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독(聖讀).'천국과 지옥'.0.0.0.'Heaven and Hel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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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 구약 말씀을 단순히 그 겉 글자로만(the mere letter of the Word), 즉 기록된 글자 그대로만 읽어서는 아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 곧 말씀의 이면(裏面, this part of the Word)에는 천국의 깊은 비밀들(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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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 그러나 기독교계는 아직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일반적이든 아니든 아니, 가장 작은 일점일획에 이르기까지(一點一劃, the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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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 그런 생명 없이는, 그저 겉 글자 만이기만 한 말씀은 죽은 것입니다. 3 그런 생명 없이는, 그저 겉 글자 만이기만 한 말씀은 죽은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기독교계에서 알려진 대로 속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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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 창세기 첫 장, 그 내적 의미로는 인간의 새로운 창조 또는 그의 중생, 특히 가장 오래된 교회를 다루고 있는 등, 이러한 모든 표현 안에 아르카나가 포함되지 않은 말씀은 하나도 없다 4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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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 저는 지난 수년간 영들, 그리고 천사들과 계속 끊임없이 함께 지내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거나 그들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제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님의 신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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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D1)-주일예배(2535, 눅17,20-27), ‘인자(人子)의 날, 번개의 번쩍임’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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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4-03-17(D1)-주일예배(2535, 눅17,20-27), ‘인자(人子)의 날, 번개의 번쩍임’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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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人子)의 날, 번개의 번쩍임’의 속뜻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17:20-27)

 

 

천사들이 이 천국 또는 저 천국에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면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만큼 그들은 보다 내적인 천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33, 이순철 역) with the angels it is the interiors that cause them to be in one heaven or another; for as their interiors are more open to the Lord they are in a more interior heaven. (HH.33)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이후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언젠가는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오셨을 당시는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암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열망은 더욱 컸습니다. 그들이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은 구약의 예언 때문이었는데, 특히 이사야서 11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4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9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1, 4, 9)

 

유대인들은 이 말씀 속에 속뜻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단지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왕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고만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곧 메시아의 출현이었던 것입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메시아이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도 세상 나라들처럼 물질로 만들어지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지는 사랑과 지혜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할까요? 마가복음 4장 26절 이하에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막4:26-29)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적인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세워지는 영적 나라이며,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통해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때가 이른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 안에 더 이상 사랑도 없고 진정한 믿음도 없는 때입니다. 교회들이 영적으로 그렇게 피폐해질 때, 신실한 신앙인들은 진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진정한 진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하신 것은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즉 참된 진리를 찾아다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에서 ‘인자’는 진리이신 주님을 뜻하고,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는 것은 교회 안에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에 진리가 없는 이유가 뭘까요? 그들이 말씀을 왜곡, 거짓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나무는 진리 또는 믿음을 뜻하고, 열매는 진리에 따른 삶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진리만 있고, 진리에 따른 삶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가 그와 다르게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거짓입니다. 거짓된 교리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랑과 진리를 파괴하고, 그렇게 해서 교회를 내적으로 붕괴시킵니다. 교회의 종말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교회의 마지막 때는 진리를 가장한 수많은 거짓과 이설이 나타나 진리에 목마른 신앙인들을 현혹합니다. 그 거짓들은 아주 교묘해서 가끔은 진리를 많이 안다는 사람조차도 빠져듭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신실한 교인들을 향해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하십니다.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거짓에 빠져드는 것은 큰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를 잘 아는 사람이 거짓에 빠지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더럽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는 세상의 종말, 즉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24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여기서 ‘인자의 날’은 교회의 마지막 때를 뜻하며, 동시에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의 교리로서 참된 진리를 선포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때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번쩍이는 것은 교회의 거짓들과 맞서 싸우는 신성한 진리를 나타냅니다. 번개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어떻게 싸우실까요? 한편으로는, 진리를 찾아 헤매던 신실한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진리를 알면서도 왜곡했던 사람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에게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것이 오히려 큰 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것에 대해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9:39)

 

주님이 오셔서 참된 진리를 세상에 밝히실 때 거짓 교리 안에 있는 교회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참된 진리이신 주님을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본문 25절에서는,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교회들이 신성한 진리를 모독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유대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섞어 장로의 전통이라는 인간의 교리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린 양같이 순결하신 주님을 욕하고 폭행하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주님을 폭행하고 죽이는 것은 신성한 진리를 모독하고 말살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그 본질에 있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며, 이 진리는 선 자체이신 여호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진리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9, 10)

 

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항상 교회들에 의해 말씀이 왜곡되고 조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새 교회도 이유 없이 박해를 받았고, 교리가 부인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시험을 이기시고, 신성한 인간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새 교회의 진리도 시험을 딛고 이겨냄으로써 보다 완전하고 단단한 진리가 됩니다. 완전한 진리가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진리와 선, 또는 믿음과 인애, 체어리티의 삶이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악과 거짓의 위협과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 주님이 밝혀 주시는 새로운 진리를 통해 눈이 밝아진 사람들은 그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 진리를 끝까지 붙들고 참된 진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점점 눈이 어두워져 나중에는 진리가 뭔지 거짓이 뭔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 소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린 양 같은 순진함입니다. 그래야 주인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진리의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그냥 가지고만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고난의 진리이며, 형제와 이웃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는 진리입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내적 진리로 다시 오신 주님의 손을 잡고, 시험을 이기고 또 이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새 교회의 모든 성도들, 그리고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17:26, 27)

 

아멘

 

원본

2021-09-1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3-1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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