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

‘셋’(Seth)이라 하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비슷했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모양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고 한 데서 분명합니다. 여기서 ‘모양’(likeness)은 신앙과 관계되고, ‘형상’(image)은 사랑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사랑과 거기서 비롯되는 신앙에 있어서 태고교회와 같지는 않았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한 데서 분명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모양은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그만큼 주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신앙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해설

AC.484는 앞의 AC.481에서 ‘셋’이라는 새 교회가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고 한 말의 의미를 한층 정확하게 밝혀 줍니다. 셋 교회는 태고교회의 성격을 상당히 이어받았지만 태고교회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사랑’과 ‘신앙’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완전한 상태에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었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은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부터 무엇이 참인지를 퍼셉션했으며, 따라서 신앙은 사랑과 떨어져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의 AC.479에서도 천적 인간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태고교회의 본래적인 천적 질서입니다.

 

그런데 셋 교회에 이르러서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사랑이 더 이상 이전처럼 압도적으로 ‘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AC.484의 마지막 말 그대로 ‘여전히 신앙은 사랑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셋 교회는 태고교회의 완전한 천적 상태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사랑과 신앙의 결합이라는 본질적인 질서는 아직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창4의 가인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가인으로 표상된 것은 사랑 또는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었습니다. 반면 창5의 셋 교회에서는 사랑이 이전만큼 주된 위치에 있지는 않았어도 신앙이 사랑과 분리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태고교회의 최초 상태와 차이가 있지만 그 방향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는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분리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우위가 약해지면서도 신앙과 사랑의 결합 자체는 유지되는 방향입니다. 이 차이는 앞으로 창4의 계열과 창5의 계열을 함께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셋 교회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창1의 거듭남의 질서에서 여섯째 날은 사람이 신앙과 사랑의 결합에 이른 상태이지만, 완전한 천적 상태를 의미하는 일곱째 날, 곧 안식일과는 구별됩니다. AC.480에서는 여섯째 날의 끝에서 일곱째 날이 시작되며, 일곱째 날이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AC.484가 셋 교회를 여섯째 날의 영적 인간과 연결하는 것은, 셋 교회가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를 그대로 되풀이한 교회가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다른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481의 ‘모양’과 ‘형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는 ‘모양’이 신앙에, ‘형상’이 사랑에 관계됩니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가 모두 셋 교회 안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신앙만 남은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여전히 함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관계에서 사랑이 태고교회의 가장 완전한 상태에서처럼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셋 교회를 단순히 ‘태고교회와 비슷한 또 하나의 교회’라고만 이해하면 이 글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매우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그 차이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사랑과 신앙의 결합은 유지되었으나 사랑의 주도성이 약해졌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후대 교회들이 어떻게 최초의 천적 상태에서 점차 다른 퍼셉션과 영적 상태로 옮겨 가는지를 보여 주는 첫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국 AC.484에서 셋은 단절보다는 ‘계승 속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앞선 교회의 모든 상태가 그대로 반복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 있던 선과 진리를 다음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셋 교회에서는 태고교회의 가장 높은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질서 하나, 곧 신앙이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독립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과 결합되어 있는 질서는 보존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셋 교회는 창4의 가인으로 표상된 길과 뚜렷이 구별됩니다. (AC.484 해설)

 

 

 

창5:3, AC.485,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

bygrace.kr

 

창5:3, AC.483, ‘퍼셉션(perception)의 차이로 구별된 태고교회의 여러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뒤이어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밝히고 입증하였습니다. 거기서 남자, 곧 남성(man [vir])은 이해(understanding)와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고, 여자, 곧 여성은 의지(will) 또는 의지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랑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하와’(Eve)라 하였는데, 이 이름은 생명을 의미하며, 생명은 오직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보여 준 것처럼 여자는 또한 교회를 의미하고, 남자는 교회에 속한 사람(man [vir] of the church)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교회가 영적이었을 때의 상태와 그 후 천적으로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창1:26-27에서와 같이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 언급됩니다. 또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그 후 결혼이 이루어졌을 때, 곧 교회가 천적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고 ‘사람’(man [homo])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 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곧이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하며, 이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 27)

 

해설

AC.476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의미하는지를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의 관계를 통해 설명합니다. ‘남자’(vir)는 이해와 거기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므로 신앙에 속한 것을 표상하고, ‘여자’는 의지와 거기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므로 사랑에 속한 것을 표상합니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믿는 행위가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쪽과 관계되고, 사랑은 그 진리를 원하고 기뻐하며 살아내는 의지의 쪽과 관계됩니다.

 

여자를 ‘하와’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와’는 생명을 의미하고, 스베덴보리는 생명이 본질적으로 사랑에 속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따라 살고, 그 사랑이 그의 의지와 삶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의지와 사랑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서로 연결됩니다. 교회의 생명 역시 단순히 진리를 알고 있는 데 있지 않고, 그 진리가 사랑과 의지 안에서 살아 있게 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언급된 이유입니다. AC.476은 여기서 다루는 상태가 교회가 처음에는 ‘영적’이었다가 이후 ‘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영적 상태에서는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사랑과 선으로 나아가므로, 이해와 신앙을 의미하는 ‘남자’가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창1:26-27에서도 동일합니다. 또한 AC.472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조하다’라는 표현 역시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의 결혼이 이루어져 교회가 천적 상태에 이르면 표현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고 각각 말하지 않고 둘을 하나로 묶어 ‘사람’(homo)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속뜻으로는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이 더 이상 서로 분리된 두 원리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생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다’고 합니다. 둘이 결혼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점은 AC.472-473의 ‘형상’과 ‘모양’의 구별과도 정확히 이어집니다. 영적 인간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신앙을 통하여 선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천적 인간은 신앙과 사랑, 이해와 의지가 결혼을 이루어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모양’입니다. 따라서 창5:1-2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태고교회가 영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루는 천적 상태에 이른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결국 ‘남자와 여자’에서 ‘사람’으로 표현이 바뀌는 것은 태고교회의 거듭남이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줍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것과 선을 사랑하는 것, 신앙과 사랑이 따로 움직이는 동안에는 아직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둘을 결합하시면 신앙은 사랑으로부터 나오고, 이해는 의지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며, 사람의 내적 삶 전체가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됩니다. 바로 이 상태를 말씀은 ‘사람’(homo)이라 하고, AC.476은 이 ‘사람’이 곧 교회를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AC.476 해설)

 

 

 

AC.477, 창5:2, ‘오직 주님만이 참된 사람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형상과 모양’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자주 말

bygrace.kr

 

AC.475, 창5:2,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룬 교회’(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로, 먼저 이 교회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이 묘사됩니다.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해설

AC.474는 AC.469에서 시작된 창5:1의 해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왜 창5의 계보가 곧바로 셋과 그 후대의 교회들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태고교회 자체의 상태를 설명하는지를 밝혀 줍니다. 창5가 다루려는 것은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입니다. 여기서 ‘번성’은 단순히 자녀가 태어나 인구가 늘어나는 생물학적 번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부터 그 성격을 이어받은 후대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계속되는 교회적 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후대의 교회들을 설명하려면 먼저 그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창5:1은 태고교회가 먼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을 묘사합니다. AC.472와 AC.473에서 살펴본 ‘창조하다-영적 인간-하나님의 형상’과 ‘만들다-천적 인간-하나님의 모양’이라는 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창5의 여러 교회가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진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셋, 에노스, 게난 등의 교회들은 아무 관계 없이 차례로 등장하는 독립된 교회들이 아니라, 먼저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파생되고 계승되는 교회들입니다. 물론 후대로 내려가면서 처음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장 개요에서 보았듯이 그 상태는 점차 변화하고 쇠퇴하여 마침내 노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승의 출발점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입니다.

 

이것은 ‘계보의 책’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문자적으로 계보에는 부모와 자녀의 출생이 기록되지만, 속뜻으로는 교회가 교회를 낳고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이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낳았다’는 표현을 앞으로 만날 때에도 단순히 개인의 출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 상태로부터 다음 교회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AC.474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창4와 창5의 관계에도 하나의 중요한 기준을 더해 줍니다. 적어도 창5의 계열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그 출발점을 분명히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가 된 태고교회’에 두고 있으며, 그 이후의 교회들이 ‘이 상태로부터’ 번성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5는 태고교회 자체의 천적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후대 교회들의 계승과 변화를 추적하는 하나의 분명한 교회적 계열입니다. 이것이 창4의 계열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하지만, 창5 자체의 출발점과 진행 방향은 이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AC.469-474에서 창5:1은 앞으로 펼쳐질 교회사의 기준점을 세웁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여 영적 인간으로 만드시고, 다시 사랑으로부터 살아가는 천적 인간으로 완전하게 하셨으며, 그렇게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이후의 여러 교회가 이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움직이는 가장 깊은 시작은 인간의 혈통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시는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AC.474 해설)

 

 

 

AC.469-474 심화 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69-474 심화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70-471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 시대의 사람들이 ‘집안’(house), ‘일가’(family), ‘민족’(nation)으로 구별되어

bygrace.kr

 

 

 

AC.475, 창5:2,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룬 교회’(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bygrace.kr

 

AC.473, 창5:1, ‘하나님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영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보여 준 바 있습니다. ‘형상’(image)은 ‘모양’(likeness)을 위한 준비 단계이며, ‘모양’은 실제적인 닮음(real replica)입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에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해설

AC.473은 우리가 흔히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거듭남의 서로 다른 상태로 구별합니다. ‘형상’은 영적 인간을, ‘모양’은 천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형상은 모양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무관한 두 종류의 인간을 나란히 놓은 구별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앞선 상태와 더 완성된 상태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형상’이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주님의 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직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의지와 주님의 뜻 사이에서 싸움과 선택을 경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상’은 ‘모양’을 향한 준비입니다.

 

반면 ‘모양’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실제적인 닮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유를 곧바로 밝힙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적 인간이 주님과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의지와 삶의 질서가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그 삶에서 주님의 사랑과 선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AC.472의 ‘창조하다’와 ‘만들다’의 구별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그 영적 인간이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져’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이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조 → 형상 → 영적 인간’과 ‘만들다 → 모양 → 천적 인간’이라는 두 흐름은 서로 다른 설명이 아니라 동일한 거듭남의 질서를 서로 다른 말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을 인간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자유는 주님과 반대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따라 선을 기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억지로 주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자신의 사랑이 점점 하나의 방향을 향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그의 기쁨과 자유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모양’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결국 AC.473은 거듭남의 목적이 단지 ‘올바른 것을 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 안에 당신의 ‘형상’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형상이 사랑과 삶 속에서 더욱 실제적인 ‘모양’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신앙과 진리가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고, 마침내 사람이 주님의 다스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양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AC.473 해설)

 

 

 

AC.474, 창5:1,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태고교회’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

bygrace.kr

 

AC.472, 창5:1, ‘창조함과 만드심,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day in which God created man)이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