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60-468 심화

‘창5의 이름들은 왜 사람이 아니라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하는가?’

 

창5를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족보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고...’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 출생과 죽음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읽을 때 이 이름들을 사람의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AC.468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단호하게 ‘이 장의 이름들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교리들 또는 교회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창5의 문자적 형태를 부정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말씀의 속뜻으로는 이 족보가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일까요?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본문이 족보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과 ‘속뜻으로 그 이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AC.460-468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의 이름들을 통하여 태고교회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와 교리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했는지를 읽습니다. 따라서 AC.461의 ‘사람’은 천적이었던 태고교회 그 자체를, AC.462의 ‘셋’은 그보다 덜 천적인 두 번째 교회를, AC.463의 ‘에노스’에서 ‘므두셀라’까지는 세 번째에서 여덟 번째 교회를, AC.465의 ‘라멕’은 아홉 번째 교회를, AC.466의 ‘노아’는 열 번째 교회이자 새로운 고대교회를 나타냅니다. 창5의 족보 전체가 속뜻으로는 ‘교회의 계승과 상태 변화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창4와 창5를 읽을 때 생기는 중요한 질문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4에서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등장한 뒤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에게 셋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창5의 속뜻에서는 셋이 태고교회에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교회’라고 합니다. 만일 창4와 창5를 하나의 평면적인 연대기적 족보로만 읽으면서 동시에 각 이름을 교회의 순번으로 대응시키려 한다면 이 둘은 쉽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읽는 속뜻의 층위에서는 창4와 창5가 각각 교회의 서로 다른 영적 역사를 펼쳐 보입니다. 따라서 창4에서 어떤 이름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온다는 문자적 서술 순서를 그대로 창5의 ‘첫 번째 교회, 두 번째 교회...’라는 영적 계승 순서에 옮겨 놓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AC.468은 이 문제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앞 장, 곧 창4에서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이미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창5의 이름들 역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들’, 여기서는 교리 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 이름으로 표현되는 영적 성질과 상태를 담을 수 있다는 상응의 원리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에녹’, ‘라멕’, ‘노아’라는 이름을 만날 때 속뜻이 묻는 첫 질문은 ‘이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이 이름을 통하여 말씀은 어떤 교회 상태를 나타내는가?’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그러므로 아담, 셋, 에녹, 노아라는 역사적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AC.460-468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 대목에서 스베덴보리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속뜻으로는 이 이름들이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성 자체에 관한 질문과 속뜻으로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구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우리가 AC를 따라갈 때 우선 붙들어야 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문자적 본문은 족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속뜻은 교회와 교리의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창5의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인 형식도 새롭게 보입니다. 이름이 나오고, 나이가 나오고, 낳았다고 하고, 다시 살았다고 하고, 마침내 죽었다고 하는 동일한 구조가 계속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족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서 시작된 어떤 영적 상태가 다음 교회로 전달되고 변화하며 마침내 쇠퇴해 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각 이름과 수, 그리고 ‘낳음’과 ‘죽음’의 표현은 이후 본문 해설에서 각각 교회의 상태와 그 변화라는 관점에서 풀리게 됩니다.

 

결국 창5의 이름들을 교회와 교리로 읽는 것은 문자적 본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안에 담긴 더 깊은 말씀의 흐름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표면에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낳는 족보가 있고, 그 안에는 한 교회의 상태가 다음 교회의 상태로 이어지는 영적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 흐름의 끝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노아’라는 리메인스가 남습니다. 이것이 창5의 족보를 단순한 고대인의 명단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이어 가시고 쇠퇴 가운데서도 어떻게 다음 교회를 준비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게 하는 열쇠입니다. (AC.460-468 심화)

 

 

 

AC.468, 창5, ‘노아는 교회에 남아 있던 마지막 리메인스를 가리킨다’

속뜻 AC.468앞 장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이름들이 이단과 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이름들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뜻하며, 여기서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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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

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따라서 가장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권세 있는 자가 권세를 통하여 추구하고 부자가 재물을 통하여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천국은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그 사람은 실제로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국은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하는 것입니다. I have conversed with spirits who supposed heaven and heavenly joy to consist in being the greatest. But they were told that in heaven he is greatest who is least, because he who would be the least has the greatest happiness, and consequently is the greatest, for what is it to be the greatest except to be the most happy? It is this that the powerful seek by power, and the rich by riches. They were told, further,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desiring to be the least in order to be the greatest, for in that case the person is really aspiring and wishing to be the greatest; but that heaven consists in this, that from the heart we wish better for others than for ourselves, and desire to be of service to others in order to promote their happiness, and this for no selfish end, but from love.

 

해설

AC.452는 AC.450-451에서 계속되어 온 ‘천국에서의 높고 낮음’이라는 주제를 그 내적 핵심까지 끌고 들어갑니다. AC.450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지배하는 것이 천국이라는 공상을 바로잡았고, AC.451에서는 세상의 권세가 영계에서도 계속된다는 생각을 바로잡았습니다. 이제 AC.452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면 천국에서 참으로 큰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대답은 역설적입니다.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아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능력을 일부러 낮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높음과 영광에 관심을 두기보다 다른 사람의 선과 행복을 먼저 바라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가장 큼’의 기준 자체가 세상과 달라집니다.

 

특히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라는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권력이나 재물 그 자체를 최종 목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권세 있는 사람은 더 큰 권세에서, 부자는 더 많은 재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천국에서는 행복의 근원이 소유와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미묘한 함정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작은 자가 되어 가장 큰 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겉모습만 낮아졌을 뿐 내적 목적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역시 천국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겸손조차 자기 높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천국적 상태는 무엇인가? 본문은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자체가 자기에게서 이웃에게로 향하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거나 자신의 위치가 낮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과 행복 자체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드시 ‘쓰임’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실제로 그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라는 마지막 조건입니다. 칭찬받기 위해 돕거나, 인정받기 위해 섬기거나, 훗날 보답받기 위해 선을 행한다면 아직 자기 자신이 목적의 중심에 있습니다. 천국적 쓰임은 상대방의 선을 그 자체로 기뻐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AC.452는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가?’라는 질문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천국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가장 큰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이웃의 선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사랑으로 그 행복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막9:35)이 가리키는 천국의 질서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AC.452 해설)

 

 

 

AC.453, 창5 앞, '천국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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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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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

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영원한 다른 나라(another kingdom)에 있으며, 땅에서 누리던 그의 통치는 이미 끝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있는 곳에서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선과 진리, 그리고 그가 그 안에 있는 주님의 자비(the mercy of the Lord)에 따라서만 존중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 나라에서도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부와 군주의 총애에 따라 평가되는데, 그곳에서는 선과 진리가 부(wealth)이며 군주의 총애는 주님의 자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다른 어떤 방식으로 명령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역자(rebel)인데, 이는 그가 이제 다른 분의 나라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하였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possessed authority, retained in the other life the desire to exercise command. But he was told that he was now in another kingdom, which is eternal; that his rule on earth was dead; and that where he was now no one is held in estimation except in accordance with the good and truth, and the mercy of the Lord, in which he is; and further, that it is in that kingdom as it is on earth, where everyone is rated according to his wealth, and his favor with his sovereign; and that there good and truth are wealth, and favor with the sovereign is the Lord’s mercy; and that if he desired to exercise command in any other way, he was a rebel, seeing that he was now in the kingdom of another. On hearing this he was ashamed.

 

해설

AC.451은 바로 앞 AC.450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라는 가르침을 한 걸음 더 구체화합니다. AC.450이 ‘높아지고 지배하려는 욕망’ 자체를 보여 주었다면, AC.451은 세상에서 실제 권세를 누렸던 사람이 사후에도 그 권세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영계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육체의 죽음이 사람의 지배욕까지 자동으로 없애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은 세상에서 권세를 행사하던 습관과 즐거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사후에 전혀 다른 인격으로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형성한 자신의 사랑과 성품을 가지고 다른 삶으로 들어간다는 AC의 일관된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죽음은 몸을 벗는 것이지, 그 사람의 지배적 사랑을 즉시 바꾸는 사건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먼저 알려지는 것은 ‘너는 이제 다른 나라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직책과 권한은 그 나라 안에서만 효력이 있었으며 죽음과 함께 끝났습니다. 영계에서는 세상의 신분, 직위, 명성 자체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떠한 선을 사랑했으며, 어떠한 진리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내적 상태입니다.

 

특히 ‘선과 진리가 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을 부유하다고 하지만, 천국의 관점에서는 주님께 받은 선과 진리를 풍성하게 가진 사람이 부유합니다. 여기서도 단순히 진리를 많이 ‘아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선과 진리가 그 사람의 사랑과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부는 소유하여 자기를 높이는 재산이 아니라, 주님께 받아 이웃에게 쓰임이 될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더욱 깊은 표현은 ‘군주의 총애는 주님의 자비’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왕이나 권력자의 총애를 얻으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공로나 자격으로 주님의 총애를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선과 진리, 구원과 천국의 생명 자체가 주님의 자비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주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아 그것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근본적인 질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방식대로 계속 지배하려는 사람을 ‘반역자’라고 한 것은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그는 이제 ‘다른 분의 나라’, 곧 주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자기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뜻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것은 단순한 성격상의 결점이 아니라, 천국의 통치 질서 자체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 영광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섬기며 이웃에게 쓰임이 되기 위한 권위입니다.

 

마지막의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하였다’는 짧은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빼앗겨 굴욕을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세상의 질서를 천국에까지 가져오려 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AC.451은 결국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세상에서 맡은 직분과 영향력과 능력을 ‘내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 위에 서기 위해 사용하는가, 아니면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으로 여기며 쓰임을 위해 사용하는가? 천국에서는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얼마나 선과 진리 안에서 주님의 자비를 받아 살았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AC.451 해설)

 

 

 

AC.452, 창5 앞,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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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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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

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어서, 자신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위치에서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 영광(self-glory)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공상(fantasy)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들은 높은 곳으로 올려졌으며 거기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움 가운데 이것이 공상의 천국(a heaven of fantasy)임을 깨달았으며,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천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해설

AC.450은 천국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생각, 곧 ‘공간적으로 높은 곳이 천국이다’라는 생각과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천국의 행복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바로잡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같습니다. 천국을 주님과 사랑의 상태가 아니라 ‘높음’이라는 외적인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사람들이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잘 설명하며 영적인 것에 밝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천국적 성품을 지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한 지식조차 자기 영광과 우월감을 위해 사용한다면, 외적으로는 깨달음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내면은 천국의 질서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단순히 말로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원하던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높은 곳으로 올려 보내고 아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꿈꾸던 것을 실제로 얻고 보니 그것은 참된 천국이 아니라 ‘공상의 천국’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가 스스로에게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서 AC.450은 천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천국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가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을 다스리는 곳에 이미 천국의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지옥이라고까지 말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서 모든 책임이나 지도력, 혹은 뛰어난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는 받은 능력과 지위가 이웃을 섬기는 쓰임(use)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사랑이 지배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 아래에 두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외적으로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그 권한을 움직이는 사랑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천국의 질서와도 정확히 통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처럼(마20:26), 천국에서 ‘높아짐’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섬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참된 천국의 기쁨은 ‘내가 얼마나 높은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으로 얼마나 기쁘게 쓰임이 되는가’에서 옵니다.

 

결국 AC.450은 천국을 먼 곳에 있는 어떤 높은 세계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인간의 내면과 삶으로 돌립니다.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말씀과 진리는 나를 높이는가,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가?’가 천국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질문이 됩니다. 천국은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체어리티가 다스리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AC.450 해설)

 

 

 

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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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9, 창5 앞,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왜 세상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가' (AC.449-459)

천국과 천국의 기쁨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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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아무런 개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하여 저는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도록 내버려 두면, 마치 아직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Hitherto the nature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has been known to none. Those who have thought about them have formed an idea concerning them so general and so gross as scarcely to amount to any idea at all. What notion they have conceived on the subject I have been able to learn most accurately from spirits who had recently passed from the world into the other life; for when left to themselves, as if they were in this world, they think in the same way. I may give a few examples.

 

해설

AC.449는 창5 앞에 놓인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라는 경험편 전체의 문을 여는 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사람들이 천국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조차 실제로 ‘천국이 어떤 상태이며,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이라는 것은 천국을 그저 ‘좋은 곳’, ‘고통이 없는 곳’, ‘죽은 뒤 행복하게 사는 곳’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거친’이라는 것은 천국의 행복을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육체적·감각적 행복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실제 천국의 본질에는 거의 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기쁨은 장소나 환경에서 먼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후 AC.449-459와 창5 뒤의 경험편에서 계속 밝혀지듯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때 경험되는 기쁨과 평화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천국을 단지 아름다운 장소나 끝없는 안락함으로 상상한다면 천국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사실을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갓 세상을 떠난 사람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서 형성한 생각과 사랑과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영계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국에 대해서도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바로 이것이 스베덴보리에게 하나의 관찰 자료가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자신의 속생각을 감추거나 신학적으로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지만, 영계에서는 점차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가 드러납니다. 따라서 새로 온 영들이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사람들이 세상에서 실제로 어떤 천국관을 품고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449의 마지막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는 이후 글들을 읽는 중요한 안내입니다. 이제부터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관한 추상적인 정의부터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품고 있던 잘못된 천국관과 그들이 영계에서 겪은 경험을 하나씩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뒤따르는 사례들은 단순한 신기한 영계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의 기쁨은 과연 무엇인가’를 바로잡아 가는 일종의 단계적 교육입니다.

 

결국 AC.449는 독자에게 먼저 자신의 천국관을 점검하도록 합니다. ‘나는 천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고통이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사랑과 생명이 내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상태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천국에 대한 참된 준비는 천국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살아가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C.449 해설)

 

 

 

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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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8, 창4 뒤, ‘육체의 삶보다 더 밝고 분명하게 이어지는 사후의 삶’

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8나는 이 세상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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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9

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천국은 천사들(angels)이 거하는 곳입니다. 영들, 천사적 영들, 천사들은 모두 천적 존재들과 영적 존재들로 구분됩니다. 천적 존재들은 앞에서 다룬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앙을 받은 이들입니다. 영적 존재들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체어리티를 받고, 자신들이 받은 것으로부터 행하는 이들입니다. There are three heavens: the first is the abode of good spirits; the second, of angelic spirits, and the third, of angels. Spirits, angelic spirits, and angels are all distinguished into the celestial and the spiritual. The celestial are those who through love have received faith from the Lord, like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reated of above. The spiritual are those who through knowledges of faith have received charity from the Lord, and who act from what they have received.

 

이 주제는 이 장의 끝에서 계속됩니다. A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will follow at the end of this chapter.

 

해설

AC.459는 AC.449부터 계속된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한 첫 번째 경험담을 마무리하면서, 천국 자체의 질서를 간략하게 제시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천국을 어떻게 잘못 생각하는지를 주로 살펴보았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것, 다른 사람보다 큰 자가 되는 것,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것, 편안히 쉬는 것,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것, 영원히 찬양만 하는 것 등이 천국의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천국이 실제로 하나의 단순하고 획일적인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깊이와 질서를 가진 세계임을 밝힙니다.

 

여기서는 천국을 셋으로 구분하여 첫째는 ‘선한 영들’, 둘째는 ‘천사적 영들’, 셋째는 ‘천사들’의 거처라고 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초기 저술에서 사용된 천국 구분 방식입니다. 따라서 뒤의 저작들에서 더욱 정리되어 나타나는 세 천국의 용어와 곧바로 일대일 대응시키기보다는, 이 시기의 AC가 천국에 서로 다른 내적 단계가 있음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천국의 생명이 모두 동일한 깊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적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단계와 질서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문장입니다. 영들, 천사적 영들, 천사들은 다시 모두 ‘천적’과 ‘영적’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적’과 ‘영적’은 단순히 첫째·둘째·셋째 천국이라는 위치상의 구분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방식,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이 사람 안에서 어떠한 질서로 형성되어 있는가를 가리키는 더 근본적인 구분입니다.

 

천적 존재에 대해서는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앙을 받은 이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창2와 창3을 거치며 계속 보아 온 태고교회의 질서입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선을 지각하며, 그 선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적인 사람에게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지식이나 교리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나오는 진리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에서 신앙으로’ 나아가는 질서입니다.

 

반면 영적 존재들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체어리티를 받은 이들’입니다. 이들은 천적인 사람들처럼 사랑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과 교리를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주님께서 그 진리를 통하여 체어리티를 형성해 가십니다. 그리고 본문이 덧붙이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으로부터 행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람에게도 신앙의 지식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배운 진리가 체어리티가 되고 마침내 삶과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어느 쪽은 주님에게서 받고 어느 쪽은 자기 힘으로 이루는 차이가 아닙니다. 본문은 양쪽 모두를 분명히 ‘주님으로부터’라고 말합니다. 천적인 사람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신앙’을 받고, 영적인 사람은 신앙의 지식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체어리티’를 받습니다. 출발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생명의 근원은 모두 주님이십니다. 이것은 앞의 AC.457에서 천국의 무수한 다양성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하나를 이룬다고 한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마지막의 ‘이 주제는 이 장의 끝에서 계속됩니다’라는 문장은 AC.449-459가 독립된 삽입부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이 천국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창5의 본문으로 들어갔다가, 장의 해설이 끝난 뒤 다시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한 경험으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AC.449-459는 창5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직접적인 절별 해설이라기보다, 창5 앞에 놓인 하나의 독립된 영계 경험 기록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동시에 그 마지막에서 천적 질서와 영적 질서를 언급함으로써, 곧 이어질 창5에서 태고교회의 여러 후손과 그 교회의 변화 과정을 읽을 준비도 자연스럽게 갖추게 합니다. (AC.459 해설)

 

 

 

AC.460, 창5, ‘창5는 태고교회가 홍수 직전까지 이어져 간 과정을 다룬다’(AC.460-468)

창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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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8, 창5 앞, ‘주님의 천국 외에 다른 천국은 있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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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8

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혹스럽게도 다른 어떤 천국도 결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광기 어린 생각에 빠지며, 그리하여 이와 같은 공상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Evil spirits have sometimes supposed that there is another heaven besides that of the Lord, and they have been permitted to seek for it wherever they could, but to their confusion they could never find any other heaven. For evil spirits rush into insanities both from the hatred they bear against the Lord, and from their infernal suffering, and catch at such fantasies.

 

해설

AC.458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부터 이어져 온 천국에 관한 여러 잘못된 생각의 뿌리를 한층 더 깊은 곳에서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천국을 높은 곳, 입장이 허락되는 장소, 편안히 쉬는 곳,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곳, 혹은 영원히 찬양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여러 관념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근본적인 생각이 등장합니다. ‘주님의 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혹시 다른 천국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천국의 본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 그리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랑과 지배욕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행복하기를 원하는 영에게는 주님의 천국이 자신이 원하는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행복은 원하지만, 그 행복을 이루는 천국의 사랑과 질서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천국’을 상상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주님께서는 그 생각을 단지 말로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허락하십니다. AC.450의 영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천국을 경험하도록 허락받았고, AC.455의 사람이 자신이 천국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찬란한 빛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허락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강제로 빼앗기보다 그것이 실제로 어디에 이르는지를 스스로 경험하여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도 다른 천국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천국이라는 장소가 하나뿐이라는 말보다 훨씬 깊은 뜻을 지닙니다. 천국은 본질적으로 주님의 생명,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떠난 채 천국의 행복만 따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질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 천국의 기쁨만, 체어리티 없이 행복만, 주님 없이 천국만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악한 영들이 이러한 공상에 매달리는 원인으로 ‘주님에 대한 증오’와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함께 말합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배적인 악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악으로 인한 고통에서는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변화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이 자기 안의 악한 사랑에 있는 한, 장소를 바꾸거나 다른 천국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그 상태가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광기 어린 생각’이라는 표현도 단순히 이성을 잃었다는 의미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악은 영적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며, 악한 사랑이 사고를 지배하면 사람은 결국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주님을 미워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천국의 기쁨을 원하며, 자기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천국을 찾는 것 자체가 영적 질서에서는 모순인 것입니다.

 

결국 AC.458은 천국이 주님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독립된 행복의 세계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천국에는 AC.457에서 본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있지만, 그 모든 다양성을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는 근원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오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무수한 공동체와 무수한 종류의 행복이 있어도 ‘다른 근원에서 오는 또 하나의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을 원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과 질서를 원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랑과 질서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천국의 행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AC.458 해설)

 

 

 

AC.459, 창5 앞, ‘세 천국과 천적·영적 존재의 차이’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9천국은 셋입니다. 첫째 천국은 선한 영들(good spirits)이 거하는 곳이고, 둘째 천국은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이 거하는 곳이며,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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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7, 창5 앞, '천국의 행복은 왜 사람마다 똑같지 않은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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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국과 지옥 모두에 끝없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으며,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도 다른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와 결코 정확히 같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단지 정확히 똑같거나 동일한 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했을 때에도 영들의 세계와 천사 천국의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그 조화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존재도 그러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인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여러 구성 요소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각 공동체가 하나를 이루며, 모든 공동체가 함께 또한 하나, 곧 보편적 천국 전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어떤 천사는 영들, 곧 첫째 천국의 기쁨을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려도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고 열거하였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보다 덜 보편적인 종류들과 각 종류 안에 있는 세부적인 종류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에만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면, 천사적 영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한이 없겠으며, 더욱이 천사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Almost all who pass from this world into the other life suppose that hell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that heaven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yet in both there are endless diversities and varieties, and neither the heaven nor the hell of one person is ever exactly like that of another; just as no man, spirit, or angel is ever exactly like another. When I merely thought of there being two exactly alike or equal, horror was excited i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of spirits and of the angelic heaven, and they said that everyone is formed by the harmony of many components, and that such as is the harmony, such is the one,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to subsist that is absolutely a one, but only a one that results from a harmony of component parts. Thus every society in the heavens forms a one, and so do all the societies together, that is, the universal heaven, and this from the Lord alone, through love. A certain angel enumerated the most universal only of the genera of the joys of spirits, that is, of the first heaven, to about four hundred and seventy-eight, from which we may infer how innumerable must be the less universal genera and the species in each genus. And as there are so many in that heaven, how illimitable must be the genera of happinesses in the heaven of angelic spirits, and still more so in the heaven of angels.

 

해설

AC.457은 천국의 기쁨에 관한 논의를 ‘다양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넓혀 갑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천국을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한 행복을 누리는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천국은 획일적인 세계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랑과 선의 질이 다르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과 기쁨도 다르기 때문에 천국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지옥 역시 마찬가지로 각 사람의 지배적인 악과 거짓의 성질에 따라 상태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다’는 말은 각 사람이 자기만의 독립된 천국이나 지옥을 소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의 천국’과 ‘한 사람의 지옥’은 그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두 사람도 사랑과 사고와 삶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이나 불행의 질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조화’에 관한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어떻게 천국의 하나 됨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존재가 똑같아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가 조화를 이루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화음이 서로 다른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몸이 서로 다른 지체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다름’이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하나 됨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정확히 똑같은 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영들과 천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천국의 질서에서 살아 있는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랑, 똑같은 지혜, 똑같은 쓰임, 똑같은 기쁨을 가진다면 그것은 천국의 완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을 이루는 살아 있는 질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 존재의 고유성을 없애어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개인을 넘어 천국 공동체 전체에 적용됩니다. 각각의 천국 공동체가 그 안의 수많은 천사들의 조화를 통하여 ‘하나’를 이루고, 다시 서로 다른 모든 공동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보편적 천국’이라는 하나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의 근원은 공동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을 하나 되게 하는 중심은 동일한 개성이나 동일한 역할이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사랑입니다.

 

첫째 천국의 기쁨만 해도 가장 큰 범주로 나누어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는 천사의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도 세부적인 기쁨들을 센 숫자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린 것입니다. 각각의 큰 범주 아래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천국의 행복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내적 천국으로 갈수록 그 다양성은 더욱 헤아릴 수 없게 됩니다.

 

결국 AC.457이 보여 주는 천국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 안에서 참으로 자기답게 되면서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앞의 AC.454-456에서 천국의 행복이 사랑과 체어리티와 쓰임에 있음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그 사랑과 쓰임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천국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차이를 없애어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과 쓰임과 기쁨을 사랑 안에서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완전함은 획일성에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다양성과 조화에 있습니다. (AC.457 해설)

 

 

 

AC.458, 창5 앞, ‘주님의 천국 외에 다른 천국은 있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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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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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는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다른 어떤 활동도 없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 자체가 곧 활동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이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기를 원하시며, 그들은 그것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행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조차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데서 기쁨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노릇하는 것과 같은 삶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러한 삶이 모든 삶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삶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결합되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The best instructed of them all said that heavenly joy consists solely in praising and glorifying the Lord, being a life destitute of any doing of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this is an active life. But they were told that praising and celebrating the Lord is not such an active life as is meant, but is an effect of that life; for the Lord has no need of praises, but wills that they should do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it is according to these that they will receive happiness from the Lord. But still these best instructed persons could form no idea of joy, but of servitude, in doing these goods of charity. But the angels testified that such a life is the freest of all, and that it is conjoined with happiness unutterable.

 

해설

AC.456은 지금까지 나온 잘못된 천국관 가운데 가장 종교적이고 경건하게 보이는 생각을 다룹니다. 앞에서는 천국을 편안히 쉬는 곳이나 찬란한 빛 가운데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다면, 여기서는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천국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찬양 자체가 아니라, 주님을 찬양하는 것과 이웃에게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것을 서로 분리하여 전자만을 천국의 활동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본문이 이들을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은 천국이 단순한 휴식이나 감각적인 즐거움의 장소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삶을 주님을 향한 찬양과 영화롭게 함에만 한정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선을 행하는 실제 삶은 그 중심에서 제외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배와 삶,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서로 떼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라는 말이 AC.456의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이것은 찬양의 가치를 낮추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찬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밝히는 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선이 사람 안에 들어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체어리티의 삶으로 나타날 때, 그 삶에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천국적 삶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적 삶에서 피어나는 고백이며 기쁨입니다.

 

특히 ‘주님은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상당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찬양이나 예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이나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인간과 천사의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찬양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마음을 주님께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찬양이 참된 찬양이 되려면 예배의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체어리티의 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단지 주님을 높이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선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456은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합니다. 찬양을 오래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신앙생활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뜨겁게 주님을 찬양하였더라도 그 예배가 이후의 삶에서 용서와 정직과 섬김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을 들으면서도 거기에서 기쁨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노릇’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오해를 보여 줍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이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고 섬기는 것은 의무와 속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는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이웃의 선을 자신의 기쁨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에게 쓰임이 되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느낍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이 ‘모든 삶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삶’이며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결합되어 있다고 증언합니다.

 

결국 AC.456은 ‘찬양이냐 체어리티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둘의 참된 질서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을 받고, 그 사랑으로 이웃에게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며, 그 삶에서 다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예배와 천국의 삶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고, 이웃 사랑의 삶은 다시 주님을 향한 찬양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으로 자신의 영광을 채우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천국의 삶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AC.456 해설)

 

 

 

AC.457, 창5 앞, '천국의 행복은 왜 사람마다 똑같지 않은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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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5, 창5 앞, '찬란한 빛 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천국의 기쁨이 될 수 없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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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

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빛이 황금빛으로 보일 때와 같은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천국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 천국의 기쁨이 안락하게 쉬는 삶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빛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있으면서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크게 기뻐하였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 빛이 점차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One who in this world had been most lear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being in a glorious light, like that which exists when the solar rays appear of a golden hue, so that he too supposed it to consist in a life of ease. In order that he might know himself to be in error, such a light was granted him, and he, being in the midst of the light, was as delighted as if he were in heaven, as indeed he said. But he could not remain long in it, for it gradually wearied him and became no joy at all.

 

해설

AC.455는 앞의 AC.454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454에서는 천국의 행복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한층 더 아름답고 영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찬란한 황금빛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훨씬 천국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역시 천국의 기쁨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오류라고 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사람이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AC.450에서도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잘못된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천국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천국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에 관한 지식과 천국의 생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황금빛의 찬란한 빛’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빛을 천국의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영계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에 상응하고, 천국의 빛은 세상의 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것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에서 반복하여 묘사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천국의 빛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바라보고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무는 것만으로 천국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경험이 허락됩니다. 그는 실제로 황금빛처럼 찬란한 빛 가운데 놓였고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여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도 앞의 경험들과 같은 방식이 나타납니다. 그의 잘못된 생각을 말로만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황홀했던 빛이 점차 그를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적인 자극은 아무리 아름답고 강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광경이 계속 새로워지는 것으로 영원한 기쁨을 유지하려 한다면, 결국 사람은 더 새롭고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바로 앞의 AC.454와 연결하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빛은 천국의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하나이지만,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은 빛 자체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가 천사들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쓰임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빛도 그 생명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AC.455는 결국 우리의 천국관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고통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빛과 풍경을 영원히 바라보며 쉬는 곳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행복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서로에게 쓰임이 되는 ‘살아 있는 행복’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라도 그것만으로는 결국 익숙해지는 게 다지만,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끊임없이 새로운 쓰임으로 흘러가는 생명은 천국의 기쁨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AC.455 해설)

 

 

 

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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