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이 천적 지식을 볼 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즉, 기억-지식의 눈에는 천적 지식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 말은 지식 중 기억-지식을 상징합니다. 기억-지식이 천적 지식을 볼 때, 어떨 것인지 하는 설명이지요. 위 표현이 바로 이런 의미임은 ‘애굽’의 의미를 보면 분명한데요, ‘애굽’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식 중 기억-지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또 분명한 건, ‘애굽 사람이 볼 때에’라는 말의 의미가 곧, 이 기억-지식이 본 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로 그런 거라는 말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Egypt,” which i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as before shown; and from this it is evident what is signified by the words “when the Egyptians see,” namely, that this memory-knowledge is such as is described in this verse.

 

즉, 종교적 개념에 대한 스터디를 상징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말씀 공부를 하는 게 아닌, 그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종교적 추구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관한 사실들을 접하는 바로 그때 이런 스터디가 발생하는데, 위 표현은 바로 이런 걸 묘사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오래 신앙생활을 해 온 우리 역시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 표현이 이런 의미임은 ‘애굽’의 의미가 종교적 개념에 관한 스터디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앞서 글 번호 1164-1165, 1194-1195 및 1462번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이런 사실로, 이제 ‘애굽 사람이 볼 때에’라는 말의 의미를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본 절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스터디의 속성,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NCE)

 

기억-지식은 그 안에 뭔가 자연적인 게 있습니다. 어린애들이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잘 보면, 뭔가 하나의 흐름, 곧, 더 좋은 게 있으면 더 그걸 원하는, 심지어 그게 천국 및 하나님에 관한 거라는 말을 들어도 여전히 더 원하는 그런 게 있습니다.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is attended with this, and it is something natural in it, as is manifested in children when they first begin to learn, namely, that the higher things are, the more they desire them; and still more when they hear that they are celestial and Divine.

 

그러나 어린애들의 이런 순박한 욕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즐거움은 자연적이며, 겉 사람에 속한 욕망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But this delight is natural, and arises from a desire that is of the external man.

 

종교적 개념들에 관한 지식에는 이런 특성이 내재해 있으며, 이런 특성은 그런 지식에 속한 일종의 땅에 속한 요소입니다. 이런 경향은 어린애들이 배우기를 막 시작할 때 두드러지는데요, 어떤 주제가 확 눈에 띄면 띨수록 그들은 그걸 더욱 알고 싶어 하지요. 그 주제가 천국이나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그럽니다. 어린애들의 이런 모습이 얼핏 참 순전해 보이지만 그러나 거기 들어 있는 흥분은 땅에 속한 것이요, 겉 사람에 속한 탐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NCE)

 

주님과 달리 여느 사람들의 경우, 이 욕구로 인해 단지 지식 중 기억-지식에 있는 즐거움만 느끼게 됩니다. 그 이상의 무엇 없이 말이죠. 그리고 설령 무슨 즐거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 지식 중 기억-지식은 단지 어떤 용도로 사용된다는 목적밖엔 없는, 뭘 전달하는 도구요, 매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지식이란, 하나의 그릇으로서 천적, 영적인 것들을 섬기는 것이며, 그런 때에야 비로소 지식은 처음으로 제대로 쓰임을 받는 것이고, 그런 때에야 비로소 하늘의 참된 기쁨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With other men this desire causes them to feel delight in the mer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ithout any further end; when yet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is nothing but an instrumental agency having for its end a use, namely, that the knowledges may serv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s vessels; and when they are thus serving, they are then for the first time in their use, and receive from the use their delight.

 

주님과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탐욕은 그들로 하여금 그저 종교적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스터디로만 만족하게 합니다. 무슨 다른 좀 더 나은 목적 없이 말이죠. 실상은 이렇습니다. 이런 지식에 대한 학습의 결과, 지식이란 그저 무슨 도구, 곧, 어떤 용도를 수행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지식은 천적, 영적인 것들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섬기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지식이 이런 목적으로 쓰임 받을 때, 비로소 지식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용 가운데 있는 것이며, 지식이 제공하는 모든 참된 기쁨은 이처럼 지식이 올바로, 제대로 쓰임 받을 때 오는 것입니다. (NCE)

 

누구라도 만일 그가 주의만 기울이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지식 중 기억-지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사람은 이것으로 합리적이 되며, 이어 영적이 되고, 마침내 천적이 되는 그런 거라는 걸 말입니다.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의 겉 사람은 속 사람과 인접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이게 바로 그가 지식의 올바른 용도 안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Anyone can see, if he pays attention, that in itself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is nothing but a means whereby a man may become rational, and thence spiritual, and at last celestial; and that by means of the knowledges his external man may be adjoined to his internal; and when this is done, he is in the use itself.

 

신중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은, 종교적 지식의 축적 그 자체는 그저 이성적이 되며, 영적이 되고, 마침내 천적이 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지식은 우리의 겉으로 하여금 우리의 속과 접촉할 수 있게 하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지적 탐구는 그 참된 목적을 섬기게 됩니다. (NCE)

 

속 사람은 오직 그 용도, 쓰임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The internal man regards nothing but the use.

 

결국, 속 사람은 쓰임새 있는 지적 탐구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NCE)

 

또한 이를 위해 주님은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지각하는 기쁨을 기억-지식에 서서히 주입하십니다. For the sake of this end also, the Lord insinuates the delight that childhood and youth perceives in memory-knowledges.

 

같은 이유로, 주님은 어린 시절과 청년기, 사람이 뭔가를 배울 때 즐거움을 느끼게 하십니다. (NCE)

 

하지만 사람이 그의 기쁨을 기억-지식으로만 구성하기 시작할 때, 그런게 바로 육체적 탐욕이며, 그걸로 그는 휩쓸리게 됩니다. 그 휩쓸리는 정도만큼, 즉, 기억-지식에서만 기쁨을 찾으려 하는 만큼, 그에 비례해서 그는 천적인 것으로부터 끊어지며, 그에 정비례하여 그 기억-지식들로 인해 그는 주님을 향하여는 닫히고, 결국 물질적 존재가 되고 맙니다. But when a man begins to make his delight consist in memory-knowledge alone, it is a bodily cupidity which carries him away, and in proportion as he is thus carried away (that is, makes his delight consist in mere memoryknowledge), in the same proportion he removes himself from what is celestial, and in the same proportion do the memory-knowledges close themselves toward the Lord, and become material.

 

하지만 우리가 그저 배우는 데에만 우리의 즐거움을 두기 시작하면, 그것이야말로 육체적 욕망이어서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가 그저 배움에서만 즐거움을 찾는 한, 그만큼 우리는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천국으로부터 끊어질수록 우리가 아는 사실들은 셔터 내리듯 주님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 물질의 세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NCE)

 

반대로, 쓰임 받아야지 하는 목적들을 가지고 습득된 기억-지식들, 곧, 인간 사회를 위해, 지상에 있는 주님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천국에 있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보다도 주님 자신을 위해 쓰임 받아야지 하는 목적에 비례하여 더 많은 지식이 주님을 향하여 활짝 열립니다. But in proportion as the memory-knowledges are learned with the end of use—as for the sake of human society, for the sake of the Lord’s church on earth, for the sake of the Lord’s kingdom in the heavens, and still more for the Lord’s own sake—the more are they opened toward him.

 

또한 이런 이유로 천사들 역시 그 가진 모든 지식에도 불구, 만일 그것이 제대로 된 사용과 거리가 먼 그런 지식이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여겨지게 됩니다. 천사들의 지식 역시 모든 지식에 관한 기억-지식들로서, 인간과는 차원이 달라 그 만 분의 일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On this account also the angels, who are in the memory-knowledge of all knowledges, and indeed to such a degree that scarcely one part in ten thousand can be presented to the full apprehension of man, yet esteem such knowledge as nothing in comparison with use.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로, 오늘 본문,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it may be seen what is signified by the word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이런 내용을 말씀드린 건, 어린 시절 주님은 이걸 아셨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셨다는 것, 곧, 만일 주님이 기억-지식 추구에만 관심이 있어 거기에만 골몰하셨다면 이 기억-지식은 더 이상 천적인 것을 위한 지식이 아닌, 즉, 주님은 더 이상 천국에 관한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우리 같은 어린이로 성장하셨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These things were said because the Lord when a child knew this and thought in this way, namely, that if he should be carried away by a mere desire for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this memory-knowledge is of such a character that it would care no more for celestial things, but only for the knowledges [cognitiones] which the desire for memory-knowledge would carry away.

 

이 주제들에 관하여는 뒤에 계속 됩니다. On these subjects more follows. (AC.1472)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그들, 즉, 기억-지식들은 이 지식들을 보고 천적(天的, celestial)이다, 천국에 관한 지식들이다 할 거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천적인 것들과 인접한 진리를 가리키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는 그의 아내라’가 천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And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will call the knowledges celestial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wife” as being the truth that was adjoined to celestial things; hence “this is his wife” signifies that which is celestial. (AC.1473)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하지만 그들, 곧 기억-지식들은 이런 천적인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종교적 개념들에 대한 지적 탐구에만 몰두할 거라는 말입니다. 이게 지금까지 다룬 내용입니다.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would not care for celestial things, but only for mere knowledges is evident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AC.1474)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2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지식들도 주님과 함께 있는 진리들이 천적인 것을 알아보지만 그러나 거기엔 관심이 없고, 오직 종교적 지식에 대한 지적 탐구에만 전념할 것이다

 

2021-10-06(D4)-매일예배(2206, AC.1471-1474, 창12,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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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15wX3iXT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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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3(D1)-제9권40호통423호.성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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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장

모든 천국은 전체적으로 한 사람을 반영한다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64. 사람 안에 참 많은 다른,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그러나 마치 하나인 것처럼 움직입니다. 그 가운데 몸 전체의 유익을 위한 뭔가를 행하지 않거나 어떤 쓰임새를 수행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So many different things in man act as a one, because there is no least thing in him that does not do something for the general welfare and perform some use.

 

몸 전체는 부분들을 위한, 그리고 부분들은 전체를 위한 어떤 쓰임새를 수행하는데, 그 이유는, 전체는 부분들로 구성되며, 부분들은 모여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조인, 어떤 형태를 만들어, 그 안에서 부분에 속한 것들과 전체에 속한 것들이 전체와 그 유익에 관계하며, 그렇게 해서 전체가 하나가 되는 그런 것입니다. The general performs a use for its parts, and the parts for the general, for the general is composed of the parts and the parts constitute the general; therefore they provide for each other, have regard for each other, and are joined together in such a form that each thing and all things have reference to the general and its good; thus it is that they act as one.

 

[2] 천국들 안에도 비슷한 연합, 제휴가 존재합니다. In the heavens there are like affiliations.

 

그들은 모두 쓰임새에 따라 같은 형태로 결합되는데요, 그 결과, 공동선(common good)을 수행치 않는 구성원들은 마치 뭔가 종이 다른 자들처럼 이질적이어서 천국 밖으로 추방됩니다. Those there are conjoined according to uses in a like form; and consequently those who do not perform uses for the common good are cast out of heaven as something heterogeneous.

 

쓰임새를 수행한다는 것은, 공동선을 위해 타인을 선한 의도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의 선이 아닌, 자신을 위해 타인을 선한 의도로 대하는 것은 쓰임새를 수행하는 것이아닙니다. To perform use is to will well to others for the sake of the common good; but to will well to others not for the sake of the common good but for the sake of self is not to perform use.

 

후자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인 반면, 전자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These latter are such as love themselves supremely, while the former are such as love the Lord supremely.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며, 여기서 그들의 행함은 주님으로 말미암음이지 스스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유일하신 분, 모든 것의 근원 되시는 분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할 선 전체, 즉, 공동선 전체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nce it is that those who are in heaven act as a one; and this they do from the Lord, not from themselves, for they look to him as the Only One, the source of all things, and they regard his kingdom as the general, the good of which is to be sought.

 

이것이 다음 주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Lord’s words,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Matt. 6:33)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그의 선을 구하는 것입니다.(주62) To seek his righteousness” means to seek his good.(주62)

 

[3] 이 생(生)에서 자기 조국의 유익을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고, 자기 이웃의 유익을 자신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들은 저 생에서는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며, 구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주님의 나라가 조국이기 때문이며, 타인에게 선 행하기를 사랑한 사람들, 자아가 목적이 아닌, 선이 목적인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천국에서는 선이 이웃이기 때문입니다.(주63) Those who in the world love their country’s good more than their own, and their neighbor’s good as their own, are they who in the other life love and seek the Lord’s kingdom; for there the Lord’s kingdom takes the place of country; and those who love doing good to others, not with self as an end but with good as an end, love the neighbor; for in heaven good is the neighbor.(주63)

 

이런 사람들은 모두 가장 큰 사람, 곧, 천국에 있게 됩니다. All such are in the greatest man, that is, heaven.

 

 

65. 천국 전체가 한 사람을 반영하고, 그 생김새조차 가장 큰 형태의 신적(Divine), 영적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처럼 천국도 지체들과 기관들로 배열되고, 그와 유사한 이름들을 갖고 있습니다. As the whole heaven reflects a single man, and is a Divine spiritual man in the largest form, even in figure, so heaven like a man is arranged into members and parts, and these are similarly named.

 

더욱이 천사들은 이 또는 저 소사이어티가 천국 전체인 가장 큰 사람의 몸 중 어느 부위에 속하는지를 압니다. Moreover, angels know in what member this or that society is.

 

그들 말이, 이 소사이어티는 머리 중 어느 부위 또는 부근에 있다, 저 소사이어티는 가슴 중 어디, 저기는 허리 중 어디에 등으로 말합니다. This society, they say, is in a certain part or province of the head, that in a certain part or province of the breast, that in a certain part or province of the loins, and so on.

 

대략적으로는, 가장 높은, 혹은 세 번째 천국은 머리에서 목까지, 가운데 혹은 두 번째 천국은 가슴에서 허리와 무릎, 가장 낮은, 혹은 첫 번째 천국은 발에서 발바닥, 그리고 팔에서 손가락까지를 형성합니다. In general, the highest or third heaven forms the head down to the neck; the middle or second heaven forms the breast down to the loins and knees; the lowest or first heaven forms the feet down to the soles, and also the arms down to the fingers.

 

팔과 손은 비록 허리 곁에 있을지라도 사람의 가장 낮은 부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For the arms and hands belong to the lowest parts of man, although at the sides.

 

이 사실만 보아도 역시 왜 세 천국이 있나 하는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From this again it is plain why there are three heavens.

 

 

66. 천국 아래에 있는 영들, 즉, 아직 천국 가기 전 단계인 중간영계에 있는 영들은, 천국이 위뿐 아니라 아래에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절초풍합니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천국은 위에만 있다는 믿음과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들은 천국의 배열은 사람과 같아서, 사람의 지체들, 기관들 및 내장들의 배열처럼, 어떤 건 위에 어떤 건 아래에, 그리고 그 각각에 있어서도 어떤 건 안에, 어떤 건 밖에 있을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The spirits that are beneath heaven are greatly astonished when they hear that heaven is not only above but below, for they have a like faith and opinion as men in the world, that heaven is nowhere but above, for they do not know that the arrangement of the heavens is like the arrangement of the members, organs, and viscera in man, some of which are above and some below; or like the arrangement of the parts in each of the members, organs, and viscera, some of which are within and some without.

 

즉, 그들은 혼동된 천국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Hence their confused notions about heaven.

 

 

67. 천국에 대한 이러한 사실들, 곧, 천국은 가장 큰 사람이라는 사실들을 이렇게 밝히고 있는 이유는, 뒤이어 나올 천국에 관한 내용들 때문인데요, 그 내용들, 곧, 천국의 형태라든지, 주님과 천국 간 결합이라든지, 천국과 사람 간 결합, 영계에서 자연계로 흘러드는 인플럭스(influx, 入流), 그리고 상응 등은 그전에 천국에 관한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고 있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무슨 명료한, 또렷한 아이디어조차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주제들은 앞으로 이어지는 내용들이며, 그 적절한 순서로 다루어지게 됩니다. These things about heaven as the greatest man are set forth, because what follows in regard to heaven cannot be at all comprehended until these things are known, neither can there be any clear idea of the form of heaven, of the conjunction of the Lord with heaven, of 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 of the influx of the spiritual world into the natural, or any idea at all of correspondence—subjects to be treated of in their proper order in what now follows.

 

이들 주제들에 빛을 조금 비추기 위해, 위 내용들을 미리 살핀 것입니다. To throw some light on these subjects, therefore, the above has been premised.

 

 

※ 각주

 

62. 말씀에서 ‘정의’는 선, ‘공의’는 진리에 대한 서술입니다. 그래서 ‘정의와 공의를 행함’은 선과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In the Word “righteousness” is predicated of good, and “judgment” of truth; therefore “to do righteousness and judgment” is to do what is good and true (n. 2235, 9857).

 

 

63.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이 이웃이십니다. 결과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그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In the highest sense the Lord is the neighbor; consequently to love the Lord is to love that which is from Him, that is to love good and truth because the Lord is in everything that is from Him (n. 2425, 3419, 6706, 6711, 6819, 6823, 8123).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는 모든 선이 이웃이며, 선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Therefore all good that is from the Lord is the neighbor, and to will and do that good is to love the neighbor (n. 5028, 10336).

HH.1.8.64-67.'8장,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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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FnwWpayA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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