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75

그의 기억지식과 이성[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the herb out of the ground watered by the mist (verses 5–6).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5, 6절)

 

해설

AC.75는 창2:5-6에 나오는 ‘관목’, ‘초목’, ‘지면’, ‘안개’를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련하여 읽기 시작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개요에서 먼저 사람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여기서 관목과 초목은 단순한 식물에 관한 묘사로만 읽히지 않고, 앞 번호에서 말한 천적 인간에게 있는 기억지식과 이성에 속한 것들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기억지식과 이성’이라는 순서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이 되면 기억지식이나 이성이 없어지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다만 AC.75는 아직 천적 인간에게서 기억지식과 이성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전 상태와 비교하여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적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기억지식과 이성이 천적 인간을 만든다’는 식으로 미리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관목과 초목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이 개요는 기억지식과 이성만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적셔지는 상태까지 함께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지면’은 무엇이며, ‘안개’는 무엇이고, 왜 비가 아니라 안개로 적셔지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AC.75는 아직 그 각각의 의미와 관계를 풀어 설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은 창2:5-6의 여러 표현이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의 상태를 묘사한다는 큰 윤곽을 먼저 보여 줍니다.

 

따라서 AC.75에서는 관목은 무엇, 초목은 무엇, 지면은 무엇, 안개는 무엇이라고 각각 고정된 상응표를 먼저 만드는 것보다 스베덴보리의 설명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한 문장에서 확실히 붙들 수 있는 것은 천적 인간에게도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으며, 창2:5-6의 관목과 초목 및 그것들을 적시는 안개의 모습이 그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각각의 표현이 어떤 관계 속에서 그 상태를 나타내는지는 뒤따르는 상세 해설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AC.75 해설)

 

 

 

AC.76, 창2:1-17 개요, ‘그의 생명은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된다’ (7절)

AC.76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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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2-3절)

AC.74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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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 3절)

 

해설

AC.74는 창2:2-3의 속뜻을 한 문장으로 먼저 제시합니다. AC.73에서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그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 천적 인간을 창조의 ‘일곱째 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창1의 여섯 날과 창2의 일곱째 날은 단순히 자연계의 창조가 진행된 뒤 하루가 더해지는 순서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앞의 여섯 날이 인간의 거듭남과 관계되어 있었다면, 그 뒤에 오는 일곱째 날 역시 그 거듭남의 연속선상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일곱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고 풀어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안식일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창2:2-3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말씀을 인간의 거듭남과 연결하여 읽을 때, 그 일곱째 날은 바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다만 AC.74는 아직 왜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대응 관계를 개요로 먼저 제시할 뿐입니다.

 

두 번째 명제인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다가 피곤해져 쉬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주님께서 ‘쉬신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AC.74가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뒤에서 일곱째 날과 안식, 거듭남의 싸움,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일의 관계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개요에서 그 설명을 모두 앞당겨 넣기보다,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는 두 명제를 그대로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AC.74는 이렇게 AC.73에서 제시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라는 변화를 창2의 일곱째 날과 연결합니다. 이제 독자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다음 설명을 따라가게 됩니다. 왜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지, 그리고 왜 그 상태에서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지입니다. 이 질문들은 이 번호에서 미리 완성해서 답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직접 그 이유를 밝히는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AC.74 해설)

 

 

 

AC.75, 창2:1-17 개요,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 기억지식과 이성’ (5-6절)

AC.75그의 기억지식과 이성[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에서 난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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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3, 창2:1-17 개요,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 (1

창2:1-17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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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창2:1-17)

 

AC.73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된 다음,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바로 이것을 다룹니다. (1절) When from being dead a man has become spiritual, then from spiritual he becomes celestial, as is now treated of (verse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1절)

 

해설

AC.73은 창2:1-17 전체의 첫 번째 개요이며, 동시에 창1과 창2를 이어 주는 매우 중요한 한 문장입니다. 창1에서는 영적으로 죽어 있던 사람이 거듭남의 여섯 날을 거치면서 영적 인간이 되는 과정이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제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된 다음,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2는 창1과 별개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1에서 이루어진 거듭남이 더 깊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다룹니다.

 

여기서 ‘죽어 있던’이라는 표현은 특히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바로 앞 AC.67-72에서 죽음 이후의 삶과 사람이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지는 일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문맥을 놓치면 육체의 죽음에서 영적 존재가 되고 다시 천적 존재가 된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73은 창2 본문의 개요로 돌아온 첫 번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거듭나기 전 인간의 영적 상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후세계에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승급한다는 설명이 아니라, 거듭남의 질서 안에서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말입니다.

 

또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된다’는 말을 단순히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하나의 등급표처럼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이 한 문장에서는 두 상태의 정확한 차이가 아직 설명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지는 번호들에서 일곱째 날, 주님의 안식, 퍼셉션, 사랑과 신앙, 속 사람과 겉 사람 등의 내용을 통하여 그 차이를 차례로 열어 갑니다. 그러므로 AC.73에서는 우선 창1에서 다루어진 영적 인간이 창2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큰 방향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원문의 ‘then from spiritual he becomes celestial’은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아무 관계 없이 처음부터 별도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한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죽어 있던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고,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창2:1-17의 여러 세부 사항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틀이며, AC.73은 그 전체 과정을 단 한 문장으로 먼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AC.73 해설)

 

 

 

AC.74,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신다’(2-3절)

AC.74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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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앞,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가’

AC.72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말하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ell how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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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상태에도 이르지만, 이렇게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이는 적고(few),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e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해설

AC.13은 앞에서 설명한 거듭남의 여러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짧게 덧붙입니다. 여기서 ‘이 상태’는 바로 앞 AC.12에서 설명한 여섯 번째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며,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적고,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앞의 여섯 상태를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차례차례 통과하여 마침내 같은 지점에 도달하는 고정된 프로그램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을 사람들의 영적 수준을 판정하는 서열표처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다섯 번째 상태이고 저 사람은 두 번째 상태다’라고 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AC.13의 목적이 아닙니다. 앞선 AC.7-12에서 살펴본 상태들은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질서를 보여 주는 것이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류하기 위한 기준표가 아닙니다. 특히 외적으로 경건하게 말하거나 선을 행하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내적 상태를 알 수는 없습니다. AC.9에서도 이미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일과 같은 선을 행하지만,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명이 없는 상태가 있을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외적인 행동의 모양만이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내적 원리에서 나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C.13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일곱 번째 상태’입니다. 그러나 AC.13 자체는 이 일곱 번째 상태가 무엇인지 여기서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의 흐름과 AC.12 마지막에서 사랑이 지배권을 얻고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한 내용, 그리고 이어지는 창조의 일곱째 날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짧은 문장만을 근거로 일곱 번째 상태를 여러 영적 개념과 곧바로 동일시하여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거듭남의 상태가 깊어질수록 실제로 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이 적다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왜 뒤의 상태로 갈수록 사람이 줄어드는지를 AC.13이 설명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인내하지 못해서인지, 시험이 어려워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를 이 번호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AC.13은 이유를 분석하기보다 단지 실제 상태의 차이를 짧게 알려 줍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오늘날’(at this day)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은 첫 번째 상태에 있고, 어떤 사람들은 두 번째, 어떤 사람들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상태에 있으며, 여섯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적고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을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통계적 법칙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 ‘적은 이들’, ‘거의 아무도 없음’이라는 표현 역시 정확한 비율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부분이 첫 번째 상태에 있다’는 말을 곧바로 ‘대부분의 신앙인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확대하는 것도 AC.13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가 자신이 말하는 거듭남의 여러 상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정도로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따라서 AC.13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7-12를 읽는 방식에 중요한 균형을 잡아 줍니다. 창조의 날들이 거듭남의 질서를 보여 준다고 해서 그것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속도와 같은 깊이로 통과하는 일률적인 단계표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남으로 이끄시는 질서는 분명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관심은 다른 사람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지 않고, 주님께서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을 질서 있게 하고 계시는지를 살피는 데 있어야 합니다. AC.13은 거듭남의 높은 상태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도록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거듭남이 얼마나 깊고 실제적인 주님의 역사인지를 겸손하게 바라보게 하는 짧은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13 해설)

 

심화

1. ‘일곱 번째 상태’와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의 비교

 

AC.13, 심화 1, ‘일곱 번째 상태’와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의 비교

AC.13.심화1. ‘일곱 번째 상태’와 수도원 전통의 ‘완덕’, ‘합일’의 비교 수도원 전통에서 말해 온 ‘완덕’이나 ‘합일’과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일곱 번째 상태’ 사이에는 분명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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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 창1, ‘주님은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AC.14이어지는 모든 글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을 뜻하며, 다른 이름을 덧붙이지 않고 단지 ‘주님’(the Lord)이라고만 부릅니다. 온 천국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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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창1 개요, ‘신앙과 사랑이 함께 움직이는 영적 인간의 여섯 번째 상태’

AC.12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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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므로, 그는 ‘형상’(image)이라 하는 영적 인간이 됩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것들이 그의 ‘음식’(food)이 됩니다. 또한 그의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로부터 싸움이 일어나며,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고, 그 후 그는 천적 인간이 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 “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24-31)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의 여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는데, 이는 창1의 여섯째 날, 곧 짐승과 사람의 창조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앞선 다섯 번째 상태에서 신앙은 이미 살아 있는 생명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사람은 신앙으로 말하며 진리와 선 안에서 확고해지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만이 아니라 사랑이 함께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람은 신앙으로 말할 뿐 아니라,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순서를 제시합니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단계의 사람이 진리를 통하여 선으로,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는 거듭남의 질서 가운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앞선 상태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신앙이 이제 사랑과 함께 작용하면서, 사람이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짐승’은 일상적인 말에서처럼 거칠고 악한 본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여섯째 날에 등장하는 생물들과 짐승들은 거듭나는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들을 표상합니다. 다만 각각의 생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뒤의 해당 절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므로, 여기서는 여섯 번째 상태에서 더욱 충만한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큰 흐름을 붙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의 사람을 ‘영적 인간’이라고 부르며, 동시에 그를 ‘형상’(image)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26-27의 ‘하나님의 형상’과 직접 연결됩니다. 여기서는 형상의 모든 의미를 미리 풀기보다,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 거듭난 사람을 스베덴보리가 ‘영적 인간’이며 ‘형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먼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형상’의 구체적인 속뜻은 이어지는 창조 본문의 해설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의 삶은 두 층위로 유지됩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것들을 그의 ‘음식’(food)이라고 합니다. 몸이 음식을 통해 유지되듯이 영적 생명도 그것을 기르고 유지하는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지식만이 아니라 체어리티의 행위들이 함께 언급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 진리를 선한 삶으로 살아 내는 것이 함께 영적 생명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됩니다. 이것은 몸이나 감각 자체가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연계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며 감각을 통하여 세상을 접합니다. 문제는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 가운데 무엇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입니다. 바로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AC.12는 이 싸움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그 방향과 결과를 짧게 제시합니다. 싸움은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며, 그 후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됩니다. 여기서 사랑은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뜻합니다.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던 사람이 마침내 사랑이 지배하는 상태에 이를 때, 스베덴보리는 그를 천적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단순히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의 사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AC.12에서는 아직 이 둘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듭남의 진행 가운데 처음에는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사랑이 지배적인 원리가 되는 질서입니다.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더 깊은 차이는 이후 AC에서 훨씬 정교하게 밝혀집니다.

 

결국 AC.12는 창조의 여섯째 날에 대응하는 거듭남의 여섯 번째 상태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사람은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며,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 인간’이며 ‘형상’이라고 불립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로 양육되고, 자연적 생명과의 싸움을 지나 마침내 사랑이 지배하는 질서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AC.12는 여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천적 상태를 바라보게 합니다. (AC.12 해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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