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6에는 ‘우리의형상을따라우리의모양대로우리가사람을만들고’라고 되어 있고, 창5:1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모양대로’ 만드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상’과 ‘모양’을 비슷한 의미의 반복으로 읽기 쉽지만, AC.472-473에서 스베덴보리는 두 표현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하나님의형상’(imageofGod)은 영적 인간을, ‘하나님의모양’(likenessofGod)은 천적 인간을 의미하며, ‘형상은모양을위한준비단계’라고 설명합니다.
이 구별은 AC.472의 ‘창조하다’(create)와 ‘만들다’(make)의 구별과 연결됩니다. 사람이 새롭게 ‘창조된다’는 것은 거듭나서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영적 인간이 된 사람이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은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설명을 함께 놓으면 ‘창조-영적인간-형상’과 ‘만듦-천적인간-모양’이라는 거듭남의 질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거듭남의 시작과 진행 가운데 주님의 질서가 사람 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상태이고, 하나님의 모양은 그 질서가 사랑과 삶에 더욱 온전히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영적 인간은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인정하며, 그 진리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 갑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아직 싸움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주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진리이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순종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따라 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주님의 것이 그의 생각과 삶 안에서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적 인간에게서는 질서가 더욱 깊어집니다. 그는 단지 진리가 명령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보고 행합니다. 그래서 AC.473은 천적 인간이 주님의 ‘모양’인 이유를 ‘전적으로주님의다스림을받기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를 외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의지와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을 기쁘게 받아들이므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점점 그의 자유와 기쁨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양’이 ‘실제적인닮음’(realreplica)이라는 표현도 사람이 신적인 존재가 되거나 주님과 동일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언제나 피조물이고 생명 자체는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려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을 받아 살아갈수록, 그의 생각과 의지와 행위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질서가 더욱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적 인간은 영적 인간보다 더욱 실제적인 ‘모양’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상에서모양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외형이 점점 하나님처럼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중심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진리를 알고 믿고 순종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진리를 사람의 사랑과 의지에까지 심으십니다. 마침내 사람은 ‘진리이기때문에억지로행하는상태’에서 ‘선을사랑하기때문에기쁘게행하는상태’로 나아갑니다. 신앙이 사랑으로 들어가고, 진리가 선과 결합하며, 외적인 순종이 내적인 기쁨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태고교회를 ‘천적교회’라고 부르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고유한 상태는 단순히 많은 진리를 알고 있었던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한 사랑을 중심으로 살았으며,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는 퍼셉션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창5:1에서 태고교회를 다시 소개하면서 단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모양대로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이 교회의 고유한 천적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차이는 거듭남이 어디를 향하여 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주셔서 먼저 당신의 ‘형상’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진리를 사랑과 결합시키고 우리의 의지와 삶 속에까지 심으셔서, 우리가 점점 당신의 ‘모양’을 닮아 가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목적은 단지 올바른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사랑이 되고 그 사랑이 삶이 되어 주님의 선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AC.469-474심화2)
AC.478은 창세기 초반의 ‘아담’을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는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밝히는 대목입니다. 핵심은 히브리어 ‘아담’(Adam)이 본래 ‘사람’을 뜻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 대목의 ‘아담’을 처음부터 한 개인의 고유명사로 읽기보다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읽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속뜻으로는 태고교회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가 단수와 복수의 변화입니다. 창1:26에서 하나님은 ‘사람을만들고’라고 단수로 말씀하신 뒤 곧이어 ‘그들로...다스리게하자’고 복수로 말씀하십니다. 창5:2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뒤 ‘그들의이름을사람이라일컬으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 자체에서 ‘사람’은 어느 한 남성 개인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남자와 여자를 함께 포괄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문법적 특징을 태고교회라는 집단적 의미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로 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AC.475-477과도 이어집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신앙과 사랑을 의미하고, 이 둘이 결혼을 이루었을 때 더 이상 둘을 따로 ‘남자와여자’라고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homo)이라 합니다. 그리고 AC.477에서는 가장 높은 의미로 오직 주님 자신만이 사람이시며,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으로서, 영적 교회는 주님의 ‘형상’으로서 사람이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창5:2의 ‘사람’은 단순한 종(種)으로서의 인간이라는 뜻을 넘어, 주님의 형상과 모양을 받아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AC.478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다루는주제는인류최초의어떤한사람의창조가아니라태고교회’라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초반의 속뜻을 읽는 그의 기본 원리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아담’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개인의 생애를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최초의 사람들을 어떻게 교회로 세우시고 그 교회를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셨는가를 읽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AC.478의 논점은 창세기 본문의 역사성 전체를 한 문장으로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분명히 밝히는 것은 말씀의 속뜻에서 ‘아담’이 인류 최초의 한 개인을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 역시 ‘실제로아담이라는개인이존재했는가?’라는 문제로 곧바로 옮겨가기보다, 왜 주님께서 말씀에서 하나의 교회를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내셨는가를 이해하는 데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보면 창5:1의 ‘아담계보의책’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은 속뜻으로 한 개인 아담의 생물학적 후손 명단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로부터 여러 후대 교회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교회의 계승에 관한 기록입니다. AC.469에서 ‘계보의책’을 태고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열거라고 한 것과 AC.470에서 이어지는 이름들이 실제적인 것들, 곧 교회적 실재를 의미한다고 한 설명이 여기서 서로 연결됩니다.
결국 AC.478은 ‘아담’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다시 한번 창5를 읽는 관점을 정리해 줍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후손들의 계보가 이어지지만, 속뜻으로는 ‘사람’이라 하는 태고교회와 그 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여러 교회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따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어떤 영적 상태들을 지나 노아에 이르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AC.478해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
AC.477
‘사람’(man)이태고교회를의미한다는것은앞에서자주말하고보여주었습니다.가장높은의미로는오직주님자신만이사람이시기때문입니다.이로부터천적교회는주님의모양이므로사람이라하고,이후영적교회도주님의형상이므로사람이라합니다.그러나일반적인의미로는인간다운이해(humanunderstanding)를가진모든이를사람이라합니다.사람은이해하는능력으로말미암아사람이기때문이며,그능력에따라어떤사람은다른사람보다더사람답습니다.그러나사람과사람사이의구별은마땅히주님을향한사랑에기초한그의신앙에따라이루어져야합니다.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But in a general sense everyone is called a man who has human understanding; for man is man by virtue of understanding, and according thereto one person is more a man than another, although the distinction of one man from another ought to be made according to his faith as grounded in love to the Lord.
[2]태고교회와모든참된교회,그리고그로부터교회에속한사람들,곧주님을향한사랑과주님을믿는신앙으로살아가는사람들이특별히‘사람’이라일컬어지는것은말씀으로부터분명합니다.에스겔에서는,That the most ancient church, and every true church, and hence those who are of the church, or who live from love to the Lord and from faith in him, are especially called “man,”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Ezekiel:
하였습니다.여기서‘옛적’(antiquities)은태고교회를,‘처음’(beginnings)은고대교회들을의미하며,‘이스라엘족속’과‘내백성이스라엘’은초대교회,곧이방인들의교회를의미합니다.이모든교회를‘사람’이라합니다.where by “antiquities”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es; by the “houseofIsrael” and “peopleIsrael,” the primitive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ll which churches are called “man.”
하였습니다.여기서‘옛날’(daysofeternity)은태고교회를,‘역대’(generationandgeneration)는고대교회들을의미합니다.‘인종’(sonsofman)은주님을향한신앙안에있던사람들이며,이신앙이‘이스라엘자손의수효’입니다.거듭난사람을‘사람’이라하는것은예레미야에서도나타납니다.where by the “daysofeternity” is meant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andgeneration,” the ancient churches; the “sonsofman” are those who were in faith toward the Lord, which faith is the “numberofthesonsofIsrael.” That a regenerate person is called “man,” appears from Jeremiah:
하였습니다.여기서‘땅’은외적인간(externalman, 겉사람)을,‘하늘’은내적인간(internalman, 속사람)을,‘사람’은선에대한사랑을,‘공중의새’는진리에대한이해를의미합니다.where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heaven” the internal; “man” the love of good; the “birdsoftheheavens” the understanding of truth.
하였습니다.여기서첫번째‘사람’에해당하는말은‘에노스’(Enosh)이고,두번째는‘아담’(Adam)입니다.where the word for man in the first place is “Enosh,” and in the second is “Adam.”
해설
AC.477의 출발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교회를 ‘사람’이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스베덴보리는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답합니다. ‘가장높은의미로는오직주님자신만이사람이시기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교회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람의 기준이십니다. 교회와 거듭난 사람이 ‘사람’이라 하는 까닭은 그들 자신에게서 참된 인간성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과 진리를 받아 주님의 것을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AC.473의 ‘형상’과 ‘모양’이 다시 연결됩니다.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이므로 사람이라 하고, 영적 교회는 주님의 ‘형상’이므로 역시 사람이라 합니다. 따라서 창5:1-2에서 ‘하나님의모양’과 ‘사람’이라는 표현이 이어지는 것은 우연한 배열이 아닙니다. 태고교회가 주님의 모양을 이루는 천적 교회였기 때문에 말씀은 그 교회를 특별히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사람은이해하는능력으로말미암아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 떼어 놓으면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참된 사람이라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즉시 그 기준을 바로잡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구별은 ‘주님을향한사랑에기초한신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이해’(understanding)는 단순한 지능이나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할 수 있는 인간의 내적 능력과 관계됩니다. 그리고 그 이해 역시 사랑과 결합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성을 이룹니다.
이어지는 수많은 성경 인용은 바로 이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겔36:10-12에서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단순한 인구 증가만을 뜻하지 않고 교회가 회복되고 번성하는 것을 속뜻으로 포함합니다. 그래서 ‘옛적’은 태고교회, ‘처음’은 고대교회들을 가리키며, 이스라엘과 이방인 가운데 세워진 교회까지 모두 ‘사람’이라는 이름 아래 묶입니다. 시대와 외적 형태는 달라도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 살아 있는 교회라는 점에서는 모두 ‘사람’인 것입니다.
신32:7-8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 줍니다. ‘옛날’과 ‘역대’는 태고교회와 고대교회들을 가리키고, ‘인종’은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렘4:23, 25에서는 정반대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사람이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속뜻으로는 ‘선에대한사랑’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공중의 새가 날아갔다는 것은 ‘진리에대한이해’까지 사라진 상태입니다. 사랑의 선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사라지자 말씀은 그것을 ‘사람이없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람’의 의미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렘31:27의 ‘사람의씨와짐승의씨’에서는 ‘사람’이 내적 인간(internal man, 속사람)을, ‘짐승’이 외적 인간(external man, 겉사람)을 의미합니다. 사6:12와 사24:6에서는 선과 진리 또는 신앙이 사라지는 교회의 황폐함을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이 인용들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말씀에서 ‘사람’이라는 말은 단지 생물학적 인간을 가리키는 데 머물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 참으로 살아 있는 내적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33:8-9와 사13:12-13에서 ‘에노스’(Enosh)와 ‘아담’(Adam)이라는 히브리어가 구별되어 제시되는 것도 앞으로 창5의 이름들을 읽는 데 중요합니다. 창5의 이름들은 단순히 사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담고 있으며, ‘사람’을 뜻하는 여러 표현 자체에도 서로 다른 내적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에노스’는 곧 창5에서 하나의 교회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다시 다루어지므로, 여기서는 그 의미가 앞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C.477은 ‘사람이란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교회와 개인에게로 내려옵니다. 가장 높은 의미로 참된 사람은 오직 주님이시며, 교회는 주님의 모양 또는 형상을 받아 ‘사람’이 되고, 개인 역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를 받아 거듭날수록 참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창5:2의 ‘그들의이름을사람이라일컬으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를 통칭하여 인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혼을 이루고 주님의 모양을 나타내는 교회, 바로 그것이 말씀의 속뜻으로는 ‘사람’입니다. (AC.477해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5:1)
AC.474
그러므로여기서다루는주제는태고교회의출생또는번성(birthorpropagation)이므로,먼저이교회가영적상태에서천적상태로나아간것이묘사됩니다.이후의번성은바로이상태로부터이어지기때문입니다.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해설
AC.474는 AC.469에서 시작된 창5:1의 해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왜 창5의 계보가 곧바로 셋과 그 후대의 교회들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태고교회 자체의 상태를 설명하는지를 밝혀 줍니다. 창5가 다루려는 것은 태고교회의 ‘출생또는번성’입니다. 여기서 ‘번성’은 단순히 자녀가 태어나 인구가 늘어나는 생물학적 번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부터 그 성격을 이어받은 후대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계속되는 교회적 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후대의 교회들을 설명하려면 먼저 그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창5:1은 태고교회가 먼저 ‘영적상태에서천적상태로’ 나아간 것을 묘사합니다. AC.472와 AC.473에서 살펴본 ‘창조하다-영적인간-하나님의형상’과 ‘만들다-천적인간-하나님의모양’이라는 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창5의 여러 교회가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이후의번성은바로이상태로부터이어진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셋, 에노스, 게난 등의 교회들은 아무 관계 없이 차례로 등장하는 독립된 교회들이 아니라, 먼저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파생되고 계승되는 교회들입니다. 물론 후대로 내려가면서 처음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장 개요에서 보았듯이 그 상태는 점차 변화하고 쇠퇴하여 마침내 노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승의 출발점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입니다.
이것은 ‘계보의책’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문자적으로 계보에는 부모와 자녀의 출생이 기록되지만, 속뜻으로는 교회가 교회를 낳고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이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낳았다’는 표현을 앞으로 만날 때에도 단순히 개인의 출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 상태로부터 다음 교회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AC.474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창4와 창5의 관계에도 하나의 중요한 기준을 더해 줍니다. 적어도 창5의 계열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그 출발점을 분명히 ‘영적상태에서천적상태가된태고교회’에 두고 있으며, 그 이후의 교회들이 ‘이상태로부터’ 번성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5는 태고교회 자체의 천적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후대 교회들의 계승과 변화를 추적하는 하나의 분명한 교회적 계열입니다. 이것이 창4의 계열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하지만, 창5자체의 출발점과 진행 방향은 이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AC.469-474에서 창5:1은 앞으로 펼쳐질 교회사의 기준점을 세웁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여 영적 인간으로 만드시고, 다시 사랑으로부터 살아가는 천적 인간으로 완전하게 하셨으며, 그렇게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이후의 여러 교회가 이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움직이는 가장 깊은 시작은 인간의 혈통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시는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AC.474해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5:1)
AC.473
‘하나님의모양’(likenessofGod)이천적인간을,‘하나님의형상’(imageofGod)이영적인간을의미한다는것은앞에서도보여준바있습니다.‘형상’(image)은‘모양’(likeness)을위한준비단계이며,‘모양’은실제적인닮음(realreplica)입니다.천적인간은전적으로주님의다스림을받기때문에주님의‘모양’이기때문입니다.That a “likenessof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of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해설
AC.473은 우리가 흔히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형상’과 ‘하나님의모양’을 거듭남의 서로 다른 상태로 구별합니다. ‘형상’은 영적 인간을, ‘모양’은 천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형상은모양을위한준비단계’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무관한 두 종류의 인간을 나란히 놓은 구별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앞선 상태와 더 완성된 상태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형상’이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주님의 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직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의지와 주님의 뜻 사이에서 싸움과 선택을 경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상’은 ‘모양’을 향한 준비입니다.
반면 ‘모양’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실제적인닮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유를 곧바로 밝힙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주님의다스림을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적 인간이 주님과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의지와 삶의 질서가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그 삶에서 주님의 사랑과 선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AC.472의 ‘창조하다’와 ‘만들다’의 구별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그 영적 인간이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져’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이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조→형상→영적인간’과 ‘만들다→모양→천적인간’이라는 두 흐름은 서로 다른 설명이 아니라 동일한 거듭남의 질서를 서로 다른 말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적으로주님의다스림을받는다’는 말을 인간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자유는 주님과 반대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따라 선을 기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억지로 주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자신의 사랑이 점점 하나의 방향을 향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그의 기쁨과 자유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모양’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결국 AC.473은 거듭남의 목적이 단지 ‘올바른것을아는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 안에 당신의 ‘형상’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형상이 사랑과 삶 속에서 더욱 실제적인 ‘모양’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신앙과 진리가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고, 마침내 사람이 주님의 다스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양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AC.473해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5:1)
AC.472
‘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신날’(dayinwhichGodcreatedman)이그가영적으로만들어진것을의미하고,‘하나님이자기의모양대로그를만드셨다’(Godmakinghiminhislikeness)가그가천적으로만들어진것을의미한다는것은앞에서말하고보여준것으로부터분명합니다.‘창조하다’(create)라는표현은본래사람이새롭게창조되는것,곧거듭나는것과관련되고,‘만들다’(make)라는말은사람이완전하게되는것과관련됩니다.그러므로말씀에서는‘창조하다’(create),‘짓다’(form),‘만들다’(make)가정확하게구별되어사용됩니다.이것은앞서2장에서보여준바와같습니다.거기서는영적인간이천적인간으로만들어진것에관하여‘하나님이그만드시던모든일을마치시고안식하셨다’고하였습니다.다른구절들에서도마찬가지로‘창조하다’는영적인간과관련되고,‘만들다’,곧완전하게하다는천적인간과관련됩니다.(AC.16, 88)That by the “dayinwhichGodcreated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makinghiminhis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restedfromallhiswork,whichGodcreatedin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해설
AC.472는 창5:1에 사용된 ‘창조하다’와 ‘만들다’를 같은 뜻의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창조하다’, ‘짓다’, ‘만들다’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사람의 거듭남에서 서로 다른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창조하다’는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과 관련되고, ‘만들다’는 그렇게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더욱 완전하게 되어 천적 인간이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거듭남의 진행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완성된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새롭게창조’되어야 합니다. 자연적인 삶과 자기 자신의 것, 곧 proprium에 매여 있던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진리와 신앙을 받아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이 ‘창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역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사랑과 결합하고, 사람이 진리를 단지 알고 믿는 상태를 넘어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고 행하는 상태에 이를 때 그는 점차 천적 인간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AC.472는 창2의 ‘하나님이그만드시던모든일을마치시고안식하셨다’는 말씀을 다시 불러옵니다. AC.16과 AC.88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식’은 주님께서 더 이상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싸움이 지나고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움직이는 천적 상태에 이른 것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천적 상태에서는 사랑이 중심이 되어 선으로부터 진리를 보고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조’에서 시작된 거듭남이 ‘만드심’, 곧 완전하게 하심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완전하게된다’는 표현도 주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흠이 전혀 없는 절대적인 완전성에 도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런 완전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하게 하심은 거듭남의 질서가 더 온전히 이루어져, 신앙과 진리가 사랑과 선에 결합되고 사람이 점점 더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별은 태고교회가 왜 ‘천적교회’라고 불리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창5:1은 먼저 ‘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셨다’고 한 뒤 ‘하나님의모양대로그를만드셨다’고 합니다. AC는 이 순서를 ‘영적인간이됨’에서 ‘천적인간이됨’으로 읽습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도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거나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당신의 모양을 닮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결국 AC.472는 말씀의 단어 하나까지도 거듭남의 질서를 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창조하다’는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을, ‘만들다’는 그 생명이 사랑과 결합하여 더욱 온전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단지 진리를 알고 신앙을 갖게 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진리가 사랑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삶이 흘러나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태고교회는 바로 이 질서가 가장 충만하게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AC.472해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창5:1)
AC.469
‘계보의책’(bookofthebirths)은태고교회에속했던사람들을열거한것이고,‘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실때에’(inthedaythatGodcreatedman)는그가영적으로만들어진것을뜻하며,‘하나님의모양대로지으셨다’(inthelikenessofGodmadehehim)는그가천적으로만들어진것을의미합니다.그러므로이것은태고교회에대한묘사입니다.“bookofthe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thedaythatGodcreated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thelikenessofGodmadehe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해설
AC.469는 창5:1을 단순한 족보의 머리말로 읽지 않고, 태고교회의 성립과 그 성격을 압축하여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먼저 ‘계보의책’은 문자적으로는 아담 이후의 후손들을 기록하는 족보처럼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 곧 이후 이 장에서 여러 이름으로 표상되는 교회들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어질 ‘셋’, ‘에노스’, ‘게난’ 등의 이름도 단순히 개인들의 이름으로만 읽어서는 이 장이 말하려는 교회적 역사를 충분히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실때에’가 ‘사람이영적으로만들어진것’을 뜻한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창조’는 단순히 육체를 가진 인간이 처음 생겨났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자연적이고 외적인 삶에 머물던 사람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창1의 창조 기사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루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람의창조’는 주님께서 사람 안에 새로운 영적 질서를 세우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AC.469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의모양대로지으셨다’는 것은 그 사람이 ‘천적으로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창1에서 살펴본 거듭남의 질서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은 먼저 영적이 되고, 그다음 주님께서 그를 천적인 사람으로 이끄십니다. 영적인 상태에서는 아직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는 질서가 두드러지지만, 천적인 상태에서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합니다. 태고교회가 바로 이러한 천적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창5:1은 단순히 ‘아담의후손들이누구였는가’를 알려 주기 위한 족보의 시작이 아닙니다. 이 한 절 안에서 먼저 태고교회 자체가 어떤 교회였는지를 다시 세워 놓고, 그다음 그 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여러 교회들의 상태를 살펴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창조’에서 영적 상태가, ‘하나님의모양’에서 천적 상태가 언급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 창5전체를 읽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창5의 여러 이름을 단순히 사람들의 출생과 죽음의 연속으로만 보면 이 장은 긴 족보에 지나지 않지만, AC가 밝히는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세우신 태고교회가 여러 후대의 교회들을 거치면서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어 갔는지를 보여 주는 교회사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모양’이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를 영적으로 창조하시고 마침내 천적인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이 놓여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모든 생명과 지혜의 시작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AC.469해설)
천적이었던태고교회그자체를가리켜‘사람’(homo),그리고‘하나님의모양’이라하였습니다.(1절)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ofGod.” (verse 1)
이것은아담의계보를적은책이니라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실때에하나님의모양대로지으시되(1절)
해설
AC.461은 창5:1의 ‘하나님이사람을창조하실때에하나님의모양대로지으시되’라는 말씀의 속뜻을 아주 압축하여 제시합니다. 여기서 ‘사람’과 ‘하나님의모양’은 먼저 어떤 한 개인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태고교회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 태고교회를 특별히 ‘천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창5의 첫머리는 한 개인의 족보를 소개하는 데서 출발하기보다, 이 장에서 이어질 모든 교회의 출발점이 어떠한 상태의 교회였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태고교회가 ‘천적’이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심에 두고, 그 사랑으로부터 신앙과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적인 질서는 ‘먼저진리를알고그진리를통하여사랑에이르는것’이라기보다, 주님께 받은 사랑과 선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퍼셉션하는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렸다는 것은 단순히 그 구성원들이 인간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인간성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은 ‘하나님의모양’이라는 표현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 사랑과 지혜의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일수록 주님의 모양이 그 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모양’은 인간 자신의 고유한 탁월함을 높이는 표현이라기보다,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지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만큼 참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AC.461의 ‘사람’(homo)이라는 표현은 중요합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신앙을 받아 참된 질서 안에 있는 사람, 더 넓게는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린 것은 그 교회가 이러한 천국의 질서를 가장 온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창5가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교회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기준점이 됩니다.
또한 AC.461은 창1의 인간 창조와 창5의 족보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창1에서 ‘하나님의형상대로’ 창조되는 사람은 거듭남을 통하여 주님의 형상과 모양을 받아 가는 사람을 다루었고, 여기 창5에서는 그 출발점에 있었던 천적 태고교회가 다시 ‘사람’과 ‘하나님의모양’이라는 말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창5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형성된 태고교회가 이후 어떠한 상태들을 거쳐 이어져 갔는지를 계속해서 보여 주는 장입니다.
결국 AC.461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사람’의 기준은 외적인 조건이나 인간 자신의 프로프리움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성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선,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며 ‘하나님의모양’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5는 이 가장 처음의 천적 상태를 기준점으로 삼아, 이후 교회들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져 가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AC.461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