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창1:29)
AC.56
천적 인간은 오직 천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천적 음식’(celestial food)이라 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인 것들로 기뻐하며, 이것들 역시 그의 삶과 일치하므로 이르기를 ‘영적 음식’(spiritual food)이라 합니다. 자연적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는데, 이것들은 그의 삶에 속하므로 이르기를 ‘음식’(food), 곧 ‘먹을거리’라 하며,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영적 음식을 표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와 ‘열매 맺는 나무’(tree in which is fruit)로 묘사되며,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씨 가진 나무’(tree yielding seed)라 합니다. 그의 자연적 음식은 다음 절에서 설명됩니다. The celestial man is delighted with celestial things alone, which being in agreement with his life are called celestial food. The spiritual man is delighted with spiritual things, and as these are in agreement with his life they are called spiritual food. The natural man in like manner is delighted with natural things, which, being of his life, are called food, and consist chiefly of memory-knowledges. As the spiritual man is here treated of, his spiritual food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as by the “herb bearing seed,” and by the “tree in which is fruit,” which are called, in general, the “tree yielding seed.” His natural food is described in the following verse.
해설
AC.56은 창1:29의 ‘먹을거리’를 설명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천적 인간에게는 천적 음식이 있고, 영적 인간에게는 영적 음식이 있으며, 자연적 인간에게는 자연적 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식은 육체가 먹는 자연적인 음식이 아니라 각각의 인간이 무엇으로 기뻐하며, 무엇이 그의 삶과 일치하는가를 나타내는 영적인 의미의 음식입니다.
스베덴보리가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천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오직 천적인 것들로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천적인 것들이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천적 음식’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영적 인간은 영적인 것들로 기뻐하며, 그것들이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영적 음식’이라고 합니다. 자연적 인간 역시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고, 그것들이 그의 삶에 속하기 때문에 ‘음식’이라고 하며, 그것은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먼저 주의할 것은 천적·영적·자연적 인간을 단순히 ‘높음 → 중간 → 낮음’이라는 세 칸짜리 단계표로 읽지 않는 것입니다. AC.56의 직접적인 관심은 세 부류의 서열을 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삶에는 그 삶과 일치하여 기쁨을 주는 것이 있고, 그래서 그것을 ‘음식’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뻐하는 것’을 음식이라고 부를까요? AC.56은 음식의 상응에 대한 전체 교리를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장 자체에서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천적인 것들은 천적 인간의 ‘삶과 일치’하고, 영적인 것들은 영적 인간의 ‘삶과 일치’하며, 자연적인 것들은 자연적 인간의 ‘삶에 속하기’ 때문에 음식이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여기서 음식은 단순히 머리로 알고 있는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맞으며 그가 기쁨을 얻는 것과 관계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만 보면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을 정확히 판정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단법을 주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동시에 여러 종류의 기쁨이 있고, 자연적인 기쁨 자체가 악한 것도 아닙니다. AC.56의 요점은 훨씬 제한적입니다. 천적·영적·자연적 인간에게 각각 그 삶과 일치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그들에게 음식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이 ‘천적인 것들로 기뻐한다’고 할 때에도 이를 곧바로 ‘사랑 자체만으로 기뻐하며 더 이상 진리의 매개가 필요 없다’고 풀 필요는 없습니다. 앞의 AC.51-53에서 천적 인간이 의지에 속한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설명을 보았지만, AC.56은 여기서 천적 음식의 세부 성질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그저 천적 인간은 자기 삶과 일치하는 천적인 것들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영적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영적인 것들로 기뻐한다고 해서 ‘아직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고 진리만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의 AC.48에서 영적 인간은 이미 신앙으로부터뿐 아니라 사랑으로부터도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글의 ‘영적 음식’을 사랑과 분리된 진리나 교리 지식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에서 ‘음식’과 단순한 ‘정보’를 구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인 사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의 영적 음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AC.56은 음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것이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식의 보유량보다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삶 안에 있으며 무엇으로 기뻐하는지가 이번 표현의 중심에 더 가깝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경우에는 스베덴보리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의 음식은 자연적인 것들이며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억 지식은 앞의 AC.40에서도 만났습니다. 외부에서 배우고 기억에 저장하는 지식들입니다. 이런 지식 자체를 낮거나 악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삶에 속하는 중요한 재료이며, 이후 영적인 것들이 받아들여지는 데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적 음식 = 세상적 성공과 쾌락’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AC.56보다 좁습니다. 본문이 직접 예로 드는 것은 오히려 기억 지식입니다. 자연적 인간은 자연적 차원에 속하는 것들로 기뻐하며, 그 음식은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선하게 사용되는지 악하게 사용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며, AC.56은 여기서 그것을 논하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 특히 중요한 문장은 ‘여기서는 영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입니다. 창1의 현재 문맥이 영적 인간을 다루고 있으므로, 창1:29에 나오는 음식도 영적 인간의 음식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그 음식이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라는 표상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서둘러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의 세부 속뜻을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AC.56은 아직 그것들을 각각 무엇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영적 인간의 음식이 이 두 가지 표상으로 묘사된다고만 합니다. 바로 다음 AC.57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두 표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므로 그 해석은 다음 글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풀은 생명이 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 상태’, ‘나무는 더 안정되었지만 아직 천적 사랑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 ‘씨는 앞으로 더 높은 생명으로 발전할 잠재력’이라고 이번 글에서 미리 정리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 설명은 AC.56의 직접 내용이 아니며, 다음 AC.57이 실제로 말하는 해석과도 어긋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일반적으로 ‘씨 가진 나무’라고 부른다고 덧붙입니다. 이 표현 역시 이번 글에서 별도의 성장 단계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 영적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 음식을 표상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창1:29의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는 말은 단순히 최초 인간에게 채식을 명령하는 구절을 넘어, 속뜻에서는 영적 인간에게 주어지는 음식에 관한 말씀으로 읽힙니다. 다만 AC.56은 이 한 문장에서 음식의 모든 상응을 완성하지 않습니다. 천적·영적·자연적 음식의 차이를 간단히 제시하고, 현재 문맥에서 영적 인간의 음식이 무엇으로 표상되는지를 밝히는 데 그칩니다.
여기서 ‘주신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수 있지만, 이번 AC가 그 단어의 속뜻을 따로 해설하지 않으므로 지나치게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앞의 AC.39 이후의 큰 흐름을 기억하면, 참된 선과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 인간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원리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영적 음식 역시 인간이 자기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생명의 근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56에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표현은 아마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일 것입니다. ‘내 삶과 일치하는 것이 음식이고, 그래서 그것으로 기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이번 문장의 표현을 넘어 사람의 기쁨과 삶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질문이므로 별도의 심화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부터 곧바로 ‘내가 무엇에서 기뻐하는지만 보면 내가 자연적 인간인지 영적 인간인지 천적 인간인지 알 수 있다’고 자기 진단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순간적인 즐거움 하나와 한 사람의 삶 전체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AC.56이 말하는 것은 각각의 인간에게 그의 ‘삶과 일치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기쁨은 한순간의 감정이라기보다 삶의 성질과 관계하여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자연적인 것에서 기뻐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자연적 인간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영적 인간도 자연계에서 살며 음식, 휴식, 학문, 가족, 일과 같은 자연적인 선을 기쁘게 누릴 수 있습니다. AC.56의 구별을 ‘무엇을 조금이라도 즐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의 삶에 속하고 그 삶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AC.56의 핵심을 ‘천적 인간은 사랑을 먹고, 영적 인간은 진리를 먹고, 자연적 인간은 지식을 먹는다’는 세 문장으로만 압축하면 너무 단순해집니다. 어느 정도 기억을 돕는 표현은 될 수 있지만, 본문이 강조하는 ‘삶과 일치함’이라는 중요한 조건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또 ‘거듭남이란 먹는 음식이 자연적 음식에서 영적 음식으로, 다시 천적 음식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정리하는 것도 AC.56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갑니다. 특히 앞에서 보았듯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관계를 모든 사람이 차례로 통과하는 하나의 직선 단계표로만 보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AC.56은 훨씬 단순하면서도 깊은 사실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그의 삶과 일치하여 그가 기뻐하는 것들이 있고, 말씀은 그것을 ‘음식’이라는 언어로 표현합니다. 천적 인간에게는 천적 음식이, 영적 인간에게는 영적 음식이, 자연적 인간에게는 자연적 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창1에서 다루는 것은 영적 인간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그의 영적 음식으로 제시됩니다.
그 두 음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바로 다음 AC.57에서 밝혀집니다. 따라서 AC.56은 그 해석을 미리 완성하기보다 ‘사람에게도 영적인 음식이 있으며, 그 음식은 그의 삶과 일치하여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기본 원리를 붙들고 다음 글로 넘어가게 하는 짧은 연결 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심화
1.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56 심화 1,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56.심화1.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C.56에는 비슷한 문장이 세 번 반복됩니다. 천적 인간은 천적인 것들로 기뻐하며 그것들이 그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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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7, 창1:29,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창1:29) AC.57 ‘씨 맺는 채소’(herb bearing seed)는 쓰임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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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5, 창1:28, ‘생육, 번성', '결혼한 땅’, '땅에 충만', '풀, 나무, 공중의 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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