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2

이 세 교회, 곧 ‘사람’(man), ‘셋’(Seth), ‘에노스’(Enosh)는 태고교회를 이루지만, 퍼셉션의 완전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뒤를 이은 교회들에서 점차 감소하였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는 열매나 그 씨앗에 관하여, 그리고 뇌에 관하여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습니다. 완전성은 명료하게 퍼셉션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런데 퍼셉션이 덜 명료하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될 때 그 능력은 감소합니다. 그러면 더 분명했던 퍼셉션을 대신하여 더 흐릿한 퍼셉션이 뒤따르게 되고, 이와 같이 퍼셉션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These three churches, “man,” “Seth,” and “Enosh,” constitute the most ancient church, but still with a difference of perfection as to perceptions: the perceptive faculty of the first church gradually diminished in the succeeding churches, and became more general, as observed concerning fruit or its seed, and concerning the brain. Perfection consists in the faculty of perceiving distinctly, which faculty is diminished when the perception is less distinct and more general; an obscurer perception then succeeds in the place of that which was clearer, and thus it begins to vanish away.

 

해설

AC.502는 지금까지 말해 온 태고교회의 ‘쇠퇴’가 구체적으로 무엇의 쇠퇴였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사람’, ‘셋’, ‘에노스’라는 세 교회는 모두 태고교회에 속합니다. 따라서 셋이나 에노스가 나타났다고 해서 태고교회가 끝나고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세 교회 모두 같은 태고교회의 큰 계열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바로 ‘퍼셉션의 완전성’이었습니다.

 

여기서 AC.500의 ‘덜 천적’이라는 표현이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셋이 최초의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고, 에노스가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도덕적으로 더 나빠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적 인간의 특징인 퍼셉션 능력이 점차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최초의 ‘사람’ 교회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매우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퍼셉션할 수 있었지만,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면서 그 퍼셉션이 점점 덜 명료해지고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교회의 쇠퇴는 무엇보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하는 내적 능력의 쇠퇴’입니다.

 

특히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는 표현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퍼셉션의 대상이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뜻이 아니라, 세밀하고 분명하게 구별하던 것이 점차 뭉뚱그려지고 희미해졌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여러 선과 진리의 차이와 그 각각의 성질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면, 후대로 갈수록 그것을 그렇게 세밀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보다 막연하고 포괄적으로만 퍼셉션하게 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완전성은 명료하게 퍼셉션하는 능력에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501에서 사용한 열매와 씨앗, 그리고 뇌의 비유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가장 내적인 중심에는 본질적인 생명이 가장 충만하고, 거기서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그것이 점차 일반적이고 외적인 형태를 취합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태고교회에는 퍼셉션이 가장 내적이고 명료한 형태로 존재했지만, 그 뒤를 이은 교회들에서는 그것이 점차 흐릿해졌습니다. 따라서 ‘사람 → 셋 → 에노스’라는 계승은 단순히 세 교회의 시간적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퍼셉션이 ‘명료한 상태에서 덜 명료한 상태로’, 그리고 ‘구체적인 상태에서 더욱 일반적인 상태로’ 변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퍼셉션의 쇠퇴를 ‘있음’과 ‘없음’의 두 단계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분명한 퍼셉션이 있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저 덜 명료해지고, 더욱 일반적이 되고, 더 흐릿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내적 생명이 쇠퇴하는 방식이 대개 점진적이라는 AC.497의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같은 태고교회이고, 퍼셉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질과 명료함이 이미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 사라질 때 반드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살아 있는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분별하던 것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구체적인 선과 진리의 차이를 알아보던 것이 점차 막연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외적인 형태는 상당 기간 남아 있어도 그 안의 내적 생명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AC.501의 표현대로 하면 아직 열매의 모양은 남아 있지만 점차 그 속보다 껍질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가 태고교회의 퍼셉션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AC.495에서 이미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에는 태고교회와 같은 퍼셉션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의 영적 교회에는 말씀에서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삶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형성되는 양심이라는 다른 길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태고교회의 내적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배우고,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받아들여 양심이 더욱 바르게 형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퍼셉션이 흐릿해지면서 사라져 간 역사는 결국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점점 더 분명하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점점 더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502 해설)

 

 

 

창5:9, AC.503, ‘선을 행하는 기쁨과 쓰임 안에서 살아나는 퍼셉션’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3 태고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퍼셉션하는 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써 생기는 행복과 기쁨에도 있었습니

bygrace.kr

 

창5:9, AC.501, ‘열매의 속과 씨앗에서 껍질로, 교회의 점진적인 쇠퇴’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뒤를 이어 나타났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열매나 그 씨앗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노스’(Enosh)는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 교회는 ‘셋’(Seth) 교회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게난’(Kenan)은 앞선 교회들의 뒤를 이은 네 번째 교회를 의미합니다. By “Enos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a third church, still less celestial than the church “Seth,”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by “Kenan” is signified a fourth church, which succeeded the former ones.

 

해설

AC.500은 창5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태고교회 후대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점차 달라지고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 자체가 첫 번째라면 셋은 두 번째 교회였고, 이제 에노스는 세 번째, 게난은 네 번째 교회입니다. 따라서 창5의 이름들은 단순한 족보상의 인물 이름이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차례로 이어진 교회들을 나타내며, 스베덴보리는 그 순서까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창5가 교회의 계승과 상태 변화를 기록한 장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한층 선명해집니다.

 

특히 주목할 표현은 에노스가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AC.497에서 셋은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었고, 그것은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에노스에서는 그 감소가 한 단계 더 진행됩니다. 태고교회에서 셋으로, 셋에서 에노스로 내려오면서 천적 교회의 고유한 생명, 특히 사랑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는 상태가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단절이나 배교라기보다 동일한 큰 계열 안에서 일어나는 점진적인 상태 변화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에노스 역시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욱 덜 천적’이라는 말만 보면 에노스가 이미 태고교회의 성격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에노스 역시 태고교회 계열에 속한 교회였고, 그 천적 성격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최초의 태고교회가 지녔던 퍼셉션의 충만함과 비교하면 그 상태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쇠퇴는 ‘천적 교회에서 전혀 다른 교회로 갑자기 바뀜’이 아니라, 천적 상태 자체가 점차 약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게난’(Kenan)은 ‘앞선 교회들의 뒤를 이은 네 번째 교회’라고만 설명됩니다. 이 글에서는 게난의 구체적인 상태를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승의 연속성입니다. 태고교회에서 셋으로, 셋에서 에노스로, 다시 에노스에서 게난으로 교회가 이어집니다. 따라서 ‘낳았다’는 족보의 반복은 한 교회에서 다음 교회로 이어지는 영적인 계승을 표현하며, 각각의 교회는 앞선 교회와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다른 상태를 지닙니다.

 

여기서 창5와 창4의 차이도 조금씩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창5에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셋을 ‘두 번째 교회’, 에노스를 ‘세 번째 교회’, 게난을 ‘네 번째 교회’라고 순서대로 명시하면서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한 계열의 교회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4에서 가인으로부터 여러 이단과 분파가 전개되는 모습과는 서술의 성격이 다릅니다. 다만 이 차이가 창4와 창5의 두 계열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어떤 방식과 시기로 서로 병존했는지까지 곧바로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이 글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창5가 태고교회 자체로부터 이어진 후대 교회들의 연속적인 계승을 보여 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계승 가운데 반복해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쇠퇴만이 아니라 주님의 보존입니다. 최초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천적인 것이 점차 감소하지만, 주님께서는 곧바로 교회의 계보를 끊지 않으십니다. 셋이 있고, 에노스가 있으며, 다시 게난이 이어집니다. 완전했던 처음 상태가 약해지는 가운데서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며 다음 교회가 이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는 한편으로는 퍼셉션을 지닌 태고교회의 점진적인 쇠퇴를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쇠퇴 가운데서도 교회를 계속 이어 가시는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섭리를 보여 줍니다. (AC.500 해설)

 

 

 

창5:9, AC.501, ‘열매의 속과 씨앗에서 껍질로, 교회의 점진적인 쇠퇴’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1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뒤를 이어 나타났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교회들의 경우는 열매나 그 씨앗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

bygrace.kr

 

창5:7-8, AC.499, ‘날들과 연수,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죽음의 의미’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창5:7, 8)

 

AC.499

여기서 ‘날들’(days)과 ‘연수’(years)의 숫자들은 앞에서와 같이 때와 상태들을 의미합니다.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 역시 앞에서와 같은 의미를 가지며, 그가 ‘죽었다’(died)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signify here as before the times and states. “Sons and daughters” too have the same signification as before; and so likewise as the statement that he “died.”

 

해설

AC.499는 창5:7-8에 등장하는 표현들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기보다, 앞에서 이미 밝혀진 해석 원리가 에노스에 이르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날들’과 ‘연수’는 교회가 지나온 때와 상태들을,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에서 생겨난 진리들과 선들을, ‘죽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절 역시 한 사람의 수명과 자녀와 죽음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속뜻에서는 한 교회가 일정한 상태들을 지나면서 진리와 선을 산출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상태가 끝나는 전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먼저 ‘날들’과 ‘연수’는 AC.482-483, 486-488에서 살펴본 원리와 연결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는 자연적인 시간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상태와 그 변화가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셋이 구백십이 세를 살았다는 창5:8의 숫자도 단순히 생물학적인 수명의 길이를 말하는 데 속뜻의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셋이라 하는 교회가 시작되어 변화하고 지속되다가 끝나기까지의 상태들과 관계됩니다. AC.499가 구체적인 숫자의 의미를 여기서 다시 풀지 않고 ‘앞에서와 같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들들과 딸들’ 역시 AC.489-491에서 밝혀진 원리를 그대로 따릅니다.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하며, 그 진리와 선의 어떠함은 그것들을 낳은 교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셋 교회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은 그 교회 안에서 여러 진리와 선이 생겨나고 전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이름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속하는 동안 다음 세대와 다음 교회에 이어질 수 있는 영적인 것들을 계속 산출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죽었다’는 표현은 AC.492-495에서 살펴본 것처럼 육체적인 죽음 자체보다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태고교회의 계열에서 그 죽음은 퍼셉션의 변화와 쇠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죽었다’고 할 때 그 안에 존재하던 모든 선과 진리가 한순간에 완전히 소멸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교회를 그 교회이게 했던 특유의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되고, 그 가운데 보존된 것들은 다시 다음 교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5에 반복되는 ‘살고, 낳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으며, 모든 날들을 지낸 뒤 죽었다’는 일정한 형식에는 교회의 한 생애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고, 일정한 상태들을 지나며, 그 안에서 선과 진리가 생겨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상태가 끝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음 교회가 이어집니다. 문자적으로는 거의 똑같은 문장이 되풀이되지만, 속뜻에서는 서로 다른 교회들의 탄생과 상태 변화와 결실과 종말이 차례로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반복은 또한 교회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한 교회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은 그 교회 가운데 생겨난 선과 진리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다음 상태를 위한 것으로 보존하십니다. 그러므로 창5의 ‘죽음’ 뒤에는 언제나 단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승이 있습니다. 셋의 상태가 끝나더라도 에노스가 이어지고, 그 뒤로 다시 다른 교회들이 이어집니다. 인간의 상태는 변하고 교회도 쇠퇴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며 인류 가운데 교회가 계속될 길을 마련하십니다. (AC.499 해설)

 

 

 

창5:9, AC.500,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던 에노스와 그 뒤를 이은 게난’(AC.500-503)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노스’(Enosh)는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 교회는 ‘셋’(Seth) 교회보다 더욱 덜

bygrace.kr

 

창5:6, AC.498,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름들이 교회들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called “Enos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this chapter the names signify nothing else than churches.

 

해설

AC.498은 매우 짧은 글이지만, 창5 전체를 읽는 데 결정적인 해석 원리를 다시 못 박습니다. ‘이 장에서 이름들이 교회들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셋이 에노스를 낳았다는 말씀의 속뜻은 한 개인에게서 한 개인이 태어났다는 족보상의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셋’이라 하는 교회로부터 ‘에노스’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AC.470에서 제시된 창5의 기본 원리가 이제 실제 계보의 각 이름에 계속 적용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낳았다’(begat)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어떤 교회가 다른 교회를 ‘낳는다’는 것은 단순히 앞 교회가 끝난 뒤 전혀 무관한 새 교회가 등장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연속성이 있듯이, 뒤의 교회는 앞의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물려받습니다. 셋 교회가 태고교회로부터 천적 성격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퍼셉션의 상태에서는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에노스 역시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왔으면서 셋과는 구별되는 교회적 상태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낳음’에는 ‘계승’과 ‘변화’라는 두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AC.497과 연결해서 읽을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합니다. 그렇다면 창5의 계보는 단순히 여러 교회가 차례차례 생겨났다는 기록이 아니라, 태고교회의 최초 상태로부터 그 후대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조금씩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 주는 연속적인 역사입니다. ‘셋이 에노스를 낳았다’는 짧은 한 문장 안에도 이전 교회로부터의 계승과 동시에 새로운 상태로의 변화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이름들이 교회들을 의미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창5의 이름들을 해석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속뜻에서 각각 하나의 교회 또는 교회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앞으로 각 이름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더 본질적으로는 ‘이 이름으로 표현된 교회의 상태는 어떠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을 때 창5의 반복적인 족보 형식이 교회의 내적 역사를 담은 말씀으로 열리기 시작합니다.

 

다만 ‘에노스’라는 이름이 교회를 뜻한다고 해서 그 교회의 구체적인 성격까지 AC.498 하나만으로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은 우선 ‘에노스가 하나의 교회였다’는 해석의 틀을 확정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어떠함은 이어지는 글들을 통해 더 밝혀집니다. 이것은 AC를 읽을 때 중요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이나 한 글에 이후의 내용을 미리 모두 집어넣기보다,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표현을 하나씩 열어 가는 순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승의 흐름에는 주님의 섭리라는 더 큰 배경이 있습니다. 교회의 상태가 이전보다 낮아지고 본질적인 것들이 감소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곧바로 그 교회를 끊어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교회에서 다음 교회가 이어져 나오도록 하시면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따라 선과 진리를 계속 보존하십니다. 셋에서 에노스로 이어지는 짧은 계보는 그래서 단순한 쇠퇴의 기록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태가 변하는 가운데서도 교회의 연속성을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AC.498 해설)

 

 

 

창5:6, AC.497, ‘시간이 흐르며 본질적인 것들이 감소하는 교회’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

‘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말한 것(3절)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That “Seth”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may appear from what was said above concerning Seth (verse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의 경우는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원인으로 인해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해 간다는 것입니다. The case with churches, as we have said, is that by degrees, and in process of time, they decrease as to essentials, owing to the cause above mentioned.

 

해설

AC.497은 바로 앞의 AC.496에서 ‘셋은 태고교회보다 덜 천적이었다’고 한 이유를 한 걸음 더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창5:3에서 다룬 셋에 관한 설명을 다시 가리킵니다. 특히 AC.481-485에서 셋은 태고교회와 같은 천적 교회의 계열에 속하면서도, 그 퍼셉션의 상태가 태고교회 자체와는 달랐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덜 천적’이라는 말은 셋 교회가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천적 질서 안에서도 그 본질적인 생명과 퍼셉션의 충만함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뜻입니다.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표현은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 점차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쇠퇴는 먼저 외형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도 남아 있을 수 있고, 예배도 계속될 수 있으며,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언어와 형식도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야 할 본질,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과 선에서 나오는 진리의 생명이 약해지면 교회는 겉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점차 이전 상태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경우에는 특히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직접 퍼셉션하던 천적 생명이 그 본질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서 언급한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 절 하나만을 가리키기보다, 앞에서 설명해 온 교회 쇠퇴의 원리를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AC.494에서는 유전적 악이 세대를 거치며 누적되고, 사람들이 실제적인 악(actual evil)을 자기 삶으로 만들어 갈 때 그것이 다시 후대의 유전적 성향에 더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대를 거치면서 쇠퇴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간 자체가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을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반복되고 굳어지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점은 ‘부모인 태고교회’라는 표현도 더욱 의미 있게 만듭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생명을 이어받으면서도 부모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셋 교회 역시 태고교회로부터 그 천적 성격을 이어받았지만 동일한 정도의 퍼셉션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이름만 바뀌는 기록이 아니라, 같은 큰 계열 안에서 교회의 내적 상태가 세대를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후대일수록 무조건 더 악하다’는 식의 단순한 역사 법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태고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 다루고 있는 일련의 교회들이 그 최초의 천적 상태로부터 점차 멀어져 간 특정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쇠퇴 속에서도 주님은 교회를 단번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앞선 교회로부터 다음 교회가 이어지도록 하십니다. 셋으로부터 에노스가 나오고, 다시 그 뒤를 이어 여러 교회가 계속되는 창5의 구조 자체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497은 교회의 생명을 판단하는 기준을 외적인 규모나 제도의 지속에 두지 않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교회의 진정한 생명은 ‘본질적인 것들’이 살아 있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살아 있고, 신앙의 진리가 그 사랑과 결합되어 삶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감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님은 쇠퇴하는 시대 속에서도 남아 있는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고 그것으로 다음 상태를 준비하십니다. 창5의 계보는 바로 그러한 쇠퇴와 보존, 그리고 계승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AC.497 해설)

 

 

 

창5:6, AC.498,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

bygrace.kr

 

창5:6, AC.496, ‘셋으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AC.496-498)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창5:6)

 

AC.496

‘셋’(Seth)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번째 교회로서,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었지만,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가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것은 앞에서와 같이 때와 상태들을 의미하며,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Seth,” as was observed, is a second church, less celestial than the most ancient church, its parent, yet one of the most ancient churches; that he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signifies, as before, times and states;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that was called “Enosh.”

 

해설

AC.496은 창5의 계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아주 간결하게 확인해 주는 글입니다. 창5:6의 문자적 본문은 셋이라는 사람이 백오 세에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족보 기록이지만, 속뜻에서는 ‘셋 → 에노스’가 한 개인에게서 다른 개인이 태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로부터 또 다른 교회가 이어져 나온 과정입니다. AC.470에서 이미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뜻한다고 밝힌 원리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창5의 족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태고교회 이후 여러 교회가 어떤 상태를 거쳐 차례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셋을 ‘두 번째 교회’라고 하면서 동시에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창5의 계승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초의 태고교회가 지녔던 천적 상태가 그대로 복제되어 다음 교회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교회로 갈수록 그 상태에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앞서 AC.481-485에서 셋 교회는 태고교회와 닮았지만 퍼셉션의 차이로 구별되는 교회였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교회’라는 말에는 시간적인 후대라는 뜻뿐 아니라, 태고교회와 구별되는 새로운 교회적 상태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셋 교회를 이미 태고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교회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셋을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이라고 하면서도 곧이어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천적 교회의 성격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그리고 선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하는 태고교회의 기본 질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생생함과 완전함이 최초의 태고교회와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백오 세를 살았다’(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는 표현 역시 실제 연령 자체가 속뜻의 중심이 아닙니다. AC.482-483과 AC.487-488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와 ‘연수’는 교회의 때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여기서 백오 년은 셋 교회가 어떤 상태를 지나 다음 교회인 에노스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105’라는 수 자체의 세부적인 의미를 풀지 않고, 앞에서 확립한 원칙대로 ‘때와 상태들’을 뜻한다고만 밝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숫자의 개별 상응을 억지로 풀기보다는, 창5의 연수가 교회 상태의 지속과 변화를 기록한다는 큰 원리를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표현은 창5의 ‘낳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교회에서 또 하나의 교회가 ‘태어난다’는 것은 앞선 교회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전혀 무관한 것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교회만의 고유한 상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에노스가 생겼다고 하지 않고, 셋으로부터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창5의 족보는 바로 이러한 교회적 계승의 연속입니다.

 

이 점에서 AC.496은 앞으로 이어질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등의 이름을 읽는 기본 틀을 마련합니다. 각각의 이름은 단순히 족보상의 한 사람을 지나가는 표지가 아니라,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창5를 읽으면서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만 머물지 않고, ‘이 이름으로 나타난 교회는 앞선 교회로부터 무엇을 이어받았으며, 그 상태는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창5의 긴 족보가 단순한 이름과 연수의 나열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의 상태가 변해 가는 가운데서도 교회를 이어 가시는 역사가 됩니다. (AC.496 해설)

 

 

 

창5:6, AC.497, ‘시간이 흐르며 본질적인 것들이 감소하는 교회’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7‘셋’(Seth)이 그 부모인 태고교회보다는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이면서도, 여전히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은 위에서 셋에 관하여

bygrace.kr

 

창5:5, AC.495, ‘태고교회의 쇠퇴를 이해하는 열쇠, 퍼셉션’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5) AC.495태고교회가 어떻게 쇠퇴하였는지는 퍼셉션(perception)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을 가진 교회였으며, 오늘날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

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교회들이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졌다는 것은 앞 장에서(창4:17-18) ‘에녹’(Enoch)과 ‘라멕’(Lamech)이라 한 교회들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에녹’과 ‘라멕’이라 하는 다른 교회들(창5:21, 30)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 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해설

AC.485는 창4와 창5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글입니다. 문자적 족보만 따라 읽으면 창4:25의 셋과 창5:3의 셋은 당연히 동일 인물이며, 창5는 창4 끝부분에서 등장한 셋의 족보를 다시 이어 가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속뜻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명시합니다.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를 의미합니다.

 

AC.485가 직접 참조하라고 한 AC.435를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창4:25의 ‘사람과 그의 아내’는 앞에서 아다와 씰라로 표상된 ‘새 교회’를 의미하고, 거기서 태어난 ‘셋’은 체어리티가 심어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신앙을 의미합니다. 반면 창5:1-4에서 다시 등장하는 ‘사람과 그의 아내’와 ‘셋을 낳음’은 ‘태고교회의 첫 후대’를 의미한다고 스베덴보리는 명시합니다. 그는 같은 사람과 사건이 다시 언급되는 것처럼 보여도 속뜻에서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반복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AC.435)

 

따라서 창4와 창5를 하나의 단순한 직선적 계보로 이어 붙이면 속뜻에서 중요한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창4는 가인으로 표상된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의 발생과 그로부터 나온 여러 이단과 교리적 계열,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새 교회가 일어나는 흐름을 다룹니다. 그 마지막에 등장하는 셋은 바로 그 문맥 안에서 ‘체어리티가 심어질 수 있게 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반면 창5는 태고교회 자체와 그 후대의 여러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다루며, 여기의 셋은 태고교회에 이어지는 두 번째 교회입니다. AC.460-463의 장 전체 개요와 AC.481-484의 설명도 이 흐름을 일관되게 보여 줍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셋’ 하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창4에도 ‘에녹’과 ‘라멕’이 나오고 창5에도 ‘에녹’과 ‘라멕’이 나옵니다. 그러나 AC.485는 이들도 각각 서로 다른 교회들이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같은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속뜻에서 같은 교회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교회들이 같은 이름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 자체보다 그 이름이 놓인 문맥과 그 교회가 표상하는 내적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이 점은 우리가 창4부터 계속 살펴 온 한 가지 질문에도 중요한 빛을 던집니다. 곧 ‘가인 계열이 태고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면, 태고교회 자체와 그 후대는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AC.485와 AC.435는 적어도 창4의 셋과 창5의 셋을 하나의 동일한 교회 계열로 합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창4의 마지막은 그 장에서 전개된 교회적 흐름의 결론이고, 창5는 태고교회와 그 첫 후대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별도의 교회적 계승을 보여 줍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4와 창5의 모든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같은 시기에 나란히 존재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AC.485가 직접 확정하는 것은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며, AC.435가 확정하는 것은 창4:25의 새 교회와 창5:1-4의 태고교회 첫 후대가 서로 다른 문맥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두 장을 단순히 하나의 직선적인 교회 계보로 읽는 것은 어렵습니다. 두 계열의 시간적 관계와 서로의 관계는 앞으로 나오는 설명들을 더 모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러한 구별은 창5의 셋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앞의 AC.484에서 보았듯이 이 셋 교회는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이 태고교회에서처럼 그만큼 주된 것은 아니었으나 신앙은 여전히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5의 셋은 창4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와 회복이라는 문맥 가운데 나타난 셋과 달리, 태고교회 자체로부터 이어지면서 그 천적 질서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 가운데 나타난 교회입니다.

 

결국 AC.485는 창4와 창5를 읽는 우리의 지도를 수정해 주는 글입니다. 같은 이름이 반복된다고 같은 교회가 아니며, 같은 ‘사람과 그의 아내가 셋을 낳았다’는 서술이 반복된다고 같은 교회적 사건을 단순히 되풀이한 것도 아닙니다. 말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과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교회와 서로 다른 내적 상태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5를 읽을 때에는 창4의 이름들을 그대로 연결하기보다,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교회적 계승의 흐름 안에서 각각의 이름과 상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AC.485 해설)

 

 

 

창5:4, AC.486, '날들과 해들, 아들들과 딸들의 의미'(AC.486-491)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날들’(days)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

bygrace.kr

 

창5:3, AC.484, ‘사랑이 여전히 신앙과 결합되어 있었던 셋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셋’(Seth)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모양대로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

‘셋’(Seth)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고 한 데서 분명합니다. 여기서 ‘모양’(likeness)은 신앙과 관계되고, ‘형상’(image)은 사랑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사랑과 거기서 비롯되는 신앙에 있어서 태고교회와 같지는 않았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한 데서 분명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모양은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그만큼 주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신앙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해설

AC.484는 앞의 AC.481에서 ‘셋’이라는 새 교회가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고 한 말의 의미를 한층 정확하게 밝혀 줍니다. 셋 교회는 태고교회의 성격을 상당히 이어받았지만 태고교회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사랑’과 ‘신앙’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완전한 상태에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었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은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퍼셉션했으며, 따라서 신앙은 사랑과 떨어져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의 AC.479에서도 천적 인간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태고교회의 본래적인 천적 질서입니다.

 

그런데 셋 교회에 이르러서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사랑이 더 이상 이전처럼 압도적으로 ‘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AC.484의 마지막 말 그대로 ‘여전히 신앙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셋 교회는 태고교회의 완전한 천적 상태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사랑과 신앙의 결합이라는 본질적인 질서는 아직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창4의 가인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가인으로 표상된 것은 사랑 또는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었습니다. 반면 창5의 셋 교회에서는 사랑이 이전만큼 주된 위치에 있지는 않았어도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태고교회의 최초 상태와 차이가 있지만 그 방향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는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우위가 약해지면서도 신앙과 사랑의 결합 자체는 유지되는 방향입니다. 이 차이는 앞으로 창4의 계열과 창5의 계열을 함께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셋 교회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창1의 거듭남의 질서에서 여섯째 날은 사람이 신앙과 사랑의 결합에 이른 상태이지만, 완전한 천적 상태를 의미하는 일곱째 날, 곧 안식일과는 구별됩니다. AC.480에서는 여섯째 날의 끝에서 일곱째 날이 시작되며, 일곱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AC.484가 셋 교회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연결하는 것은, 셋 교회가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를 그대로 되풀이한 교회가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다른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481의 ‘모양’과 ‘형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는 ‘모양’이 신앙에, ‘형상’이 사랑에 관계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가 모두 셋 교회 안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신앙만 남은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여전히 함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관계에서 사랑이 태고교회의 가장 완전한 상태에서처럼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셋 교회를 단순히 ‘태고교회와 비슷한 또 하나의 교회’라고만 이해하면 이 글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그 차이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사랑과 신앙의 결합은 유지되었으나 사랑의 주도성이 약해졌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후대 교회들이 어떻게 최초의 천적 상태에서 점차 다른 퍼셉션과 영적 상태로 옮겨 가는지를 보여 주는 첫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국 AC.484에서 셋은 단절보다는 ‘계승 속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앞선 교회의 모든 상태가 그대로 반복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 있던 선과 진리를 다음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셋 교회에서는 태고교회의 가장 높은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질서 하나, 곧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독립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과 결합되어 있는 질서는 보존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셋 교회는 창4의 가인으로 표상된 길과 뚜렷이 구별됩니다. (AC.484 해설)

 

 

 

창5:3, AC.485,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

bygrace.kr

 

창5:3, AC.483, ‘퍼셉션(perception)의 차이로 구별된 태고교회의 여러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뒤이어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

뒤이어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렛’(Jared), ‘에녹’(Enoch), ‘므두셀라’(Methuselah), ‘라멕’(Lamech), ‘노아’(Noah)라는 이름들은 그만큼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며, 그 가운데 첫째이자 으뜸이 되는 교회는 ‘사람’(man)이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들의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으므로, 당시 교회들 사이의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여기서 퍼셉션에 관하여 한 가지 언급하자면, 보편 천국에는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외에는 아무것도 다스리지 않으며, 그 퍼셉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무수한 차이가 있어서 서로 같은 퍼셉션을 누리는 두 공동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곳에 존재하는 퍼셉션들은 유와 종으로 구별되는데, 유는 무수하며 각 유에 속한 종들 역시 무수합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By the names which follow: “Seth,” “Enosh,” “Kenan,” “Mahalalel,” “Jared,” “Enoch,” “Methuselah,” “Lamech,” “Noah,” are signified so many churches, of which the first and principal was called “man.”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se churches was perception, wherefore the differences of the churches of that time were chiefly differences of perception. I may here mention concerning perception, that in the universal heaven there reigns nothing but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which is such as cannot be described, with innumerable differences, so that no two societies enjoy similar perception; the perceptions there existing are distinguished into genera and species, and the genera are innumerable, and the species of each genus are likewise innumerable; but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이처럼 무수한 유가 있고, 각 유 안에도 무수한 종이 있으며, 그 종들 안에는 더욱 무수한 변이들이 있으므로, 오늘날 세상이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얼마나 적게 알고 있는지, 실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만큼 적게 알고 있는지가 분명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퍼셉션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며, 그것에 관하여 들어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의 유와 종의 차이에 있어서까지 주님의 천적 나라를 표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퍼셉션의 본질이 가장 일반적인 면에서조차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 교회들의 퍼셉션의 유와 종에 관하여 설명한다면 필연적으로 어둡고 낯설게 보일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집안(houses), 일가(families), 민족(nations)으로 구별되어 있었고, 퍼셉션의 유와 종이 존재하며 부모로부터 타고난 성향이 전해지는 것과 꼭 같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집안과 일가 안에서 혼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에 속했던 이들은 천국에서도 함께 거주합니다. Since then there are innumerable genera, and innumerable species in each genus, and still more innumerable varieties in the species, it is evident how little—so little that it is almost nothing—the world at this day knows concerning things celestial and spiritual, since they do not know even what perception is, and if they are told, they do not believe that any such thing exists; and so with other things also. The most ancient church represented the celestial kingdom of the Lord, even as to the generic and specific differences of perception; but whereas the nature of perception, even in its most general aspect, is at this day utterly unknown, any account of the genera and species of the perceptions of these churches would necessarily appear dark and strange. They were at that tim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contracted marriage within their houses and families, in order that genera and species of perceptions might exist, and be derived from the parents precisely as are the propagations of native character; wherefore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dwell together in heaven.

 

해설

AC.483은 창5에 나오는 이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는 속뜻에서 단순히 한 가문의 아홉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의 첫째이자 으뜸은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태고교회로부터 여러 후대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교회적 계보입니다.

 

그런데 이 여러 교회를 서로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퍼셉션’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생활에서는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를 성경의 가르침이나 교리, 양심적 판단 등을 통해 분별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주님으로부터 내적으로 지각하는 퍼셉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태고교회가 똑같은 퍼셉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교회마다 퍼셉션의 성격과 정도가 달랐습니다. 따라서 셋에서 노아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교리의 차이보다 먼저 ‘퍼셉션의 차이’를 보아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천국의 구조와 연결합니다. 천국 전체에는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 다스리지만, 그것은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완전히 같은 퍼셉션을 가진 두 천국 공동체가 없을 만큼 다양하며, 그 차이는 유와 종, 그리고 다시 그 안의 무수한 변이로 펼쳐집니다. 따라서 천국의 하나 됨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차이가 주님의 질서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데서 생깁니다.

 

태고교회도 바로 이러한 주님의 천적 나라를 표상했습니다. 하나의 태고교회 안에 집안과 일가와 민족이 있었고, 그 각각은 서로 다른 고유한 퍼셉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AC.470-471에서 살펴본 ‘집안-일가-민족’의 구조를 한층 더 깊게 설명해 줍니다. 그들의 구별은 단순히 생활 편의를 위한 사회적·행정적 구획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퍼셉션의 유와 종이 보존되고 펼쳐지는 하나의 영적 질서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AC.483은 당시 사람들이 자기들의 집안과 일가 안에서 혼인했다고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가족제도나 혼인관계를 그대로 이 시대에 투사하여 이해하면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글의 초점은 혈연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당시의 퍼셉션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 타고난 성향이 전해지는 것처럼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비슷한 내적 성향을 가진 집안과 일가 안에서 혼인이 이루어짐으로써 특정한 퍼셉션의 유와 종이 계속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창5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하나 더 줍니다. 셋, 에노스, 게난 등의 교회가 앞선 교회와 전혀 무관하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앞선 교회로부터 어떤 내적 성향과 퍼셉션을 이어받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상태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5의 ‘낳고’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생물학적 출산을 넘어, 한 교회로부터 다음 교회가 파생되고 그 교회의 고유한 퍼셉션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태고교회에 속했던 이들은 천국에서도 함께 거주한다’는 말은 지상에서의 이러한 질서가 단순히 일시적인 사회 형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내적 성향과 퍼셉션이 서로 어울렸기 때문에 지상에서도 함께 살았고, 사후에도 서로 어울리는 이들이 하나의 천국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상의 집안과 일가와 민족의 구별이 그대로 천국의 혈연집단으로 보존된다는 뜻이라기보다, 그들을 하나로 묶었던 내적 사랑과 퍼셉션의 유사성이 천국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AC.483은 창5를 단순한 장수 족보에서 ‘퍼셉션의 역사’로 바꾸어 읽게 합니다. 이름들은 서로 다른 교회들을, 연수는 그 교회들의 서로 다른 상태를 나타내며, 그 차이의 중심에는 퍼셉션이 있습니다. 하나의 태고교회로부터 서로 다른 퍼셉션을 가진 여러 교회가 생겨나고, 그 다양성이 다시 주님의 천적 나라의 무수한 다양성을 표상했습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는가’를 기록한 목록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나의 교회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정교한 천적 질서를 이루셨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AC.483 해설)

 

 

 

창5:3, AC.484, ‘사랑이 여전히 신앙과 결합되어 있었던 셋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셋’(Seth)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모양대로

bygrace.kr

 

창5:3, AC.482,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는 교회의 상태를 의미’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이 장에 나오는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가 속뜻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창5:3)

 

AC.481

‘백삼십 년’(a hundred and thirty years)은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으므로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았다’(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양’(likeness)은 신앙과 관계되고, ‘형상’(image)은 사랑과 관계됩니다. 이 교회를 ‘셋’(Seth)이라 하였습니다. By a “hundred and thirty years” there is signified the time before the rise of a new church, which, being not very unlike the most ancient, is said to be born “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 but the term “likeness” has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This church was called “Seth.”

 

해설

AC.481부터 창5:3이 시작됩니다. 앞의 창5:1-2가 태고교회 자체의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태고교회로부터 이어지는 후대 교회의 계승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아담이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는 말씀은 속뜻으로 한 아버지가 백삼십 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보다, 태고교회 이후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새로운 교회가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백삼십 년’은 문자 그대로의 연대가 아니라 ‘새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30이라는 숫자를 곧바로 우리가 익숙한 역사적 연수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글에서 그 숫자가 어떤 기간, 곧 태고교회로부터 새로운 교회가 일어나기까지의 상태와 과정에 관계된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이 숫자의 구체적인 의미는 이어지는 글에서 더 설명됩니다.

 

새롭게 일어난 교회가 바로 ‘셋’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이 교회가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은 태고교회와 완전히 단절된 전혀 다른 종류의 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의 본질적인 성격을 상당 부분 이어받은 새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가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태어났다고 표현합니다. 창5의 계보가 단순한 생물학적 혈통의 기록이 아니라 교회들의 발생과 계승을 보여 주는 기록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모양’과 ‘형상’의 설명입니다. 앞의 AC.473에서는 창5:1의 ‘하나님의 모양’이 천적 인간과 관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모양’이 신앙과, ‘형상’이 사랑과 관계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모양 = 신앙, 형상 = 사랑’이라는 고정된 사전식 대응으로 받아들이면 앞의 설명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응의 의미는 언제나 해당 문맥과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 표상된 태고교회와 그로부터 나온 ‘셋’이라는 새 교회의 유사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셋이라는 새 교회 안에도 태고교회를 이루었던 신앙과 사랑의 질서가 이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앞의 창5:2에서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어 하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셋은 그 태고교회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신앙과 사랑의 성격을 닮은 교회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말씀에서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았다고 한 속뜻입니다.

 

이 대목은 창4의 ‘셋’과 창5의 ‘셋’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지금 AC.481만으로 그 문제를 모두 결론지을 필요는 없지만, 이어지는 AC.485에서 스베덴보리는 두 ‘셋’이 서로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고 명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선 창5의 셋이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던 새 교회’라는 사실을 붙들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AC.482-485를 따라가면 이 새 교회가 태고교회와 무엇을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구별되는지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결국 AC.481은 창5의 계보를 읽는 방향을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이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시 다음 세대를 낳았다는 족보의 표면 아래에는, 주님의 섭리 가운데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가 일어나고 그 교회 안에 앞선 교회의 신앙과 사랑이 이어지는 내적 역사가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쇠퇴해 간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 안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두시는 것이 아니라, 다음 교회가 받아 이어 갈 수 있는 것을 보존하시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창5:3의 ‘셋’은 바로 그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AC.481 해설)

 

 

 

창5:3, AC.482,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는 교회의 상태를 의미’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이 장에 나오는 ‘해’(years)와 ‘연수’(numbers of years)가 속뜻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bygrace.kr

 

AC.480, 창5:2, ‘여섯째 날의 끝과 안식일의 시작에 이른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80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사람’이라 일컬어졌다는 것은 1장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