성은 서로 바꾸어 써도 되는 비슷한 말들이 아니라 각각의 자리를 가진 개념들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19장의 인용 이유는 단순히 앗수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사이에 길이 열리고 서로 오가며 함께 섬긴다는 전체 장면 속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관계를 맺는 질서가 표현됩니다. 이성은 기억지식과 단절되어 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지성 역시 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구별되면서도 올바른 질서 안에서는 함께 작용하고, 그 전체가 여호와께 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AC.118에서 유브라데, 곧 기억지식을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기억지식의 무가치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확인해 줍니다. 19장에서 애굽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고 백성 애굽이라고까지 불리며 앗수르와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성과 지성과 어떤 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인 앎과 이성적 능력이 올바른 질서 안에 있을 때 그것들도 전체적인 영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119에서 에스겔과 이사야가 인용된 이유는 충분히 분명합니다. 에스겔은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성과 그에 속한 것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사야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함께 놓음으로써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과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118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천적 인간 안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제자리를 얻어 질서 있게 관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AC.119)

 

 

 

AC.120, 창2:14, ‘유브라데 -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애굽’(Egypt)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도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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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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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2:14)

 

AC.118

힛데겔강(river Hiddekel)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합니다.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입니다. Theriver Hiddekel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is the rational mind; the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AC.118은 셋째 강 힛데겔과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설명하면서 에덴에서 나온 네 강의 구조를 거의 완성합니다. 힛데겔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앞의 두 강이 의지와 이해에 관계했다면, 이제 셋째와 넷째 강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까지 나타나면서 천적 인간 안에 있는 것들이 더욱 바깥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에 대한 설명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힛데겔은 이성이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각각의 의미보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성의 참된 명철함은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은 AC.115에서 처음 분명하게 등장한 유입의 설명을 한층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유입의 근원과 통로와 도착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이성이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99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질서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주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AC.118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이성적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거듭남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근원에서 생명을 받아야 할 겉 사람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기억지식을 부정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다시 보여 줍니다. 기억지식이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묘사되는 질서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같은 겉 사람의 능력에 이르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가장 바깥 경계에 놓입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장 바깥의 것을 근원으로 삼아 위의 질서를 거꾸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18AC.80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천적 인간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지식은 분명히 전체 질서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마음 역시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명철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성과 기억지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질서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속 사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118은 네 강에 관한 설명 가운데서도 유입의 방향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번호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적 마음과 기억지식이 실제로 있지만, 참된 명철함의 근원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의 강들은 천적 인간 안에 있는 여러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질서를 이루며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C.118)

 

 

 

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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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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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2:13)

 

AC.117

더욱이 구스 (land of Cush),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하며,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것은 위의 AC.113에서 인용한 60:6, 2:1, 11, 72:15 구절들에서도 분명합니다. Theland of Cush,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1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말씀에서 구스(Cush), 에티오피아(Ethiopia) 또한 스바(Sheba) 이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도 분명합니다. 스바냐에서는 구스의 강들(rivers of Cush) 언급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CushorEthiopia,and also bySheba,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rivers of Cushare mentioned:

 

5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다니엘에서는 북방 왕과 남방 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Ethiopians) 앎을 의미합니다. whereEgypt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Ethiopians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다음과 같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들도 마찬가지로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에 관하여, 따라서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하는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말씀은 앞뒤 구절과의 연결을 통해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어려운 질문들을 하고 향품과 금과 보석을 가져온 스바 여왕도 이와 같은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왕상10:1-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매 (왕상10:1, 2)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은 선지서들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안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해설

AC.117은 앞의 AC.116에서 구스 땅과 둘째 강 기혼에 부여한 의미를 말씀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확인합니다. AC.116에서 기혼은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의미했고, 구스 땅은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구스, 에티오피아, 스바가 등장하는 여러 말씀을 모아, 이 지명들이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과 관계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먼저 구스 땅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앞의 AC.113에서 금은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AC.114에서는 보석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향품은 선과 진리에서 나와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한 구스라는 자연적인 모습은 속뜻에서는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 풍부한 상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AC.116에서 구스와 기혼을 이해에 속한 앎과 연결한 배경입니다.

 

스바냐의 구스 건너편에서 예물을 가져온다는 말씀과 다니엘의 구스 사람들에 관한 말씀도 같은 흐름에서 인용됩니다. 특히 단11:43에 대한 해설은 주목할 만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애굽은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은 앎을 의미한다고 명시합니다. 이 둘을 같은 한국어로 옮겨 버리면 이 문장에서 의도한 차이가 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별해 온 기억지식은 단순한 번역상의 선택이 아니라,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스베덴보리의 서로 다른 개념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구별입니다.

 

27:22의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향품과 보석과 금을 가져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들이 마찬가지로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자연적인 부와 영적인 부가 서로 연결됩니다. 금과 보석과 향품이라는 귀중한 물품 자체가 속뜻의 목적은 아니며, 그것들을 통하여 선과 진리,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라는 천국의 부요가 표현됩니다. AC.117의 첫머리에서 말한 금과 보석과 향품의 풍부함이 이런 의미에서 이해됩니다.

 

72의 스바와 시바 왕들이 가져오는 예물도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 여왕의 이야기까지 연결합니다. 스바 여왕은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솔로몬에게 와서 향품과 금과 보석을 가져왔습니다. 이것 역시 단순히 한 여왕이 지혜로운 왕을 방문하여 귀중한 선물을 바친 역사적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들과 같은 영적인 내용을 의미하고 표상합니다.

 

AC.117의 마지막 문장은 이 때문에 특별히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도 선지서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에덴과 네 강, 하윌라와 구스 같은 지명들을 속뜻으로 읽는 것은 선지서의 시적 표현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해석법을 역사적 본문에 억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의 역사적 기록 자체가 그 문자적 이야기 안에 내적인 것들을 의미하고 표상하며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역사적 부분의 문자적 의미가 아무 중요성도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117에서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부분에도 아르카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적 서술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영적인 의미를 함께 보게 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창2의 강과 땅과 금과 보석을 읽고 있는 방식 자체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결국 AC.117은 둘째 강 기혼과 구스에 관한 설명을 넘어, 말씀의 속뜻을 읽는 범위를 분명하게 해 줍니다. 구스와 스바, 금과 보석과 향품은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이라는 내적 내용을 담아 표현하며, 그러한 의미는 선지서뿐 아니라 말씀의 역사적 기록에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혼과 구스에 관한 창2의 짧은 지리적 묘사도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이해에 속한 앎을 묘사하는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AC.117)

 

 

 

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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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6, 창2:13, ‘둘째 강 기혼 -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한다’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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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2:13)

 

AC.116

둘째 (second river), 기혼(Gihon)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의미하고, 구스 (land of Cush)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하는데,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합니다. Thesecond river,which is calledGihon,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land of Cush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AC.116은 네 강 가운데 둘째 강인 기혼을 설명하면서, 앞의 첫째 강 비손과 뚜렷한 대응 관계를 보여 줍니다. 기혼은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을 의미하고, 구스 땅은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이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히고, 첫째 강에 관한 것은 의지에,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비손과 기혼은 단순히 네 강 가운데 앞의 두 강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의지와 이해에 관계하여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의 AC.111에서 나온 설명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많은 사람이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의지와 이해는 서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16에서는 그 구별이 창2의 두 강에 적용됩니다.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마음을 이루는 의지와 이해는 서로 구별되며, 첫째 강에 관한 내용은 의지에, 둘째 강에 관한 내용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첫째 강 비손이 의지에 관계한다는 것은 앞의 설명을 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을 의미했고, 하윌라 땅에는 선을 의미하는 금과 진리를 의미하는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었습니다. 이어 AC.115에서는 금이 호마노를 두르는 것이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이 첫째 강에 관한 전체 설명이 의지에 관계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따라서 앞에서 사랑과 선이 계속 중심에 놓였던 이유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반면 둘째 강 기혼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그 이유도 본문 자체에서 곧바로 설명됩니다.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앞의 AC.111에서는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부르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기혼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라기보다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아는 것이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이해에 속한 것으로 놓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의지와 이해를 서로 분리된 두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명시합니다. 하나의 마음 안에서 의지에 속한 것과 이해에 속한 것이 구별되며, 비손과 기혼은 그 서로 다른 측면을 묘사합니다. 따라서 첫째 강과 둘째 강의 차이는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고 다른 하나가 덜 중요하다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한 천적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서로 구별되는 질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AC.116은 앞에서 남겨 두었던 질문 하나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AC.110에서는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구별했지만 그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첫째 강 전체가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은 이해에 관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베덴보리가 왜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를 세밀하게 구별하면서도 하나의 마음 안에서 설명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 관계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확정하기보다는 뒤의 두 강에 관한 설명까지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16에서 둘째 강 기혼은 천적 인간에게 있는 이해의 측면을 보여 줍니다. 그 이해에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에 대한 앎이 있습니다. 첫째 강이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이 이해에 관계하지만, 둘은 서로 떨어진 별개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을 이룹니다. AC.111에서 제시된 서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면서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원리가 이제 에덴의 강들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AC.116)

 

 

 

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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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하윌라 땅과 비손 -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태고인들이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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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5

태고인들이 땅들(lands) 관하여 말할 그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나안 땅과 시온산이 천국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장소들이 언급될 어떤 땅이나 산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하윌라 (land of Havilah) 마찬가지입니다. 하윌라는 25:18에도 다시 언급되는데, 거기서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관하여 그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애굽 술까지 거주했다(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합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lands,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land of Havilah,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술까지 이르러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25:18)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외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손강이 하윌라 땅을 두른다(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두른다(compass) 말로 그들은 유입을 지각합니다. 또한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를 금테로 둘렀을 때에도 (28:11),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야 함을 지각합니다. 이와 같은 예가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보석에 새겨 테에 물리고 (28:11)

 

해설

AC.115AC.110에서 하윌라 이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태고인들이 땅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는 단순히 지리적인 장소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나안 땅과 시온산을 예로 듭니다. 그것들이 천국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들을 때 자연적인 땅이나 산 자체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천국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윌라 땅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108에서 태고인들이 사람을 동산에,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을 강들에 비유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 내용과 이어집니다. 태고인들에게 자연계의 사물과 장소는 영적인 실재와 단절된 이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윌라라는 지명을 접할 때에도 자연계의 특정 지역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내적인 것을 지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다시 창25:18의 하윌라를 인용하여 같은 지명이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창25:18의 하윌라와 술, 애굽과 앗수르에 관한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지각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AC.115에서는 그 지명 하나하나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하윌라에서 술까지의 지리적 배열 전체에 의미를 하나씩 배정하기보다, 이러한 지명들이 천국적인 관념에서는 지성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들에 관한 말씀으로 지각된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어 설명의 초점은 비손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표현으로 옮겨 갑니다. 천국적인 관념 안에서는 이 두름을 단순히 강이 어떤 지역의 둘레를 흐르는 모습으로만 지각하지 않고 유입으로 지각한다고 합니다. 앞의 AC.107에서 에덴에서 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 강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강이 땅을 두른다는 표현에서도 무엇인가가 다른 것 안으로 흘러들어 생명을 주는 질서가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유입을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를 둘러싼 금테와 연결합니다. 앞의 AC.113에서는 금이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고 했고, AC.114에서는 보석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금이 호마노를 두르고 있다는 것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과 진리가 나란히 놓여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유입된다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천적 인간의 질서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신앙의 진리는 사랑과 떨어져 스스로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으로부터 유입을 받아 살아 있습니다. 앞의 AC.112에서 지혜와 선은 사랑에서, 지성과 진리는 신앙에서 나오지만 결국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선의 유입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선이 진리를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115는 또한 말씀의 속뜻을 읽는 방식에 관해서도 중요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윌라’, ‘두른다’, ‘호마노’, ‘금테와 같은 표현을 각각 고립시켜 하나의 뜻만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한 문맥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를 봅니다. 특히 여기서는 두른다는 표현이 비손과 하윌라의 관계에서도, 금과 호마노의 관계에서도 유입이라는 질서를 드러냅니다. 자연적인 장면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그리고 지성 사이의 내적인 관계가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윌라 온 땅을 두르는 비손은 단순한 고대의 지리 묘사를 넘어, 천적 인간 안에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 지성과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내적 질서를 보여 줍니다. (AC.115)

 

 

 

AC.116, 창2:13, ‘둘째 강 기혼 -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한다’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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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창2:11-12, ‘보석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stones)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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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4

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stones) 의미되고 표상됩니다. 아론의 판결 흉패에 있는 보석들과 에봇의 어깨에 있는 보석들이 그러합니다. 흉패에서 금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물들인 진홍색 실과 가늘게 베실(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사랑에 속한 것들을 표상했고,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했습니다. 에봇의 어깨에 있던 기념 보석(stones of memorial) 마찬가지였는데, 그것들은 금테에 물린 호마노였습니다. (28:9-22)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stones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stones of memorial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9호마노 개를 가져다가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보석에 새겨 테에 물리고 12 보석을 에봇의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사슬을 땋고 땋은 사슬을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뼘씩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줄로 보석을 물리되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테에 물릴지니 21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8:9-22)

 

보석들이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에스겔에서도 분명합니다. 거기서는 지혜와 지성이라는 천국의 부요를 가진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5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말씀이 실제 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속한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입니다. 참으로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것을 표상했습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해설

AC.114는 앞의 AC.110에서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진리를 의미한다고 한 설명을 말씀의 표상적 예배와 선지서의 기록을 통하여 뒷받침합니다. AC.113에서 금이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고 했다면, 이번에는 보석들이 신앙의 진리를 의미하고 표상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금과 보석은 단순히 값비싼 재료들이기 때문에 성막과 제사장의 의복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설명에서는 사랑에 속한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진리를 표상하는 거룩한 예배의 일부였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아론의 판결 흉패와 에봇을 예로 듭니다. 흉패에 사용된 금과 여러 색의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표상하고, 그 위에 놓인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했다고 합니다. 에봇의 두 어깨에 금테로 물린 호마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다시 중요한 것은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보석들이 표상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110-112에서 계속 밝혀진 천적 인간의 질서와 이어집니다. AC.110에서는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가 구별되었고, AC.112에서는 선이 사랑에서, 진리가 신앙에서 나오며 그 모든 것이 결국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14에서는 그 가운데 신앙의 진리가 보석들로 표상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보석의 아름다움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그것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는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28장의 에덴에 관한 말씀은 이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보여 줍니다.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에게 각종 보석이 그의 단장이었다고 하는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실제 보석에 관한 묘사로만 읽지 않습니다. 그 문맥에서 말하는 부요는 지혜와 지성이며, 에덴과 하나님의 동산 안에 있는 여러 보석은 신앙에 속한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2의 에덴동산과 보석에 관한 설명이 에스겔의 에덴과 보석에 관한 말씀과 이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것을 표상했다는 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보석들을 모두 뭉뚱그려 하나의 동일한 의미만 가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각의 보석이 신앙에 속한 서로 다른 어떤 것을 표상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111에서 사랑과 신앙의 차이가 무수하며 천국 전체가 그 차이에 따라 주님에 의해 가장 뚜렷하게 질서 지어진다고 한 설명과도 잘 이어집니다. 신앙에 속한 진리 안에도 우리가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수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AC.114에서 각 보석의 구체적인 의미를 우리가 미리 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각각의 보석이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것을 표상했다고 말하지만, 이 번호에서는 홍보석과 황옥과 금강석을 비롯한 각각의 보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보석들이 신앙의 진리를 표상하며, 각각의 보석에도 서로 구별되는 의미가 있다는 데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세부적인 의미가 필요한 곳에서는 뒤의 설명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AC.114는 하윌라 땅의 보석들을 말씀 전체의 표상적 질서 안에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금이 사랑에 속한 선과 관계된다면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진리와 관계되며, 그 진리 안에도 매우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론의 흉패와 에봇에서부터 에스겔의 에덴에 이르기까지 보석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신앙의 진리들을 표상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어디까지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라는 사실은, 천적 인간에게서 사랑이 주된 것이며 신앙과 진리가 그 사랑으로부터 생명을 받는다는 지금까지의 설명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AC.114)

 

 

 

AC.115, 창2:11-12, ‘하윌라 땅과 비손 -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태고인들이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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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창2:11-12, ‘금은 지혜와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말씀에서 ‘금’(gold)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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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71, ‘예부터 도움 되시고입니다.

 

오늘은 2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8절로 12, AC 글 번호로는 100번에서 113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8-12)

 

이 본문을

 

에덴의 구조 : 네 강의 비밀, 첫째 강 비손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100, 창2:8, '에덴과 동산, 사랑과 이해의 이중 질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0 ‘동산’(garden)이 지성(intelligence)을 의미하고, ‘에덴’(Eden)이 사랑(love)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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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1, 창2:8, '동쪽을 향함 : 주님의 영광이 들어오는 방향'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101 ‘동쪽’(east)이 주님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에스겔에 이르기를,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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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2, 창2:9, '두 나무, 두 인식 : 사랑에서 보는가, 지식에서 판단하는가'(AC.102-106)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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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3, 창2:9, ‘주제가 의미를 결정한다 : 상응 해석의 원리’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3 여기서 ‘나무들’(trees)이 퍼셉션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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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4, 창2:9, '퍼셉션과 양심 : 잃어버린 생명의 감각'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4 오늘날에는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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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5, 창2:9, ‘생명나무 : 인간 의지의 중심에 계신 주님의 자비’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5 ‘생명나무’(tree of lives)는 사랑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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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6, 창2:9, '세 나무의 구분 : 퍼셉션과 사랑, 그리고 감각적 신앙의 길목'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6 그러나 ‘동산의 나무’(tree of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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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7, 창2:10, '에덴의 강 : 사랑에서 지혜로, 지혜에서 지성으로 흐르는 생명의 질서'(AC.107-109)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 ‘강이 에덴에서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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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8, 창2:10, ‘동산과 강 : 사랑에서 흐르는 지혜가 이루는 인간의 성장 질서’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 태고 사람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을 또한 ‘강들’(r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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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9, 창2:10, '지혜와 지성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 지혜와 지성 나타나는 것이 겉보기엔 사람인 것 같아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실은 오직 주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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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0, 창2:11-12, '천적 인간의 첫 지성, 비손 : 사랑에서 나온 신앙'(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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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왜 이런 설명이 오늘날 이해되기 어려운가'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내적 의미에서 어떠한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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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지혜, 지성, 선, 진리 판별 기준 : 출처'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 더욱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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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3, 창2:11-12, '금은 사랑의 선 : 말씀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상응의 증언'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 말씀에서 지혜의 선,곧 사랑의 선을 ‘금’(gold)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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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범위 중 메인으로 읽은 AC.110-112번 글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비손 강’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을 의미하며, 이는 천적 인간의 첫 지성 형태입니다. 이 지성은 지식이나 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신앙이기 때문에 따뜻하고 살아 있는 인식입니다. ‘하윌라 땅’은 마음을, ‘’은 사랑의 선을, ‘보석들’은 사랑과 그로부터 나온 신앙의 진리를 의미하며, 이 모든 것은 선이 중심이 되고 진리가 그것을 섬기는 구조를 이룹니다.

 

둘째, 오늘날 이 개념들이 이해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인간 상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대 인간은 사랑 중심이 아니라 기억 지식과 이성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앙과 지혜를 직접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생각의 동의가 되고, 지혜는 정보가 되며, 지성은 분석 능력으로 축소됩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사랑에서 신앙과 지혜가 흘러나오는 구조로 창조되었습니다.

 

셋째, 하늘의 질서는 사랑과 신앙의 ‘질적 차이’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는 외적 규칙이 아니라 각 존재의 사랑 상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이며, 지상에서는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경험되는 원리입니다.

 

넷째, 모든 지혜, 지성, 선, 진리는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나오며,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은 겉모양은 같아도 실제로는 ‘가짜’입니다. 핵심 기준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입니다.

 

다섯째, 이러한 세상 속에서의 삶의 태도는 ‘가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출처를 지키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는 세상과 함께 살되, 내적으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을 중심에 두는 삶입니다. 이는 요셉과 다니엘처럼,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근원을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 두는 삶으로 요약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전체 내용은 ‘사랑에서 신앙으로, 신앙에서 지성으로 흐르는 생명의 질서’와, 그 질서를 잃어버린 오늘날 인간 상태,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그 질서를 회복하며 살아가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과 자비, 붙드심의 은혜가 돌아오는 한 주간에도 여전히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4-26(D1)

 

 

2648, 3, 창2.3, 2026-04-26(D1)-주일예배(창2,8-12, AC.100-113), ‘에덴의 구조, 네 강의 비밀, 첫째 강 비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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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5/03, 창2:11-17, AC.114-127, 성찬), ‘누리되 소유하려 하지 말고, 오직 퍼셉션으로만’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8,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73,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입니다. 오늘은 창2 네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1절로 17절, AC 글 번호로는 114번에서 127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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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19, 창2:2-8, AC.85-99), ‘안식 안에서 열리는 에덴, 사랑에서 나오는 지성’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6, ‘구세주를 아는 이들’, 찬70, ‘피난처 있으니’입니다. 오늘은 창2 두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2절로 8절, AC 글 번호로는 85번에서 99번입니다. 그 주간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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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3

말씀에서 (gold)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보다 흔한 것은 없습니다. 궤와 성전과 금상과 등잔대와 기구들과 아론의 의복에 있던 모든 금은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했습니다. 선지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gold.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는 금과 (gold and silver), 선과 진리가 지혜와 지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silver) 여기서 진리를 의미하며, 궤와 성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gold and silver,or the good and the true, forsilver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또한 이와 같이, Thus also:

 

1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에서도 (gold) 선을 의미하고,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그것들을 여호와의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re alsogold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the praises of Jehovah.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해설

AC.113은 앞의 AC.110에서 하윌라 땅의 이 선을 의미한다고 한 것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금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이 매우 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선지서의 몇몇 구절에만 한정하지 않고, 궤와 성전과 금상과 등잔대와 여러 기구들, 그리고 아론의 의복에 사용된 금에까지 넓힙니다. 따라서 창2의 하윌라 땅에 있는 금도 말씀 전체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표상적 언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막과 성전의 거룩한 기물에 사용된 금이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표상했다는 설명은 금이라는 물질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금은 그곳에서 선을 표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점은 앞의 AC.103에서 살펴본 원칙과도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물 자체에 독립적인 거룩함이 있어서 그 물질만 소유하면 영적인 선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표상적 예배의 질서 안에서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28:4에서는 지혜와 지성으로 재물을 얻고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금과 은을 선과 진리로 이해하며, 특히 은은 진리를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112에서 지혜와 선을 사랑에 관계시키고, 지성과 진리를 신앙에 관계시킨 설명과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금과 은은 단순히 귀중한 두 금속을 나란히 열거한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는 선과 진리가 함께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60:6에서는 스바에서 오는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져와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합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마2:1, 11에서 동방 박사들이 주님께 드린 금과 유향과 몰약을 같은 흐름 안에서 읽습니다. 여기서 금은 선을 의미하며, 유향과 몰약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물들은 단순히 귀중한 물품을 주님께 바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속뜻에서는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주님께 드려지는 것들과 관계됩니다.

 

이 연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사야의 스바와 주님의 탄생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함께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두 본문에서 금이 등장한다는 외형적인 유사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려지는 금을 선의 표상으로 읽습니다. 72:15스바의 도 같은 흐름에서 인용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와 문맥의 말씀들이 금이라는 표상을 통하여 선이라는 내적 의미 안에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AC.113의 초점은 금, , 유향, 몰약 각각의 상응을 모두 상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현재 설명의 중심은 AC.110금은 선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말씀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은이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함께 제시되고, 유향과 몰약의 의미도 언급되지만, 각각의 세부적인 차이는 여기서 모두 밝혀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스베덴보리가 직접 설명한 범위를 보존하고, 각 표상의 더 세밀한 의미는 뒤의 설명이 나올 때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13은 하윌라의 금을 이해하는 시야를 창2 한 구절에서 말씀 전체로 넓혀 줍니다. 궤와 성전과 예배의 기물들에 있는 금, 선지서에 나오는 금, 주님의 탄생 때 드려진 금, 시편의 스바의 금이 모두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앞의 AC.112에서 모든 참된 선은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으므로, 금이 표상하는 선 역시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창2의 하윌라 땅에 있는 금을 말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게 하는 AC.113의 핵심입니다. (AC.113)

 

 

 

AC.114, 창2:11-12, ‘보석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stones)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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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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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2

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혜는 없으며, 신앙에서, 따라서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성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선은 없으며,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진리도 없습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들도 실제로는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해설

AC.112는 앞의 AC.111에서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던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매우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고, 지성은 신앙에서 나오며,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이 네 가지의 관계를 분류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각각을 설명할 때마다 결국 따라서 주님으로부터라고 덧붙입니다. 사랑과 신앙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오므로,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 역시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성의 구별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앞의 AC.107에서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것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C.111에서는 지혜와 지성이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으며, 이제 AC.112에서는 지혜를 사랑에, 지성을 신앙에 관계시킵니다. 아직 두 개념의 차이가 모두 설명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베덴보리가 두 말을 단순한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혜는 사랑과 특별히 관계되고 지성은 신앙과 특별히 관계됩니다.

 

선과 진리도 같은 질서 안에서 설명됩니다.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앞의 AC.110에서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세밀하게 구별했던 내용과도 이어집니다. 지금 단계에서 그 모든 차이를 하나의 체계로 완성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선과 사랑, 진리와 신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천적 인간 안에서 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AC.112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 안에서 지혜가 생각되고, 지성이 활동하며, 선을 원하고 행하고, 진리를 알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앞의 AC.109에서 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오직 주님의 것이라고 했듯이, 여기서는 그 원리가 선과 진리에까지 확대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것, 지성 있는 것, 선한 것, 참된 것은 모두 사랑과 신앙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원리를 반대편에서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들도 세상에서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매우 영리한 판단이 지혜처럼 보일 수 있고,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이 지성처럼 보일 수 있으며, 외적으로 선해 보이는 행위나 그럴듯한 주장이 선과 진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무엇이라고 불리는가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봅니다. 그 근원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에 있지 않다면, 이름은 같아도 여기서 말하는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111에서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부른다는 설명과도 바로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기억지식이나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모습이나 명칭만으로 영적인 실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합니다. 무엇인가가 지혜처럼 보인다는 것과 실제로 지혜인 것은 같지 않으며, 무엇인가가 선이라고 불린다는 것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인 것도 같지 않습니다. 참된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겉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그것이 사랑과 신앙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AC.112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결국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근원으로 모읍니다. 지혜와 선은 사랑에 관계되고, 지성과 진리는 신앙에 관계되지만, 사랑과 신앙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오므로 그 모든 생명의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이것은 앞에서 생명나무가 주님의 자비이며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사람 안에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가 있을수록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천적 인간의 질서입니다. (AC.112)

 

 

 

AC.113, 창2:11-12, ‘금은 지혜와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말씀에서 ‘금’(gold)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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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사랑과 신앙의 차이는 무수하며, 천국은 그 차이에 따라 질서 지어진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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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억지식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며, 많은 사람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각각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앙의 차이는 무수한데, 주님께서는 차이에 따라 천국 전체를 가장 뚜렷한 방식으로 질서 지으십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해설

AC.111은 앞의 AC.110에서 나온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과 거기서 비롯되는 지혜와 지성을 오늘날의 사람이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내용 자체가 모호해서가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의 내적인 차이를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110에서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세밀하게 구별한 것은 단순한 용어상의 차이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람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제적인 내적 차이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한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도 기억지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에서 이미 기억지식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올바른 질서 안에서 쓰일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지성이나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어떤 진리를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진리를 이해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것이 곧 신앙 자체인 것도 아닙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많은 사람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지와 이해는 서로 분리된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을 이루면서도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앞의 AC.95에서 겉 사람의 생명을 신앙에 속한 것과 사랑에 속한 것으로 나누고, 전자를 이해에, 후자를 의지에 관계시켰던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따라서 한 마음을 이룬다는 것은 차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구별되는 것들이 하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서 각각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 지혜와 지성은 비슷한 종교적 표현들을 여러 방식으로 부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지금 AC.111에서 그 차이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사람이 그 차이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속뜻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우리 역시 이 번호에서 각 개념의 차이를 미리 완성하여 설명하기보다 앞으로 그것들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계속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문제가 개인의 마음을 넘어 천국 전체의 질서로 확대됩니다. 사랑과 신앙에는 무수한 차이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 차이에 따라 천국 전체를 가장 뚜렷하게 질서 지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국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이 주님 안에서 질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차이가 없어지는 획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태들이 주님께서 정하시는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이 설명은 AC.110의 세밀한 구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굳이 구별하는 까닭은 스베덴보리에게 영적 생명의 차이가 실제로 매우 세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같은 뜻의 반복이라고 없애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가 서로 다른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우선 그 차이를 보존하면서 뒤의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AC.111은 앞으로 번역과 해설을 할 때에도 중요한 기준을 줍니다. 기억지식과 지성, 지혜와 신앙을 쉽게 같은 것으로 처리하지 않고, 사랑과 신앙도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지 않으며, 의지와 이해 역시 하나의 마음을 이루면서 서로 구별된다는 점을 보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 모든 차이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스베덴보리가 구별한 것을 번역과 해설에서 먼저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 무수한 차이를 따라 천국 전체가 주님에 의해 질서 지어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AC.111)

 

 

 

AC.112, 창2:11-12,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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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0, 창2:11-12, ‘비손 -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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