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들이 천적 지식들을 볼 때, 그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 ‘애굽’은 지식들 중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말합니다. 말씀에서 이 ‘애굽’, 즉, 기억-지식이 참 많이 나오는데, 이걸 다시 좀 보겠습니다. (AC.1472)

 

※ 사람은 자기가 상정(想定)한 원리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습니다. 심지어 그 원리들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의 모든 지식과 미루어 짐작하는 모든 생각은 그 원리들에 대해 호의적입니다. 이런 원리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또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런 수많은 생각들을 통해서 결국 이 사람 마음에 이 원리들은 아주 뚜렷해지며, 결국 그는 그런 거짓 안에서 큰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돈이다!’ 하는 생각을 자신의 인생철학과 원리 중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은 지금 저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사람들처럼 분명히 이 ‘돈을 첫 자리에 모시는 생각’은 잘못이요,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삶의 중심원리로 삼아 이후 모든 걸 이걸 가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가령, 시장, 도지사, 더 나아가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말이지요.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 하여 재판도 돈으로, 선거도 돈으로, 언론, 방송 등 각종 미디어, 여론도 다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 믿으며, 그래서 돈이 있어야 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 곧 ‘대장동 의혹’ 같은 일을 몇 번만 하면 된다 하는 식이지요. ‘50억을 주겠다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겠느냐?’ 하는 식입니다.

 

이런 세속적 사고는, ‘육안으로 볼 수 없거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절대 믿을 수 없어!’ 하는, 근본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이 하나의 중심원리가 된 사람은 이후 결코 믿을 수가, 곧, 신앙을 가질 수가 없는데, 그것은 영적,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요, 사람의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순서,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곧,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는 것이며, 모든 것이 그 뒤를 따르고, 이어 심지어 추론(reason)과 기억-지식에까지, 라틴어로는, 인 라티오날리부스 에 스케엔티피키스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확 깨닫는(be enlightened)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지식, 세속 지식으로 주님과 천국을 추론하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하는 것, 과학을 배우는 것이 절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신앙의 사람이라 하여 학자들의 세계에서 하듯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라고 하는 자연계의 질서도 그 기원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질서 속에서 주님을 시인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문제이지요...

 

다만 이 원리, 곧,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가능한 한, 학자들 세계, 세상, 세속적 지식과 친숙한 용어들을 사용, 영적, 천적 진리들을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식 사고요, 입장입니다. 세상을 세속이라 하여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 기독교와 달리, 세상 친숙한 것들로 쉽게 비유, 천국 아케이나를 풀어주신 주님처럼 말이지요. 또한 기억-지식도 주님의 빛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즉, 쓰임새의 문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지, 절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AC.129)

 

2021-10-01(D6)-매일예배(2203, AC.1471-1472, 창12,12), '애굽, 기억-지식(memory-knowledg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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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I_JpVHNZ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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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들이 천적 지식들을 볼 때, 그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그 기억-지식들이 이르기를, 저 지식들은 천적이다 하리라는 뜻입니다.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will call the knowledges celestial;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그들, 그 기억-지식들은 천적인 것들엔 관심이 없고, 대신 오직 단순한 지식들, 그들이 얻었으면 하는 지식들에만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signifies that they would not care for the celestial things, but only for the mere knowledges, which they would carry off.

 

2021-09-30(D5)-매일예배(2202, AC.1471, 창12,12), '창12,12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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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3ConurvJ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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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65. 11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Verse 11.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that he said unto Sarai his wife,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이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를 말합니다. ‘애굽’,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스키엔티아 코그니티오눔] 말합니다.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signifies when he began to learn; “Egypt,” as before said, mean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scientia cognitionum];

 

※ 주님도 어린 시절, 여느 어린이들과 같이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겉 사람(the external man)은 지식이 아니고서는 속 사람(the internal man)과 상응하고 일치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겉 사람은 유형의 신체를 가진 감각적인 것입니다. 마치 땅에 심기듯 지식이 겉 사람 안에 심기지 않으면 겉 사람은 그 어떤 천적, 영적인 것도 받을 수 없지요. 즉, 이 지식은 천적인 것이 담기는 그릇입니다.

 

이 지식은 반드시 말씀에서 와야 합니다. 말씀에서 오는 지식은 주님 자신으로부터 열린, 즉, 이 지식을 통해서 주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지식이기 때문이며, 말씀 자체가 주님에게서 나와 천국을 두루 통하고, 주님의 생명이 말씀 안 모든 것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시절, 말씀 말고 다른 지식으로는 자신을 가득 채우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향해 열려 있고,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며, 주님이 결합하셔서 하나가 되실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씀은 그 가장 안쪽, 가장 내적 의미로도 오직 주님에 관한 것뿐이며, 무엇이든지 오직 맨 처음 주님으로부터 온 것뿐입니다. 휴먼 에센스, 곧, 인성이라는 것은 그저 영원부터 계신 디바인 에센스, 곧, 신성에 보태어진 뭔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AC.1461)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에 관하여 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음을 말합니다. he said unto Sarai his wife” signifies that he so thought concerning the truths to which celestial things were adjoined;사래’, 아내로서의 ‘사래’는 주님 안에 있는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입니다. Sarai” as a wife is the truth adjoined to the celestial things that were in the Lord;

 

※ ‘아내’에 대한 말씀의 속뜻은 선과 결합한 진리 말고는 없습니다. 선과 진리의 결합은 정확히 결혼이라는 상황과 같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남편’은 선을, ‘아내’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사람’을 뜻할 때는 반대로 남편은 진리를, 아내가 선을 뜻합니다. 이것은 말씀 어디에서나 항상 같습니다. (AC.915)

 

여기서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그의 아내 사래가 나오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사래는 진리입니다.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속뜻으로는, 진리를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갈 때,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의 모든 실제 있었던 일들은 표상이며, 사용된 모든 말은 어떤 의미들을 가집니다. 말씀에 기록된 어떤 일, 사건들도, 그 순서와 말들 모두 이런 아케이나를 표현하기 위한 속뜻을 갖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AC.1468)

 

※ 아내로서의 ‘사래’는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이며, 이 천적인 것은 주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라 하는 것은, 모든 진리는 주님이 그것을 가르치시기 전에 이미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적인 것은 늘 함께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둘 사이를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 마치 빛이 불에서 나오는 것과 같지요. 이 진리는 주님의 속 사람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신성(Divine), 곧 신적 진리였습니다. 주님이 배우신 지식은 진리가 아니었고, 단지 뭘 담아두는 그릇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 속 무엇이 들어 있든 그건 진리가 아닙니다. 비록 그리 불려도 말입니다. 진리는 그 안에, 곧 그릇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릇 자체는 진리가 아니고, 그릇 안의 내용물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 그릇은 말씀 관련 지식의 범주 안에서 주님에 의한 가르침을 통해 형성됩니다. 어쩜 열린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이지 싶습니다. 천적인 것이 그 안으로 스며들 수도, 이런 식으로 신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인성 관련된 것들이 신성과 똑같이 될 수 있도록 신성과 인성을 결합하셨기 때문입니다. (AC.1469)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그 출처, 기원이 천적인 진리는 정말 기분 좋다, 정말 마음에 든다는 뜻입니다.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signifies that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is delightful.

 

※ 천적이거나 천적인 것에서 나온 모든 진리는 속 사람에게는 행복이요, 겉 사람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것입니다. 천적 천사들에게도 그렇게 지각됩니다. 그러나 그 근원이 천적이지 않으면 정반대입니다. 속 사람 안에 두 종류의 행복이 있는데 그에 상응하여 겉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선이요, 다른 하나는 진리입니다. 천적 행복과 즐거움은 선으로 되어 있고, 영적 행복과 즐거움은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진리 자체가 행복과 즐거움을 수반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진리가 오직 천적 기원을 가지려면 이건 필수입니다. 그때 진리 자체가 천적이 되고, 천적 진리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그때 진리는 마치 봄철 태양 빛과도 같습니다. 그 안에 열이 있어 땅 위 모든 것을 자라나게 하고, 활동하게 하는 빛 말입니다. 이 천적 진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의 의미입니다. 이 표현에 담긴 더 많은 아케이나가 이어지는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AC.1470)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1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이 말씀에서 오는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 주님은 그 지식에 담기는 진리가 천적인 것과 아주 가깝고, 정말 기분 좋은, 매우 마음에 드는 진리라고 생각하셨다

 

2021-09-29(D4)-매일예배(2201, AC.1465-1470, 창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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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rWLBLC-Z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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