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분의 일을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고 하며, 또 두 번이나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고 합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사람을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일’(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합니다. 이사야에서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서로 아주 구별되게 사용됩니다. 위의 말씀에서도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형성하시며, 그것을 만드시는 것’(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이라고 하며, 같은 선지서의 다른 곳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창세기의 앞 장과 이 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지금 다루는 말씀의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창조하신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라는 표현도 그러합니다. 속뜻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합니다. 주님을 ‘창조자’(creator), ‘형성자’(former), 또는 ‘만드시는 분’(maker)이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해설

AC.88은 앞의 설명을 하나의 중요한 원리로 모읍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까닭은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AC.87에서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라고 했다면, AC.88은 그 원리를 거듭남 전체로 넓혀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고 명시합니다.

 

이 때문에 창2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표현도 사람의 거듭남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이며, 그 일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를 사람의 거듭남으로 읽는 것은 단순히 창조의 각 대상을 인간의 여러 특성에 대응시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전체 과정의 행위자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그 해석의 중심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사야의 긴 말씀을 인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땅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하며 하늘을 펴시는 여호와의 일이 함께 나오고,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거듭난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하늘’, ‘땅’, ‘사람’의 창조는 앞에서 살펴본 속 사람과 겉 사람의 형성 및 사람의 새 창조라는 문맥과 연결됩니다. 이 인용은 새 창조가 인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AC.88 후반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표현이 아주 구별되게 사용되며, 속뜻에서는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AC.84 마지막의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단순한 문체적 반복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이사야에서도 ‘하늘을 창조하고, 땅을 형성하고, 그것을 만든다’고 하며, 사43:7에서도 한 사람을 두고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들었다’는 세 표현을 함께 사용합니다.

 

다만 AC.88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경계선도 남깁니다. 세 표현이 서로 다른 관념을 전달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말하지만, ‘창조하다’는 정확히 무엇을, ‘형성하다’는 무엇을, ‘만들다’는 무엇을 각각 뜻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 단어에 임의의 고정된 상응을 부여하기보다, 이후 스베덴보리가 그 차이를 직접 밝혀 주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금 확실하게 붙들 수 있는 것은 세 표현이 우연한 동의어의 반복이 아니라 속뜻에서 실제로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말을 인간의 자유와 응답을 없애는 말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앞에서 사람은 실제로 싸움 가운데 있고 선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새롭게 창조하고 악을 이기게 하며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형성하시는 능력의 근원이 주님 홀로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난 뒤에도 그 완성을 자신의 공로나 자기 힘의 결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AC.88은 창조 이야기와 거듭남을 더욱 긴밀하게 결합합니다. 새 창조는 곧 거듭남이며, 그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설명하는 말씀의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표현 하나하나에도 서로 구별되는 속뜻의 관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번호는 사람의 거듭남을 ‘하나님의 일’이라 함으로써 창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전체를 누가 이루셨는지를 다시 분명히 합니다. (AC.88 해설)

 

 

 

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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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7, 창2:2-3,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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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7

천적 인간이 ‘안식일’(sabbath), 곧 ‘안식’(rest)인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옵니다. 이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악한 영들이 도저히 머물 수 없어 멀리 달아납니다. 그리고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이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쉬셨다’(rested)고 합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해설

AC.87은 천적 인간을 ‘안식일’, 곧 ‘안식’이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밝힙니다. 그가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AC.84에서는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사실을 말했고, AC.85에서는 여섯 날의 싸움과 수고 뒤에 평화의 상태가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싸움이 그칠 때 영계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오며, 이들이 함께 있을 때 악한 영들은 머물지 못하고 멀리 달아납니다.

 

그러나 AC.87의 가장 중요한 설명은 마지막 문장에 있습니다. 앞선 여섯 날 동안 싸움이 있었지만, 그 싸움을 실제로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이 끝났을 때 말씀은 사람이 쉬었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쉬셨다’고 합니다. 창조의 여섯 날을 사람의 거듭남으로 읽으면서도 그 거듭남의 근원적인 행위자를 사람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81에서도 영적 인간은 실제로 ‘싸움 가운데 있으며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싸움을 경험하고 악과 거짓에 맞서며 주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지만, 그 싸움에서 악을 이기게 하는 능력의 근원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AC.87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경험과 응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능력과 공로를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온다는 설명은 천적 인간의 안식이 단순한 심리적 평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인간의 거듭남은 영계와 분리된 인간 내부만의 변화가 아닙니다. 사람이 천적 상태에 이르면서 그와 함께하는 영적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악한 영들의 공격이 물러가면서 싸움의 상태도 그칩니다.

 

따라서 AC.87에서 ‘주님께서 쉬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피곤하여 활동을 중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여 싸우신 분이 주님 홀로이시므로 그 싸움이 그친 상태를 주님의 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AC.84에서 시작된 ‘왜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기에서 가장 직접적인 답에 이릅니다. 여섯 날의 싸움도 주님의 역사이고, 그 싸움이 끝나 천적 인간의 평화에 이른 것도 주님의 역사이므로, 그 완성된 상태가 주님의 ‘안식’입니다. (AC.87 해설)

 

심화

1. ‘선한 영들’은 누구인가?

 

AC.87 심화 1, ‘선한 영들’은 누구인가?

AC.87 심화1. ‘선한 영들’은 누구인가? AC.87을 읽으면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이 가까이 오며, 천적 천사들도 가까이 온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앞의 AC.50에서는 사람마다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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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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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에서 아침으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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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6

‘여섯째 날’(sixth day)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할 때, 곧 여기서 처음 다루는 상태에 들어갈 때가 ‘안식일의 저녁’(eve of the sabbath)입니다.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것은 이 상태를 표상한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곧 설명할 ‘아침’(morning)입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which state is here first treated of, it is the “eve of the sabbath,”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keeping holy of the sabbath from the evening. The celestial man is the “morning” to be spoken of presently.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눅23:54)

 

해설

AC.86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안식일의 저녁’이라 합니다. 영적 인간은 이미 ‘여섯째 날’이 되었지만, 이제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갑니다. AC.83에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던 바로 그 전환이 여기서는 ‘안식일의 저녁’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사이가 단순히 끊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영적 인간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고 전혀 별개의 천적 인간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여섯째 날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상태를 ‘안식일의 저녁’이라 하고,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것은 바로 이 상태를 표상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저녁’은 단순히 하루가 끝나는 자연적인 시간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6에서는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특정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유대교회의 안식일 규례도 외적인 의식에 그치지 않고,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거듭남의 질서를 표상하고 있었습니다. AC.85에서 유대교회의 제도 가운데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한 설명이 바로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저녁’이 마지막 상태는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곧이어 천적 인간을 ‘아침’이라 하며, 그것은 다음 번호에서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따라서 AC.86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 싸움과 안식 사이의 전환점을 보여 주는 짧은 연결 번호입니다. ‘저녁’은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이고, ‘아침’은 그렇게 된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AC.86은 앞에서부터 이어져 온 거듭남의 과정이 연속적인 질서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에게서 사랑과 신앙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며, 이것이 ‘안식일의 저녁’입니다. 그리고 그 전환을 지나 천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면 ‘아침’이 됩니다. 다음 번호는 바로 이 ‘아침’의 의미를 더 밝히게 됩니다. (AC.86 해설)

 

 

 

AC.87, 창2:2-3,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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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안식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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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안식일이라 한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르카나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영적 인간을 천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 차이는 AC.81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 곧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에서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는 그 뒤에 이어진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뒤의 주님의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모든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에는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일곱째 날인 안식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궤가 나아갈 때와 쉴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궤가 이동한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했고, 궤가 쉰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궤가 떠날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또 그곳에서는 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을 위하여 ‘쉴 곳을 찾으려고’(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민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성질은 자기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바람’(desire)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은 여기서 ‘땅의 높은 곳에 올려짐’(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즐거움도 누리는데, 이것은 ‘야곱의 기업으로 길러짐’(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으로 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 - 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 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는 천적 인간이 왜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인가를 한층 더 깊이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르카나였다고 하면서 그 직접적인 이유를 천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영적 인간의 본성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인간 사이에는 AC.81에서 본 것처럼 큰 차이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지 못하여 둘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AC.85에서 더 근본적인 설명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하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결국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까닭도 그 안식이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교회와 개인에게 함께 적용됩니다. 태고교회는 뒤에 이어진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고, 이후의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입니다. 또한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에는 주님의 형상이므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광야에서 궤가 나아가고 쉬었던 일은 이 질서를 표상합니다. 궤의 이동은 싸움과 시험을, 궤의 쉼은 평화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AC.84에서 말한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것은 AC.85에서 ‘평화의 상태’라는 적극적인 내용으로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이사야의 안식일 말씀은 그 평화가 어떤 상태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하며, 더 나아가 주님의 뜻이 바로 자기의 ‘바람’이 됩니다. 이것은 외적인 강제로 자기 욕망을 억누르는 상태와 다릅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박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가운데 자유롭다고 했는데, AC.85는 그 자유의 내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뜻과 사람의 바람이 대립하여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을 기뻐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의 바람이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한 무활동이나 싸움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이 있고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를 이사야의 ‘땅의 높은 곳에 올려짐’으로, 후자를 ‘야곱의 기업으로 길러짐’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안식일의 깊은 중심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주님의 뜻이 자신의 바람이 된 데서 오는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이로써 AC.74와 AC.84에서 이어져 온 질문도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것은 여섯 날의 싸움과 수고 뒤에 오는 주님의 안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 것은 피로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평화가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안식의 궁극적인 근원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AC.85 해설)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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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에서 아침으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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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일곱째 날, 모든 싸움이 그치고 주님께서 쉬신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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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창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날 동안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그분의 일’(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앞에서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이라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것은 근본적으로 주님의 역사이며, 그래서 그것을 ‘그분의 일’이라 합니다. 사람이 죽은 상태에서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고, 마침내 천적 인간이 되는 거듭남의 과정에서 실제로 싸움을 겪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를 창조하고 형성하며 새롭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앞선 여섯 날의 역사가 누구의 일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곱째 날에 주님께서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하는 이유는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수고하여 피곤해진 뒤 쉬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은 거듭남의 싸움이 그친 상태와 관계됩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면서 승리하지만, 천적 인간은 같은 방식의 싸움 가운데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AC.84는 이제 그 차이를 창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의 구조에 연결합니다.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여섯 날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싸움이 그치고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일곱째 날, 곧 안식의 상태가 됩니다.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안식일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안식일이라는 명칭 자체를 ‘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와 연결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속뜻은 단순히 일정한 날짜에 일을 멈추는 외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고, 주님께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신 거듭남의 싸움이 그치고 천적 상태에 이르는 것과 연결됩니다. 다만 AC.84는 그 안식의 상태를 아직 상세하게 펼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왜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왜 그것을 주님의 안식이라 하는지 그 기본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라는 말은 앞선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전체를 한 문장으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의 거듭남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 안에서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종착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싸움을 완수하여 스스로 안식을 획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가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져 싸움이 그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AC.84에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창조 이후에 덧붙여진 하루가 아니라, 앞선 모든 역사가 향하고 있던 천적 인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AC.84 해설)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천적 인간의 안식은 주님의 안식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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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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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를 이룰 때에는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해설

AC.83은 창2:1의 ‘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이 다 이루어졌다’는 말이 사람의 거듭남에서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그것들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완성’은 단순히 여러 영적 요소가 모두 갖추어졌다는 뜻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형성되어 온 신앙과 사랑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된 상태와 관계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어지거나 무가치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스베덴보리는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달라지는 것은 신앙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둘 사이의 질서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신앙이 주된 위치에 있었다면, 천적 인간으로 나아가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은 그 사랑과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AC.81의 설명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거기서 영적 인간은 사랑에서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서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행동하지만,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랑에서 행동한다고 했습니다. AC.83의 ‘신앙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는 말은 바로 그 차이를 창2:1의 ‘다 이루어졌다’는 표현과 연결하여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천적 인간을 이해할 때 ‘신앙에서 사랑으로 갈아탄 사람’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 됨으로써 신앙도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과 하나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또한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는 표현에서 ‘되기 시작한다’는 말도 중요합니다. AC.83은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을 아무 관계 없는 두 상태로 끊지 않습니다. 여섯째 날에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 곧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하고, 이것이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1의 여섯째 날은 영적 인간의 완성인 동시에 창2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천적 상태로 이어지는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AC.83은 이처럼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신앙과 사랑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읽게 합니다. 그리고 그 결합 안에서 무엇이 주된 것인가를 분명히 합니다.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있으면서도 신앙이 사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주된 것이 되고 신앙이 그 사랑에서 나오는 질서, 바로 이것이 AC.83이 보여 주는 천적 인간으로의 변화입니다. (AC.83 해설)

 

심화

1. the ‘sixth day’와 ‘the sixth day’는 다른 뜻인가?

 

AC.83 심화 1, the ‘sixth day’와 ‘the sixth day’는 다른 뜻인가?

AC.83 심화1. the ‘sixth day’와 ‘the sixth day’는 다른 뜻인가? AC 영어 원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작은 따옴표 문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AC.83의 Potts 영어는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라고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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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일곱째 날, 모든 싸움이 그치고 주님께서 쉬신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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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 (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이 말씀들은 사람이 이제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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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

이 말씀들은 사람이 이제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heaven)은 그의 속 사람이고, ‘땅’(earth)은 그의 겉 사람이며, ‘그것들의 만상’(the army of them)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앎들인데, 이것들은 앞에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뜻해졌습니다. 속 사람을 ‘하늘’(heaven), 겉 사람을 ‘땅’(earth)이라 한다는 것은 앞 장에서 이미 인용한 말씀의 구절들에서 분명하며, 여기에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 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이 말씀들에서 ‘하늘’(heaven)과 ‘땅’(earth)이 모두 사람에 대하여 서술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들은 일차적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말씀의 내적인 것들은 교회에 대하여 말한 것은 무엇이든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면 결코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성전이 아닌 사람은 성전이 뜻하는 것, 곧 교회와 천국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를 단수로 ‘사람’(man)이라 합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해설

AC.82부터 창2:1의 상세한 속뜻 해설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창조의 ‘여섯째 날’은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형성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늘’은 속 사람이고 ‘땅’은 겉 사람이며, ‘그것들의 만상’은 사랑과 신앙 및 그것들에 관한 앎들입니다. 이것들은 창1에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묘사되었던 것들입니다. 따라서 창2:1은 앞 장의 창조 이야기를 마친 뒤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루어진 영적 인간의 상태를 하나로 모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하늘’과 ‘땅’을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이해하는 근거를 밝히기 위해 사13:12-13과 사51:13, 16을 인용합니다. 이 인용들의 직접적인 목적은 각 구절의 모든 세부적인 속뜻을 여기서 해설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자연계의 하늘과 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도 서술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사13:12의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와 같은 표현은 흥미로운 별도의 질문을 일으키지만, 그것이 AC.82에서 이사야를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와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근거를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이 중요합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지만, 교회에 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를 이루는 각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성전의 예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성전이 아니라면 성전이 뜻하는 교회와 천국에도 참으로 속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말씀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과 한 개인의 거듭남을 가리키는 표현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한 상응 사전의 고정 공식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AC.82에서 중요한 것은 왜 교회에 관한 표현을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근거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과 분리된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며, 각 사람 안에서 교회가 이루어져야 그들이 함께 교회를 이룹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 전체도 단수로 ‘사람’이라 합니다.

 

이렇게 보면 AC.82는 앞의 AC.81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81은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차이를 설명했고, AC.82는 그 가운데 창1에서 형성된 영적 인간이 ‘여섯째 날’이 된 상태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제 이 영적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 및 그 안의 사랑과 신앙이 완성된 상태에서, 다음에는 일곱째 날로 표현되는 천적 인간의 상태가 설명될 것입니다. (AC.82 해설)

 

심화

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AC.82 심화 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AC.82 심화1. 왜 주님은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가? 사13:12에서 여호와께서는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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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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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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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람이 무엇인지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도록 각각의 성질을 간략히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첫째, 죽은 사람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숭배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와 선을 인정하지만, 사랑에서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서 그렇게 하며, 또한 그 원리에서 행동합니다. 천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와 선을 믿고 퍼셉션하며,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그 사랑에서 행동합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celestial man, as the preceding one did of the spiritual, who was formed out of a dead man. But as it is unknown at this day what the celestial man is, and scarcely what the spiritual man is, or a dead man, it is permitted me briefly to state the nature of each, that the difference may be known. First, then, a dead man acknowledges nothing to be true and good but what belongs to the body and the world, and this he adores. A spiritual man acknowledg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but he does so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is likewise the ground of his actions, and not so much from love. A celestial man believes and perceiv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acknowledging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is from love, from which also he acts.

 

[2] 둘째, 죽은 사람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삶만을 향하며, 그는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합니다. 혹 안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영적 인간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영원한 삶을 향하며,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향합니다. 천적 인간을 움직이는 목적들은 주님을 향하며, 그분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을 향합니다. Second: The ends which influence a dead man regard only corporeal and worldly life, nor does he know what eternal life is, or what the Lord is; or should he know, he does not believe. The ends which influence a spiritual man regard eternal life, and thereby the Lord. The ends which influence a celestial man regard the Lord, and thereby his kingdom and eternal life.

 

[3] 셋째, 죽은 사람은 싸움 가운데 있을 때 거의 언제나 굴복하며, 싸움 가운데 있지 않을 때에는 악과 거짓이 그를 지배하므로 그는 종입니다. 그를 붙들어 매는 결박은 외적인 것으로, 법에 대한 두려움,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재산과 이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평판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입니다.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합니다. 그를 제어하는 결박은 내적인 것이며, 양심의 결박이라 합니다.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에는 그것들을 업신여기므로 정복자라 합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결박에도 제어되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그의 결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Third: A dead man when in combat almost always yields, and when not in combat, evils and falsities have dominion over him, and he is a slave. His bonds are external, such as the fear of the law, of the loss of life, of wealth, of gain, and of the reputation which he values for their sake. The spiritual man is in combat, but is always victorious; the bonds by which he is restrained are internal, and are called the bonds of conscience. The celestial man is not in combat, and when assaulted by evils and falsities, he despises them, and is therefore called a conqueror. He is apparently restrained by no bonds, but is free. His bonds, which are not apparent, are perceptions of good and truth.

 

해설

AC.81은 창1에서 다룬 영적 인간과 창2에서 다루는 천적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죽은 사람까지 포함한 세 상태를 직접 비교합니다. 여기서 ‘죽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는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AC.67-72에서 육체의 죽음과 다른 삶을 다룬 직후라고 해서 여기의 ‘죽은 사람’을 사망한 사람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81의 세 구별은 한 인간이 거듭남 가운데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차이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근원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이고 천적인 선과 진리를 인정하지만 ‘사랑에서라기보다는 신앙의 원리에서’ 그렇게 하며 그 신앙에서 행동합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선과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퍼셉션하며,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외에는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랑에서 행동합니다. 따라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신앙이 없어지고 사랑만 남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이 사랑에서 나오고, 행동 역시 그 사랑에서 나오는 질서가 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차이는 사람을 움직이는 ‘목적’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목적은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삶에 머뭅니다. 영적 인간의 목적은 영원한 삶을 향하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향합니다. 천적 인간의 목적은 먼저 주님을 향하고, 그분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을 향합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은 모두 주님과 영원한 삶을 향하지만 그 질서가 다릅니다. AC.73에서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나아간다고 했던 말은 단순히 같은 것을 더 강하게 믿는 정도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목적의 질서가 달라지는 변화와도 관계됩니다.

 

세 번째 차이는 영적 싸움과 사람을 제어하는 결박에서 나타납니다. 죽은 사람은 싸움에서 거의 언제나 굴복하고, 싸움이 없을 때에는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를 제어하는 것은 법이나 생명, 재산, 이익, 평판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외적인 결박입니다.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으면서 승리하고, 그를 제어하는 것은 양심이라는 내적인 결박입니다. 천적 인간은 더 이상 같은 방식의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이 공격해 와도 그것들을 업신여깁니다. 그에게도 결박이 있지만 그것은 외적으로 강제하는 결박처럼 드러나지 않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 보기에 어떤 결박에도 제어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 구별은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을 서로 완전히 별개의 인간 종류로 나누기 위한 분류표라기보다, 앞 장과 이 장에서 다루는 거듭남의 상태 차이를 이해하게 하는 설명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천적 인간을 단순히 영적 인간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만 이해하면 AC.81의 세밀한 구별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보여 주는 차이는 선과 진리를 어디에서 받아들이는가, 무엇이 삶의 주된 목적이 되는가, 악과 거짓 앞에서 어떤 내적 상태에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 세 기준을 붙들면 앞으로 창2에서 말하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훨씬 정확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81 해설)

 

 

 

AC.82, 창2:1, ‘하늘은 속 사람, 땅은 겉 사람’ (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이 말씀들은 사람이 이제 ‘여섯째 날’(sixth day)이 될 만큼 영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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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창2:1-17 개요, ‘주님으로부터의 퍼셉션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탐구’ (16-17절)

AC.80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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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16-17절)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6, 17절)

 

해설

AC.80은 창2:16-17의 개요이며,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질서에 하나의 중요한 제한을 제시합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에덴동산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아는 것’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별이 나타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선과 진리를 아는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금지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알려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2:16-17의 금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등장한다고 해서 지식이나 이성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AC.75에서는 천적 인간에게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음을 말했고, AC.78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이 겉 사람에게 속하며 이것들까지도 지혜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80의 문제는 인간이 알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선과 진리 및 신앙의 아르카나를 무엇으로부터 알고 판단하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천적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AC.77에서는 에덴동산의 보기에 좋은 나무들이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선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0은 그 퍼셉션의 근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을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직감이나 자기 확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그 뜻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혀 줍니다. 그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감각적인 것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외적인 것들과 관계되고, ‘기억지식’은 사람이 배우고 경험하여 기억에 받아들인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자체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AC.78에서 기억지식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AC.80은 자연계의 사실을 관찰하거나 기억지식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신적인 것의 진실 여부를 인간 자신이 결정하려는 질서를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질문이나 연구 자체의 금지로 읽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의 속뜻을 밝히면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구별하고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C.80에서 금지되는 것은 탐구라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라는 방식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 구별 때문에 AC.80을 반지성주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자연적인 사실을 감각과 관찰을 통하여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다루는 것은 ‘신앙의 아르카나’입니다. 자연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과 기억지식을 그대로 신적인 것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인식 방법의 차이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닙니다. 창2:17의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속뜻에서는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되는 것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AC.73에서 거듭남 이전의 사람이 ‘죽어 있던’ 상태라고 한 것과 AC.80에서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AC.79와 AC.80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도 보입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번호 모두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지거나 아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방향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여기서 proprium이나 인간의 자유에 관한 전체 교리로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AC.79와 AC.80이 보여 주는 직접적인 연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AC.80은 따라서 창2:16-17의 금령을 ‘알지 말라’는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은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부터 아는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질서입니다.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할 때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는 것이, 이 개요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16-17에 관하여 먼저 제시하는 핵심입니다. (AC.80 해설)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창2:16-17을 개역개정과 AC에 실린 영어 성경으로 함께 읽으면 작은 차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개역개정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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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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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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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h a garden. But as the garden is the Lord’s, it is permitted this man to enjoy all these things, and ye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verse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5절)

 

해설

AC.79는 앞에서 묘사한 에덴동산을 천적 인간 자신과 연결합니다. AC.77에서는 그의 지성이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되고, 그 안의 나무들은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이며,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는 사랑과 신앙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AC.78에서는 동산의 강이 지혜이고, 그 지혜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에게 속한 여러 것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79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천적 인간과 무관한 외부의 장소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성과 지혜와 그 안에 있는 선과 진리의 질서를 함께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천적 인간이 동산이라고 하면서도 그 동산의 소유권을 인간에게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퍼셉션, 사랑과 신앙, 지혜, 선과 진리, 앎, 이성, 기억지식 등은 모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근원을 사람 자신에게 둘 수는 없습니다. AC.78에서도 이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며 그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AC.79는 이제 그 질서를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라는 말로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따라서 ‘누리는 것’과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의 구별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사람이 실제로 누린다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가 실제로 있으며, 그는 그것들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행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선하고 참된 것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 질서와 관계됩니다.

 

AC.79는 아직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며,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것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뒤에서 더 깊이 다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후대의 ‘proprium’ 교리를 모두 앞당겨 넣기보다, 천적 인간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누리면서도 그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자기 소유로 삼지 않는다는 기본 질서를 먼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천적 인간이 에덴동산이라는 말과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질서 안에서 함께 성립합니다. (AC.79 해설)

 

 

 

AC.80, 창2:1-17 개요, ‘주님으로부터의 퍼셉션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탐구’ (16-17절)

AC.80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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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창2:1-17 개요, ‘에덴의 강과 네 강, 지혜에서 나오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것들’ (10-14절)

AC.78동산의 강은 지혜를 뜻합니다. 거기에서 네 강이 흘러나왔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cognitio]입니다. 이것들은 속 사람에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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