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창5:7, 8)

 

AC.499

여기서 ‘날들’(days)과 ‘연수’(years)의 숫자들은 앞에서와 같이 때와 상태들을 의미합니다.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 역시 앞에서와 같은 의미를 가지며, 그가 ‘죽었다’(died)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signify here as before the times and states. “Sons and daughters” too have the same signification as before; and so likewise as the statement that he “died.”

 

해설

AC.499는 창5:7-8에 등장하는 표현들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기보다, 앞에서 이미 밝혀진 해석 원리가 에노스에 이르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날들’과 ‘연수’는 교회가 지나온 때와 상태들을,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에서 생겨난 진리들과 선들을, ‘죽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절 역시 한 사람의 수명과 자녀와 죽음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속뜻에서는 한 교회가 일정한 상태들을 지나면서 진리와 선을 산출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상태가 끝나는 전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먼저 ‘날들’과 ‘연수’는 AC.482-483, 486-488에서 살펴본 원리와 연결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는 자연적인 시간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상태와 그 변화가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셋이 구백십이 세를 살았다는 창5:8의 숫자도 단순히 생물학적인 수명의 길이를 말하는 데 속뜻의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셋이라 하는 교회가 시작되어 변화하고 지속되다가 끝나기까지의 상태들과 관계됩니다. AC.499가 구체적인 숫자의 의미를 여기서 다시 풀지 않고 ‘앞에서와 같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들들과 딸들’ 역시 AC.489-491에서 밝혀진 원리를 그대로 따릅니다.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하며, 그 진리와 선의 어떠함은 그것들을 낳은 교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셋 교회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은 그 교회 안에서 여러 진리와 선이 생겨나고 전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이름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속하는 동안 다음 세대와 다음 교회에 이어질 수 있는 영적인 것들을 계속 산출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죽었다’는 표현은 AC.492-495에서 살펴본 것처럼 육체적인 죽음 자체보다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태고교회의 계열에서 그 죽음은 퍼셉션의 변화와 쇠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죽었다’고 할 때 그 안에 존재하던 모든 선과 진리가 한순간에 완전히 소멸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교회를 그 교회이게 했던 특유의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되고, 그 가운데 보존된 것들은 다시 다음 교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5에 반복되는 ‘살고, 낳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으며, 모든 날들을 지낸 뒤 죽었다’는 일정한 형식에는 교회의 한 생애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고, 일정한 상태들을 지나며, 그 안에서 선과 진리가 생겨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상태가 끝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음 교회가 이어집니다. 문자적으로는 거의 똑같은 문장이 되풀이되지만, 속뜻에서는 서로 다른 교회들의 탄생과 상태 변화와 결실과 종말이 차례로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반복은 또한 교회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한 교회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은 그 교회 가운데 생겨난 선과 진리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다음 상태를 위한 것으로 보존하십니다. 그러므로 창5의 ‘죽음’ 뒤에는 언제나 단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승이 있습니다. 셋의 상태가 끝나더라도 에노스가 이어지고, 그 뒤로 다시 다른 교회들이 이어집니다. 인간의 상태는 변하고 교회도 쇠퇴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선과 진리를 보존하시며 인류 가운데 교회가 계속될 길을 마련하십니다. (AC.499 해설)

 

 

 

창5:9, AC.500, ‘셋보다 더욱 덜 천적이었던 에노스와 그 뒤를 이은 게난’(AC.500-503)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창5:9) AC.500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노스’(Enosh)는 세 번째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 교회는 ‘셋’(Seth) 교회보다 더욱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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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6, AC.498, ‘셋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또 하나의 교회 에노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것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나왔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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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1

이 장에서 ‘아들들’(sons)과 ‘딸들’(daughters)(4, 7, 10, 13, 16, 19, 26, 30절)도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도 그러하며, 다시 말해 선들과 진리들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은 분명하게 퍼셉션된 것들인데, 이는 그것들이 태고교회, 곧 다른 모든 후대 교회들의 으뜸이며 어버이인 교회에 관하여 서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해설

AC.491은 AC.486-490에서 설명한 ‘아들들과 딸들’의 의미를 창5 전체에 적용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덧붙입니다.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교회에서 그 진리와 선의 질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즉 어떤 교회가 어떤 내적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가 받아들이고 산출하는 진리와 선의 어떠함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상응을 기계적인 대응표처럼 이해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들 = 진리’, ‘딸 = 선’이라는 기본적인 상응은 같더라도, 그 진리가 어떤 진리이며 그 선이 어떤 선인지는 그것들이 속한 교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아들’이라는 표현도 태고교회에 관하여 사용될 때와 후대의 다른 교회에 관하여 사용될 때 그 진리의 내적 질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어의 기본 의미뿐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교회적 상태와 문맥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진리들과 선들은 ‘분명하게 퍼셉션된 것들’입니다. 이 표현은 창5 초반부터 계속 강조되어 온 태고교회의 독특한 성격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선과 진리는 주로 외부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검토하여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퍼셉션했습니다. 따라서 그 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은 바로 그러한 퍼셉션에서 나온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이것은 앞의 AC.483과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등 여러 교회가 주로 퍼셉션의 차이에 따라 구별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교회가 낳은 ‘아들들과 딸들’ 역시 똑같을 수 없습니다. 각 교회의 퍼셉션이 달랐으므로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와 선의 어떠함도 달랐습니다. 창5에 같은 표현인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가 계속 반복되지만, 속뜻에서는 매번 똑같은 진리와 선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교회 상태에 고유한 진리와 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다른 모든 후대 교회들의 으뜸이며 어버이인 교회’(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라고 합니다. ‘으뜸’이라는 말은 태고교회가 최초이면서 가장 근원적인 교회였음을, ‘어버이’라는 말은 이후의 교회들이 그 교회로부터 이어져 나왔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창5에서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이 ‘낳음’의 언어로 연결되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앞선 교회의 선과 진리가 후대 교회에 전해지고, 후대 교회는 그것을 자신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형태의 선과 진리를 산출하는 교회의 계승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창5를 읽으며 계속 확인하고 있는 중요한 원리도 있습니다. ‘계승’은 ‘동일함’이 아닙니다. 셋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았듯이, 이후의 교회들도 앞선 교회에서 이어지지만 각각 다른 퍼셉션과 다른 상태를 갖습니다. 따라서 창5의 계보는 동일한 교회가 이름만 바꾸어 계속되는 과정이라기보다, 앞선 교회로부터 받은 것을 다음 교회가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이어받으면서 선과 진리의 어떠함도 함께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아들들과 딸들도 그러하다’는 AC.491의 짧은 문장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의 참된 상태는 이름이나 외적 형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어떤 진리가 받아들여지고 어떤 선이 살아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진리와 선이 주님으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교회의 내적 어떠함은 결국 그 교회가 ‘낳는’ 진리와 선의 어떠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창5:4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짧은 표현 안에는 태고교회의 풍성한 영적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낳은 것은 단순한 후손이 아니라 분명하게 퍼셉션된 진리와 선이었으며, 그 진리와 선은 다시 후대 교회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태고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퍼셉션의 상태가 달라지는 만큼 그들이 받아들이는 진리와 선의 질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창5의 반복되는 ‘아들들과 딸들’을 단순한 족보의 반복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과 계승의 역사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AC.491 해설)

 

 

 

창5:5, AC.492, ‘사라진 퍼셉션을 의미하는 사람의 죽음’(AC.492-49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창5:5) AC.492여기서 ‘날들’(days)과 ‘해들’(years)은 위에서와 같이 시대들과 상태들을 의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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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4, AC.490, ‘딸들이 의미하는 사랑과 신앙의 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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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9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이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하며, 특히 ‘아들들’(sons)은 진리들을, ‘딸들’(daughters)은 선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예언서의 많은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는 옛날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교회의 잉태와 출생을 ‘아들들과 딸들’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는, That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indeed by “sons” truths, and by “daughters” good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prophets; for in the Word, as also in olden tim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 are called “sons and daughters,” as in Isaiah: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사60:3-5)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and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y heart shall be amazed, and shall be enlarged, (Isa. 60:3–5)

 

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2] 시편에서는, In David:

 

11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12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시144:11, 12) Deliver me and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e sons of the stranger, whose mouth speaketh vanity; that our sons may be as plants grown up in their youth, that our daughters may be as cornerstones hewn in the form of a temple, (Ps. 144:11–12)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의 아들들’(sons of the stranger)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의미하고, ‘우리 아들들’(our sons)은 진리의 교리들을, ‘우리 딸들’(our daughters)은 선의 교리들을 의미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stranger” signify spurious truths, or falsities; “our sons” signify doctrinals of truth; “our daughters,” doctrinals of good.

 

[3]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6, 8)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bring forth the blind people, and they shall have eyes; the deaf, and they shall have ears, (Isa. 43:6, 8)

 

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의미하고, ‘맹인들’(blind)은 진리를 보게 될 사람들을, ‘귀먹은 자들’(deaf)은 진리에 순종하게 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daughters,” goods; the “blind,” those who would see truths; and the “deaf,” those who would obey them.

 

[4]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3:24) Shame hath devoured the labor of our fathers from our youth; their flocks, their herds,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Jer. 3:24)

 

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과 딸들’은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자녀들’(children)과 ‘아들들’(sons)이 진리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where “sons” and “daughters” signify truths and goods. That “children” and “sons” signify truths is plain from Isaiah:

 

22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사29:22-24) Jacob shall not now be ashamed, neither shall his face now wax pale; for when he shall see his children the work of my hands in the midst of him, they shall sanctify my name, and shall sanctify the Holy One of Jacob, and shall fear the God of Israel; they also that erred in spirit shall know understanding, (Isa. 29:22–24)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은 주님을 의미하고, ‘자녀들’은 거듭난 사람들, 곧 선과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이는 실제로 그 구절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where the “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 signifies the Lord; “children” signify the regenerate, who have the understanding of good and truth, as is indeed explained.

 

[5] 또 이사야에서는, Again: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for more are the sons of the desolate than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Isa. 54:1)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홀로 된 여인의 아들들’(sons of the desolate)은 초대교회, 곧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하고, ‘남편 있는 여인의 아들들’(sons of the married wife)은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desolate” signify the truths of the primitive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the truths of the Jewish church.

 

[6]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of me, and are not, (Jer. 10:20)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 where “sons” signify truths. Again: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렘30:20) His sons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Jer. 30:20)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고대교회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스가랴에서는, where “sons” signify the truths of the ancient church. In Zechariah: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3) I will stir up thy sons, O Zion, with thy sons, O Javan, and make thee as the sword of a mighty man, (Zech. 9:13)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signifying the truths of the faith of love.

 

해설

AC.489는 AC.486에서 짧게 제시했던 ‘아들들은 진리, 딸들은 선’이라는 상응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입증합니다. 그러나 이 글의 핵심은 단순히 ‘아들 = 진리, 딸 = 선’이라는 대응표를 하나 더 익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첫 문단의 ‘교회의 잉태와 출생을 아들들과 딸들이라 한다’는 설명이 오히려 이 글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교회가 ‘잉태하고 낳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진리와 선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앞의 창5:3에서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낳는’ 것으로 표현된 것과도 연결됩니다. 자연적 생명에서는 부모에게서 자녀가 태어나지만, 영적 생명에서는 주님으로부터 받아들인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새로운 선과 진리가 생겨납니다. 따라서 창5:4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표현은 단순히 아담에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녀들이 더 있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고, 태고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진리와 선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AC.486과 연결하여 이 진리와 선이 그들이 ‘퍼셉션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에게 진리와 선은 단순히 외부에서 배우고 기억하여 보유하는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앞의 AC.483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교회들을 구별하는 주된 특징 자체가 퍼셉션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퍼셉션했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진리와 선이 그 교회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었습니다.

 

사60:3-5가 좋은 예입니다. 문자에서는 흩어졌던 아들들과 딸들이 돌아오는 장면이지만, 속뜻에서는 교회 안으로 진리들과 선들이 모여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고 딸들은 안기어 온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의 재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회복시키실 때 진리와 선이 다시 풍성해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회가 살아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144편의 ‘이방인의 아들들’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들’이라는 말 자체가 언제나 참된 진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 줍니다. 무엇으로부터 태어났느냐에 따라 참된 진리가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진리의 교리들을 의미하지만 ‘이방인의 아들들’은 거짓을 의미합니다. 상응은 단어 하나를 기계적으로 치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전체 문맥과 그 근원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사43:6, 8에서 ‘아들들’과 ‘딸들’이 돌아오는 것과 함께 ‘맹인’이 보고 ‘귀먹은 자’가 듣게 되는 것도 같은 질서를 보여 줍니다. 진리와 선이 사람 안에 회복될 때 그는 비로소 영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과 연결되고, ‘듣는 것’은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아들들과 딸들의 귀환은 사람 안에서 진리와 선의 질서가 회복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54:1의 ‘홀로 된 여인의 아들들’과 ‘남편 있는 여인의 아들들’은 ‘아들’이 실제 혈육의 자녀를 넘어 교회에 속한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를 초대교회, 곧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로, 후자를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어떤 여인의 자녀가 많아진다는 것은 속뜻으로는 그 교회 안에서 진리가 풍성해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창5의 족보를 읽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셋, 에노스, 게난 등의 이름이 각각 교회를 나타내며, 그 연수는 그 교회의 상태와 상태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AC.489는 그 교회들이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반복되는 표현까지 열어 줍니다. ‘이름’은 교회를, ‘날들과 해들’은 그 교회의 상태와 변화를,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을 나타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놓이면 창5의 족보는 단순한 인명과 수명의 목록이 아니라 교회가 이어지고 변화하며 그 안에서 진리와 선이 계속 산출되는 영적 역사가 됩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출생’이라는 표현은 진리와 선의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영적 진리를 만들어 내거나 선을 생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이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선과 진리가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창5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반복되는 말은 태고교회의 생명력이 단순히 오래 존속했다는 데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받아들인 선과 진리가 그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영적 결실을 맺었다는 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AC.489 해설)

 

 

 

창5:4, AC.490, ‘딸들이 의미하는 사랑과 신앙의 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90말씀에서 ‘딸들’(daughters)은 자주 선들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9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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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4, AC.488, ‘천사들에게 시간은 상태와 그 변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8‘날들’(days)이 일반적인 상태를, ‘해들’(years)이 특별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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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

‘날들’(days)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고, ‘해들’(years)은 특별한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며,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해설

AC.486은 매우 짧지만 창5의 계보를 읽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열쇠를 한꺼번에 제시합니다. 창5:4에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속뜻에서는 이 ‘날들’과 ‘해들’, 그리고 ‘아들들과 딸들’이 모두 교회의 내적 상태와 그 안에서 생겨난 선과 진리를 나타냅니다.

 

먼저 ‘날들’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히 달력 위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가 거쳐 간 영적 상태의 지속과 변화를 포함합니다. 앞의 AC.482에서 이미 창5의 연수는 문자 그대로의 세속적 연수보다 교회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AC.486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날들’과 ‘해들’ 사이에도 의미의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해들’은 ‘특별한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날들과 해들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과 특별의 관계에 있습니다. ‘날들’이 한 교회가 지나온 상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표현이라면, ‘해들’은 그 전체 안에 포함된 보다 구체적인 상태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AC.482에서 가장 작은 시간과 가장 큰 시간 사이에도 유사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과 연결됩니다. 전체가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일반적인 상태 안에는 여러 특별한 상태들이 들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들과 딸들’입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자녀를 낳았다는 족보의 표현이지만, 속뜻에서는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한 교회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여러 진리와 선이 퍼셉션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AC.486은 단순히 ‘그들이 알고 있던 진리와 선’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와 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483과 직접 연결됩니다. 당시 여러 교회를 구별하는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각 교회는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들들과 딸들’은 외부에서 배워 기억 속에 저장한 교리적 지식이라기보다, 태고교회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내적으로 퍼셉션했던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창5의 ‘낳음’이라는 표현도 더욱 깊어집니다. 앞에서는 한 교회가 다른 교회로 이어지는 것을 ‘낳음’으로 표현했다면, 여기서는 한 교회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 역시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출생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말씀에서 영적인 생명이 실제 생명의 출생과 성장이라는 언어로 묘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면 사람과 교회 안에서 실제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영적 생명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5:4의 한 구절 안에는 교회의 전체적인 상태와 그 안의 구체적인 상태들, 그리고 그 상태 가운데서 생겨난 진리와 선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날들’은 일반적인 상태를, ‘해들’은 그 안의 특별한 상태들을,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가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나타냅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의 긴 생애와 많은 자녀가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한 교회가 일정한 상태를 지나면서 주님으로부터 수많은 선과 진리를 받아 풍성해지는 모습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AC.486 해설)

 

 

 

창5:4, AC.487, ‘날들과 해들에 기록된 교회의 상태 변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7‘날들’(days)이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1장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서 창조의 ‘날들’은 다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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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3, AC.485,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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